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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보고] 고령화 시대를 활용하는 일본의 노하우 

이노베이션을 통해 고도성장을 꿈꾸다 

글·사진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노인의 지혜, 경험을 살리고 노동력 수입 통해 인구론적 모순 완화… 정년 70세로 상향, 인공지능 개발이나 사무자동화 통해 노동력 보충

▎연말연시 복권당첨은 일본의 노인들이 기다리는 특별 이벤트다. 긴 행렬의 손님으로 넘쳐나는 긴자(銀座)의 복권 판매소.
신년 들어서기 무섭게 2017년의 키워드에 관한 얘기가 곳곳에서 들린다. 2016년도를 표현한 키워드도 가물거리는데, 관심은 신년에 닥칠 세상으로 몰려가고 있다.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만, 사실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키워드는 ‘검증’이다. 미래가 아닌 과거사 연장선으로서의 현재진행형 키워드에 불과하다. 순수한 내일이 아니다. 과거를 단죄하기 위한 미래일 뿐이다. 대통령선거, 재벌 개혁, 사드(THAAD) 배치, 위안부 소녀상…. 신년에 들어서는 즉시 들리는 갖가지 소식은 하나같이 내일로 미뤄놓은 어제의 숙제에 불과하다. 빈정댄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것을 통괄하는 2017년도 키워드로 ‘과거사’가 수위에 서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나아가길 두려워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시간이 신년의 초상화로 굳어지는 듯하다.

미래를 위한 미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인구론은 필자가 판단하는 2017년 한국 전체를 흔들 키워드 1순위다. 출생률 감소, 정년, 고령자대국, 국민연금, 만혼, 독신 증가, 청년 취업, 대학경쟁률 등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경제학적 관점에서의 올해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인구론이다. 검증이나 소녀상에 이르는 정치·역사적 차원의 키워드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피부로 느끼는 문제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곧바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인구론은 다르다. 지금 당장 현실로 와 닿는 일상으로서, 즉각 체감·체득할 수 있다. 당장 밖으로 나가보라. 거리·지하철·버스·커피숍·식당 어디를 가든 고령자들이 넘친다. 외모를 보면 고령자인지 여부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젊은 오빠들’이지만, 무료 지하철 이용객은 고령자로 분류되는 65세 이상이다. 대학 경쟁률이 1대1, 아니 지원만 하면 누구라도 입학이 가능한 1대 0.9로 내려앉을 상황도 10년 내에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취학률이 떨어지면서 선생 1인당 학생 수의 비율이 나날이 줄어드는, 북구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초선진국형 교육구조도 급속히 등장하고 있다.

파고다에서 종로 3가 인도로 진출한 고령자 노점상


▎늙은 노인의 나라 일본 긴자의 데이코쿠(帝國) 호텔은 요즘 시골 출신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
인구 자체가 줄고, 인구비율이 왜곡되면서 나타난 온갖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분출하는 것이다. 고령자 인구 증가와 출생률 저하 문제는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볼 수 있는 아시아의 공통분모 중 하나다. 그러나 한국이 직면한 상황은 고령자 대국 일본이나 중국보다도 한층 더 심각하고 급속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다르다. 한 세대 걸릴 문제가 한국에서는 불과 10년 만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준비를 해도 모자라는 판인데 아예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것이 인구론을 대하는 한국 내 인식인 듯 하다. 슬로건은 무성하지만, 국가·사회적 대응에 무심하고 개인 차원의 문제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지난해 겨울, 종로3가의 거리를 걷다가 1950년대 풍경을 연상케 하는 노점상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 이미 닥친 고령자 문제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기억에도 새로운 소니 워커맨을 필두로 죠다쉬 가방과 신세계 구두와 의류 등의 잡화류 노점상들이 종로3가 인도에 넘쳤다. 가장 싼 것이 1000원 정도로, 비싸도 1만원을 넘지 않는다. 물건 파는 사람들은 대부분 70세를 넘은 듯하다.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들 대부분도 고령자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무심한 표정을 통해 고령자 노점상들이 이미 일상화된 모습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술에 취해 아예 노점상 주변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노점상 불법 여부를 떠나 일흔 살을 넘긴 고령자들의 생존현장이 서울 한복판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게 와 닿는다. 종래의 파고다공원 주변만이 아닌, 마침내 종로3가 인도까지 진출한 것이 고령자 노점상이다. 내년 겨울 고령자들의 노점 영역이 과연 어디까지 확산될까?

