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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리포트] 정보보호협정으로 ‘준동맹’ 관계 맺은 한·일의 속사정 

북한 잠수함의 음문(音紋), 납북 일본인 정보의 맞교환이 핵심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일본의 대북한 잠수함 정보력, 한국의 휴민트 정보력 등 윈-윈 가능한 구도… 북한 핵-미사일 전력 상승, 미국 정권 교체와 맞물려 안보협력 강화 불가피

▎2015년 10월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한·일 국방장관 회담. 양국은 2016년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을 체결했다. / 사진·중앙포토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 결석 1. 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은 가결됐습니다.”

2016년 12월 9일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었다는 뉴스는 일본마저 뒤흔들었다. 이날, 일본 외무성은 아침부터 바쁘게 돌아갔다. 오전의 정례 각의를 마친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외무성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단에 둘러싸였다.

“오늘,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 표결에 부쳐집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정지가 될 경우, 일본 정부가 올해 안에 도쿄에서 개최하려던 일·중·한 서밋(한·중·일 3국 정상회담)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기시다 외무상은 심각한 얼굴로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일·중·한 서밋을 연내에 개최할 예정은 없습니다.”

계속해서 기자단의 질문이 날아왔지만, 기시다 외무상은 기자단의 질문을 피하여 급히 자리를 떠나버렸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외무 관료에게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 대해서 질의하자, 그 역시 미간을 찌푸리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연말에 도쿄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일·중·한 서밋은 내년 1월로 예정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취임 등 3개국에서 상의해야 할 수많은 의제를 상정하고 있었다. 일본이 오바마 정권과 지금까지 진행시켜 온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파기될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어떤 식으로 한·중·일 FTA를 진척시킬 것인가의 문제 역시 중요한 의제였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3년10개월 만에 드디어 처음 일본을 방문하는 기회를 맞아 도쿄에서 차분히 시간을 들여 아베 신조 총리와 일·한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었다.”

탄핵의 또 다른 피해자 한·중·일 정상회담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체결을 규탄하는 한국의 시민단체 회원들. / 사진·중앙포토
이 관료는 북한의 도발 행위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한·일이 함께 상의해야 할 의제 역시 안보 분야에서 경제 분야에 이르기까지 산적해 있다고 강조했다. 그 때문에 의장국인 일본은 당초 12월 4일과 5일의 일정을 한국과 중국 측에 제시했었다. 이 관료는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나갔다. “10월 하순부터 박근혜 스캔들이 일어나면서 박 대통령이 외유나 국제회의에 출석할 수 없는 처지로 몰렸다. 일본에 주도권을 빼앗기는 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중국 측도 ‘한국 측의 방향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어 리커창 총리의 방일을 미뤘다. 그래서 일본은 12월 19일, 20일이라고 하는 일정을 한국과 중국에 다시 제안했다. 역시 한국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준비하면서 일·중·한 서밋을 논의할 계재가 아니었다. 한편,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국정 혼란을 핑계로 리커창 총리의 방일을 꺼렸다. 이렇게 해서 일·중·한 서밋은 부득이 내년으로 연기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12월 9일 오후 3시. 일본 방송국들은 한국어 동시통역을 투입해 한국 국회의 탄핵 소추안 표결 과정을 전국에 생중계했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일본의 국민들은 ‘대통령이 대통령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라는 심정으로 지켜봤다.

