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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제3지대 신당 가시화되나] ‘한나라당 창업자’ 김덕룡이 본 정계개편과 개헌 

“손학규·김무성·안철수 함께할 수 있다” 

글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정리 김가은 인턴기자 / 사진 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지난 대선에서 패한 친노, 사실상 탄핵당한 친박은 국민에게 빚과 책임 있어… 87년 개헌 때 40일 만에 일사천리 처리, 의지만 있다면 대선 전에도 충분히 가능해

▎김덕룡 전 정무장관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창업자’로 평가된다. 김 전 장관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제3지대 신당의 필요성과 개헌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15대 대선을 한 달여 앞둔 1997년 11월 초. 김영삼 대통령이 신한국당을 탈당하자 이회창 총재와 ‘꼬마 민주당’ 조순 총재는 합당에 착수했다. 대선 후보는 이회창, 총재는 조순으로 교통정리됐고, 이기택·김윤환·박찬종·김덕룡은 공동선대위원장이 됐다. 어수선하기만 하던 당이 일사불란하게 정비됐다.

합당은 ‘YS의 오른팔’이었던 김덕룡(75) 전 정무장관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김 전 장관은 “아들의 병역문제로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7%까지 떨어지길래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이 후보와 담판을 했다. 이 후보는 나를 ‘한나라당의 파운딩 파더(Founding Father·창시자)’라고 불렀다”고 회고했다.

새누리당 전신 한나라당의 ‘창업자’였던 김 전 장관은 2012년 대선 때 탈당과 함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자신이 세운 집을 스스로 박차고 나온 셈이었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고 김 전 장관은 회고했다.

12월 13일 월간중앙이 김 전 장관을 그의 서울 방배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사실상 탄핵당한 친박이나 지난 대선에서 패한 친노는 국민에게 빚과 책임이 있다”며 “협치·연정을 위해서는 다당제·다원화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요즘 근황이 궁금하다

“방송·신문·잡지 등의 인터뷰 요청이 밀려오는데 일절 거절한다. 하지만 한 곳과는 인터뷰를 통해 소회를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월간중앙 인터뷰에 응했다. 나는 YS정부가 들어선 93년 750만 해외동포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들을 연결해주기 위해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라는 단체를 만든 뒤 이사장을 맡아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다. 2012년 대선 이후 정치문화를 바꾸기 위해 ‘민주와 평화를 위한 국민동행’이라는 시민운동단체를 만들었다. 지난 11월 2일에는 김명혁·박종화 목사와 법륜 스님, 이종찬 우당기념관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 각계 원로 21명과 함께 거국내각 구성 등을 제안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YS의 오른팔,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는데 요즘 정국을 보는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이번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야~ 어떻게 저렇게까지 민주화를 초토화시키고 나라의 품격을 훼손할 수 있는가’라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얼마 전(11월 22일) YS 서거 1주기였는데 이런 사태가 나서 더욱 참담했다.”

김 전 장관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창업자 아닌가?

“97년 14대 대선 때 이회창 씨가 신한국당 후보로 선출됐을 때만 해도 지지율이 굉장히 높았다. 그런데 나중에 아들의 병역문제 의혹 때문에 지지율이 7%까지 떨어졌고 당내에서는 후보교체론이 제기됐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꼬마 민주당’과 합당이 필요하겠다 싶어 이 후보와 담판 후 전권(全權)을 부여받았다. 그렇게 해서 한나라당이 출범하게 됐다. 당명(黨名)은 조순 씨가 지었지만, 이 후보는 나를 ‘파운딩 파더’라고 불렀다.”

그런데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탈당과 함께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자기가 지은 집, 자기 발로 뛰쳐나온 격인데.

“내가 만든 정당을 내가 뛰쳐나온 것 맞다. 나는 민주화를 위해 청춘을 바친 사람이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민주화를 역행시킨 사람이다. 내 양심이 도저히 허락할 수 없었다. 또 박근혜 당대표 시절 일주일에 6일 정도 가까이에서 지켜봤는데 국정에 대한 인식, 이해도, 운영능력 등이 너무 떨어졌다. 그래서 박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그 길(탈당)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문 후보를 지지하는 대신 그 당(민주당)의 노선이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기에 입당은 하지 않았다. YS와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문정수 전 부산시장, 최기선 전 인천시장, 심완구 전 울산시장 등이 문 후보를 지지한 것도 같은 이유다.”

