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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마을이 답이다’(6)] 전 지구적 차원의 풀뿌리민주주의 첨병 

공정무역, 마을에서 세계를 발견하다 

글·사진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 공석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지자체와 주민이 함께 세계와의 연결고리 찾는 기회…관(官) 주도 조급증에서 벗어나 주민 스스로 찾아가도록 기다려야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국경은 희미해지고 마을과 마을은 직접 연결된다. 지역과 세계를 동시에 상상할 수 있는 ‘풀뿌리 세계시민’이 필요한 이유다. 생산자에게 마땅한 가치를 지불하고 신뢰를 거래하는 공정무역은 세계시민을 키우는 학습의 장이다. 한국에서도 선구적인 지방자치단체들이 공정거래 마을을 세우고 주민들을 교육하는 데 앞장서 왔다. 이제는 마을 속에서 시민자치가 충분히 배양되도록 지켜봐야 할 때다.


▎공정무역은 소비자 권리를 넘어 생산자와의 공존을 지향한다. 돌담길을 감싸고 열린 좌판에서 시민들이 공정무역 제품을 살피고 있다.
사회가 국경을 넘어서는 시대다. 아무리 외진 마을에 사는 사람이라도 전 지구적인 연결망 속에서 살아간다. 개인과 지방들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곧바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무역·금융·이주·환경·국제협력·여성·농업 등 이슈를 망라한다. 이 때문에 사람과 지역이 어떻게 연결돼야 바람직 한지에 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국가를 넘어 지구시민사회(global civil society)를 상상해야 할 시대다. 그렇다면 지구시민사회에 속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무엇보다 전 지구적 세계관이 필요하다. 우리 삶을 지역을 넘어 지구촌 차원으로 이해하고, 복잡계 속에서 어떻게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올바로 해석하고 그에 능동적으로 대응 및 응용하는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세계시민은 한두 번의 실천 경험과 지식 차원의 학습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그 이상의 권리와 책임을 갖춰야 한다. 여기서 강조하는 세계시민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한 개념을 미국 정치사회 학자 태로우(Sidney Tarrow)가 제시한 ‘풀뿌리 세계시민(rooted cosmopolitan)’에서 찾는다.

마을과 세계 함께 상상하는 세계시민


▎한국은 33개 국가와 15가지 종류의 공정무역 제품을 거래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 지역 국가가 주요 수입처인 것이 특징이다.
태로우는 세계시민을 세계에도, 그렇다고 마을에도 가두지 않는다. 세계시민은 풀뿌리 마을 혹은 지역 전문가이면서도 국제협력 및 연대 활동을 우선시한다. 또한 전 지구적으로 수렴되는 이슈들을 이해하고 이를 자기 마을과 지역에 적용 및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이러한 세계시민이 되려면 어려서부터 다양한 시민활동 즉 학습, 자원봉사, 회원 가입, 캠페인 참여를 통해서 자기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국제 연대 및 협력 활동을 꾸준히 반복,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전 지구적 프레임을 갖고 자기 마을의 문제를 바라보지 않게 되며 동시에 마을과 지역의 풍부한 자원과 경험을 전 지구적 차원의 연대활동으로 연결시키지 못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과 지역에는 세계시민이 얼마나 존재할까? 세계시민은 결코 저절로 준비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개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이기에 ‘기후정의’ ‘사회정의’ ‘젠더정의’ 등과 같은 전 지구적 차원의 공공선을 자발적으로 추구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세계시민을 국가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경제세계화의 열매만 따먹고 결코 세계 시민으로서의 그 책임을 다하지 않는 초국적 유목자본가(nomadic capitalist)로 이해하는 경우를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세계시민이 되려면 영어도 잘하고, 해외여행도 많이 다니는 소위 엘리트 교육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는지 성찰해야 한다.

