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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르포] 중동 큰 시장이 온다! 잠에서 깨어나는 이란 

“빨리빨리” 한국 닮은 나라 미래 블루오션 될까 

테헤란=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hae.intaek@joongang.co.kr
1월 유엔제재 해제 이후 지식기반산업 중심 국가 꿈꿔… 여성 차별적이면서도 국회의원의 30%가 여성일 만큼 역동적인 분위기 눈길

▎이란 이스파한의 전통 바자르에서 만난 이란 여성들. 얼굴과 손을 제외하고 온몸을 가리는 차도르 차림이다. 이란은 이슬람혁명 뒤 여성이 머리와 목덜미를 가리는 히잡을 쓰도록 의무화했다.
지난 4월 하순 돌아본 이란은 의외로 활발했다. 이란 수도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에 도착한 4월 21일이 마침 이란의 어버이날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인구 800만의 대도시인 테헤란의 주요 도로는 온통 차량으로 붐볐다. 고속도로는 가족 나들이 차량으로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나들이 나온 이란인 가족들은 어버이날을 즐기고 있었다. 이슬람혁명 전인 지난 1971년 이란 건국 2500주년 축제를 페르세폴리스에서 열면서 수도에 세웠던 ‘아저디(자유) 타워’는 구경 나온 시민으로 붐볐다. 당시 ‘국왕기념탑’이라는 이름으로 세웠다가 이슬람혁명 뒤 파괴하지 않고 대신 이름만 고쳤다. 이란의 과거와 현재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이처럼 봄날의 이란은 평화로워 보였다. 미국이 한때 ‘악의 축’이라고 지칭했던 나라의 현재 모습이다. 이란은 핵개발 의혹으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받아왔으나, 지난 1월 17일 경제제재가 해제되면서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친미(1925~1979) 왕조가 무너진 뒤 37년간 계속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길고 긴 경제제재의 그늘은 한참 깊어 보였다.

이란은 한국을 부르고 있었다. 테헤란의 거리에는 유럽처럼 소형차를 중심으로 온갖 종류의 자동차로 붐볐다. 이란의 도로는 한국인들에게 상당히 낯익을 수밖에 없다. 익숙한 자동차가 많이 다니기 때문이다. 이란에서 가장 쉽게 마주치는 자동차는 기아에서 개발한 프라이드다.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했던 구형 프라이드는 물론 프라이드 베타도 상당수다. 거기에다 프라이드 베타를 빼닮은 자동차들이 다른 브랜드와 이름을 달고 거리를 누비고 있다. 사이파(SAIPA)라는 완성차 업체의 사바(SABA)라는 브랜드다.

한국을 부르는 테헤란


▎테헤란을 상징하는 아저디 타워. 1971년 이란 건국 2500주년 기념으로 ‘국왕기념탑’이란 이름으로 세워졌지만 1979년 이슬람혁명 뒤 자유를 뜻하는 아저디로 바뀌었다. 이슬람 지도부의 유연한 생각을 보여준다.
1966년 설립된 이 회사는 지분의 75%가 이란 정부가 보유하고 있다. 처음에는 프랑스의 시트로앵의 이란 자회사로 출발했다. 회사 이름도 이란자동차공업사(Societe Anonyme Iranienne de Production Automobile)라는 프랑스어 약자에서 왔다. 처음에는 카라반과 리오를 생산하다가 2005년부터 기아차 모델인 프라이드 베타를 사바라는 이름으로 조립·생산하고 있다. 사바는 이란에서 인기가 좋아 시장점 유율이 20% 가까이 차지할 정도다. 2012년부터는 개량형 모델을 개발해 티바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내놓고 있다. 사이파는 말레이시아의 프로톤사와 합작으로 프라이드 모델을 대체할 새로운 콤팩트형 세단을 공동개발한다는 MOU를 맺었다.

