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Home>월간중앙>사람과 사람

[인물탐구] 법조개혁 깃발 치켜든 1년…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의 도전 

“‘불가(不可)’를 ‘불가’라고 말 하는 게 내 숙명” 

문병주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검사평가제 도입·전관예우 타파·사시 존치 옹호 등 법조계 ‘미스터 쓴소리’ 자처… “역풍과 반발 많지만 사심 없이 내 갈 길 간다”

▎하창우 회장은 1954년 경남 남해 출생 1973년 경남고 졸 1978년 서울대 법학과 졸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 합격 1986년 사법연수원 제15기 수료 1997년∼200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총무이사 2001년∼2005년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2007년 2월∼2009년 1월 제89대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2015년 2월∼현재 제48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 사진·중앙포토
“돈키호테다” VS “개혁가다”

하창우(62·사법연수원 15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과 극이다. 지난해 2월 취임하자마자 ‘전관예우 금지’를 외치며 차한성(62·연수원 7기)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막더니 신임 대법관들에게 ‘개업 포기 서약’까지 요청했다. 2017년으로 예정돼 있는 사법시험을 ‘희망의 사다리’라며 존치하자고 주장해 로스쿨 출신 변호사와 재학생들의 격렬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지난 2월 말에는 변협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테러방지법 찬성 의견을 국회에 제출해 논란을 일으켰다. 주주총회가 한창이던 3월에는 전직 검찰총장 등을 겨냥해 “재벌 관련 수사를 지휘했던 위치에 있던 검찰 출신은 해당 재벌의 사외이사를 못 맡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런 기조 아래 각 지방변호사회에서는 이와 관련한 규정을 정비하고 있다. 2년 임기의 반환점을 돈 하 회장의 1년 활동과 소회를 들었다. 인터뷰 내용을 그의 관점으로 재구성했다.




“명예를 누린 분이 부(富)까지 누리겠다는 건가”


지난해 2월 23일 취임하자 곧 넘어야 할 ‘큰 산’이 나타났다. 2014년 3월에 임기 6년을 마치고 퇴임했던 차한성 전 대법관이 개업 신청을 해온 것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로 등록신청도 마친 상태였다. ‘전관예우’를 철저하게 반대했던 나로선 이를 묵과할 수 없었다. 대한변협 이사들과 수차례 회의를 거쳐 내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 지난해 3월 19일차 전 대법관을 찾아갔다. “변호사 개업 신청을 철회해주십시오.” 그러자 차 전 대법관은 “비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위법적인 사안도 아니니 변호사로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대화가 길어졌다. 꼭 설득시키고 싶어서였다.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가 사건 내용도 모르고 상고 이유서에 도장을 찍어주고 받는 ‘도장값’이 3000만원, 5000만원인 사실이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 돼있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3년 동안 100억 원을 못 벌면 바보라는 소문까지 있었다. 그분들이 바로 전관비리의 몸통이기 때문에 이분들은 개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최고의 법관을 지내면서 최고의 명예를 누렸다면 사익을 취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법관을 지낸 분이 변호사 개업을 해서 큰돈을 버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국제회의에 나가 외국 변호사들과 이야기해보면 우리나라 대법관 출신들이 변호사 개업으로 큰돈을 버는 행태는 정말 낯이 뜨거울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다.

차 전 대법관과 나눈 이야기를 일일이 공개할 순 없지만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수임료가 엄청난 고액이어서 국민에게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도장값으로 수천만 원씩 받는 실정을 모르시느냐, 이제는 대법관 출신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야 하지 않느냐”는 게 내 주장의 요지였다. 차 전 대법관은 “내가 사건을 처리한다면 그런 형태로는 안 하겠다. 1·2심 법정에도 나가고 싶다”며 내 요청을 거절했다. 이에 “대법관 출신이 하급심 법정에 나가는 것은 후배 판사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고 이제는 국민들을 위해 봉사해야 하지 않느냐”며 단호한 입장을 말하고 나왔다. 그 후 대한변협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개업신청서를 본인에게 반려했다. 그 후 차 전 대법관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만든 공익법인 ‘동천’의 이사장에 취임했다. 사익사건은 물론 공익사건도 수임하지 않겠다고 표명했다. 현재까지도 대법관 출신 법조인으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다.

대한변협이 법관 재직 당시 물의를 빚어 구설에 오르거나, 비리 등이 전혀 없었던 고위 법관에 대한 변호사 개업 신고를 자제할 것을 요구한 것은 처음이었다.