아베 신조 총리의 집무실의 텔레비전은 켜져 있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후 시간을 거의 다 소비해가며 12월 15일 방일하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게 대한 전략회의에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국장, 외무성의 스기야마 신스케 사무차관, 아키바 다케오 외무심의관, 하라다 치카히토 일러관계담당대사, 하야시 하지메 유럽국장,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각료, 카타세 히로후미 경제산업심의관, 고마쓰 신지로 문부과학심의관, 마츠시마 히로미치 농림수산심의관, 다바타 히로시 국토교통심의관, 하기우다 고이치 관방부장관, 기타무라 시게루 내각정보관 등 일본 정부의 대 러시아 외교를 담당하는 간부들이 총리 관저 4층의 총리 전용 회의실에 총집결해 있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징후가 포착된 지난 6월 일본 도쿄 방위성 내 항공자위대 패트리어트(PAC-3) 부대가 요격 태세를 갖추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아베 총리는 자신의 고향인 야마구치로 푸틴 대통령을 초청해 개최하는 이번 일·러 정상회담이 아베 정권 4년 간의 성과를 묻는 중대한 이벤트로 여긴다. “북방 영토를 러시아로부터 반환받을 수 있도록 모두의 지혜를 모아 푸틴 대통령의 방일에 대비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베 총리는 간부들에게 그렇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일본 측의 요청에 등을 돌린다. 북방 영토 4개 섬 가운데 1956년의 ‘일소 공동선언’에서 반환을 약속한 2개 섬마저 일본에 반환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북방 영토 문제를 러시아 측에 어떤 식으로 제안하고, 또 러시아에 대한 경제 원조를 어디까지 허용할지를 둘러싸고 정부 내의 최종 합의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회의실 문을 노크하며 비서관이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조금 전, 한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습니다. 찬성 234표, 반대 56표….”

회의실에는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이래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아베 총리에게 박 대통령은 결코 적은 아니지만 적에 준하는 이미지를 가진 존재였다. 그것은 오로지, 아베 총리가 라이벌 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박 대통령이 밀월 관계를 쌓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특히 격노한 사건은 2015년 9월 3일에 베이징에서 열린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 박 대통령이 서방측 국가원수로서 유일하게 참가한 일이다. 이때쯤 아베 총리는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를 비롯한 미국 정부 고관과 만날 때마다 “한국은 일본과 같은 미국의 동맹국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라는 불만을 흘리고 있었다.

한국의 사드배치와 한·일 GSOMIA 체결은 동전의 양면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무수단과 같은 탄도미사일 실험을 강행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당시, 방위성의 한 간부는 필자에게 좀 더 강경한 발언을 했다.

“한국이 이러다가 정치나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군사 분야에서도 중국 측으로 기울어지지 않을까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군은 신용할 수 없기에 일·한 합동군사연습을 실시하는 것도 삼가고 있다. 일본이 이런 한국과 GSOMIA(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를 체결하는 것은 당치도 않다. 지금의 중·한의 밀월로 봐서는 일본의 군사정보가 중국 인민해방군에게 새어나갈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GSOMIA란 우호국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군사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협정이다. 한국은 미국·프랑스·러시아 등 32개 국가·지역과 협정을 맺고 있다. 한편, 일본은 미국·영국·프랑스·오스트레일리아·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와 맺고 있다.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과 ‘화해’한 것은 2015년 11월 1일, 서울에서 3년 만에 재개된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서의 일이다. 회담의 둘째 날인 2일, 처음으로 아베 총리와 박 대통령의 단독 정상회담이 청와대에서 열렸다. 이때 박 대통령은 한국과 미국의 흔들림 없는 군사동맹을 강조하여 아베 총리를 안도시켰다. 그리고 이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은 일본에 “한국과 위안부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 미·일·한 3개국 방위체제 구축을 위해 움직여달라”고 강하게 압박해 왔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도 같은 압력을 가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9월 25일, 워싱턴에서 열린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과의 미중정상회담은 남중국해 문제와 사이버테러 문제를 둘러싸고 완전 결렬되었다. 미국은 일본과 한국을 끌어들여 중국의 급격한 부상을 막으려고 했다. 아무튼, 같은 해 12월 28일에 기시다 외무상이 방한하여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졌다.

2016년 새해가 밝은 2월 7일에는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을 ‘아군’이라고 확신하는 길보가 전해졌다. 이날,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도발에 대비하여 한국군과 미군이 합동으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를 위한 협의를 시작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베 총리는 “드디어 박 대통령이 우리 쪽으로 돌아와주었다”고 미소를 띄웠다. ‘우리 쪽’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 및 북한과 대항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 진영이라는 의미다.

