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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관승의 파.스.텔. 인생③] 한류 콘텐트 전도사 박석 ‘드라마피버’ 대표 

“스타트업이란 킬러 본능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
세계 문화 중심지 뉴욕에서 한국 드라마 허브사업 시작… 7년 만에 월 2000만 명 시청자 확보한 한류 대표기업으로 성장

“내 인생을 소설로 쓰면 열 권도 부족할 겁니다.”

스토리텔링을 강의하기 위해 외부 강연을 갈 때마다 나이 지긋한 분들로부터 종종 듣는 얘기다. 그러나 유감스런 얘기지만,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것이 곧 멋진 스토리로 이어지지는 않는 법이다. 개개인으로 보았을 때는 애절하고 소중한 이야기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저 그런 이야기일 때가 많다. 펀(fun)하기보다는 뻔한 스토리로 흐를 개연성이 높다. 이야기 유형의 스테레오타입이라고 할까.

세상이 빠져드는 파워 콘텐트는 무엇이 다른가? 그 비밀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미국의 프랭크 로즈는 한마디로 ‘몰입의 예술(The Art of Immersion)’이라고 정의했다. 세계적인 정보통신 전문 저널인 <와이어드(Wired)> 객원 편집자이며, 할리우드와 세계 광고의 중심지 뉴욕 메디슨 애비뉴에 가장 정통한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그는 미디어와 콘텐트, 그리고 스토리텔링의 귀재들에게 배우는 비결을 그렇게 정리했다. 세상이 변하면 이야기 방식도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자와 시청자, 그리고 관객이 지루하면 그것은 벌써 죽은 콘텐트다. 몰입하게 만들려면 내용도 달라야 하고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요즘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서 멋진 스토리를 들을 기회가 많다. 나는 스토리 산업의 한복판에 서 있으며, 그 자체로 신선한 한 명의 젊은 파스텔 인생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봄, 나는 뉴욕과 할리우드에서 날아든 주목할 만한 미디어 관련 뉴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적인 초대형 미디어 그룹인 타임워너 그룹 산하 워너브라더스가 한국 드라마 전문 동영상 사이트인 드라마피버(DramaFever)를 인수한다는 소식이었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한 보도를 요약하면 이러했다.

“이번 인수는 워너브라더스가 디지털 콘텐트와 배급 시장에 진출하기 위함이고 올해 2분기 안에 인수가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아직 알려진 바 없다. 워너브라더스의 크레이그 휴네그스 사장은 드라마피버는 ‘우리에게 잘 맞는 회사’라며 드라마피버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발전을 위해 워너브라더스 배급 및 크리에이티브 팀과 함께 발 빠르게 움직일 것으로 기대한다.”

7년 전 1700만원에 아파트 방 한 칸으로 창업


▎한국 드라마 콘텐트를 제공하는 드라마피버 홈페이지. 드라마피버는 창업 7년 만에 미국 내에서 월간 시청자 2000만 명을 돌파했다.
드라마피버는 미주 지역에 한류를 확산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동영상 플랫폼이다. 2009년에 설립됐으니 이제 역사가 7년에 불과한 회사지만 약 2000만 명의 월간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2014년에 일본의 세계적 기업 소프트뱅크에 천문학적 액수로 인수돼 화제를 뿌렸던 방송 콘텐트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미디어 콘텐트 공룡그룹인 타임워너가 이 회사를 인수한다는 것이었다.

