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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해부] 정권마다 반복된 ‘집권 4년 차 징크스’ 

레임덕 부르는 ‘-게이트’ 악몽, 이번에도 예외는 없다? 

문병주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매 정권마다 4년 차에 터지는 권력형 비리로 권력 누수 가속화… ‘법조브로커’ 사건에 ‘진박’ 인사 연루설 등 대통령 측근비리로 확대될 가능성도

▎대통령에게 있어 집권 4년 차는 숙명처럼 찾아오는 위기다. 역대 대통령 모두 집권 4년 차에 터진 권력형 비리 때문에 권력누수를 겪었다. 대통령기록관에 전시돼있는 역대 대통령의 선거 포스터. / 사진제공·대통령기록관
지난 4·13 총선은 낯설지 않은 ‘데자뷔(dejavu·기시감)’를 많은 이에게 안겨줬다. 집권 4년 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 입장에서 특히 그랬다.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 사무실로 직원들이 서류를 옮기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시간을 거슬러 이명박 정부의 집권 4년 차이던 2011년에는 4·27 재보선이 정국을 흔들었다. 이듬해 치러질 대선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더욱 그랬다. 이 재보궐선거는 경기 성남 분당을, 경남 김해을, 강원도지사 등 당시 한나라당이 우세한 지역 위주로 실시됐지만 결과는 여당의 참패였다. 특히 여당의 텃밭이었던 경기 분당을에서 손학규 민주당 고문이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를 이김으로써 한동안 쓰러져가던 야당이 되살아났다. 이 패배로 한나라당 지도부가 무너졌고 안상수 당시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4·13 총선의 결과는 2011년 재보선의 양상을 그대로 재현한 모습이다. 새누리당이 최소 과반의석을 확보하리라는 당초 예상을 깨고 원내 제1당의 자리마저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에 내줬다. 당·청 갈등에서 시작해 선거참패로, 선거 결과에 따른 새 지도부 구성이라는 익숙한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대통령 지지율이다. 총선 후인 4월 22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9%로, 30% 밑으로 떨어졌다. 총선 후로 10%포인트가 더 빠졌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4월 25∼27일 전국 19세 이상 1522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전화조사 결과에서는 31%로 조사됐다. 박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 중 ‘잘하는 편’, ‘매우 잘함’은 각각 22.3%, 8.7%였던 반면 ‘매우 잘못함’, ‘잘못하는 편’은 각각 43.3%, 19.7%로 나타났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이런 현상에 대해 총선 후 “독단적이고 일방통행식 국회 운영, 그리고 국정 운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총선 결과”라고 해석했다.

여기에 복병이 존재한다. ‘집권 4년 차 징크스’로 불리는 대통령 측근·친인척 비리 현상이다. 국민이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뽑은 노태우 정부 때부터 집권 4년 차만 되면 예외 없이 측근 비리 의혹이 불거져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속화시켰다.

집권 4년차의 복병 ‘측근 비리’


