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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오랜 잠에서 깨어난 미얀마의 기적 

‘민주주의’와 ‘경제’ 양 날개로 비상(飛上) 

양곤=신승현 (미얀마 영문 매거진) 편집장
아웅산 수지, 총선 승리 후 군부와 협력해 ‘불교자본주의’ 국가모델 실험 착수… 한국도 메콩강 인근의 15억 인구를 아우르는 거대한 물류·소비시장 공략에 나서야

▎아웅산 수지 여사 관련 보도를 담은 신문과 잡지로 제작한 아웅산 수지의 얼굴 콜라주 작품.
“이제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게 대세이지 않나? 한국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미국에서도 힐러리가 첫 여성 대통령이 될 확률이 점쳐진다. 필리핀·태국·영국·독일·인도… 이제 미얀마 차례다.”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틴우(89, U Tin Oo) 전 NLD의장은 달라진 미얀마의 정치 지형을 이렇게 설명했다. 오랜 세월 군부에 의해 감금상태에 있던 수지 여사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차츰 현실이 되어간다.

NLD 창립 멤버이자 국방장관을 역임한 틴우 전 의장은 아웅산 수지 곁에서 거의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원로급 인사다. 11월 NLD 총선 승리 후 그는 일약 유력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12월 2일 NLD 당사를 방문했을 당시 각국의 대사가 그를 만나려고 줄지어 선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필자와 만난 그는 “아웅산 수지가 아웅산 장군의 염원을 받들어 국민과 국가만 바라보면서 냉철한 지성으로 조국의 통합과 번영을 이룩할 것”이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웅산 수지에 대한 신뢰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워 보였다. “지혜로운 그녀는 지식이 충만하고 감성이 풍부해 우리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할 것이다. 1962년 네윈 쿠데타 이전 아웅산 장군과 우누 수상이 이룩한 자유롭고 독립적이었던 민주 국가의 영광을 회복할 것이다. 아웅산 장군이 조국의 독립을 이룩한 우리의 국부라면, 아웅산 수지는 조국의 부흥을 이끌 미얀마의 국모다.”

수지의 전광석화와 같은 권력 접수 행보


▎심야의 양곤 도심을 승용차들이 달리고 있다. 정권 교체를 앞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미얀마 경제가 도약을 준비 중이다.
호랑이 눈매를 가진 틴우 전 의장은 미얀마와 한국의 역사를 비교·설명할 정도로 해박한 식견을 가졌다. 그는 힘차고 간명한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한국과 미얀마는 참 비슷하다. 둘 다 일본 식민통치를 받았다. 1961년과 1962년 각기 쿠데타를 경험했으며 1987년과 1988년 각각 민주항쟁을 일으켰다. 2013년 박정희 장군의 딸이 대통령에 취임했고, 2015년 아웅산 장군의 딸이 정권을 장악했다.”

양국의 공통점은 거기가 끝이다. 한국은 권위주의 정부와 압축 성장을 거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했지만 미얀마는 1962년 이래 산업화도 민주화도 동면 상태에 접어들었다. 틴우 전 의장은 “그 53년에 대한 보상을 우리 아웅산 수지가 해낼 것”이라고 민주화에 이은 산업화의 대장정에 나설 것임을 강조했다.

2016년 미얀마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제1야당인 NLD이 390석, 군부를 대표하는 집권 통합단결발전당(USDP)이 42석, 기타 정당이 59석을 각각 차지했다. 선거 없이 군부에 할당되는 166석을 감안해도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NLD가 전체 657석의 과반을 훨씬 웃도는 다수당으로 올라섰다. 1962년 이래 50년 이상 온 나라를 무겁게 짓눌렀던 군부통치의 역사가 막을 내렸다. 1948년 독립 이후 이룩한 민주주의 역사를 다시 회복해 아시아 변혁의 모델이 되고자 한다.

