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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돋보기] 결혼도 가성비가 우선… 젊은층의 ‘렌털 웨딩’ 붐 

당장 목돈은 없지만 인생은 한 번뿐이잖아요! 

김가은 인턴기자 2ndspringday@naver.com
나를 위한 투자의 새로운 방식으로 각광…가전제품, 혼수침대, 가구, 미술품도 임대가 대세

혼수시장에 렌털 바람이 분다. TV·냉장고·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은 물론, 침대 매트리스까지 대부분 렌털을 통해 해결한다. 직장도 돈도 없어 연애·결혼·출산마저 포기한다는 ‘N포 세대’의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행태 때문이다. 요즘 신세대의 알쏭달쏭한 혼수 풍속도를 들여다봤다.


한창 신혼 재미에 빠져 있는 류민아(29·가명) 씨는 결혼을 하면서 오랜 로망을 실현했다. 불필요하거나 일회성 혼수를 줄이는 대신 어릴 적부터 꿈꿔오던 피아노를 장만한 것이다. 결혼 후에도 취미삼아 개인 레슨을 받기로 한 상황. 하지만 100만원이 훌쩍 넘는 피아노를 구입하자니 예산이 빠듯했다. 고민하던 류씨는 결국 렌털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3만5000원씩 36개월. 그 후에는 온전히 ‘내 것’이 된다. 목돈이 드는 부담을 덜면서 원하던 제품을 마련할 수 있으니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져도 대만족이었다. 류 씨의 결정에 남편은 웬 피아노냐며 당황해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아이를 낳아 피아노를 가르치면 정서 발달에도 좋다”며 남편을 설득했다. 류씨는 “요즘은 퇴근한 남편이 먼저 피아노 의자에 앉는 등 나보다 더 좋아한다. 온 가족이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혼수를 마련해와 뿌듯하다”고 말했다.

혼수를 준비하기 위해 서울 강남의 논현가구거리를 찾았다는 예비부부 김규태(33)·조희진(29) 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혼수의 기본이라는 TV·냉장고·세탁기·침대만 견적을 냈는데도 금액이 훌쩍 1000만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렌털숍에 들른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일반 직영점과 동일한 제품을 월 3~4만원에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계약금이나 보증금 없이 월 사용료만 납부하면 되니 초기비용이 확 줄었다. 애프터서비스 등 일반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혜택은 똑같이 적용된다”며 반색했다.

권우빈(31·가명) 씨는 얼마 전 안마의자 2대와 라텍스 매트리스, 정수기 등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물품을 한꺼번에 장만했다. 한 렌털 업체의 웨딩 패키지 상품을 이용한 것. 권 씨는 “패키지로 구매하니 매월 렌탈료도 2만원씩 할인받을 수 있다. 가격은 물론 품질이나 구성 모두 만족스러운 합리적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고가의 혼수를 ‘빌리는’ 신혼부부가 늘고 있다. TV·냉장고·세탁기 같은 기본적인 가전제품은 물론, 침대 매트리스 등 생활에 필요한 품목은 대부분 렌털을 통해 해결한다. 새 제품을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더구나 새살림을 시작하는 신혼부부이기에 언뜻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다. 불황에 연애·결혼·출산마저 포기한다는 ‘N포 세대’의 새로운 결혼 풍속도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아끼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할 돈조차 없다면서도 고급 안마의자나 의류관리기에는 지갑을 연다. 돈을 쓸 곳과 안 쓸 곳을 철저하게 나눈다는 말이다.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젊은 예비부부들에게 렌털이 혼수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웨딩컨설팅 업체 ‘듀오웨드’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예비부부 479명 가운데 66.2%가 혼수 장만에 렌털을 이용하겠다고 답했다. 렌털로 이용하고 싶은 품목(필수가전 제외)으로는 안마의자가 21.3%로 1위에 올랐다. 이어 라텍스 침대(17%), 정수기(11.5%), 리클라이너(9.7%), 커피머신(8.6%) 등이 뒤따랐다. 전체 렌털 시장도 크게 성장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개인 및 가정용품 렌털 부문은 5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어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25조9000억원에 달하던 국내 렌털 시장 규모는 2020년에는 40조원 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정기적 관리 서비스도 인기 이유


렌털 혼수의 인기는 최근 몇 년간 이어진 ‘가성비 트렌드’의 영향이다. 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와 다른 소비 개념을 탄생 시켰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공식을 깨고 돈은 적게 쓰지만 큰 만족을 얻기 위함이다.