▎1. 김대중 대통령 집권 4년 차는 각종 권력형 비리로 몸살을 앓았다. 김 전 대통령의 가신들은 물론 아들 홍업 씨가 연루되면서 신뢰가 크게 떨어지기도 했다. 2. 노태우 전 대통령 4년 차인 1991년에 터진 수서개발 비리의 핵심 인물인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3.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집사’인 장학로 전 청와대 부속실장이 수의를 입고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노태우 정부 때는 4년 차이던 1991년에 서울 강남구 수서·대치지구 불법개발 사건인 ‘수서비리’사건이 정권을 뒤흔들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장병조 청와대 비서관,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국회 건설위원장이던 민자당 오용운 의원 등 국회의원 5명을 구속하면서 노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이 급속하게 약해졌다.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간 지 4년차가 되던 1996년에는 장학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17개 기업에서 총 27억여 원의 뇌물을 받은 의혹이 불거졌다. 장씨는 서울지검 특수1부 수사를 받아 구속됐다. 같은 해 10월에는 이양호 국방부 장관이 비리에 연루돼 구속되며 김영삼 정권을 안에서 흔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김 대통령은 집권 4년 차이던 2001년 ‘게이트 정국’에 휘말렸다. 홍콩에서 살해당한 한국 여성 수지김 사건을 14년간 은폐한 것으로 드러난 ‘윤태식 게이트’, 2300억대 불법대출과 주가조작으로 경제계를 뒤흔든 ‘진승현 게이트’, 680억대 횡령이 적발된 ‘이용호 게이트’ 등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김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 씨와 처조카 이형택 씨,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 등 권력 핵심인사들의 비리가 줄줄이 드러나면서 그야말로 정권은 만신창이가 됐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의 집권 4년 차는 조용한 편이었다. 이미 집권 초기인 2003년 불법대선자금 수사 등을 통해 측근들이 한바탕 곤혹을 치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집권 4년 차이던 2006년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가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그 배후에 노 대통령의 측근들이 관련됐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4년 차인 2011년은 저축은행 사건을 시작으로 갖가지 부정부패 사건이 발생하며 이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은진수 감사원 감사위원 등 이 대통령 측근들이 수사선상에 올랐고,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이국철 SLS그룹 회장에게서 거액을 받은 혐의가 포착돼 구속됐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 등 정권 실세와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 이름까지 거론되면서 급속한 레임덕 현상으로 빠져들었다.

‘보통사람’의 정부를 끌어내린 ‘특권 세력’


‘보통사람’을 표방하고 대통령에 당선됐던 노태우 대통령은 집권 4년 차를 맞은 1991년 초부터 큰 위기에 봉착했다. 91년 1월 서울시가 수서·대치 택지개발예정지구를 특정 연합 주택조합에 특혜 분양키로 하면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당시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불리던 수서·대치 지역 공공용지 11만7300㎡(약 3만5380평)가 개발제한구역 안에 들어 있어 주택 신축 등이 불가능했는데도 서울시가 이곳에 아파트를 건립하려는 26개 주택조합에 건축 허가를 내준 것이다.

이에 청와대는 검찰에 수사지시를 내려 대검 중수부가 나섰다. 검사 10명으로 특별수사팀을 꾸린 검찰은 수사 10여일 만에 여당이었던 민자당의 이태섭·오용운·김동주 의원, 평민당 김태식·이원배 의원이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으로부터 모두 5억2000만원을 받은 사실을 밝혀내고 이들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했다. 또 정 회장으로부터 2억6000만원을 받은 장병조 전 청와대 문화체육담당 비서관과 1000만원을 받은 이규황 건설부 국토계획국장 등 2명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가장 큰 문제는 청와대 비서관이 연루됐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대검 중수부가 나선 수사였음에도 추가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사건은 정태수 회장이 행정기관이나 정당이 집단민원에 약하다는 점을 이용해 뇌물을 활용, 특혜 개발을 허가받았다는 것이었다.

당시 홍성철 전 청와대비서실장, 이승윤 부총리와 전·현직 장관급인 이연택·권영각·김종인·김용환 씨 등이 소환조사를 받았다. 차관급으로 이상배·김대영·윤백영 씨 등도 검찰에 불려갔다. 택지개발 허가를 누가 했느냐를 놓고 고건 전 서울 시장과 박세직 당시 시장도 조사를 받았다. 고 시장은 훗날 청와대가 협조 요청을 해왔고, 그래도 버티자 청와대 수석들이 직접 허가를 종용했다고 밝혔다. 이종남 당시 법무부장관은 90년 8월 택지개발 허가 당정협의에 참석한 경위를 밝히는 경위서를 자필로 제출해야 했다. 단일사건으로 꽤 많은 고위 공직자가 연루됐다. 하지만 처벌을 받은 이는 국회의원 5명과 장병조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뿐이었다.