‘어메수(어머니 수, Mother Su).’ 미얀마 사람들은 아웅산 수지를 ‘어메수’라 부른다. 수지 여사는 총선을 통해 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이번 선거의 쟁점은 후보자도 아니요, 공약도 아니었다. 오직 한 사람, 어메수였다. 수지 여사는 선거를 통해 53년에 걸친 군부독재를 종식시켰다.

두 아들의 어머니에서 27년간(1988~2015)의 고난과 탄압을 이겨내고 미얀마의 어머니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업보와 산고의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총선 승리 후 그녀는 미얀마의 숨은 최고실권자 탄 슈웨(U Than Shwe, 84, 1992~2011년 군부 통치기구 국가평화개발평의회 의장)를 전격 방문해 그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탄 슈웨의 손자 네 쉐 슈웨 아웅(Ney Shwe Thwe Aung)이 이번 선거 혁명의 진원지인 페이스북을 통해 수지의 승리를 알리는 극적인 드라마도 연출했다. 수지는 테인 세인(U Thein Sein, 71) 대통령과 민 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U Min Aung Hlaing, Senior General, 60)을 만나 평화적인 정권 이양을 약속받았다.

‘젊음은 술 없는 도취’라고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설파했다. 지금 미얀마는 ‘축제 없는 기다림’이다. 미얀마 국가 재건을 위해 모든 것은 유예되고 있다. 틴우 전 NLD의장은 “낙선자에 대한 예우와 상대방에 대한 존중, 그리고 아직도 벌어지고 있는 소수민족과의 교전 등을 감안, 축제를 펼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미얀마의 민주화는 불가역적인 현재진행형으로 자리 잡았다.

아웅산 수지는 정권 인수를 위해 외교, 경제, 보건 등 10개 위원회를 설치했다. 위원회는 차기 내각의 축소판이다. 정당을 떠나 인재를 두루 등용한다는 방침이다. NLD만으로는 정부를 이끌 인재를 다 충당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했다. 무엇보다 승자독식 없는 사회와 정부를 지향하는 아웅산 수지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결과다. 우누 전 수상의 딸이자 민주당(Democratic Party)을 이끌고 있는 틴틴우(Daw Tin Tin Oo) 대표는 “아웅산 수지가 인재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미얀마의 발전에 함께 하는데 당이 무슨 상관인가. 여당도 적극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총선 당선자들과 가진 첫 상견례(11월 28일)에서 아웅산 수지가 언급한 메시지는 엄격하고 추상같다.

첫째, 당선자들은 경거망동 하지 말고 각 지역구의 청소를 하며 모범을 보여라.

둘째, 월급의 25%를 반납, 국민들과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

셋째, 논공행상은 없다. 고위직은 쳐다보지도 마라.

넷째, 부정부패는 발각 즉시 처벌한다. 입후보 때 신고한 재산보다 늘었다면 부정한 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대통령 위에서(Above the President)’


▎아웅산 수지 여사가 12월 2일 미얀마 네피도에서 테인 세인 대통령을 만나 평화적인 정권 이양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수도 양곤은 지금 쓰레기 줍기 등 거리 청소가 한창이다. 날로 깨끗하고 쾌적하게 변모하는 도시 풍경에서 변화의 현재와 미래를 느낄 수 있다.

미얀마 사회는 두 개 그룹으로 갈라져 있다. 군부를 포함한 기득권층과 서민층이 보이지 않는 상하 계급사회를 이룬다. 한번 서민은 영원한 서민으로 살아야 하는 구조다.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 기회도 거의 주어지지 않거니와 육군사관 학교에는 기득권층에만 입학이 허락된다.

아웅산 수지가 말한 ‘대통령 위에서(Ab ove t he president)’라는 표현도 이런 사회구조를 반영했다.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현 정부를 향한 그의 단호한 집권의지와 민의를 강조한 것이다.

