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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결선투표 도입 된다면? 19대 대선 가상대결의 승패 

절대강자는 없다!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다자구도에서 우위를 점한다고 양자대결 승리 장담 못해… 문재인-반기문-안철수 후보 모두 승기 잡을 가능성 있어

▎올 대선에 나설 예정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왼쪽부터).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층 회의실에서 제18회 백봉신사상 시상식이 열렸다. 백봉신사상은 독립운동가이자 의정활동 과정에서 ‘한국 신사’로 불린 고(故) 라용균 전 국회부의장의 뜻을 기리는 상으로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 투표를 통해 수상자를 선정한다. 그래서인지 공동으로 대상을 수상한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 유승민 개혁 보수신당(현 바른정당) 의원은 온화한 표정으로 정치 소신을 점잖게 피력하는 것으로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이들과 함께 신사의원 ‘베스트 10’에 뽑힌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사뭇 달랐다. 안 전 대표는 정치권을 향한 날 선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총체적 난국이자 개혁과제가 산적해 있으며, 탄핵 표결에서 봤듯이 국회의원들이 마음을 모으면 어떤 개혁법안 통과도 가능하다고”고 운을 뗐다. 그는 나아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던 초등학교 시절의 격언은 지금 국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면서 “지금 할 수 있는 개혁을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것은 결국 개혁을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결론에 이르러 그는 “지금은 진보 개혁, 보수 개혁을 말하기 전에 기본을 확립하는 게 중요하다”며 여·야를 동시에 질타했다. 며칠 뒤인 1월 3일 충남도당 개편대회에서도 그는 “오늘 할 수 있는 개혁을 내일로 미루는 사람이 수구”라고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안 전 대표가 비판한 ‘내일로 미뤄지는 개혁 과제’ 중에는 그가 정치적 명운이라도 건 듯 한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도 포함된다. 결선투표제란 선거에서 1위 후보가 과반수를 득표하지 못하면 상위 1, 2위 두 후보를 대상으로 재투표하는 제도를 말한다. 안 전 대표는 평소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려면 적어도 50% 이상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그래야 선거 때마다 되풀이 되는 선거공학적 연대가 아닌 결선에서 ‘국민에 의한 연대’가 가능하다는 논리도 동원했다. 연말연초 몇몇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결선투표제 찬성률이 50%를 넘어서는 등 명분도 앞선다는 판단이 저변에 깔려 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는 이번 대선이 조기 대선으로 치러질 경우 결선투표를 실시하기엔 시일이 너무 촉박하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대선 주자군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헌법 개정 사안이라며 신중론에 서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결선투표는 다이내믹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선호하는 유권자들의 심리를 자극하기에 앞선 1위 후보는 꺼려한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국민의당은 이를 당론으로 채택한 상태이고, 채이배 의원 대표발의로 결선투표제를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안 전 대표가 백봉신사상 수상식에서 개혁을 말하던 그날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도 결선투표 도입을 뼈대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치상황 따라 결선투표 입장 바뀔 수도


▎결선투표제에 적극적인 안철수 전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
야권에서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김부겸 의원 등이 이 제도 도입에 긍정적이다.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와 같은 친노 계열의 주자를 제외한 야권의 잠룡들이 결선에서 승부를 가르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두각을 나타내는 경쟁주자가 없는 새누리당이나 바른정당은 결선투표에 미온적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인위적인 합당이 역풍을 야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후보 간 연대가 가능한 결선투표제 관련 기류가 향후 전향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로선 도입 가능성이 유동적인 결선투표제가 만에 하나 현실화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피 말리는 후보자간 합종연횡이 본격화되고 탈락 후보들의 지지층을 흡수하려는 정책 공약 개발이 불을 뿜을 것이다. 결선에 오르지 못한 후보별 지지층의 성향은 결선 진출 후보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 각 지지층들의 속마음을 가상의 결선투표제에 투영한다면 표심의 속성을 살펴볼 수 있다. 또 선거 막바지에 난무하는 흑색선전과 무분별한 인신공격도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해봄 직하다. 결선에서 누구와 손잡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도를 넘어서는 네거티브 공세를 자제할 게 자명한 까닭이다.

