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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토로]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이 본 탄핵정국 

“최순실 농단 알았다면 총 들고 청와대 들어갔을 것” 

글 박성현·박지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사진 김경록 기자
■ 국정원장 전격 경질 사유 몰라… 역사가 알려줄 것
■ 현 정부 위기관리 시스템으로는 한반도 통일이 돼도 걱정
■ 공동체는 와해되고 언론도 제 기능 못해 한국의 미래 암담
■ 트럼프 정부 출범 후 한미동맹의 미래는 우리 태도에 달렸다
■ 채동욱 혼외자 관련 정보수집을 사찰이라고 할 수 있나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지금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기다리던 메시지가 휴대전화기에 떴다. “현 정치상황과 개인적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질문 항목을 보내달라.”

퇴임 후 미디어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이 꼭꼭 걸어 잠근 빗장을 푸는 순간이었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초대 국가정보원장에 임명(3월)된 그는 이듬해인 5월 전격 경질됐다. 이 시기 비선실세인 정윤회·최순실 부부의 국정 개입이 본격화된 것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을 낳았으나 그간 남 전 원장은 이에 대해 가타부타 언급하지 않았다. 재임 시 직무에 관련된 사안을 입에 올리지 않겠다는 소신에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어 보였다.

월간중앙과의 단독 인터뷰는 국정공백기 안보 위기를 진단하고 한반도 주변 정세를 진단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으로 야기된 격동기 한국은 어디로 가는지, 국익우선주의자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의 동북아 질서에 어떤 파동이 일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1월 14일 송파의 한 음식점에서 오찬을 겸해 진행된 인터뷰는 4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반주로 들인 소주를 3병 비울 때까지 그는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고 거의 쉬지 않고 열변을 쏟아냈다. 지도자들의 탐욕과 무능, 기득권자들의 집단이기주의, 언론의 무책임과 선동으로 인해 공동체는 와해되고, 대한민국은 시들어 위태로워진다며 노여워했다. 영락(零落)의 길로 접어든 나라와 국민을 생각할 때면 밤잠을 못 이룬다고도 했다.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의 전모를 국정원 재임 시 알았더라면 국정원장으로서 적극 대처했을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국정원에 사찰은 고사하고, 검증 기능마저 제한되거나 주어지지 않았다”면서 사전 예방기능에 한계가 있음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말을 아꼈으나 답변 곳곳에서 회환과 아쉬움이 배어 나왔다. 북한에 대해서는 “내가 6개월만 더 국정원장에 있었다면 통일이 왔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국정원장 재임 시 최순실-정윤회 비선라인의 행보를 몰랐나?

“괜한 소리 하지마. 내가 최순실을 알았으면 권총이라도 들고 청와대 들어갔지 이러고 앉아 있겠어?”

정윤회 행적 조사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2013년 3월 22일 청와대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뒤 환담장으로 들어가는 박근혜 대통령과 남재준 국정원장(오른쪽).
국정원장 퇴임하게 된 것도 2014년 정윤회 행적을 알아본 게 뒤탈이 났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 정신 아닌 사람들이 엉뚱한 소리 하는 거야. 내가 (퇴임을 앞두고) 징계위원회라도 회부가 됐다면 (퇴임 사유를) 명확하게 알았겠지. (갑자기) 그만두라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알겠나. 나중에 역사가 얘기해줄 거다. 그런데 내가 최순실 때문에 나가(잘렸다)? 최순실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소설들 쓰지 마라.”

2014년 당시 정윤회 문건 파동에 관련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 기강비서관,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그런 취지의 말을 한다.

“그건 당신네 같은 사람들이 말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난 거기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때(2014년 5월 국정원장 재임시)는 (정윤회 문건 등이) 노출된 것도 아니다. 그렇지 않나? 내가 나온 다음에… (2014년 11월 보도됐다).”

당시 원장으로 있으면서 국정원 직원들에게 정윤회 행적을 조사해보라고 지시했나?