전 지구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경제세계화의 열매를 얻고 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에게만 돌아가며 다수가 그 뒤안 길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다. 그 결과 전 지구적 차원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 지구적 노력에 동참하는 것이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시민은 결코 거시적인 얘기로만 접근할 필요가 없으며, 구체적인 삶 속에서 학습하고 실천하고 그 목표를 차근차근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내가 살고 지역을 공정무역 마을로 가꾸는 일이다. 공정무역마을 속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이 풀뿌리 세계시민의 길이다.

공정무역(fair trade)은 다양한 가치와 실천을 결합한 대안적인 무역운동이다. 공정무역운동은 1940년대 미국에서 조금씩 나타나다가 50년대 후반 영국 옥스팜(Oxfam)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이후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저개발국가의 가난한 농부와 노동자들이 친환경적으로 농산물을 생산 및 가공할 수 있도록 교육 및 훈련하고 이후 생산물을 공정한 값을 주고 수입, 판매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이처럼 공정무역운동은 생산자들의 지속가능한 생산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는 무역거래 운동이다. 공정무역을 위해서는 국제무역에서 대화와 투명성 그리고 파트너에 대한 존중감을 제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호 신뢰와 존중의 관계 속에서 공평하고 정의로운 거래를 추구하게 된다. 이처럼 공정무역은 저개발국가의 경제활동에서 소외된 생산자와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거래조건을 제공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한다.

촘촘해지는 공정무역 연결망


▎WFTO는 매년 5월 둘째 주 토요일 ‘세계 공정무역의 날’을 열어왔다. 한국도 2008년부터 동참해 매년 다채로운 퍼레이드 행사와 캠페인을 진행한다.
공정무역단체들은 지구정의라는 프레임을 토대로 소비자들의 지원과 지지를 동원해 무역거래에서 관행적으로 지속되는 규칙과 관례들을 변화시키고자 다양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국제공정무역기구(WFTO)가 제시한 ‘10대 공정무역 원칙’은 경제적으로 소외된 생산자들을 위한 기회 제공, 공정한 가격 지불, 차별금지 등을 포함한다. 이는 단순한 무역거래를 넘어 지속가능한 지역 경제공동체를 유지·발전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매우 포괄적인 원칙과 전략이다.

공정무역의 현황부터 살펴보자. 쿠피협동조합의 2016년 연구보고서 ‘서울시 공정무역 확산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 제언’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공정무역 시장은 성장하고 있다. 2015년 WFTO가 인증한 공정무역 제품은 73억 유로(약 9조2900억원)가 판매됐고, 그중 영국이 21억 유로(약 2조 7000억원)를 차지했다. 또한 같은 해 WFTO에 가입돼 있는 회원단체는 아시아 135개, 유럽 81개, 남미 55개, 아프리카 및 중동 74개, 태평양 연안 지역 19개로 모두 합쳐 364개 단체였다.

한국 공정무역 시장은 세계 시장에 비하면 그 역사가 아주 짧고 규모도 아주 작다. 최근 들어 서울시를 비롯한 몇몇 지자체와 공정무역 단체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공정무역 인증 제품이 우리 생활 속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으며 그 판매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 2016년 말 기준으로 공정무역 단체는 총 14개이며, 공정무역 인증제품 거래를 하는 일반 유통업체 수는 25개다. 2012년에 공정무역 단체들의 매출액이 100억 원 정도로 출발했으나 2015년에는 163억원으로 성장했다.

거래물품을 보면 총 15개로 커피(생두·원두·인스턴트), 바나나, 설탕, 차, 향신료(계피·후추·강황), 너트, 오일, 초콜릿(다크·화이트·코코아 등), 축구공, 과일(건망고·건자두), 수공예품(의류·소품), 화장품 금, 면화, 주류(맥주·포도주) 등이며, 이외에도 WFTO 한국사무소에서 음료수, 잼, 과자, 면, 통조림류 등의 다수의 가공품을 취급하고 있다.

