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정치풍향] ‘반기문 대망론’의 허와 실 

여권의 유일한 희망, 세대교체 바람에 흔들리나 

남궁욱·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오마바와도 맞서는 등 권력의지 존재한다는 관측… 당내 기반 부재, 검증 관문 통과 등 곳곳에 걸림돌도 산적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터키의 한 호텔에서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 가운데는 김용 세계은행 총재다. / 사진·중앙포토
4·13 총선이 끝난 지 꼭 한 달이 지난 5월 12일. 친박계의 핵심인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 당 안에 대권주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저희로선 외부에서 대권 후보를 모셔와야 할 형편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한 분을 말씀드릴 순 없지만, 타당성이 있는 이야기”라고도 덧붙였다.

홍 의원이 특정할 수 없다고 했지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염두에 둔 발언이란 걸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여소 야대 정국에서 더욱 거세지고 있는 ‘반기문 대망론’의 일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 총장이 이달 말 한국을 찾는다. 동선 하나하나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유엔과 외교부는 5월 13일 “반 총장이 25일 방한한다”고 밝혔다. 유엔은 당초 20일쯤 반 총장의 한국방문 사실을 공식 발표하려 했으나,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먼저 소식이 알려지자 발표를 앞당겼다.

반 총장은 첫 일정으로 25~26일 제주도 제주국제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 ‘제11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 참석한다. 포럼은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 동안 열리지만, 반 총장은 25일 저녁에 제주도에 도착해 26일 오전 개막식, 오찬까지 참석하기로 했다.

이후 반 총장은 제주도에서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미에(三重)현 이세시마(伊勢志摩)에서 열리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회의가 열리는 26~27일 일본에 머물며 행사에 참여한 뒤 27일 저녁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이번 출장에서 반 총장의 마지막 목적지는 제66차 유엔 NGO 컨퍼런스가 열리는 경북 경주다. 유엔 공보국(DPI)이 주최하는 컨퍼런스는 애초에 반 총장이 이번 방문을 계획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번 컨퍼런스에선 지난해 유엔에서 채택된 ‘지속가능한 개발목표(SDGs)’의 이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글로벌 파트너십을 구축·강화하는 방안을 집중 논의할 텐데, SDGs는 반 총장의 큰 업적 가운데 하나라 애정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컨퍼런스 일정은 30일부터 6월 1일까지인데, 반 총장은 개막식이 열리는 30일 하루만 참여한다. 컨퍼런스 참석이 끝나는 대로 반 총장은 뉴욕으로 돌아간다.

일본과 경주 일정 사이인 주말(5월 28~29일) 동안엔 공식 일정이 확인된 바 없지만, 서울에 머물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반 총장이 고향인 충북 음성에 갈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현재로선 전혀 계획에 없다고 한다. 반 총장과 가까운 이들은 “애초에 별로 검토되지도 않았는데 언론보도 등으로 와전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서울 방문은 막판에야 확정됐다고 한다. 준비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한국까지 와서 서울은 가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과 “대통령 면담 등 공식 일정도 없는데 굳이 서울까지 가면 괜한 말이 날 수 있다”는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반 총장은 한국에 올 때마다 대통령을 만났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25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아프리카와 프랑스 순방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다.

이번 방한은 절제된 로키(low-key) 일정


▎5월 말 방한하는 반기문 총장의 국내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실제 반 총장이 서울에 있는 주말을 이용해 정치권과 접촉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하지만 복수의 측근들은 “자제들이 서울에 머물고 있고, 노모도 고향에서 올라올 것 같다. 가족들과 철저히 사적인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행을 둘러싼 고민에서 드러나듯, 반 총장은 이번 방한에 정치적 색깔이 덧칠되는 것을 경계한다. 유엔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사실 외교가에서는 이미 올해 초부터 반 총장이 한국에 간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머무는 기간이나 방문하는 지역 등을 놓고 너무 많은 정치적 해석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이어 “유엔 NGO 컨퍼런스 같은 경우는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처음 열리는 것이고, 각국 정상급 인사가 참석하는 매우 중요한 행사다. 그런데 이런 배경을 잘 모르는 인사들이 ‘별로 중요한 행사도 아닌데 총장이 직접 오는 것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푸념했다. “반 총장은 이번 방한을 절제된 로키(low-key) 일정으로 진행하도록 주변에 당부하고 있다.”