다소 의아한 것은 총선 결과에 대한 미얀마 군부의 반응이다. 그들은 동요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하게 이번 선거 결과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총선 후 미얀마가 정치적,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권력을 놓더라도 군부와 기득권세력(Crony)은 이미 그들만의 영역을 이미 확고하게 구축해놓았기 때문이다. 군부는 어느 정도 준비한 시나리오 대로 움직인다는 추측마저 낳는다. 71세 고령의 아웅산 수지에게 권력을 넘겨주되,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라는 설명이 따른다.

아웅산 수지의 성공 여부는 바로 군부, 이들과 결탁한 기득권층과의 관계 설정에 달려 있다. 미얀마의 군부, 기득권층은 막강한 부와 권력을 향유해왔다. 불·탈법을 불사한다. 막대한 이윤을 안기는 옥광산 수출 사업은 군부와 몇몇 기업의 배만 불린다. 미얀마 군부는 자체 기업을 설립해 광산, 건설업, 농수산업 등에 이르기까지 미얀마 경제의 절반을 주무르고 있다. 서민들의 삶은 곤두박질쳐 세계 최빈국의 최하층을 이룬다. 불평등은 심화됐고, 계급은 고착화됐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물가 상승으로 양곤의 중산층조차 점점 외곽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있다.

군부의 힘을 축소시키고 사회 각 분야의 투명성을 제고해 부강하고 정의로운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과업이 아웅산 수지의 두 어깨를 짓누른다. 편중된 부를 분산하고 불·탈법적 상거래 관행에 제동을 걸면 기존 관행에서 이익을 누려온 기득권층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아웅산 수지는 이 딜레마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김국태 전 미얀마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은 “시대가 바뀌었다”면서 “군부가 1990년 당시와 같은 선거 무효선언 등 불법 행동을 통해 미얀마를 다시 수렁으로 밀어 넣는 일은 재연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미 선거를 통해 민심의 소재가 확인된 데다 미국과 중국이 미얀마의 퇴행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군부를 지원해온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아웅산 수지와 이미 회동한 사실이 달라진 환경을 웅변한다.

물론 군부가 기득권을 쉽게, 완벽하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권력을 이양하는 모양새는 취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독재국가 이집트에 ‘아랍의 봄’을 가져다준 자스민 혁명이 2년 후 쿠데다로 막을 내린 예가 반면교사가 된다. 미얀마 현지에서 각계 유력인사들과 교분을 다져온 김창규 태광실업 전무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연립정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쏟아진 러브콜


▎1. 미얀마에 상륙한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주민들의 빈곤·문맹 퇴치, 주거 환경 개선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 / 2. 틴우 전 민주주의 민족동맹(NLD) 의장(오른쪽)은 아웅산 수지가 미안먀의 부흥을 이끌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 전무는 양곤 일대에 ‘M2 정권’이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전했다. M2 정권이란 어머니(Mother)와 군부(Military)의 연립정부를 뜻한다. 김 전무는 “지금은 국가의 화합을 통해 미얀마의 부흥을 모색할 시점”이라며 절충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버지가 창설한 군대가 정치개입이라는 오욕을 벗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일 또한 아웅산 수지의 몫이다. 헌법개정을 통해 서방의 진일보한 민주주를 도입하되 군부가 피로감 또는 거부감을 갖지 않을 정도로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 책임도 그에게 있다. 군부가 딴 생각을 품지 않고 국가 건설에 동참토록 하는 게 핵심이다. 그들을 또 다시 총을 들고픈 유혹에서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문제는 MLD 당선자들 390명 중 110명이 감옥에 다녀온 경험이 있고 그들의 분노가 NLD 수뇌부의 통제를 벗어나 밖으로 표출될 가능성이다. 양곤 양킨(Yankin)지역에서 당선된 초선의원 진 마 아웅(39, Zin Mar Aung)은 “나도 거리에서 팜플렛을 돌렸다는 혐의로 2년간 감옥에 있었다. 하지만 군부에 대해서는 감정이 없다. 아마 동료 의원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웅산 수지가 결단한다면 의원들 또한 ‘적과의 동침’도 흔쾌히 받아들이며 국가 부흥의 한길로 매진한다는 것이다.

