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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취재] JTBC ‘최순실 테블릿 PC’ 보도 1년 

“국정농단 세력들 진실의 심판대에 세우다”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테블릿 PC에 저장된 위치정보 확인 결과 실제 최순실씨 동선과 일치한다는 사실 확인…검찰 관계자 “디지털 기기에 약간의 지식만 있어도 이해할 수 있는 걸 조작 근거로 삼아”

▎2016년 10월 24일 JTBC가 최순실씨의 테블릿 PC를 공개하자 그동안 의혹으로만 제기되던 최씨의 국정농단 실체가 드러났다. 테블릿 PC 보도는 대통령 탄핵의 시발점이 됐다.
일본의 대표 지식인 중 한 명이자 유명 작가인 우치다 다쓰루 교수는 그의 책 <반지성주의를 말하다>에서 반지성주의의 대표적 형태인 ‘음모론’의 작동 방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음모론은 의외로 정보가 부족한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정보가 넘치는 탓에, 그리고 그것들을 잘못 취사선택해 신념체계를 구성하는 데서 음모론이 탄생한다”

그의 책에서는 또 반지성주의의 특징도 언급하고 있다. 반지성주의는 기본적으로 학력과 상관이 없다고 지적한다. 지식의 많고 적음과도 관계없다. 고학력자, 아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서도 종종 반지성주의가 포착된다는 것이다. 우치다 교수는 “반지성주의를 움직이는 힘은 단순한 게으름이나 무지가 아니라 대개 ‘외곬의 지적 정열’”이라고도 했다. 자신의 생각과 신념에 절대적인 확신을 가진 이들이 대개 반지성주의의 대표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신의 말이 곧 정답이며 절대적 진리라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타인의 판단이나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데이터조차도 별 의미가 없다.

대중사회심리학자인 이경석 박사(마음연구소 소장)는 “지난 1년간 우리 사회에서 제기된 가장 대표적인 반지성주의적 음모론은 바로 ‘최순실 테블릿 PC(이하 테블릿 PC) 조작설’”이라고 말한다. 테블릿 PC는 최씨의 개인비리가 국정농단 사건으로 확대되는 단초가 됐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방아쇠 역할을 하기도 했다. 조작설을 믿는 이들은 이런 테블릿 PC가 실제로는 최순실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을 반대하는 좌파 세력이 만들어낸 조작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한다. 이들은 조작의 주체로 언론(JTBC)과 검찰을 지목한다.

이경석 박사는 “테블릿 PC ‘음모론’을 확대 재생산해 퍼뜨리는 이들의 구성은 일부 국회의원부터 언론, 시민단체 그리고 일반 시민 등으로 나이나 직업·학력 수준과 상관없으며 특정 집단에 한정돼 있지도 않다”며 “우치다 교수도 지적했듯이 이들이 확산시키는 ‘음모론’은 검증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정보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한 뒤 이를 신념화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24일 [JTBC]가 최씨의 테블릿 PC를 공개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각종 문서와 사진자료 등은 박 대통령과 최씨 관계의 실체를 보여줬다. 뉴스를 보던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 정국은 요동쳤다. 의혹으로만 돌던 최씨의 국정농단의 단면이 세상에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2014년 12월 공개돼 정국에 큰 파장을 몰고온 소위 ‘십상시 문건’ 의 작성자 박관천 전 경정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권력서열 1순위는 최순실, 두 번째는 정윤회 그리고 세 번째가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말해 세간의 이목을 끈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박 전 경정이 한 이 말의 구체적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청와대 공직 기강비서관실에서 근무하던 박 전 경정이 대통령의 측근 그룹들 사이에서 도는 첩보 수준의 이야기를 툭 던진 정도로 받아들였다. 검찰 역시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테블릿 PC가 공개되자 비로소 박 전 경정의 이 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사람들은 깨닫게 됐다.

