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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사쿠 칼럼] 셀리그먼 박사의 심리학 혁명에서 배우는 ‘희망의 생명학’ 

‘자기 혁명’ 스스로 할 수 있다! 

이케다 다이사쿠 창가학회인터내셔널 회장
인간의 잠재능력에 대한 깊은 신뢰, 프로이드 심리학 이래 혁명적 이론가… ‘낙관적인 사고방식’ 훈련하고 ‘낙관적인 말’을 마음에 새겨 넣으라!

▎1997년 일본을 방문한 셀리그먼 박사와 만나는 이케다 다이사쿠 SGI 회장. 이 자리에서 셀리그먼 박사는 “낙관주의란 ‘희망’입니다”라고 이케다 SGI 회장에게 말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직장이나 학교에서 동료나 친구에게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가 거절당했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구나’ 하든지 ‘내가 매력이 없으니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와 이야기해도 즐겁지 않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그 밖에 불쾌했던 일까지 떠올라 점점 자신이 보잘것없는 인간으로 여겨져 우울해질 것이다.

이와 달리 거절을 당해도 ‘저 사람은 오늘은 사정이 안 좋았을 거야. 다음에 또 권하면 되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의 사고는 ‘비관적’이고 후자의 사고는 ‘낙관적’이다.

또 외출하기 전에 남편에게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재워줘요” 하고 부탁하고 나갔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다같이 텔레비전 앞에 달라붙어 있다!

“참 나, 내 말은 언제나 무시한다니까! 어째서 이런 간단한 부탁조차 들어 주지 않지? 아이에게 ‘빨리 자!’라고 소리지르는 건 언제나 내 역할인가? 나만 언제나 악역이지?”

화가 난 나머지 말도 하지 않고 텔레비전을 끄고 아이들을 침대로 쫓아버린다.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된 뒤 우울한 기분으로 끙끙거리며 생각에 잠긴다. ‘아, 내가 싫다!’ ‘그래도 남편이 좀 더 이해해 주었으면!’ ‘나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으니까 이런 거야.’ ‘이 결혼은 실패한 결혼인지도 몰라……’ 우울한 생각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와 달리 “어머나, 오늘은 웬일이지? 그렇게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야? 어디 보자…. 하지만 이제 슬슬 끝낼 시간이야.”

‘틀림없이 오늘은 남편도 아이와 함께 느긋하게 쉬고 싶었을 거야’ 하고 자신을 타이르며 노여움을 가라앉히고 기분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전철이나 버스를 탈 때 평소에는 앉을 수 있는데 오늘은 자리가 없어 앉을 수 없다. ‘아, 재수 없어’ 하고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몸을 단련할 좋은 기회라고 기쁘게 생각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언제나’, ‘줄곧’, ‘뭐든지’라면서 비관

미국심리학회 마틴 셀리그먼 회장에 따르면 비관적인 사고방식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일시적인 일인데 ‘언제나 그렇다’, ‘줄곧 이렇다’라고 영속적으로 본다.(영속화)

예를 들면 상사에게 잔소리를 듣고 ‘저 상사는 정말 싫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상사의 싫은 점만 눈에 띤다. 이와 달리 낙관적인 사람은 ‘오늘은 상사가 기분이 언짢은 것 같아.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생각한다. ‘오늘 일’에 한정하고 더 이상 확대하지 않는다.

둘째, 비관적인 사람은 한 가지 일이 잘되지 않으면 모든 일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보편화)

예를 들면 수학을 잘하지 못할 뿐인데 ‘나는 공부를 못해’하고 생각한다. 한 가지 실수에 대해 꾸중을 들으면 ‘나는 쓸모 없는 인간이야’, ‘더 이상 가망이 없어’ 하고 의기소침해진다. 꾸중 들은 점을 고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전부를 부정당했다고 생각한다. 작은 흑점을 마음속에서 먹구름처럼 넓히고 만다. 그렇게 하면 위축되어 점점 더 실패한다. 악순환이다.