반 총장과 가까운 국내 인사는 “현재로선 엿새 내외의 일정인데, 처음 계획보다 다소 줄어든 측면이 있다. 아예 행사 하나를 통째로 불참하는 방안까지 고려되기도 했다”며 “특히 총선 뒤 반 총장은 이번 행보로 불필요한 오해를 사선 안되겠단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반 총장의 동선을 두고 정치적 해석이 무성했던 건 이번뿐만이 아니다. 특히 반 총장이 북한을 가려고 할 때마다 “대권 주자로서의 욕심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지난해 5월 ‘2015 세계교육포럼’ 참석차 한국에 왔던 반 총장은 당일 일정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하려고 했으나, 북한 당국이 하루 전 갑자기 방북 허가를 철회해 무산됐다. 지난해 말에는 북한의 초청으로 평양 방문이 추진됐다.

여권 관계자는 “개성공단 방문까진 이해한다고 쳐도, 갑자기 평양에 간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을 땐 수군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목적지를 개성공단에서 평양으로 확 틀었다는 건 김정은 노동당위원장과 회담을 하고, 남북정상회담 중재 같은 결과를 내놓겠다는 뜻인데, 아무리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소명이 있다고 해도 국내 정치를 의식한 행보로 보이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고 귀띔했다.

게다가 반 총장의 평양행 가능성이 보도된 지난해 11월 중순은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북한 인권 상황을 비판하는 결의안을 처리하기로 일정이 이미 잡혀 있던 때였다.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인권최고대표와 유럽연합(EU) 스타브로스 람브리니디스 인권특별대표도 북한으로부터 초청을 받았는데 이를 감안해 방북을 보류한 터였다. 그런데도 유엔의 수장은 평양에 간다고 하니, 정치권에서 방북 의도를 놓고 이런저런 추측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반 총장 지난해 말 평양 방문 무산은 천운”


▎윤상현 의원이 지난 1월 제29차 충청포럼에서 제2대 충청포럼 회장으로 취임했다. 충청포럼은 이른바 ‘충청 대망론’의 한 진원지이기도 하다. / 사진·뉴시스
하지만 파리 테러 수습 등으로 인해 방북 조율이 미뤄지고, 올 초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면서 반 총장의 평양 방문은 결국 없던 일이 됐다. 반 총장 입장에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반 총장과 친분이 두터운 한 인사는 이렇게 분위기를 전했다.

“방북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그가 꼭 이루고 싶어하는 숙원사업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만일 연말에 반 총장이 평양에 가서 김정은을 만난 뒤에 핵실험이 이뤄졌다면, 북한이 어떻게든 반 총장과 김정은의 회담을 정치적 선전도구로 악용했을 것이 분명하다. 핵 도발을 예측하거나 막지 못한 책임까지 거론되며 반 총장 처지가 크게 난처해졌을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평양행이 무산된 건 천운에 가까웠다.”

반 총장의 일거수일투족이 부각되고 대권 행보와 연관지어지는 ‘반기문 현상’은 야권보다는 여권에서, 4·13 총선 이전보다는 4·13 총선 이후에 더 두드러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했고, 그 결과 그동안 거론돼 온 차기 대선주자군이 ‘전멸’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원내 제1당에 오른 더불어민주당, 캐스팅보트(casting vote·가부동수시 결정권)를 쥐게 된 국민의당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두 당에는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대표라는 대선주자급 인사들도 버티고 있다.

