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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이재용 부회장 구속으로 본 ‘오너 리스크’의 실체 

“중대 결정 지연돼 경제 악영향” vs “견제장치 부재가 진짜 리스크” 

신희철 서울경제 기자 hcshin@sedaily.com
대기업, 오너 부재 시 대형사업 차질 이유로 선처 호소…주요 외신 등 “삼성 브랜드에 총수 먼저 떠올리지는 않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으로 대기업의 ‘오너 리스크’ 문제가 새삼 주목을 받는다. 기업 총수가 구속될 경우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게 오너 리스크의 핵심이다. 삼성뿐만 아니라 SK·한화·CJ 등은 오너 부재 때마다 ‘대형사업에 차질을 빚는다’, ‘중대 결정이 미뤄진다’ 등의 이유로 선처를 호소해왔다. 이번 역시 이 부회장이 구속 이후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은 일제히 한국경제의 위기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반면 일각에서는 오너 리스크가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온다.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오너보다 기업의 기초체력과 잠재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다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오너일 경우 오히려 불안요소로 분류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으로 다시 한 번 오너 리스크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인 2월 17일 오전 삼성 직원들이 서울 서초동 사옥으로 출근하고 있다. / 사진·김춘식
오너가 없으면 기업과 한국경제는 흔들릴까? 이에 대해 삼성의 입장은 명확하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으로 그룹의 컨트롤타워에 큰 구멍이 생겨 기업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방위·석유화학 등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바이오·자동차 전장(전자장비) 등 신사업에 집중하면서 그룹의 여러 계열사를 정리해왔다. 궁극적으로는 삼성전자에 의존하던 수익구조를 바꾸고 ‘전자-바이오-금융’의 3대 축으로 기업의 안정적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구속되고 삼성물산 합병이 특검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아직 교통정리가 끝나지도 않은 사업부문이 혼란에 빠졌다. 오너의 신속한 결정으로 신사업에 기민하게 대응해온 삼성의 사업 구조상 당장 계열사별로 시장에 적극 대처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삼성의 핵심 먹거리인 바이오와 반도체 부문의 성장 정체도 불가피해졌다는 게 삼성 측의 주장이다. 전문경영인은 엄두를 낼 수 없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이오 사업의 경우 적자가 계속 발생하더라도 미래 성장을 위해 장기적으로 매년 1조원 이상을 투입해야 하고 반도체 사업은 생산 라인을 1개 확장하는 데만 10조원 안팎의 거금이 필요하다. 디스플레이 라인을 늘리는 데도 1조원 이상의 자금이 소요된다. 실제로 삼성은 지난 5년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통해 바이오 분야에 5조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반면 오너 리스크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오너가 비리 의혹에 휩싸일 때마다 기업 전체가 휘청거린다는 논리가 미성숙한 기업의 경영 방식을 스스로 드러내는 모순된 주장이라는 설명이다. 오히려 대기업이 오너 리스크에 취약한 이유는 오너 일가가 별다른 견제장치 없이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 오너의 구속이 5년 이상 장기화되지 않는 이상, 기업의 주가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며 “기업에 대한 평가는 오너뿐만 아니라 사업 현황이나 전문경영인의 능력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경영인이라면 수조 원 투자 가능했을까


▎지난해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1차 청문회에 출석한 대기업 총수들이 청문회장을 나서고 있다. 앞줄 셋째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승연 한화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조양호 한진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 사진·오종택
재계 관계자들은 오너 공백이 초래할 가장 큰 위험으로 ‘중대한 결정’이 막히는 것을 꼽는다. 오너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가업을 이어받은 총수가 가장 큰 책임감을 갖고 대규모 투자나 대형 인수합병(M&A)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역대 오너들은 전문경영인이 감히 엄두를 내기 힘든 결정을 신속하게 내려왔다.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와병으로 경영일선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굵직한 투자 결정을 진두지휘하며 공격경영을 이끌었다.