‘테블릿 PC 조작설’은 반지성주의 산물


▎11월 9일 최순실씨가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도착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법정에서는 테블릿 PC 실물 감정이 진행됐다. 최씨는 “오늘 테블릿 PC를 처음 봤는데 저는 이런 테블릿 PC를 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사진·연합뉴스
테블릿 PC는 박 대통령 취임식 행사 내용, 통일 대박을 제시하며 대북 구상을 밝힌 독일 드레스덴 선언을 포함한 각종 연설문, 국무회의에 앞서 미리 정리된 대통령 모두 발언, 언론에도 공개되지 않은 대통령의 휴가 때 사진, 청와대 비서진 교체 관련 내용 등 권력의 가장 깊숙한 내부에 접근 가능한 이가 아니면 입수할 수 없는 각종 자료들을 담고 있다. 공식 참모도 아닌 최씨가 장막 뒤에서 대통령의 그림자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테블릿 PC가 담고 있는 진실은 이번 국정농단 사건 전체에 비춰봤을 때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와 관련해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테블릿 PC가 갖고 있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테블릿 PC에 엄청난 비밀이 담겨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테블릿 PC가 양지로 나옴으로써 관련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마중물 역할을 했다.”

국정농단 사건 전개 과정을 되짚어보면 “관련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는 노 의원의 언급은 정확한 지적이라는 평가다. 테블릿 PC가 공개된 바로 다음날 언론과 정치권의 각종 의혹 제기에도 꿈쩍하지 않던 박 전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담화’를 발표했다. 또 정호선 전 비서관도 최씨에게 기밀 문서들을 수시로 e메일로 전송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테블릿 PC는 현장을 뛰며 당시 사건을 추적 보도했던 기자들 입장에서도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는 평가다. 한국일보 사회부에서 1년째 국정농단 사건을 취재하고 있는 한 기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이 처음 흘러나왔던 2016년 7월만 해도 고위 관료 한두 명이 기업을 동원해 측근 몇몇과 이권에 개입한 사건 정도로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이후 재단의 막후에 최순실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최씨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에 있었던 최태민씨의 딸이자 한때 대통령 최측근 인사였던 정윤회씨의 부인이라는 점에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맞다. 하지만 최씨와 대통령과의 관계를 정확히 밝혀내는 것은 취재 영역에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씨가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는 장막 뒤의 비선 실세였고 대통령의 사생활 영역을 넘어 수시로 국정 운영에까지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얘기 아니었나. 설사 몇몇 정치권 인사의 전언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의혹 제기나 추측보도의 한계를 뛰어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이를 보도하기 위해서는 뒷받침할 물증·근거가 필요하지 않겠나. 이런 것이 없다면 권력의 역공에 언론사도 버티기가 쉽지 않다. 2014년 <세계일보>의 ‘십상시 문건’ 보도에서 다들 경험하지 않았나. 이런 점에서 볼 때 테블릿 PC의 등장은 현장 기자들에게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추적할 수 있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 기자의 지적처럼 이번 사건이 <세계일보>가 2014년 보도한 일명 ‘십상시 문건’의 재판(再版)이 되지 않고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나갈 수 있게 된 데는 테블릿 PC 보도가 계기가 됐다. 국정농단 사건의 전개 과정을 되짚어보자.

‘개헌 승부수’ 테블릿 PC 공개로 무산


▎2016년 11월 1일 보수 시민단체 ‘어버이연합’이 [JTBC] 사옥 앞에서 “테블릿 PC 입수 경위를 밝히라”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6년 7월 초 은 대기업들로부터 거액을 지원받고 있는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의 수상한 운영 방식을 제기하며 그 배후에 김종 차관이 있다는 의혹을 연속으로 보도했다. 이후 두 달여 동안 두 재단에 대한 추적 보도가 잇따라 나왔다. 그리고 재단 설립에 또 다른 정권 고위인사인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이름까지 거론됐다. 당시 은 최씨의 측근인 고영태로부터 이미 최순실의 의상실 동영상을 확보(2014년 12월 말)하고 있었지만 보도를 이어가지 못하고 주춤하는 상황이었다. 이후 <한겨레> 신문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겨레> 신문 특별취재팀은 9월 20일 K스포츠 재단 이사장이 최씨가 다니던 단골 마사지 센터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1면에 ‘최순실’ 이름 석 자를 공식적으로 거론하고 나섰다. 언론의 본격적인 퍼즐 맞추기가 시작됐다. 최씨의 이름 앞에 ‘비선’이라는 호칭이 붙기 시작했다. 노회찬 의원은 “의혹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은 탄핵감”이라며 처음으로 ‘탄핵’을 거론했다. 청와대는 즉각 부인했다. 당시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일방적인 추측성 기사여서 전혀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못 박았다.

