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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 북핵 위기 둘러싼 한반도 주변 강국들의 이해타산법 

한반도 전쟁은 누구에게도 밑지지 않는 장사?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트럼프, 취임 후 반년간의 실책을 한꺼번에 만회 가능한 옵션이 북한 공습… 중국은 북한 버리고 남중국해 지배권 획득, 일본은 내각 불신임 위기 모면의 호기

▎북한 [조선중앙TV]가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미사일 발사 장면. / 사진:조선중앙통신
지난 7월 28일 금요일은 아베 신조 총리에게는 일본 방위와 관련해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선 시각에 총리 관저에서 각의(閣議)를 소집했다. 각의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아침 8시쯤부터 15분간 정도 진행되는 일본 정부의 최고의사결정회의로 20명의 각료(장관)가 전원 출석한다.

이날은 아베 총리가 전날 밤부터 잠들지 못했던 관계로 10시를 넘겨 시작된 것이다. 밤새 잠 못들 정도로 아베 총리를 괴롭혔던 것은 ‘정계의 부인’이라고 불리는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을 사임시켜야만 한다는 사정이었다.

아베 총리는 외교와 방위 분야만큼은 자신이 직접 관장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지난해 8월 단행된 개각에서 자신의 ‘정계의 부인’을 방위상으로 발탁했다. 당시 이나다 방위상의 발탁은 일본 국민들을 경악하게 만든 초특급 ‘깜짝’ 인사였다.

변호사 출신의 이나다는 중일전쟁 당시 1937년 12월 일본군에 의한 ‘난징 대학살’ 주장이 날조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극우 성향의 연구회에서 아베를 만나게 됐고, 그녀의 이런 사상에 공감하는 아베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아 2005년 정치에 입문했다.

이나다는 “나의 정치적 ‘신조’는 아베 ‘신조’다”고 공언할 정도로 아베를 정치적 스승으로 흠모했으며, 2007년 가을 지병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나 실의에 빠져 있던 아베 곁을 지킨 정치인이었다. 이런 경위로 인해 언제부턴가 아베의 ‘정계의 부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이다.

2012년 12월 아베가 총리에 복귀하면서 이나다는 총리의 대변자라는 후광을 등에 업었다. 행정개혁담당장관, 자민당 정무조사회장(당 4역 중 하나), 방위상 순으로 권력의 요직을 옮겨 다녔다. 아베 총리는 이나다를 “나의 유력한 후계자”라고까지 치켜세웠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이래로 이나다 방위상과 방위성·자위대와의 궁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방위성의 한 중견 간부는 다음과 같이 털어놨다. “이나다는 정치가라기보다 연예인 같은 사람이다. 옷차림에만 신경 쓰고 방위 문제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지시에 말끝마다 ‘총리의 의향’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동안 북한은 수차례 미사일을 발사하고 제5차 핵실험까지 강행했지만 그때마다 이나다가 보여준 리더십은 형편없을 정도다. 우리는 ‘방위성이 지켜야 하는 것은 일본 국민이지 방위상이 아니다’는 의식을 가지게 됐다.”

북한 덕분에 총리에 오른 아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월 G20 정상회의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9월 9일 북한 공습 계획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들어 이나다는 육상자위대의 남수단 평화유지군(PKO) 부대의 ‘일보’(대원의 활동보고서) 은폐 문제, 그리고 과거 모리토모학원 변호사로 활동했던 경력, 그리고 7월 2일 도쿄 도지사 선거 유세 연설에서 자위대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발언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며 국민들의 공분을 사왔다. 이 때문에 아베 총리는 8월 3일의 개각에서 각료들을 교체할 예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나다 방위상만은 교체를 앞당겨 개각 일주일 전에 전격 해임해버린 것이다.

앞서 언급한 각의를 마친 아베 총리는 이나다만을 각의실에 따로 남게 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단 둘이 37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아베 총리는 “이나다로부터 사표를 제출받았다”고 설명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알 수 없다. 일설에 따르면 이나다는 각의실을 나서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베 총리로서는 그야말로 ‘읍참마속’의 심경이었을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밤, 외부와의 식사 일정을 잡지 않은 채 이마이 다카야 수석비서관과 총리관저 근처에 있는 도쿄캐피털호텔의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후 저녁 8시쯤 시부야구 도미가야의 사저로 돌아왔다.