이란은 중동에서 터키·이집트와 함께 자동차를 자체 생산하는 산업 강국이다. 매장량 세계 1위인 천연가스와 세계 4위인 원유는 이란 산업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이란은 핵개발 의혹에 따른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오랫동안 원자재 수입이 어려워 국내생산이 줄어들고, 산업 프로젝트가 거의 중단된 상황이었다. 국제사회와의 오랜 협상으로 지난 1월 제재가 해제된 이래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바로 지식기반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국가로의 도약이다. 여기에 중동과 인도아대륙, 중앙아시아, 유럽을 잇는 지정학적인 위치를 활용해 물류 대국을 꿈꾼다.

4월 25일 테헤란 집무실에서 만난 이란의 알리 타예브니아 경제재정장관은 “해외투자를 대대적으로 유치하고 잘 교육받은 이란의 젊은 노동력을 활용해 연 8%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예브니아 장관은 “특히 오만 만·페르시아 만의 항구를 개발하고 이를 철도를 통해 카스피해를 연결하면 중동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최단거리로 잇는 물류 하이웨이를 완성할 수 있다”며 한국의 투자를 권유했다.

4월 21~25일 이란에 머물면서 수도인 테헤란은 물론 경제 수도로 불리는 이스파한, 고도 시라즈 등 여러 지역을 돌며 이 나라 경제인과 정책 입안자들을 만나본 결과 이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지식기반 고도산업국가로 가는 데 한국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란은 산업기반이 부족해 젊은 인재들의 해외유출이 이뤄지고 있다는 하소연도 이어졌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원장 김성귀)이 4월 23~24일 양일간 이란의 이스파한과 테헤란에서 개최한 ‘2016 한·이란 비즈니스 포럼’은 이란인들의 경제개발에 대한 열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무역업자들은 물론 자신의 아이디어를 한국을 통해 실현하겠다는 젊은 창업 희망자들이 대거 몰렸다. 테헤란의 행사장에는 항만 개발, 해운 운항, 철도 등 해운·항만·물류 관계자들이 모여 유라시아 초대형 물류 프로젝트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지식기반산업과 물류산업이라는 이란 경제의 양대 축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빨리빨리’ 서비스 발달한 테헤란


▎고대그리스와 일전을 벌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됐던 아케메네스 제국의 영광을 보여주는 페르세폴리스 유적. 이란이 개방되면 이 지역을 중심으로 관광붐이 일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 5월 1~4일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은 한국 경제가 이런 이란의 경제개발을 돕고 우리도 이익을 얻는 윈-윈의 기회를 얻기 위한 첫 단추일 것이다. 물건 팔고 서비스 파는 데서 그치지 말고 경제개발을 함께하는 윈-윈 모델을 만드는 파트너로서 교육과 과학기술 분야를 포함한 폭넓은 교류 확대가 필요하다.

이란은 부자 나라는 아니지만 규모가 있는 나라다. 고급은 아니지만 갖춰야 할 것은 빠지지 않고 갖추고 있다. 큰 도로에는 공장 원료를 실은 거대한 화물차들이 줄줄이 달리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며 거리의 상점들은 다양한 물품이 쌓여 있다. 전통적인 페르시아 양탄자나 견과류를 파는 상점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전자제품과 IT기기, 국산 자동차를 전시 판매하는 선진국형 매장이 줄을 잇고 있다. 테헤란에는 지하철도 있었으며 버스는 끝없이 이어졌다. 택시는 부르면 쏜살같이 손님을 찾아오는 빠른 서비스를 제공한다. 음식이나 음식재료를 배달해주는 쾌속 서비스사도 활발한 영업을 한다고 했다. 이란판 ‘빨리빨리’ 서비스다. 고속버스터미널은 전국을 이어주는 쾌적한 고속버스가 출발 대기 중이었다. 우리의 우등고속버스에 해당하는 VIP고속버스도 운행한다.

테헤란의 북부에서는 눈으로 덮인 설산이 보였다. 해발 1500m 고지인 테헤란에서 다시 1000m 이상 올라가야 하는 2500m 높이의 연봉들이다. 이란인들은 그곳에서 4월 말까지 스키를 탄다고 자랑했다. 테헤란은 1년의 절반 이상을 개장하는 스키장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생기가 넘쳤다. 이런 이란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이란인이 원하는 것을 도와주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이란 그랜드 플랜이 필요하다.

