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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취재] 코앞에 닥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카드 있나? 

남은 시간은 7개월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평창, 문재인 정부 첫 국제 행사이자 남북화해 물꼬 틀 수 있는 절호 기회… 남북선수 공동입장, 북한응원단 방문 등 다양한 옵션 고민… 북한 호응 여부가 관건

▎평창 겨울올림픽이 7개월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평창 일대의 경기장 시설은 대부분 준비를 마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대선 과정에서 “평창은 새 정부의 첫 대규모 국제행사인 만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국가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다하겠습니다. 올림픽은 새 정부의 국정 제1과제로 선정하고 (…)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인 지난 4월 8일 강원도 원주시청에서 직접 발표한 내용이다. ‘강원도 비전’이라고 이름 붙인 이 발표문에서 그는 “추경 편성을 통한 예산 지원도 검토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올림픽은 17일간 열리지만 두고두고 강원도의 미래 먹거리가 되어야 한다”라는 게 이유였다. “평창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들겠다”며 남북 관계 개선을 근간으로 한 5대 구상도 발표했다. 그리고 약 한 달 뒤, 그는 청와대에 입성했다.

문 대통령의 재임 중에 첫 번째로 열리게 될 대형 국제행사로서 평창 겨울올림픽은 성공할까? 하지만 평창에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는 듯하다. 평창에 주재하는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안하다. 정권 교체 후 (이희범 조직)위원장의 교체설까지 나돈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도 우려가 크다. 큰소리치면서 유치했던 올림픽을 망치게 되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바보 신세가 된다.”

새 정부가 평창동계올림픽 준비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 취임 직후 기자가 정부의 외교안보 국장급 이상 당국자들을 접촉해본 결과, 평창을 ‘남북간의 화해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물밑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징후가 포착됐다. 통일부의 한 핵심 인사는 이렇게 귀띔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로 얼어붙어 있는 남북관계를 풀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계기가 평창이다. 올림픽이라는 전 지구적 문화행사가, 그것도 남북이 함께 자리한 강원도에서 열린다는 것, 그것도 새 정부 출범 직후라는 시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북 교류협력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밖에서 보이지 않을 뿐 많은 움직임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 움직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까지는 7개월가량의 시간이 남았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막을 올리는 날은 2018년 2월 9일이다.

7월은 마침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렸던 IOC 총회에서 평창이 개최 도시로 호명된 지 꼭 6년이 되는 달이다. 당시 평창은 독일의 뮌헨과 프랑스의 안시를 제치고 압도적 표차로 승리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이 이번 7월 6일 유치 6주년을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010년과 2014년 올림픽 유치전에서 석패한 경험을 딛고 삼수까지 해서 일군 승리를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았더라면 평창은 그가 참가하는 마지막 대규모 국제행사가 됐을 법하다. 2월 9일 개막해 2월 25일에 폐막식이 예정된 평창올림픽은 당초 2월 25일의 대통령 이·취임식(박 전 대통령의 취임식 기준)과 일정이 겹쳐 한편에서는 우려로 제기되기도 했다. 조직위 관계자들은 “현직 대통령에겐 ‘마지막 행사’로, 차기 대통령에겐 ‘전임 행사’로 찬밥 신세가 전락하는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했었다. 그러나 정치상황이 급변하면서 평창은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국제행사로 치러지게 됐다.

문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강원도 원주 중앙시장 유세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평창은 새 정부의 첫 번째 대규모 국제행사인 만큼 반드시 성공시켜서 국격도 높이고 강원도 발전의 계기로 삼겠다.” 이희범 조직위원장은 월간중앙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결의를 밝혔다.

“평창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바로 다음에 2020 도쿄여름올림픽,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이 열린다는 점을 고려해서도 절대 한국이 실패해서는 안 되는 올림픽이다. 이를 위해 전 국민의 지지와 성원이 필요하다. 시간이 별로 없다.”

문 대통령의 ‘평화 올림픽’ 구상은?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4월, 한국 봅슬레이의 선구자 강광배 전 감독을 만난 자리에서도 평창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에 평창동계올림픽의 효용성은 단지 강원도 경제발전의 기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의 개선에도 좋은 모멘텀을 마련해줄 수 있는 기회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스키·농구 등 스포츠광(狂)이다. 그가 공을 들여 만든 마식령 스키장도 평창과 같은 강원도에 위치해 있다. 복수의 IOC 관계자들이 기자에게 말한 대로 “(한반도에서 올림픽이 다시 열리는 것은) 적어도 향후 20년간은 없을” 국제 스포츠 행사가 평창올림픽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평창과 관련해 ‘평화 올림픽’ 브랜드를 내세웠다. 올림픽은 여느 국제 스포츠 행사와는 달리 평화의 메시지를 강조한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각별히 강조해온 것 중 하나도 ‘올림픽 휴전(Olympic truce)’ 개념이다. 전쟁 중인 지역에서도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만큼은 휴전을 하도록 하는 IOC의 권고 조항이다. 유엔(UN) 역시 적극 협조한다. 지난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도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동안만큼은 시리아 등 전쟁 지역에서 총성이 멎도록 탄원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현재 휴전 상태에 있는 한반도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니, 이는 IOC에도 더없이 좋은 명분을 제공한다.

