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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리포트] 동북아 정세를 읽는 키워드, 수퍼히어로 

평화 수호하는 ‘한국판 울트라맨’ 절실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우주적 차원에서 전체의 조화와 평화에 기초해 문제 해결…2017년 한국과 중국은 감동과 무관한, ‘텔링’이 빠진 ‘스토리’만 무성

▎11월 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중 환영행사. 시진핑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다정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다.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울트라맨(ウルトラマン) 장년 팬들이 보면 참을 수 없는 모양이다.”

필자와 동북아 관련 의견을 교환하는 일본인 교수가 보낸 e메일 내용이다. 자신이 <마이니치(每日)신문>에 쓴 칼럼인 ‘울트라맨=평화만능주의의 상징’에 관한 부분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울트라맨은1966년 7월부터 1967년 4월까지 모두 39개의 에피소드로 선보인 우주공상과학 수퍼히어로(Superhero) 시리즈물이다. 이후 수많은 아류작이 만화·영상물 등으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60년대 중반 일본은 패전 이후의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물론 도쿄올림픽을 통해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던 시기다. 백색(白色)혁명으로 불리는 전자제품 보급이 일본 전역으로 확산된다. 컬러TV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한 시대의 열기’가 수퍼히어로 울트라맨을 통해 발산된다. 정의의 울트라맨이 우주의 수많은 악당과 맞서 싸워 이긴다는, 지극히 단순한 권선징악 스토리다. 그렇지만, 가라데(空手) 스타일의 울트라맨의 동작이나, 형형색색 빛으로 이뤄진 우주 괴물들의 무기는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이어지는 애니메이션 세계의 전설이다.

울트라맨 칼럼에서 필자의 친구가 주목한 부분은 ‘울트라맨=만능해결사’에 관한 부분이다. 그 어떤 어려운 문제가 있더라도 울트라맨 같은 수퍼히어로가 나타나 한순간에 전부 깨끗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 것이 일본인의 의식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일본인 스스로도 자학적으로 말하는 ‘헤이와보케(平和ボケ)’ 즉, 평화만능주의가 울트라맨 시대 때부터 이어져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후(戰後) 일본을 지키는 울트라맨은 미국이다. 1960년 6월 맺어진 미·일신안보조약 이후 일본의 안보를 미국이란 수퍼히어로에 맡겨두고 ‘헤이와보케’로 일관해온 것이 전후 일본사란 얘기다. 그 결과 북핵 문제도 미국이 한순간에 해결해주리라 믿는 것이 일본인 의식의 저변에 깔려 있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메이드 인 코리아’ 수퍼히어로가 없다


▎울트라맨은 혼자가 아닌 동료들과 함께 우주 악당을 상대한다는 점에서 1인 중심의 미국 수퍼히어로와 다르다.
칼럼의 핵심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울트라맨처럼 북핵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할 때를 준비하자는 ‘탈(脫)헤이와보케론’이다. 북한의 핵 보유가 인정되고, 나아가 한국도 핵을 가질 때에도 울트라맨에게 매달려 평화를 외칠 것인가라는 주장이다. 현재 울트라맨 팬의 핵심은 50대, 60대다. 북핵에 대한 일본의 자세나 평화지상주의에 빠진 멍청한 세계관이 마치 장년세대 탓으로 들릴 수도 있다. 칼럼에 대한 비난은 그런 배경 아래서 설명될 수 있을 듯하다.

한국인이 볼 때 울트라맨 칼럼은 ‘일본의 우경화’로 규정할 듯하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유행하지만, 영역은 국내만이 아니라 국외로까지 연결된다. 한국이 핵을 가지면 자위(自衛)행위가 되고 일본이 핵을 가지면 우경화로 표현된다. 일본의 우경화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선에서 생각해보자. 북이 핵을 가질 경우 일본이 어떤 식으로든 무장에 나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울트라맨 칼럼에서 필자가 가장 주목한 것은 우경화 부분이 아니다. 우주공상과학 스토리와 수퍼히어로 두 가지에 관한 것이 관심사다. 둘 다 한국에 없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우주공상과학 스토리가 전무하다. 우주를 무대로 한, 아니 지구 전체를 범주로 한 스토리가 지극히 드물다. 한반도가 대부분이지만, 좀 나간다 해도 중국이나 일본이 무대의 전부다. 더불어 그 흔한 수퍼히어로 캐릭터도 없다. 영화극장 포스터에 거의 매일 등장하는 슈퍼맨·배트맨·스파이더맨·원더우먼과 같은 백전백승 정의의 수퍼히어로가 한국에는 없다.