공정무역 제품을 판매하는 곳은 한국공정무역단체 협의회 소속 단체 및 사회적경제 조직 판매처(shop-in-shop), 일반카페·매장·음식점 등에서는 공정무역 제품이라는 표기를 통해 시민들이 구매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2016년 12월 기준으로 총 265개 판매처가 확인됐으며 그중에서도 마포구, 강남구, 종로구 순으로 판매처 수가 20개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 공정무역 제품을 거래하는 국가는 2014년 말 기준으로 총 33개국이다. 아시아 11개국, 중동 1개국, 중남미 8개국, 아프리카 7개국, 오세아니아 1개국, 그리고 서구 선진 5개국을 포함한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공정무역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공정무역 단체들이 동티모르, 필리핀, 네팔 지역의 직접 생산자 지원사업을 수행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덕수궁 돌담길에서도 관련 정보 얻고 체험


▎세계시민은 구체적인 삶 속에서 학습하고 실천하면서 성장한다. 손수 만든 피켓을 들고 공정무역을 홍보하는 학생의 모습.
공정무역의 전진기지는 공정무역마을이다. 공정무역을 홍보하고 판로를 확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2016년 기준으로 전 세계 28개국에 1865개의 공정무역마을이 운영되고 있다. 공정무역마을로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다. 영국에 위치한 국제 공정무역마을위원회의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에 공정무역 매장을 세우고 시민단체와 지방자치 단체 관계자 등 다양한 이해 당사자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도 꾸려야 한다.

그동안 아시아에는 일본과 레바논에서 여러 도시가 공정무역마을로 인정받아 활동해왔다. 최근 서울시와 성북구, 인천시 그리고 부천시 등 한국에서도 공정무역 도시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고 있다. 2010년부터 공정무역 도시 선언, 조례 제정의 노력과 동시에 공정무역 교육, 커뮤니티, 공정무역가게, 자치구 특화 등의 지원사업을 추진했다. 그중 지난 6월에 부천시가 첫 번째로 공정무역 도시로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마을 주민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기초자치단체의 정책 드라이브와 주요 공정무역단체들의 협력의 결과로 보는 것이 정확한 것이다. 이는 지자체와 공정무역단체들의 노력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인증 이후의 후속적인 활동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공정무역마을 혹은 도시로 인증 받은 이후 공정무역운동과 관련 사업을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주민 주도의 아래로부터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견지에서 공정무역마을은 풀뿌리에서부터의 변화를 추동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풀뿌리 현장으로 내려가 보면 아직까지 공정무역마을에 걸맞은 세계시민이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자체의 제도적 지원이 중요하지만 더 우선해야 할 것은 시민사회 전체의 변화다. 시민 스스로 공정무역운동을 추동하는 풀뿌리 세계시민을 발굴하고 이들이 공정무역운동을 주도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공정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풀뿌리 세계시민의 성장이 절실하다.

2017년 5월 13~14일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린 ‘2017 세계 공정무역의 날 한국 페스티벌 행사’에서 공정무역의 밝은 미래를 봤다. 서울시가 후원하고 한국공정무역연합(KFTO)이 주관한 공정무역 주간 행사는 희망적인 측면을 더 갖게 했다. 공정무역 제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뿐 아니라 그동안 공정무역 관련 캠페인과 소모임·동아리에 참여한 예비 세계시민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구체적으로 목격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또한 주말을 맞아 덕수궁 돌담길을 찾은 일반 시민들은 공정무역 관련 정보를 얻고 체험 참여를 통해 공정무역의 뜻을 보다 구체적으로 공유했다. 이러한 페스티벌이 상시적으로 열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면 일반 시민에게 공정무역을 더 자연스럽게 노출시킬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풀뿌리 세계시민은 일회적인 행사 참여나 지적인 동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애 주기적 차원에서 볼 때 이 참여 학생들의 관심과 열정적인 모습에서 공정무역운동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음을 확인했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동아리를 만들어 공정무역단체와 함께 이 행사에 참여했다.