언론의 의혹보도와 야당의 공세가 계속되자 침묵하던 박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최씨 이름이 거론된 지 이틀 만이었다. 9월 22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던 박 대통령은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며칠 후 시민단체는 최씨와 안 수석을 검찰에 고발했다. 10월 초 검찰은 사건을 서울 중앙지검 형사 8부에 배당했다. 청와대 인사와 대기업이 연루된 사건이었지만 검찰은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에 사건을 맡긴 것이다. 검찰은 여전히 권력의 눈치를 보며 사태 추이를 관망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정유라의 이화여대 특혜 입학 의혹이 추가로 불거지면서 최씨의 위세가 다시 한 번 확인됐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입을 닫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후 처음으로 20%대로 떨어졌다. 10월 중순 미르재단 이성한 사무총장과 최씨 사이에 있었던 대화 녹취록이 공개됐다. 최씨는 “(재단 설립이) 나라를 위해서 한 일인데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며 항변했다.

최씨가 단순히 이권 개입에 그치지 않고 마치 대통령의 비선 참모 역할까지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건의 성격은 ‘국정농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한때 최씨의 최측근이던 고영태는 [JTBC] 취재진에 “회장(최순실)님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대통령 연설문 고치기”라고 폭로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이 나서 “최씨가 연설문을 고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강하게 반박했다. 궁지에 몰린 박 대통령은 10월 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만약 어느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서 자금 유용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최씨의 개인비리 정도라는 뉘앙스의 언급이었다.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그리고 나흘 뒤인 10월 24일 오전 10시 박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대반전을 시도했다. 그간 견지해왔던 ‘개헌 블랙홀론’ 입장을 뒤집고 “임기 내 개헌”을 전격 제시했다. 오후 내내 개헌론이 뉴스를 장식했다. 여권에서는 ‘신의 한 수’라는 탄성도 나왔다. 하지만 대통령의 정치적 승부수는 10시간 만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이날 저녁 [JTBC] 뉴스룸은 취재진이 입수한 테블릿 PC를 전격 공개했다. 앞서 최씨 측근 고영태가 제기한 연설문 고치기가 팩트로 확인됐다. 이 밖에 대통령의 대북정책 핵심인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 등 청와대 생산 자료 수십 건이 최씨에게 건너간 사실도 확인됐다. 그동안 각종 의혹 제기를 애써 외면하며 모르쇠로 일관하던 박 대통령은 다음날인 25일 ‘대국민사과담화’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테블릿 PC가 보여준 진실이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최순실씨는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취임 이후에도 일정 기간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물은 적은 있으나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

위치정보·기밀문서 전달 시간까지 검증


▎박근혜 전 대통령 대선캠프 내 SNS본부에서 일했다고 밝힌 신혜원씨가 10월 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신씨는 “최순실씨 소유로 알려진 테블릿 PC는 내가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사진·연합뉴스
명백한 증거가 공개돼 어쩔 수 없이 발표한 사과였지만 국민적 비난을 최소화할 목적으로 적당히 최씨와의 관계에 선을 긋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테블릿 PC에 담긴 청와대 유출 문건의 작성 시점이 2014년인 것도 있어 대통령의 해명은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최순실 의상실’ 동영상을 확보해 놓고도 공개하지 않고 있던 도 이날 해당 영상을 공개했다. 청와대 부속실에서 근무 중인 이영선 행정관이 최씨의 시중을 드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다. 테블릿 PC의 공개가 이 영상의 공개를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적극적 수사에 나서지 않던 검찰이 특별 수사본부를 꾸리고 본격 수사에 나선 것도 테블릿 PC 보도가 나간 지 사흘 뒤였다. 그리고 광장에서는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테블릿 PC 공개 후 첫 주말을 맞은 10월 29일, 서울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2만 명의 시민이 처음으로 촛불을 밝혔다. 테블릿 PC에 담긴 진실을 끝까지 부정하며 거짓과 변명으로 일관하던 박 대통령을 비롯한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왔다. 4월 29일까지 총 23회에 걸쳐 주말마다 열린 촛불집회에는 1700만 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이 참여했다.