드라마피버의 공동 창업자이자 사장인 박석 대표가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하는 화제의 주인공이다. 이 뉴스를 접한 뒤 나는 뉴욕 맨해튼에 사무실이 있는 그에게 연락을 했다. 늘 그렇듯이 전화기 너머로 유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워너브라더스는 워낙 유명한 영화 제작사이고, 미국에서 가장 큰 드라마 스튜디오잖아요? 콘텐트와 미디어를 잘 이해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과 함께 일하게 되어 좋아요. 아마도 글로벌 관점에서 한국 드라마가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는 긍정적인 해석을 하고 싶군요. 저희 드라마피버는 워너브라더스와 그들이 가지고 있는 OTT 전략과 함께 여러 가지 일을 함께하려고 합니다. 그들과 함께 한국 드라마 콘텐트 비즈니스를 북미 시장과 세계 시장에 더욱 확장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지금까지 저희는 광고 영업담당 직원이 단 두 명이었는데, 이제부터는 워너브라더스 본사에서 32명이 커버해주니 업무 본질에 더욱 충실할 수 있게 되었죠, 핫하하!”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한국어 실력은 몰라볼 정도로 부쩍 늘어 있었다. 그는 원양어업 회사를 운영하는 부친을 따라 두 살 때 스페인의 라스팔마스라는 섬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중학교 때까지 자랐으며,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에서 공부했다. 스페인어와 영어가 편하고 한국어가 어눌할 테지만 이제는 급하면 가끔씩 터져 나오는 영어문장이 아니라면 한국에서 평생 산 사람들과 별다른 차이를 못 느낄 정도다. 그는 왜 많은 것을 제치고 한류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제가 아주 가깝게 느꼈던 것이었고, 제가 믿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스페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어머니가 한국 드라마 비디오 테이프를 가져와 가족이 함께 모여 보았던 즐거운 추억이 있습니다. 먼 타지에서 방송 드라마 비디오는 제가 한국을 느낄 수 있었던 중요한 연결고리였습니다.”

그가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한국에서 온 대학 후배와 의기투합해 15만 달러(약 1700만원)로 스타트업을 창업한 것은 2009년. 하지만 그의 신혼집인 아파트 안방에서 건넛방으로 건너가는 게 출근을 의미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값싼 다른 지역을 마다하고 맨해튼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 시작할 때에 큰 책상 하나에 애플 컴퓨터 두 개가 전부였어요. 맨해튼은 저희 집이 있는 곳이자 여기 있으면 여러 분야의 인재, 재능이 있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훨씬 비싸긴 하지만 그 이상을 얻기 때문이죠. 저희가 처음 채용한 직원은 지금의 플랫폼 기술개발을 책임지는 CTO인데, 그는 백인 미국인으로 한류 드라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래도 가능성을 보고 합류했죠.”

가장 미국적인 도시에 들어선 한류 콘텐트 허브


▎드라마피버는 뉴욕과 필라델피아, 서울 등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창업 당시에는 박석 대표가 거주하는 맨해튼의 아파트의 방 하나에 책상 하나와 컴퓨터 두 대를 놓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얘기처럼 그의 아파트에서 세 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지금 뉴욕과 필라델피아, 그리고 서울 등 세 곳에 걸쳐 풀타임 정규직만 125명을 거느린 큰 회사로 성장했다. 회사의 핵심 지도부는 한국인들이지만 직원 가운데 절반 이상은 백인, 그리고 나머지는 중남미, 아시아 등 다양한 국적을 지니고 있다. 뉴욕의 드라마피버 본사에는 탁구대와 당구대가 있다.

“스타트업에 몸담은 사람 모두가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을 해요. 이 때문에 가끔 탁구와 당구도 즐기고 허기지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도록 샌드위치와 샐러드 바를 설치해 뒀어요. 많은 직원이 처음부터 함께해오면서 회사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았거든요. 저희에겐 여전히 스타트업이라는 Hungry Spirit(배고픈 정신)이 중요합니다. 바로 그 이유죠. ‘Thirsty Thursday(갈증 나는 목요일)’라는 테마도 만들어서 생맥주를 즐기는 해피아워도 있지요.”(웃음)

회사 사무실 또한 오픈된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다. 사장이든 말단 직원이든 함께 일하는, 파티션 없는 사무실이다. 혹시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아 불편한 점은 없을까?

“저희는 모두 오픈된 공간에서 일하며 오픈 커뮤니케이션(Open Communication) 문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창업 때부터 지켜오고 있는 것인데,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곧바로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죠. 많은 직원이 이 방식으로 회사가 크게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편안하게 생각합니다.”