반면 원내 제2당으로 전락한 새누리당에서는 당장 지난 2014년 7월 당 대표가 된 뒤 2년 가까이 ‘차기경쟁’에서 여권의 대표선수였던 김무성 전 대표가 추락해버린 상태다. 총선 패배의 원인이 된 공천갈등이 당내 친박근혜계와의 쌍방과실이기는 했지만, 외형적으로야 ‘패장(敗將)’이란 꼬리표는 김 전 대표의 것일 수밖에 없다. 한 측근은 “공천개혁을 김 전 대표가 뜻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참패해 억울한 측면도 많지만, 지금 와서 어쩌겠느냐”며 “현재로서는 (대권과 관련해서도) 그냥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권 내에서 김 전 대표의 대항마로 친박계가 주목해온 잠룡(潛龍)들의 처지도 비슷하다.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당선돼 화려하게 정치권에 복귀하려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야당 중진 정세균 의원에게 그야말로 참패했다. 두 사람의 득표율 차이는 무려 12.9%포인트였다. 여권 내부에서 조차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선방(善防)했다’는 위로를 건넬 수조차 없는 성적표”라며 “이번 선거를 통해 ‘이미지 정치’를 해온 오 전 시장이 과연 대선주자급 정치적 파괴력을 가진 사람이 맞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서울의 한 다선 의원)는 지적이 나온다. 오 전 시장의 한 측근도 “현재로선 (오 전 시장도) 별다른 계획이 없다. 그저 당을 도울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하겠다는 구상뿐”이라고 말했다.

역시 ‘총선 승리→친박계 지원→대선후보 경선 참여’라는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있던 안대희 전 대법관이나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모두 낙선으로 꿈에서 멀어진 상태다. 안 전 대법관은 서울 마포갑에서 노웅래 의원에게, 김 전 지사는 대구 수성갑에서 김부겸 당선인에게 참패했다. 특히 김 전 지사는 ‘새누리당 텃밭 중 텃밭’, ‘TK(대구·경북) 중에서도 강남’이라는 대구 수성갑에서 24.6%포인트(8만4000여 표) 차이로 졌다. 대선주자로서는 물론이고 정계복귀 자체가 불투명한 지경이다.

대선주자들과 관련된 새누리당의 위기 상황은 수치로 보면 더욱 또렷해진다. 한국갤럽이 총선 보름 만에 발표한 여론 조사(실시는 지난달 26~28일)에서 김무성 전 대표의 지지율은 3%에 불과했다. 같은 조사에서 올 1월까지만 해도 1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점을 떠올려보면 격세지감이다. 오세훈 전 시장이 이 조사에서 7%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이 또한 큰 의미를 부여하긴 힘들다. 이 조사에서 1·2위를 차례대로 차지한 안철수 대표(21%)와 문재인 전 대표(17%)의 지지율에 비하면 미미하기 때문이다. 이 조사에서 새누리당 복당여부가 불투명한 무소속 유승민 의원의 지지율(4%)까지 합쳐봐도 ‘여권 성향 대선주자’의 지지율 합계 자체가 14%에 불과하다. 문 전 대표 한 명의 지지율에 못 미치는 숫자다.

바로 이런 상황 때문에 정권을 재창출할 방안을 고민하는 여권 인사들은 최근 들어 ‘반기문’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더욱 자주 입에 올리고 있다. 앞서 반 총장은 국내 여론조사 기관들에 자신을 차기 대선주자로 집어넣어 여론조사를 돌리지 말아줄 것을 여러 차례 당부한 바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이 들어간 여론조사는 끊임없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최근에 발표된 몇몇 조사 결과는 반 총장에게 눈독을 들이는 여권 관계자들의 구미를 더욱 당기게 하고 있다.

반(潘)을 반기는 사람들 “충청이 희망 아니냐”


▎2013년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충청포럼 행사장을 찾은 반기문 총장이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 사진제공·시사저널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는 총선 직후였던 4월 18~19일 여야 대선후보군의 인사들을 뽑아 양자대결을 하는 여론조사를 실시해봤다. 그 결과 여권 가상후보로 이름을 올려본 반 총장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에 41%대 32.3%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반 총장의 지지율은 국민의당이 총선 때 돌풍을 일으켰던 호남을 뺀 나머지 모든 지역에서 안 대표에 앞섰다.