예를 들어 애인에게 차였다고 하자. 괴로운 나머지 ‘이제 남자(여자) 따위는 누구도 믿지 않을 거야’ 또는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거야.’ 하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은 ‘저 사람과 내가 잘되지 않았을 뿐인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완전히 자신감을 잃고 우울하게 괴로움을 질질 끌며 빛을 잃고 만다. 게다가 여성은 계속해서 ‘자신을 책망’하며 되풀이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셋째, 비관적인 사람은 나쁜 일이 일어나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고 좋은 일은 타인의 힘이라든지,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운동경기에서 졌을 때 낙관적인 선수나 팀은 “이런 날도 있지”, “상대의 컨디션이 무척 좋았어”라고 말한다. 자기들 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비관적인 선수나 팀은 지고 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말았어” 또는 “스스로 기회를 망치고 말았다”, “이렇게 공을 제대로 치지 못하니 어쩔 도리가 없지”라고 설명한다.

능력이 같다면 ‘낙관도’가 높은 쪽이 승리를 부른다고 한다. 물론 지나치게 낙관주의인 나머지 무엇이든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현실을 외면해도 안 되지만, 자책해도 소용이 없는데 ‘자신을 괴롭히는’ 비관주의 또한 결점이다.

이 말은 셀리그먼 박사의 저서 <학습된 낙관주의> 등을 참조해 내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는데 참으로 흥미롭다.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인간학’이 있다.

1997년, 셀리그먼 박사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나는 박사에게 공감의 뜻을 전했다.

“마음의 작용은 불가사의합니다. 시인 밀턴은 ‘마음은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고 천국을 지옥으로 바꾼다’(<실낙원>)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인생은 어떻게도 바뀝니다. 불법(佛法)에서도 ‘일심(一心)의 묘용(妙用)’이라고 하여 그 점을 다각적으로 설명합니다. 불법은 ‘희망의 심리학’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희망’이 바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입니다.”

박사는 머리를 끄덕이고 커다란 몸을 내밀며 말했다. “낙관주의란 ‘희망’입니다. 아무런 괴로움도 없는 것이 낙관주의는 아닙니다. 언제나 즐겁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실패하거나 괴로운 경험을 하더라도 그것은 ‘행동’으로 반드시 바꿀 수 있다, 그렇게 믿는 ‘신념’이 낙관주의입니다.”

“마음이 지옥을 천국으로, 천국을 지옥으로”


▎2006년 방한한 마틴 셀리그먼 교수가 저서의 <긍정의 심리학> 한국어 번역본을 들어 보이며 웃음짓고 있다.
박사의 목소리는 부드러운 저음이었다. 박사에 따르면 낙관주의인 사람이 일이나 인간관계에서도 성공하고 건강에도 좋다. 오래 산다고도 한다. 특히 40대 후반부터는 생각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진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선거와 상원의원 선거에서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낙관적인 연설을 한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조사도 큰 화제가 되었다.

셀리그먼 박사의 심리학은 비즈니스 현장에도 응용되었다. 보험설계사 연수는 일반적으로 “고객에게 뭐라고 말할까?”를 가르치지만, 박사가 개발한 강좌는 “고객에게 거절당했을 때 자신에게 뭐라고 말할까?”를 연습한다.

연수 첫날밤에 보험을 권유하는 전화를 열 번 걸게 한다. 처음에 전화한 상대방이 뚝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마음속으로 뭐라고 하겠는가?

‘무례한 놈이군,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다니. 굳이 그렇게 취급하지 않아도 될 텐데.’

이렇게 혼잣말을 하는 사람은 기분을 바꾸기 위해 한숨 돌리지 않으면 두 번째 전화를 걸지 못했다. ‘내 권유 방법이 잘못되었다’, ‘나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은 더욱 그렇다.

한편, 전화가 끊어져도 ‘마침 바쁠 때 전화를 걸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로써 한 사람에게 거절당했으니 확률로 보면 예스라고 말해 줄 사람에게 한 걸음 다가간 셈이야’라면서 자신을 타이른 사람은 안정을 되찾고 활기가 넘쳤다. 확률로는 ‘만날 약속을 해준 사람은 평균 열 명 중에 한 명. 계약은 만난 사람 세 명 중에 한 명’ 정도라고 한다.

