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Home>월간중앙>사람과 사람

[스포츠 기획] 2017 프로야구 대권은 ‘3金 전쟁’ 

3연패? 첫 경험? 4전5기? 

이창호 스포츠평론가, 야구전문기자 river2000@naver.com
10월 초 정규시즌 종료 후 ‘가을잔치’ 개막…김기태·김태형·김경문 셋이 대권 놓고 다툴 듯

꿈은 하나다. 대권을 잡는 것이다. 올 시즌을 뜨겁게 달군 프로야구의 ‘3김(金)’이 ‘가을야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저마다 마지막 순간까지 온 힘을 다할 뿐이다. ‘가을 축제’에 참가하는 팀들의 전력 차이는 오십보백보다. 누가 대권을 품을까. 2017 프로야구는 10월 초 정규시즌을 마치면 곧바로 포스트시즌에 들어간다


▎2017년 프로야구의 대권은 3김 중 한 명에게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왼쪽 사진부터 첫 우승에 도전하는 김기태 KIA 감독, 4전5기를 벼르는 김경문 NC 감독, 3연패를 노리는 김태형 두산 감독. / 사진:연합뉴스
김기태(48) KIA 감독, 김태형(50) 두산 감독, 김경문(59) NC 감독이 ‘3김 시대’를 열었다.

막내인 김기태 감독은 시즌 내내 맨 앞에서 분위기를 이끌었다. ‘빛고을’ 광주의 열성 팬들을 자극했다.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8년 만에 다시 정상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겼다. 김기태 감독도 지도자로서 첫 챔피언의 야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곤 한다.

김태형 감독과 김경문 감독은 페넌트레이스에서 2위와 3위 자리를 주고받으면서도 안정적인 모습으로 대권의 꿈을 키웠다. 김태형 감독은 2015년 지휘봉을 잡자마자 일궈낸 우승의 영광을 3년 연속 이어갈 태세다. ‘3연패’의 새 역사를 쓰려 한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기회다. 김경문 감독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내면서 프로야구의 흥행을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그러나 아직 KBO리그의 챔피언 반지가 없다. 벌써 다섯 번째 ‘대권 도전’이다.

‘10월의 가을 축제’는 프로야구 10개 구단 중 5개 팀만 초대한다. 와일드카드 결정전(4·5위전), 준플레이오프(와일드카드 결정전 승자와 3위의 대결), 플레이오프(준플레이오프 승자와 2위의 대결), 한국시리즈(플레이오프 승자와 정규시즌 1위의 대결)로 이어가면서 야구 열기를 끌어올린다.

김경문 감독은 프로야구 1세대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OB 베어스 선수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프로 원년 ‘불사조’ 박철순과 호흡을 맞춰 챔피언에 올랐다. 시나브로 ‘전설’이 됐다.

김경문 감독은 쉰아홉 살이다. 이순(耳順)이 내일모레다. 이젠 현역 감독 중 맏형이다. 선수·코치·감독으로 36년 동안 한 우물을 팠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올해 ‘가을 축제’를 함께할 후배 감독들과의 인연은 남다르다.

김경문 감독은 KBO리그의 정상을 밟지 못했다. 그래도 ‘명장’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의 기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코칭스태프 구성부터 남달랐다. 지도자 경험이 부족한 김기태를 타격코치로 전격 발탁했다. 김기태는 쌍방울과 삼성을 거쳐 SK에서 2005년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그 후 SK 타격 보조 코치, 2007년 요미우리에서 2군 육성 코치를 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은 김기태의 친화력을 알고 있었다. 누구와도 편하게 ‘형님·동생’ 하면서도 때론 강하게, 때론 유하게 밀고 당기는 보스 기질까지 파악했다. 이런 능력이 진갑용·이승엽·이대호 등 개성 강한 국가대표 선수들을 잘 아우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김경문 감독과 김기태 타격코치는 믿음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을 이끌었다. 1할대 타율로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 빠진 ‘국민타자’ 이승엽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김경문 감독은 끝까지 기회를 줬고, 김기태 코치는 삼성에서 현역으로 한솥밥을 먹을 때 ‘형님·동생’ 하던 마음으로 자신감을 잃지 않게 편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이승엽은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극적인 역전 2점포를 날려 베이징 금메달의 밑거름이 됐다.

김경문 감독은 김태형 감독과는 포수로, 선후배로 한솥밥을 먹었던 남다른 관계다. 김경문이 두산의 최고참 선수일 때, 김태형은 막내였다. 김태형이 단국대를 졸업하고 프로에 입단한 1990년, 김경문은 태평양 돌핀스로 이적한 상태였다.