모든 사업이 쉽지 않지만 정말이지 기술발전 속도가 눈부시게 빠르고 소비자 취향의 변화가 심해서 업계를 선도하기는커녕 따라가기조차 벅찬 분야가 IT와 미디어 서비스다. 오늘까지 성공했다고 해도 하루 뒤인 내일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수많은 매체가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기술혁신의 본고장에서 그는 한류 콘텐트를 기반으로 서비스하는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 회사를 창업한 것이다. 전문가들이 OTT(Over-The-Top)라고 부르는 인터넷 기반 스트리밍 비디오 서비스다.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미디어 콘텐트가 소비되는 방법과 패러다임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고 또 이러한 변화를 크게 도약시켜 성장시킬 수 있는 분야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드라마피버는 동영상 서비스 그리고 유통을 하는 회사입니다. 포괄적으로는 콘텐트 마케팅을 하는 회사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이제는 프로덕션 회사들과 함께 콘텐트 제작에도 참여하려고 합니다.”

그가 말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요즘 세대의 미디어와 콘텐트 소비특성과 관련돼 있다. 특히 젊은 시청자들은 소위 ‘본방 사수’를 기피한다. 그들은 미디어 소비행태에서 자유를 원한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특정 시간대, 방송사가 정한 편성, 텔레비전 앞이라는 공간, 그리고 광고, 방송사의 의견이나 주장으로부터 벗어난 환경에서 즐기길 원한다. 시간, 장소, 편성, 광고, 주장이라는 다섯 가지로부터의 자유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요즘의 미디어의 변화, 콘텐트 소비라는 시장의 핵심가치를 따라잡을 수 없다.

한국 드라마의 풍부한 감수성에 미국인들도 매료돼


▎드라마피버 사무실에는 직원들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샐러드바(오른쪽)와 탁구대 등 체육시설들이 있다. 사장부터 말단직원에 이르기까지 가림막이 없는 열린 공간에서 일한다.
오랫동안 신문, 잡지가 누리던 미디어 제왕의 위치를 차지했던 주역이 텔레비전이었지만, 이제 그 위치를 강력한 다른 경쟁자에게 내줄 판이다. 그 강력한 라이벌이 바로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다. 미국에서 넷플릭스(NETFLIX), 훌루(hulu)같은 OTT 업체들은 이미 대세로 잡았고, 중국 역시 아이치이, 유쿠투도우, 텐센트비디오, 소후 TV, PP-TV 등이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내가 iMBC 대표이사로 재임하는 동안 집중적으로 시장을 개척하고자 출장 다녔던 파트너들이기도 하다. 극단적으로 말해 요즘 한류의 매개체와 통로는 텔레비전이 아니다. 인터넷,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이뤄진다. 조금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한류와 K팝 확산에 유튜브라는 동영상 플랫폼이 끼친 공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2015년 독일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향후 20년간 정규편성 방송은 쇠퇴하고 인터넷 방송이 떠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방송사들이 ‘텔레비전 제로(TV Zero)’ 시대를 우려하고 있는 이유다. 한국의 방송사들 역시 이런 위기를 직감하고 연합하여 만든 서비스가 푹(pooq)이다. 박석 대표는 이런 시대의 흐름을 감안하여 사무실뿐 아니라 집에서조차 콘텐트 소비방식을 완전히 바꿨다고 했다.

“저는 매일 밤 상품 샘플링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휴식을 위해서라도 한국 드라마와 프로그램을 보고 있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케이블과 텔레비전을 모두 5년 전에 끊고, VOD 동영상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도 이러한 것이 미디어의 미래라고 보고 있어요.”

그의 눈에 비친 한류 드라마는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을까. 스토리의 소재와 스토리텔링의 방법에서 글로벌 관점에서 차별화되는 것들이라면 무엇일까?

“제가 보기에 한국 드라마들은 작가, 감독, 배우 모두 톱 퀄리티(최상의 실력)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야기 전개 역시 글로벌한 관점에서 많은 장점이 있고요. 제일 큰 장점은 한국의 드라마 스토리가 아주 유니크(unique)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로맨틱 코미디 장르 부분에서 그렇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콘텐트들은 주로 쇼크 밸류(shock value)를 갖고 있잖아요? 섹스와 폭력장면(sexual scenes& violence)이 적다는 부분이 아주 크게 어필합니다. 캐릭터 간의 관계에서 감수성과 감정이 풍부한 것 역시 이용자들에게 크게 어필되는 부분이죠.”

