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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취재] 문재인 정부 실세그룹 ‘7인회’의 行路 

‘가치적 친노’로 의기투합 대선 승리의 또 다른 공신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광흥창팀과 별개로 지난해부터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 양정철·김경수·최재성·강기정·노영민·이호철 등은 문 대통령 곁으로 돌아올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서울 마포구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인근 상수동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당내 대선후보 경선과 본선을 위한 전진기지가 탄생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는 여기에 모인 사람들을 ‘광흥창팀’ 또는 ‘상수동팀’이라고 불렀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을 준비하면서 여의도 국회 근처에 만들었던 ‘금강팀’ 같은 성격의 조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공이 큰 조직으로 광흥창팀과 7인회가 꼽히고 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양정철 전 대통령 홍보기획비서관, 김경수 의원, 최재성·강기정·노영민 전 의원, 이호철 전 민정수석.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5년 전 뼈아픈 기억이 있다. 대선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2012년 10월 21일, 친노 핵심인사 9명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자진사퇴해야 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문재인 후보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친노인사들의 전진배치에 대한 당내 불만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 밖에서는 물론이고 내부적으로도 “친노·친문이 다 해먹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결국 문 후보를 떠받치고 있던 주요 인사 10명 가운데 양정철 전 대통령 홍보기획비서관, 전해철 의원(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소위 ‘3철’로 불리는 인사들을 비롯해 정태호 전략기획실장(전 청와대 대변인), 소문상 정무행정팀장, 윤건영 일정기획팀장, 윤후덕 의원(비서실 부실장 겸 수행단장), 박남춘 의원(특보단 부단장), 김용익 의원(공감2본부 부본부장) 등 9명이 ‘셀프’ 인적 청산을 선언했다. 친노 핵심 중에는 김경수 수행1팀장 정도만이 문 후보의 곁을 지켰다.

이들은 “저희들의 퇴진을 계기로 제발 더 이상 친노-비노를 가르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노영민 비서실장으로부터 측근들의 자진사퇴 결정을 보고받은 문 후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문 후보가 대선에서 패하자 비판이 일었다. 측근들이 후보의 곁을 떠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튀지 않으면서도 영리하게 움직였어야 했다. 그게 진정한 측근들의 자세”라는 구체적인 지적도 뒤따랐다. 당시 캠프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금강팀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며 “그런 관점에서 보면 문재인 후보로서는 측근그룹의 효율적 관리가 아쉬웠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올해 대선에서는 그런 부분이 달라졌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본격 활동


▎참여정부 첫해였던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민정수석이 정국 현안과 관련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 기치를 내건 광흥창팀은 ‘최순실 게이트’가 온 나라를 집어삼킨 지난해 10월에 출범했다. 당시만 해도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본선 대진표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일찌감치 ‘본고사’ 준비에 들어갔다.

‘신문(新文·신 문재인)’ 핵심인 최재성 전 의원은 광흥창팀 출범 즈음인 10월 13일 여의도 한 커피숍에서 가진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당선) 영수증을 끊어놓은 것은 아니지만 문재인 대세론은 확고하다”며 대선 승리를 낙관했다. 이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대선 승리의 밀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광흥창팀의 멤버는 모두 13명이다. 이들은 올해 5월 9일 대선까지 반년 이상 함께하며 문재인 대통령 당선의 초석을 깔았다. 광흥창팀 13인은 2012년부터 문 대통령의 대선을 준비했던 양정철 전 대통령 홍보기획비서관(라인업 구성)을 비롯해 임종석 전 의원(좌장), 송인배 전 대통령 사회조정2비서관(일정), 윤건영 전 문재인 의원 보좌관(기획), 한병도 전 의원(조직), 조용우 전 동아일보 기자(공보),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정책), 오종식 보좌관(정무), 탁현민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행사기획), 안영배 전 국정홍보처 차장(직능), 조한기 노무현 재단 기획위원(SNS), 김종천 김근태 재단 사무처장(총무), 신동호 시인(메시지)이다.

광흥창팀 13인과 함께 대선 승리의 숨은 공신으로 ‘7인회’를 꼽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19대 대선 민주당선거대책위원회에서 요직을 맡아 문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문재인 캠프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광흥창팀이 다양한 분야의 인사로 이뤄진 조직이라면 7인회는 여의도에서 잔뼈가 굵은, 정무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귀띔했다.