“노코멘트로 하겠다. 나는 개인 ‘박근혜’에는 관심이 없어.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는 보호해야 한다고 본다. 거기(헌재의 탄핵 심판)에 조금이라도 불리한 영향을 주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요즘 보니 최순실은 슈퍼우먼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공지능을 갖춘 슈퍼우먼이더라. 군사 무기 구입과 로비까지 관여하지 않은 데가 없던데? 내 아내는 하루에 두 가지 일도 동시에 하기 힘들어하는데 말이지.”

그 시절 청와대에서 정윤회와 측근 행정관들의 행적을 조사했는데.

“그건 (청와대) 내부적으로 (조사)한 것이지. 자기들끼리.”

국정원이 모를 리 없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국정원에 무제한 사찰권이나 주고 그런 말을 하라. (국정원이) 이재명 성남시장도 사찰(이재명 성남시장은 2014년 1월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과 국정원 직원들을 정치사찰에 따른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소한 적이 있다)을 못하는데 청와대를 사찰할 수 있나? (국정원의 기능에 한계가 있음에) 솔직해져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법치 놔두고 왜 거리로 나가나”


▎2003년 9월 육군본부에 대한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남재준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11년 개정된 ‘국가정보원법’ 등은 국정원이 국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초대형 사건이 터져도 국정원이 나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없다. 남 전 원장은 인터뷰 도중 현실정치를 언급하면서 거듭 요청한 사항이 있다. “헌재의 탄핵 심판에 영향을 주는 내용은 절대 기사화하지 말라.”

사찰까지는 아니더라도 막강한 정보력을 가진 곳이 국정원 아닌가?

“막강하다고? 한번 보자. 대한민국이 이런 우를 범하고 있다. 막강했던 중앙정보부는 수십 년 전의 얘기다. 감옥에 간 전 국정원장만 세 명이나 된다. 국정원 본부 방침이 뭔지 알고나 하는 말인가. ‘음주운전 금지, 국내정치 간섭금지’다. (오른손 바닥으로 탁자를 힘껏 내리치며) 뭘 더 얘기하겠나?”

남 전 원장은 이 대목에서 “내가 독한 얘기 좀 하자”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고위공직자가 축첩을 해서 애를 가지고 있는 게 옳은가 그른가”라며 채동욱 전 검찰총장 낙마를 부른 혼외자 얘기를 언급했다.

당시 국정원 직원이 채 전 총장 혼외자로 지목된 아동 신상정보를 수집했다고 해서 실형을 선고 받은 걸로 기억한다.

“공직자의 진급, 임용 심사에서 그런 사실이 나타나면 당연히 탈락했지 않겠나. (당시 국정원장이던) 내가 채동욱 전 총장의 여자를 얻어준 것도, 애를 만들어준 것도 아니다. 그게 국정원 공작이라고? 말은 바로 해야지. 지금 국정원더러 정윤회, 최순실을 왜 모르냐고 묻는가 본데 그러면 사찰권이라도 주고 그런 말을 해야 한다. 이 나라 정치하는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켠 듯 국정원을 막았어. 당시 국정원 직원이 ‘이 아이의 아빠가 채동욱이냐’고 물었다고 해서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때렸어. 그걸 사찰이라고 할 수 있나? 또 박근혜 정부 인사검증이 부실하다고 국정원을 걸고 넘어지기도 하던데 국정원에게 검증 권한이라도 주고 그런 말을 해라. 지금 (국정원이) 어디 가서 검증할 수 있나. 그런 심정에서 내가 만약 정윤회, 최순실 (농단) 알았다면 총이라도 들고 청와대 들어갔을 거라고 하는 거다. 그런 식이라면 요즘 박근혜 대통령 관련 혐의를 언론에 알리는 것도 피의사실 공표죄 아닌가.”

요즘의 탄핵국면과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심경은?

“집회를 이끄는 지도부는 민중의 대표일지언정 국민의 대표는 아니다. 국민의 대표는 국회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민중의 대표인 집회 지도부를 이끌어야 하나, 아니면 국회가 의사당을 떠나 집회 지도부 밑으로 가는 게 옳은가. 국민의 대표들이 주어진 권한을 갖고 헌정질서와 법치로 해결했어야 맞지 왜 길거리로 나가나?”