시스템반도체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해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공장에 10억 달러(약 1조142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내 M&A 사상 최대규모인 80억 달러(9조3000억원)를 들여 세계적인 전장기업 하만을 전격 사들였다. 자동차부품 생태계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결정으로, 이 부회장의 통 큰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에 더해 삼성전자는 지난해에만 비브랩스(인공지능 플랫폼)·데이코(럭셔리 가전 브랜드)·애드기어(디지털 광고)·조이언트(클라우드 서비스) 등을 연이어 사들이며 핵심 경쟁력을 키웠다.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은 “이 부회장은 ‘위기 속 기회’ 경영철학을 강조해왔다”며 “지난해 갤럭시노트7 사태 등으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던 건 이 부회장의 전폭적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2007년 애플 아이폰의 등장으로 삼성전자가 ‘제2의 노키아’로 전락할 뻔했던 위기를 이건희 회장의 복귀로 극복한 일화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2008년 당시 삼성 비자금 특검으로 이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 장기간 수사로 삼성의 5대 신수종 사업 선정이 늦어지면서 태양광, 발광다이오드(LED) 분야에서 삼성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말았다.

삼성은 이 회장이 복귀한 다음해인 2011년 갤럭시노트를 출시해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 1위에 오르며 위기를 극복했고, 삼성의 캐시카우(Cash Cow)인 반도체와 스마트폰 사업에서 글로벌 기업의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 우뚝 선 SK하이닉스의 인수와 투자 역시 최태원 SK 회장의 강력한 의지 덕분에 가능했다. 인수 당시만 해도 SK 내부에선 “자칫 우리가 망할 수 있다”는 우려와 반대가 많았지만 최 회장의 뚝심으로 3조4000억원의 베팅이 이뤄졌고, 이후 매년 3조원 이상의 시설투자가 단행되면서 SK하이닉스 성장에 날개를 달아줬다.

김승연 한화 회장도 경영에 복귀한 2014년 11월 이후 굵직굵직한 사업을 추진해왔다. 한화는 2014년 말 삼성그룹 계열사 4개를 인수하는 빅딜을 발표했다. 현재 한화종합화학, 한화토탈, 한화탈레스, 한화테크윈으로 변신을 완료한 상태로, 이를 위한 투자금액은 1조9000억원에 달한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특성상 전문경영인은 수조 원에 달하는 시설투자와 M&A에 나설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결국 오너가 제때 전략적 판단을 내려줘야 한다”며 “오너 공백이 길어진다면 기업의 장기 투자전략에도 차질이 생기고 글로벌 경쟁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룹의 대표성을 갖는 오너가 부재할 경우 글로벌 비즈니스의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격(格)’을 중요시하는 해외 파트너일수록 책임 경영 이미지가 높은 오너와의 직접 대화를 원한다는 설명이다. 10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전문경영인이 10번 해외 현장을 방문하는 것보다 오너가 한 번 가는 게 훨씬 효과가 크다”며 “중장기 프로젝트일수록 해외 사업자들은 더욱 오랫동안 회사를 책임지는 오너들을 만나 협상을 벌이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삼성과 애플의 장기 파트너십을 직접 확보한 일화로 유명하다. 이 부회장은 애플이 아이폰 차기 모델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공급받길 원했지만 핵심 공정에 이용된 캐논도키의 설비가 대량 생산이 어렵다는 보고를 받고, 직접 일본 도쿄에서 3시간 거리의 니가타현을 방문해 이 문제를 풀었다.

글로벌 비즈니스 막히고, 네트워크 단절 우려


이 부회장은 도키의 최고경영자(CEO)인 데루히사 쓰가미 회장을 만나 도키 장비를 삼성디스플레이에 독점 공급해줄 것과 현재의 생산 규모를 두 배 가까이 늘려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 회사는 생산 규모를 늘렸고 삼성전자가 이 회사의 장비 대부분을 사들임으로써 애플과의 장기 계약에 성공했다.