수도 테헤란, 중세의 고도 이스파한, 고대 페르시아의 위용을 보여주는 페르세폴리스가 위치한 시라즈 등을 방문하면서 안정적인 이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도와 지방이 한결같다는 것은 이 나라가 강력한 중앙집권 아래 질서와 통일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실제로 이란은 치안이 좋고 사건사고가 비교적 적은 중동국가로 평가받는다. 이란과 서쪽으로 국경을 맞닿은 이라크를 비롯해 중동지역의 상당수 국가가 이슬람국가(IS)와 알카에다 등 이슬람을 내세운 극단주의 무장조직의 테러 활동으로 불안한 상태다. 하지만, 이란은 테러 위협이 거의 없는 드문 국가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대부분 이슬람 수니파인 반면 이란은 수니파와 대적하는 시아파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니파가 테러와 연관이 있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이슬람을 내세운 테러 세력이 수니파 지역에서 성장한 것일 뿐 극단주의는 이슬람이란 종교와는 관련이 없다는 게 중동권 종교기구나 정부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다만, 이들이 수니파이기 때문에 시아파 지역에서는 서로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는 게 이란이 안전한 이유일 것이다.

문제는 처음 방문한 이란은 외국인에게 갑갑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자유롭게 살아온 외국인에게 이란은 답답하고 삭막해 보였다. 서구와 문화가 다르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이란인 취재원들의 증언과 현장 방문 등을 바탕으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본다. 문제는 이란의 실상을 이야기해주고 안내해준 현지인들의 실명이나 인적 사항을 밝힐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해외정보 봉쇄한 방송과 인터넷

첫째, 가장 갑갑하게 느껴진 것은 방송이었다. 이란에서 호텔 텔레비전(LG제품이었다)을 틀었더니 40개나 넘는 채널이 있었지만 해외 채널은 보이지 않았다. 영어로 뉴스를 전하는 이란 채널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숙소는 프런트 직원은 물론 식당 웨이터까지 영어를 구사하는 국제 수준의 호텔이다. 하지만 영어로 된 BBC나 CNN은커녕 프랑스어나 독일어로 된 그 흔한 국제 채널조차 보이지 않았다. 알자리라나 알아라비아 등 주변국의 아랍어 뉴스 채널도 볼 수 없다. 외국의 불순한 채널이 신정국가 이란을 흔들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이란의 방송 채널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두터운 쇄국의 장막을 덮고 있었다.

한국의 아리랑 채널이나 KBS월드도 당연히 볼 수 없다. 다만 한국의 방송 드라마 <주몽>이 이란 채널에서 이란어 더빙판으로 방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미국의 액션 드라마도 더빙판이 방송되고 있어 의외였다. 뉴스는 개방이 멀어 보였지만, 문화 콘텐트 분야에서는 조금씩 나라의 문을 열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 작은 소득이었다.

놀라움은 인터넷에서 더했다. 영국 BBC방송과 미국의 CNN은 인터넷으로도 볼 수 없다. 대부분의 해외 뉴스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한국의 일부 뉴스 사이트도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다. 한국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도 막힌 상태였다. 검열 당국이 블로그도 뉴스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몇 가지 우회 방식으로 외국 뉴스 사이트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불법이기 때문에 보지 않는 게 좋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독특한 것은 이란 곳곳에서 위성방송 수신용 접시 안테나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 이용하면 외국 방송을 볼 수 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개인적인 수신은 허용되는가 싶어 현지인에게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경찰이 들이닥쳐 접시안테나를 압수해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위성 수신기를 통해 외국 위성방송을 보는 것은 불법이라는 설명이었다. 외국인도 예외가 없다. 이에 따라 상당수 외국인은 계량기 검침을 나왔다는 이란인이 문을 두들겨도 열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혹시 경찰이 계량기 검침원이라고 해서 문을 열어주면 집에 들어와 위성 안테나 수신기를 비롯한 ‘이적 기기’를 압수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미난 것은 같은 접시 안테나라도 고가품은 압수해가고 싼 것은 현장에서 부숴버린다고 한다. 왜 그런 기준이 적용되는가 물었더니 씩 웃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들은 것은 이란을 떠나온 뒤였다. 이란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서구인 소식통들은 일부 경찰이 압수물 유통에 가담한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경찰 압수 물품을 되파는 암거래 시장이 있다는 이야기다. 현장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이 말을 전해준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를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외국인 여성에게도 히잡 착용은 의무화