반 총장은 또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와도 42.3% 대 42.8%로 오차범위 이내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문 전 대표는 수도권과 호남에서, 반 총장은 충청권과 영남권에서 강세를 보였다. 특히 연령대별 지지율에서 반 총장은 60세 이상 응답층에서 73%의 지지율을 기록해, 12%를 얻는 데 그친 문 전 대표를 크게 앞섰다.

이러다 보니 리얼미터의 권순정 조사분석실장은 “반 총장이 정치를 과연 할 것인가, 또 한다면 여권에서 할 것인가 야권에서 할 것인가 등 아직 변수가 많다”면서도 “하지만 현재까지 조사결과와 여당의 상황을 보면 파괴력과 득표력 차원에서 반 총장이 새누리당에게는 거의 유일한 희망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이런 여론조사 조사 추이에 무게를 싣는 또 하나의 논리가 ‘충청 대망론’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반 총장은 ‘충청 엘리트’다. 충북 음성 출신으로 지역 명문 충주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런데 마침 지난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충청도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지역에서 휘청거렸다. PK(부산·경남)에서는 이른바 ‘김해벨트’가 뚫리면서 무려 9석을 야당에 빼앗겼다. 이 때문에 부산 출신으로 PK의 대표주자였던 김무성 전 대표의 입지는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 수도권에서도 서울에서 12곳만 건지는 참패 속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몰락했다. TK에서는 ‘무소속 유승민 바람’을 잠재우지 못했고, 그래서 신(新)TK 맹주를 꿈꿔온 친박계 핵심 최경환 의원의 역할공간도 크게 축소된 상태다.

이러다 보니 충청권 의원과 당선자들은 슬슬 “충청이 그래도 새누리당한테는 희망 아니냐”, “딱히 반 총장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아무튼 이제 새누리당에서 충청도의 입김이 더 커져야 할 때” 등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충청권이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유일하게 의석수를 늘린 지역(25석 중 12석→27석 중 14석)이라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충청권 새누리당 의원은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야권에서는 문재인, 안철수에 박원순, 안희정도 있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대선에서 진짜 무서운 것은 갑자기 나타나는 새로운 인물”이라면서 “반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올해 말에 귀국한 뒤에 여권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어 중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황교안 국무총리,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과 경쟁한다고 생각해봐라. 그림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반 총장의 대선 도전과 관련된 이런 모든 논의는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과연 반 총장이 새누리당의 차기 대선주자로 뛰어볼 의지가 있느냐”다. 민감한 외교 사안에 대한 질문을 요리조리 잘 피해나간다고 해서 얻은 ‘기름장어’라는 별명답게 반 총장이 대권 도전과 관련해서도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궁금증은 갈수록 커지고만 있다. 반 총장을 만났다거나 잘 안다는 인사들 사이에서도 그의 속내를 두고선 엇갈린 이야기들이 나온다.

결국 관건은 ‘의지’와 ‘플랫폼’인데… 과연?


▎5월 초 유엔본부 회의장으로 반기문 사무총장을 예방한 충북 음성장학회 관계자들과 학생들. 반 총장은 충북 음성 출신이다. / 사진제공·음성군
비교적 최근 그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다는 여권 인사는 본지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반 총장이 여전히 명확하게 ‘대권을 향해 뛴다 아니다’라는 식으로 입장을 정리해놓고, 그걸 대놓고 밝히거나 하지는 않더라. 다만 한참 얘기를 하다 보니 ‘여건이 조금만 갖춰진다면 기회를 피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느낌이 받았다.” 새누리당 내 한 충청권 인사도 “반 총장과 가까운 의원들 사이에서는 ‘지금이야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반 총장이 결국 대선무대로 나오지 않겠느냐’는 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 총장을 잘 아는 외교가 인사는 “반 총장은 사람 면전에 대고 ‘No’라는 말 자체를 못하는 성격이다. 반 총장을 ‘형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은데, 반 총장이 정말 ‘아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단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며 “여론조사에서 자신을 빼라고 한 것이 완곡한 ‘No’의 표현이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반기문 사단’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가장 좋은 것은 정치권에서 다른 유력주자가 나와서, 반 총장이 ‘그렇다’, ‘아니다’라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서도 관심에서 저절로 멀어지는 식으로 상황이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엔통’인 한 외교관은 “반 총장 성격에 ‘정말 나 아니면 아무도 국민을 위해 대통령으로 일할 사람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 만한 분위기가 되면 못 이기는 척하며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반 총장이 보이기엔 물러 보여도 강단이 대단하다. 시리아 문제를 두고서는 전화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거의 고함을 치면서 맞붙기도 했다”며 “결코 권력의지가 없는 사람도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러한 말을 종합해보면 일단 정치권에서 “새누리당 내 별다른 뿌리가 없는 반 총장이 과연 당 대선후보 경선의 문턱에 도전할 만한 기반을 빠른 시일 내에 마련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단계는 되는 셈이다.