대선 캠페인은 인물과 정책의 장점을 부각하는 쪽으로 펼쳐질 개연성이 높아진다. 또 소수정당 후보들도 진영 내 단일화 압력에서 벗어나 끝까지 완주할 기회를 잡게 된다. 어차피 최종 승부는 일대일 대결로 펼쳐지는 결선투표에서 가려지는 만큼 그때 특정 후보와 힘을 모아도 늦지 않다는 얘기다.

월간중앙은 대선 결선투표 도입을 전제로 주요 후보 가상대결 시나리오를 6개로 압축해봤다. 대선주자들이 즐비한 더불어민주당 후보,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 후보, 보수 내지 여권을 상징하는 후보 등 3자 구도에서 대선이 치러진다는 전제 하에 결선투표 양상을 점쳤다. 올해 초 지지도로 따진다면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국민의당은 안철수 전 대표, 보수 내지 여권을 상징하는 후보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앞선다. 이들 3인이 대선에서 다툰다는 가정 아래 두 사람이 겨루는 결선투표의 향배를 분석했다.

1. 문재인-반기문 맞대결 구도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새해 첫날을 광주에서 보냈다.
최근의 지지율 추세로 국한해본다면 실현 가능성이 높은 조합이다. 새해 들어 실시된 언론사별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전 대표는 대략 25%대, 반기문 전 총장은 20%대의 지지율을 보였다. 결선투표에 두 사람이 1, 2위로 올라갈 경우 탈락한 3위 후보 안 전 대표 지지층을 누가 끌어안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린다. 안 전 대표 지지층이 두 사람 중 누구를 더 적극적으로 배제하느냐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새해 들어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1등을 휩쓸다시피 한 문 전 대표는 선두에게 지지가 쏠리는 밴드웨건 효과를 발판삼아 대세론을 구축하고자 애쓴다. 2012년 대선 이후 결속력을 다져온 문 전 대표 지지층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특징으로 한다. 일부 정치학자에 따르면 “다른 주자들의 지지층은 ‘여론’의 반영이라고 할 때 문 전 대표의 지지층은 ‘태도’의 산물”에 가깝다. 정치 풍향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 게 문 전 대표 지지층이라는 뜻이다. ‘촛불민심’이라는 막강한 자산을 품은 문 전대표지만 지금도 ‘박스권 지지율(20% 안팎의 정체현상)’ 탈출이라는 숙제가 거머리처럼 붙어 다닌다. 2012년 대선을 4개월 앞둔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40%대를 오간 것과 비교된다. 문 전 대표의 고정 지지층은 강고하지만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나, 결선에 진출하지 못하는 다른 후보의 지지층을 흡수하는 힘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리라는 우려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안충섭 여의도리서치 대표는 “결선투표제는 3자 또는 다자 구도보다 1위를 달리는 문 전 대표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반 전 총장은 상당히 불리한 여건에서 이번 대선을 치른다. 최순실 게이트,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 민심, 대한민국이 바뀌어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 등은 문 전 대표에게 유리한 정치지형을 제공한다. 당초 보수 쪽으로 기울어졌던 ‘대선 운동장’이 지금은 진보 쪽으로 표나게 쏠린 형국이다. 집권여당의 후원은커녕 자신의 온건·보수 이미지가 오히려 질곡으로 작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출사표를 던졌다.

문재인 후보 승리하자면 | 호남 유권자의 소외감 해소에 ‘올인’해야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국민의당 중심의 정권 창출을 역설한다.
문 전 대표는 새해 들어 광주의 상징 무등산에 올라 해맞이를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길을 달리했지만 정권교체 대의에 함께 나서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의 신년 행보에서 보이듯 안철수 전 대표와 국민의당 지지기반의 핵(核)이라할 호남 유권자들의 표심이 관건이다. 무엇보다 호남의 반문(反文) 정서 극복이 시급하다. 국민의당은 반(反)문재인 기치로 탄생했다. 호남지역에 만연한 친노, 친문 패권주의에 대한 거부감은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국민의당 독자세력화 성공에 자양분 노릇을 톡톡히 했다.