필자와 같은 장년세대의 경우 아톰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톰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부(代父)격인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虫)의 작품이다. 한반도 전체가 전화(戰火)로 불타던 시기인 1951년 처음 등장한 10만 마력 정의의 아톰은 ‘메이드 인 재팬’ 로봇이다. 물론 활동 영역은 지구 전체와 우주다. 원래 전전(戰前) 일본의 세계관은 만주·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국한됐다. 지구와 우주로 확산된 것은 전후부터다. 냉전 당시 미국에서 인기를 끈 슈퍼맨·배트맨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수퍼히어로라도 미·일 간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미국식 일방적 정의가 아니라, 동양적 정(情)에 기초한 선(善)의 실천이 아톰의 사명이다. 공(公)에 기초한 정의가 미국이라 할 때, 사(私)를 잊지 않는 인간적 캐릭터가 일본 수퍼히어로의 특징이다.

한국의 수퍼히어로로 로봇 태권V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역시 1970년대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 마징가Z의 복사판에 해당된다. 로봇 태권V 정통성을 강조하면서 거구의 철골 캐릭터 건설에 나선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국내에서나 통하는 얘기다. 외국인에게 두 캐릭터를 보여줄 경우 누가 원조고 아류인지는 금방 알아낼 것이다. 지구의 평화를 위해, 우주의 질서를 위해 싸울 만한 ‘메이드 인 코리아’ 수퍼히어로는 없다. 따라서 우주의 악당이 한국에 들이닥칠 경우 지켜낼 수퍼히어로도 없다. 우주 괴물에게 속수무책 당하거나 이웃 나라의 수퍼히어로에게 부탁하는 길밖에 없다.

“우주나 지구 전체를 상대로 한 수퍼히어로가 있는가?”

수퍼히어로와 활동 영역을 둘러싼 중국의 상황은 어떤지를 20년 지기(知己)인 50대 중국인에게 물어봤다. 6·4천안문사태 당시 중국에서 대학을 마친 엘리트로 현재 미국 내 국제기구에 근무하고 있다. 한참 생각하더니 “메이요(没有)”란 답이 돌아왔다.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지구·우주를 염두에 둔 수퍼히어로를 다룬 애니메이션·영상물·소설도 없다. 굳이 떠올린다면 요즘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로켓을 탄 손오공 캐릭터가 예가 될지 모르겠다. 내부 문제만으로 골치 아픈 나라가 중국이다. 지구나 우주 문제에 대해 신경 쓸 틈이 없다. 지구나 우주의 악당보다 집안 내부의 골칫덩어리부터 해결해야 할 나라가 중국이다.”

정의 개념 모호한 나라에선 수퍼히어로 기대 난망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이 11월 11일 오전(현지시간) 베트남 다낭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유심론을 부정하는 공산당 이념이 원인인지 되물었다. “물론 중국인 대부분은 신도 안 믿고 종교도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공산당 때문이 아니라, 원래부터 유심론과 무관한 유물론자가 중국인들이다. 죽고 나면 끝이다. 잘 살고 잘 먹으면서 부와 행복이 후대까지 이어지는 것이 가장 큰 희망 사항이다. 지구·우주, 나아가 공동체나 국가 같은 큰 범주의 얘기는 일반 중국인의 관심사와 무관하다. 나와 내 가족이 전부다. 그 밖의 문제는 슬로건이나 형식에 그친다.”

수퍼히어로에 대한 중국인의 의식은 어떨까?

