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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취재-한일 양국 경쟁력 비교연구] 인공지능(AI), 선후발 주자의 무한경쟁 개시 

한국은 열풍, 일본은 질주 

김경철 일본 고단샤(講談社) 서울통신원(뉴스잡지 부문)
2021년 도쿄대 입학을 목표로 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도로보군’의 진화… 한국에서는 저성장 시대 새로운 성장동력 분야로 급부상

▎인공지능과 로봇이 결합된 새로운 산업분야는 한일 양국 경제의 돌파구가 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1982년에 LSI(대규모집적회로) 컴퓨터 이후의 차세대 컴퓨터인 ‘제5세대 컴퓨터’를 개발하겠다는 국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컴퓨터 개발의 착수선언이다. 민관합동으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술어논리(predicate logic)에 의한 고속추론 머신과 오퍼레이터를 개발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총 12년간 570억 엔(5700억원)의 정부투자금이 들어갔고 민간 전자기업의 투자를 쥐어짰다. 총 1000억 엔 이상으로 추정되는 자본을 투입했지만 그 결과는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그 후로 일본의 인공지능연구와 투자는 한동안 긴 ‘겨울’을 맞았다.

그런데 2010년 이후 빅데이터와 딥러닝의 출연으로 상황이 급변했다. 인공지능 붐이 다시 한 번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서구와의 경쟁에 밀려 ‘기술적 우위’를 상실한 일본의 결정적 패인은 무엇일까? 1990년대 시작된 인터넷 시대에 제대로 편승하지 못한 탓에 소프트웨어 분야가 취약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전자, 통신 등 IT분야에서 서구는 물론, 한국에도 뒤져 ‘기술대국’으로서의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일본은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을 통해 세계 최고 기술대국의 자리를 되찾겠다는 각오가 남다르다.

일본 최대 기업인 도요타 자동차는 지난해 12월 벤처기업인 PFN(프리퍼드 네트웍스)사에 10억 엔(약 100억원)을 출자해 업무제휴를 맺었다. PFN사는 도쿄도 분쿄구의 도쿄대 부근에 위치한 작은 회사다. 도쿄대를 졸업한 컴퓨터 프로그램 전문가 30여 명이 2006년에 설립한 ‘인공지능 특화’ 벤처기업이다. 도요타는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가전 박람회인 ‘CES 2016’에서 이 PFN사와의 업무제휴 성과를 발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른바 ‘충돌하지 않는 차’를 선보인 것이다. 전시대 위에 인공지능을 장착한 6대의 도요타 미니어처 카를 자유롭게 주행시킨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6대의 자동차가 각각 충돌하지 않는 방법을 스스로 ‘학습’해 나가며 절대로 부딪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도요타 자동차의 도요타 아키오 사장은 “2016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인공지능 연구개발을 책임질 TRI(도요타 리서치 인스티튜드)를 설립하고 향후 5년간 10억 달러(약 1조2천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TRI는 자율주행차와 고령자 간병 로봇 개발 등 도요타의 미래산업을 책임질 거점이다. 이를 위해 길 프렛 박사를 최고경영자로 영입했다.

도요타 왕국이 붕괴된다고? 천만에!


▎2015년 12월 서울에서 열린 융복합 페스티벌 로봇밴드 연주회. 참석자들이 일본의 로봇밴드 공연을 보고 있다.
그는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소 핵심인력이자 세계 로봇 및 인공지능 분야 최고 전문가다. 올해 1월에는 미국 위성통신 관련 벤처기업인 카이메타에 500만 달러(약 60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무인차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최첨단 위성통신기술을 보유한 벤처에 투자한 것이다. <겐다이 비즈니스>의 고토 슌스케 기자는 도요타가 인공지능 연구에 집중 투자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20세기 후반의 일본경제를 이끌어온 도요타는 자칫하면 21세기에는 소멸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도요타의 절대적인 강점은 자동차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엔진 기술이다. 그런데 21세기 자동차의 주류는 엔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전기자동차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소니나 마쓰시타 등의 거대 전기 메이커가 대거 자동차 산업에 참전하게 될 것이며 도요타 왕국은 붕괴된다. 때문에 도요타는 자율주행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수한 인공지능을 손에 넣는 것이 중요하다. 즉 도요타의 미래는 인공지능 개발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올해 2월 대만의 홍하이(鴻海) 그룹에 매각이 결정된 전통의 가전왕국 ‘샤프’ 역시 인공지능 기술에 기업의 사활을 걸고 있다. 샤프는 주력분야인 가전부문에서 누적된 적자로 인해 일본 가전 메이커로서는 최초로 외국 기업에 매각되는 수모를 겪었다. 2015년 10월 자사가 독자적으로 개발해온 인공지능 기술을 가전에 융합한 ‘AIoT(인공지능+사물인터넷)’ 제품의 본격출시를 발표했다. 그리고 올해 4월 14일, AIoT 프로젝트의 제 1탄으로 인간형 로봇과 스마트 폰을 결합한 ‘로보혼(RoBoHoN)’의 발매를 발표했다.