최근에는 신영철(62·사법연수원 8기)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신고서를 반려했다. “대법관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던 분이 그가 속한 공동체의 이익은 도외시하고 자기 자신의 물적 욕망만을 추구하려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 아닐 수 없다”고 강하게 공식 비판도 했다. 신 전 대법관이 2008년 서울 중앙지법원장으로 재임하던 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관련자 재판을 맡은 판사들에게 신속한 재판을 독촉하는 e메일을 보낸 사실도 알렸다. 나는 “국민에게 크게 빚진 것”이라고 했다.

전관예우 척결은 취임 직후부터 내 첫 번째 정책목표였다. 전관예우 비리는 한국 사법계와 법조계의 가장 뿌리 깊은 병폐다. 부끄러운 일이다. 사법은 공정해야 한다. 힘없는 국민, 돈 없는 국민들을 차별하는 것이다. 전관예우 때문에 우리 법조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나온다. 대법관은 법관의 최고 명예직이다. 퇴임 후 그 명예를 이용해 돈을 벌어선 안 된다. 공무원 연금이 월 600만원 정도 되니 그 정도 받고 봉사하시는 게 맞지 않겠나. 현직 판사들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다가오면 부담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고위직 출신의 변호사 개업을 반대하는 건 법적인 차원이 아니다. 도덕적 차원이다. 그런 전통을 만들자는 것이다.

검찰총장 출신 변호사가 자신이 지휘했던 수사 대상 재벌의 사외이사가 되는 것도 앞으로 막을 생각이다. 변호사법에는 사건을 직접 취급했던 검·판사에게만 해당하지만 검찰총장급은 수사의 총 지휘자 입장에 있었다. 크게 보면 과거 수사가 정당했느냐는 의심도 받는다.

2014년 12월 19일의 기억이 생생하다. 찬바람이 불던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앞에서 ‘희망의 사다리 사법시험 존치!’라는 글이 쓰인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대한변협 회장 후보자 입장에서였다. 돈이 없어 부득이 로스쿨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법조인이 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전통의 법조인 선발방식인 사시는 내년을 끝으로 폐지될 예정이다. 하지만 지난해에만 사시 존치와 관련된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이 국회에 4개나 제출될 정도로 폐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사법시험과 로스쿨 양립 가능하다”


▎‘사시 폐지’를 두고 법조계 안팎이 반으로 갈라졌다. 하 회장은 ‘로스쿨과 사시 양립’을 주장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비판을 샀지만 평소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 사진·중앙포토
2009년 로스쿨법이 통과되면서 2013년 재논의라는 조건을 명시했음에도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우리 국민들은 어떠한 사회적 배경과 빈부의 차이에도 흔들리지 않는 열린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가 곧 정의가 살아 숨쉬는 공정한 사회라 믿고 있다. 그렇다면 누구나 노력만으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둬야 한다. 1억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면서 과정을 수료해야만 법조인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건 ‘희망의 사다리’를 없애는 것과 같다.

이런 소신 때문에 곤혹스런 때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로 구성된 한국법조인협회가 나의 퇴진을 요구하며 대한변협회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 분명히 하자면 난 로스쿨 폐지론자가 아니다. 로스쿨은 그 자체로 주류 법조인을 양성하는 시스템 역할을 하면 된다. 불공정성 등 의심되는 건 자체적으로 개혁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시를 폐지하면 안 된다. 사시는 그 자체 고유의 역할이 있다. 로스쿨 학비를 감당 못하는 서민 자녀가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놔야 한다. 사회가 안정되려면 계층 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사다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희망의 사다리’라고 나는 부른다. 일본도 예비시험제를 두고 있고, 미국도 ‘베이비 바’라고 해서 로스쿨을 안 나와도 변호사가 될 길을 열어놓고 있다. 두 제도를 양립시키면 서로 견제하면서 더 건강한 제도로 발전할 수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주관으로 사시 존치 여부를 의논할 협의체가 만들어져 있다. 법사위원장 주도로 자문기구 형태로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등의 이유로 가동이 안되고 있다. 19대 국회가 5월 30일까지인데 확실한 결론이 날지는 모르겠다.

1년여를 지나며 돌이켜보건대 가장 보람된 일을 꼽으라면 변호사들이 검사 평가를 시작한 것이다. 2008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할 때 최초로 법관평가제를 도입한 데 이어 검사들의 인권침해적 부분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재야 법조계에서는 검찰수사에 대한 불만이 굉장히 많았다. 그럼에도 잘못된 수사를 견제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 우리나라 검찰은 기소권은 물론 수사권까지 가지고 있다. 여기에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 검사동일체 원칙까지 더해져 엄청난 권력을 누린다. 지난 8년간 검찰 수사 중 자살한 피의자 수가 100명이 넘고 작년 한 해에만 자살한 피의자가 17명이나 된다. 이런 수치는 검찰 수사가 강압적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21일 검사평가제를 실시한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하고 올 1월 19일 그 결과를 발표했다.