일본은 인구론 연구에 관한 한 세계 최고를 달리는 나라다. 눈앞의 문제가 아니라, 발등에 떨어진 문제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인구론이란 개념은 영국 고전학파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가 도입한 것으로, 18세기 말 이래 경제학의 한 분야로 받아들여지는 학문이다. 인구론에서 맬서스는 인류가 창조해낼 기술 발전을 무시한 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인구문제에만 주목한다. 인구 증가에 비해 식량 부족이 만성화되면서 모든 세상이 망할 것 같다는 논조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엉터리인 경제서’란 비판도 받고 있다. 18세기 말 아이폰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인구라는 요소를 경제학 가운데 독립된 분야로 올렸다는 점에서 맬서스의 위업은 남다르게 평가된다.

100만 부 팔려나간 <인구와 일본경제(人口と日本経済)>


▎100엔은 실버그룹 소비의 마지노선이다. 100엔 이상은 아무리 물건의 질이 좋아도 무관심의 영역에 들어간다.
일본의 인구론은 총론이 아닌 각론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고령자대국, 출생률 감소, 만혼 같은 얘기는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상황파악이나 문제인식은 이미 끝난 상태고, 어떻게 하면 이미 터진 재앙을 풀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나 실천이 활발하다. 지금 당장이란 심정이다. 얼마나 적극적인지는 아마존닷컴 재팬에 들어가 출간된 책을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 검색창에 ‘인구’라는 키워드를 쳐보자. 총 4775건의 일본어 국내서적이 등장한다(1월 12일 기준). 같은 시기 한국의 교보문고에 들어가 인구를 키워드로 한 국내서적 규모를 살펴봤다. 507건이다. 양적으로 볼 때 일본의 인구론에 관한 연구는 대략 한국보다 9배가량 많다. 그러나 양이 아니라 질적으로 들어가보면 한국은 일본의 100분의 1 정도에 그칠 듯하다. 일본의 경우 앞서 설명했듯이 이미 각론 차원의 실천서로서의 책이 주종이다.

<고령사회에 있어서의 지방철도와 농업의 생존전략> <2040년 전멸될 비즈니스 모델 전망> <‘참가’가 가져다 줄 인구감소 사회의 희망> <인공지능(AI)를 통한 고령사회 극복 방안>…. 총론 차원의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전투에 들어가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교본(敎本)’으로서의 책이다. 한국의 경우는 대부분이 일반론 수준이다. 출생률 저하, 고령자 대국이 경제·사회적 나아가 정치·문화적으로 얼마나 부정적 인지에 대한 얘기가 주류다. 맬서스의 인구론에 대한 번역서도 수없이 많다. 아주 드물게 각론에 관한 책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번역서다.