“중국인이 전 세계 박물관을 돌아다니면서 제일 많이 던지는 의문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거 진짜인가?’라는 질문이다. 가짜만 보고 살아왔기에, 진짜도 진짜로 안 받아들인다. 진짜로 진짜라고 해도 혹세무민(惑世誣民)으로 받아들인다. 세상에 수퍼히어로가 어디 있느냐? 진위 여부에 의문을 갖고 신을 안 믿는 나라에서 수퍼히어로가 나올 수 있다고 보나? 잘 모르지만 신·자연·동물에 대한 경외심이 수퍼히어로의 배경에 있을 듯하다. 중국은 그 같은 문화와 무관하다. 수퍼히어로를 믿지 않을 뿐더러 믿을 수도 없다. 물론 수퍼히어로가 나온다 해도 중국 문제에 매달리는 순간 보통 인간으로 추락할 것이다. 문화혁명식 매도로 인해 강제로 끌어내려질 것이다.”

수퍼히어로와 활동 영역을 둘러싼 한·중·일 3국 간의 시각은 현재 벌어지는 3국 간 정치·외교·군사 대응방식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국내 자체를 활동 영역의 전부로 보는 중국, 한반도에서 나아가 한·중·일 차원 무대를 세상의 전부로 대하는 한국, 미국을 흉내 내 1950년대부터 지구·우주 차원의 문제에 돌입한 일본과 같은 3국을 통해 2017년 겨울 동북아 외교·안보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주목할 부분은 활동 영역이 좁다, 넓다, 크다는 사실이 반드시 외교·안보 영역의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과 한국이 좁고, 일본이 넓다는 식의 우열 비교는 더더욱 아니다. 현재의 동북아 상황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로 그 같은 세계관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수퍼히어로가 언젠가 한국이나 중국에도 나타날 것이고, 일본이 지구·우주를 무대로 한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도 60여 년 전에 불과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필자는 다르게 본다. 지구·우주를 무대로 한 수퍼히어로가 등장해 백전백승 캐릭터로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정통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수퍼히어로는 수퍼파워 소유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퍼정통성, 즉 정의의 사도라는 부분이 한층 더 중요하다. 수퍼히어로는 지구의 번영, 우주의 평화를 지키는 정의 그 자체다. 형식적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서방은 성서의 십계명과 같은 계율을 통해 정의의 원칙과 가치를 보존해왔다.

아시아 문화권에서 정의는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가변적이다. 시대에 따라, 통치자에 따라 정의의 개념이 달라진다. 한국·중국·일본은 그 같은 문화권의 나라다. 그러나 일본은 19세기 말 메이지유신을 통해 탈아(脫亞)에 나선다. 자발적으로 유럽과 미국의 가치관·세계관을 추종하는 나라로 변해간다. 한국·중국은 다르다. 나름대로 변화야 있었지만 자발적인 움직임이 아니다. 2012년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화제가 됐다. 아시아권 대부분의 나라에서 큰 반향이 있었지만, 특히 한국·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오락가락하는 정의에 목마른 정서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정의의 개념이 애매한 나라에서는 수퍼히어로가 등장하기 어렵다. 따라서 수퍼히어로 캐릭터가 탄생된다 해도 한국인과 중국인 마음속에 큰 의미로 와 닿을지는 의문이다.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얘기는 존재하지만 감동과 무관한 ‘텔링이 빠진 스토리’가 한국·중국에 나타날 수퍼히어로의 운명이 될지 모르겠다.

중국과 대만 대표를 번갈아 만나는 아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1월 5일 사이타마현 가스미가세키CC에서 서명한 모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바둑이 그러하듯, 옆에서 보면 대략 1~2급은 올라가게 된다. 직접 대결자가 아닌 축구 관전평에만 의존한다면 누구라도 국가대표팀 감독 반열에 올라설 수 있다. 제3자의 객관적인 눈은 당사자가 놓친 부분을 찾아내거나, 반대로 너무 힘을 쏟는 부분에 대한 속도조절을 할 수 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벌거벗은 임금님에 관한 얘기는 직언을 서슴지 않는 충신에 관한 우화가 아니다. 제3자라면 누구나 당연히 아는 상식을 이발사와 어린이를 통해 모두에게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복잡할수록 쉽게, 꼬일수록 간단하게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제3자의 눈과 머리가 필요하다.

수퍼히어로의 주무대가 우주와 지구라는 점은 제3자의 객관적 눈을 갖게 하는 기본조건에 해당된다. 많은 나라의 요리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체험하는 것은 미식의 기본이다. 여기저기 많이 먹어봐야 좋고 나쁜 것을 가려낼 수 있다. 넓은 체험을 통해 깊게 이해하면서 눈앞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풀어나가는 식이다. 수퍼히어로이기에 내 맘대로 처리한다는 것이 아니다. 지구적·우주적 차원에서 전체의 조화와 평화에 기초해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이 수퍼히어로의 특징이자 의무다.