촛불광장에 있는 이들이 들으면 반발할 것이다.

“20대 소대장 시절 베트남전에서 부하가 목숨을 잃었다. 그 이후 내 인생은 덤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작전 중 전사라고는 하지만 부하를 못 데리고 왔으니까 독한 소리를 좀 들어도 괜찮다. 내가 무서운 건 하느님과 역사뿐이다. 그 외에는 두려운 게 없어. 지금 한국은 토막토막 갈라졌다. 더 가를 수 없이 쪼개진 한국에 무슨 앞날이 있겠나.”

인터뷰는 언론에 대한 비판과 불만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기자와 마주한 남 전 원장은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언론의 보도 태도에 극도의 불신을 표출했다. 먼저 “요즘 언론들은 왜 그 모양인가”라며 작심한 듯 발언을 쏟아 냈다.

어떤 면에서 그렇게 보는가?

“언론의 역할은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지 판단하는 게 아니라고 본다. 지금 언론은 북치고 장구치고 판단해서 선동한다. 그건 언론의 기능이 아니다. 사실을 객관적으로 쓰지도 않고. 일제강점기 조선의 언론은 사훈을 걸고, 생명을 내놓고 진실을 전달했다. 요즘 언론은 추구하는 정의(正義)가 없다. 객관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 스스로 주장하는 정의는 편견에 불과하다.”

1991년에 멈춘 시계를 차고 있는 쪽이 수구세력


▎2013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개혁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남재준 원장.
우리 사회의 여론을 전달하는 기능이 언론의 역할 아닌가?

“지금 ‘우리’라고 했나? 한국에 우리라는 게 있다고 보나. 원래 우리는 역사·문화·전통·관습·감성 등을 함께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라는 구심점이 없어졌다. 자기 이익만 챙기고 편견, 자기 주장만 난무할 뿐 컨센서스라는 게 안 보인다. 공동체가 와해됐다. 집안에 가장이 있나, 사회에 어른이 있나, 국가에 지도자가 있나. 없잖아. 다 각자도생이다 보니 ‘우리’라는 개념은 실종된 것이다.”

이를 시대적 흐름이라고 말하는 건 현실도피적일까?

“어느 사회든지 공산주의가 침투하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집단의 해체다. 뭉친 조직을 와해시켜 개개인을 공산당이 직접 통제한다. 집단 중에 가장 강력한 응집력을 가진 가족마저도 뿔뿔이 갈라 놓겠다는 것이지. 공동체는 목표를 공유하는 집단인데 ‘우리’라는 개념이 없다 보니 목표 자체가 제각각이다. 언론이 이를 바로잡기는커녕 부추기고 앉아 있으니 제 기능을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개개인의 취향이나 지향점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미국 뉴스위크 편집장을 지낸 파리드 자카리아가 쓴 <자유의 미래(The Future of Freedom)>를 보면 자유의 가치가 결여된 민주주의를 우선시하는 사회는 대단히 위험하다고 나온다. 히틀러의 제 3제국이 대표적이다. 근데 북한도 민주주의를 표방하는데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인민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뿐이다. 도대체 이 땅(남한)에서 운동한다는 사람들이 뭘 추구하는지 궁금하다. 자유민주주의인지, 사회민주주의인지, 인민민주주의인지…. 평등만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는 질적인 평등을 강조하지만 인민민주주의는 양적인 평등을 우선시한다. 요즘 세태는 보수라고 하면 거두절미하고 수구 꼴통으로 치부한다.”

보수의 본령은 뭔가?

