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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안희정 충남도지사 

“구태 정치 계속되면 나에게도 기회 올 것” 

만난 사람=박승희 중앙일보 정치국제에디터 겸 정치부장 pmaster@joongang.co.kr / 정리·이지상 기자 / 사진·오상민 기자
더민주, 국민의당과 잘 대화해야 호남 지지율 회복… 새로운 정당정치 미래 놓고 정치 지도자들 경쟁해야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과거의 정의·불의로 지금 여당과 야당 정치관계에서 서로 공격하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좋은 사람 리더십론’을 꾸준히 말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20세기와 결별해 우리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겸손·박애·사랑 등의 덕목이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박대, 박멸하려 해선 안 되다고도 했다. 그는 ‘좋은 정치판’이 좀처럼 꾸려지지 않을 때, 자신이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홍성의 충남도청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 꼭대기에 신영복 선생(2016년 1월 별세)의 글귀를 적은 큰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言約(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도지사 6년 동안 안희정 충남지사는 딴딴하게 갈무리돼 있었다. 그래서 그와의 인터뷰는 만만치 않았다. 철학도(고려대 철학과 출신)인 안 지사의 어법은 여의도 정치 문법과 사뭇 달랐다. 그의 답변에는 현실 정치인들의 이름이 잘 등장하지 않았다. 사변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현실정치를 해부하며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를 상대로 2017년 대선에 출마할 거냐 말 거냐고 묻는 건 유치해 보였다. 좋은 정치가 뭔지, 그리고 한국 정치의 과제가 뭔지를 한참 얘기한 뒤에야 안 지사로부터 대선 출마에 대한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내년 대선에서) 낡은 정치 틀로 (진보와 보수로 갈려) 청백게임이 벌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그는 “정당 틀을 바꿔주길 바란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제가 도전하게 될 기회가 생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안 지사는 그걸 정치하는 사람들의 소명의식이라고 했다.

안 지사의 소명은 머릿속을 뚫고 2017년 튀어나올 수 있을까. 그의 이성은 “참고 기다리라”고 말하는 듯했지만, 인터뷰 내내 느낀 그의 가슴은 뜨거웠다. 안희정의 정치 실험은 서울에서 130㎞ 떨어진 홍성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고, 뜨겁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날을 기다리며….

“4·13 총선, 야당 승리의 기적 바랐다”


지난해 말 인터뷰를 보니 ‘좋은 사람이 지도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던데,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초등학교 때 사람에 대해 ‘난사람·든사람·된사람’이라고 배운 기억이 난다. 잘난 사람은 ‘난사람’, 많이 배운 사람은 ‘든사람’. 그런데 선생님이 이 중 제일 윗급은 ‘된사람’이라고 하셨다. 됐다는 의미가 참 복합적인데 뭐라고 개념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 더 구체적인 표현은 없다. 좋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좋은 사람과 좋은 정치인은 일치하지 않는 것 같은데.

“지난 시절에는 그랬다. 많은 국가가 전쟁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폭력을 휘두르며 살생을 하는데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20세기까지 선(善)·정의(正義)라는 것과 좋은 사람이라는 개념간에 이율배반이 느껴졌다. 사실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나 자유·평등·박애 사상에도 타도해야 할 계급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아닌 거 같다.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총회)을 통해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 공동선(善)이 있음을 확인하지 않았나. 그렇기 때문에 20세기와 결별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돼야 한다. 좋은 사람 좋은 지도자가 되는 시대가 됐다고 본다.”

좋은 정치인이 가져야 할 덕목이 훨씬 늘어난 것 아닌가? 글로벌 마인드 같은.

“한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할 때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겸손·박애·사랑 등 몇 가지 덕목이다. 지금 현재 국내 정치만 봐도 우리가 스스로 겸손하다면 저렇게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박대하지 않을 거다. 내가 절대로 옳다고 생각하니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을 적을 보듯 박멸하려 하는 거다.”

국정운영의 핵심 가치는 공정성


▎2015년 5월 안희정 충남지사(왼쪽)와 남경필 경기지사가 중앙일보가 주최한 ‘청춘리포트’에 출연해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국 정치에도 넘기 힘든 벽들이 그것 아니었나? 3김(金)시대에 존재했던 지역, 패권 같은 것들이 지금도 존재하는 건 아닌가?