높이 19.5㎝, 중량 390g의 AI(인공지능)를 탑재한 로보혼은 13곳의 관절이 움직인다. 음성지시에 따라 두 다리로 보행하고 춤도 출 수 있으며, 인간과의 대화를 통해 학습이 가능한 로봇이다. 통화와 메일전송, 사진촬영 등의 스마트폰 기능에 프로젝터 기능도 구비하고 있다. 5월 26일부터 19만8000엔에 판매될 예정으로 연간 6만 대 판매와 반년 뒤 흑자전환을 목표로 삼고 있다.

AIoT 프로젝트의 제2탄은 올 6월에 발매되는 TV접속 전용기기 ‘코코로 비전 플레이어’다. AI 기술을 활용하여 이용자의 평소 시청습관과 경향을 학습, 이용자의 취향에 맞는 프로그램을 음성으로 알려주는 기기다. 이 밖에도 AI를 탑재한 냉장고와 전기 오븐 등의 제품이 올해 안에 출시를 앞두고 있다. AI가 탑재된 냉장고는 유저에게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는 식재료를 알려주고, 유저가 냉장고 안의 식재료를 말하면 이를 이용한 조리법을 검색해서 알려주는 기능 등이 구비되어 있다. 샤프의 하세가와 요시스케 전무는 “기존의 IoT(사물인터넷)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가전을 제어하거나 상황을 확인하는 사용법이 많지만, AIoT는 클라우드에 접속하여 AI를 활용함으로써 각각의 고객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감시 카메라와 슈퍼컴퓨터 등을 생산하는 통신전기업체 NEC 역시 AI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NEC는 인공지능 개발을 비롯한 관련 부분의 사원을 2020년까지 현재의 두 배인 1000명으로 늘려 2015~2020년까지 누적 매출액을 2500억 엔으로 늘려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동사는 1980년대부터 카메라를 비롯한 센서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해·인식’, ‘예측·추론’, ‘계획·최적화’ 등의 작업을 수행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했다. 얼굴인식 기술을 이용한 범죄자의 입국방지와 진동해석기술을 이용한 교량검사, 불변량(invariant) 분석을 이용한 사고전조탐지 등의 솔루션 제공이 가능해졌다. 올 4월에는 오사카대에 차세대컴퓨터 개발연구소를 설립, 방대한 계산을 필요로 하는 인공지능의 이용촉진을 위해 소비전력을 극소화하는 정보처리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밖의 대기업들도 인공지능을 비즈니스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닛케이신문>이 올 3월 대기업 100사의 사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공지능 기술 도입을 계획 중이거나 이미 도입한 곳이 56.5%로 과반을 넘었다. 도입 분야는 생산관리(32.9%), 고객응대(31.7%), 연구 개발(28%) 순으로 나타났다. 히타치제작소는 생산능률을 높이기 위한 인공지능 관리시스템을 올해부터 생산라인에 본격 도입했다.

인공지능이 ‘호시 신이치 문학상’에 도전


▎1. 자율주행차에 쓰이는 엔비디아의 ‘드라이브 PX 2’는 사물의 모양·특징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차량 종류·사람·신호등·표지판 등을 구분한다. / 2. 오는 10월 인간과의 퀴즈쇼 대결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인공지능 ‘엑소브레인’. 연구원들이 과거 퀴즈쇼를 재연하는 식으로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 3.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은 쓰임새가 많다. 일본 후쿠시마현의 한 노인요양소에서 심리치료용 물개로봇의 재롱을 즐기고 있는 노인들.
종업원들의 작업태도 개선과 불량품 억제에 활용하고 있다. 2015년부터 일본의 은행 30여 곳에서 안내용 로봇으로 인기를 얻는 ‘페퍼’는 IBM의 왓슨이라는 인공지능을 도입해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인간형 로봇이다. 올해부터는 전국의 소프트뱅크 판매점 2000여 곳과 미즈호 은행의 100여 개 지점에도 전격 도입될 계획이다.