지난해 일본 내 베스트셀러 가운데 경제학 분야 1위를 차지한 건 <인구와 일본경제(人口と日本経済)>란 책이다. 도쿄(東京)대 경제학교수 요시가와 히로시(吉川洋)가 저자로, 대략 100만 부 가까이 팔렸다고 한다. 경제학 관련 서적이 100만 부 단위로 팔린다는 것은 세계역사에서도 유례 없는 대신기록이다. 장수, 이노베이션, 경제성장이란 부제를 달고 있으며 주된 내용은 현재 일본이 당면한 인구 감소, 출생률 저하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집약된다. 책의 결론은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1. 세계 경제사를 살펴보면, 인구 감소가 반드시 비관적인 미래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2. 일본은 장수대국으로서 장점을 가진 나라로, 일본 문화 특유의 이노베이션을 통해 오히려 고도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요시가와 교수는 ‘인구 감소, 고령자대국, 저출생=저성장, 발전, 퇴보’로 통하는 기존의 인구론에 정면대응한다. 21세기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무시한, 세기말적 비관론이 팽배하다고 비판한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인류의 파멸을 경고한 맬서스의 비관론처럼, 21세기에는 거꾸로 인구가 줄어들어서 인류의 미래가 어둡다는 사고가 일반화돼 있다는 지적이다. 역사를 보면 인구가 감소할 때도 있었고 급증할 때도 있었다고 분석하면서, 언제나 위기를 극복해온 것이 인류의 지혜라고 말한다. 구체적인 해결방안으로는 인공지능 개발이나 사무자동화를 통해 인구 감소에 따른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노년층의 체력지수가 올라가면서 정년의 연장도 필수적이라 말한다. 요시가와 교수의 생각에 동의하듯, 새해 들어 일본고령자학회는 고령자의 정의를 75세 이상으로 할 것을 공식 건의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현재 일본에서의 고령자의 정의는 65세다. 고령자로 불리기 5년 전에 퇴사하는 식이다. 정년은 일본 전체 기업의 80%가 60세로(2015년 기준), 65세 정년 기업은 1%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본 국회는 2025년 이후부터는 정년을 65세로 규정하는 새로운 고용안정법을 통과한 상태다. 더불어 고령자의 개념을 65세가 아닌 70세로 높이는 방안이 막바지에 이른 상태다. 올해 안에 ‘고령자=70세 이상’이란 개념에서 일본발 뉴스로 타진될 것이다. 고령자학회가 고령자를 75세 이상으로 하자는 것은 2025년 이후의 상황을 감안한 것이다. 고령자를 75세로 한다는 것은 정년을 70세로 높인다는 의미다. 장수대국 일본은 장수정년의 기록도 함께 가질 전망이다. 70세로 향하는 고령자들도 일상적으로 일하는, 인류 역사상 초유의 실험이 일본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정년 연장은 전혀 다른 문명세계로의 진입


▎일본의 아이돌들은 한두 세대 위를 위한, 젊음을 기억하게 하는 청량제 역할도 한다.
일본에 비해 아직 한국은 정년문제에 무심한 편이다. 65세 정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긴 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무조건 시행하기에는 기업환경이 너무도 열악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기업문화도 일본과 다르다는 점에서 지체되는 듯하다. 당연하지만, 정년 연장이 반드시 직급 연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하급부서로의 이동도 당연시된다. 월급도 엄청 깎인다. 서울 본사에서 국장급이던 사람이 춘천에 가서 과장급으로 일하는 식이다. 그럴 경우 상하관계가 문제가 된다.

일본인은 60세 정년으로 나갔다가 재취업한다 해도 자신의 옛 부하에게 머리를 숙이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인간이 아니라, 일을 기준으로 한 서열문화다. 월급이 절반 이상 줄어도 계속 일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고마워한다. 의리를 강조하는 유교문화권에다 학연·지연으로 얽혀진 한국은 다르다. 정년 연장자를 옥상옥(屋上屋)으로 보면서, 기업의 생산성이나 내부화합에 결코 플러스가 되지 못할 것으로 여긴다. 정년 연장은 단순히 수를 높이고 근무 연령을 더 높인다는 점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문화와 인간관계의 업그레이드를 통한, 전혀 다른 문명세계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몇 학번이냐, 몇 살이냐’가 횡행하는 사회에서는 까마득한 미래의 문제로 느껴질 듯하다.

글로벌 시대의 특징이자, 지리적 문화적 배경 덕분이겠지만, 대략 10년 터울로 일본의 상황이 한국에 재현된다. 따라서 인구론에 근거해 일본을 보면, 앞으로 닥칠 한국의 상황도 간단히 전망해볼 수가 있다. 눈여겨본다면 나리타(成田) 공항에 내리는 즉시 일본의 현실과 대응자세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공항에서 짐을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살펴봤지만, 카트를 옮기거나 청소를 하는 사람은 대략 정년을 넘긴 사람들이다. 한국처럼 40~50대가 아닌, 6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입국심사대의 경우 30대 정도지만, 공항 밖으로 나가는 순간 셔틀버스 운전사, 질서 유지 요원들을 보면 흰머리의 60대 이상이다. 버스 티켓을 받는 20대 초반의 날카로운 목소리와는 대조적인 분위기지만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분위기다. 버스 근처에 가서 짐을 내리는 순간, 카트를 가지러 달려온다.