“존재한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의 보편적 국민 정서는 그런 싸움을 하지 말라는 거다. 예전 노무현 대통령을 모실 때는 ‘없는 사람, 서민을 위해 싸우는데 왜 싸우지 말라고 합니까’, ‘5·18 학살한 사람 내쫓으려는데 왜 싸우지 말라고 합니까. 정의를 위한 건데’라고 항변했었다. 그런데 그 사이 시대가 바뀌었다. 과거의 정의·불의로 지금 여당과 야당 정치관계에서 서로 공격하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 영남 헤게모니, 호남 헤게모니에 질세라 충청 헤게모니를 위해 모든 정치인이 경쟁하지만, 국민은 그런 정치에 말할 수 없는 비난과 혐오의식을 갖고 있다. 저는 국민의 뜻에 따르려고 한다.”

이번 4·13 총선 결과가 이럴 거라고 예상했나?

“전혀 못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선거 결과가 여소야대가 되다 보니 야당의 분열을 고착화하는 것 아닌가? 야권으로선 불리한 것 아닌가?

“잘 모르겠다. 저는 국민 눈높이에서만 보려고 노력한다. 언제부턴가 개인·정당·세력의 유불리가 아니라 국민 눈높이로만 보려고 한다.”

총선 전 안철수 신당을 반대하며 ‘야권은 김대중·노무현 지지층과 청년이 함께 가야 한다’고 주장했지 않았나?

“대한민국 정치는 헌정 70년 큰 줄기로 보면 민주당, 공화당으로 대별되는 여야 흐름이 있다. 다당제라 할지라도 실질적으로는 여야 큰 흐름이 있기 때문에 갑자기 제3정당이라고 해서 전혀 새롭게 나타나지 않는다. 하늘 아래 새것은 없고 정당이 새것을 만들 것처럼 하는 것도 잘못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박정희와 양김(김영삼·김대중)으로 표현된 두 축이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를 두고 (각자) 자기 변환을 해야 한다. 진보진영은 스스로 전통적 가치라고 생각하는 그 가치로부터 더 개선해야할 의무를 부여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의 문제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다. 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하나로 모아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게 가장 기본이다. 인류 역사의 문제는 처방전이 잘못된 게 아니라 처방전을 결정하지 못해 약도 못 써보고 패망하는 거다. 그래서 어느 사회든 위기를 맞지 않으려면 힘을 모아 실천해야 한다. 그러려면 여야 모두 내부 토론과 의사결정, 리더십 형성과정이 좀 더 성숙해야 한다. 당 대표를 뽑아놓고 아무 이유 없이 흔들어서 떨어뜨리면 안 된다. 더 이상 상대방 말꼬리 잡아 말싸움하는 정치가 되면 절대 안 된다. 말꼬리 잡고 뒤틀어서 망신주거나 초라하게 만드는 것을 국민은 싫어한다. 지금 여의도를 휩쓸고 있는 ‘친노-비노’, ‘친박-비박’ 갈등을 국민이 볼 때 얼마나 실망스럽겠나.”

그런 국민 민심을 받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외람되지만, 단체장을 하면서 정말 실천하고 있다. 의회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6년 동안 노력하며 문제를 풀고 있다. 지역 내 갈등과 이해관계를 한 번도 정치공학·선거논리로 왜곡 시킨 바 없다. 예를 들어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문제도 소신은 환경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조력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묵살할 권리는 없다. 그래서 환경 영향평가와 사전 타당성 조사를 엄격하게 한 뒤 결과에 승복하자고 했다. 이게 새정치라고 생각한다.”

국가운영과 중앙정치는 훨씬 더 갈등이 크고 복잡한데.

“핵심은 공정성이다. 그런데 국정원 댓글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는 공정한 태도가 아니다. 댓글수사를 책임진(채동욱) 검찰총장을 쫓아내는 것은 공정한 것이 아니다. 최고 권력 지도자들이 국가제도를 공정하게 운영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뒤틀려 작동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흙수저·금수저 논란이 정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현실적 표현이다. 대한민국의 동력은 희망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면 잘될 거라고 믿는 것인데 지금 도전과 희망을 잃어버렸다. 사회에 상속받은 권력, 상속받은 명예가 많기 때문이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지도자들이 공정하게 운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6년간 도지사를 하면서 분배보다 성장을 추구한 성과가 있었나?