민주당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해보면 7인회의 멤버로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선대위 비서실장), 양정철 전 대통령 홍보기획비서관(선대위 비서실 부실장), 김경수 의원(선대위 대변인), 최재성 전 의원(선대위 종합상황본부 제1실장), 강기정 전 의원(선대위 총괄수석부본부장), 노영민 전 의원(선대위 조직본부장),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꼽힌다.

임 실장은 한양대 총학생회장-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양 전 비서관은 대학신문기자연합회 회장, 최 전 의원은 동국대 총학생회장, 강 전 의원은 전남대 삼민투위원장, 노 전 의원은 긴급조치 9호 위반 구속, 이호철 전 수석은 부마민주화항쟁 때 구속 경력을 갖고 있다. 김경수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출신이다.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던 또 다른 관계자는 “광흥창팀이나 7인회 멤버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사심 없이 도왔다”며 “정치적 관점에서 7인회를 친노 또는 친문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가치적 친노’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13명 중 10명 발탁…청와대로 간 광흥창팀


▎2015년 6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최재성 사무총장이 회의에 앞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의 앞은 전병헌 최고위원이다.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으니 당선 후에도 함께 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청와대 비서실장 휘하 비서관급 26자리 가운데 9자리가 광흥창팀에서 배출됐다. 임종석 비서실장을 더하면 모두 10자리가 광흥창팀의 몫이다. 나중에 안영배 전 국정홍보처 차장, 김종천 김근태 재단 사무처장까지 발탁된다면 양 전 비서관을 제외한 광흥창팀 전원이 청와대에 입성하게 된다. 광흥창팀이 청와대로 옮겨가는 셈이다.

송인배 전 대통령 사회조정2비서관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다.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은 대통령의 일정을 챙기는 등 ‘최측근’으로 불린다. ‘최순실 게이트’로 구속된 정호성 씨가 제1부속비서관이었다.

송 비서관은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노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 해수부장관 시절 비서관을 각각 지냈으며, 참여정부에서는 사회조정2비서관을 역임했다.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정치적 고향은 양산이다. 그는 양산에서 17·18대 총선, 2009년 재선거, 19·20대 총선 등 5번 출마해 모두 낙선했다. 송 비서관은 이호철 전 민정수석과 함께 문 대통령의 부산 인맥 중 핵심이다.

한병도 정무비서관은 17대 때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의 정무2특보와 국민참여정책본부장을 맡았다. 한 비서관은 원광대 총학생회장, 재야 활동, 민주화운동 투옥 등의 경험을 갖고 있다.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으로 일하며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19대 국회에서는 문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냈다. 그는 이번 대선 중앙선대위에서는 상황실 제2부실장을 맡아 정무 조율과 함께 조직을 챙겼다. 윤 실장은 문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씨가 ‘호남특보’를 자처하며 광주로 내려갔을 때 보좌하기도 했다.

일부는 과거 행적 논란 일기도


▎문재인 대통령과 탁현민 씨가 지난해 여름 히말라야 트레킹을 함께하며 찍은 사진. 왼쪽부터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탁현민 씨, 문 대통령. / 사진·탁현민 페이스북
시인 출신인 신동호 연설비서관은 문 대통령의 5월 10일 취임사, 5·18 기념사,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 인사말, 그리고 현충일 추념사 등의 틀을 마련했다. 대통령의 연설문은 대통령을 포함해 비서실장, 참모 등의 손을 거친다. 그러나 기본적인 틀을 마련하고 언어로 색깔을 입히는 것은 연설비서관의 몫이다.

조한기 의전비서관은 참여정부 시절 정동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에 이어 한명숙 국무총리의 의전비서관을 지냈다. 조용우 국정기록비서관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선대위에서 공보 및 메시지 업무를 맡았다.

이진석 사회정책비서관은 문재인 캠프의 싱크탱크였던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총괄간사를 역임했다. 이 비서관은 참여정부에서 사회정책수석을 지낸 김용익 전 민주당 의원의 서울대 교수 시절 제자다. 두 사람은 문 대통령의 대선 보건복지 공약 수립에 적극 관여했다.

