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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기획]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애 ‘마지막 인터뷰’ 공개 

“‘권력의 자기통제’와 ‘법의 지배’가 문화로 자리 잡기 바랐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 서거 5개월 전 봉하마을 서재에서 3시간 반 동안 진행… 솔직하고 거침없는 언변은 80년대 운동권 대학생의 뜨거움이 살아있는 듯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전모가 드러날수록 촛불집회에서 등장한 ‘이게 나라냐?’는 자조 섞인 한탄이 가슴을 때린다. 국가 비전은커녕 강남 졸부 아줌마의 천박한 치맛바람 같은 행태에 시민들은 화병이 터져 쓰러질 지경이다. 때를 맞추기라도 한 듯, 하필 이러한 때 등장한 인터뷰 한 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다. 지금의 정치상황과는 너무나 다른, 가슴 벅찬 비전과 그 세세한 실천 방법론이 거기에 담겼다.


▎2008년 12월 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애 마지막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대통령이 된 것 자체가 진보”라고 자평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5개월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 자체가 진보라고 평가하면서 그런 진보적 의미를 임기 동안 계속 이어나가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저는 대선까지는 잘했지만 그 후에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시민들의 역량을 계속 동원하고 조직하지 못했습니다.”

자부심과 회의가 교차한다.

“저의 정부는 시민들의 조직과 참여에 의해 탄생했으므로 그 역사적 사명을 완수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민주주의를 더 진전시켰어야 했는데 가시적 성과를 많이 내지 못했습니다.”

8년 만에 공개된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는 2008년 12월 8일 이뤄졌다. 퇴임한 지 약 10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그로부터 5개월 후 그가 서거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호주국립대 김형아 교수가 노 전 대통령 고향 봉하마을을 방문해 그의 서재에서 3시간 반 동안 인터뷰했다. 이를 김 교수가 최근 학술지 <저널 오브 컨템퍼러리 아시아(Journal of Contemporary Asia)> 온라인판에 영문으로 게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와 한국에서의 노무현 현상(President Roh Moo-Hyun‘s Last Interview and the Roh Moo-Hyun Phenomenon in South Korea)’이라는 제목의 평론 속에 일문일답 인터뷰가 포함돼 있다. 전체 25쪽 중 17쪽이 일문일답이다. 오는 3월 발간되는 같은 제호의 오프라인 학술지에도 실릴 예정이다.

그런데 8년간의 침묵을 깨고 인터뷰가 세상에 나온 시점이 묘하다. 김 교수가 <저널 오브 컨템퍼러리 아시아> 편집장과 논의하며 인터뷰 게재 시기를 결정한 것은 2016년 4월이라고 한다. 이 학술지는 채택된 논문을 온라인으로 먼저 띄우고, 종이 책자는 그 후에 나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이 인터뷰도 온라인에 먼저 내고, 오프라인은 김 교수의 희망대로 3월호에 출간될 것이라고 통보받았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최순실 사태가 터진 것이다.

“지난해 4월 제가 <저널 오브 컨템퍼러리 아시아> 편집장에게 인터뷰의 출판을 동의할 때는 한국의 정치상황이 이렇게 극적인 상태에 부닥칠 것은 상상하지 못했지요. 최순실 스캔들이 터질 줄 몰랐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인터뷰가 정치적으로 휘말리는 것을 원치 않아 지난 8년을 침묵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상상 밖의 정치적 상황에서 인터뷰가 나온 것 같아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볼일을 본 뒤 자전거를 타고 사저로 돌아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언변을 이 인터뷰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순수해 보인다. 1970∼80년대 운동권 대학생들의 뜨거움이 살아있는 듯하다. 순수함은 인간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덕목이다. 최순실 사태로 드러난 인간들의 온갖 추저분한 백태를 보라. 우리는 그 순수성을 잊고 사는 듯하다. 그런데 일반인이 아니라 한 나라의 최고결정권자라면 어떨까? 대통령 주변에 널려 있는 온갖 순수하지 못한 군상의 진위를 변별하고, 만백성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나가려면 순수함 이상의 그 무엇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이 인터뷰가 이뤄진 2008년 12월 8일을 전후한 정치·사회적 이슈는 ‘박연차 게이트’였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며 그 칼끝이 노 전 대통령을 향해 가던 무렵이다. 그해 12월 22일 노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 씨와 박연차 태광그룹 회장이 기소됐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난 2009년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 출두했고, 그 후 한 달도 안 된 5월 23일 타계했다.