▎이스파한 공항 가게에 진열된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를 담은 DVD들. 이란은 배우들의 노출이 없는 한국의 사극을 선호한다.
이란의 도시가 실제보다 더욱 어두워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여성들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여성들에게 머리카락을 가리는 히잡 착용을 의무화했다. 혁명 전까지 정권을 유지했던 파흘라비 왕조는 ‘백색혁명’을 기치로 내걸고 서구화를 추구했었다. 파흘라비 왕조는 히잡과 온몸을 덮는 차도르를 입지 못하도록 했다. 당시 이란 여성들의 사진을 보면 서구 여성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도시에서는 히잡을 쓴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반팔 블라우스에 무릎까지 오는 스커트와 굽 높은 구두 차림의 젊은 여성들이 대학가를 활보했다. 이런 모습이 이슬람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을 샀다고 한다. 혁명으로 정권을 쟁취한 그들은 모든 것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았다. 히잡 착용을 의무화한 것은 물론 얼굴과 손발을 제외한 피부가 보이지 않도록 강제했다. 옷도 몸매가 보이지 않도록 헐렁한 것을 입도록 했다. 상의도 엉덩이의 윤곽이 전혀 보이지 않게 상의를 완전히 덮는 긴 것으로만 입도록 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여성은 머리카락을 덮는 것은 물론 목도 완전히 감싸고 가슴까지 푹 덮어버리는 ‘마그나에’라고 부르는 긴 히잡으로 머리와 목 부위를 칭칭 감고 다닌다. 얼굴에서 눈·코·입·귀만 간신히 보이는 수준이다. 이것을 입으면 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다만,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등 국공립 기관과 무관한 사람의 경우 근무처 안에서는 머리카락만 가리는 숄 형태의 간편 히잡을 쓸 수 있도록 허용한다. 하지만 밖으로 나갈 때는 예외가 없다.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이나 국공립 병원의 의사나 간호사, 공기업이나 공공단체 또는 국립대학, 학교, 연구소 등 나랏돈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직장에서는 예외 없이 어두운 색의 마그나에를 입어야 한다.

아예 온몸을 가리는 차도르를 입고 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렇게 차려 입은 여성은 ‘차도리’라고 불린다. 차도리들이 입고 다니는 검은 차도르는 자신이나 가족이 종교적이거나 보수적임을 보여준다. 혁명 이후 능력이나 경력이 아닌 종교적 믿음의 인증이나 이와 관련한 연줄이 고위직 진출의 수단이 되면서 출세를 원하는 아버지나 오빠, 남편 등 집안 남자들은 여성들에게 차도리 착용을 강제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사립대학이나 민간기업, 개입사업체 등에서 일하며 그런 출세길이나 공직과는 무관한 길을 가는 사람들은 밝은 색의 간편 히잡을 쓰고 밝은 옷을 입는 등 약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남자는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서구 풍속이라고 배척한 탓이다. 대통령도, 장관도 노타이 차림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뚜렷하다. 곳곳에 배치된 종교경찰 때문이다. 조금 짧거나 몸에 약간 달라붙어 신체의 윤곽을 짐작할 수 있는 상의는 야한 옷으로 간주해 곳곳에서 단속을 받는다. 종교경찰은 시내 주요 지점에 미니버스를 대기시켜 놓고 불시에 행인을 단속해 미니버스에 태워 경찰서로 데려가 구금한다. 잡혀간 사람은 보호자가 가서 데리고 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경찰서에서 나갈 수 없다. 종교 경찰은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에 주로 배치되는데 가끔 국립대학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단속하기도 한다. 심지어 석사과정 이상의 고학력자만 출입이 가능한 테헤란의 국립도서관 입구에서도 단속이 벌어지기도 한다. 권력이 복장까지 좌우하는 셈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가 말한 억압과 감시가 일상화된 파놉티콘같은 거대한 감시 감옥 같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야한 옷 입으면 종교경찰이 단속