오종식 정무기획비서관은 참여정부 때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을 보좌하는 행정관을 지냈다. 또 이해찬 민주당 의원의 최측근으로도 분류된다. 정무기획비서관은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정세보고서 등을 작성하는 역할을 하는 요직 중의 요직이다.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행정관은 지난해 6월 13일부터 7월 9일까지 네팔·부탄으로 떠났던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27일간 문 대통령과 숙식을 함께했다. 이 트레킹에 탁씨가 동행하게 된 것은 양정철 전 비서관의 제안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탁 행정관의 청와대 입성 소식이 알려진 뒤로 과거 행적에 논란이 일었다. 그는 2007년 출간한 책 <남자마음설명서>(해냄)에 “등과 가슴의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것은 남자 입장에선 테러를 당하는 기분”, “이왕 입은 짧은 옷 안에 뭔가 받쳐입지 마라”, “파인 상의를 입고 허리를 숙일 때 가슴을 가리는 여자는 그러지 않는 편이 좋다”는 등 문제 소지가 있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광흥창팀과 비교했을 때 7인회에는 최재성·강기정·노영민 등 전직 3선 의원 세 사람이 눈에 띈다. 최 전 의원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자진 불출마를 선언했고, 강·노 전 의원은 공천을 받지 못했다. 최·강 전 의원은 SK(정세균 국회의장)계였으나 최근 ‘신문’으로 방향을 틀었다. 노 전 의원은 고 김근태 전 의원이 주도했던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출신이지만,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비서실장을 지냈다.

특히 최 전 의원은 지난해 8월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때 진성준·최민희·김현·정청래 전 의원과 함께 물밑에서 맹활약하며 ‘독수리 오형제’로 불렸다. 추미애 대표 체제 출범에 공이 컸던 것이다. 최 전 의원은 청와대 정무수석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당에서는 최 전 의원 또는 김민석 전 의원을 정무수석으로 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전병헌 전 3선 의원을 정무수석으로 임명하자 최 전 의원은 한걸음 물러났다.

최 전 의원은 “대통령이 어떤(뭔가 맡아달라는) 말씀을 하시기에 꼬박 이틀을 생각했다. 인재가 넘치니 원래 있던 한 명쯤은 빈손으로 있는 것도 괜찮다고 제 마음을 드렸다”고 했다.

백의종군을 선언했다고 해서 최 전 의원이 정치와 거리를 둘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양주에서만 3선(17~19대) 고지에 올랐던 최 전 의원은 벌써부터 내년 6월 지방선거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 등으로 거론되고 있다.

양정철 전 비서관도 최 전 의원과 함께 백의종군 대열에 합류했다. 양 전 비서관은 문 대통령이 사석에서 가끔 말을 놓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로 전해진다. 지난해 히말라야 트레킹 때도 문 대통령과 동행했던 그는 이번 대선을 거치며 명실상부한 ‘문재인의 복심(腹心)’이 됐다.

양 전 비서관은 대선 후 청와대 총무비서관, 주요 부처 차관, 공공기관장 등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정무수석 또는 홍보수석(현 국민소통수석)을 맡을 것이란 얘기가 들렸다. 반면 그가 청와대 수석비서관에 임명될 경우 문 대통령이 적잖은 부담을 떠안게 되리란 우려도 제기됐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청와대 측에서는 ‘노무현 정부 시즌 2’라는 프레임을 경계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공성신퇴(功成身退)의 모범 보였다”

양 전 비서관은 일부 취재진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정권교체를 갈구했지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나서면 ‘패권’ 빠지면 ‘비선’이라는 건 괴로운 공격이었다”며 “묵묵히 도왔을 뿐 비선은 없다”고 했다. 이어 “저의 퇴장을 끝으로, 패권이니 친문·친노 프레임이니 3철이니 하는 낡은 언어도 거둬달라”면서 “시민 중 한 사람으로 그저 조용히 지낼 것이니 잊힐 권리를 허락해달라. 문 대통령을 잘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양 전 비서관은 5월 15일 저녁 청와대 관저에서 문 대통령과 만찬을 하며 백의종군 의지를 밝혔고, 문 대통령은 눈물로 수용했다고 한다. 5월 25일 뉴질랜드로 떠난 양 전 비서관은 한동안 그곳에서 머물 계획으로 전해진다.

대선 다음날인 5월 10일, 문재인 캠프 핵심인사 중 가장 먼저 한국을 떠난 이호철 전 수석은 부인과 함께 동유럽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수석의 한 지인은 “이 전 수석은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지 말자는 생각이 아주 강했다. 그래서 대선 다음날 바로 출국한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양 전 비서관과 이 전 수석이 이번에 직책을 맡았다면 대통령으로서는 ‘마음의 빚’을 어느 정도 덜게 됐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들은 어떤 자리도 받지 않는 공성신퇴(功成身退: 공을 이루고 나면 몸은 물러난다)의 모범을 보였다. 빈손으로 홀연히 떠난 만큼 대통령의 ‘부채(負債)’는 유효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1707호 (201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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