수사가 마무리된 91년 2월 말 노 대통령은 사과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 데 대해 국정최고책임자로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으로 국회의원 5명이 구속된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며 특히 청와대비서관이 이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것은 저의 불찰이라 아니할 수 없는 일로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통령이 고개 숙였지만 민심은 되돌릴 수 없었다. 그해 3월 54개 대학 1330명의 교수가 수서비리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하라는 연대서명운동을 벌였고, 학생·시민들은 길거리 시위를 이어갔다. 이러는 사이 노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점점 약해졌다.

‘상도동 집사’가 무너뜨린 ‘칼국수 대통령’ 이미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 4년 차인 2006년을 떠들썩하게 했던 불법도박게임 바다이야기. 노 전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들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1996년 3월 21일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영원한 정치 맞수였던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는 장학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거액 축재 비리를 폭로했다. 국민회의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은 자기만 깨끗하다고 큰소리 칠 게 아니라 주변 단속부터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 부속실장은 김 대통령의 야당시절 상도동 자택 근처 대학 운동장에서 조기축구를 하다가 만난 인연으로 1977년 상도동 가신(家臣) 그룹에 합류했다. 그 후 20년 가까이 김 대통령의 집안 잡무를 맡아온 ‘상도동 집사’였다.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제1부속실장으로 들어가 대통령 관저에서의 일정과 친인척 관리 등을 해왔다. 1980년 신군부 등장 후 김 대통령이 상도동에 연금당하자 그는 주민등록까지 상도동으로 옮겨 배치된 전경들에게 친척이라고 우기면서 김 대통령 자택을 드나들었을 정도로 충직했다.

김대중 총재는 “김 대통령이 자기 사정(司正)은 하지 않고 남만 표적사정 하려다 발부리에서 비리를 다져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도 “장씨 사건은 현 정권의 부패타락상과 개혁의 허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김 대통령을 겨냥했다. 나아가 “김 대통령의 대선자금 출처를 밝히라”고 외쳤다. 청렴을 강조했던 정권의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김 대통령은 진노했다. 취임하면서 “나는 물론 측근 누구도 기업에서 단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그였기에 분노는 더욱 컸다. 김 대통령은 비리 의혹 사실을 접하고 바로 “청와대 비서관이라고 봐줄 이유가 있겠느냐? 비리가 드러나면 당연히 법에 의해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의혹이 제기된 후 그는 “장학로 실장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공언했고, 국민에 대한 사과로 이어졌다. 김 대통령은 당시 “부정부패 척결에 모범을 보여야 할 청와대 비서관이 파렴치한 비리를 저질러 국민들에게 대단히 송구스럽다. 앞으로 수석비서관을 비롯한 청와대 전 직원들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말고 깨끗한 공직자로서 모범을 보이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의 신속한 결단 때문인지 검찰의 수사도 속전속결이었다. 장 부속실장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지 10일 만인 96년 3월 30일 검찰은 사건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검찰 수사에서 장씨는 27억6000여 만원을 기업인, 정당관계자 등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 중 효산그룹 등 17개 기업체로부터 받은 6억2000만원(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에 대해서만 기소하고 나머지는 대가성 없는 ‘떡값’으로 보았다.

검찰의 이런 수사결과를 놓고 여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4·11 총선(15대)을 준비하고 있던 신한국당 이회창 선대위의장은 수사결과와 법적용의 형평성에 이의를 제기했다. 같은 당 박찬종 수도권선대위원장도 “검찰이 떡값으로 규정한 21억원 등 장씨가 받은 27억원은 모두 뇌물”이라며 “공직자가 그 자리에서 받은 돈은 직무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 뇌물”이라고 반박했다. 겉으로는 검찰이 타깃이었지만 나아가서는 김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담긴 말이었다. 김 대통령의 권위가 여권에서마저 허물어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 4년 차를 맞던 2001년은 ‘게이트’ 정국이었다. ‘이용호 게이트’, ‘윤태식 게이트’는 물론 2000년 불거졌다 사라진 듯했던 ‘진승현 게이트’와 ‘정현준 게이트’까지 되살아났다. 이렇게 많은 게이트가 한 해에 몰린 건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게이트 정국’으로 만신창이 된 ‘노벨평화상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은 측근들이 저축은행비리사건에 연루되면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 사진·중앙포토
정권에 치명타를 안긴 건 이용호 게이트였다. 사건은 2000년 5월 당시 서울지검 특수2부가 “이씨가 주가조작 및 횡령을 저질렀다”는 진정을 수사한 게 발단이 됐다. 검찰은 이씨를 긴급체포했지만 다음날 풀어줬고 두 달 뒤 입건조차 하지 않으면서 수사를 종결했다. 한데 2001년 9월 대검 중수부가 이씨를 긴급체포하면서 국면이 달라졌다. 이씨는 450억원의 회사돈을 횡령하고 주가조작한 혐의를 받았다. 2000년 서울 지검에서 수사한 것과 같은 건인데도 결과는 크게 달랐다. 이 과정에서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 씨가 로비스트 역할을 했다는 게 드러나면서 대형 게이트로 발전했다.