그러나 총리는 이날 밤도 푹 잘 수 없었다. 시각이 7월 29일로 옮겨가려던 심야에 비서관으로부터 긴급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총리! 방금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보이는 비행물체를 발사했습니다. 즉시 관저로 출발해주십시오!”

아베 총리는 서둘러 양복을 걸치고 전용차로 총리 관저로 향했다. 관저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0시22분. 차에서 내리는 자신을 둘러싼 기자단에게 아베 총리는 다소 피곤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거듭되는 북한의 도발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북한에 강하게 항의할 것이다.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북한을 비난할 것이다. 미국·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러시아 등 국제사회와 긴밀히 연대해 북한에 대한 압박을 한층 강화해 나갈 것이다.”

아베 총리는 0시44분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인 ‘4인 각료 회의’를 열었다. 4인 각료란 총리·관방장관·외무장관·방위상이지만 이날부터 기시다 후미오 외무장관이 방위상을 겸임하게 돼(총리는 방위상을 겸임할 수 없다), 실질적으로는 3인 회의였다. 이날 아베 총리의 심경은 여러 가지 의미로 착잡했을 것이다.

원래 북한에 대한 아베 총리의 감정은 복잡하다. 아베 총리는 부친인 아베 신타로 전 외무장관이 췌장암으로 타계한 것을 계기로, 1993년 부친의 선거구를 물려받으면서 젊은 나이에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과격한 우익정치인이라는 인상 외에 특별히 장래가 유망해 보이는 인물은 아니었다.

일본 국민이 아베 신조라고 하는 정치인을 알게 된 것은 2002년 가을부터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평양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일조평양선언’을 맺었다. 동시에 하스이케 가오루를 비롯한 5명의 일본인 납치피해자를 일본으로 귀국시켰다. 고이즈미 내각에는 이를 계기로 북한과 국교 정상화를 모색하려는 대북유화파와, 북한에 생존해 있는 일본인 납치 피해자가 더 있을 것이라고 보고 귀국추진운동을 계속해야 한다고 하는 강경파가 강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전자의 대표 격이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이며, 후자의 대표가 바로 아베 신조 관방부장관이었다.

일본 국민의 여론은 압도적으로 후자를 지지했으며 그 대표 격인 아베에게는 ‘납치의 아베’라는 별명이 붙었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 선 히어로로 추앙받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2006년 9월 고이즈미 총리가 5년 5개월에 걸친 장기 집권에서 물러났을 때 납치의 아베가 그 후계자로 물망에 오르게 됐다. 환원한다면 북한 덕분에 아베는 총리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담 없는 지지율 상승의 지렛대, 핵과 미사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지난해 3월 소형 핵탄두를 살펴보고 있다. / 사진:노동신문
그러나 총리 자리에 앉게 된 아베 총리는 이때부터 서서히 북한 문제를 둘러싼 모순을 깨닫게 된다. 즉 일본인 납치 피해자를 전원 귀국시키라고 북한을 몰아붙일수록 일본에서 자신의 인기가 올라간다. 그러나 이에 자극을 받은 북한은 더욱 반발하게 되기 때문에 일본과의 교섭을 거부하게 되고 납치문제 해결의 길은 더욱 더 멀어져 간다는 것이다.

2012년 12월 제 2차 정권을 발족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베 총리는 이 모순을 해결할 열쇠를 찾아낸다. 그것은 납치 문제가 아닌 핵과 미사일 문제에 관해 북한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말 북한이 빈번하게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황급하게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고 카메라 앞에서 북한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때마다 내각 지지율은 치솟았으며, 동시에 납치 문제에 진전이 없는 이유에 대한 훌륭한 핑곗거리가 됐다. 즉 “지금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해 압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북한과의 협상을 중단한 것이다. 언제부턴가 총리 관저 내에서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을 ‘북풍’이라고 부르며 내심 반기는 분위기가 형성되기까지 했다.

올 7월 하순 시점에서 아베 정권의 지지율은 최악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마이니치신문이 7월 24일 발표한 내각 지지율은 26%이었다. 일본 정계에서는 “지지율이 30% 밑으로 떨어지거나, 전달보다 10% 이상 급락하면 반년 이내에 내각이 붕괴된다”는 속설이 있다. 다시 말해 드디어 아베 내각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볼 수 있다.