인맥은 가장 큰 자산이라는 점에서 오너 공백으로 잃게 되는 무형의 네트워크는 측정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은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포럼 이사를 맡고 있는데 3월 말 중국 하이난섬에서 열리는 보아오포럼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보아오포럼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 등 중국 최고지도자들을 만나 활발한 교류 활동을 펼쳤다.


▎이재용 부회장이 2월 16일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출석,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으로 가기 위해 차에 오르고 있다. / 사진·임현동
이 부회장은 3월 한국을 찾을 것으로 알려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만나지 못하게 된데다 4월 열리는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FCA)의 지주회사 엑소르 이사회 참석도 불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부회장은 2012년 5월부터 엑소르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으며 매년 4차례 열리는 이사회에 정기적으로 참석, 글로벌 경영 역량을 확대해왔다. 재판이 장기화될 경우 올 7월 미국에서 열리는 ‘앨런앤드코 미디어 콘퍼런스(선밸리 콘퍼런스)’에도 참석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경우 선친인 고(故) 김종희 회장이 닦아놓은 글로벌 인맥을 특유의 ‘의리’로 이어가며 자타공인 한국 경영계 최고의 ‘미국통(通)’으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김 회장은 지난 2001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초청받아 참석했다. 그는 미국 공화당 내 인사들과도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차기 미국 공화당 정부와의 매개 역할로도 주목받고 있다. 향후 한화의 미국 사업 강화 드라이브에 김 회장의 대미 인맥은 든든한 주춧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김 회장의 미국 정·재계 인사들과의 인연은 한두 해에 걸쳐 이뤄진 것이 아니다”라며 “향후 한화의 미국 방산, 태양광 사업이 주목되는 이유는 김 회장의 탄탄한 인맥이 사업을 차질 없이 이끌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너가 제멋대로 굴어도 이를 견제할 장치가 없는 게 오너 리스크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상법 개정 등으로 대대적 재벌개혁이 이뤄졌지만 현실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유명무실 사외이사제 개선 시급


▎서울 삼성동 구(舊) 한국전력 부지(오른쪽). 현대차가 115층 높이의 건물을 이곳에 조성한다. / 사진제공·강남구청
대표적으로 사외이사제가 꼽힌다. 사외이사제를 도입했지만 오너 일가가 임명하는 사외이사는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가장 최근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사외이사 견제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이 사외이사의 유명무실함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애널리스트 A씨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합병 비율이 1대 0.35로 삼성물산에 불리하게 책정됐다는 논란이 일고 있었지만 사외이사 중 이를 문제삼았던 인사는 없었다”며 “2015년 한 해 동안 삼성물산의 사외이사 7인은 이사회에 참석했을 때 단 한 차례도 반대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2014년 9월 현대자동차그룹의 한국전력 삼성동 부지 매입 건 역시 허울 좋은 사외이사 제도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난도 커지고 있다. 당시 한전 부지의 감정가는 3조3346억원으로, 현대차는 감정가보다 3배 이상 비싼 가격인 10조5500억원에 부지를 매입했다. 주주들 사이에서는 ‘지나치게 비싸다’는 불만이 나왔지만 현대차 사외이사 5명은 모두 부지 매입에 찬성표를 던졌다. 매매계약 승인을 위한 이사회에도 5명 중 4명이 참석해 전부 찬성했다.

대신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오너의 경영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가 오너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채워진다면 견제 기능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며 “사외이사를 오래 하다 보면 오너 일가와 ‘형·동생’ 하는 사이로 발전할 수 있는데 그런 관계에서 제대로 견제 기능이 작동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오너의 독단적 결정을 견제하지 못해 기업 자체가 도산한 사례도 있다. 특히 한진해운의 몰락은 한국의 대기업이 안고 있는 오너 리스크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분석이 있다.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이 사망한 후 아내인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직접 경영자가 돼 감성경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가 결국 비선라인에 의존하게 됐고, 불황을 견디지 못해 결국 한진해운이 무너졌다.