도쿄 거리는 중심가를 빼면 한국의 지방도시처럼 한적하게 느껴진다. 조용한 분위기는 인구 감소 이전인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것이다. 버블이 끝나면서 사회 전체가 풀이 죽으면서 거리도 한산해진다. 조금만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의 그림자를 찾기가 어렵다. 도쿄 북동쪽 타이토구(台東区)는 도쿄 내에서도 가장 삭막하고 황량한 곳이다. 위치상 서울의 성북구나 청량리 주변에 해당되는 곳으로, 도쿄 주민들에게는 심리적인 오지(奧地)로 통하는 곳이다.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지하철 노선이 드물기 때문에 한번 가려면 큰맘을 먹어야 한다. 최근 청량리의 유곽(遊廓)이 완전히 문을 닫았다고 하지만, 1950년대까지 타이토구 주변도 도쿄 밤 문화의 상징으로 활약해왔다.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청량리 유곽의 역사도 식민지 당시 일본인들이 들여온 문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뜬구름 잡는 추측이지만, 운영방식이나 북동쪽에 위치한 풍수지리적인 차원에서 볼 때 그 같은 확신이 든다. 타이토구는 1945년 3월 미군의 대공습으로 30만 명이 하루아침에 대몰살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타이토구에 산다고 하면 뭔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인구론에 근거한 새로운 실험무대 ‘타이토구’


▎대부분의 대형 서점은 노후에 관련된 전문코너를 갖추고 독자들을 맞는다.
2017년 타이토구는 인구론에 근거한 새로운 실험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도쿄에서 유명한 장수동네이자, 저출산 지대이기 때문이다. 갖가지 통계를 앞세우기보다, 거리에 나가면 왜 초장수·저출산 동네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일단 어린이가 안 보인다. 도로와 골목 주변에 고령자들이 넘친다. 술에 취해 있거나, 아예 도로 위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다. 거리에서 소변을 보는 사람도 있다. 고령자을 위한 시설도 넘친다. 병원은 기본이고, 고령자 건강이나 의식주를 돕는 비영리단체들도 넘친다. 일본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전혀 다른 혹성에 온 것처럼 느껴진다.

필자는 일본에서 장기체류를 할 때면 반드시 타이토구 주변에 들른다. 이유는 타이토구 주변 호텔보다 싼 곳도 없기 때문이다. 교통이 조금 불편하지만, 독방·샤워·인터넷·아침 식사까지 갖춘, 하루 3000엔 수준의 숙박시설이 들어서 있다. 작은 공간이지만, 청결하고 조용하다. 도쿄 전체가 중국인 관광객으로 들끓지만, 엄청나게 많은 호텔 수 덕분에 언제 가도 방이 있다. 도쿄에서 다른 지역의 비슷한 시설의 숙박지는 아무리 싸도 하루 5000엔 수준이다. 주로 외국인 백 페커들의 장기투숙지로 알려져 있지만, 우연한 기회에 알게 돼 애용하게 됐다.

왜 엄청나게 쌀까? 주변 호텔들이 원래 유곽용 숙박지였다는 점과, 고령자들이 장기투숙하는 불결하고 노후된 시설이란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타이토구 숙박자의 대부분은 한 달 연금으로 10만 엔 이하로 살아가는 고령자용 시설이다. 하루 단위로 계산해서 2000엔 이하의 숙박지도 넘친다. 대부분의 경우 영어도 안 통하고, 인터넷이 없는 곳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흥미로운 것은 모든 방이 1인용 독실이란 점이다.