아베 총리를 더욱 초초하게 만든 것은 7월 27일에 제1야당인 민진당의 렌호 대표가 대표직 사임을 표명한 것이다. 여성인 렌호 대표가 이끄는 야당은 정치적인 감각이 뒤처진 탓에 “아베 정권의 최대 응원단”이라는 야유를 받고 있었다. 이 렌호 대표가 사임하면서 강력한 야당이 등장할 가능성이 생겨난 것이다.

7월 28일 심야에 북한이 ICBM 발사실험을 감행했다는 속보를 전해 듣고 아베 총리의 심정이 복잡했을 것이라고 한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가장 총애하는 방위상의 목을 쳐야만 했고, 이로 인해 방위성과 자위대가 크게 흔들리며 내각 지지율이 최악인 시점에서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북풍을 만난 것이다. 아베 총리 입장에서 이것은 ‘가미카제’라 불러도 좋을 정도의 행운(?)이었다. 아베 총리는 심야에 황급히 총리 관저를 향해 달리는 전용차의 뒷좌석에 피곤한 몸을 파묻은 채 ‘나에게는 아직 운이 따르고 있다’고 반추하지는 않았을까.

3주 전쯤인 7월 6일, 독일의 함부르크에 있는 미국 영사관. 그곳에서 아베 총리는 북한 문제에 있어 자신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정치지도자와 처음 악수를 교환했다. 5월 10일 한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이다. 가운데에 선 트럼프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북한에 대한 압박 강화를 주장하는 일본의 아베 총리, 반대쪽에는 대화 노선을 주장하는 문 대통령. 불편하기 그지없는 한·일 정상의 첫 대면 광경이었다.

그렇다면 중앙에 선 트럼프 대통령의 속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마 거의 100% 아베 총리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북한이 7월 4일 미국이 레드라인으로 생각하는 ICBM 발사실험을 강행,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그 직후인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노여움은 컸다. “북한의 위험한 도전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 즉시 강력한 대항 수단을 취하겠다. 이 건은 앞으로 만날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논의하겠다.” 나아가 7월 28일 2차 ICBM 발사 후에는 “북한은 이제껏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르면 8월 15일, 혹은 9월 9일 북한에 공습”


▎8월 2일(현지시간) 새벽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기지에서 발사된 미 공군의 ICBM ‘미니트맨 3’. 약 6700여㎞를 날아 목표 지점인 마셜군도의 환초에 명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하는 ‘강력한 대항 수단’이 4월 6일 시리아 정부군에 대해 감행된 것 같은 ‘공습’을 의미하는 것은 명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미국은 오바마 정권까지 약 20년간 15억 달러나 되는 연방예산을 북한 문제를 위해 낭비해 왔다”고 주장하며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의 참수 작전을 포함한 “모든 옵션이 나의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고 거듭 말해왔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있었던 미국과 러시아의 회담 내용에 대해 나에게 다음과 같은 제보를 해줬다.

7월 7일 오후 G20 정상회담을 빠져 나온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첫 정상회담을 했다. 이 미국과 러시아 간의 정상회담은 당초 30분을 예정했으나 2시간16분이나 진행됐다. 워싱턴 정계를 흔들고 있는 러시아 게이트 문제, 이슬람국가(IS) 제거 이후의 시리아와 중동 문제, 그리고 ICBM 발사실험을 강행한 북한 문제 등 3대 의제를 놓고 두 정상이 집중적으로 의견을 나눴기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서 북한 문제에 관해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폭탄발언을 했다. “이르면 8월 15일, 혹은 9월 9일 북한에 공습을 퍼부으려고 합니다. 4월에 시리아를 공습한 것처럼 말입니다.”

경악한 푸틴 대통령은 “좀 더 냉정하게 판단해 달라”며 만류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튿날인 7월 8일, G20 정상 오찬 회동 때 다시 한번 트럼프 대통령을 별실로 이끌어 성급한 공습을 멈추게 하려고 설득했다. 8월 15일에는 평양에서도 광복절 72주년을 축하하는 대규모 기념식전이 열리는데 거기에는 조선노동당과 조선인민군 간부들이 총집결한다. 만일 김정은이 참가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행사에 공습을 퍼붓는 것으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북한에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공습에 매달리는 것인가. 그것은 그의 입장이 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미군에 의한 북한 공습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여러 면에서 이익을 가져다준다. 우선 러시아의 협력을 받는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괴롭히고 있는 러시아 게이트 문제가 일순간 관심권에서 멀어진다. 또 미국 본토를 공격하겠다고 협박하는 악의 북한을 쳐부순다고 하는 대의명분이 성립되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 트럼프 정권의 지지율이 순식간에 회복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군수산업의 고용 촉진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넓은 의미로 군 관계자들의 지지가 기대된다. 미군은 IS를 약체화시킨 후에 다음 타깃이 될 상대를 물색하고 있었다.

