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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심리학 교실(마지막 회)] 나를 바꾸는 긍정의 힘 ‘암시의 심리학’ 

“꾸준히 상상하라, 그대로 이뤄질지니” 

심영섭 대구사이버대학교 전임교수
결과를 좋게 만드는 만능 키(key) ‘잠재력’은 끊임없는 자기 확신과 꾸준한 노력을 통해 완성된다

▎암시는 인간의 심리적 문제와 신체적 문제를 개선하는 데에 사용된다. ‘위약(僞藥)’은 암시의 효과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환자가 자신의 증상과 전혀 상관없는 가짜 약제를 먹고 병세가 나아지기도 한다. / 사진·중앙포토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약국을 운영했다. 이름은 ‘새희망 약국’이었다.

약사의 딸이었지만 그에 어울리지 않게도 어린 나이에 빈혈이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긴 병이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이부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머리가 어지러웠던 것이다. 어느 날 등교를 준비하다 갑자기 픽 하고 쓰러지기도 했는데 ‘뭔가 큰 병에 걸렸나?’ 하며 괜스레 속으로 끙끙 앓기도 했다.

약국을 운영하던 어머니께서는 어린 딸을 당신의 약국에 있던 나무의자 위에 앉혀놓고는 틈틈이 글을 가르치셨다. 약병에 적혀진 글자를 하나하나 읽어보게 하며 빙그레 미소 짓곤 하셨다.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된 단어가 공교롭게도 ‘빈혈’이었다.

“빈혈이 무슨 뜻이에요?” 묘하게도 학교 가는 날에만 생기는 이 어지럼증이 빈혈이라고 굳게 믿었던 나는 드디어 ‘지병’의 명칭을 정확히 알게 됐다. 며칠 후 조심스럽게 어머니께 “빈혈에 걸린 것 같다”고 말씀 드렸더니 시종일관 따듯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걱정 말라”며 약장에서 어떤 약을 꺼내셨다.

그것은 흰색을 띤 둥근 모양의 정제였다. 어머니는 진지한 표정으로 “빈혈을 고치는 약이란다. 아침마다 한 알을 먹으면 병이 씻은 듯이 나을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난생 처음 맛보는 약이었다. 의외로 달고 새콤했다. 이 약의 맛에 매료됐던 나머지 하루에 꼭 한 알씩을 꿀꺽 씹어서 먹고 학교에 갔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 말씀대로 과연 어지럼증도 서서히 없어져 약 먹는 것을 더욱 좋아하게 됐다.

해가 흘러 아홉 살이 되자 드디어 글자를 다 깨우치게 됐다. 그동안 착실히 어머니의 약국에서 이 약 저 약을 살펴보며 뛰논 탓이다. 지난해의 어느 날은 그 시절 어머니께서 빈혈에 특효약이라고 주셨던 약을 발견하게 됐다. 그 상자의 겉면에 빈혈 치료제란 글자 대신 ‘종합비타민’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손바닥’ 치료에 열광했던 유럽의 귀족 여인들

암시는 심리적인 문제와 신체적 문제를 개선하는 데에 사용된다. 위의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어머니께서 주셨던 그 약은 빈혈 약이 아니라 종합비타민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어머니와 반나절간 떨어져 지내게 됐던 게 내심 괴로웠던 소녀의 심리적 어려움을 어머니께서는 눈치를 채셨던 것 같다. 그녀는 현명하게도 몸에 전혀 해롭지 않은 알약을 이용해 분리 불안에 기인한 소녀의 학교 공포증을 단번에 해결해주었다.

‘위약(僞藥)’은 환자가 증상과 전혀 상관없는 가짜 약제를 먹고 병세가 나아지는 심리 현상을 말한다. 영어로는 ‘플라시보(placebo)’ 효과라고 불린다. 의사가 환자에게 분명히 병세가 나아질 것이라는 암시를 주며 인체에 무해하나 별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 약을 건넬 경우 환자는 자신의 병세가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런 기대심리가 과연 신체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병증을 완화시킨다는 게 현재까지의 ‘위약’ 사례가 증명한 사실이다. “이 약이 병을 낫게 해줄 거다”라는 강렬한 암시의 힘이 효과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런 암시의 힘은 역사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일례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의약품이 부족할 때 위약이 많이 사용됐다.

암시는 아주 강력한 방식으로 우리 몸에 작용한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저서에도 이와 관련된 일화가 등장한다. 냉동차에 갇힌 한 사람이 반나절 만에 얼어 죽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차는 냉동 중이 아니었다. 대체 이 냉동차에 갇힌 사람은 왜 죽었을까? “냉동차에 갇혔으니 곧 죽겠구나”라며 스스로에게 보낸 암시가 결국 그 자신을 죽게 만든 것이다.