셀리그먼 박사는 벽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자신에게 어떤 설명을 하는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자신과 대화’를 인식하도록 하는 데 주력한다.

오랫동안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생각하는 버릇’을 알지 못한다. 버릇을 알려면 사소하고 불쾌한 일이 있을 때(수도꼭지가 잘 잠기지 않는다든지) 어떤 식으로 생각했는지 적어두라고 박사는 권하고 있다. 자신이 사물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알게 되면 그 점을 고치고자 ‘자신에 대한 반론’을 연습한다.

예를 들면 친구에게 ‘전화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는데 걸려 오지 않는다.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나를 무시하는 걸까?’, ‘내가 언제나 제멋대로니까 전화가 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 하고 자신에게 설명한다.

만일 이렇게 비약하는 말을 남한테서 듣는다면 반드시 반발하고 반론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말할 경우에는 그렇다고 착각하고 만다. 그러므로 냉정하게 ‘자신에게 반론’을 해본다. ‘저 사람은 언제나 내게 친절했잖아. 무시할 리 없어.’ ‘저 사람은 이번 주는 바쁘다고 했으니까.’ ‘저 사람은 지금 컨디션이 안 좋은지도 몰라.’

‘게다가 만약 정말로 무시한다고 해도 그것이 어떻다는 거야!’ ‘누구나 나를 좋아하고 무엇이든 완벽해야 한다고 누가 정했는데?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열심히 하고 있어. 내가 나를 칭찬해주자!’

배우자! ‘희망을 만드는 방법’을

이런 식으로 ‘낙관적인 사고방식’을 훈련하고 ‘낙관적인 말’을 마음에 새겨 넣어야 한다. 신앙자는 ‘기원’ 속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기술’은 자전거나 수영처럼 일단 요령을 익히면 평생 잊어버리지 않는다.

결국 박사의 학설은 ‘인간은 바뀔 수 있다’, ‘사고방식을 바꿈으로써 자기 혁명을 할 수 있다’는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셀리그먼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심리학은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춰 왔다면서, “나는 일반 사람에게도 용기를 주고 희망을 끌어내 약한 사람을 강하게 바꾸는 ‘적극적인 심리학’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사실 박사는 ‘나는 본디 비관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낙관주의를 배울’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박사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아버지의 죽음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유능한 공무원으로 뉴욕주 고위관리 선거에 나서려고 했다. 그러나 박사가 열세 살 때 뇌출혈로 쓰러져 몸은 영원히 마비되고 말았다. 희망을 잃고 돌아가시기까지 몇 년 동안 ‘무력감’으로 괴로워하는 아버지를 보며 무엇이 인간을 ‘노력해도 소용없다’고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그것을 이겨 내는 방법은 없는지 탐구하자고 박사는 결심했다.

그런 원점이 있어서일까, 박사의 학문에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있고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높은 뜻’이 있다. 나는 그 점을 존경한다.

셀리그먼 박사의 ‘심리학 혁명’은 ‘프로이트 이래 혁명’이라고 불린다. 거기에는 인간의 잠재능력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다. 예를 들면 학교 교육도 ‘성적 부진은 능력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박사는 말한다. 오히려 ‘자신을 비관적으로 보는 습관’에서 온다.

자신은 ‘머리가 나쁘다’, ‘재능이 없다’고 믿는 아이는 뭔가 벽에 부딪히면 바로 포기하고 만다. “어차피 해봤자 마찬가지야…”라면서. 그것은 ‘의욕이 없어서’가 아니다.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다. 벽을 타고 넘기 위한 ‘낙관주의’를 몸에 익히지 않았을 뿐이다.

“재능과 성공에 뜨거운 의욕을 지닌 모차르트 같은 작곡가도 자신은 작곡을 잘하지 못한다고 믿으면 결국 성공하지 못한다. 생각처럼 멜로디가 떠오르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이 아이는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아이도 그렇게 느끼고 자신에게 비관적인 평가를 내린다.