참여 학생들의 마음 판에는 이 경험이 공동의 기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고, 공정무역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넘어 관련 캠페인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일상생활 속에서도 공정무역 제품 구매를 통해 공정무역에 대한 가치를 확신하고 구매활동을 체화하는 소중한 과정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처럼 공정무역의 날 기념 주간 행사는 공정무역 제품 판매도 중요한 목표이겠지만 미래세대가 공정무역 가치를 동의하고 이 운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이들이 풀뿌리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서울 성북구가 만든 공정무역센터 ‘페어라운드’


▎커피콩은 한국의 공정무역단체들이 가장 많이 들여오는 상품 중 하나다.
풀뿌리 세계시민의 모판을 꿈꾸다

서울시 성북구는 서울시의 공정무역도시선언에 부응해 2012년 7월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구청의 사회적경제과 내에 공정무역 전담팀을 신설했고, 12월 31일에 공정무역 지원 및 육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에는 공정무역 기본원칙 및 구청장의 책무, 공정무역 사업 추진계획 수립 및 시행, 공정무역사업에 대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근거를 마련했다.

제도적 정비를 토대로 성북구는 2013년 2월 ‘공정무역 선도구 성북’을 선언했다. 한국공정무역단체협의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공정무역 확산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동시에 이를 뒷받침할 행정조직-마을재생기획단을 신설했다. 또한 지역 주민들이 공정무역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로 ‘공정무역 서포터즈’를 3기에 걸쳐 모집해 공정무역 교육을 통한 강사 양성 그리고 공정무역 소그룹 활성화를 꾀했다.

성북구가 공정무역 마을로 거듭나기 위해 추진한 사업 중에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공정무역 거점공간인 공정무역센터 페어라운드(Fair Rround)를 건립한 것이다. 2016년 8월 성북구 동선동 성신여대 가까이에 공정무역센터 페어라운드를 건립했다. 페어라운드 1층 열린 공간은 공정무역 관련 세미나, 체험 프로그램 그리고 관련 소모임을 위한 곳이다. 2층은 100여 종의 공정무역 제품을 전시 및 판매하는 매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페어트레이드 코리아 ‘그루’가 사업을 수탁해 운영하고 있다.

성북구는 공간이 생기면 관심과 열정 있는 사람들이 모일 것이고, 그들 중심으로 공간의 비전과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 사업과 활동을 함께 궁리할 것이며, 사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공정무역 커뮤니티가 형성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을까? 페어라운드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 어떻게 공정무역을 머리에서 손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연결시키는지를 살펴보고자 지난 5월 25일 페어라운드를 방문했다.

페어라운드의 비전은 분명 세계와 지역을 공정한 무역을 통해 선순환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성북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공정무역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지속가능한 공정무역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거점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2016년 8월에 페어라운드 운영을 시작해 아직 평가하기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사업을 중심으로 성북구의 공정무역 캠페인 사업을 성찰해보고자 한다.

페어라운드를 방문하자마자 성북구의 수준 높은 비전과 목표에 놀라면서 왜 이곳에 페어라운드가 생겼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이곳에 새로운 길이 나면서 자투리땅이 생겼고 서울시의 지원으로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공정무역에 대해 관심을 갖고 꾸준히 활동하던 지역 주민 혹은 시민사회단체가 어느 정도 있는지 먼저 확인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소규모라도 주민들과 함께 좀 더 충분한 기획과 토론의 시간 즉 주민과 함께 궁리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졌으면 어땠을까?