▎이란 경제재정장관의 집무실.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툴라 호메이니와 알리 하메네이의 초상은 이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사진보다 더 많다.
하지만, 이는 내부의 종교적 규율을 위한 것이어서 외국인은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외국인이라도 여성은 히잡 착용이 의무다. 심지어 비자 신청용 사진도 히잡을 쓴 것이 아니면 반려되기 때문에 유념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반면, 남자는 반바지를 제외하고는 복장에 별다른 제약이 없다. 남녀에 대한 기준이 이처럼 다른 것을 두고 서구에서는 이란의 복장단속 정책을 여성 차별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에서는 사실 여성의 사회참여가 활발한 편이다. 의사, 교사 등 전문직에도 진출이 활발하다. 테헤란에선 국회의원의 30%를 여성이 차지할 정도로 여성의 정치 참여가 활발하다. 차도르를 입고 행진해야 하지만 여군도 있다. 여자 버스운전사, 호텔의 여성 매니저를 보기도 어렵지 않다.

문제는 여성들의 사회 참여와는 별도로 여성에 대한 존중 의식은 서구 기준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일부 이란인은 거리에서 여성에게 욕설을 하거나 성희롱을 거리낌 없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복잡한 길에서 슬쩍 여성의 신체에 손을 대는 치한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현지 여성들은 치한을 경찰서에 끌고 가봐야 웃어 넘기고 말아버리는 관행이 문제라고 토로한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가치관이 서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초중고교, 버스에서도 남녀는 ‘따로따로’


▎테헤란 시내의 한 건물에 그려진 반미 벽화. 영어로 ‘미국을 타도하자’, 이란어로 ‘미국에 죽음을’이라고 적혀 있다.
이란에서는 남녀간 구분이 심하다. 초중고에선 남녀공학이 아예 없다. 남녀공학은 대학부터다. 심지어 도서관도 남녀 공간을 구분할 정도다. 테헤란 국립도서관은 남녀 책상이 있는 공간이 따로 나뉘어져 있다. 지역 내 작은 공공 도서관의 경우 남자는 토·월·수요일, 여자는 일·화·목요일로 이용하는 요일을 구분해 남녀가 같은 날 한 도서관을 쓰지 못하게 원천봉쇄한다.

버스도 앞좌석은 남자, 뒷좌석은 여자가 앉는다. 일부 장거리 버스는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과거 한국 고속버스의 흡연석, 금연석 구분과 비슷하다.

하지만, 합승택시에서는 뒷좌석에 3명이 타면 서로 모르는 남녀가 어깨를 맞대고 갈 수밖에 없다. 비행기에서는 국내선에서도 남녀 좌석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아 서로 모르는 남녀가 나란히 앉아서 갈 수도 있다. 게다가 남녀는 거리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으며, 빵가게 앞에서 남녀가 나란히 줄을 서는 것도 문제되지 않는다. 남녀 구분이 형식적이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놀라운 이야기지만 결혼식도 남녀 하객이 서로 다른 공간에서 한다. 남자 하객 홀과 여자 하객 홀이 별도로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남녀 하객석조차 구분하지 않는 서구식 결혼식을 열기도 한다. 테헤란 외곽의 별장과 정원을 빌려 종교경찰에게 들키지 않도록 철통 보안과 경비 속에 행사를 진행한다. 문제는 이렇게 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아 부유층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은밀하고 금지된 파티로 욕구 발산

상당수 이란인은 생일 파티 등을 은밀하게 연다. 서양식으로 DJ를 불러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며 논다. 파티장에서 여성은 한결같이 히잡을 벗는다. 소매가 없는 짧은 원피스 차림에 하이힐을 신고 현란한 조명 아래 몸을 흔든다. 전화를 하면 30분 안에 파티 음식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도 발달했다. 심지어 금기인 술까지 배달해주기도 한다. 아르메니아 정교회 신자 등 무슬림(이슬람 신자)이 아닌 국민이 일부 살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 밀주를 구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이는 불법이지만 이란의 신정 정권도 완전히 막지는 못하고 있다.