그가 말하는 ‘shock value’란 쇼킹한 소재로 드라마나 콘텐트를 만드는 것을 뜻한다. 그는 중국·중남미 콘텐트도 수입해 유통하고 있지만, 한국 콘텐트를 주력 상품으로 더 키울 계획이다. 다만 해외에서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한류 드라마의 제작방식도 로컬 방식에서 벗어나 글로벌한 스탠더드에 부합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밝혔다.

내가 박석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iMBC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던 2010년이었다. 그는 회사를 창업한 지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아직 무명의 스타트업 업체 공동대표였다. 때문에 흔한 방문자 가운데 한 명일 것이라는 선입견과 의무감 같은 심정으로 그와 일행들을 만났다. 왜냐하면 당시 MBC는 한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들이 인기 절정이어서, 동영상 콘텐트를 서비스하고 수출권리를 갖고 있는 iMBC에는 콘텐트 제작사, 투자회사, 그리고 플랫폼 개발 관계자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었기 때문이다.

면담이 시작된 지 약 5분이 지났을까.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아이디어와 비전은 평소 내가 만났던 이들의 생각과는 사뭇 달랐다. 그에게서는 확실히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많은 스타트업이 교언영색에도 불구하고 내심은 비즈니스로 일확천금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뭉쳐 있다면, 그는 스토리산업 그 자체에 열정이 가득했다. 외국에서 오래 살았고 한국어는 어눌했지만,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간절함은 국내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보다 오히려 더 절절해 보였다.

“미국에 불법 한류 인터넷 사이트가 30~40개 정도 있었죠. 나쁜 의도라기보다는 드라마 팬들이 스스로 DVD에 담긴 동영상을 인터넷에 자발적으로 올려 자막도 띄우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한국의 방송사에서 정식으로 저작권을 구입해 합법적으로 운영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은 교포들을 위해 뭔가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미국의 주류 시청자들(mainstream audience)에게 한국의 콘텐트를 소개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엔터테인먼트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관문(gateway to culture)이라고 믿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 한국인, 한국문화가 뭔지 언어라는 소리를 통해서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겠습니까?”

온 가족이 의기투합해 콘텐트 시장 스타트업


▎드라마피버를 일군 박석 대표. 그는 한국 드라마를 미국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업무 미팅이 신선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호기심이 불쑥 일었다. 나는 그 다음에 예정된 일정까지 미뤄가며 대화를 더 나눴다. 젊었을 때의 로버트 드 니로를 연상케 하는 외모와 표정, 그리고 어눌하지만 솔직한 한국어가 인상적이었다. 비즈니스는 당연히 데이터의 분석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사업 주체가 풍기는 첫인상, 직관도 중요하다. 그의 얼굴에서는 남들과 어딘가 다른 색깔과 기운이 보였다.

나는 부산에서 열리는 BCM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해마다 5월이면 부산 전시컨벤션센터(벡스코)에서 열리는 BCM(부산콘텐츠마켓)은 아시아의 주요한 영상 콘텐츠 비즈니스 시장이다. 동영상 콘텐트 거래뿐 아니라 미디어 시장의 변화와 정보, 전략과 동향을 알 수 있는 다양한 포럼과 회의가 동시에 진행된다. 때문에 방송과 콘텐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연중행사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프랑스의 칸느에서 봄가을로 나눠서 열리는 miptv와 mipcom이 가장 중요한 방송 콘텐트 시장이라면 아시아에서는 상하이 tv페스티벌과 더불어 BCM이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광안대교가 내다보이는 횟집에서 마주한 그의 일행 가운데는 한국어와 영어가 모두 능통한 그의 부인,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한 그의 남동생이 있었는데, 모두 이 회사의 든든한 주역이었다. 온 가족이 이 회사에 전력투구하고 있었다. 그 점이 가장 큰 힘이자 동시에 부담이었다.

“늘 기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반면에 퇴근 후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내내 함께 일하고 똑같은 문제에 매달려야 한다는 것 역시 쉽지는 않았습니다. 가족뿐 아니라 모든 직원을 책임져야 하는 것, 그리고 우리 회사에 투자한 친구들을 책임지는 것, 정말 부담스러웠지요. 잘못하면 우리 식구들 모두 폭삭 망하잖아요. 그래서 더 똘똘 뭉쳐서 일했어요.”