반 총장에게는 ‘새누리당 뿌리’가 없다. 반 총장은 평생을 외교관으로 살았고, 특히 그 외교관으로서의 경력의 정점을 노무현 정부에 모두 찍었다. ▷청와대 외교보좌관(2003~2004년) ▷외교통상부 장관(2004년~2006년) ▷유엔 사무총장(2006년 12일 선출)이 모두 노무현 정부에서 얻은 직함들이다.

외교부 안팎에 ‘반기문 사람’으로 분류되는 인사는 꽤 있다. 김원수 유엔 사무차장, 박인국 전 유엔 대사, 김숙 전 유엔 대사, 오준 현 유엔 대사, 윤여철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 등이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직업외교관일 뿐이다. 실제 반 총장이 대선 출마 결심을 굳혀도 직을 버리거나 경험해보지 않은 정치판에 뛰어들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가늠할 수 없다. 정치권에서 조직적인 참모그룹이 형성된 것도 아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수시로 만나고 전화하면서 서로를 각별히 챙기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이 또한 대권주자로서의 기반을 쌓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여권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도 아직까지는 여러 명의 잠재 후보 중에 한 명 정도로만 반 총장을 바라보고 있을 뿐, 특별히 교감을 주고 받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무성 전 대표의 3월 발언은 반 총장의 이런 약점을 파고든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당시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했던 김 전 대표는 “(반 총장이 대선에 도전하려면) 정체성 맞는 정당을 골라 당당하게 선언하고 활동하라. 새누리당은 환영하지만 민주적 절차에 의해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민주적 절차’는 다름 아닌 경선이다. ‘당신이 과연 새누리당 골수당원 수십만 명을 줄 세워야 하는 경선에서 기존 정치인들과 경쟁해 이길 수 있겠느냐’는 도발로 풀이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출마 결심해도 ‘꽃가마’ 추대는 어려워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 참석한 박 대통령과 반기문 총장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하지만 새누리당 내에 대선주자 반기문의 연착륙을 위해 ‘플랫폼’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세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당장 친박계 일각에서는 비박계인 김무성 전 대표가 여권 대표주자로 떠올랐던 지난해 계파 모임(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서 반 총장의 대선주자로서의 가능성을 점검해보는 자리를 여는 등 ‘반기문 불씨 지키기’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특히 그런 활동에 앞장서온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가 윤상현 의원인데, 그는 올초 ‘반기문 대망론’의 본산이었던 ‘충청 포럼’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총선 공천 과정에서 “김무성 죽여버려” 발언 파문을 일으켜 현재는 새누리당을 탈당한 상태지만, 윤 의원은 이미 복당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당내에서는 이미 “윤 의원의 복당은 시간문제다. 돌아오면 반 총장을 엄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충청포럼’을 만들었던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동생 성일종(서산-태안) 당선자가 20대 국회에 등원한 것도 반 총장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주목할 만한 일이다.