결국 정권교체론을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야권의 적자인 자신이 집권해야 진정한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는 주장은 지금도 호남에서는 울림이 크기 때문이다. 올 초 호남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는 “지금 호남의 민심은 정권교체”라며 “저와 더불어민주당이 호남의 지지에 힘입어 반드시 정권교체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다 바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나아가 1월 8일 경북 경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반기문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되면 정권교체가 아니다”라고 쐐기를 박는 등 양동작전을 펼쳤다.

노무현 정부 이후 친노진영으로부터 진한 소외감을 품어 온 호남 유권자들을 어루만지는 일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문 전 대표는 호남 언론 인터뷰에서 “서운한 점을 갖고 계신다면 저와 우리 당의 불찰이다. 호남이 소외받지 않도록 끊임없이 호남인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양해를 구했다. 그는 심지어 “호남이 차기정부의 심장이라는 것을 보여드리겠다”며 호남 지지세 확장에 총력을 기울였다.

공약 면에서도 호남에 대한 차별적 관행이 지속되면서 누적된 불균형을 바로잡는 비전과 계획이 인사, 예산, 정책 면에서 다각도로 제시될 공산이 크다.

친노 진영은 지난 대선 패배의 한 원인으로 안 전 대표의 깔끔하지 못한 마무리를 들기도 한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와의 단일화에 응하고서도 선거운동에선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등 소극적 지지에 그쳐 아쉽다는 것이다. 이번 결선투표에서는 안 전 대표의 마음을 확실히 사야 한다. 호남과 함께 안 전 대표의 지지 축을 이루는 중도 보수의 표심 공략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안보는 보수적이면서 사회·경제적으로는 개혁적인 중도 세력을 자기 쪽으로 견인해내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완성하느냐가 관건이다. 서성교 바른정책연구원장은 “지금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나 개성공단, 위안부 문제 등에서 진보적 입장을 취하는 문 전 대표지만 본선에 나서는 순간 중도 내지는 보수적 아젠다를 적극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문 전 대표는 지역적으로는 호남, 이념적으로는 중도를 본원적 자산인 진보와 한데 묶어낼 때 결선투표에서 승리를 일궈낼 수 있다고 하겠다.

반기문 후보 승리하자면 | ‘뉴DJP(김대중김종필) 연대’의 본질 파고든다


▎반기문 전 총장 팬클럽인 ‘반딧불이’는 1월 10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글로벌시민포럼 창립대회를 가졌다.
결국 문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호남의 마음을 사고, 중도의 표심을 다독이는 경쟁에 들어서게 된다. 이 경우 반 전 총장은 보수의 이미지를 얼마나 깔끔하게 재구성하느냐가 당락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

반 전 총장이 귀국 후 어떤 세력과 행보를 함께하느냐도 중요한 변수다. 비박들이 따로 살림을 차린 바른정당은 지역적으로 영남의원이 소수파다. 당 지도부에 김무성·유승민·주호영 의원 등 영남 중진이 포진하곤 있으나 수적으로는 수도권, 비영남권이 우세하다. 바른정당은 화이트컬러를 중심으로 하는 온건 보수 유권자 층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삼게 된다는 뜻이다. 반 전 총장이 바른정당과 손잡은 뒤 국민의당이 연대를 시도할 경우 호남 유권자들이 결사적으로 반기를 들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당 지도부는 ‘비(非)문’, ‘비(非)박’을 공개적으로 비토하고 있다. 뒤집으면 이들처럼 극도의 반감을 주는 정치세력이 아니면 협력이 가능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결국 국민의당이 전당대회 이후 지지율을 끌어올리면서 민주당과의 힘의 균형을 회복하면 반 전 총장이나 비박세력에 대한 호남의 거리감도 좁혀질 여지가 생긴다고 가정해볼 수 있다. 국민의당에서 ‘뉴DJP(김대중+김종필) 연대’라는 충청-호남 제휴설이 제기되는 것도 반 전 총장에겐 기분 좋은 징조다.