즉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취임 후 반년간의 실책을 한꺼번에 만회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북한 공습이라고 하는 옵션인 것이다.

반대로 북한을 공격하는 데 따른 불이익은, 말할 것도 없이 동아시아가 일대 혼란에 빠져버린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의 맹렬한 반격이 예상되는 만큼 한국이 ‘불바다’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1994년의 제1차 북핵 위기 당시의 미군이 작성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미국과 북한의 전쟁이 3개월 정도 지속될 경우 한국의 민간인 사상자가 약 100만 명 발생한다. 이 시나리오는 북한 미사일이 아직 미숙했던 22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현시점에서는 각종 미사일에 더해 핵무기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보면 한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것이 예상된다.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될 한국은 물론, 북한의 ‘후견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중국 역시 미군에 의한 북한 공습은 강력 반대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일관되게 한반도 문제에 대한 ‘3원칙’을 견지하고 있는데 이는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 대화와 협상에 의한 문제 해결, 그리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다.

특히 중국은 올가을,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중국공산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이 대회를 무사히 끝내고 절대권력을 수중에 넣으려는 시진핑 주석으로서는 대회 직전에 북한의 급변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7월 8일 오후 함부르크 G20 종료 직후에 이뤄진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중국 국영 통신사인 ‘신화사’는 “양 정상은 북한 문제에 관해 심도 있는 의견 교환을 했다”고만 짤막하게 보도했을 뿐이다. 즉 격렬한 논쟁이 있었기 때문에 그 내용을 보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북·미 전쟁 시 중국은 미국을 돕는다?


▎북한의 포위사격 위협을 받고 있는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랜서’가 대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중국 측의 보도에서 주목할 만한 일은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양국 간의 군사 교류를 추진하자”고 줄곧 제안하고 있는 점이다. “양국 국방장관의 상호 방문을 한시라도 빨리 추진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우선은 미국의 합동참모의장의 방중을 8월 중에 성사시키고, 양국 군의 연합참모부의 첫 대담을 11월에 실시하자. 중국 해군은 내년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RIMPAC)에 반드시 참가할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G20 정상회의에서 귀국한 후에도 군사 관련 시찰에 여념이 없었다. 7월 19일에는 인민해방군의 총본산인 베이징 바이다러우(八一大樓)를 방문, 자신에게 절대충성을 맹세케하는 행사를 열었다.

7월 21일에는 ‘톱7(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을 이끌고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을 방문, 중국인민해방군 건국 90주년 기념전을 참관하고 훈시를 내렸다. 또한 7월 30일에는 인민해방군 90주년을 기념해 2년 전에 이어 다시 한 번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개최, 200만 명의 인민해방군에게 자신에 대한 절대충성을 맹세하게 했다. 8월 1일에도 건군 90주년 기념 강연을 하고 ‘강군(强軍)선언’을 제창했다.

내 생각에 이러한 일련의 행사는 건군 90주년을 명목으로 하지만, 마치 닥쳐올 북한의 유사시에 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다시 한번 미국과 북한 간의 전쟁이 발발하면 1950년의 한국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군도 참전한다고 하는 의지인 것이다. 단 이번에는 67년 전처럼 ‘항미원조’라는 슬로건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중국군이 돕는 쪽은 북한이 아닌 미국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항조원미(抗朝援美)’가 되는 것이다.

중국의 한 외교 관계자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이 아주 싫어하는 주변국 지도자가 세 명 있다고 한다. 일본의 아베 총리,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 그리고 북한의 김정은이다. 중국은 주변 14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시진핑 주석이 취임 후 정상회담을 하지 않은 국가 지도자는 북한의 김정은뿐이다. 이 중국 외교 관계자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중국과 북한은 1961년 군사동맹을 맺은 ‘혈맹’이라고 하지만, 사실 현재의 중·북 관계는 국교 수립 68년 역사에서 최악의 상태다. 1992년 중국이 한국과 전격적으로 수교를 맺었던 때보다 더욱 악화돼 있다.”