다만 반 총장에 대한 친박계의 일각의 관심은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과 붙어 다니는 경향이 있다. 마땅한 자파(自派) 대통령감이 없으니 반 총장을 ‘외교 전문 대통령’으로 세우고 대신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같은 친박 핵심 인사를 총리로 앉혀서 국정운영권을 잡는 것도 방법이라는 전력인 셈이다. 홍문종 의원은 지난해 11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런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구상에는 비판의 목소리가 따른다. 당장 홍 의원의 발언은 두고두고 구설에 오른다. 5월 10일 새누리당 초선 당선자 연찬회에 특강자로 나선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 실장도 이 발언을 상기시킨 뒤 “‘친박’과 ‘반기문’이라는 특정인이 연합해 정권 재창출을 위한 시나리오로서 국가 체제를 끄집어냈는데 이는 국민을 모욕하는 일이고 있어선 안 되는 얘기다. 오로지 권력을 잡는 것만 생각하는 정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친박계 내부에서도 지지하는 차기 대선주자를 놓고 갈수록 분화가 이뤄질 게 분명하다. 이러다 보니 반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해 대선주자로서 길을 걷기 시작해도 그의 앞길에 ‘꽃가마’가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또 다른 새누리당 충청권 관계자는 “사실 충청권 의원들 사이에서도 반 총장 대망론을 놓고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면서 “반 총장이 정말 대선주자로서 우뚝 서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엘리트 외교관’으로서의 삶은 잊고 훨씬 더 적극적인 태도로 권력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반기문 대망론’은 그의 결심만으로 해피엔드로 끝나는 시나리오는 아니다. 현실정치에선 반 총장도 ‘검증받은 적 없는 후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외교가에서도 반 총장의 대권 도전론을 걱정하며 바라보는 이도 많다. “지금 반 총장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반 총장의 정치적 능력이나 자질보다는 한국인이 처음으로 달성한 유엔 사무총장, ‘세계의 대통령’이란 직위를 보고 생겨나는 것이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반 총장에 대한 환상과 실제 모습이 다르다고 느껴지면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란 게 주요한 이유다.

뜨뜻미지근한 ‘반기문 대망론’


▎198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귀국 동향 관련 외교문서에는 하버드대에서 연수 중이던 ‘반기문 참사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 사진제 공·외교부
최근 기밀이 해제된 1985년 외교문서에서 당시 ‘반기문 참사관’의 활동이 드러난 이후 여론의 반응은 이런 걱정이 일리가 있단 걸 보여준다. 1985년 1월 7일 류병현 주미 대사는 ‘김대중 동향 보고’라는 제목의 문서를 본부에 보냈다. “하버드대에서 연수 중이던 반기문 참사관이 130여 명의 미 학계 및 법조계 인사들이 연서한 김대중의 안전 귀국 요청 서한을 대통령 앞으로 보낼 것이라는 정보를 교수로부터 입수했다”는 내용이었다. 전두환 정부 때였던 당시 반 총장은 외무공무원으로서 정부의 지침에 따라 수집한 정보를 보고한 것이었지만, 이런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부정적 반응이 쏟아졌다. 소위 ‘반기문 테마주’로 분류되는 회사들의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함께 공개된 외교문서는 25만여 쪽이었는데, ‘반기문 참사관’의 이름이 등장한 단 한 장의 문서에 더 큰 관심이 쏠렸다.

‘반기문 대망론’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도 아직은 뜨뜻미지근하다. 중앙대 손병권(정치국제학) 교수는 “총선 이후 새누리당 쪽에서 반 총장의 몸값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총선 결과로 인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내년 대선 출마를 확정지으면서 판 전체가 젊어지는, 차세대로 넘어가는 ‘세대교체 효과’가 나올 수 있다”며 “그러면 오히려 유권자들에게 반 총장의 매력은 반감될 것이고, 남경필 경기지사나 원희룡 제주지사 같은 이들이 더 부각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한정훈(정치학) 교수는 “지금 상황은 새누리당 내에 합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분파가 논의를 위해 계속 ‘반기문 대망론’을 건드려보고 있는 수준이라 실체가 있다고 보긴 힘들다”며 “본인 입장에서도 경선 같은 것까지 치르면서 후보로 나오려고 할까 싶다”고 말했다. 또 “이번 총선 패배의 원인에 대해 당내에서 공감된 인식을 갖고서 개선책으로 뭔가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방향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반기문 카드를 내놓는다고 새누리당과 현정부에 비판적이었던 국민의 인식을 바꿀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 남궁욱·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201606호 (2016.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