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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인물] 이색 ‘바닥신호등’ 개발한 윤외련 ㈜에스지앤테크 회장 

“교통안전 시설물에 엄마와 선생님 마음 담았죠” 

글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 사진 박종근 기자 park.jongkeun@joongang.co.kr
빨간불, 파란불 신호등 따라 LED 지면신호등 작동되는 ‘스마트안전블록’ 선봬… 15년 가까이 발품 팔며 연구개발 나서 전국 20개 지자체에 시범설치해

▎윤외련 회장 - 1952년 경남 창녕군 출생. 부산교 육대, 경남대 경영대학원 졸업. 남 지동포초등학교에서 시작해 마산 해운초등학교 교감으로 교직생활 을 마치며 1999년 명예퇴직. 2004 년 마산에서 ㈜에스엘테크 설립, 2013년 ㈜에스지앤테크로 설립해 ‘스마트안전블록’ 개발.
“건널목 앞에서 ‘선생님’ 하고 달려오던 어린 제자가 눈앞에서 자동차에 치여 숨진 순간은 아직도 가슴의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신호등 색깔에 맞춰 바닥에 불이 켜지는 ‘바닥신호등’을 개발한 LED안전유도블록 생산업체 ㈜에스지앤테크(Safety Global & Technology) 윤외련(64) 회장은 오래전 자신이 가르치던 학교 앞에서 제자가 교통사고를 당한 장면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힌다. 이 사고는 ‘안전의 어머니’로 불리던 그가 교사직을 마치고 벤처기업을 설립해 LED(발광다이오드)판으로 된 ‘바닥신호등’을 고안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부산교육대를 나온 그는 경남 마산에서 28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등·하교를 직접 지도하면서 학생들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아찔한 순간들을 수없이 겪었던 그다. 직접 제자의 사망사고까지 목격한 것은 그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았다. 윤 회장이 교사 재직시절부터 어린이 교통안전시설물에 큰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그는 “그저 엄마의 마음이었다”며 “내 자식 같은 아이들이 앞으로는 절대 그런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교통안전시설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보행자 교통 사망사고율은 34개 OECD 회원국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다. 인구 10만명 당 보행자 사망률은 OECD 국가 평균(1.2명)의 3배 이상이다. 보행자 사고는 특히나 64.1%가 야간 시간대에 일어난다. 어린이·노인·저시력자 등 교통약자에 대한 각종 규제와 대책이 나오긴 했지만 실제 이들을 위한 안전시설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결과적으로 교통사고율은 해가 갈수록 늘어간다.

윤 회장은 우리 사회의 잘못된 스마트폰 사용문화도 교통사고율을 높이는 이유라고 강조한다. 그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면서 “바로 이것 때문에 사고율이 더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길을 걷거나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들이 스마트폰을 보거나 이어폰을 꽂고 있다가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잦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스마트폰 관련 보행자 사고는 무려 3배로 늘어났다고 한다. 어린이 보행안전으로 시작한 윤 회장의 연구가 점차적으로 전 국민 보행자 대상으로 확대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윤 회장이 설립한 ㈜에스지앤테크는 오랜 노력 끝에 ‘스마트안전블록’이라는 새로운 교통안전 시설물을 개발했다. 횡단보도의 기둥에 설치된 신호등과 연계된 발광다이오드(LED)를 이용한 바닥신호등이다. 이 시설물은 점자블록에 LED 기능을 추가한 것으로 일반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횡단보도에 설치한 스마트안전블록의 색깔이 바뀌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설혹 보행자가 스마트폰을 내려다 보느라 고개를 숙이더라도 신호가 바뀐 걸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밝기는 일반 신호등의 10배 이상이어서 저시력 장애인·노약자·어린이들도 쉽게 신호를 인식할 수 있다.