분명 성북구는 자치구 소유의 공정무역센터를 갖추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자랑할 만한 일이다. 사실 공간이 권력이다. 공간을 통해 공정무역 가치를 알리고 함께 토론하고 전문가를 교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도 공정무역 전용매장을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되면서 공정무역 제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동시에 수공예 제품의 가치를 깨달으면서 마니아가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처럼 제품 소비자에서 공정무역 후원자가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일이다. 공정무역 가치 공감에서 시작해 제품 소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 반대의 과정도 분명 존재한다. 후자의 경우는 공정무역 제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공정무역운동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역주민은 공정무역에 대한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현주소라는 것이 지역 담당 공무원의 평가다. 지역 주민들은 공정무역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며 공정무역 제품을 신뢰하지 못하기에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주민들을 설득해 풀뿌리 세계시민으로 설 수 있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주민과 함께 가야 멀리 간다


▎성북구 페어라운드는 공정무역 운동의 전초기지다. 페어트레이드 코리아 ‘그루’ 소속원이 공정무역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성북구는 거점 공간을 만들고 센터 운영사업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과연 지역 주민들이 공정무역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태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 그 인식 조사 및 공정무역 제품 판매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비록 짧은 운영 경험에도 불구하고 성북구에서 공정무역과 관련해 풀뿌리 세계시민으로 성장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을 확인할 수 있는가?

이 사업을 추진한 담당자에 따르면 공정무역 서포터즈 프로그램을 3기에 걸쳐 진행하면서 몇몇 주부는 못 말릴 정도의 학습과 참여에 열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분들이 주도적으로 공정무역 관련 협동조합을 구성하는 수준까지는 아직까지 이르지 못하다는 것이 솔직한 진단이다. 실례로 서포터즈 프로그램을 통해 강사양성 교육을 받은 분들은 그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받지 못한 것을 아쉬움으로 갖고 있다. 지역 내에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으나 공정무역 교육이 다른 교육 내용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청소년 및 대학생을 공정무역운동에 적극적으로 유인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몇몇 장애물을 마주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성북구 지역에는 많은 대학이 있음에도 공정무역 관련 동아리가 있는 곳은 고려대 한 곳밖에 없다고 한다. 그 활동도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학 간 연합동아리 형태로 대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추동해 그들의 열정과 기획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공정무역운동 단체들과 함께 지역 대학생들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구청에서 모든 것을 진행하려는 과욕은 버려야 한다. 공무원들은 공정무역 관련 사업을 우리끼리만 하는 것 같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보다 주민들이 먼저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사고의 전환도 필요하다. 주민들은 왜 공정무역에 관심이 없을까를 안타깝게 여기기보다 주민에게 기회를 먼저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주민이 풀뿌리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성북구의 공정무역 사업은 주민이 풀뿌리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모판이 돼 주어야 한다. 성장은 주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장애물이 많이 놓여 있다. 청소년들이 너무 바빠서 교육할 시간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청소년들이 여백이 없는 삶 속에서 풀뿌리 세계시민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동시에 공무원 역시 공정무역 관련 열정 활동가와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어느 정도 친해지고 일도 익숙해질라치면 다른 부서로 옮겨야 되는 순환보직제가 큰 장애물이다.

이제는 지역에서 능동적 참여자를 발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사람을 발굴했다면 그들을 맘껏 자랑하고 그들에게 명예를 줘야 한다. 마을에서 시작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페어라운드는 공정무역운동 참여를 통해 풀뿌리 세계시민을 꿈꾸는 공간이 돼야 한다. 공정무역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그 안에서 삶의 가치가 바뀌고 비슷한 생각의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한다.

서울 금천구의 자랑 ‘민들레워커’


▎페어라운드 부지를 결정할 때 경제논리뿐만 아니라 연대의 논리도 함께 고민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페어라운드의 외관.
대를 잇는 협동조합을 만들자!

서울시는 2016년부터 공정무역 자치구 특화사업을 시작했다. 공정무역 가치를 확산시킬 수 있는 플랫폼은 결국 풀뿌리 수준에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서울시 공정무역 지원사업의 주요 목표 중 하나다. 서울시 총 25개 자치구 중 5개의 자치구 조례에 공정무역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을 정도로 기초자치단체는 공정무역운동에 큰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 자치구에서도 호응이 있다. 그중에서 금천구가 공정무역에 관한 큰 관심을 가지고 풀뿌리 차원에서 공정무역 거래를 촉진시키고자 지원하고 있어 주목된다.