“보수는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아니다. 변화를 추구하되 합리적인 길을 찾는 게 보수다. 기존의 관습, 전통, 문화, 역사의 토대 위에서 사회변화 추세에 적응하는 것이지. 진보는 이 토대를 뛰어넘는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고. 1991년 구소련 해체 이후 공산주의 혁명의 시계는 멈춰섰다. 이때 멈춘 시계를 여전히 갖고 있는 사람이 진보냐 수구 꼴통이냐. 진보가 말하는 혁명적 변화라는 게 진정한 진보의 가치에 부합하나. 20년도 더 전에 폐기된 이념을 품는 것이야말로 수구다. 세상은 변하는데 한 발짝도 변하지 않으려 들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이후 나라의 오랜 폐단과 부조리를 척결하고 양극화 해소, 사회통합을 위한 사회적 ‘리셋’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 자식들과 후손이 걱정이 된다. 해방과 정부수립 이후 어떻게든 자식 교육시키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친 부모 세대가 이만큼 나라를 건설했지. 자신보다는 자식의 미래만 보고 미친 듯이 살았던 세대다. 그 부모 세대를 일러 요즘 자식 세대는 무식하다고들 말한다. 영어, 컴퓨터, 스마트폰 다룰 줄 모른다고? 지식이 지혜를 능멸하는 사회는 반드시 망하게 돼 있다. 그뿐인가. 헬조선이다 뭐다 해서 (서울시는) 청년들에게 실업수당(청년활동지원비)을 50만원씩 지급했다. 이는 후손들의 내일을 뺏어다가 오늘 나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나라에서 무슨 희망이 있을까? 걱정이다.”

현실을 너무 비관적으로 재단하는 건 아닐까?

“여기는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야 할 땅이다. 미래 세대가 긍지를 갖고 문화를 창달하고 잘살도록 지도자들이 고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뻔히 망하는 걸 알면서도 오히려 (포퓰리즘을) 옳다고 선동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조선산업만 해도 진작에 했어야 할 구조조정을 미뤄 미래 먹거리를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린 게 한국의 지도자들이었다.”

대한민국 생존을 위해 희생하는 집단 있나?


▎2013년 12월 북한 장성택 숙청과 관련해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장으로 이동 중인 남재준 원장.
공동체 윤리가 흔들린다는 지적에 공감이 간다.

“조직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조직의 룰(Rule)과 구성원의 롤(Role)이다. 더불어 살면서 조직의 질서를 지키고 역할을 다 하는 게 바로 사회다. 요즘 젊은 세대들을 이끄는 주류적 흐름은 모든 것에 대한 부정인 것 같다.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강연했듯이 공자님도 사람이 살 만한 사회가 무엇인가를 여덟 자로 갈파했다. 바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다. 임금답고 신하답고 부모답고 자식다우면 좋은 사회란 것이다.”

한국은 최고 리더가 흔들리다 보니 나라가 통째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나라 걱정 안 하는 리더는 없다. 그러나 지도자는 정신과 가치를 묶어 지향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의 10년 미래, 100년 대계를 정리해서 국민을 설득하고 끌고 가야 하는데.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은 여론을 쫓아다니기에 급급해한다. 정치는 국가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다. 국가 목표는 생존과 번영이고 이를 국익이라고 한다. 즉,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달성하는 하나의 수단이 정치일진대 우리는 정치가 어떻게 돼 있나? 목표가 돼 있다. 정치인은 배지를 달고, 정당은 권력을 잡는 걸 정치라고 여긴다. 그건 정치가 아니다. 수단이 목표를 변질시킨 것일 뿐. 지금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집단이 있나? 지금 정치는 정치도 아니다. 정당도 아니다.”

남 전 원장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나는 휴전선에서 군인으로 40년 일생을 보냈어. 그게 내 인생의 전부야. 자랑스러워해야 돼. 그런데 눈이 안 감길 것 같다”며 탄식했다. 그는 “내 자식이, 손자들이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면 정치를 직접 하면 어떤가?

“(가볍게 받아 넘기며) 당신이 시켜주라~.”

의지는 갖고 있나?

“내가 의지를 갖고 있는 게 뭐가 중요한가.”

정치는 흙탕물에 발을 담그는 일일 수도 있다.

“나는 정치는 못하고 통치를 할 수 있다. 통치는 지구상 누구보다 잘할 수 있어.”

십상시 농단 근절하지 못하면 패자(覇者) 자격 없어.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 씨가 2016년 10월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철권 통치를 할 것 같다.