국정감사 등을 거치면서 이 사건으로 여야의 공방이 치열해졌고 결국 사건은 차정일 특검에 맡겨졌다. 특검은 승환 씨를 구속했다. 신 총장은 결국 옷을 벗었다. 특검은 이씨가 주가조작과 연관된 전남 진도 바다에 매장된 ‘보물선’의 발굴 사업에 청와대·국정원·해군 등의 비호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수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특검 시한 만료로 바통을 검찰이 다시 이어받아 이씨와 아태재단과의 돈거래 의혹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김 대통령 장남 홍업씨가 관련됐다는 걸 밝혀내고 홍업 씨를 구속했다.

‘윤태식 게이트’는 1987년 홍콩에서 발생한 ‘수지김 살해 사건’을 검찰이 2001년 말 재조사를 통해 ‘밀입북 미수사건’의 피해자로 알려졌던 윤씨가 말다툼 끝에 수지김을 살해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주목받았다. 안기부(현 국정원)가 사건의 진상을 알면서도 은폐해왔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윤 씨는 98년 지문인식기술을 개발하는 패스21이란 회사를 설립해 사업을 해왔는데 고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정원은 물론 청와대 등 권력 실세들이 개입했음이 드러났다. 언론인·정치인·공무원 등 패스21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한 52명의 리스트가 검찰에 입수되면서 파문이 커졌다. 주식 로비를 받은 청와대 경호실 직원 등이 구속됐고 윤씨와 접촉한 것으로 드러난 박준영 청와대 공보수석이 옷을 벗었다.

검찰은 한 해 전에 수사했던 ‘진승현 게이트’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재수사를 벌였다. 1차 수사 때 로비창구였던 김재환 전 MCI코리아 회장으로부터 여당 의원과 국가정보원 직원에게 로비자금을 건넸다는 진술을 받아놓고서도 추가 조사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찰은 재수사를 통해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 등 국정원 간부들이 진 씨에게서 3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밝혀내고 김씨 등을 구속기소했다. 김 전 차장을 통해 진씨의 돈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기소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권 4년 차를 흔든 또 하나의 게이트는 정현준 사건이었다. 2000년 10월 금감원이 정씨와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이 벌인 신용금고 불법 대출사건을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슈화됐다. 단순 불법대출 사기극이었던 사건은 국정원·국세청·금감원 등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게이트화됐다.

2000년 6월 분단 이래 55년 만에 남한의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북한 지도자와 정상회담을 갖고, 이 일로 한국인으로는 처음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 대통령이었지만 2001년을 흔든 4대 게이트로 그 명예가 추락했다. 김 대통령은 이듬해 초 “비리를 투명하게 밝히고 엄정 처리함은 물론 내가 선두에 나서서 이 기회를 비리 척결의 전기로 삼겠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무너진 민심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386 운동권 세력을 중심으로 ‘도덕성’과 ‘개혁’을 앞세웠던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측근비리에 시달렸다. 취임하자마자 염동연 전 노무현 대선후보 정무특보가 나라종금에서 부정한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더니 최측근인 안희정(현 충남지사) 씨 역시 나라종금 사태로 불구속 기소됐다. 안씨는 2003년 말 대검 중수부에서 추적 중이던 불법대선자금 수사에 휘말리면서 결국 구속되기도 했다.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SK에서 11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역시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조사를 받는 등 노 대통령 주위가 혼란스러웠다.

