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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탄핵소추안·검찰 공소장에 나타난 대통령의 국정농단 ‘공모’ 

지난 4년간 대한민국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나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최순실 태블릿 PC’와 정호성 휴대전화 녹음파일에서 ‘직무상 비밀 유출’로 헌법 위반 확인...안종범 업무용 수첩 17권에서 대통령 ‘지시·공모’ 즐비…안, “수첩 기재내용 모두 자필 맞아”

▎박근혜 대통령은 12월 9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청와대에서 황교안 국무총리(왼쪽) 등 국무위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국회와 국민의 목소리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 사진·중앙포토
지난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찬성 234표. 야당과 새누리당 비박계를 제외하면 상당수 친박계까지 가세한 결과였다. 반대는 56표, 무효는 7표, 기권는 2표였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것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박 대통령은 탄핵 가결 후 국무위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안보와 경제가 모두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저의 부덕과 불찰로 이렇게 큰 국가적 혼란을 겪게 되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앞으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 특검의 수사에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야당이 요구하는 ‘즉각 퇴진’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스스로 퇴진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 운명의 갈림길에 섰다. 헌재가 탄핵을 기각해 국정에 복귀한 노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지,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 대통령으로 기록될지 공은 헌재로 넘겨졌다.

이번 박 대통령의 탄핵은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고 직무가 정지된 것까지는 노 전 대통령 당시와 유사하지만, 탄핵 내용에서는 상당한 차이점을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주요 탄핵 사유는 ‘공무원의 선거 중립 위반’. 2004년 기자회견에서 “총선에서 국민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당시 탄핵안에는 측근 비리도 포함됐지만, 헌재는 “취임 전 일이거나, 노무현 대통령의 연루 여부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박 대통령의 탄핵이 헌재에서 인용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 예측이다. 최순실 등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사태에 박 대통령이 ‘공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도 11월 20일 ‘최순실 게이트’ 수사 결과 발표에서 박 대통령의 신분을 ‘피의자’로 못박았다. “공소장에는 100%는 아니지만 99% 입증 가능한 부분만 적시했다”면서 혐의 입증에도 자신감을 나타냈다. 검찰은 최순실뿐 아니라 안종범(57)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47)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조원동(60)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종(55)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구속기소된 관계자들의 공소장에도 박 대통령과의 ‘공모 관계’를 상세하게 적시했다. 한편 국회가 탄핵소추안에 적시한 박 대통령의 헌법 위반 항목은 ‘대통령의 헌법 수호 및 헌법 준수 의무 위반’이다.

유출문건 180건 중 47건 ‘공무상 비밀 유출’


▎12월 9일 박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앞둔 국회. / 사진·전민규
국회가 박 대통령의 중대한 헌법 위반 사항의 첫 번째로 꼽은 내용은 ‘공무상 비밀 유출’이다.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은 12월 9일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공무상 비밀 내용을 담고 있는 각종 정책 및 인사 문건을 청와대 직원을 시켜 최순실에게 전달하여 누설하고, 최순실 등 소위 비선 실세가 각종 국가정책 및 고위 공직 인사에 관여하거나 좌지우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내용은 10월 24일 JTBC의 이른바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에서 처음 확인됐다. 최씨의 것으로 보이는 태블릿 PC에서 대통령 회의 자료와 연설문 등 44개 파일을 확보했다는 내용으로, 박 대통령이 이튿날 곧바로 대국민 사과에 나설 정도로 파장이 거셌다. 박 대통령의 ‘공무상 비밀 유출’ 면모는 검찰이 확보한 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녹음 파일에서 더욱 자세히 드러났다.

12월 11일 검찰 특수본의 수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검찰은 10월 29일 정호성 전 비서관의 자택에서 모바일 기기 총 9대(휴대전화 8대와 태블릿 PC 1대)를 압수했다. 이 가운데 스마트폰 1대와 폴더폰 1대에서 녹음 파일 236개를 복구했다. 대통령 취임 전에 녹음된 파일은 약 224개, 35시간 분량이다. 그 중 검찰이 관심을 보였던 것은 정호성과 최순실의 대화 3개(총 41분57초 분량). 박 대통령과 정호성, 최순실 3자 간의 대화는 11개(총 5시간9분39초 분량)였다. 주로 대통령이 최순실, 정호성과 함께 취임사를 준비하는 내용이다.