지난 4월 북·중 관계를 상징하는 일이 있었다. 4월 6일과 7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억제할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해주길 바란다. 만일 성공한다면 그 대가로 남중국해에서 미군이 수행중인 ‘항행의 자유 작전’을 중단하겠다. 즉 남중국해를 중국의 바다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이 말을 들은 시진핑 주석은 돌연 의욕을 보였다. 중국에 있어 남중국해와 북한 중 어느 쪽이 중요한가를 묻는다면 두말할 것 없이 전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중국이 생각한 ‘필책’은 4월 15일 북한에서 열리는 태양절(김일성 생일) 105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 시진핑 주석의 특사를 파견하는 것이었다. 특사에는 장더장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선택됐다. 장 위원장은 과거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2년간 유학한 경험이 있고, 김정은 국방위원장 방중 때에는 자원해 통역을 담당하기도 한 ‘북한통’이었다. 더구나 현재는 시진핑 주석, 리커창 총리를 잇는 중국 공산당 서열 3위로, 격식을 중요시하는 북한으로서도 체면이 서는 특사인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특사 파견은 북한이 고립화를 피할 수 있는 커다란 찬스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북한은 중국으로부터의 특사 파견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북·중 관계는 더욱 가파르게 비탈길로 굴러떨어지게 됐다.

틸러슨 국무장관의 평양 특사설


▎중국 인민해방군 로켓부대. 한반도 유사시 중국 인민해방군의 동향도 관심사로 떠오른다.
중국이 북한을 제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트럼프 대통령은 더욱 강경해져 갔다. 개각을 3일 앞둔 7월 31일 오전 8시5분부터 52분간에 걸쳐 아베 총리는 총리 관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회담을 했다. 양국 정상의 통화 내용에 관해서는 “북한의 ICBM 발사실험은 결단코 용인될 수 없다는 점에 대해 양국 정상의 의견이 일치했다”라고만 보도됐지만, 사실 두 정상 사이에서는 미국이 북한을 공습하는 플랜에 대한 극히 중요한 이야기가 오갔다.

아베 총리와 가까운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취해온 경제제재 조치의 유효성에 회의를 표시하며, 북한에 대한 미군의 공습이 감행될 경우 일본의 구체적인 협력 방안에 대한 준비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총리는 당초 이번 개각에서 전혀 다른 인선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트럼프 총리와의 전화 통화가 끝나자 창백한 표정으로 ‘유사대응내각’의 구성을 주문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북한의 유사시가 발생하면 국회 내에서 벌어질 매서운 추궁에 능수능란하게 대처할 수 있는 오노데라 이쓰노리 전임 방위상을 다시 방위상으로 임명했으며, ‘고노담화’로 한국과 중국에서 이미지가 좋은 고노 전 총리의 아들인 고노 다로 전 행정개혁추진담당장관을 외무장관으로 발탁했다. 반대로 경제산업장관에 예정돼 있던 아베 총리의 ‘맹우’인 아마리 아키라는 환태평양경제자유무역협정(TPP )을 주도했던 인물로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내각에서 제외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공습 발언은 미국 방송에도 소개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공화당의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8월 1일 NBC 보도프로그램인 <투데이>에 출연, “북한이 이대로 미국을 표적으로 하는 핵무기 개발을 계속할 경우 미국은 북한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 전쟁터는 이쪽이 아니라 저쪽(북한)이다. 많은 사람이 죽겠지만 죽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저쪽이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한 후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 발언은 본심이라고 확신한다. 중국도 이를 감안해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외교를 담당하는 국무부에서는 트럼프의 이 발언에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국무부 관계자가 다음과 같이 밝혔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자신이 대통령 특사로서 평양을 방문할 의사가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공습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는 8월 1일 회견에서 “우리는 당신들(북한)의 적도, 위협도 아니다”고 강조했으며 7월 필리핀에서 열린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북한 공습을 고집한다면 그 전에 틸러슨 국무장관이 먼저 사임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정권에서 북한에 대한 공격을 반대하는 인물은 틸러슨뿐만이 아니다. 매티스 국방장관 역시 반대한다고 한다. 미군이 북한을 공습하게 된다면 북한의 즉각적인 반격이 있을 것이며, 결국 서울이 불바다가 될 리스크가 극히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티스 국방장관은 강직한 군인 출신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공습을 결정한다면 “결국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앞서의 미 국무부 관계자의 말이다.

강대강으로 치닫는 미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에 의해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에 위기의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한국전쟁 휴전 64년을 맞이한 한반도의 예측할 수 없는 운명에 주변국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201709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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