바흐 위원장 본인도 평창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여러 차례 “평창이 남북간 화해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의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들의 공동입장을 성사시키기 위해 직접 평양까지 날아갔던 주인공이다. 당시 IOC 위원 자격으로 바흐는 이 작업에 깊숙이 관여했다.

평창올림픽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성공 여부는 방법론에 달려 있다. 힌트는 문재인 대통령이 내세운 ‘강원도 비전’과 ‘평화 올림픽을 위한 5대 구상’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2011년 평창 유치 확정 직후, 자크 로게 IOC 당시 위원장이 김연아 선수에게 악수를 청하며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다. 뒤로 정병국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문순 강원지사, 나승연 평창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 대변인이 보인다.
문 대통령의 5대 구상은 ▷북한 선수단 참가를 위한 IOC와의 협의 ▷금강산 육로를 통한 북한 선수단의 대회 참가 ▷북한 겨울스포츠 인프라 활용 방안 협의 ▷북한 응원단의 속초항 입항 ▷금강산 온정각 일대에서의 올림픽 전야제 개최로 요약된다.

이 구상의 상당부분이 IOC의 의중과도 맞아떨어진다. 바흐 위원장은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렸던 201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기자에게 “IOC 헌장 상 남북 분산개최는 불가능하지만 개막식 공동입장이나 공동선수단은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한 IOC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바흐 위원장은 야심이 큰 인물”이라며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간 화해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는 게 바흐 위원장에게 결코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유엔 역시 힘을 보태고 있다. 2015년 당시 빌프리트 렘케 유엔 사무총장 특보는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선수들이 경기 참가를 위해 평창에 올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라면서 “평창은 (평양에서) 약 200㎞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까지 말했다. IOC와 유엔, 새 정부의 이해관계가 서로 들어맞는 셈이다. 문제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선택이다.

현재 가장 현실적 방안으로 거론되는 것은 개·폐막식의 남북선수 공동입장이다. 공동 선수단을 꾸리기는 한국 선수단에게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남북이 공동으로 선수단을 꾸린다고 해서 IOC가 선수단의 규모를 키워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정해진 출전 티켓을 남북이 나눠가져야 한다. 땀 흘려 출전권을 따낸 선수들에게는 기회를 박탈하는 경우가 되기에 대한체육회와 조직위원회 입장에서도 조심스럽다. 이희범 조직위원장은 “북한 체육 관계자들도 수차례 평창에 참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며 “조직위는 정부의 세부 추진 방향과 방침이 결정되면 평화올림픽 5대 구상 실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선수단의 개·폐막식 공동 입장에 더해서 플러스 알파로 거론되는 것이 북한 응원단의 방문이다. 북한 응원단은 이미 그 흥행성을 입증한 바 있다. 평창이 흥행 보증수표로 내밀 수 있는 숨은 카드인 셈이다. 문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부산아시안게임의 성공사례를 언급했다. 북한 응원단이 참가하면서 당시 부산아시안게임은 대성공을 거뒀다. 당초 적자를 우려했지만 흑자를 냈고 전 세계 언론이 부산을 주목했다.

공동선수단, 남북 공동 입장… 김정은의 선택은?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은 지난 3월 평창을 방문해 겨울올림픽 준비 상황을 살펴봤다.
문제는 북한이 이러한 구상에 얼마나 호응하느냐다. 현재까지는 빨간 불이 켜진 상태다.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미사일 발사 등 도발 릴레이를 펼치는 중이다. 북한 내부에서도 현재로선 평창에 대한 열의가 뜨겁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북한 전문매체인 NK뉴스의 채드 오캐럴 편집국장은 6월 14일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북한 내부 당국자들은 지금 평창올림픽에 별 관심이 없다. 공동 선수단은커녕 공동 입장도 현재 분위기에선 성사 못 된다는 데 내기를 걸어도 좋다.” 오캐럴은 방북 경험도 다양한데다 북한 당국 관계자들과의 인맥도 두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의 특성상 김정은 위원장이 결단만 내린다면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외교안보 부처의 한 관계자는 “김정은 위원장도 스포츠 애호가로서 사실 평창에서 뭔가를 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6월 15일 국회 청문회를 통과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역시 평창올림픽의 성공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나타냈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과의 관계에서) 문화와 체육 교류의 물꼬가 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고민하고 있음도 내비쳤다. 북한이 평창에 참가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IOC 위원장이 방한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 협조를 구할 생각이다”며 “북한의 마식령 스키장을 활용할 방안은 없을까, 응원단도 내려오게 하고 성화 봉송에 참여하게 할 방안은 없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열쇠는, 남북관계에서 많은 문제가 그렇듯이 북한이 쥐고 있다. 그러나 그런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건 한국이다.

-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201707호 (201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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