반대로 작은 공간이나 세계에 근거한 시각은 어떨까? 좁은 영역에서도 조화나 평화에 근거한 제3자적 세계관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지구·우주 차원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당장 이웃나라에서 벌어진 공산독재의 민낯을 보자. 냉전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군복 차림의 최고지도자가 충성을 외치며 사열한다. 투표를 한 적도 없는 국민은 관영TV를 통해 최고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시청해야만 한다. 특색 있는 사회주의식 민주주의라 말하겠지만, 21세기 세상 흐름에 역행한다는 것은 어린아이조차 이해할 수 있다. 방관자 입장에서, 과연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제3자적·객관적·상대적 세계관에서 동떨어진 벌거벗은 임금님의 나라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끝이 없지만, 모든 것이 좌우·흑백으로 갈려진 상황에서 제3자의 혜안(慧眼)은 회색분자 또는 기회주의자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다. 제3자가 옆에 들어설 경우 아예 바둑판을 뒤엎어버릴지도 모른다. 한·중 간 영토 분쟁 수역인 이어도의 조개가 ‘중국의 자랑’이란 타이틀로 미·중 정상회담 만찬에 나올 경우, 독도에서 잡은 성게를 ‘다케시마(竹島) 스시’란 이름으로 미·일 정상회담 만찬에 등장할 경우에 관한 얘기를 했다가는 한순간에 매국노로 넘어갈 판이다. 원래부터 없기도 하지만, 지구·우주를 배경으로 한 제3자적 접근을 금기시하는 곳이 2017년 한국의 현실이다.

일본은 어떨까? 골프장 벙커에서 넘어지는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트럼프 환대에 매달리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곧바로 미국의 가상 적인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목을 매는 곳이 일본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가 열리던 11월 11일, 아베 신조 총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양국의 번영과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교환한다. 이후 20시간도 채 넘지 않은 12일 오전, APEC에 참가한 대만 대표부 총책임자 쑹추위(宋楚瑜)와도 만나 30분간 대화한다. “민주주의라는 동일한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긴밀한 경제관계와 인적 왕래를 심화시킬 수 있는 나라가 대만”이라고 아베는 강조한다.

작은 식단에서 접하는 지구와 우주의 세계관


▎시진핑 국가주석(가운데)의 집권 2기를 이끌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사회주의 국가는 신과 종교를 믿지 않는다. / 사진·연합뉴스
흥미로운 것은 대만 대표부 총책임자의 배경이다. 여당인 민진당(民進黨)이 아니라, 야당인 친민당(親民黨)의 당수다. 여당이 야당 당수를 APEC 총책임자로 보내는 나라, 여당의 제안에 따라 야당 당수가 선뜻 나서는 나라가 대만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야당 친민당은 중국과의 통일을 주장하는 대만 내 친중 정책의 선봉이다. 대만이 APEC에 친중 야당 대표를 총책임자로 보낸 것도 흥미롭지만, 아베가 대만 대표부를 방문해 그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는 점도 놀랍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아베의 대만 대표부 총책임자 접견은 찬성할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대할 것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볼 때 아베는 일본만의 기준이 아니라 중국·대만 모두의 입장을 고려한 제3자적 시각에서 움직였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아베는 미국 일변도 정치가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다르게 본다. 미국 중심이기는 하지만, 카드를 여러 곳에 분산해서 위험률을 최소화하는 데 힘을 쏟는다. 중국에 올인하면서 나아가 미국을 무시하거나 적으로 만드는 식의 외교와 다르다. 강하고 떡도 생기기에 미국으로 가지만, 약해지고 먹을 것도 떨어질 경우 즉각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상대를 궁지로 몰거나 무시·매도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고, 틀어진다 해도 결코 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자신을 객관화·상대화하는 과정에서 터득한 외교다.