그러나 1991년 김경문이 다시 두산으로 복귀하며 인연을 맺었다. 김경문은 코치 같은 선수였다. 김태형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고 은퇴했다. 1년이란 짧은 기간이었지만 김태형은 많은 것을 느꼈다. 1998년 김경문은 배터리 코치로 OB에 복귀해 김태형과 재회했다. 김태형은 2001년 시즌 종료 후 현역을 떠나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김경문이 1군, 김태형이 2군 배터리 코치를 각각 맡았다. 2003년 10월부터 김경문이 두산 지휘봉을 잡아 감독과 코치로서도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다.

김경문 감독을 ‘맏형’으로 김태형 감독과 김기태 감독은 얽히고설켜 있다. ‘믿음의 야구’로 흥행 몰이와 전력 향상을 이끌어내는 공통점이 있지만 방법론에선 분명 색깔이 다르다. ‘3김 3색’이다.

‘3김 3색’이 올해 ‘가을야구’에선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양보란 있을 수 없다. 승자만이 웃을 수 있다.

남다른 인연, 냉혹한 경쟁


▎OB 시절 맏형 김경문과 막내 김태형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광주는 야구를 사랑하는 도시다. 야구 이야기를 즐긴다. 여전히 ‘해태 시절’을 추억한다. ‘김기태호’ KIA 타이거즈가 이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김기태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3년 만에 ‘강한 호랑이’로 거듭났다. 김기태 감독에겐 첫 챔피언의 꿈, 호남 팬들에겐 통산 11번째 우승의 기쁨, KIA 구단에 두 번째 정상 정복을 위한 조건을 갖췄다.

KIA는 올 시즌 초반부터 한국시리즈 우승에 가장 근접한 팀으로 평가됐다. FA 최형우를 영입해 타선을 강화했고, ‘마운드의 쌍두마차’ FA 양현종과 헥터 노에시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내야 수비의 핵인 키스톤 콤비 김선빈과 안치홍도 군복무를 끝내고 복귀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시즌 중엔 넥센에서 김세현을 데려와 불펜을 보강했다. 광주 챔피언스 필드에서 챔피언이 되기 위해 감독·선수·구단이 삼위일체로 힘을 모아가고 있다.

KIA구단은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15년 김기태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면서 희망을 봤기 때문이었다. 김기태 감독은 늘 선수들의 눈높이에서 대화하고 믿음을 전하면서 경쟁을 통한 전력 향상을 꾀했다. 무명의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고, 고참들에겐 ‘형님’처럼 대화하면서 책임감을 불어넣었다. 효과가 있었다. 서서히 응집력이 생겼다. 선수 개개인의 실력 향상과 자신감 회복이 눈에 들어왔다.

김기태 감독은 부임 첫해였던 2015년 66승77패로 7위에 그쳤다. 그러나 2016년 ‘가을 야구’를 즐겼다. 70승73패1무로 5위에 올라 4위 LG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가졌다. 아쉬운 패배로 더 이상 ‘가을축제’를 이어가지 못했지만 모두가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김기태 감독은 2010년부터 LG 코치를 맡았다. 2012년에는 LG 감독에 올랐다.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김기태를 잘 알고 있는 선후배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래알처럼 흐트러진 LG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잘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젊은 감독’이란 점을 내세워 격의 없는 대화와 파격적인 행동으로 선수와의 벽을 허물었다. 코치들에겐 더욱 강한 책임감을 요구했다. LG 클럽하우스의 분위기가 차츰차츰 변했다.

‘용장’ 김기태, ‘막내’의 첫 우승 도전


▎지난해 11월 2일 한국시리즈 4차전 종료 직후 김태형 두산 감독이 김경문 NC 감독을 쫓아가 정중하게 인사하고 있다. 두산이 시리즈 전적 4승 무패로 창단 후 다섯 번째 우승컵을 보듬었다.
2013년 LG는 74승54패로 페넌트레이스 2위를 차지하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LG 팬들은 가을이 올 때마다 간절하게 바라던 유광 점퍼를 11년 만에 다시 입었다. 김기태 감독의 지도력도 시험 단계를 지나 인정 단계로 들어섰다.

김기태 감독에겐 ‘파격’이란 단어가 자주 따라 다닌다. 감독 첫해였던 2012년 9월 12일 SK전에서 상대 벤치의 투수 운용에 불만을 품고 신인 투수 신동훈을 대타로 내세워 스탠딩 삼진을 당하게 한 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벌금 징계를 받았고, 2루심의 판정에 항의하면서 그라운드에 벌러덩 드러눕는 파격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2014년에는 시즌이 시작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4월 23일, 팀 성진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면서 전격 사퇴해 LG 구단과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용장(勇將)’다운 행동이었다. 선수들의 강한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승부욕에 불을 붙이기 위해 어떤 결과든 스스로 책임진다는 모습을 각인 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김기태 감독은 ‘약체’ KIA 타이거즈를 ‘최강’으로 만들었다. 선수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고, 이제 선수들이 그 답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김기태 감독은 아직 40대다. 옆집 형님 같다. 훈련 중이거나 평소에는 선수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농담도 자주 주고받는다. 그러나 경기를 풀어가는 힘과 고집이 강하다. 불펜이 크게 흔들릴 때도, 야수들이 수비에서 엉뚱한 플레이를 할 때도, 타선이 내리막을 걸을 때도 ‘젊고 패기에 찬 팀, 경쟁력이 있는 팀을 만들겠다’는 원칙을 지켜나간다.