잘못된 수사행태가 낱낱이 드러났는데, 어찌 보면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이 폭발됐다고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생생한 수사 실태를 검사평가표에 기재해 내는 변호사들의 용기에 놀랐다. 당초 나쁜 수사 사례를 10여 개 발표하려고 했으나 사례가 너무 많아 이를 세상에 드러내기로 하고 65쪽짜리 <검사평가사례집>을 만들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마 검찰 고위직 간부들도 검찰의 일선 수사행태가 이런 정도인지는 몰랐을 것이다. ▷피의자에 대한 강압적 수사 ▷인격 모욕적 수사 ▷욕설 ▷참고인을 사실상 피의자로 수사하다 피의자로 전환한 수사 ▷수갑을 채운 채로 한 수사 등 일선 수사는 온통 강압수사 그 자체였다.

사정이 그러할 것이란 걸 예고하는 분들이 있었다. 취임 때 공약사항이었던 검사평가제를 미루고 있으니 고검장·검사장 출신 변호사들이 빨리 하라고 독촉해왔다. 신기했다. 검찰 출신이 더 나서는 게 말이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현직 때 몰랐는데 변호사를 하다 보니 요새 검사들 수사하는 게 형편 없더라”고 질책했다. 그래서 꼭 평가가 필요하다 느꼈고 시행하게 된 것이다.

아쉬운 건 평가 기간이 2개월밖에 안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평가 모집단 수가 적고, 변호사 참여율이 낮았다. 공정성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그래서 연중 평가를 시행할 생각이다. 모바일에 의한 평가방법을 동원하면 더 많은 사례들을 쉽게 모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변협 홈페이지와 연동시켜 스마트폰으로도 평가 내용을 보낼 수 있게 하려 한다. 발표는 자료를 모아서 내년 1월 초에 할 계획이다. 김수남(57·연수원 16기) 검찰총장이 부장검사도 주임검사를 하라고 했으니 자연스럽게 올해부터는 부장검사 평가도 가능해졌다.

2008년에 법관 평가를 처음 도입했을 때 법관들의 반발이 컸다. 현재 검사들의 반발은 말 그대로 애교 수준이었다. 이해관계 당사자인 변호사가 어떻게 법관을 평가하느냐고 했다. 하지만 8년째 시행하면서 어느 정도 정착기에 접어들었다. 모집단이 커져 평가 장수만 8000장에 이른다.

이들 평가제의 궁극적 목표는 불합리한 사법제도 개선이다. 검찰에서는 수사를 방해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내 목표는 인권보호다. 현재는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 변호인이 참관을 못한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그제서야 변호인 조력을 받을 수 있다. 사실상 헌법이 보장하는 변호인 조력권을 침해하는 게 아닌가. 이런 걸 방지하자는 것이다.

“상고법원은 위헌이다”


▎법조계의 전관예우 관행 타파는 재야 법조인들과 시민사회의 오랜 숙원이었다. 하 회장은 이를 ‘규정’이 아닌 ‘도덕’의 문제로 정면돌파했다. / 사진·중앙포토
대법원에서는 “왜 자꾸 법원과 각을 세우려 하느냐”며 불편해했다.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기자회견에서 상고법원 설치 반대를 공식화한 것 때문일 것이다. 또 대한변협 차원에서 지난해 6월에는 성명도 냈다. 상고법원은 양승태(68) 대법원장이 임기 안에 꼭 도입하려고 한 제도라는 걸 잘 안다. 문제가 없다면 왜 반대하겠나. 우리 헌법 제101조 제2항은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상고법원은 각급법원에 해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법원이 구상하고 있는 상고법원은 대법원과 같은 심급인 상고심을 관할하는 법원이므로 헌법에 어긋난다. 또 상고법원은 대법원이 일이 많으니 대법원은 정책법원만 하겠다는 취지 아닌가. 국민의 입장에선 상고법원 재판을 거치고 다시 대법원으로 가야 한다. 대법원에 이런 위헌성 시비를 말하면 답을 못한다.

상고법원이 최종심임에도 상고법원 판사의 임명에 대통령과 국회가 관여하지 못하는 것도 권력분립에 반한다. 대법원장만이 상고법원의 판사 임명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대한변협과 달리 찬성의견을 냈다. 변호사들 입장에서 보면 사건이 하나 더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위헌성 있는 제도를 만들어 돈 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나는 동료 변호사들에게 말한다.