대통령이 취임한 뒤 작성된 녹음 파일은 12개(총 28분 분량)로, 이 중 8개(총 16분10초 분량)가 정호성-최순실의 대화다. 주로 정 전 비서관이 최씨에게 문건을 송부하면, 최씨가 전화를 걸어 의견을 말하고 지시하는 내용이다. 이들은 구글 G메일 계정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하면서 청와대 문건을 주고받았다. 정 전 비서관이 문건을 전송한 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통해 “보냈습니다”라고 하는 식인데, 2012년 11월 20일부터 2014년 12월 9일까지 약 2년 동안 이렇게 문자로 최씨에게 보고한 것만 237차례다. 2013년 6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정 전 비서관과 최순실은 총 895회의 통화를 하고, 1197회 문자를 주고받았다. 4개 파일(총 12분4초)에서 확인된 정 전 비서관과 대통령의 대화 내용은 주로 대통령으로부터 업무지시를 받는 내용이다.

유출된 청와대 문건은 초대 장·차관과 감사원장 등 고위직 인선자료와 인선 발표, 발표 전 가안 등이었다. 외교상 기밀 문건도 다수 포함됐다. 이 외에 대통령 일정표를 비롯해 국가 정책 추진계획 등이 포함된 대통령 업무보고서 및 말씀자료, 각 부처의 업무보고서와 대통령 말씀자료 등도 있었다. 문건 유출은 주로 정권 초기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유출된 문건 총 180건 중 138건이 2013년에 유출됐다. 수사팀이 확보한 압수 수색 문건 180건 중 ‘공무상 비밀’로 인정된 것은 47건이다.

최순실의 인사권 행사, 헌법상 임면권 위반


▎12월 14일 새벽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고 난 뒤 호송차에 오르는 최순실 씨. / 사진·중앙포토
이 내용은 공소장에서도 확인된다. 검찰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을 구속기소하면서 문서유출 혐의에서 대통령을 ‘공범’으로 보았다. 정 전 비서관은 2013년 10월 수도권 복합생활 체육시설 입지 후보지로 경기 하남시 등 3곳을 검토한 뒤 “경기 하남시가 접근성, 이용 수요, 설치비용 모두 양호해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는 내용의 문건을 최씨에게 전달했다. 검찰은 “이는 직무상 비밀에 해당한다”며 “정 전 비서관은 대통령과 공모해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했다”고 했다.

국회는 탄핵안에서 “최순실 등이 국정을 농단해 부정을 저지르고 국가의 권력과 정책을 최순실 등의 ‘사익 추구의 도구’로 전락하게 했다”며 “최순실 등 사인이나 사조직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 자신에게 권력을 위임하면서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을 위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기대한 주권자의 의사에 반했다”고 했다. “국민주권주의(헌법 제1조) 및 대의민주주의(헌법 제67조 제1항)의 본질을 훼손했다”는 내용이다. 또 “국정을 사실상 법치주의가 아니라 최순실 등의 비선조직에 따른 인치주의로 행함으로써 법치국가 원칙을 파괴했다”며 “국무회의에 관한 헌법 규정(헌법 제88조, 제89조)을 위반하고 대통령의 헌법 수호 및 헌법 준수 의무(헌법 제66조 제2항, 제69조)를 정면으로 위반했다”고 밝혔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업무용 수첩 17권은 박 대통령에게 ‘족쇄’가 됐다.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공무원 임면권(헌법 제78조) 위반도 탄핵안에 담겼다. “청와대 간부 및 문화체육관광부의 장·차관 등을 최순실 등이 추천하거나 최순실 등의 의사에 따라 임면하고, 최순실 등의 의사에 부응하지 않는 공무원에 대해 자의적으로 해임하거나 전보 조치하는 등 공직자 인사를 주무르고, 공직사회를 자기 사람으로 채운 뒤 마음껏 이권을 챙기고 국정을 농단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직업공무원 제도(헌법 제7조), 평등원칙(헌법 제11조) 조항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최순실은 2013년부터 조직적으로 정부 인사에 관여했다. 장·차관급 인사에까지 손을 뻗었다.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차관급) 등은 모두 최씨의 측근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추천한 인사들이다. 김 장관은 차씨의 대학원 은사이고 김 수석은 차씨의 외삼촌이다.