수습 과정에서도 최 전 회장의 시숙(媤叔)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2014년 4월 대한항공을 통해 한진해운을 인수했다. 당시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이 800%가 넘는 상황에서 대한항공이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결국 조 회장은 한진해운을 인수한 뒤 한진그룹 차원에서 2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한진해운에 쏟아부었지만 2년 반 만에 최악의 결과를 맞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조 회장은 견제장치 없이 그대로 밀어 붙였고, 합리적 판단보다 해운 업황(業況)이 회복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사로잡혔다”며 “조 회장이 한진해운을 결국 포기하자 증권업계에서는 이제서야 한진그룹 경영의 합리적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는 냉소 섞인 평가를 한다”고 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전체 경영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정작 오너 리스크로 인한 주가하락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던 점도 눈길을 끈다. SK·한화·CJ 등 과거 오너리스크로 몸살을 앓았던 기업의 주가는 단기간에 원상 복귀됐다. 실적 개선 등 펀더멘털이 강한 기업은 오히려 주가가 상승하기도 했다.

주가 영향은 없어, 시장의 냉정한 평가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실현 전국네트워크,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1월 23일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 앞에서 ‘재벌특혜 규제프리존법 추진한 박근혜- 최순실-전경련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1월 17일 하나금융투자는 보고서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 소식은 삼성전자 주가에 ‘단기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용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단순하게 이번 사태를 단기 차익실현 빌미 정도로 보기는 어렵다”며 “파장을 완충할 만한 긍정적인 요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단기적으로 삼성전자와 그룹주들에 대한 영향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또 “특검이 SK와 롯데 등 주요 대기업에 대한 추가 수사를 예고했기 때문에 파장이 시장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런 오너리스크가 기업의 펀더멘털까지 흔들지는 못하는 만큼 펀더멘털 개선이 뒷받침된다면 주가는 다시 회복세를 탈 것으로 전망했다.

과거 오너리스크는 단기적으로 주가를 떨어뜨렸지만 그 영향은 대부분 1~3개월 단기에 그쳤다. SK가 대표적이다. 2013년 1월 31일 최태원 회장이 구속된 후 3개월여 간 SK는 17만 원대였던 주가가 14만5000원선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5월부터 다시 17만원선을 회복했고 같은 해 계열사들의 실적이 지주회사인 SK의 실적으로 반영되며 20만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 최 회장이 38%의 지분을 보유한 SK C&C의 주가는 오너 리스크에 10만원대에서 8만원대로 하락했지만 3개월 후인 5월 다시 10만원선으로 복귀했다. 이듬해 2월 최 회장 형제의 실형 확정 선고에도 주가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SK텔레콤·SK이노베이션 등 계열사에 호재가 이어지면서 오너 리스크를 실적 개선 기대감이 상쇄한 까닭이다.

한화 역시 김승연 회장이 구속 수감된 2012년 8월 16일 당일 주가가 장중 5% 가까이 하락했지만 한 달 이후 18%가량 올랐다. 김 회장 구속 전 2만원대였던 주가는 다음해 10월 4만원을 돌파하며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삼성전자도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 소식이 나오면서 1월 15~16일 이틀간 200만원을 바라보던 주가가 180만원대에 턱걸이했지만 17일 다시 0.82% 상승하며 184만8000원을 기록했다. 장중에는 기관들의 매수세가 유입되며 2.1%까지 반등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총수가 연결된 이슈인 만큼 말을 아끼긴 했지만 “오너 리스크는 단기 악재에 불과하다”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했다. 대형주일수록 스캔들에 의해 받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의 주가는 반도체 시장과 스마트폰 판매 등이 결정한다”며 “인수합병(M&A) 등 진행 중인 경영일정이 오너 부재로 차질을 빚는 게 아닌 만큼 펀더멘털에 기초해 투자 방향을 결정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주요 외신들도 이 부회장 구속에 대해 “삼성그룹 경영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반응했다. 이 부회장과 삼성의 이미지를 별개로 볼 필요가 있고, 부품사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은 2월 17일 토니 미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소비자들은 삼성의 브랜드에 대해 이 부회장을 먼저 떠올리지 않는다”며 “삼성은 단순히 휴대전화 등 완성제품으로 돈을 버는 곳이 아니다. 반도체 등과 같은 부품 사업에서 돈을 벌었고, 이 부문은 여전히 잘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경제 전문 방송 CNBC는 2월 18일 “현재 삼성에 좋지 않은 소식들만 가득하지만 이 부회장이 국제적인 얼굴이 아니라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보도했다.