일본에 있어서 한국의 사드배치와 한·일이 GSOMIA를 체결하는 것은 같은 차원의 문제였다. 왜냐하면 양쪽 모두 미국-일본-한국이라고 하는 3각동맹으로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안보체제 조직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미국의 구상은 2012년부터 시작됐다. 2012년 연초에 미국 국방성이 발표한 ‘새로운 국방전략지침’은 오프쇼어 밸런싱(Offshore Balancing, 역외균형) 전략을 가까운 미래의 동아시아에 적용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 일본의 방위성 간부는 당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미군이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창과 방패의 양쪽 역할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북한군에 대해서는 한국군이 방패의 역할을 하고, 또 중국군에 대해서는 자위대가 방패의 역할을 하게 할 것이다. 창의 역할을 하는 미군은 최신예 무기를 동맹국인 한국군과 자위대에 대여해주며 동아시아 전선에서 서서히 물러날 것이다. 그리고 유사시에는 앵커리지·괌·하와이의 3곳의 군사기지에서 전선으로 파견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 오프쇼어 밸런싱 시스템을 진척시키기 위해 동아시아에는 많은 것이 정비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 예를 들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해 한국군이 미군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북한군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사드 배치에 관하여 한·일 양국 정부는 2016년 7월 8일 “한국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한 데 이어 9월 30일에는 “경상북도 성주에 배치를 결정했다”고 입지를 공개했다. 이렇게 해서 중국과 북한의 맹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2017년 말까지 성주에 사드를 배치한다는 계획이 세워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 GSOMIA 체결 서명 50분 전에 전격취소


▎지난 11월 서울 용산구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한편, 일본에 대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1945년 일본의 패전 후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만든 평화헌법이 방해가 되고 있었다. 헌법 9조는 전쟁의 포기와 군사력 보유의 포기를 명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헌법을 가지고는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을 대항하는 게 곤란했다. 게다가 1945년 당시의 미국은 일본이 이 평화헌법을 개정할 수 없도록 96조에 ‘개정을 위해서는 국회의원에 3분의 2이상이 동의하고, 국민투표로 과반수를 얻어야 한다’는 높은 장벽을 끼워 넣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미국은 일본에 헌법 개정을 앞두고 우선 안전보장 관련 법안을 정비하도록 요구했다. 이것은 미군을 대신해서 자위대가 중국 인민해방군에 대항하기 위해 전선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임시조치였다. 실제로 아베 정권은 각고의 노력 끝에 2015년 9월 안전보장 관련 법안을 성립시켜 2016년 3월부터 시행하게 됐다. 이와 더불어 미국을 사령탑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2개의 프런트, 즉 한국과 일본의 제휴가 필요했다. 또한 이를 위해 불가결한 것이 바로 양국에서 GSOMIA를 체결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4년 전 GSOMIA 체결 교섭 과정에서 일본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직면했다. 일본 외무성에서는 “50분 전 취소사건”이라고 부르고 있다. 외무성 관계자가 그 전말에 대해 들려주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2012년 6월 29일, 일본 외무성에서 일·한 GSOMIA 체결을 위한 서명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국 측은 식이 시작되기 50분 전이 되어서 ‘국내의 여러 현안을 고려해서 체결을 연기한다’고 일방적으로 통고해왔다. 한국 국내에서는 일본과 GSOMIA를 체결하면 자위대가 한국을 공격해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어이가 없는 나머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동시에 아무리 같은 동아시아의 미국 동맹국이라고 해도 그런 나라와 협력할 수 없다는 것을 통감했다.”

그런데 북한이 지난 9월 9일 5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을 마친 상태에서 1년에 두 번씩이나 감행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매번 핵실험을 할 때마다 핵무기의 능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즉, 일본과 한국이 서로 으르렁대고 있을 여유가 사라진 것이다. 9월 18일 뉴욕에서 한·미·일 3개국 외무장관회담이 열렸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장관, 케리 국무장관,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북한에 대한 제재 강화와 한·미·일 3개국의 동맹 강화를 한 목소리로 제창했다.

“이때 케리 장관은 일본과 한국이 한시라도 빨리 GSOMIA를 체결하도록 요청했다. 한국 측도 ‘4년 전과는 국내 환경이나 국제 환경이 다르다’며 조기 체결에 대해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일본 외무성 관계자)

10월 27일에는 도쿄에서 한·미·일 3개국 외무차관 협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미국의 토니 블링큰 국무부 부장관은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성 사무차관과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에게 “일본과 한국에서 조속히 GSOMIA를 체결하기를 바란다”고 거듭 요청했다. 다음 날인 28일에는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이 기자회견에서 “GSOMIA의 조기체결을 목표로 한국 측과 상의하여 조속히 교섭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발언했다.