하물며 시험에서 나쁜 점수를 받을 때마다 “언제나 노력을 안 하는구나”, “게으름뱅이군”, “답을 검산하지 않는 것은 대충하려는 성격 때문이야” 같은 말을 계속해서 들으면 아이 스스로도 ‘나는 게으르고 대충하려는 인간이야’라고 점점 믿어버리게 된다.

방을 치우지 않으면 “왜 이렇게 칠칠치 못해!” 하고 말하면 그때마다 그런 부정적인 ‘자화상’이 아이의 마음에 박힌다. 그 결과 실제로 그런 인간을 닮아간다. 부모가 그렇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비관적인 아이는 ‘작은 돌’에 걸려 넘어져도 마음속으로 그것을 ‘거대한 벽’으로 바꾸고 만다. 실패하지나 않을까 하고 벌벌 떠니까 오히려 실패하기 쉽다.

부모가 갖는 ‘내 아이의 상(像)’이 아이의 ‘자화상’ 된다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이것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기보다 “너라면 이것을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실패하더라도 꾸짖기보다는 “이번에는 너답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기계적으로 칭찬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벽을 타고 넘는 ‘자신감’과 타고 넘는 ‘기쁨’을 가르쳐주는 일이 중요하다.

셀리그먼 박사는 “현대는 과거의 어느 시대보다 풍요롭고 평화로운데도 불구하고 비관적이 되고 우울한 상태에 빠지는 사람이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역설입니다. ‘비관주의라는 전염병’의 원인으로는 자기만을 생각하는 경우, 좀 더 큰 존재 다시 말해 종교를 비롯한 국가, 대가족, 지역 사회와 유대를 잃어버린 경우, 그리고 교육이 아이의 기분을 즐겁게 하고 자존심이 다치지 않도록 지나치게 배려한 나머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려움을 이겨 내는 일에 기쁨을 느끼는 삶의 자세’를 가르치지 않는 경우 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라고 분석하셨다.

어른이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버리라는 말이다. 어른이 벽을 타고 넘을 수 있는 삶의 자세를 아이에게 보여 주라는 말이다.

“아이의 낙관도(樂觀度)는 인생을 보는 엄마의 낙관도와 많이 닮았다”는 박사의 조사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여자아이도 남자아이도 엄마를 닮고 아버지는 닮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불법이 최고의 ‘희망의 심리학’이며 ‘희망의 생명학’이라고 믿는다. ‘부처’는 마음의 불가사의한 힘을 터득한 사람을 가리킨다.

인간은 ‘마음’에 따라서 어떻게도 바뀔 수 있다. 그뿐인가, 법화경(法華經)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의 철학은 한 사람이 ‘마음’을 바꾸면 사회도 국토도 바꿀 수 있다고 드높이 선언한다. 하물며 자기 인생쯤은 자기가 정한 대로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무엇 하나 단념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어차피’라는 말은 버리자. ‘무리’라는 말도 버리자. 지금 어떤 상황에 놓였더라도 이렇게 자신에게 이렇게 타이르며 살아야 한다.

“나는 마지막에는 당연히 이긴다!” “지금의 내 가족이 최고의 가족이다!” “나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마틴 셀리그먼 박사는?: 1942년 출생. 프린스턴 대학 철학과 졸업.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학위, 1976년부터 동(同) 대학 교수. 미국심리학회 전 회장. 심리학회 제1인자로서 잇따라 새 이론을 발표, ‘프로이트 이래 혁명적 이론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학습된 낙관주의> 등 저서와 연구논문 다수.

이케다 다이사쿠 - 1928년 1월 2일 도쿄 출생. 창가학회인터내셔널 회장. 창가대학·창가학원·민주음악협회·도쿄후지미술관·동양 철학연구소 등 설립. 유엔평화상·한국화관문화훈장 외 23개국 28개 훈장, 세계계관시인 등 수상 다수. 전 세계 대학으로부터 366개의 명예박사·명예교수 칭호 수여. 토인비 박사와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를 비롯한 저서 다수.

201606호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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