최순실은 인사뿐 아니라 각종 이권사업에 정부 예산을 끌어다 쓴 혐의도 짙다. 최순실은 차은택으로 하여금 2015년 2월부터 추진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 문체부 예산 7400억원의 투입을 결정하게 했고, 조카 장시호를 내세워 설립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통해 예산 6억7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차은택과 함께 광고기획사를 세운 뒤 대기업의 광고 수십억 원어치를 부정 수주했다. 이 뒤에는 청와대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다.

최순실의 인사 개입은 박 대통령을 통해 끈질기게 이뤄졌다. ‘찍히면 죽는다’는 세간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최순실의 힘은 ‘철밥통’ 공무원까지 찍어낼 정도로 막강했다. 박 대통령은 2013년 8월 문화체육관광부의 노태강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을 “나쁜 사람”이라고 낙인 찍어 경질했다. 최씨의 딸 정유라 씨가 경북 상주에서 열린 전국승마 대회에서 준우승에 그치자 판정에 문제가 있다며 대통령에게 민원을 제기했던 게 발단이었다.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문체부를 통해 승마협회에 대한 특별감사를 지시했고, 문체부 감사 결과 노 국장 등은 “최순실 씨나 반대쪽이나 다 문제가 많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올렸다. 이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그해 8월 유진룡 문체부 장관을 청와대 집무실로 불러 두 사람에 대한 사실상 경질을 지시했다. 지난 7월에는 프랑스 장식미술전 문제로 청와대와 중앙박물관이 갈등을 겪고 있을 때 박 대통령이 ‘노태강’이라는 이름을 보고 “이 사람이 아직도 있어요?”라고 문제를 제기했고, 이들 두 사람은 결국 강제 명예퇴직을 당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최순실 등과 ‘공모’한 범죄 혐의는 대기업과의 커넥션을 통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이 과정은 검찰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자택과 청와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업무용 수첩 17권에서 확인됐다. 안 전 수석의 수첩이 대통령에게는 ‘족쇄’가 된 셈이다. 수첩은 2015년 1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510쪽 분량으로 작성됐다. 앞쪽에서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등 일상적 회의 내용을 적고, 뒤쪽부터는 대통령 지시사항을 기재하는 방식이다. 이 중 VIP 지시사항이 수사팀의 증거물이다. 안 전 수석은 “수첩 기재 내용이 모두 자필이며 본인, 청와대 회의와 대통령 지시사항”이라고 인정했다.

대통령, 대기업 커넥션에 직접 개입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된 다음날 적막감에 휩싸인 청와대. / 사진·중앙포토
박 대통령과 대기업의 커넥션은 설립 과정이 쌍둥이처럼 똑같았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매개로 이뤄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대기업 총수들과 단독면담을 통해 재단법인 설립을 지원해줄 것을 직접 요청했다. 이후 재단 설립을 주도한 최순실이 대통령에게 방향을 알려주면 대통령이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지시하는 식이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16개 기업으로부터 각각 486억원과 288억원을 받았다. 검찰이 공소장에서 ‘대통령과 공모’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한 부분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지시 ▷현대자동차그룹 광고·납품 요구 ▷롯데 신동빈 회장에게 70억원 요청 ▷포스코, 그랜드코리아레저(GKL) 스포츠팀 창단 지시 ▷포스코 계열사 포레카 지분 강요 등이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세상에 알린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설립은 박 대통령과 7개 그룹 총수들의 단독면담에서 사실상 이뤄졌다. 박 대통령은 2015년 7월 24일 창조경제혁신센터 전담기업 회장단과 오찬간담회를 마친 뒤 다음날까지 양일간 7개 그룹 총수와 단독면담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당시 경제수석비서관이었던 안종범 전 수석에게 “10대 그룹 중심으로 대기업 회장들과 단독면담할 예정이니 그룹 회장들에게 연락해 일정을 잡으라”고 지시했다. 안 전 수석이 대통령 승인을 받아 삼성 등 7개 그룹을 대상 기업으로 선정해 단독면담이 이뤄졌다.

미르재단 설립 초기에는 최순실이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았다. 박 대통령의 요청으로 최순실이 관여하게 됐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박 대통령이 최순실에게 ‘전경련 산하 기업체들로부터 자금을 갹출해 문화재단을 만들려고 하는데 재단의 운영을 살펴봐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안 전 수석은 미르재단 출연금을 모은 뒤 체육재단 설립도 추진했다. 안 전 수석은 미르재단 출연금을 요청했던 그룹 담당 임원에게 연락해 “청와대 요청에 따라 300억원 규모의 체육재단도 설립해야 한다”며 “할당된 출연금을 납부하라”는 취지로 요구했다.