가성비 트렌드의 ‘일등공신’은 경기침체다. 저성장이 장기화하면서 소득이 정체하고 그에 따라 소비도 점차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소비를 포기할 수는 없다. 무조건 아끼는 과거 세대와 달리 젊은 소비자들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이전과 비슷한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대안을 찾게 됐다. 바로 렌털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품질 좋은 제품을 원하는 기간만큼만 사용할 수 있는 렌털은 젊은이들의 취향에 딱 들어맞았다. 덕분에 렌털은 젊은이들이 말하는 ‘가성비 갑(甲)’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렌털 혼수는 무엇보다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 준다. 아무리 신용카드 할부를 이용하더라도 혼수 품목이 쌓이면 사용한도와 이자를 무시할 수 없다. 빚과 결혼한다는 ‘허니문 푸어’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다. 2015년 통계청은 신혼부부가 결혼준비에 사용하는 평균비용이 주거비를 제외하더라도 6639만원이라고 밝혔다. 주거비를 포함하면 2억 3800만원에 달한다. 빚 걱정이 쌓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싼 가격에 정기적으로 관리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렌털의 매력이다. 가전제품이나 가구의 경우 개인이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렌털은 이 같은 걱정을 간단히 해결해준다. 지난해 결혼전문 잡지 <웨딩21>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혼수 구매 대신 렌털을 이용하는 이유로 58%의 예비부부가 ‘정기적 관리 서비스’를 꼽았다. 대표적 사례가 침대 매트리스다. 매트리스는 한 번 구입하면 최소 5~10년 사용하는데, 일반인이 세탁하거나 청소하기는 매우 어렵다. 최장엽(30·가명) 씨는 “요즘 미세먼지도 심하고 진드기 등 위생이 걱정돼 렌털을 선택했다. 월 2만원만 내면 4개월마다 살균소독과 커버 교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최씨처럼 상대적으로 이사가 잦고 신제품에 민감한 신혼부부들은 경제력이 있어도 렌털을 선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기능이나 품질을 확인해보고 싶을 때 렌털이 유용하다. 필요한 만큼만 사용할 수 있어 고가의 제품에 접근하기가 좋기 때문이다. 정수기 정도에 한정돼 있었던 혼수용 가전제품 렌털 시장이 점차 피아노·미술작품·드론 같은 취미·오락·레저 관련 상품으로 다양해진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사진·중앙포토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은 이소현(31·가명) 씨는 신혼집에 걸 그림 작품을 렌털하기로 결심했다. 고가의 작품을 샀다 신혼집에 어울리지 않으면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금전적 투자손실도 걱정거리였다. 이씨는 “3개월 단위로 그림 교체가 가능해 분위기 전환 효과가 있는 데다 남편과 서로 취향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그림 렌털 서비스 업체인 ‘오픈갤러리’ 관계자는 “신혼부부를 포함한 젊은층의 렌털 수요가 점차 늘어 이제는 전체 고객의 50%를 넘는다”며 “렌털을 통해 그림을 보는 안목을 키워 미술투자에 입문할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고 소개했다.