- 신희철 서울경제 기자 hcshin@sedaily.com

[박스기사] “재판에서 진실 밝혀지도록 할 터” - 이재용 구속 후 대기업 법무팀들 ‘좌불안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으로 삼성 법무팀은 초비상이 걸렸다. 당장 그룹차원의 역량을 총동원해 이 부회장의 무죄를 입증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삼성은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 신의 성열우 미래전략실 법무팀장(사장) 등을 중심으로 재판 대응체제에 돌입했다. ‘구속=유죄’ 프레임을 뚫고 재판에서 반전을 노리기 위해 치밀한 방어전을 준비하는 것이다. 삼성은 “앞으로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짧고 강한 입장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전 미래전략실 법무팀이 막후에서 지원하며 삼성의 법무 방어벽은 더욱 보강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전략실 법무팀은 약 30명으로 판검사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과 더불어 법무법인 태평양과 행복마루 등이 이 부회장이 혐의를 벗기 위한 법리적 방어전에 참여하고 있다. 태평양에서는 판사 출신의 송우철·문강배 변호사가 대표주자로 꼽힌다. 고검장 출신으로 법무법인 행복마루를 이끌고 있는 조근호 변호사도 지난 영장실질심사에서 삼성의 ‘방패’로 활동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멤버가 바뀌거나 다른 로펌 등이 충원될 가능성이 있다.

삼성은 재판 과정에서도 ‘삼성은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유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적용한 ▷뇌물공여 ▷횡령 ▷국회 청문회 위증 ▷재산 국외도피 ▷범죄수익 은닉 등 5가지 혐의 중에서 결국 핵심은 ‘뇌물 공여’ 부분이다.

삼성은 최순실 씨에 대한 지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강요에 따른 것일 뿐이며 대가성은 일절 없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대통령의 강요를 받은 ‘피해자’일 뿐이며 삼성물산 합병 등을 최순실 지원의 대가로 엮는 것은 법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논리다.

삼성은 미래전략실 해체를 공식 선언하며 대관 업무 조직도 전격 폐지할 것을 선언했다. 정경유착 근절을 위해 정부와 국회를 담당하던 대관 조직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앞서 관련 업계에는 삼성이 향후 대관 업무 조직을 폐지하고 로펌에 위탁한다는 얘기가 돌았지만 공식적인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을 해체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향후에는 각 계열사의 판단에 따라 대관 업무를 스스로 결정, 진행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검 수사 대상에 오르내렸던 기업들은 다시 초긴장 상태다. SK그룹이 대표적이다. SK는 2015년 8월 최태원 회장의 사면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과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미리 사면 사실을 알려줬다고 검찰 수사 때 진술해 대가성 논란도 일었다.

롯데는 지난해 5월 K스포츠재단의 경기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 사업에 70억원을 냈다가 한 달 만에 검찰 압수수색이 이뤄지자 이를 돌려받았다. 일각에서는 출연 대가로 지난해 3월 신동빈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한 뒤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권이 추가된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지난해 8월 광복절 특사와 관련한 청탁이 있었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는다. 해당 기업들은 “대가성이 전혀 없고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라며 강력 부인한다. 그럼에도 최태원 회장과 신동빈 회장은 출국금지 상태이고 이재현 회장도 미국에서 치료를 받으려 했지만 비자발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 구속 후 삼성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대기업 법무팀들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법무팀 강화와 함께 대관 업무가 한층 강화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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