타이토구에 모인 연금수령 고령자들은 1인 생활자들이 주류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집을 나와 혼자 산다. 일본 고령사회는 1인 체제란 점에서 특이하다. 이른바 고독사로 나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일상화돼 있다. 연금의 절반 정도를 숙박 비용으로 지불하고 나머지 돈으로 의식(衣食)을 해결한다. 유난히 많은 실버용 편의점은 타이토구의 특징 중 하나다. 100엔이 마지노선이다. 모든 물건이 소비세 8%를 포함해 100엔 이하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99엔짜리 도시락이 존재한다. 내용물이 너무도 허름하지만 일단 밥·고기·채소 같은 것이 골고루 배치돼 있다. 건강해질 음식은 아니지만 삶을 영위할 수준은 된다.

물건 가격을 보면 1엔 단위로 끝난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사과 하나에 26엔, 유유 한 통에 78엔, 컵소주 하나에 48엔 식이다. 20여 년 전 처음 일본에 갔을 때 4분의 1로 나눠 팔던 배추가 인상적이었지만, 타이토구에서는 8분의 1로 잘려진 배추도 볼 수 있다. 하나에 16엔이다. 독신 고령자들을 위해 먹고 끝낼 정도의 양을 판매한다. 편의점 근처의 의류점도 독신 고령자 체제에 맞춰 장사를 하고 있다. 보통 두 장씩 파는 속옷을 한 장으로 따로 분리해서 판다. 두 장에 980엔이지만, 한 장에는 500엔이다. 농담 삼아 겨울 장갑이나 양말도 하나씩 판매하는 것이 어떨까라고 가게주인에게 물어봤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필연적이지만 고령자 저출산 사회는 노동력 부족으로 연결된다. 한국은 지난해 처음으로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절대수가 감소했다. 일할 사람보다 일할 사람으로부터 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일본의 가구당 출생률 목표, 1.8

2016년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표한 ‘2016 세계인구 현황’에 따르면, 65세 고령자 인구 비율의 경우 일본이 27%로 세계 1위다. 한국은 14%로 51위다. 당장은 양호한 상황인 듯 하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달라진다. 18년 뒤인 2035년이 되면 상황은 역전된다. 한국은 생산가능인구 100명 당 47.9명의 고령자를 부양해야 한다. 일본은 부양 고령자가 늘어나는 것은 확실하지만, 의외로 한국에 비해 속도가 완만하다. 2035년 생산가능인구와 부양 고령자의 비율을 보면 100명 당 35명 정도다. 한국보다 12명 정도 적다. 왜 그럴까?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1. 저출산이라고 하지만, 한국보다 일본의 출산율이 높다.
2. 해외노동력 수입도 활발하다.
3. 인공지능(AI)과 같은 테크놀로지 개발을 통한 노동력 활용에 적극적이다.

첫째, 출산률을 보자.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의 출생률은 가구당 1.3, 일본은 1.46으로 나타났다. 양국 모두 세계 평균 2.5명의 절반 정도 수준이지만, 일본의 상황이 한국보다 유리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집권과 동시에 ‘1억 총활약 담당장관’이란 긴 이름의 직책을 별도로 만들어 가구당 출생률 1.8을 목표로 인구 증가에 나서고 있다.

둘째, 일본의 경우,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한 외국인 노동력 수입도 활발하다. 일본이 외국인 이민에 대해 문을 닫고 있는 것은 유명하다. 그러나 합법적 차원의 단기 노동력 수입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활발하다. 필자가 머문 타이토구 호텔의 경우 청소원이나 관리인은 전부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인들이다. 편의점에 가보면 중국인, 몽골인, 최근에는 터번을 두른 인도인 아르바이트 점원도 만날 수 있다. 모두 일본어를 사용하면서, 마치 ‘로보트처럼’ 일본인 점원과 똑같은 방식으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2년 전 확인했지만, 일본 장인문화의 상징 격인 라멘집에서조차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을 만날 수 있었다. 라멘집 조리사가 바닥에 침을 뱉는 ‘엽기적인 사건’을 목격했지만, 자세히 보니 중국인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외국인 단기 노동자는 아직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도쿄의 경우 호텔·세탁·편의점·술집과 같은 이른바 3D직종은 거의 대부분 외국인으로 대체되고 있다.