초기에는 싼 가격이 핵심이었던 렌털 시장은 이즈음 점차 품질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제 소비자들은 싸다고 무조건 사거나, 비싸다고 구매를 포기하지 않는다. 가격이 저렴한 것은 기본이고, 질 좋은 제품을 찾되 소유하기보다 사용하는 데 초점을 둔다. 렌털 자체가 새로운 소비 방식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렌털 소비 방식의 확대에는 최근 대두한 ‘욜로(YOLO)’ 트렌드도 한몫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키워드로 ‘욜로 라이프’를 꼽은 바 있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 즉 ‘한 번뿐인 인생’의 줄임말이다. 나와 내 인생의 가치에 방점을 찍고 자기주도적 소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소비자 보호 위한 대책 마련 시급


▎지난해 열린 ‘2016 F/W 와이즈웨딩 스타일링 페어’에서 혼수를 살펴보고 있는 예비 부부. 신제품에 민감한 젊은층은 경제력이 있어도 렌털을 선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 사진제공·삼성전자
렌털 전문업체들은 이 같은 소비 행태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일상의 질을 중시하는 젊은층을 겨냥해 다양한 패키지 상품을 내놓았다. 대표적 품목이 안마의자다. 효도선물 정도로 여겨지던 안마의자가 이제는 젊은 예비부부의 혼수 리스트에 오른 것이다. 한 렌털 업체의 웨딩 패키지를 이용한 권우빈(31·가명) 씨는 “맞벌이여서 집에서 잠시라도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싶어 구매했다. 힐링을 중시하는 우리 부부에게 안마의자나 매트리스는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렌털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고객 맞춤형 서비스도 등장했다. 과거의 렌털 방식은 제조사가 렌털 자회사를 운영하며 직접 고객을 상대했다. 이제는 중소 온라인 렌털 업체에서 브랜드에 관계없이 다양한 상품을 빌려준다.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혼수상품을 조합한 패키지 상품이 대표적이다. 안마의자 렌털 업체인 ‘바디프랜드’ 관계자는 “맞벌이가 많은 신혼부부들이 자신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합리적으로 소비하려는 젊은 세대의 트렌드가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술작품을 렌털해 가격과 인테리어 효과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젊은층이 늘고 있다. 초창기 정수기 정도에 한정돼 있었던 혼수 렌털 시장은 취미·오락·레저 관련 상품으로 다양해졌다. / 사진제공·오픈갤러리
렌털 시장이 커진 만큼 부작용도 생겨난다. 지난해 렌털 시장은 안전성 논란으로 홍역을 앓았다. 웅진 코웨이의 얼음 정수기에서는 니켈이 검출됐고, 청호 나이스 역시 ‘콧물 정수기’ 논란을 빚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제습기나 공기 청정기 업체들 역시 소비자의 걱정을 키웠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은 외연을 키우는 데 치중하던 렌털 업체들이 품질 향상에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됐다.

불합리한 렌털 조건도 소비자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4년 렌털 관련 불만 접수 건수는 1만2000건으로, 4년 새 두 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40% 가까이가 계약 해지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렌털 상품은 또 다른 형태의 할부 판매다. 일명 ‘소유권 이전형 렌털’로, 의무약정기간이 지나면 소비자는 제품을 소유하게 된다. 반면 중도에 물건을 반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유권 이전형 렌털의 경우) 제품을 반납할 수는 있지만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차라리 소비자가 직접 중고나라 같은 중고제품 매매 사이트에 올려 판매하는 것이 낫다”고 밝혔다.

지나치게 비싼 임대료도 문제가 된다. 총액을 따져보면 렌털은 일시불로 구매할 때보다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차이가 지나치게 큰 것이 불만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컨대 월 2만원으로 렌털한 비데를 의무계약기간인 36개월간 사용하면 72만원이 든다. 반면 일시불로 지급하면 10~4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KT경제경영연구원 나현 전임연구원은 “개인 및 가정용품 렌털의 인기는 혼수족 같은 젊은층의 주도로 렌털의 영역이 생활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직 렌털 산업에 특화된 소비자보호정책법 등 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만큼 이를 보완한다면 향후에도 발전 가능성이 큰 분야”라고 말했다.

- 김가은 인턴기자 2ndspringday@naver.com

201702호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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