자동차 운전자에게도 이 시설은 보조신호등 역할을 하게 된다. 좌·우회전 신호를 받고 달리는 차량이 지면에 길게 깔린 발광신호를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안전블록’이 도시의 안전사고율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이유다. 특히 안전선을 인식하기 어려운 어두운 밤길이나 빗길에서 스마트 안전블록이 설치된 횡단보도는 더욱 유용할 수 있다. 스마트 안전블록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도 다양하다. 사고다발지역 표시, 스쿨실버유아존, 농어촌도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유용하다. 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기차역 승강장이나 버스중앙차로 승강장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교통사고 제로(0)’. 2013년 설립된 ㈜에스지앤테크의 기업 이념이다. 1999년 마산 해운초등학교 교감을 마지막으로 교단을 떠난 윤 회장은 회사설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당초 외식업에 뛰어들었다. 창원에서 패밀리레스토랑을, 마산에서 일식집을 운영했다. 이들 외식업체를 운영하면서 10년여 동안 LED기술 관련 세미나를 쫓아다니고 연구결과를 모으면서 창업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그는 “초창기에는 LED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더 많은 발품을 팔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숱한 실패 불구, 개발비 투자 멈추지 않아


▎전라북도 전주에 설치된 ㈜에스지앤테크의 ‘바닥신호등’
2004년 5월, 경남 창원시 마산밸리 안에 ㈜에스엘테크를 설립해 이 사업의 맹아를 틔웠지만 사업이 순탄치 않았다. 창업 첫 해 남편(권기수)이 위암 판정을 받은 데다 친정어머니도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선 빚보증이 문제가 돼 전 재산을 날렸다.

결국 설립한 회사도 어려움에 빠졌다. 기술개발도 힘들었지만 회사경영 경험도 없어서 갖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제품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시설물 설치를 담당하는 시공사와 갈등을 빚었고, 사업을 같이 시작한 동업자와 기술 특허분쟁을 겪기도 했다. 윤 회장은 “이 과정에서 회사가 어려워지자 사원들도 하나둘씩 짐을 쌌다”고 어려웠던 시절을 돌이켰다. 윤 회장은 밤잠을 설치며 고민한 끝에 10년간 꾸려온 외식업 경영을 접고 건물과 땅까지 모두 팔아 스마트안전블록 연구비에 쏟아부었다. 그와 함께해온 직원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는 심신을 추슬러 2013년 ㈜에스지앤테크로 회사를 재 설립했다. 창원에 위치해 있던 본사를 서울 강남으로 옮겼고, 생산라인과 연구소(교통문화안전연구소)는 가산디지털단지에 자리 잡았다. 이 과정에서 안전시선유도등, 고속도로 표지판, 버스승강장 표지판 등 새로운 제품을 고안했다. 지면신호 등을 상용화하기 위해 경찰청, 국토해양부, 교육청, 한국도로공사, 지방자치단체 테크노파크, 대학연구소, 카이스트, 재료 연구소 등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제품을 소개하고 다녔다. 윤 회장은 “사명으로 여겨온 일이라 결코 포기할 수 없었고 (일을 시작한 뒤로)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노력이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관련 기관들이 그가 개발한 제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제품의 성능도 점점 향상돼갔다. 제품의 걸림돌 가운데 하나였던 전력효율도 크게 높아졌다. 점자보도블록 36구마다 LED소자를 넣었던 방식을 탈피해 씨줄날줄로 몇 개의 칩을 연결해 빛이 반사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개별 소자가 고장 나 불이 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장치였다.

윤 회장은 제품의 내구성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피력했다. 특수방탄소재로 만들어져 파손될 위험도 적고 마모 가능성도 줄였다. 스마트안전블록은 벼락, 눈, 비 등 악천후에 대비한 테스트도 거쳤을 뿐만 아니라 10톤 트럭까지 견딜 수 있는 중압시험, 방수, 하중, 열처리 등 심층적 데이터도 확보했다.