아웅산 수지의 행보는 절제됐지만 보폭은 크다. 군부를 자극하지 않는 한편으로 11월 19일 외국 대사들과의 좌담회를 통해 정권 교체를 기정사실화하는 투 트랙을 달린다. 외교사절과의 만남은 군부가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하게 하면서 평화적인 정권 교체에 국제사회의 협조와 관심을 당부하는 효과를 불러왔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백순 주 미얀마 한국대사는 “수지 여사가 집권세력과 권력을 공유(Power Sharing)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면서 “정치보복은 없다는 점, 좋은 정책은 계승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미얀마는 한반도가 그러하듯 미국과 중국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정학적 위치에 놓여 있다. 균형외교를 통해 국익을 도모해야 하는 처지다. 우선은 미국 정부가 미얀마 군사정부에 부가한 경제제재의 해제 여부가 관심사로 등장한다. 홍석우 신한은행 미얀마 사무소장은 “미국은 공정선거가 이뤄지면 경제 지원을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면서 “새해 4월 새 정부가 출범하면 경제제재 조치가 해제되리라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미얀마에 대한 미국의 관심도 지대한 편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발간된 은 넌픽션 부분 1위를 차지했다. 미얀마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외교 전략을 분석·전망했다. 미국은 경제제재의 해제와 투자를 통해, 중국은 투자와 군부의 안정과 협조를 통해 미얀마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미국도 민주화된 미얀마를 지렛대 삼아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효과를 노려 지원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크다.

미얀마가 한국 등 해외 투자를 유치하자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미얀마에는 아직 미국 은행이 상륙하지 못했다. 홍석우 신한은행 미얀마사무소장은 “당장 50% 룰 제한이 문제”라며 미얀마의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미국 재무성은 SDN(Special Designated Nationals)이라 해서 특별지정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국가, 기업, 기관과 개인이 50% 이상의 지분을 가진 곳과는 거래를 금하고 있다. 이를 어기는 금융기관은 수십억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된다. 미얀마가 바로 SDN 리스트에 올라있다. 미얀마에는 군부와 결탁한 기업 중 약 110여 곳이 SDN로 지정돼 있다. 거래할 때마다 제재 대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주주 리스트를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미얀마를 세계에서 사업하기 힘든 대표적인 나라 중의 하나로 꼽는 배경이다.

동남아와 서남아를 연결하는 아시안 하이웨이의 교차점


▎젊은이들이 즐겨 입는 셔츠에도 아웅산 수지 여사의 이름과 얼굴이 등장한다.
미얀마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들의 롤모델이 바로 한국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이렇다 할 두뇌집단이 없는 미얀마에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같은 MDI(Myanmar Development Institute, 미얀마개발연구원) 설립을 모색 중이다. 미얀마의 개발 청사진을 그릴 연구기관 신설에 미얀마 당국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MDI 설립에 참여하고 있는 남상우 전 KDI국제정책대학원장은 “한국은 상당한 예산을 들여 미얀마의 장단기 개발 플랜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얀마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를 동시에 발전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 모델이 한국이다. 우리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미얀마의 미래발전 전략을 구상한다.”

미얀마는 동남아와 서남아를 연결하는 아시안 하이웨이의 교차점(Land Bridge)이다. 이 나라에 생산거점을 만들면 15억 인구이라는 거대한 물류와 소비시장 접근이 쉬워진다. 문맹률이 높지 않아 양질의 노동력 공급이 가능하고 치안도 비교적 양호하다. 주민들도 가난하지만 신용을 잘 지키고 정직한 편이다. 앞서 봤듯이 한국과 가장 닮은 나라의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 드라마 열풍도 2002년 이미 이곳을 거쳐갔다.