개헌 거부는 국민적 요구에 불응하는 것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국가운영체제와 개헌’을 주제로 열린 보수-진보 합동토론회에 참석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김부겸 민주당 의원이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덕룡 전 정무장관, 정세균 국회의장, 김 전 대표, 김 의원. / 사진·박종근
탄핵 후 정국을 어떻게 예상하는가?

“여야가 정부와의 협치를 통해 경제위기·안보위기를 극복하고 정국을 잘 운영해주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정치권이 잘할 거라는 믿음은 없다. 그래서 앞으로 우여곡절, 그리고 방황과 혼란이 거듭될 것으로 생각한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그런 혼란을 또 촛불이 정리해주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촛불의 민의를 정치권이 수렴해줘야 하는데, 정치권이 자초한 혼란을 거꾸로 촛불이 정리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대의민주주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언제까지 광장민주주의에 맡겨야 하는지 정치인들이 반성해야 한다.”

개헌과 정계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보는가?

“이번 촛불정국이 대통령 하나 바꾸는 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촛불 민심이라는 것이 결국 불평등·불공정·분노 아니겠는가? 또 한편으로는 이런 촛불정국을 초래한 구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달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그런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면 결과적으로 개헌이라든가 정계개편은 따를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런 방향으로 정국을 이끌어갈 지혜와 힘이 우리 정치권에 있느냐 하는 의문은 든다. 상당기간 당파 간 밀고 당기기와 다툼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개헌도 하고, 정계개편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70% 이상이, 전체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200명 이상이 개헌에 찬성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정치권이 모든 비판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일부 정치지도자 중 개헌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시대적·국민적 요구를 거부하면 국민적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문재인 전 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인 개헌 반대론자 아닌가?

“특정 인물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유력 정치인이란 사람이 개헌에 부정적·소극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정치인이 가야 할 길이 아니다.”

개헌이 왜 필요하다고 보나?

“지금 사회는 다양화되고 이익집단은 다분화되고 있다.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통로와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다당제로 가는 게 옳다고 본다. 여야가 연합정치·협치를 하게 되면 정치와 정책에 일관성이 생긴다. 독일의 경우 단독정부를 세울 수 있었을 때도 연정(聯政)을 했다. 우리 사회도 많이 변했다. 정당이 다당화돼야 연합정치 내지 협치가 가능해지고, 그러려면 결국 헌법이 개정돼야 한다. 독식이 가능한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는 서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

지금도 개헌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개헌은 후보의 대선 공약으로 될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후보들이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집권 후에는 하나같이 흐지부지됐다. 집권 초기 국정에 반영할 정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개헌 논의를 할 수 있겠는가?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우겠다는 것은 개헌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독일식이네 오스트리아식이네 하는 개헌 관련 연구는 매우 많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의 합의다. 87년 개헌 때는 9월 17일 발의해 40일 만인 10월 27일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지금이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선(先) 개헌, 후(後) 대선’으로 가야 제왕으로 시작해 식물로 끝나는 (대통령의) 역사적 불행이 반복되지 않는다.”

1987년 5년 단임 대통령직선제 개헌은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9월 17일 헌법개정기초소위에서 초안 완성 ▷9월 18일 헌법개정안 발의 ▷10월 12일 국회 의결을 통해 개헌안을 완성했다. 이어 10월 27일 국민투표를 거쳐 93.1%의 찬성으로 현재의 헌법인 제9차 개정헌법이 탄생됐다.

연정·협치 위해서라도 다당화·다원화는 필수


▎1996년 6월 26일 백범 김구 47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한 황창평 국가보훈처장, 서영훈 한국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이홍구 신한국당 대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박철언 자민련 부총재, 김덕룡 정무장관(왼쪽부터)이 진행자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개헌에 찬성하는 국회의원들마다 원하는 안(案)이 다르다. 그런데도 가능하단 말인가?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가장 합의하기 좋은, 그리고 현실적인 절충안으로 가면 된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내각제를 선호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말한다. 우리 국민은 대통령만은 직접 뽑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통령선거·국회의원선거·지방선거 중 최소 두 개는 정치일정을 합치는 게 낫지 않겠나? 개헌을 통해 이런 문제도 풀어야 한다.”