회사는 신호등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연동하는 기술도 새로 개발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보행자에게 센싱(sensing) 기능을 통해 개인 휴대전화로 횡단보도 위치를 알리거나 경고 알람을 울리는 방식이다. ㈜에스지앤테크는 통신사 KT 400개 국내 지사망과 함께 이 애플리케이션을 연계하기로 했다.

원천기술에 대한 특허 출원과 제품 출시 과정에서 회사는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많은 상을 받았다. 제품 특허만 12개다. 지난해에만도 한국여성발명대회 금은상, 사회봉사복지부문 자랑스런한국인대상, 올해의교통시민상, 대한민국안전기술대상 등을 수상했다. 올해에도 중소기업기술금융협회에서 기술력과 사업성을 인정받아 우수기술상을 받았고, 환경부의 안전기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보급형 상용화되면 비용절감 효과도 커져”

현재 바닥신호등은 해외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올해 초,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 이 제품이 시범 설치됐다. 지상 열차인 트램 승강장에서 보행자들이 스마트폰을 보며 걷다가 사망사고가 발생한 뒤 이 제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우크스 부르크 하운스테테르슈트라세역 트램 차로에는 16개의 빨간 LED가 설치됐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 주정부도 ‘바닥신호등 기술’ 시험을 위해 25만 호주달러(약 2억15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DC와 중국 충칭(重慶)시의 놀이공원도 2014년 스마트폰 사용자용 보행로를 설치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바닥신호등이 상용화되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걸림돌이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교통안전시설이 지자체와 경찰 사이에서 관리 책임소재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스마트안전블록이 ‘도로시설물’로 구분되면 지자체 관할이 되지만 현재 신호등과 같이 ‘교통시설물’로 구분될 경우는 경찰 관할이 되어 경찰의 승인 없이는 작동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현재 설치된 몇 개의 바닥신호등도 작동이 중단된 상태다. 기둥 신호등이 켜져도 바닥신호등이 ‘무용지물’로 전락할 공산이 커지는 셈이다.

하지만 윤 회장은 “최근 경찰청에서 도로시설물로 인정이 된다는 공문을 받았다”며 “앞으로 경찰 쪽에서 협조를 잘해줘서 설치와 작동이 원활히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바닥신호등의 설치에 들어가는 높은 비용도 걸림돌 중의 하나다. 스마트안전블록 제품을 6m폭의 횡단보도 한 곳에 설치할 경우 대략 800만원이 소요된다. 교차로일 경우는 3200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전국적으로 이 설비를 설치할 경우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윤 회장은 이와 관련해 “바닥신호등을 보급형으로 상용화할 경우 단가와 예산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지자체와 정부의 의지에 따라 제품 단가를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윤 회장은 해외의 경우처럼 스마트폰 사용 보행자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미국 뉴저지는 보행 중 스마트폰 문자메시지를 전송하면 벌금 85달러(10만원)를, 아이다호 주에선 벌금 50달러(5만9000원)를 물도록 법제화했다고 한다. 윤 회장은 국내에서도 보행자의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다닌다. 인터뷰 당일에도 윤 회장은 국회의원들을 만나 이 문제를 상의하느라 분주한 눈치였다. 그는 “보행자를 위한 안전시설물도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규제법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평소 윤 회장은 자신의 사업 외에도 사회단체 후원과 봉사 활동에 적극적이다. 그는 우리전통사랑의 날 회장, 마산여성 경제인협회 전 회장, 경남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성단체협의회 28개 단체를 지원하고 교육자·장애인 단체를 후원하기도 한다.

그의 회사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을 마치고 첫 걸음마를 뗀 상태다. ㈜에스지앤테크는 서울시를 비롯 전국지자체 20여곳에 납품해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윤 회장은 “오랫동안 준비한 제품이어서 성능에 자신이 있다”며 “우리나라가 안전한 선진사회로 가는 데 보탬이 된다면 내 소명을 다 이룬 것”이라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 글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 사진 박종근 기자 park.jongkeun@joongang.co.kr

201607호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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