“필요하다면, 필요하다면. 리더십도 여러 종류다. 민주형 리더십, 인민형 리더십, 권위형 리더십 이중에서 어떤 게 옳은가. 이런 질문은 엑스(X)야. 리더십은 상황이 결정해. 독재적 상황에서는 권위주의형으로 가는 거고, 민주적 상황에서는 민주적으로 해야지. 1분 내에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할 수 있어야 리더십이지.”

진정한 지도자가 되려면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나?

“첫째 천하의 인재를 구해야 하고 둘째 그 인재를 구해도 신임하지 않으면 안 되며, 셋째 그 인재에게 권한을 위임할 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론 십상시 같은 이들의 농단을 근절하지 못하면 패자(覇者)의 자격이 없다.”

북한을 잘 아나?

“북한처럼 (속내를) 읽기 쉬운 나라가 없다. 보통의 나라는 변수가 수십 가지에 이르지. 그런데 북한은 정권이익이냐 국가이익이냐, 이 두 가지로 나뉜다. 북한은 당연히 정권이익을 선택한다. 북한의 군인은 중위 때부터 별을 달 때까지 한 분야를 파고 들기에 베테랑이다. 그런데 왜 변화와 개혁을 못할까? 바로체제의 허구성 때문이다.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선다? 천만에! 나설 수가 없지. 김일성은 개인사를 날조했지만 백성이 믿었고 순종했다. 김정일도 나름 자기역량과 권력투쟁을 통해 그 자리를 차지한 거라 극단적으로 민심에 어긋나는 일은 안 했어. 김정은은 그런 과정 없이 정점에 올랐다.”

국정원장을 한두 해 더 역임했다면 통일이 가능했을까?

“아니. 6개월만 더 있었어도 (통일)했어. 자신해. 장성택(전 노동당 행정부장)이 그랬고(숙청됐고), 다른 장군들도 그랬지. 지금 김정은은 은행 인질범과 같아. 우리가 북한을 포용한다는 건 인질범에게 수혈해주는 것과 같은 이치야. 김정은 붕괴는 간단한 문제다.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자금줄을 죄고, 심리전을 펼치면 된다. 현실정치에서는 이런 것들을 안 해서 문제다. 북한이 지금 상태로는 개혁·개방 어림도 없다. 체제 유지가 안 되기에 못하는 것이다. 김정은 일가가 집권하는 동안엔 개혁·개방은 불가능하다.”

현 시점의 국가 리더십,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평가한다면?

“(국정원) 나올 때 생각이 든 건데. 그때 (통일)했으면 5000년 역사의 역적이 될 뻔했어. 이 정부는 위기관리 능력이 없는 정부니까. 그럼 내란이 일어났겠지. 알아? 하느님이 보우하사 (그렇게 안 된 것이다.)…. 현 정부는 통합위기관리 능력이 없어.”

어떤 점이 취약한 건가?

“시스템의 문제지. 여야 (정치권의 문제를) 아울러서 말하는 거야. 그때는 그렇게 통일시키려고 했었지. 자칫 내란이 일어날 수도 있고 나라를 중국에다 갖다 바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물론 극심한 위기를 잘 관리할 지도자가 나오면 1년 정도면 북한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국정원 퇴임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말인데 좀 충격적이다.

“그건 국회 속기록에도 있다. 내가 국정원 나오면 누가 제일 좋아할 것 같나. 김정은이 제일 좋아할 것이고, 둘째는 내가 좋아할 거라고 했어.”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은 1969년 육사 25기로 임관해 41년간 군에 몸을 담은 ‘정통 군인’ 출신이다. 군 복무시절뿐 아니라 국정원장 임기 내내 ‘남재준표(表)’ 원칙주의로 통했다. 하도 꼿꼿이 허리를 펴고 다닌다고 해서 ‘꼿꼿재준’이라는 애칭이 따랐다. 그의 투철한 ‘군인정신’은 역대 국정원장과 차별화되는 포인트였다. 한국사회에서 성공한 엘리트면서도 인생 역정이 고달픈 이유이기도 하다.

육군참모총장과 국정원장 등 중책을 역임했다. 자서전 같은 걸 준비하나?