도덕성 내세운 노무현·이명박도… 측근 비리에 ‘속수무책’


▎올해로 4년 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는 징크스를 깨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법조비리사건과 부패범죄수사 등 권력형 비리로 확산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 사진·중앙포토
이런 이유로 집권 4년 차인 2006년에는 큰 일 없이 지나갈 줄 알았지만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 사건으로 정국이 시끄러웠다. ‘바다이야기’의 배후에 노무현 대통령 조카를 비롯해 후원단체인 노사모의 전 회장, 청와대 행정관, 친여 386인사 등이 있고 관련 업체의 인·허가나 도박판 이권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노 대통령이 그해 11월 “386이 박해를 받고 있다”고 하소연할 정도로 대통령을 괴롭혔다. 오락실 상품권 시장이 1년여 만에 4000억원에서 30조원으로 이상 팽창한 이면에는 정권실세 배후설이 나도는 등 ‘권력형 게이트’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했지만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2011년 3월 15일 대검 중수부 발 주요 기사가 나왔다. 금융 부실로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했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우병우 수사기획관은 “국민 경제에 막대한 부담을 준 저축은행의 부실 원인에 대해 대주주와 경영진의 책임을 엄정히 따져보겠다”고 밝혔다. 중수부 수사는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모두 정지되다시피 했었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서는 중수부 폐지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검찰의 조직 논리와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민생범죄적 요소가 결합하면서 검찰이 칼을 빼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집권 4년 차에 진행된 사건을 두고 “부산저축은행 등 대주주와 경영진이 용서받기 힘든 비리를 저지른 걸 보면서 저 자신도, 국민도 분노에 앞서 슬픔을 느끼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있고 나서 얼마 안돼 측근인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의 비리가 불거졌다. 은 전 감사위원에 이어 김해수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역시 구속기소되면서 이 대통령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특히 이 대통령은 그해 9월 “우리 정부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했지만 이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 김재홍 씨가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수억 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그해 12월 구속되고, 이 대통령의 손위동서 황태섭 씨도 제일저축은행 구명로비 사건과 관련해 수사를 받았다. 이어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도 SLS 그룹 워크아웃을 막아주는 대가로 이국철 SLS 회장으로부터 1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집권 초 국가산업단지 내 전봇대로 대변되는 각종 규제를 개혁하기 위해 ‘전봇대 뽑기’라는 파격적 행보를 보이며 ‘국민 성공시대’를 다짐했던 이 대통령은 집권 4년 차부터 불거진 측근과 친인척의 비리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4·13 총선 후 검찰은 그동안 쌓아뒀던 각종 비리의혹에 본격적으로 손대기 시작했다. 방위산업 비리는 물론이고 부영, 효성을 비롯한 기업 비리도 파헤치고 있다. 여기에 ‘제 2의 중수부’라는 별칭을 안고 출범한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각종 비리 첩보를 검토 중이다.

청와대에서는 박 대통령 주위와 친인척의 비리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지만 검찰 주위에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우선 어떤 사건이 돌발적으로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말부터 불거진 ‘법조 브로커’ 의혹사건이 대표적이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측과 그의 변호를 담당했던 최유정 변호사 간의 수임료 다툼으로 시작된 사건이 거대한 눈덩이가 되어 굴러가고 있다. 법원과 검찰을 상대로 한 로비 의혹은 물론 대기업·서울시·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브로커가 등장하고, 이에 따른 연루 인물들도 거론되고 있다. 이 중에는 소위 ‘진박(眞朴)’으로 분류되는 박 대통령 측근도 끼어 있다.

또한 검찰이 아무리 수사를 선별해서 한다고 한들 대통령 측근이나 친인척 관련 사안이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단 수사를 시작해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변수가 발생하곤 한다”고 말했다.

- 문병주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201606호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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