금천구는 구청 내 1층에 민들레워커협동조합(이하 민들레 워커)와 함께 공정무역 제품 판매장과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는 북카페 공간을 조성해 공정무역 가치 확산에 노력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 가치에 동의하고 풀뿌리에서 성장한 지역 내 협동조합을 파트너로 공정무역 확산운동을 전개한 지난 1년여의 경험이 궁금했다. 금천구에는 공정무역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풀뿌리 세계시민이 얼마나 있을까? 지난 6월 15일 금천구청 내 민들레워커가 운영하는 매장과 북카페를 방문했다.

우선 금천구의 공정무역운동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궁금했다. 금천구 지역혁신과 산하 사회적경제팀이 공정무역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공정무역운동은 물론 제품 판매가 단독적으로 진행되기보다는 사회적 경제 활동의 울타리 안에서 공정무역 캠페인과 제품 판매를 진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공정무역운동 자체를 논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금천구 사회적 경제 생태계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다.

금천구 내 사회적 경제 활동의 특징은 연대활동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금천구는 재활용 물품 판매의 벼룩시장과 별도로 사회적 경제 활동을 통해 생산한 물품 판매를 제고하기 위한 해놀이장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 여름 두 달 동안은 민들레워커이 주관하고 있다.

민들레워커는 금천구 지역풀뿌리 환경단체인 ‘숲지기 강지기’와 ‘암탉 우는 마을’주민들이 함께 만들었다. 민들레워커는 솜씨공방과 원예공방의 사업을 기반으로 소외계층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2013년에 설립됐다. 이처럼 민들레워커는 자연과 이웃 그리고 지역이 연대하는 건강한 공동체로 미래세대와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민들레워커는 행정자치부와 서울시 인증 마을기업으로, 지역 물품 제작뿐만 아니라 공정무역 제품 판매를 수행하고 있다.

김혜숙 민들레워커 대표는 공정무역 제품을 꼭 수입하는 물품으로 제한하지 않고 국내에서도 공정무역 제품을 발굴해 거래하는 광의의 공정무역운동을 주장한다. 경력단절 여성과 빈곤층 할머니들이 제작한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것도 공정무역 제품과 같이 취급돼야 한다는 것이다. 민들레워커가 이러한 일을 꾸준하게 전개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조합원들은 풀뿌리 지역의 리더가 되기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공정무역운동에 참여하는 숨은 후원자임을 강조한다. 공정무역운동은 이러한 풀뿌리의 숨은 후원자가 늘어날수록 더욱 지속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들은 풀뿌리 지역을 누구보다 사랑하기에 큰 얘기보다는 항상 지역을 우선 고려한다. 민들레워커는 올해 조직 모토로 ‘대를 잇는 협동조합을 만들자!’로 삼았다. 현재 1세대 조합원에서 2세대 조합원에게 행복한 일터를 물려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의 미래는 새마을운동이 아니다


▎민들레워커는 해외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안에 있는 약자들에게 주목한다. 서울 금청구청 청사 1층에 마련된 공정무역 매장.
풀뿌리에서 지역공동체 운동을 꾸준히 해온 소규모의 조직들이 공정무역을 비롯해 사회적 경제 활동을 지방정부와 함께 추진하면서 마주하는 어려움을 우리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김 대표는 이 협치를 리어카를 끄는 것에 비유한다. 공무원 입장에서 보면 정책성과의 가시화가 중요하지만 협치는 리어카에 비유하면 공무원들이 앞에서 너무 끌어가면 문제가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행정을 담당하는 담당 공무원은 정부 주도사업 관련 법적 절차나 내용을 주민보다 훨씬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빠른 성과를 보여주고 싶은 나머지 앞에서 강하게 정책 드라이브를 걸어 주민을 끌고 나가는 것이 발견된다. 그러나 주민들은 체력이 안 되니까 넘어지게 된다. 이것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서구의 성공사례는 대부분 천천히 진행된다. 너무 숨 가쁘게 성과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문제다.