“아버님이 공무원이라 늘 돈에 쪼들렸다. 그래서 한번은 대들기도 했다. 아버님 하시는 말씀이 ‘야, 그래도 너희 몸 속엔 부정한 피가 한 방울도 없어!’였다. 나도 참모총장 전역할 때 ‘ 내 자식 몸에는 부정한 피가 없다’고 자부했고…. 자서전? 쓰려고 했다면 돈 좀 벌었겠지. 내가 장군 별을 달았을 때 아버님이 그러셨어. ‘평생 군대 밥을 먹은 처지에 회고록 같은 건 남기지 말라’고 말이지.”

세종시와 유신 사과 문제로 박근혜 후보와 얼굴 붉혀


▎2015년 6월 계룡대에서 해군본부 간부들을 대상으로 강연 중인 남재준 전 원장.
선출직이나 장관 입각 제의도 있었을 법한데.

“국방장관, 국회의원 제의가 왔는데 안 받았어. ‘새가 썩은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지 않듯이 선비는 썩은 나무에 기대지 않는 법’이라고 아버님께 배웠다. 아버님은 늘 ‘산을 오를 때는 내려갈 때도 생각하라’고 하셨다. 내가 아마 그 제의를 받았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나오셨을 거야.”

2007년, 2012년 박근혜 의원 대선캠프에 참여해 정책 조언을 한 동기는?

“군을 살리려고 간 것이었다. (참여정부) 육군참모총장시절이었다. 총장 임기 4년을 보장해줄 테니 장군들 물갈이를 요구하더군. (내가 거절했으므로) 결과는 뻔했겠지. 안 되니까 다시 군인사법 개정을 들고 나왔다. 그런 걸 막기 위해 조건부로 (박근혜 의원 대선캠프를) 도와준 것이다. 나는 정당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내가 뭘 하겠다고 나선 게 아니므로.”

그 뜻을 이뤘나?

“(보수 정권 교체를 통해 장군 물갈이와 군인사법 개악) 결국 막았잖아. 나는 그때 나라를 살린 거야. 요즘 촛불집회에서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석방 얘기가 나왔다는데. 지금쯤(통진당이 해산되지 않고) 조직적으로 움직였으면 뒤집어졌겠지. 나는 20대 소대장 시절 이후 빚진 마음을 살고 있다.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부하들, 비무장지대 교전 중 순직한 부하들, 사단장과 참모총장 시절 죽어간 부하들…. 그들에게 진 빚을 안고 산다. 난 지금 죽어도 괜찮아. 하지만 부모 세대들이 피 흘려 이룩한 나라, 우리가 피땀으로 지킨 나라를 김정은에게 갖다 주는 거는 정말 보지 못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한.”

캠프 활동을 하면서 박근혜 의원과 부딪친 적은 없나?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이전을 백지화하려는데 박근혜 의원이 반대했을 때다. 세종시 취소 결정은 잘한 결정이었어. 적의 위협을 두려워해 반대 방향으로 수도를 이전한 나라 중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업무 효율도 형편없이 떨어진다. 그래서 세종시 이전을 고집하는 박 의원에게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어. 또 한 번은 박 의원이 유신체제를 사과하고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길래 그랬어. ‘내가 존경하는 건 박 의원 당신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이다. 우리 후손들이 살아가려면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이 있어야 한다. 그분의 딸이라서 내가 여기 온 것이다. 모든 국민이 박정희 대통령 얼굴에 침을 뱉어도 자식인 당신은 그러면 안 된다.’ 나는 내 관점과 신념으로 결정하고 행동한다.”

군인의 명예는 어떤 것인가?

“(군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 소속 상급자와 토론한 적이 있다. 전쟁터에서 죽어갈 때 군복의 명예는 내 생명보다 소중하다고 했어. 군인들이 죽어갈 수 있는 건 내 조국이 정의로운 조국이니까 가능하다고 그랬어. 그 사이 세월이 많이 흘렀다. 지금도 나는 조국에 충성할 거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혁명도 할 수 있다. 총칼도 들 수 있어. 조국이 무너지는 걸 그냥 두지는 않아.”

어떤 일들이 퇴역 장군을 좌절케 한 것인가?