“성장과 분배를 분리해서 봐선 안 된다. 정치에서 경제성장을 이야기하는 지도자들이 뭘 성공시켰나? 말짱 거짓말이다. 성장은 기업인과 과학자의 일이다. 기업가의 도전정신, 과학기술의 진보를 현실 제도가 막고 있다면 그걸 고치는 게 정치의 일이다. 정치가 직접 시장경제나 기업에 들어갈 것처럼 말하는 것은 ‘과장광고’다. 다만 질문(분배보다 성장을 추구한 성과가 있는가?)에 답하자면 충남지사로서 2030 경제산업비전을 만들었다. 전통산업 구조를 고도화하고 현대차와 손잡고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농업은 생산·유통을 혁신하는 마을 구조개선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호남 유권자는 정당과 정치에 대한 불신 표명했다


▎2015년 1월 17일 충남도당 정기대의원 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안희정 충남도지사. / 사진·뉴시스
이스라엘이 미국 국적자인 경제학자 스탠리 피셔를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로 기용해 금융위기를 극복한 일이 있다. 피셔는 미국과 이스라엘 이중국적자다. 우리도 이중국적을 허용해 나라 밖의 전문가를 기용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 이미 산업현장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가 기초산업을 담당하고 있다. 아시아권은 자본과 상품뿐 아니라 노동력 이동도 보장돼 있다. 못하는 이유는 정치적 이유다. 사실상 끊임없이 국민과 합의해가는 과정이 필요할 거라 본다. 현실적으로 다문화사회 준비가 돼 있지 않고 공공분야에선 단가가 잘 안 맞는다. 연봉 200억 원을 받던 사람한테 10억원을 받고 일하라고 제안하려면 손실비용만큼 자부심이나 보람, 혹은 결과물을 더 줘야 한다. 사실 그게 가장 어려운 문제다.”

대선 출마에 대해 ‘준비가 되면, 기회가 되면 슛을 하겠다’라고 했다. 스스로 어느 위치까지 왔다고 생각하나?

“잘 모르겠다. 아직은 시간이 더 있다. 내 나름의 간절함·절실함이 쌓인다면, 그리고 객관적·정치적 위치가 나설 만하다면 도전할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겠나.”

객관화된 지표에 대선후보 지지율도 포함되나?

“객관적 위치라는 것은 (지지율이 아니라) 내 스스로 느낄 때 이 상황에서 내가 슛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끼는 철저히 주관적인 감정이다. 개인의 입신출세를 갖고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지 온 몸으로 느끼며 간절함으로 고민하면서 상황을 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잘되면 (안 나가도) 된다. 내가 어떻게 질주할 거냐를 내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훌륭한 사람들이다 비슷하게 잘하고 있으면 조건 좋은 분을 응원해주는 게낫다.”

겸손한 표현 아닌가? 정치가 직업인 사람은 유권자를 위해 언제든 나설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자기 혼자 지혜가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개인의 정치지도력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쌓여야 한다.”

새누리당에선 이번 총선 결과가 여소야대로 나오는 바람에 자극을 받을 수 있게 돼 내년 대선을 위해 더 잘됐다는 얘기도 하더라. 거꾸로 야권 입장에선 독(毒)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은 안 해봤다. 예전에는 했는데 요 근래 들어 그렇게 생각 안 하게 된다. 유리하든 불리하든, 어떠한 길을 가야 할지만 고민할 뿐이다. 그 길이 겨울일 때도 있고, 따뜻한 봄날일 때도 있겠지만 가야 될 길은 분명히 있다.”

호남이라는 지지층이 일부 떨어져 나가고 3당체제가 된 건 더민주 입장에선 위기 아닌가?

“더민주뿐 아니라 여의도와 민주공화국 정당정치인 모두 위기다. 정당과 정치에 대한 국민 불신이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면, 경제 문제는 노동시장 개혁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금융에 치우쳐도 새로운 산업을 이끌어내지만, 대한민국은 지금 제2의 삼성, 현대차가 없다. 노동개혁 문제와 기업생태계 변화, 금융산업의 내부혁신 등이 세트로 함께 바뀌어야만 가능하다. 자동차 바퀴가 덜렁덜렁하는 데 그중 나사 하나 조여놓고 바퀴가 잘 굴러갈 거라고 하면 부러지게 돼 있다. 골고루 조여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정치싸움만 한다. 그러니 국민들에게 정치가 외면받는 것이다. 저는 진보·보수, 성장과 분배 등 과거 단어로 지지를 호소하지 않겠다. 그 단어로 누군가를 미워해달라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2017년은 ‘진보-보수’ 진영을 벗어나 미래를 향한 경쟁이 돼야 한다는 건가?