한국 정부는 공공외교 차원에서 미얀마 지원에 나선다. KOICA는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미얀마 농촌사회에 소개하는 첨병 역할을 한다. 빈곤 퇴치와 농촌 근대화에 목말라 하는 미얀마 정부의 수요와 새마을운동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한국 정부의 공급이 맞물린 결과다. 또 한국의 수출 진흥을 주도한 코트라(KOTRA)를 본뜬 ‘미얀트라’도 조직 중에 있다. 안재용 코트라 양곤 무역관장은 “사회적책임기업(CSR)을 미얀마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곳도 한국”이라고 소개했다. 한국 산업화의 상징인 ‘KS(Korean Standard) 마크’의 미얀마 버전인 ‘MS(Myanmar Standard) 마크’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을 동남아 각국으로 내보내 글로벌 기업인으로 양성하는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프로그램도 미얀마에 적용 가능한 아이템이다. 김정한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원장은 “우리가 미얀마의 제도적인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중국, 일본 등의 강대국의 진출보다는 한국 같은 후발국의 진출을 미얀마인들이 더 선호하는 것도 한국에게는 유리한 조건이 된다. 한국은 미얀마와 같은 처지에서 산업화에 성공한 까닭에 맞춤형 개발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민간기업들의 진출은 외국에 견줘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정부 차원의 관심도가 미국, 중국, 일본에 밀리다 보니 한국 기업의 미얀마 진출도 주춤하는 모양새다. 남권형 KOICA 미얀마소장은 “마지막 남은 기회의 땅 미얀마에 미국, 일본, 중국 정부가 각별한 공을 들인다”면서 특히 “일본 정부는 미얀마에 공여되는 공적대외원조의 20%를 책임진다”고 전했다. “막 민주화 여정에 들어선 지금이 미얀마 진출에 박차를 가할 황금 시간(Golden Time)이다.”

국내 기업 수 140개에서 답보상태


▎미얀마의 제1 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총선에서 압승한 11월 9일 옛 수도 양곤의 NLD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미얀마의 불확실성이 확실히 제거될 때까지 관망세를 취한다. 미얀마 진출 국내 기업 수는 140여 개로 답보상태에 있으며 현재 4천 명의 교민이 거주한다. 미얀마에서 2천만 달러 규모의 케이블카 사업권을 수주한 스카이 아시아 유선하 대표는 “미얀마는 위험국가로 분류돼 국내 은행대출도 고금리인데다 미얀마 정부의 보증을 요구하는 예가 왕왕 있어 사업권을 반납하는 경우도 있다”고 애로사항을 피력했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해 6월 BNK금융지주의 양곤 사무소 개설은 국내 기업과 교민들에게는 희소식이다. 김민철 BNK 부산은행 양곤 대표사무소장은 “BNK금융지주는 미얀마뿐만 아니라 베트남과 라오스 등 메콩강 인근 국가를 아우르는 ‘메콩강 금융 벨트’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현지 금융 시장조사를 거쳐 미얀마 진출 한국 기업에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미얀마가 오랜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편다. 이 나라 최초의 양곤증권거래소가 12월 9일 선을 보였다. 새해 3월 개장을 목표로 외국인 투자법과 회사법을 고쳐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한다. 또 미얀마에 대한 미국의 무역제재도 새해 6월까지 일시적으로 해제된다. 미얀마 부두와 공항을 통한 대미 수출품 발송이 가능해진다. 나아가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미얀마에 일반특혜관세(GSP)를 부여하는 문제를 검토하는 등 미얀마의 미래에 청신호가 켜졌다.

아웅산 수지는 창의적인 ‘불교자본주의’를 꿈꾼다.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중국의 시장경제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불교와 자본주의가 조화를 이루는 미얀마의 특유의 제도를 모색한다. 불교국가인 미얀마에 자본의 물결이 넘실거릴 날이 멀지 않았다. 한국 정부도 기업과 협력해 미얀마 진출 전략을 새로이 구상한다면 공공, 민간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양곤=신승현 (미얀마 영문 매거진) 편집장

201601호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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