K스포츠재단 설립부터는 최씨가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는 K스포츠재단의 이사장과 사무총장 등 임원진을 직접 선정했고, 박 대통령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안 전 수석은 2015년 1월 박 대통령으로부터 “임원진은 최씨가 뽑은 사람들로 하고 사무실은 강남 부근으로 알아보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은 “박 대통령이 최씨와 안 전 수석과 공모해 대통령의 직권과 경제수석비서관의 직권을 남용했다”고 적시했다.

국회는 탄핵소추안에서 박 대통령의 이 같은 행위에 대해 “뇌물수수죄(형법 제129조 제1항)나 제3자뇌물수수죄에 해당한다”며 “어느 경우든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이므로 법정형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중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기업체 담당임원들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침해”했다면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형법 제123조)와 강요죄(형법 제324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뿐만 아니다. 탄핵안에 적시되진 않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미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많은 자금을 출연했던 롯데 신동빈 회장에게 직접 75억원을 추가로 요청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14일 신 회장과 단독면담을 마친 뒤 안 전 수석에게 “롯데그룹이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과 관련해 75억원을 부담하기로 했으니 그 진행상황을 챙겨보라”고 지시했다. 신 회장은 내부의 반대에도 6개 계열사를 통해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송금했다. 기업활동에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내부 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

최순실 이권사업에도 대통령 ‘지시’


▎박 대통령 탄핵이 가결됐지만 촛불의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박 대통령은 최순실의 사적 이권사업에도 직접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최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가 62억원어치의 광고를 따내고, 케이디코퍼레이션이 11억원대 납품을 할 수 있도록 강요한 혐의다. 케이디코퍼레이션은 최씨의 딸 정유라 씨의 친구 부모가 운영하는 회사다. 검찰 수사 결과,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15일 안 전 수석에게 플레이그라운드 회사 소개 자료를 건네주며 “이 자료를 현대자동차 측에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안 전 수석은 정몽구 회장과 대통령 단독면담을 마친 현대차 부회장에게 이 자료가 담긴 봉투를 전달하면서 “이 회사가 현대자동차 광고를 할 수 있도록 잘 살펴봐달라”고 말했다. 검찰은 안 전 수석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사실상 플레이그라운드의 광고 수주를 요청했다고 보았다.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과 정몽구 회장이 있는 자리에서 케이디코퍼레이션을 소개하며 “효용성이 높고 비용도 낮출 수 있는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니 현대차에서도 활용 가능하면 채택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이후 진행상황을 보고 받았다.

KT 광고 수주에도 박 대통령의 손길이 닿았다. 최순실이 대기업의 광고계약을 수주하기 위해 2015년 1월 모스코스, 2015년 10월 플레이그라운드 등을 설립하고 자신의 측근을 대기업 광고업무 책임자로 채용되게 하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지난해 1월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이동수라는 홍보전문가가 있으니 KT에 채용될 수 있도록 KT 회장에게 연락하라”고 지시했고, 황창규 KT 회장은 “윗선의 관심사항”이라며 비서실장에게 채용을 지시했다. 하지만 이동수 전 전무가 최씨가 의도했던 광고 총괄부서가 아닌 ‘브랜드지원센터장’으로 채용되자 안 전 수석이 다시 KT에 압력을 넣어 광고 총괄 임원으로 보직 변경을 이끌어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안 전 수석은 대통령으로부터 ‘이동수의 보직을 KT 광고 업무를 총괄하거나 담당하는 직책으로 변경해주라”는 지시를 받고 황 회장에게 전달해 보직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기업의 스포츠팀 창단에도 박 대통령은 직접 개입했다. 기업들이 스포츠 선수단을 신규 창단하면 그 선수단의 운영을 더블루케이가 맡는 용역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취하려 했던 최순실의 이권사업을 도와준 것이다. 포스코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관광공사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가 그 표적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권오준 포스코그룹 회장과 단독면담에서 “포스코에서 여자 배드민턴팀을 창단해주면 좋겠다”며 “더블루케이가 거기에 자문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회장의 지시를 받은 황은연 포스코 경영지원본부장(사장)은 더블루케이 대표와 K스포츠 관계자를 만나 창단비용 46억원을 요구받았지만, 어려운 여건을 이유로 사실상 거절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개입해온 안종범 전 수석이 끈질기게 요구했고, 포스코는 결국 계열사인 포스코P&S 산하에 16억원을 들여 2017년 펜싱팀을 창단하고 더블루케이에 운영을 맡기도록 하겠다는 선에서 최종 합의했다.