보다 적극적인 공략법은 문 전 대표와 호남,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 간 뿌리 깊은 정치적 앙금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당의 한 주요 당직자는 “호남의 정치세력은 기본적으로 반문(反文)”이라고 규정했다. 대선 구도가 ‘문재인’ 대 ‘반(反)문재인’으로 짜일 토양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반기문 전 총장도 호남으로부터 문 전 대표를 차단하는 데 주력하는 한편 제 3지대 세력을 모아 결선투표에 임한다면 얼마든지 승산이 있다는 게 이 당직자의 주장이다.

게다가 민주당 내에서도 친문 그룹 패권주의에 대한 반감이 고조된 상태다. 당 공식기구인 민주연구원의 개헌저지보고서는 문 전 대표를 사실상 당 대선 후보로 상정한 듯 한 내용을 담아 비문 그룹이 발끈하기도 했다. 1월 12일 귀국한 반 총장이 공항 입국장에서 패권주의와 기득권을 강하게 비판한 것도 같은 흐름 속에 있다. 친문계와 친박계를 ‘패권과 기득권 집단’으로 규정했다는 풀이와 함께 앞으로 친박·친문 세력을 제외한 제 3지대에서 세 확장에 나설 것임을 시사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국민의당 지도부와 코드를 맞추려는 시도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양측의 연대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안전판으로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이 꼽히기도 한다. 국민의당이 일관되게 추진해온 개헌을 통해 권력을 공유하고,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을 담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반 전 총장이 약속한다면 양측이 연대할 공간은 그만큼 넓어진다. 윤희웅 센터장은 “반 전 총장이 보수 이미지 혁신에 성공한다면 중도진영 후보 및 세력의 지원을 받는 형국으로 가면서 경합 구도가 조성된다”고 말했다.

2. 문재인-안철수 맞대결 구도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연대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뤘다.
제 3지대 정치세력 규합에 성공한 안 전 대표가 반기문 전 총장을 제치고 결선에 오를 경우다. 안 전 대표는 늘 “이번 대선은 안철수와 문 전 대표의 대결”이라며 “이 싸움에서 나는 반드시 이기며, 이길 이유가 100가지도 넘는다”고 장담했다. 친박계의 새누리당도 비박계의 바른정당도 다음 정권을 맡을 자격이 없고, 대선 후보를 낼 염치도 없다는 논리에 입각한 주장이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표도 언론 인터뷰에서 “그건 국민들에게 물어볼 일”이라면서도 “야권 후보 안 전 대표와 내가 본선에서 경쟁하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좋은 것”이라고 반응했다. 결국 반 전 총장을 선택한 보수와 중도 표심을 누가 파고드느냐가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자면 | 2030과 진보성향 유권자의 열정 되살린다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간 맞대결이 성사된다면 양쪽에 있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맨 왼쪽), 남경필 경기지사를 잡는 쪽이 유리해진다.
선거는 자신의 유권자들을 투표장에 많이 나오게 하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보수 유권자가 투표를 안 하거나 다른 쪽으로 이탈해서 새누리당이 패배했다고 민주당은 평가한다. 반면 2012년 대선은 보수와 진보에 총동원령이 내려졌는데 보수의 불안감이 진보의 열정을 미세하게 눌렀으며, 2007년 대선은 진보 진영이 지지층 동원에 실패한 케이스로 진단한다.

이번 대선은 박 대통령 탄핵, 최순실 국정농단에 실망한 보수 유권자들에게 반드시 투표해야 할 명분과 동력이 많이 시든 상태다. 반면 정권교체 심리가 성숙된 사회·경제적 환경은 문 전 대표에게 우군으로 자리매김한다.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2030세대에서 대선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것은 하나의 청신호다. 이들은 반드시 투표장으로 나오게 하는 데 결선 선거운동의 방점이 찍힐 것이다. 5060세대가 무조건 새누리당을 지지한다는 신화는 지난 총선에서 이미 무너졌고 이번 탄핵국면에서 가속화된 측면도 있다. 이들의 신뢰를 끌어들이는 것도 문 전 대표의 몫이다.