제3지대를 주목하는 사람이 많다. 친박·친문 빼고 중간에 있는 사람들끼리 함께하자는 건데, 어떻게 평가하는가?

“제3지대든, 제4지대든 다 좋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사실상 탄핵당한 것 아닌가? 그러나 보수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 집단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탄핵정국에서 큰 소득은 진짜 보수와 수구보수를 식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퇴보시켰던 ‘박정희 신화’가 끝나가는 물꼬를 마련해줬다는 것이 촛불정국이 가져다준 또 하나의 큰 가치라고 생각한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김무성 전 대표 등 새누리당 비박계, 국민의당,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이 함께할 수 있다고 보는가?

“연대가 꼭 그런 모양으로 이뤄질는지 모르겠지만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앞으로 대선이 있기 때문이다. 친노는 지난 대선에서 실패했고, 친박은 대통령과 함께 이미 탄핵당했기 때문에 양쪽 다 국민에게 빚과 책임이 있다. 따라서 (친박·친노를 제외한 세력들의 연대) 가능성은 열려 있으며, 또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제3지대 신당이 뜬다면 이를 상도동·동교동의 재결합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까?

“과거 YS·DJ 때 민주화추진협의회가 탄생했다. ‘민추협 정신’이라는 것은 지역주의와 과거의 인연을 떠나 국가를 위한 대동단결이었다. 당시 활동했던 상도동·동교동 사람들은 나이를 봤을 때 이제는 정치세력화의 동력이나 중심이 되기는 어렵다. 다만, 정계개편이 추진될 경우 서로 합심해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일에는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체제 이후 새로운 대한민국 만들기에 상도동과 동교동이 기여하고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1980년대 초반 야당의 양대 산맥이었던 김영삼·김대중은 정치활동이 제한돼 있었다. 김영삼은 가택연금 상태였고 김대중은 미국망명 중이었다. 1983년 김대중·김영삼의 8·15 공동선언 발표를 계기로 양 진영이 결집했고, 84년 5월 18일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했다. 민추협은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이듬해 2월 제12대 국회의원선거를 준비했다. 공동의장은 김영삼과 김상현이 맡았다. 김상현이 해외 체류 중인 김대중을 대신한 것이다.

‘선(先) 개헌, 후(後) 대선’으로 불행 막아야


▎1987년 6월, 대선 후보 단일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동교동을 찾아가는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와 김덕룡(왼쪽) 비서. / 사진·중앙포토
정계개편을 위해 김 전 장관이 물밑에서 움직인다는 이야기도 들리던데.

“오랜 정치활동 기간 인연을 맺은 분들을 만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움직인다기보다 지금은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편이다. 내 스스로 뭐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병풍’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김무성 전 대표는 ‘상도동의 막내’다. 그런 김 전 대표가 대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킹메이커를 자임하고 나섰는데.

“포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단히 어렵고 용기 있는 결단이다. 지금 정치권에 그만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탄핵정국에서도 김 전 대표의 결단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번에는 스스로 포기했지만 그와 같은 걸음걸이로 간다면 큰 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버리면 얻고, 집착하면 잃는다’는 것을 아는 정치인 같다.”

김 전 대표는 친박·친문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과는 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정치권에는 진보·보수·중도 등 다양한 정치세력이 있어야 한다. 특히 개혁적 보수, 중도·합리적인 세력이 필요하다. 국민적 지지 속에서 그런 토대가 마련된다면 김 전 대표가 그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 아닌가?”

야당으로서는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선 관리에 부담을 느낄 것이다. 거국중립내각은 완전히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할까?

“황교안 체제는 야당이 만들었다. 그런(책임총리·거국내각) 제안이 나왔을 때 여야가 진지하게 협의해야 했는데, 야당이 사실상 보이콧했다. 이제는 시시비비를 따질 게 아니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여야가 협의해 현안을 풀어나가야 한다.”

국가의 원로로서, 선배 정치인으로서 후배 정치인들에게 조언한다면?

“정치인은 시대정신을 통찰하고 비전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화가 필요하면 민주화에 앞장서고, 탄핵이 불가피하면 탄핵에 앞장서야 한다. 늘 시대정신과 소명을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옳은 길을 가는 것이다.”

- 글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정리 김가은 인턴기자 / 사진 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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