“맞다. 새로운 나라를 향해 새로운 리더십을 보이는 분이 늘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시대에 자기 억울함을 잘 대변해주는 분을 뽑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그건 아닌 거 같다.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건, 과거는 역사의 과제로 맡겨두고 현재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라는 거다. 분단 문제도 실제로 어떻게 풀지 지도자들이 이야기해야 한다. 당장 통일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분단 리스크가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의 가장 큰 리스크인데 이 문제를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경제성장을 이야기하는 게 웃긴다는 거다. 분단과 대북정책은 경제와 바로 연결돼 있다. 민족주의적 감성이나 정서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에 직결돼 있다. 그런데 많은 정치인이 ‘종북좌빨이냐’, ‘타도하자 김일성이냐’ 이렇게 싸움을 한다. 효과적인 대북정책을 쓸 수가 없다.”

형제를 원수로 만드는 선거 그만해야


▎2012년 11월 국회 한 행사장에서 만난 문재인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와 안희정 충남도지사.(오른쪽) / 사진·중앙포토
진영 경쟁의 틀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지도자는 5000만 국민을 동포애와 형제애로 가득 차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게 첫째다. 선거를 골백번 치러도 절대로 형제를 원수로 만들면 안 된다. 지역·계층·정책적 이념스펙트럼을 20세기 방식으로 적대적 미움을 심어 넣는 언행은 일절 하지 말아야 한다. 이건 모든 나라의 좋은 지도자가 하는 일이다. 오바마와 존 매케인이 경쟁할 때 지지자들이 오바마를 이슬람이라며 공격할 때 매케인이 나서서 막지 않았나. 미국 남북전쟁 때 북군 사령관이 패배한 남군 사령관에게 했던 태도가 지금의 미합중국을 있게 했다. 둘째는 국민을 손님으로 만들면 안 된다. 복지·노동정책을 쓸 때 국민이 주인이라는 관점으로 정책을 써야 한다. 그런데 지역 경제발전마저 지도자가 시혜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희생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이끌었다. 국민이 만든 역사다. 정치가 선거 때마다 계층과 집단, 지역을 상대로 지지와 정책을 딜(거래)해선 좋은 정치가 되기 어렵다.”

진보와 보수 논쟁보다 한 단계 위의 논쟁을 하자는 건가?

“과거와 결별해 다른 형태의 민주당, 다른 형태의 진보, 다른 형태의 보수가 되자고 제안하는 거다. 진보·보수 다 없애고 가운데로 모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가운데가 있더라도 결과적으로 청백게임을 하게 돼 있다. 각자 자기가 속한 진영에서 무엇을 계승할지를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해서 정당들이 좀 더 높은 수준 경쟁을 벌일 때야만 국민들이 선거를 의미 있고 재미있게 할 수 있다.”

내년 대선에서 가치와 이상과 무관하게 청백게임이 벌어지면 어떻게 할 건가? 뛰어들어 판을 바꿀 건가?

“20세기와 결별하고 새로운 정당정치와 민주주의 미래를 두고 지도자들이 경쟁하길 바란다. 그렇게 정당 틀을 바꿔주길 바란다. 지도자들이 같이 해낸다면 응원하겠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내가 도전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청백게임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긴 힘든 거 아닌가?

“문재인 전 대표나 여당의 원희룡·남경필 지사나 다 훌륭한 사람이다. 과거 정치인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를 해보고자 하는 좋은 성품을 가졌다. 많은 분이 좋은 활동 해주고 계시니, 저야 응원하는 입장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재기할 수 있다고 보나?

“시간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온다. 문 전 대표가 뭔가를 책임져야 할 상황이 있다든지 그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당이) 좀 안정화가 되고 나면 다음 번 대통령 후보를 위한 경쟁국면이 만들어질 거다. 문 전 대표에게는 충분한 기회 있고, 현재로선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문 전 대표의 상황이 안 지사가 직접 뛰어들지 말지를 정하는 중요한 조건이 되겠다.

“그건,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다. 계속 응원할지, 아니면 직접 슛하기 위해 제가 뛰어야 할지는 가봐야 안다. 이미 많이 경험해서 내가 들어가도 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겸손하게 상황을 보고, 조금이라도 유능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는 게 좋은 인생이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더민주가 호남의 지지를 다시 회복할 방법이 있을까?

“국민의당과 잘 대화하고 협조하면 된다.”

국민의당과 새누리당 등 여권의 연정 시나리오도 일부에서 나도는데.