심리학계에서 암시를 이용해 환자를 치료한 첫 기록 사례는 1700년대 안톤 메스머 박사의 동물 자기(磁氣) 실험이다. 그는 유년 시절 의사이자 연금술사였던 파라켈수스의 주장에 심취됐다. 자기 혹은 전기(電氣)처럼 우주에 퍼져 있는 어떤 유동 물질이 우리 몸에 실질적인 영향 끼친다는 내용이었다.

1768년 메스머 박사는 의과대학 졸업 후 열 살 연상인 부유한 미망인 마리 안나 폰 보쉬와 결혼했다. 부인 덕분에 부자가 된 그는 오스트리아의 빈에 개업 후 기묘한 실험에 착수했다. 어느 날 아내의 절친한 친구가 구토와 장염 등 자신의 병세를 호소하자 메스머 박사는 당시 의료계에서 시도해보지 않았던 ‘자석’ 치료를 시작했다.

자석을 몸에 붙이면 병세가 호전된다는 그의 말에 환자는 늘 자석을 몸에 끼고 다녔다. 잦았던 구토 증상이 일주일 만에 신기하게도 멈췄다. 구토 증상을 갖고 있는 또 다른 환자가 이 소식을 듣고 메스머 박사를 찾았다. 그런데 마침 그때 진료실에 자석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당황한 메스머 박사는 환자의 몸에 자석 대신 손을 갖다 댔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메스머 박사의 손이 자석인 줄 착각한 환자는 별안간 구토를 멈추고는 차도를 보였다.

이를 계기로 메스머 박사는 1775년 후반부터는 더 이상 진료시 자석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커다란 욕조 통에 물을 받고는 하모니카가 연주되는 밀실에서 자신의 손바닥으로 귀족 여인들을 치료했다. 이 ‘기묘한’ 자기요법에 대한 소문은 금세 오스트리아와 독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직원 호칭을 바꾸자 업무 실수 대폭 줄어


▎세계적인 영화배우 짐 캐리는 무명시절 주린 배를 움켜쥐고 단역을 전전하다 긍정적인 확신을 갖기로 마음먹는다. “앞으로 ‘출연료 1000만 달러’를 받을 것”이라고 ‘자기암시’한 지 5년 만에 그는 영화 <배트맨>으로 1700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게 됐다. / 사진·중앙포토
메스머 박사는 암시를 활용한 치료의 선구자였다. 최면을 뜻하는 영어 단어 ‘mesmerization’은 메스머 박사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메스머 박사 이후 암시는 최면과 함께 현대 심리학에 큰 영향을 미치는 치료법으로 자리 잡게 됐다.

최근 암시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2014년 뇌 과학자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헨릭 월터 샤리테 교수의 연구팀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통해 ‘자기암시(self suggestion)’가 건강에 해로운 음식에 끌리지 않도록 하는 데 효과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팀은 배고픈 상태의 실험 참가자에게 약 30분 동안 파란색 또는 초록색 신호를 보여주면서 “달거나 짠 과자는 역겨운 것”이라고 자기암시를 하도록 했다. 이 실험 참가자는 실험이 시작되기 전 반나절 동안 공복인 상태였다.

이후 파란색 또는 초록색 배경 화면에 3초 간격으로 과자 사진을 띄웠다. 실험 참가자는 화면에 등장하는 과자마다 값을 정해야 했다. 무색 배경 화면에 등장한 과자는 높은 값을 받았고 파란색 또는 초록색 배경 화면에 등장한 과자는 가장 낮은 값을 받았다. 실험 참가자는 초록색과 파란색을 볼 때마다 역겨움을 느꼈고 뇌 영역인 ‘복내측시상하핵 전전두엽 피질(vmPFC)’에 흐르는 혈류량도 감소했다.

동일한 과자라도 배경 화면의 색에 따라 값이 달라졌다. 이렇게 자기암시는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치료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자기암시를 활용해 스포츠 경기에서 승리하고 조직을 이끌고 있다. 일례로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는 경기 세 시간 전에 ‘나는 실수하지 않고 침착하게 잘한다’고 스스로 자기 마법을 건다고 한다. 축구선수 박지성은 경기장에 나설 때 ‘이 경기장에선 내가 최고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친다고 한다.

미국의 한 트럭 서비스 회사에서의 일이다. 운송계약의 60%가 잘못되는 바람에 매년 약 25만 달러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했다. 원인 조사 결과 컨테이너 작업 인부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판명 났다.

손실을 줄이기 위해 회사 측은 묘안을 짜냈다. 인부의 호칭을 ‘장인(匠人)’으로 바꾸어 부르기로 한 것이다. 호칭을 바꾼다고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고 코웃음 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호칭을 바꾸자 불과 한 달 만에 배송 관련 실수는 10% 대로 떨어졌다.