또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GKL에서 장애인 스포츠단을 설립하는 데 컨설팅 기업으로 더블루케이를 GKL에 소개하라”고 지시했다. “GKL 대표이사와 더블루케이 대표이사를 연결해줘라”고도 했다. GKL은 배드민턴 및 펜싱 선수단 창단과 함께 매년 80억원 상당의 업무대행 용역 계약을 체결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결국 GKL 장애인펜싱팀을 창단해 운영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했다.

국회는 탄핵소추안에 일련의 사건을 적시하고 박 대통령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및 강요죄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탄핵안에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박 대통령은 최씨가 포스코 광고계열사인 포레카 지분 강탈 시도에도 개입한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확인됐다. 박 대통령이 2015년 2월 “포레카가 대기업에 넘어가지 않도록 포스코 회장을 통해 매각절차를 살펴보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포레카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 A사 대표는 최씨의 측근으로부터 “포스코 최고위층과 청와대 어르신의 지시사항”이라며 “A사가 포레카를 인수하면 우리가 지분 80%를 가져가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A사 대표가 이 요구를 거절하자 ‘세무조사를 통해 A사를 없애버리겠다’고 협박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이는 박 대통령의 헌법 위반 사항에도 해당된다. 국회는 탄핵소추안에서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하고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니는 대통령이 오히려 기업의 재산권(헌법 제23조 제1항)과 개인의 직업선택의 자유(헌법 제15조)를 침해하고, 국가의 기본적 인권 보장 의무(헌법 제10조)를 저버렸다”며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사적자치에 기초한’ 시장경제질서(헌법 제119조 제1항)를 훼손하고 대통령의 헌법 수호 및 헌법 준수 의무(헌법 제66조 제2항, 제69조)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세월호 7시간·언론탄압도 헌법 위반

국회가 통과시킨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에는 언론탄압 문제도 포함됐다. 2014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정윤회 문건’을 특종 보도한 세계일보의 조한규 전 사장이 해임된 데 따른 것이다. 조 전 사장은 12월 15일 국회 청문회에 참석해 2015년 2월 사장직에서 해임된 이유에 대해 “(통일교) 한학자 총재 김만호 비서실장이 2015월 1월 31일 오후 5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 ‘청와대에서 전화가 와서 불가피하게 해임하게 됐다. 앞으로 해임절차에 들어가게 됐다’(고 통보받았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이혜훈 의원은 조 전 사장 사퇴 이후 세계일보의 사장과 편집국장, 편집부국장 인사에 대해 “이렇게 조 전 사장을 찍어내고 신문사의 넘버원, 투, 쓰리는 최씨의 사람들로 채웠다고 밖에는 생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국회 탄핵소추안에는 “박근혜 대통령 및 그 지휘 감독을 받는 대통령비서실 간부들은 오히려 최순실 등 비선 실세의 전횡을 보도한 언론을 탄압하고, 언론 사주에게 압력을 가해 신문사 사장을 퇴임하게 만들었다”며 헌법상 언론의 자유(헌법 제21조 제1항) 및 직업의 자유(헌법 제15조)를 침해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회는 논란 끝에 탄핵안에 ‘세월호 7시간’ 문제도 적시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당일 오전 8시52분 소방본부에 최초로 사고가 접수된 시점부터 중앙재해대책본부를 방문한 오후 5시15분경까지 밝혀지지 않은 대통령의 7시간의 행적을 말한다. 탄핵안에서는 이에 대해 “사실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직무유기에 가깝다”며 “헌법 제10조에 의해 보장되는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오리무중 상태였던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최근 언론 보도와 국정조사 청문회 등을 통해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다. 최근 청와대가 공개한 통화 기록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이 시간 동안 최소 11차례의 통화를 했다. 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는 총 7차례, 그 외에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모철민 교육문화수석,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의 전화보고도 받았다. 정오부터 오후 1시쯤까지 평소처럼 혼자 점심식사도 했다. 오후에는 미용사를 불러 머리 손질을 받았다. 박 대통령의 헤어스타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90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청와대는 머리 손질을 받은 시간이 20분에 불과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자세한 행적에 관한 의혹을 해소하지 못했다.

-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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