내가 꼭 대법원의 정책에 반대만 하는 것도 아니다. 최근 대법원장이 강조하고 있는 1심 재판 강화에는 대찬성이다. 외국은 재판이 1심 중심이다. 항소하는 사건이 거의 없다. 1심에서 제대로 하고 항소해봤자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1심 재판을 강화하려면 법관을 2~3배로 늘려야 한다. 재판에 10분도 안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재판이 강화되나. 외국법원은 한 사건을 가지고 토론식으로 한다. 그러니 당사자들이 승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사실심을 강화하기 위해 판사 수도 늘리고 법정도 늘려야 한다.

고등법원이 포화상태인데 법원장 지낸 분들이 다시 돌아와 재판을 하고 있다. 그분들이 1심 단독판사를 해야 한다. 그러면 국민들의 신뢰가 높아질 것이다. 법원장 하던 분이 내 사건을 판단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믿음이 가겠는가.

“테러방지법 찬성 의견 낸 책임 통감”


▎테러방지법안 찬성 의견을 독단적으로 낸 건 하 회장의 임기 1년 중 가장 뼈아픈 실책이었다. 그는 “국정원 감시 역할에 나서겠다”고 자처했다. / 사진·중앙포토
최근 임기 중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따지고 보면 내가 자초한 것이다. 지난 2월 말 국회에 테러방지법 찬성 의견을 대한변협 명의로 보낸 것 때문이다. 원칙대로라면 회원들의 의견을 물었어야 했다.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회원들로부터 사과요구는 물론 퇴진하라는 압박도 받았다. 공식적으로 두 차례 사과를 했음에도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난 법 자체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슬람국가(IS)가 대한민국을 테러 대상국으로 포함시켰고, 북한은 핵실험 하며 대남 공작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갑자기 서울에서 테러가 발생하면 컨트롤타워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겠나 싶었다. 일부에서는 검찰·경찰·국가정보원에서 현행법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하지만 미국 국토안전부처럼 중심 기구가 있어야 한다. 이런 시급성을 생각하다 보니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법안에 의견을 냈다. 절차를 더 지킬 것을, 하는 후회가 든다. 시끄러운 와중에 깨달은 게 있다. 이런 결심을 했다. ‘다시는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서 대한변협에서 의견을 내지 말아야겠다.’

시끄러운 와중에 의외로 국정원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는 걸 알았다. 대한변협 내부에서도 그랬다. 그간의 국정원의 행태에 비춰봤을 때 국민의 통신비밀을 침해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불신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1984년>에 ‘빅 브라더’라는 게 나오는데 그런 식의 피해의식이 많은 거 같았다. 법안 찬성 의견을 낸 입장에서 앞으로는 이 법안과 관련해 국정원이 권한을 남용해 국민 통신비밀을 침해한다든지 하면 가장 앞장서 막을 것이다. 국정원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겠다. 국정원은 크게 각오해야 할 것이다.

항간에서는 “하창우가 정치적 야욕이 있어 튀는 행보를 한다”는 말을 한다.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정치할 뜻이 있었다면 대한변협 공보이사 시절에 갔을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아름다운 것이 매력적인 것은 곧 사라지기 때문이다’라는 글이 떠오른다. 난 변협회장을 그만둠으로써 끝이 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훗날을 생각한다면 지금과 같은 행보를 이어가지 못할 것이다. 역대 회장과 다르게 과감히 목소리를 내는 건 사심이 없어서라는 걸 사람들은 왜 안 알아줄까.

권한이 막강하다는 것도 오해다. 변협 회장은 아무런 권한이 없는 직책이다. 내가 나서서 일을 많이 하고 역할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대법관 추천위원회에도 들어가고 검찰총장 추천위원회에도 속해 있다. 하지만 거기서 내가 의견을 낸다고 그게 관철되나. 하지만 안 되게는 할 수 있다. 권한이 있어서가 아니다. 대법관의 경우 이미 법관평가를 통해 안 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검찰총장의 경우도 이제 검사평가 시작됐으니 자료가 모일 것이다. 이 자료를 근거로 ‘감’이 안 되는 사람이 검찰총장 되는 걸 견제할 수 있다.

대한변협 회장직에서 물러나면 뭘 할까 고민해봤다. 지금 사법연수원이나 로스쿨을 갓 나온 청년변호사들은 취업하기 힘들어 인생진로에 대해 많은 고뇌를 한단다. 멘토가 돼야겠다. 변호사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하는 후배들을 위해서 말이다.

- 문병주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201605호 (2016.04.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