“국민의당도 자기를 뽑아준 유권자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겠나. 큰 흐름으로 놓고 보면, (국민의당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역사에서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 뿌리를 두고서 어떤 공통의 협력과 논의를 해나가는 것이 당연한 순리다. 두 당은 서로간 협력하는 정신을 높여야 한다.”

정치 지도자는 경쟁과 출세보다 가족의 가치 얘기해야

청년실업과 저출산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이 질문에 대해 안 지사는 가장 장황하게 대답했다. 그만큼 고민의 깊이가 깊었다는 방증이다. 답변을 고스란히 옮긴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사실상 독자적 정책 목록을 다양하게 하기 어렵다. 좋은 일자리를 늘리려면 경제 생태계에서 기업가들의 도전이 활기차게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현 정부는 기업의 활기찬 도전을 위해 고용,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좀 더 급격하게 해야만 기업활동이 자유롭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것도 필요한 정치다. 그러나 이 정책만으로는 부작용 때문에 구조가 깨져버린다. 그래서 노동시장 유연화는 시장 실패자에 대한 사회 안전망과 함께 가줘야 한다. 사회안전망 확충전략을 쓰지 않는 상태에서 1400만 명 임금 생활자의 소득악화, 고용악화 정책만 써대면 사회가 굉장히 불안해지고 시장경제에 굉장히 치명타를 준다. 그래서 청년 정책과 저출산 정책은 적절한 경제적 번영이 이뤄져야만 풀린다.

청년들에게 창업하라는데 창업 도전하다가 망해 영원한 금치산자 될 게 뻔한 데 어떻게 도전하라고 하나. 5000만원 창업자금 주고, 몇 억 운영자금 주고 그걸로 되느냐. 지금 국내 시장 주요 정보통신(IT) 제품은 70~80%가 수직계열 내부 거래다. 청년들이 신제품을 만들어도 중소기업이 납품할 데가 없다. 대기업 납품과장이 이윤율을 딱딱 쳐서 중소기업은 고사하게 돼 있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 경제 생태계인데 이 경제 생태계에 청년들에게 도전하라고 말만 하는 건 무책임해 보인다.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만 청년들이 도전할 수 있고 실패한 사람을 위해 안전망도 만들어야 한다. 이런 구조에선 청년들이 제2의 빌 게이츠가 나올 수가 없다. 이 문제는 대한민국 구성원 모두의 문제다. 재벌이 나빠서 재벌만 손보면 된다?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다.

저출산 문제는 두 가지다. 우선, 어떤 곳이나 애 키우기 좋은 조건이 돼야 하고, 둘째로는 인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인생이 뭐냐? 애 낳고 키우는 거다. 자기가 태어나서 새끼를 낳고, 새끼를 키우고 죽는 거다. 그게 인생이다.”

저출산 해소를 위해 정부가 40조원을 투입한다고 하는데.

“미국, 유럽이나 선진국이라 할지라도 정치 지도자들이 일정 정도 가족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가족의 가치 반대되는 말이 뭘까? 경쟁과 출세다. 경쟁과 출세, 물질 중심으로 살아서 하나도 이뤄지지 않는다. 가족을 대표하는 개념은 사랑과 화합, 용서, 우애다. 미국 대선에서는 레이건을 포함해 우리 기억하는 모든 미국 대통령처럼 매번 가족을 강조하는 지도자가 나온다. 그만큼 밸런스를 맞추는 거다. 우리 사회도 좀 그래야 한다. 손학규 전 대표의 ‘저녁이 있는 삶’이 사람들에게 소구력이 있었던 게 그런 거 아닌가.”

인터뷰가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가벼운 얘기 하나 묻겠다. 처음 지사 선거 때 ‘부처님 오신 날’ 절에 갔는데 다른 후보들은 여러 절을 도는데, 한 곳에서 저녁까지 쭉 머물렀다는데.

“대체적으로 ‘스윽’ 지나다니는 스타일은 안 한다. 도지사 되고 나서도 보고를 받든 행사를 가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있는 편이다. 쉬지 않고 너무 오래 달리면 자기 영혼이 못 쫓아와서 넋 나간 사람이 된다더라. 저도 너무 바삐 다니면 제 영혼이 저를 잃어버릴까봐.”(웃음)

- 만난 사람=박승희 중앙일보 정치국제에디터 겸 정치부장 pmaster@joongang.co.kr / 정리·이지상 기자 / 사진·오상민 기자

201606호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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