학계에서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다. 일본 국립 정보연구원(NII)는 2011년부터 도로보군(東ロボ君)이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일본 최고의 명문대인 도쿄대학에 진학시키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도로보군은 2013년에 처음으로 센터시험(대입수능시험)의 모의시험에 도전하여 편차치 45점을 얻었지만 세 번째 도전인 2015년에는 편차치 57.8점을 획득하여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역사와 수학과목은 최고 수준의 점수를 얻었다고 한다. 일본 입시에서는 수험생들의 평균점을 50으로 봤을 때 자신의 점수가 어디쯤에 위치하는가에 따라 편차치가 정해지며 이를 기준으로 입학가능한 대학을 결정하게 된다. 도로보군은 2021년 도쿄대학 입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도쿄 대학에 합격가능한 편차치는 75 이상으로 총 수험생 중 상위 0.6% 안에 드는 성적이라야 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SF소설가 고(故) 호시 신이치를 기리는 ‘호시 신이치 문학상’에 도전하는 인공지능도 있다. 공립 하코다테 미래대학의 마쓰바라 히토시 교수가 주도하는 프로젝트팀은 2012년부터 쇼트쇼트(200자 원고지 20장 이하의 초단편 소설) 부분에 AI와 인간이 함께 창작한 작품들을 응모하고 있다. 2015년에는 드디어 1차 심사에서 통과되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연구진은 호시 신이치의 소설 1000여 편을 컴퓨터로 분석해 단어의 종류와 문장 길이, 문체 등의 특징을 컴퓨터에 학습시켰다. 작품의 구조를 비교한 뒤 이를 조합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훈련을 통해 AI에게 이야기를 지어내게 하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마쓰바라 교수는 “2030년이 되면 장편소설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며 장차 아쿠타가와상(일본 최고의 순수문학상)이나 나오키상을 수상하는 것도 결코 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장래의 포부를 밝혔다. 도쿄대와 메이지대 연구팀은 가사를 입력하면 곡을 붙여 합성 음성이 동반된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동작사 시스템이나 일러스트 제작 시스템도 활발히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일본 정부 역시 인공지능 산업 육성을 위한 전방위 지원에 나섰다. 문부과학성과 경제산업성, 총무성은 2016년부터 공동으로 인공지능 연구개발에 매진할 것을 밝혔다. 3성이 연대하는 전략조직을 거점으로 향후 10년간 총 1000억 엔을 투입하여 5개의 전문연구소를 신설할 계획이다. 2020년까지 GDP(국내총생산)의 4%를 인공지능 연구개발에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관련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인 총리 직속의 ‘인공지능미래사회경제전략본부’의 설치도 확정되었다.

“인공지능은 일본이 직면한 문제 해결에 큰 도움”


▎시드림(SeeDream) 정재진 대표가 부여군에 있는 자신의 토마토 하우스에서 영농 정보가 담긴 앱으로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다.
2020년까지 GDP 600조 엔 달성을 위해 민관합동으로 30조엔 규모의 AI와 로봇, 빅 데이터 등의 첨단기술 시장을 창출한다는 목표도 수립되었다. 인공지능에 의한 창작물 보호를 위해 인간의 창작물에 한정되어 있는 기존의 저작권법을 수정하는 방법도 검토 중이다. 지난 4월에는 일본 정부 주도로 기술 선진국인 독일과 연대하여 IoT 분야의 국제 표준화와 인재 육성 등 6개 항목에서 협력을 추진한다는 양국 정부 간의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앞서 언급한 고토 기자는 인공지능에 거는 일본 정부의 기대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일본 정부에서는 인공지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노인의 간병이나 어린이를 돌보는 일뿐 아니라 공장이나 가정의 노동 대부분을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대신할 수 있게 되면 노동력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은 인공지능 산업개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첨단기술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출발은 다소 늦었지만 일본인의 주특기인 섬세함과 집중력을 발휘한다면 인공지능 선진국가로 발돋움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AI시대, 한국의 현주소는?’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기술은 미국 대비 75% 수준에 머물고 소프트웨어 응용 기술은 74%에 불과하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기술은 중국과 비슷했고, 소프트웨어 응용 기술은 오히려 중국보다 10%가량 뒤지는 수준이다. 국내의 인공지능 관련 업체수는 세계 인공지능 관련 스타트업 수와 비교할 때 2.5~6.7% 수준으로 미비했다. 인공지능 관련 특허에 있어서도 미국의 5%, 일본의 10% 수준이라고 한다. 이처럼 인공지능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알파고의 승리로 인공지능 열풍이 불고 있다.