이란인의 파티는 인터넷에 사진이 줄줄이 등장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졌다. 다만, 소음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고 종교경찰이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 있는 단독 주택이라야 가능하다. 엄연한 불법이기 때문이다.

부유층들은 세속주의 이슬람국가인 이웃 터키나 외국인이 노는 데 관대한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 등으로 날아가 휴가를 보낸다. 터키의 지중해변 유명 관광지인 안탈리아 등은 특히 이란인들의 파티로 떠들썩하다. 이들은 밤새 파티를 즐긴 후에 다시 두터운 히잡을 쓰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나마 유엔 제재가 계속되면서 지난 3년 새 이란 화폐의 가치는 3분의 1로 떨어졌다. 과거 1년에 한 번 갈 수 있는 해외 여행을 3년에 한 번밖에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나마 해외 여행을 통한 일탈이나 은밀한 파티를 통한 욕구 해소는 중산층 이상이나 꿈꿀 수 있다. 벌이가 시원치 않은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이들은 차 한잔 마시고 시름을 풀 수밖에 없다. 사회적 스트레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서구 경험이 있는 상당수 이란인은 이란인들의 진짜 스트레스는 이런 데서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란의 진짜 문제는 핵 개발 의혹에 따른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도, 전쟁 위협도, 산업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흡족한 일자리를 제대로 구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바로 이런 사회적인 문제 때문에 보다 살기 좋은 나라를 찾아 잘 교육받은 인재들이 나라를 떠난다는 것이다. 사회의 변화 대신 인재기근을 막는 다른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지식기반 산업과 물류산업 육성을 통한 경제건설이다. 우리가 이란을 이해하고 접근하며 함께 미래를 논의하는 두 가지 트랙이기도 하다.

대통령과 의회 위에 존재하는 신정체제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독특한 ‘신정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최고지도자(라흐바르 에 모아잠)로 불리는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가 ‘이란 이슬람공화국’의 국가원수다. 이란 헌법은 ‘지도자(라흐바르)’가 국가원수와 최고 종교지도자는 물론 군 통수권자와 사법부·입법부·행정부의 상징적 수장을 겸하도록 하고 있다. 최고지도자가 종교는 물론 국정까지 장악하고 있다. 국민이 뽑은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행정부 담당 세속 선출직 공직자일 뿐이다.

최고지도자는 선거로 당선한 대통령을 최종 임명하며 의회의 3분의 2 찬성을 얻으면 해임할 수도 있다. 사법부와 군부의 인사권도 장악하고 있다.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자리다. 임기 8년의 대법원장과 육·해·공군 수장과 국영방송 사장까지 임명하고 해임하니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종신직인 최고지도자는 ‘국가지도자 운영회의’라는 합의체에서 선출한다. 보통·직접 선거로 뽑힌 임기 8년의 의원 88명으로 이뤄졌다. 헌법을 해석하고 대통령과 의원 선거를 감독하며 입후보자 자격을 심사·인증한다. 국회가 가결한 법안이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부합하는지 심사해 합법성을 보증하거나 거부할 수도 있다. 의회 위에 종교조직이 자리 잡은 셈이다.

주목할 점은 지난 2월 26일, 이란 국회의원 290명을 선출하는 총선 및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위원 88명을 선출하는 양대 선거가 동시에 열렸다는 점이다. 이 선거에서 보수파보다 중도파와 개혁파가 약진해 이란의 정치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란에서 희망을 보여주는 징조는 이미 많다. 지금이 우리가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 서로 미래를 함께하는 기회로 만들 때가 아닐까. 이란을 한국의 블루오션으로 만들 기회다.

- 테헤란=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hae.intaek@joongang.co.kr

201606호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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