결선투표에 오른 문 전 대표는 현 정부와 집권당에 실망한 보수 유권자들이 마음 놓고 자신을 선택하도록 하는 방안 마련에 골몰할 것이다. 중도보수 층의 신뢰를 얻는 본격적인 행동이 요구되는 시기다. 결국 경제는 진보적으로 가되 정치적 태도나 자세는 신뢰감, 안정감을 심어주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유능한 경제정당’, ‘든든한 안보정당’으로의 변신을 꾀하게 된다. 민주연구원에서는 그 방법론으로 소득주도성장, 포용성장, 공정성장 등의 어젠다를 제시한 바 있어 결선투표에서 수면 위로 부상할 수도 있다. “민생과 국익, 나라의 구조개혁을 챙기는 중심정당으로서의 위상을 갖춘다면 길 잃은 보수와 중도 유권자 층을 일정부분 흡수 가능할 것”이라고 서성교 바른정책연구원장은 말한다.

이와 함께 안 전 대표의 근거지라 할 호남에 대한 구애도 한층 강화된다. 지난해 4월 총선이 예방주사가 됐다. 호남 몰표를 당연시하면서 전략적 투표론에만 의존하는 민주당의 호남무시 행보는 역풍을 맞았다. 2004년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서 생긴 민주당에 대한 호남유권자들의 앙금을 해소하고, 호남 몰표를 당연시하는 민주당의 오랜 습성을 반성하는 노력이 선결 과제다.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지금의 지지율 분포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의 표가 문재인 전 대표에게 간다고 보면 반 전 총장과 안 전 대표가 힘을 모아도 문 전 대표를 당해낸다는 보장이 없다”고 분석했다.

안철수 후보 승리하자면 | 중도층에서 승부 낸다


▎반기문 전 총장은 국가 통합과 대타협을 강조한다.
안 전 대표는 결선투표에서 무주공산으로 남은 보수 지지층 공략에 자신감을 가진 듯하다. 안 전 대표는 연초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과 안철수 양자구도가 형성된다면 내가 중도진영의 확장성이 크다는 점에서 자신 있다”고 단언했다. 진보의 색채가 두드러지는 문 전 대표보다는 중도 보수를 표방하는 자신이 보수층 포용에 더 유리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민주당의 공식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지난해 말 작성한 개헌 관련 보고서도 “국민의당 안 전 대표와 반기문 전 총장이 제 3지대에서 결집한다면 ‘비문 연합과 문 전 대표’의 선거로 전환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어 당의 크나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적시하기도 했다.

국민의당은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1997년 대선 당시의 지역 간 연대에 주목한다. 당시 대선에서 호남을 상징하는 김대중 후보(DJ)는 DJT(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대를 대선 승리를 지렛대로 활용했다. 박지원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당 지도부는 이른바 ‘뉴DJT연대’도 가능하다고 본다. 당시는 걸출한 인물들이 지역 간 연대를 매개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거물들이 정치 일선에서 사라진 지금은 결선투표가 이런 조합을 가능케 하는 공간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국민의당 주요 관계자는 “결선투표가 도입되면 호남 기반의 국민의당, 충청 출신의 반기문, 영남의 상징적 세력이 제 2의 DJT연대를 성사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선투표는 합종연횡이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정권창출이 제 1의 목표인 까닭에 호남과 영남의 상이한 지역적 색채는 그리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박지원 대표는 연초 호남지역 민심을 탐방하고 나서 대선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한 적이 있다.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국면에 따른) 현재의 분노에서 혼란을 원치 않으면서 합리적 처리를 바라는 국민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지지를 받으면 독자 대선 후보도 국민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안 전 대표가 호남의 강고한 지지를 바탕으로 중도 보수표를 흡수한다면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당이 정권창출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다.