셋째, 테크놀로지를 통한 노동력의 양적·질적 향상은 2017년 일본 정부의 주된 정책 중 하나다. 지난해 말 나리타공항 주변 쇼핑몰에서의 경험이지만, 일본은 이미 로봇을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쇼핑몰 내의 가게 위치 안내나 1대1 채팅이 가능한 로봇이다. 1m 높이로 일본어는 물론 영어도 가능하다. 아직 기초적인 단계지만, 어린이들이 몰려들어 대화를 나눈다. 대형병원들은 올해 중 환자와의 대화를 위한 로봇도 10만 엔 단위로 구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편의점의 경우 2025년부터는 아예 인간 점원 없이 로봇으로만 운영될 전망이다. 손님이 물건을 선택하는 순간 고감도 센서를 통해 가격이 자동적으로 계산돼 디지털 머니로 지불된다.

상황(上皇)시대를 접하는 일본인들의 자세

장수고령자 저출산의 대명사 일본이지만, 자신의 약점을 테크놀로지 개발로 만회할 수 있는 나라도 일본이다.

천황 퇴위(退位)는 신년 들어 일본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른 뉴스다. 85세에 접어든 천황 아키히토(明仁)가 업무 자체를 소화할 수 없을 정도의 고령이란 점이 생전퇴위의 근거다. 사실, 천황의 업무내용을 보면 20대 청년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의 격무다. 매일 분 단위로 움직인다. 원칙적으로 천황의 임기는 죽음과 더불어 종결된다. 생전퇴위는 고령사회 일본에 나타난 또 다른 단면이다.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천황 장수시대에 맞춘 새로운 통치법인 셈이다. 현재 논의중인 방안은 2018년 12월 말 퇴위식을 갖고, 상황(上皇)이란 이름의 직위로 남는 것이다. 아들인 1960년생 나루히토(徳仁)에게 천황자리를 양위(譲位)한 뒤, 공식행사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의미다.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천황 퇴위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자세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이유는 두 가지다. 고령자인 천황의 육체적·심리적·정신적 부담을 배려한 생각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천황 사망 뒤 한순간에 닥칠 수많은 업무를 일찌감치 준비하자는 의미에서의 찬성이다. 아키히토의 아버지인 히로히토(裕仁) 천황이 사망했던 1989년 1월 7일 당시의 대혼란은 일본인 모두가 잊어버리고 싶은 끔찍한 악몽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사망소식이지만, 불과 이틀 만에 후임 천황에 관한 모든 절차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국민 대부분은 대혼란 속에서 아키히토의 등장을 지켜봤다. 생전퇴위는 그 같은 혼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상황시대를 인정한 일본인들의 의식구조는 고령사회, 저출산을 대하는 자세로도 연결된다. 문제 자체가 얼마나 엄청난 재앙인가라는 부분을 강조하기보다, 돌발적인 상황에 대한 준비를 묵묵히 마련해나가는 자세다.

요시가와 교수가 강조했듯이, ‘인구감소, 고령, 저출생=저성장, 발전, 퇴보’로 끝나는 것만은 아니다. 고령자가 가진 지혜와 경험을 살리고, 모자라는 노동력을 밖에서 들여와 활용할 경우 인구론적 모순도 문제될 것이 없다. 모든 문명의 최종적인 가치는 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장수·건강·행복 가운데 어디를 강조할지는 각자의 세계관에 달렸다. 중요한 것은 장수는 인간 모두의 욕망이자, 최고봉에 오른 문명의 상징이란 점이다. 한국도 장수대국의 위치에는 올랐다. 건강, 행복한 장수를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만이 남았다. 덜컹거리기는 하겠지만, 과거가 아닌 미래로 향한다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과제다.

- 글·사진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201702호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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