나는 업무를 떠나서도 서울과 부산, 그리고 뉴욕을 오가며 그를 여러 번 만났다. 그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그와 드라마피버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드라마피버에서 서비스하는 한류 콘텐트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는 어떤 것이었을까?

“이민호가 주인공으로 나온 <상속자>입니다. 3개월 동안 무려 100만 명 이상이 시청했으니까요. 저희가 3년 독점 계약을 맺고 있는데, 아직도 인기가 식지 않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미국과 북미시장에서 외국 드라마라는 느낌이 적었어요. 왜냐하면 유명 배우가 미국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클래식 자동차를 타는 배경에다 미국인 배우들도 섞여 있고, 중간중간 영어대사도 나오니까 덜 이질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류 드라마에 호기심을 일으키는 데 적합한 조건이었죠. 이 드라마를 보고 난 다음 미국사람들은 ‘음, 이제 한국 드라마 한번 볼까?’라고 말하고는 했답니다.”

스타트업은 화려함 아닌 열정의 결정체


▎SBS드라마 <상속자>는 드라마피버가 제공한 콘텐트 중 미국인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끈 드라마였다. 3개월 동안 100만 명 이상이 이 드라마를 시청했다.
박석 대표는 한국과 교민들 사이의 가교 역할(building bridge with Korea)에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 연결 고리를 만들어 그 안에서 사업도 하고 문화도 만드는 작업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주장이 강하다. 남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도 한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스타트업은 재미있을 것이라고들 생각하지요. 독립적(independent)인 직업이란 자기 마음대로 사는 인생이라고 알기 쉽지요. 그런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빨리 알아야 해요. 일단 잘못되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다 날라가 버리니까요. 내 돈, 가족, 친구들… 거꾸로 회사가 잘되도 만만치 않습니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이 아니니까 제일 많이 일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창립자 자신이죠. 중요한 일들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길 수 없거든요. 겉으로 봐선 멋있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글래머(glamour)가 없어요.”

그가 말하는 글래머는 ‘화려함’, ‘귀티’ 등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흔한 말로는 ‘폼 잡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폼 잡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이다. 그러면 드라마피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어떤 것일까.

“무엇보다 나와 내가 하는 일에 passion(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연봉을 보고, 혹은 존경받는 자리를 따라서 간다면, 스타트업은 회사·가족·생활·인생 이 모든 것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죠.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하면 사업의 가능성이 끝없이 보입니다. 하지만 계속 사업을 진행하며 제일 중요한 것은 인내라는 것을 깨달았죠. 사업이란 끝없이 옳은 일인가 스스로 의심하게 되고, 그럼에도 결정을 내려야 하지요. 그때마다 할 수 있다는 자기암시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 있게 사업에 임할 수 있어요. 그것이 제가 강조하려는 ‘킬러 본능(killer instinct)’이라는 겁니다. 그것 없인 고비마다 무너집니다.”

그는 자기 의심이 많은 사람은 스타트업을 할 수 없다고 여러 번 반복해서 말했다. 자기의 결심을 확신하면서 가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도대체 그는 잘나가던 미국 내의 회사 생활을 마다하고 왜 이 힘든 길을 택했을까?

“저는 일 자체에 열정(passion)을 느껴야 해요. 지위, 돈, 명예 그런 것은 그 다음입니다. 제가 이 일을 선택한 이유죠. 열정을 느끼면 행복해요. 지금 행복하냐고요?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열정이 느껴지고, 열정이 있으니 행복합니다. 하하하!”

남들이 부러워하는 뉴욕 한복판에 사무실이 있으며 링컨 센터 부근에 집이 있고, 유튜브의 창업자에게 투자를 받았고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에 이어 미국의 워너브라더스가 인수한 화제의 스타트업으로 키웠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이 없다. 막연히 오늘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할 뿐이다. 파스텔 인생의 차이는 그것이다. 자기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

손관승 - 세한대학교 교수. MBC 기자와 베를린특파원, 국제 부장 등을 거쳐, iMBC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중앙대학교에서도 미디어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ceonomad@ gmail.com

201606호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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