후발주자 한국, 인공지능관련 특허 일본의 10% 수준


3월 이후 서점가에서는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각종 강연회 및 행사가 봇물을 이루며 인공지능 전문가 품귀현상을 벌어지고 있다. 당장 올 하반기 대기업 공채시험에서 인공지능 관련 문제들을 다수 출제됐다. 주식시장에서는 인공지능 테마주가 폭등하면서 코스닥이 연 중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전장(전자장비) 사업팀을 신설하면서 자율주행차 등의 스마트카 사업에 뛰어들 것을 공식화했다. 로봇을 포함한 인공지능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선정, 주력 분야로 삼으려는 계획이다. 최근 소프트웨어 연구센터 산하에 인공지능 연구팀을 신설했다고 전해진다. 올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2016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에서는 IoT가 적용된 프로토타입(시제품) 개인비서 로봇 ‘오토’를 공개했다. 오토는 음성 대화를 통해 스스로 학습해서 인식률을 높일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영상통화와 보안, 가전 제어 등에 활용할 수 있다.

한편 삼성벤처캐피털을 통해 인공지능과 로봇, 헬스케어, 자율주행차 기술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관련 기술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인종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부사장은 지난 3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모든 가능성을 두고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인수 합병할 대상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자산 610억 달러(71조2000억원)를 활용해 소프트웨어 중심 회사로 변신을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라이벌인 LG전자는 가전부분에서의 인공지능 기술응용에 힘을 쏟는다. LG전자는 올해 초 최고기술책임자 산하 미래정보기술융합연구소의 명칭을 인텔리전스 연구소로 바꿨다. 약 200명의 연구인력이 인공지능과 가전, 인공지능과 스마트폰을 접목하는 기술을 연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LG그룹의 이동통신사인 LG유플러스는 인공지능과 가전을 접목한 지능형 IoT 서비스를 올 하반기부터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자율주행 전기차 사업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 밖에 SK텔레콤은 인공지능 개인화 플랫폼 ‘에고 메이트(EGGO Mate)’를 개발 중이다. 스마트폰에 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주변 기기의 각종 센서를 통해 사용자의 일상 패턴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해 상황에 맞는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네이버는 2013년부터 ‘네이버랩스’라는 연구개발 조직을 설립, 향후 5년간 1000억 원을 투자한다. 딥러닝·음성인식·음성합성·기계번역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를 지식인·음성검색·네이버 클라우드·쇼핑·모바일 메신저 ‘라인’ 등에 적용하고 있다.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성장동력을 상실하고 위기에 빠졌던 우리 정부 역시 인공지능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들기 위한 각종 계획을 쏟아낸다.

한국사회에 인공지능 붐을 불러일으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5차전 대국이 끝난 이틀 후인 3월 17일, 한국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 주최로 청와대에서 인공지능 및 소프트웨어 관련 기업인과 전문가 20여 명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박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인공지능 중심의 4차 산업혁명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지능정보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청계천 일대를 한국형 인공지능 메카로 만들자”

지능정보산업이란 ‘지능’(AI소프트 등)에 ‘정보’(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등)가 결합된 기술을 이용한 산업을 말하는 것으로 인공지능을 포괄하면서 인공지능보다 훨씬 범위가 넓은 개념이다. 미래부의 지능정보 산업 발전전략은 ①연구개발, 전문인력 확충, 데이터 인프라, 산업 생태계, 융합산업 육성 등에 향후 5년(2016~2020년)간 총 1조원 투자와 함께 2조5000억 원 이상의 민간 투자도 유도할 것 ②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KT, 네이버, 한화생명 등 대기업 6개사(이후 발표에서 한화생명이 추가됨)가 30억 원씩을 투자하고 정부가 300억원의 지원금을 투입하여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형 연구소인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올 상반기에 설립한다는 내용 등이다.