여전히 최씨는 “테블릿 PC는 내 것이 아니며 쓸 줄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지난 11월 9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는 검찰이 공개한 테블릿 PC의 실물 검증 과정이 진행됐다. 지켜보던 최씨는 “저는 (테블릿 PC를) 오늘 처음 봤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의 일부 친박계 의원도 이런 최씨의 입장을 여전히 대변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0월 31일 ‘테블릿 PC 진상조사 TF’를 구성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방아쇠가 됐던 테블릿 PC와 관련해 조작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광림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탄핵의 스모킹건인 테블릿 PC가 과연 국정농단의 시발점인지 아니면 사건 조작의 가짜 미끼였는지 철저히 파헤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테블릿 PC에 대한 감정은 이미 수사 과정에서 검증을 마쳤다. 검찰은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테블릿 PC의 실제 사용자가 최씨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바 있다. 지금부터는 검찰이 검증한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들은 정보를 어떻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한 뒤 왜곡하고 있을까.

우선 휴대전화와 마찬가지로 테블릿 PC 속에 저장된 위치 정보를 확인한 결과 실제 최씨의 동선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은 최씨의 항공권 구입, 출입국 내역 등을 테블릿 PC의 위치정보와 하나하나 대조했다. 그 결과 최씨가 2012년부터 독일과 제주도 등을 오갈 때마다 테블릿 PC도 같은 장소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시기 최씨는 승마 선수인 딸 정유라의 훈련 준비, 사업 준비 등을 위해 독일을 여러 차례 드나들었다. 또 조카 장시호가 살던 제주도에도 자주 오갔다. 최씨를 포함해 테블릿 PC 조작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 부분에 대해 이렇다 할 반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만약 최씨가 아닌 제3자가 테블릿 PC를 들고 다녔다면 기기 속에 남아 있는 위치정보가 어떻게 최씨의 동선과 일치하는지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0월 23일 국회 법사위 국감에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씨의 테블릿 PC에 저장된 위치정보가) 최씨가 귀국해 제주도를 오간 동선과 일치하나?”라고 묻자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그런 이유로 최씨가 사용했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검찰 관계자의 설명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보자.

“테블릿 PC에는 2012년 7월 15일과 2013년 7월 29일 독일 도착을 알리는 국제전화 로밍 안내, 외교부 영사 콜센터 안내 문자 등이 남아 있다. 최씨의 출입국 기록을 보면 문자 도착 하루 전인 2012년 7월 14일과 2013년 7월 28일 한국에서 독일로 출국한 사실이 확인됐다.”

청와대 문서 유출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도 테블릿 PC 포렌식을 통해 상세히 밝혀진 상태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검찰에서 최씨에게 여러 차례 청와대 문서를 e메일로 전송한 사실이 있다고 시인했다. 검찰 관계자의 설명을 다시 들어보자.

“정호성 전 비서관과 최씨는 청와대 문서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정 전 비서관이 ‘지금 보내드립니다’라고 문자메시지를 전송하면 최씨는 테블릿 PC로 문서 전송을 확인한 뒤 ‘받았다’는 답신을 했다. 테블릿 PC에 이 문서가 저장되고 1시간 정도 지나서 정 전 비서관이 최씨에게 ‘수정해서 다시 보냈습니다’라는 문자를 추가로 보낸 것도 확인했다. 테블릿 PC를 통해 문서를 본 최씨가 수정을 지시했고 그대로 정 전 비서관이 수행한 뒤 이런 문자를 보낸 것이다. 이처럼 문자메시지 전송 시간, 테블릿 PC에 해당 문서가 실제로 다운로드 돼 저장된 시점 그리고 다시 일부 수정 과정을 거쳐 메일로 전송한 뒤 문자메시지로 이를 통보한 시간 등이 순서대로 정밀하게 분석됐다는 얘기다. 이런 것들을 특정 언론사나 검찰이 치밀하게 조작할 수 있겠나. 이런 과학적 분석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면 명확하게 근거를 대야 하는데 지금까지 이에 대한 반박을 들어본 적이 없다.”