“지나치게 타인의 암시에 현혹되지 말라”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주인공 에반은 ‘자기암시’의 긍정적인 면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에반은 출근 전 거울을 보며 “난 성공하고 있어. 난 힘이 있어. 난 잘생겼어. 난 행복해”라고 말한다. / 사진·중앙포토
일반적으로 자기암시는 부정의 문구보다는 긍정의 문구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지각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기보다 ‘일찍 일어나야지’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이에 곁들여 머릿속으로 아침 일찍 일어난 자신을 이미지로 연상하면 그 효과가 배가 된다.

위약 효과의 경우 고통을 느끼는 환자에게 가짜 약을 처치해 실제 느끼는 통증을 대폭 떨어뜨리게 한다는 가설이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환자가 가짜 약이 실제 효과가 있을 것이라 굳게 믿게 되면 이때 신경계는 마취 효과가 있는 ‘아편’과 같은 물질인 내인성 아편제(endogenous opiates)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로이 바우마이스터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기암시가 뇌에 학습 탄력성을 뜻하는 ‘가소성(plasticity)’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기존의 통념과 달리 우리의 뇌는 성장을 다하면 그대로 안정화돼 더 이상의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뇌세포가 유동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인 해마는 끊임없이 재생된다. 오래된 신경세포는 쇠퇴하고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겨나는 등 굉장히 활발한 뇌가소성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자기암시를 하게 되면 뇌 세포와 시냅스의 변화를 더 촉진시켜 종국에는 신체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이는 최근 신경 심리학적 연구 결과로도 입증되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에게 자기암시는 과연 효과적이기만 할까? 그렇지는 않다.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암시를 잘 믿을 경우 문제될 수 있다. 이를테면 점쟁이의 예언을 듣고는 수억 원을 깡통 주식에 갖다 바칠 수도 있고 비합리적인 사이비종교에 빠져 인생을 망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다.

따라서 적당한 자기암시가 필요하다. 운동선수가 근육을 기르듯 올바른 뇌 훈련을 통해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지나치게 헛된 목표를 설정해놓고 자기암시에 빠지거나 부적절한 의도를 가진 타인의 암시에 의존할 경우 비효율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희망 연봉을 받는 비결 ‘긍정의 확신’


▎지금도 수많은 유명 스포츠 선수가 ‘자기암시’를 활용해 경기에서 승리를 이끌고 있다. 일례로 축구선수 박지성은 경기에 나설 때 ‘이 경기장에선 내가 최고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친다고 한다. / 사진·중앙포토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영화배우 짐 캐리는 주인공 에반 역을 맡아 자기암시의 긍정적인 면을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에반은 출근 전에 거울을 보며 “나는 성공하고 있어. 나는 힘이 있어. 나는 잘생겼어. 나는 행복해”라고 자기암시를 한다. 짐 캐리는 이 긍정적인 영화로 세계적인 배우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한때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오랫동안 집도 없이 지내야 했다.

무명시절 주린 배를 움켜쥐고 단역을 전전하던 어느 날 그는 이렇게 살 순 없다는 생각에 무작정 할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표 책에 ‘출연료’라고 적고는 그 옆에 ‘1천만 달러’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것을 지갑에 넣고 다니며 소중하게 여겼다.

놀랍게도 정확히 5년 후 짐 캐리는 영화 <덤 앤 더머>와 <배트맨>에 캐스팅되면서 자신이 꿈꿨던 것보다 휠씬 더 많은 1700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았다.

우리를 지배하는 건 비단 의식만이 아니라 암시라는 무의식도 포함된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알아봤다. 그렇다면 자기암시의 효과를 높이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성실함이 필요하다. 자신의 노력이 더해진 자기암시는 능률 향상에 적잖은 도움을 준다는 건 관련 전문가 다수의 조언이기도 하다. 한국 국가대표 선수단의 마인드컨트롤을 전담하는 김병현 박사는 “1년 이상 마음 훈련을 해야 몸이 자연스럽게 자기암시를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최근 냉장고에 가장 날씬했던 시절인 5년 전의 사진을 붙여놓고 있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이 사진을 쳐다보며 당시의 날씬했던 모습을 떠올려보곤 한다. 그러다 보니 두 번 먹을 간식을 한 번으로 줄이게 된다.

마음먹은 대로 결과를 좋게 만드는 상상의 힘. 누구나 갖고 있는 잠재력이 자기암시를 통해 힘을 발휘한다면 금연이나 다이어트 같은 모든 목표를 성취해낼 수 있지 않을까? 나의 경우 적어도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어린 시절 빈혈 약이라 굳게 믿었던 종합비타민을 매일 즐겁게 먹었듯 오늘도 긍정적인 암시의 힘으로 봄날의 문을 활짝 열어본다.

심영섭 - 1966년생. 서강대 생명공학과 졸업. 고려대 심리학 석·박사. 현재 대구사이버대학교 전임교수, 심영섭아트테라피&상담센터 사이 소장, 한국사진치료학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영화, 내 영혼의 순례> <대한민국에서 여성평론가로 산다는 것> <영화치료의 이론과 실제> <영화치료를 위한 영화수첩> 등이 있다.

201604호 (201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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