이렇게 해서 11월1일 양국 간에서 GSOMIA를 체결하기 위한 협의가 4년 만에 도쿄에서 재개됐다. 참가자들은 양국의 과장급에 해당되는 외교와 방위담당자들이었다. 앞서 일본 외무성 관계자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침 10월 20일 북한이 중거리탄도미사일 ‘무수단’의 발사시험을 강행하는 등 도발 행위를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과의 협의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사실 GSOMIA의 세부사항에 대한 교섭은 이미 2012년 6월 시점에서 양국이 합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체결의 성사 여부는 결국 양국의 의욕에 달린 문제였다.”

이렇게 해서 11월 23일 서울에 있는 한국 국방부에서 한민구 국방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GSOMIA의 서명식이 거행된 것이다. 이날 일본은 ‘근로감사의 날’로 법정공휴일이었다. 그래서 다음 날인 24일 밤, 도쿄의 방위성 근처의 요츠야 3초메(四谷三丁目)의 일본 요리점에서 방위성 간부들이 비밀리에 모여 축배를 들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드디어 미국-일본-한국이라고 하는 동아시아 방위 틀의 기초가 굳어졌기 때문이었다.

11월 말, 필자는 방위성 간부에게 한국과 GSOMIA를 체결한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아래는 그 일문일답이다.

방위성에서는 이번 GSOMIA 체결을 어떻게 보고 있나?

“방위성과 자위대 내부에서는 한국과 GSOMIA를 체결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일·한 양군을 비교했을 때, 이후 확실하게 일본에서 한국으로 제공되는 정보가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강한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체결했다고 하는 것이 정직한 속내다.”

북한 무수단 미사일 고체연료 탑재 시도하는 듯


▎지난 9월 중국 항저우 G20정상회의에 참석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영접자의 안내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미국은 왜 일본에 강한 압력을 가해온 것인가?

“먼저 북한군이 잠수함 능력을 급격하게 발전시키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크다. 올해 4월 23일 북한은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 한 발을 함경남도 신포 해상에서 발사해 약 30㎞를 비행케 했다. 계속해서 7월 9일 다시 한 번 신포 해상에서 SLBM 한 발을 발사하여 수㎞를 비행했다. 8월 24일에 역시 신포에서 발사된 SLBM은 약 500㎞나 비행했다. 잠수함으로부터 발사되는 SLBM 실험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비행거리를 늘리고 있다는 점과 동시에 미사일에 고체연료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북한 미사일에 사용되는 연료는 액체연료가 주류였다. 액체연료의 경우 노동 미사일은 발사 수 시간 전에, 대포동 미사일이라면 발사 10시간 전부터 산화제를 주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그 주입 상황을 포착할 수 있기에 대응이 용이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세 번이나 발사 실험을 한 SLBM에 사용된 연료는 고체연료였던 것이다.

북한은 올해 액체연료에서 고체연료라는 일대전환을 이룬 것이다. 예를 들면 북한군은 6월 22일에 무수단 미사일 두 발을 원산에서 발사했다. 첫 번째는 약 100㎞를, 두 번째는 약400㎞를 비행하며 실험은 성공했다. 북한군은 통상 한 번이라도 실험에 성공하면 더 이상 실험을 계속하지 않고 실전배치한다. 그런데 올해는 10월 15일 무수단 미사일의 두 번째 발사 실험을 감행, 20일에는 세 번째의 실험을 이어나갔다. 이것은 SLBM에서 성공한 고체연료로 바꾸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즉, 미군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 이상으로 북한군의 대량살상무기가 급격하게 능력을 향상시켜 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한미합동군에 자위대의 군사력을 새롭게 추가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GSOMIA 체결을 통해 미군과 한국군이 자위대에 기대하고 있는 정보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한국이 우리 측에 요구하고 있는 정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잠수함의 음문(音紋)이다.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지문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모든 선박은 다른 음문을 가지고 있다. 우리 자위대는 잠수함을 포함한 북한군의 모든 함정의 음문을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군은 파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음문을 제공해 줄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한국에서 제공받으려 하는 정보는 무엇인가?