지역공동체 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민 중에서도 리어카를 끌고 가는 사람들의 이동속도를 맞춰 함께 가야 하는데 앞선 리더가 열정이 넘쳐 충분한 토의 과정 없이 사업을 자기 주도로 끌고 간다면 함께한 주민들이 이해 부족으로 쉽게 넘어지게 된다. 느려 보이지만 경륜이 있는 지역 주민들을 너무 세게 밀어붙이면 앞에 있는 주민은 쉽게 고꾸라질 수 있는 것이다. 시간에 대해 관대하자는 주장이 풀뿌리로 갈수록 절실해진다.

물론 속도가 느리다고 민들레워커가 젊은 대학생들과 결코 협력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민들레워커는 디자인을 잘하는 청년 조합원으로 구성된 소정당 협동조합과 멋진 협동을 이뤄내기도 했다. 장년의 노련한 솜씨의 수공예 제품을 더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판매하기 위해 청년들의 디자인 능력과 혁신을 결합하는 협동사례다.

동일한 전략이 온라인 판매에서도 빛을 발했다. 공정무역 제품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면서 온라인 구매를 희망하는 경우도 증가했다. 그런데 공정무역 제품에 대한 정보 업데이트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구매자에게 매력적으로 전달되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하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공정무역 가치를 우선하는 청년들과의 협동 속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공정무역 마을로 선정되고 시장을 키우는 게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기초자치단체의 선도 혹은 견인 역할과 함께 지속가능한 전략을 고민할 때다. 이를 위해 풀뿌리 주민 속에서 공정무역 가치에 대한 이해와 공감도를 높이고 그 가치를 체화하는 실천적 학습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민 스스로 조직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전략이 중요하다. 주민들이 공정무역의 단순 조력자를 넘어 서서 풀뿌리 세계시민으로 올바로 서기 위한 협동조합과 같은 안정적인 조직 활동이 중요하다. 그런데 아직까지 공정무역을 견인할 주민 단위의 풀뿌리 세계시민은 부족한 상황이다.

공정무역운동을 주요 활동목표로 하는 시민사회운동단체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래로부터 공정무역운동을 추진하는 자발적 단체가 계속적으로 나와야 한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변화 및 운동단체의 증가 속에서 자치구의 공정무역 마을로 전환하기 위한 선도 및 견인 전략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공정무역운동과 관련해선 지정부가 모든 정책과 프로그램을 선점하는 형국이다.

안타깝게도 기초자치단체는 공정무역가치 확산에 의지가 있지만 관련 예산이 지속적으로 삭감되는 악순환을 경험하고 있다. 지역 의회를 설득하는 토론의 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관련 시민사회단체가 늘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풀뿌리 세계시민을 주목하자.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육성되는 것이 아니다. 공정무역운동은 풀뿌리 세계시민이 성장할 수 있는 운동장이다.

임현진(林玄鎭, Hyun-Chin Lim) hclim@snu.ac.kr - 서울대 명예교수. 학술원 회원.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실련 공동대표, 사회과학협의회장, 서울대 사회과학대장, 아시아연구소 창립소장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글로벌 NGOs> <세계화와 반세계화> <지구시민사회의 구조와 역학> <뒤틀린 세계화> <글로벌 패러독스> <아시아의 부상> 등 50여 권이 있다.

공석기(孔錫己, Suk-Ki Kong) skong@snu.ac.kr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경희대 공동대학원 겸임교수. 환경경운동연합 국제협력위원회와 서울시 공정무역위원회 위원.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글로벌 NGOs> <인권으로 읽는 동아시아> <인권사회학> <뒤틀린 세계화> 등이 있다.

201708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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