김기태 감독은 광주일고를 나왔다. 까까머리 학창 시절부터 ‘해태 야구’를 잘 알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와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3김 시대’를 맞아 ‘광주의 힘’으로 꼭 대권을 잡으려 한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시즌 도중 잠시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8월 19일 수원 kt전을 앞두고 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정밀 진담 결과 게실염이란 판정을 받았다. 식습관이나 스트레스 탓에 대장 또는 담낭의 바깥쪽에 돌출한 작은 주머니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란 설명이다. 8월 24일 복귀할 때까지 한용덕 수석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았다.

두산은 디펜딩 챔피언이다. 구단과 팬들의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올 시즌 중위권 유지로 힘겨웠던 순간 등 모든 것이 순탄치 않았다. 주축 선수들의 크고 작은 부상과 컨디션 난조 등이 겹치면서 수없이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감독은 온갖 수를 모두 동원해 보지만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김태형 감독은 ‘복장(福將)’이다. 그렇다고 예외일 수 없었다. 결국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김태형 감독은 ‘비음주파’다. 술을 즐기지 않는다. 염경엽 SK 감독과 비슷하다. 술을 마시지 않고도 노래방을 찾을 수 있는 스타일이다. 술을 마시지 않고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하나다. 굉장히 느긋해 보이는 외모를 지닌 김태형 감독이 스트레스로 복통을 일으키고 입원까지 해야 할 정도였지만 여전히 우승의 꿈을 지니고 있다. 야심만만하다. 겉으로 대놓고 드러내지 않지만 이미 ‘가을 야구’에 대한 계산을 하고 있다.

‘복장’ 김태형의 야심만만 3연패로 가는 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잠실구장에서 평가전을 치르던 중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경문 감독과 김기태 타격코치.
두산은 올 시즌 ‘환타스틱 4’라고 불리는 선발 4총사의 균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니퍼트와 유희관이 예전 같지 않은데다 보우덴은 부상으로 공백이 길어졌다. 그나마 장원준이 꿋꿋하게 버티는 사이 함덕주가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라 한숨을 돌린 상태다. 올해 ‘가을야구’는 새롭게 판을 짜야 할 상황이다. 김태형 감독의 3연패를 위한 구상 속엔 이런 요소들이 주요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2015년 친정팀 두산의 사령탑으로 돌아오자마자 최강의 전력을 이끌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도 정상을 지켰다. 사상 처음으로 신임 감독이 2연패의 새 역사를 썼다. 능력을 인정받았다. 최고 대우인 연봉 5억원으로 계약기간도 3년이나 연장했다. 모든 것이 술술 풀렸다.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의 기쁨을 만끽해 봤다. 행운아다.

김태형 감독은 선수들을 믿고 ‘선이 굵은 야구’를 즐긴다. 벤치의 간섭을 최소화한다. 자신과 함께 두 차례나 ‘가을 야구’를 즐기면서 정상에 서 본 경험이 있는 ‘국가대표급’ 선수들이니 믿고 맡긴다. 김태형 감독이 틈날 때마다 “감독이나 코치의 눈치를 보지 마라”고 강조한 것이 강한 곰을 만든 밑거름이었다. 올 시즌 전반기를 5위로 마감하는 등 어려움이 닥쳤을 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됐다.

두산은 올스타 휴식기를 끝낸 뒤 뚝심을 발휘했다. 7월 18일 인천 SK전부터 8월 13일 잠실 넥센전까지 24게임에서 19승1무4패의 상승세를 타면서 130일 만에 NC를 밀어내고 2위 자리로 올라섰다. 두산의 저력이 살아나고 있음을 똑똑히 보여줬다.

김태형 감독의 꿈은 페넌트레이스에 머물러 있지 않다. 우승은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다. 달콤한 사과와 같다. 지난해와 전력 차이는 있지만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과제라 판단하고 있다. 올해 ‘가을야구’에선 절대 강자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쟁자인 KIA나 NC에도 결정적인 단점이 드러난 상태인 만큼 어떤 조화를 통해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느냐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판단이다.