“우선 두 가지 정보를 원한다. 첫째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정보다. 우리도 고도의 기술을 구사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지만, 아무리 해도 얻기 힘든 정보가 있다. 그것은 ‘휴민트 정보’(인간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다. 한국에는 매년 1500명 전후의 탈북자가 북한에서 망명해 온다. 대부분은 유용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일반인들이지만, 그중에는 틀림없이 탄도미사일 정보를 가진 북한군 병사나 기술자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온 군사기밀 정보는 때로는 어떤 첨단기술이 취득한 정보보다 가치가 더할 때도 있다. 둘째 역시 ‘휴민트 정보’인데 탈북자가 제공하는 일본인 납치 피해자에 관한 정보다. 잘 알려진 대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는 현재 고착상태에 빠져 있다. 그 최대의 이유는 일본 측에 ‘휴민트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온 탈북자가 일본인 납치 피해자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면 납치 피해자 문제는 급진전을 볼지 모르는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일본과 한국은 GSOMIA를 체결하고, 각각의 동맹국인 미국을 매개로 해서 ‘준동맹 관계’가 성립됐다. 그러나 이를 통해 북한 및 중국의 군사력과 대항할 수 있는 군사적 협력관계를 체결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 최대의 이유는 첫머리에서 언급한 박 대통령의 직무정지다. 이에 대해서 12월 중순에 일본 외무성 관계자를 취재한 일문일답이다.

한국의 새로운 정권은 일본에는 비극?


▎12월 1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촛불시위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 사진·뉴시스
박 대통령이 직무정지가 된 것을 일본 정부는 어떻게 보고 있나?

“일본으로서는 사드 도입과 GSOMIA체결로 일·미 진영으로 돌아와 준 박근혜 정권을 환영하고 있었기에 대단히 유감스러운 결과다. 일단 헌법재판소가 180일 이내에 판단을 내린다고 하지만, 2004년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부활의 가능성은 그다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으로서도 박근혜 정권은 사실상 끝난 상태라고 보고 다음을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보는 한국의 차기 정권은 어떤 정권이 될 것 같은가?

“현재로서는 유감스럽게도 지극히 비관적이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문재인·반기문·이재명·안철수·박원순 등 5명은 모두 박 대통령과 비교하면 반일적인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5명 가운데 누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경우에 일본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높나?

“5명 가운데 누가 승리해도 박근혜 정권이 이룩한 성과를 모두 부정하려고 할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우선 2015년 12월의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려고 할 것이 틀림없다. 그 다음에는 11월에 막 체결된 GSOMIA도 파기하려 할지도 모른다. 한국의 좌파(진보)는 ‘GSOMIA를 체결하면 일본군이 다시 한반도를 공격해 온다’고 하는 시대착오적인 주장하고 있다. 또 일본과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사드 배치도 백지 철회될 가능성이 있다. 어떻든 간에 한국의 새로운 정권은 일본에게는 비극이고 중국에는 희소식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만약 한국의 새 정부가 그것을 강행하려고 해도 동맹국인 미국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11월의 대통령 선거에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승리했다면 미국 정부는 지금까지의 입장과 다름없는 자세를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당일에 지금까지 일·미가 힘들게 이룩해온 중국에 대한 경제적인 포위망인 TPP를 파기할 것을 선언했다. 앞으로도 미국에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일·미 동맹이나 한미동맹을 뒤흔드는 정책도 서슴없이 실행할 것이다. 즉, 사드나 GSOMIA문제에 있어서도 한국과 일본을 강력하게 압박해오던 미국의 국내정세가 어떻게 변할지마저 읽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돌이켜보면 GSOMIA의 체결은 2015년의 국교수립 50주년을 맞이한 한국과 일본이 새로운 50년을 향한 ‘우호의 출발점’이 되는 상징적인 것이다. 이것이 파기된다면 양국 관계 역시 앞으로 순탄하게 가지 못할 것이다.

한국의 국정 혼란에 일본 역시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내정이 아시아에 끼치는 영향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지대하다. 때문에 한국 국정의 일거수일투족을 일본이 식은땀을 흘리며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덧붙이자면 21세기에 있어서 일본은 한국의 적이 아닌 최대의 아군이라는 사실도.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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