결선에 오른 안 전 대표는 중도 보수 연합의 깃발을 내걸어 문 전 대표를 견제하면서 보수층의 안보 불안감을 희석시키는 정책홍보에 적극 나서게 된다. 윤희웅 센터장은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가 결선에 오를 경우 안 전 대표가 보수, 중도층 흡수 가능성을 높여 경쟁구도로 갈 수 있다”고 추측했다.

3. 반기문-안철수 맞대결 구도


▎안철수 전 대표는 양자구도 필승론을 설파하고 있다.
친노와 친박이라는 한국정치의 양대 세력이 빠진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중도를 지향하는 두 후보가 양자 대결을 펼치게 된다. 결속력이 이완된 보수를 대표하는 반 전 총장, 오갈 데 없는 진보에 올라탄 안 전 대표의 사활은 중도, 중간층 공략 성과에 좌우된다.

반기문 후보 승리하자면 | 일류 한국 만들 통합 대통령의 프레임 제시

지난해 말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보수 대통령(26.2%)보다 진보 대통령(63.9%)을 택한 유권자가 두 배가량 많았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원하는 대통령의 리더십을 바꿔놓은 결과다. 반 전 총장은 진보 쪽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안 전 대표를 상대해야 하는 처지다. 탄핵의 여파로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다수를 형성한다. 게다가 탈락한 문 전 대표와 민주당의 공식 지지후보가 누군가에 따라 힘의 균형추가 기울게 된다. 문재인 전 대표도 “반기문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것은 정권교체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문 전 대표를 지지하는 세력의 향배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셈이다.

그래서일까? 반 전 총장은 야권의 생각하는 방식대로 선거운동을 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아예 ‘새로운 운동장’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할 태세다. 1월 12일 귀국한 그가 “이제는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교체”라는 슬로건을 내건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된다. 그는 귀국일성에서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묶어 세계일류국가를 만들자”고 역설했다. 여야로 갈라져 법안 하나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는 꽉 막힌 현실에 빗댄 말이다. 또 국가통합과 대타협이 필요하고, 나라와 정치를 망쳐온 패권세력과 기득권 세력은 단호히 배격할 것임을 천명했다. 보수와 중도는 물론 진보까지 아우르는 통합 대통령의 이미지로 승부를 걸겠다는 것이다.

패권, 기득권 세력을 제외한 보수와 중도, 합리적 진보를 한데 묶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정치주도세력을 형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구상이다. 이런 프레임이 먹혀들자면 먼저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친박계가 국정실패와 과오를 인정하고 ‘나를 밟고 넘어가라’는 대승적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야권 내 특권층인 친문 등 패권세력을 무력화하고 보수와 중도를 결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안 전 대표에 비해 반 전 총장이 상대적 우위를 가진 경륜, 안정적 리더십, 포용력, 글로벌 네트워크 등도 제대로 조명을 받게 된다.

안철수 후보 승리하자면 | 야권 단일후보 대세론으로 맞불

국민의당은 안철수-반기문 대결 구도 자체를 이미 이긴 선거로 간주한다. 문 전 후보를 누르고 결선에 오른 안 전 대표가 야권단일후보라는 프리미엄에 대세론까지 업게 되리라 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문 전 대표의 패배로 친노 진영, 친문 진영은 급속한 와해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오랜 야당의 메카였던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안 전 대표 중심으로 친노 지지층이 재편되는 상황도 예상해볼 수 있다. 과거 DJ의 민주당이 그랬듯이 호남이 주도권을 잡는 정통 민주당의 부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수도권 민주당 지지세를 놓고 안철수, 반기문 양쪽이 경쟁을 벌이면 확장성 측면에서 안 전 대표가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국민의당은 자신한다. ‘진보 유권자는 반기문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믿음도 굳건하다. 게다가 영남권은 지난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 독점 구조가 깨졌다. 반 전 총장이 영남 표를 독식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중도 보수에 위치한 국민의당과 안 전 대표의 넓은 이념적 스펙트럼도 ‘동진정책’(영남권 공략)에 유리한 조건으로 꼽힌다. 결국 호남-수도권-영남 일부를 잇는 지지 벨트에 힘입어 낙승이 가능하다는 게 국민의당 시각이다.

-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1702호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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