그러나 조급함이 보이는 정부발표에 대해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장우석 박사는 “오랜 기간 동안 세계적으로 AI에 관한 관심이 고조돼왔지만 우리 정부가 이제서야 부랴부랴 관련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조성제 단국대 전자공학부의 조성제 교수는 “인공지능은 학문이기보다는 엔지니어링에 가깝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한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실전적 시도의 결과물로서, 성과에 급급해서는 진정한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2~3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정부의 성과주의적 접근방식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목표치를 주고 결과물을 재촉하는 국가 주도의 하향식 산업육성을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인공지능과 엔지니어링이란 개념의 본질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초기, 지금은 해체된 정보통신부가 미래성장 동력 사업의 하나로 지능형 로봇산업의 육성을 추진하면서 로봇분야가 각광받았던 적이 있다. 하지만 정부와 각 지방자치 등의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 한국의 로봇산업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한다. 로봇개발관련 벤처업체인 JRC로봇의 김종인 대표는 “지난 십수 년 동안 인공지능 및 로봇업계는 발전은커녕 답보상태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웠다. 10여 년 전 겨우 태동했던 관주도의 로봇사업이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조차 어렵다”고 진단했다. JRC로봇은 그간 연구소와 대학, 대기업 등으로부터 수주를 받아 수많은 사업에 참여해왔지만, 그 결과물이 산업화로 연결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인공지능과 IT의 메카인 미국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성공 신화는 국가주도의 거대한 연구소나 화려한 외관의 빌딩숲에서 태동한 것이 아니다. 조그마한 창고에서 의기투합한 젊은이들의 아이디어와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우리에게도 실리콘밸리와 같이 인공지능과 로봇, IT분야의 다양한 인재들이 열정을 투자하고 그 노력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서울 청계천 일대는 비행기와 탱크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일컬어지던 1970~80년대 산업 근대화의 중심이었다. 몇몇 전문가는 “청계천 일대를 한국형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의 메카로 지원, 육성하는 방안도 아이디어 중 하나”라고 말했다. AI산업은 인재육성과 환경조성을 위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장기적인 플랜이다. ‘시행착오를 통한 기술 축적’의 길은 AI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늦었지만 가야 할 길이다.

- 김경철 일본 고단샤(講談社) 서울통신원(뉴스잡지 부문)

[박스기사] 인터뷰│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 공학과 교수 - “제조업과 결합된 AI는 한국이 세계최고 될 수도”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 공학과 교수
장병탁 교수는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독일 본 대학에 유학, 컴퓨터 과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간 인공지능, 기계학습, 뇌 인지과학 등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성과를 거둔 장 교수에게 한국 인공지능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날이 도래할까?

“인공지능에 의한 노동력 대체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높은 수준의 협업을 통해 인간을 도울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

개인은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당장 일하는 사람이 일자리에 위협을 받는 일은 정말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다. 재교육이나 다른 직업을 양성하는 등의 정책도 필요하다. 인공지능을 통해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는 것도 분명하다. 컴퓨터가 막 나왔던 1950~60년대 유럽에서는 컴퓨터가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며 퇴출 운동을 벌이기도 했는데 지금 보면 컴퓨터로 인해 새로운 일자리가 무수히 창출되었다. 이 기회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처럼 가까운 미래에 인류를 지배하는 인공지능이 탄생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인간의 지능은 수백억 년의 진화를 통해 습득된 것이다. (인공지능이) 이 과정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 한 인간처럼 진화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수백억 년의 진화를 100년 사이에 압축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 연구를 시작했던 50년대에는 30년 후에는 (인공지능이) 모든 문제를 다 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이 등장했지만 미래엔 또 다른 난관이 생길 것이다.”

범용 인공지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범용 인공지능은 한 분야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말한다. 사람과 기계가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이 바로 범용성의 문제다. 특정분야에 뛰어난 인공지능은 조각조각 계속 개발되는데 이걸 다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들기란 좀처럼 어려운 일이다. 이 부분이 가능하면 진정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정부의 주장처럼 우리가 조만간 인공지능 선진국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인력만 제대로 양성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한국인은 무척 창의적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삼성, 엘지 같은 글로벌 기업이 있다. 어떤 분야는 제조업을 바탕으로 해서 인공지능을 접목하여 성과를 낼 수 있는데 바로 그런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미국이 못한 일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의 전환이 시급하다. 사회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알아보는 안목이 필요하고 그것을 자신 있게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일등전략이 없으면 결코 리딩그룹이 될 수 없다.”

최근 정부가 인공지능 산업 육성에 대한 지원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가장 중점을 두고 지원해야 할 것은?

“미국 등과 비교했을 때 고급인력의 수와 퀄리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교육의 확대와 교육현장에서 연구에 대한 적극적으로 투자를 통해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인재가 많으면 뭘 해도 잘할 수 있다. 딥마인드 등 최근 인공지능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은 모두 ‘NIPS(neural Information Processing, 신경정보처리)’라는 학회를 통해서 배출된 인재다. 향후 정부가 민관합동으로 설립한다고 하는 국가연구소가 이런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스타트업의 육성을 위해서는 정부의 투자도 중요하지만 M&A 문화가 절실하다.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상장과 M&A 정도인데, 상장까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대기업이 M&A 등을 통해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

201606호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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