청와대 자료를 최씨에게 유출한 정 전 비서관도 지난해 12월 공판 당시 최씨와 일부 언론의 의혹 보도를 근거로 테블릿 PC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감정 신청을 한 바 있었다. 하지만 한 달 후 최씨에게 47건의 기밀문서를 전달한 혐의를 모두 인정하며 감정 신청도 철회해 테블릿 PC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바 있다. 정 전 비서관 외에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 역시 테블릿 PC의 사용자가 최씨라는 사실을 확인해준 바 있다.

청와대 전직 행정관들도 인정한 진실


▎[JTBC] 심수미 기자가 최순실씨의 테블릿 PC 입수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테블릿 PC는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더블루K 사무실에 방치돼 있던 책상 서랍 안에서 발견됐다.
테블릿 PC를 최초 개통한 김한수 전 청와대 뉴미디어정책실 선임행정관은 지난 9월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 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전 행정관은 “최씨로부터 ‘테블릿 PC 네가 만들어준 거라면서?’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최씨의 이 말을 듣고 테블릿 PC를 최씨가 사용 중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애초 이 테블릿 PC는 김 전 행정관이 2012년 6월쯤 18대 대선 선거운동 당시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의 측근 고(故) 이춘상 보좌관의 요청에 따라 자신의 회사 명의로 개통해준 것이었다. 이 보좌관의 손을 거쳐 최씨에게 전달됐다는 얘기다. 김 전 행정관은 2003년 고교 동창이자 최씨의 조카인 이모씨의 소개로 이 보좌관을 알게 됐다.

테블릿 PC에 저장된 사진도 최씨가 실제 사용자였음을 보여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물이다. 테블릿 PC로 직접 촬영된 사진은 총 17장이다. 이 사진들은 테블릿 PC의 DCIM 폴더, 즉 테블릿 PC로 직접 촬영한 사진만 저장되는 공간에 들어 있다.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한수 전 행정관이 테블릿 PC를 개통한 날짜는 2012년 6월 22일이다. 최씨는 3일 뒤인 25일 조카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 테블릿 PC를 가져 갔고 이날 모두 17장이 촬영된 것으로 분석됐다. 우선 최씨의 셀카 사진 1장과 최씨가 왼손 검지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찍어준 1장이 있다. 또 최씨의 조카들 사진 4장, 조카 딸 셀카 사진도 7장이 있다. 그 밖에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찍은 또 다른 사진이 4장이다. 이 사진들은 모두 최씨와 직접 관련된 것들이다. 제3자가 사용하던 테블릿 PC라는 주장은 이해할 수 없다.”

‘조작설’을 퍼뜨리는 이들은 포렌식 보고서를 근거로 테블릿 PC에 있는 최씨의 사진은 고작 2장(셀카 1장과 다른 사람이 최씨를 찍은 1장)뿐이고 여기에 담긴 최씨 관련 증거는 1%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 역시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이해가 조금만 있다면 얼마나 설득력이 없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실제 포렌식 보고서에는 테블릿 PC에 1876장의 사진이 등장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이 사진들은 테블릿 PC의 카메라로 촬영된 일반적 형태의 ‘사진’이 아니다. 사진 형태의 그림 파일이 테블릿 PC의 캐시 폴더에 저장돼 있다. ‘메이플스토리’라는 게임 화면, 웹툰, 젊은 여성이 입을 만한 옷과 액세서리 캡처 파일 등이다. 이를 근거로 최씨 변호인 측은 “올해 만 61세인 최씨가 전혀 관심을 가질 만한 사진들이 아니며 따라서 테블릿 PC의 사용자는 최씨가 아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검찰은 이미 이 부분에 대한 검증도 마쳤다. 이 그림 파일 상당수는 최씨가 조카 가족들과 저녁을 먹었던 2012년 6월 25일 생성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날 최씨 조카의 자녀가 테블릿 PC를 가지고 인터넷 서핑을 하며 웹툰을 보거나 게임을 즐긴 것으로 파악됐다. 캐시 폴더에 저장되는 이러한 사진들은 그림이나 사진이 첨부된 웹사이트에 접속하거나 메일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자동으로 생성돼 저장된다. 가령 캐시 폴더에는 이미 언론에도 공개된 박 전 대통령의 2013년 저도 여름 휴가 사진 13장도 포함돼 있다. 그중 일부는 언론 등에 공개되지 않은 사진들이다. 최씨가 e메일에 첨부된 박 전 대통령의 사진을 받아보았고, 메일을 여는 순간 자동 저장된 것들이다. 검찰 관계자는 “디지털 기기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가지고 조작의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작의 근거로 들고 나오는 것 중에는 테블릿 PC에 있는 문서파일 열람 시간과 관련된 내용도 있다. 역시 검찰의 포렌식 보고서를 근거로 그럴듯한 주장을 내놓는다. 보고서에는 독일 드레스덴 대통령 연설문 수정안을 2016년 10월 18일 오전 8시16분에 열어본 것으로 돼 있다. [JTBC] 취재진은 테블릿 PC 입수 경위를 상세히 밝힌 바 있다. 취재진은 10월 18일 오전 10시께 테블릿 PC를 확보하고 오후가 돼서야 이 파일을 열어봤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분석된 날짜와 [JTBC] 측이 밝힌 날짜가 서로 맞지 않으므로 [JTBC] 취재진이 밝힌 입수 경위 등은 허위라는 주장이다. 지난 국정감사 때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역시 이 부분을 문제 삼았다. 답변에 나선 윤석열 지검장은 “열람 시간이 오전 8시로(실제로는 8시 16분)돼 있는 것은 (테블릿 PC가) 세계 표준시각으로 설정돼 있어서다. [JTBC]가 실제 파일을 열어본 시간은 오후 5시가 조금 넘는다”고 했다. 이 대목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신씨 “테블릿 PC는 내 것” 주장했지만…