“내 나이 고희를 넘겨서 한두 가지 일에 절망하겠나. 언제부턴가 진실이 그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이 지극히 걱정되더라. 예를 들어볼까. 언론에서 미국산 전투기 부품을 비싸게 구입했다고 혹독하게 긁은 적이 있다. 미국이 독점 공급하는 부품의 가격은 부르는 대로 줘야 한다. 부품 공장 세우는 비용보다는 훨씬 저렴하니까. 그걸 알면서도 대서특필하는 게 언론이야. 그 전에 충분한 설명을 듣고서도 그렇게 썼어. 북한은 아주 싼 값에 만드는 전차를 우리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만들면서도 성능은 떨어진다고 군을 아예 좀 도둑 취급을 하는 이들도 있어. 북한의 인건비, 원료비, 생산비와 한국의 그것이 다르다는 거 뻔히 알면서도 그래. 무지, 편견의 소치든가 아니면 의도적으로 군대를 와해시키고자 비방하는 것이지. 급격한 전투력 저하를 불러올 모병제도 마찬가지의 수준에서 거론되고 있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전혀 다른 진실이 전달되는 경우가 그렇게 많은가?

“(대북)포용정책만 해도 그래. 우리가 북한을 포용하자고 하는데 그건 말이 안 돼. 포용은 힘 센 자가 약한 자를 끌어안고 참아주는 것인데 지금 북한은 우리를 나라로 쳐주지도 않는데 무슨 포용인가? 제 정신이 아니다. 북한은 핵보유국이고 ICBM도 가졌어. 사단도 증강시켜 80개가 넘어. 그런데 한국은 군대 규모도 줄이고, 국방비도 감축하고…. 누가 이길까? 뻔하잖아. 그래서 절망하는 것이다.”

남북 간 체제 대결은 아주 오래된 숙명과도 같다.

“독일의 군사 전략가 클라우제비츠가 그랬다.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는 두 집단이 충돌할 때, 유혈을 피하고자 하는 쪽은 유혈을 불사하는 쪽에 의해 반드시 정복된다고.”

북한 핵 대응을 위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놓고 한·미·중 3국의 신경전이 고조되는데.

“국회의원들이 중국에 가서 사드 배치 반대한다고 하던데 중국 눈치를 보는 사대주의 아닌가? 집안 문제를 왜 외부로 끌고 나가나. 제대로 된 집안이 아니다. 어떤 국회의원은 미국까지 가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하라고 외치고. 이게 무슨 국가인가.”

중국은 얼마 못 가 분열, 그날을 대비해야


트럼프 미 정부 등장 이후 한미동맹의 미래를 진단한다면?

“트럼프 정부가 신(新)고립주의로 간다고들 하는데 원래는 먼로 대통령이 제일 먼저 고립주의를 택했지. 그 다음이 닉슨 대통령이고 지금은 트럼프가 그렇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국의 국익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동맹에는 세 가지 조건이 따른다. ▷공동의 목표·가치 ▷공동의 이익 ▷상호신뢰 말이다. 당신이 미국인이라고 전제하고 우리나라의 동맹태도를 한번 보라. 어떤가?”

가치와 이익이 흔들리는 건가?

“동맹의 미래는 우리한테 달린 것이다. 트럼프에게 달린 게 아니다. 미국은 영토적 야심이 없는 나라다.”

사드 배치를 놓고 한·중이 갈등을 빚는다. 중국이 여러 방면으로 한국을 압박해오는 형국이다.