김 교수는 본래 박정희 시대 연구자다. 박정희 시대 추진됐던 중화학공업정책연구서인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 유신과 중화학공업>(일조각, 2005)의 저자이기도 하다. 노 전 대통령 인터뷰를 추진한 동기에 대해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현대사는 박정희와 노무현, 그 두 축(two poles)이 중심을 이룬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노무현 씨가 대통령이 된 후에서야 그에 관해 자료를 읽었을 뿐 그전에는 전혀 아는 바도 없었고 그럴 만한 동기도 없었지요. 혹자는 박정희와 김대중을 중심으로 현대사를 보지만, 저는 박정희와 노무현을 이해하지 않고는 현대 한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뷰 내용은 노 전 대통령 자신의 대통령 임기에 대한 회고, 국내정치와 남북관계,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와 관계, 동북아시아의 미래와 한·일관계,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등으로 구성됐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주요 요소로서 ▷권력층의 자기 통제와 법의 지배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 ▷자유와 평등 등을 꼽으면서 “임기 내 얼마나 많은 진보가 이뤄졌는지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2007년 대선에서 보수가 승리한 것에 대해서는 “한 나라에서 10년 만에 행정부의 교체가 이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선은 새로운 후보에 대한 평가이지, 전임자의 평가가 아닌데, 두 가지는 자주 혼동되고 있다”며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내비쳤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앞 나무에 노사모 회원들이 내건 희망 리본과 노 전 대통령 사진.
진보진영에서조차 자신을 비판한 데 대해선 진보진영이 능력 이상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 자신이 중도실용주의를 받아들인 점 등이 결합되면서 자신에 대한 불만이 커져갔다고 설명했다. 언론과의 갈등에 대해선 피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서 “사람들에게 언론의 벌거벗은 진실을 드러내고 싶었지만 그것은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고 털어놨다.

남북관계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대북정책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다르지 않으며, 그것을 따르고 더욱 확장시켰다고 했다. 햇볕정책이란 표현을 쓰지 않은 이유는 “북한이 햇볕이라는 단어와 의미를 불편해 했기 때문”이고 “상대방이 의심스러워하는 이름을 계속 사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햇볕정책은 참고, 기다리고, 양보하고, 신뢰를 쌓는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 관계가 경색돼가는 것을 우려했다. 특히 “개성공단 같은 사업은 한 번 닫히면 회복되기 어렵다”며 걱정하는 대목은 요즘 상황과 맞물려 주목된다. 남북관계에서 자신의 목표는 “북한이 남한으로부터 전기를 공급받고, 러시아에서 오는 가스 파이프라인을 북한에 건설해 남한까지 연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반미 노선을 표방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강조하면서 “의견차이는 많았지만 불편한 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또 “예상했던 것과 달리 미국은 일방적으로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미국은 우리의 의견을 존중했고 우리도 일방적으로 미국에 주장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네오콘과 한국 보수 언론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내보였다. “갈등과 불평은 미국 네오콘들 사이에서 나왔다. 그리고 한국 언론은 그것을 서울과 워싱턴의 갈등인 것처럼 포장해 보도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과 미국 정부 사이에 갈등은 없었다.”

미국의 정부 운영에 대해 강자의 성공신화를 중시한다면서 비판적 시각을 보인 반면 유럽에 대해선 지속가능한 공존을 모색한다면서 유럽식을 선호한다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서는 “국가주도경제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며 “문제는 발전국가 모델에 대한 모든 것이 권위주의적 통치를 하는 국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뷰 전문을 축약해 소개한다.

-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201702호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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