▎10월 23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테블릿 PC와 관련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윤 지검장은 “테블릿 PC의 증거 능력이 의심된다”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지적에 “최순실 재판에서 적법하게 증거로 채택됐다”고 반박했다.
드레스덴 연설문은 한글문서(hwp)로 저장돼 있다. 테블릿 PC에 깔려 있는 ‘한컴 오피스 뷰어’라는 애플리케이션이 실행되면서 이 연설문을 열람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실행될 때 한국 시각이 아닌 그리니치 표준 시각(GMT)을 기준으로 열람 시간이 기록되도록 설정돼 있다. 즉 한국과 9시간의 시차가 생기는 것이다. 보고서에 기록된 오전 8시 16분은 우리 시간으로 환산하면 오후 5시15분이 된다.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열람 시간 외에도) 중요한 것은 조작 여부인데 (연설문을) 다운받은 건 2014년 3월 27일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한 차장검사가 밝힌 이날은 실제 박 전 대통령이 독일 현지에서 연설하기 하루 전날이다. 최씨가 미리 연설문을 전송받아 봤다는 합리적 설명이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대목이다.

최근에는 “이 테블릿 PC를 최씨가 아닌 내가 사용했다”고 자처한 이도 나타났다. 2012년 박 전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SNS 담당으로 일한 신혜원씨의 주장이다. 신씨의 이 주장은 일부 방송과 신문, 시사매체 등을 통해 ‘양심선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신씨에게 테블릿 PC를 건넨 것으로 알려진 김휘종 전 청와대 행정관은 “신 씨가 사용하던 테블릿 PC는 [JTBC]가 보도한 것과는 다르다”고 부인했다. 김한수 전 행정관도 검찰 조사 과정에서 “신 씨가 주장하는 테블릿 PC는 내가 최순실씨에게 건네준 것과 다르다. 대선 캠프에서 쓰던 것 중 하나로 보인다”고 진술했다. 또 신씨는 2012년 10월부터 12월까지 테블릿 PC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는데 [JTBC]가 확보한 테블릿 PC에 담긴 내용물은 그 이후에 저장된 것들이 수두룩하다. 신씨는 이런 부분을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테블릿 PC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감정 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최씨 측이 테블릿 PC의 증거능력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자 재판부가 감정을 의뢰한 것이다. 감정 결과 “조작은 없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그때는 ‘음모론’이 사라질까.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지켜보겠다”면서도 “검찰의 포렌식 결과와 다르게 나올 가능성은 없다”고 자신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테블릿 PC를 조작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설혹 국과수가 ‘테블릿 PC’에 어떤 조작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더라도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들은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는 국가 기관이 검증한 것을 믿을 수 없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해 발자국을 남겼다. 하지만 조작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며 테블릿 PC 음모론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은 48년 전 일이다. 테블릿 PC 조작설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201712호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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