“중국은 5000년 역사에서 늘 패권을 추구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른다)’ 전법을 통해서였지. 어느 프랑스 신부가 그랬다. ‘나는 중국을 무서워하는 나라를 이해할 수 없다. 미국과 한국이 그런 것 같다. 특히 5000년 동안 인접한 중국과 투쟁해서 자기 역사를 지켜온 한국이 중국을 왜 두려워하는가’라고 말했다. 이 신부가 보는 중국은 이렇다. ‘큰소리 당당하게 치면 존중해주고 알아서 기면 거만하게 구는 나라’라는 것이지. 중국은 얼마 못가 분열될 것이다. 이때 한국에서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통일해서 고토(故土)를 회복할 것이고, 진보정권이 나온다면 남북 연방제로 가서 종국엔 중국의 동북 4성으로 전락할 것 같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꼭 군인으로 태어날 거다.” 인터뷰 마치고 자리를 일어서던 그가 던진 말이다. 인터뷰 중에도 남 원장은 ‘평생 군인’이었음을 재차 언급했다. 인터뷰 절반 이상을 할애한 소재는 ‘국가’였고, ‘조국’이었고, ‘대한민국’이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불렀던 노래는 애국가 후렴부분인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였다고. 부인이 몰고 온 중형 소나타에 몸을 싣던 그는 취재진을 향해 거수경례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 녹취 정리 | 김가은·신승민 인턴기자
- 글 박성현·박지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사진 김경록 기자

[박스기사] 취재후기|‘꼿꼿재준’ 줄담배에 퇴임 후 10여 년간 전세살이 - “융통성은 방책의 다양성이지 처세 요령과 달라”

“드르륵!”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남달랐다. 고희를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소주 3병을 내리 마시면서도 얼굴 색 눈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그의 특징으로 ‘철저한 자기관리’, ‘해박한 지식’, ‘나이에 비해 젊은 기력’을 꼽은 이유를 알 만 했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검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터뷰 장소는 송파구 문정동 근처 한 중식당의 룸이었다. 고급 레스토랑과는 거리가 있는 작은 간판을 내건 식당이었는데,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들르는 단골집이라 한다. 자택이 근처인 남 전 원장은 10여년 간 문정동에서 전세(와 반전세)로 살고 있다.

평생 딱 두 번 신차를 샀다. 참여정부시절 육군참모총장을 끝으로 군에서 물러나는 전역식에서 관용차를 거부하고 부인이 모는 중형 소나타를 타고 귀가했다. 4년 전에 새로 바꿨다는 차종 또한 소나타다.

월급(연금)의 절반은 경조사비로 나간다고 한다. 유독 ‘빚지는 것’을 싫어해서다. 외부초청 강의도 웬만하면 거절한다. 강의를 나가면 ‘모시려는’ 사람들이 많아 이들에게 또 다른 빚을 지기 때문이다. 받았으면 꼭 갚아야 하는 게 그의 신조다. 법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영하권으로 뚝 떨어진 날씨였던 이날, 줄담배를 피우는 그는 ‘식당에서 금연이 원칙’이라며 외투도 걸치지 않고 밖으로 나가곤 했다.

‘뼛속 깊이’ 원칙주의자가 된 배경은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배재고 재학 당시 육군사관학교 원서를 써줄 체육교사가 “넌 가정교육이 덜 됐다”라며 부모를 탓하자 상을 엎고 나와 버렸다.

이후 2년간 아버지의 소개로 아르바이트를 한 곳은 다름 아닌 어묵공장, 서울역 공중변소 청소부, 철도원, 공중전화 청소부 등이었다고. 고위관료부터 껌팔이, 소매치기, 지게꾼 등 대한민국의 속살을 두루 경험했다. 질서와 원칙이 중요한 세상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남 원장은 “주변에서는 나보고 융통성이 없다고 하지만 융통성은 방책의 다양성이지, 처세의 요령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천하의’ 남재준 전 원장도 초등학생인 손자 앞에서 영락없는 할아버지였다. 현안에 대한 적절한 비유를 할 때면 줄곧 손자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손자와의 대화로 세대의 간극을 좁혀가는 화법을 아는 듯했다. 그는 자신을 ‘영화 <국제시장> 세대’라며 손자와의 대화 한 토막을 소개했다. “할아버지, 영화 <국제시장> 봤어?” “할아버지가 그 영화에 출연했는데 뭐 하러 보러 가니.” “어? 할아버지 못 봤는데?” “이 녀석아, 방한모 쓰고 깡통 들고 ‘초콜릿 기브 미’ 했던 게 할아버지야.” “어? 이상하다. 그 아이는 할아버지 하나도 안 닮았던데?”

201702호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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