김태형 감독은 뚜렷한 결과물과 성과로 ‘3김 시대’의 중심에 서 있다. 김응용·김성근·김인식 감독이 이끌던 ‘원로 세대’와 김재박·김경문 감독으로 대표되는 ‘프로 1세대 지도자 집단’과는 차별화된 야구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김태형 감독이나 두산 선두들이나 똑같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에 한국시리즈 3연패의 꿈은 더욱 현실성 강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김경문 감독은 자타가 공인하는 ‘덕장(德將)’이다. 두산에 이어 NC 사령탑을 맡아 강팀을 만드는 특유의 지도력을 보였다. ‘믿음의 야구’ ‘화수분 야구’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2008년에는 국가대표 감독이란 중책까지 맡아 베이징 올림픽에서 영광스러운 금메달을 따낸 사령탑으로 야구사에 이름을 올렸다. 이제 ‘프로야구 1세대’를 넘어 KBO리그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올 시즌 ‘가을 야구’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다면 어느 누구도 이런 찬사에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덕장(德將)’ 김경문의 4전5기 한풀이 도전


▎지난해 12월 야구인 골프대회 때 한 조에 속한 김기태 KIA 감독, 김태형 두산 감독, 양상문 LG 감독(왼쪽부터).
김경문 감독은 자신의 지도자 경력에서 왜 한국시리즈 우승이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선수로서 1982년 원년 우승의 영광을 맛봤고, 지도자로서 올림픽 우승까지 해냈지만 감독으로서 챔피언은 가깝고도 먼 그대였다. 벌써 네 차례의 도전이 모두 실패로 끝났다. 2005년 두산의 지휘봉을 첫 한국시리즈 무대에 나섰다.

그러나 오승환을 앞세운 선동열 감독의 ‘지키는 야구’에 철저하게 봉쇄당했다.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4연패를 당하면서 패자의 눈물을 삼켰다. 2007년, 2008년에도 대권 도전에 나섰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2년 연속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SK의 벽을 넘지 못했다. 사령탑으로서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낸 셈이었다.

그래도 두산은 김경문 감독의 지도력을 인정했다. 무명의 선수들을 발굴해 최고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그런 선수들의 힘을 한데 모아 강팀을 완성해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점을 높이 샀다.

젊은 선수와 고참들의 조화를 통해 전력을 극대화하는 능력에선 어느 지도자보다 뛰어나다는 평가가 늘 따라다녔다. 신생팀 NC가 두산과 결별한 김경문 감독을 선택한 이유다.

김경문 감독은 NC를 단시간에 강팀 반열에 올려놓았다. 지난해엔 페넌트레이스에서 83승3무 58패로 2위를 차지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뒤 LG를 3승1패로 꺾고 대망의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두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경문 감독의 대권 도전은 또 한 번 무참하게 좌절됐다. 2005년 첫 도전 때처럼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채 4전 전패로 주저앉았다. 4번의 실패, 이젠 한(恨)이 될 만하다.

김경문 감독의 대권 도전은 ‘한풀이’다. 지난해 두산에 당한 4패를 포함해 한국시리즈 7연패 중이다. 특히 잠실구장에선 10연패를 당하고 있다. ‘준우승 징크스’도 징글징글한데 연패의 악몽까지 겹쳤으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한을 풀어야 할 때다.

김경문 감독은 ‘3김 중 맏형’이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2004년 두산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곧바로 ‘가을 축제’를 즐겼다. 지난해까지 통산 12년의 감독 생활을 하는 동안 준플레이오프 4회, 플레이오프 8회, 한국시리즈 4회 등을 치렀다. 누구보다 단기전에서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어떻게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번번이 김경문 감독을 외면했다.

올 시즌 NC도 두산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괴력의 타자’ 테임즈가 떠난 자리를 스크럭스가 그런대로 메워주고 있지만 상대 투수에게 주는 위압감이 약한데다 박석민마저 부상으로 공백이 잦아 타선의 힘을 극대화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마운드가 약해져 고민이다. 에이스 해커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데다 이재학도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안정적인 선발 로테이션을 위해 보직 변경이 불가피해졌고, 덩달아 불펜까지 흔들리는 도미노 현상으로 애를 먹었다.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김태형 감독처럼 시즌 도중 병원에 입원하는 ‘작은 소동’까지 겪었다. 그래도 NC 역시 이미 저력을 지닌 팀으로 자리 잡은 만큼 상위권을 이어가면서 ‘가을야구’의 문턱까지 와 있다.

야구 팬들은 1980년대 ‘해태 왕조’에 이어 현대·SK·삼성으로 이어지는 ‘가을의 전설’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현대 정치사의 큰 획을 그은 김대중·김영삼·김종필이 이끌었던 ‘3김 시대’를 잘 알고 있다. 바야흐로 올해 ‘가을야구’도 ‘3김 시대’다.

- 이창호 스포츠평론가, 야구전문기자 river2000@naver.com

201710호 (2017.09.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