미·일 정상회담 기간에 등장한 갖가지 음식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미와 전통을 강조하기보다 맥도날드 햄버거에 익숙한 보통 미국인의 취향에 맞춘 음식이다. 정상회담용 음식치고는 너무 초라하고 단순하지만 손으로 들거나 포크로 간단히 찍어 먹을 수 있는 고기류가 중심이다. 그러나 고기는 일본이 자랑하는 와규(和牛)다.

이에 반해 한·미 정상회담에 등장한 한식은 너무도 한국인의 기준에 맞춘 요리로 와 닿는다. 새우 한 마리가 접시 위에 담겨져 있지만, 어떻게 먹으라는 건지 알기 어렵다. 젓가락도 숟가락도 익숙하지 못한 것이 대부분의 미국인이다. 트럼프는 더할 것이다. 손으로 들고 먹기도 어렵다. 좁은 접시 안에서 새우를 칼로 자르기도 어렵다. 생선·두부국을 봐도 제3자의 시각과 전혀 무관한 ‘한식 만세’의 연장선으로 와 닿는다.

필자의 추측이지만 보통 미국인이라면 먹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음식을 손에 들고 가기조차 어려운 식단으로 느껴진다. 젓가락, 그것도 무거운 놋쇠 젓가락을 사용할 줄 아는 미국인은 극히 드물다. 정성도 느껴지고 정치적 의미도 깊겠지만, 과연 미국인 가운데 몇 사람이나 입에 댔을지 궁금하다. 지구·우주와 무관한 좁은 세계관은 작은 식단 하나를 봐도 알 수 있다.

“민주주의라는 동일한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3년여 전부터 아베가 즐겨 사용해온 수식어다. 한국은 물론 인도·필리핀·태국·대만의 정상이나 고관과 만날 때 주로 사용한다. 서두에 밝힌 지구·우주를 무대로 한 수퍼히어로라는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은 일본과 같은 가치관을 가진 나라에 들어간다. 수퍼히어로가 전무한 중국과 한국은 미·일의 가치관과 다른 범주에 들어간다. 같은 가치관이란 의미는 굳이 구체적으로 안 따지더라도 일상적 언어나 행동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다.

2017년, 여러 상황을 근거로 할 때 미국과 일본은 그 같은 범주에 들어선 듯하다. 미국과 한국은 어떨까? 한국과 일본은 어떨까? ‘척’ 하면 곧바로 알아듣는, 서로가 이해하는 나라라 볼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여러 가지 장벽이 가로막혀 있다. 과거사, 일방 외교, 대국주의 같은 것들이 원인이라고 한다. 과연 그것뿐일까?

워싱턴에서 사라지는 일본 전문가들


▎11월 14일 동해상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한 미국 항모 로널드레이건호의 갑판.
워싱턴에는 크고 작은 싱크탱크가 많다. 세금 감면 대상이 되는 세법 501(C)조 대상 기준으로 싱크탱크를 추리자면 200여 개에 달한다. 흥미로운 것은 언제부턴가 싱크탱크 내 일본 전문가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60대를 넘긴 몇몇 일본 전문가가 있긴 하지만 30대, 40대 일본 전문가는 극히 드물다. 일본 전문가 부재라는 점에서 걱정하는 일본인도 있다. 필자는 다르게 본다. 워싱턴에서 영국·프랑스 전문가가 없듯이, 일본 전문가가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영국이 한마디하면 미국은 금방 알아듣고 거기에 맞는 정책과 행동에 돌입한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적으로 대할 이유가 사라진 상태에서 굳이 전문가가 직접 나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 정부·학계·미디어 구석구석에 영국·프랑스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전문가가 더 이상 필요 없는 곳이 워싱턴 싱크탱크의 현실이다.

한국은 어떨까? 아직도 한국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문제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배경이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싱크탱크 넘버5에 들어가는 세 곳의 전문가가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이다. 군사·정보 차원에서 한국을 이해한다는 의미다. 과거 일본 전문가의 경우 군사·외교만이 아닌, 경제 전문가도 많다. 워싱턴 싱크탱크 내 한국의 위상은 아직 냉전의 산물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어떨까? 필자가 아는 한, 극소수의 일본 전문가를 포함해 한국·인도·아세안 등 아시아 지역 연구가의 대부분이 중국 전문가로 나설 듯하다. 중국 수요가 있기 때문에 중국 전문가로 나서는 것이다. 중국 수요의 주된 요인은 중국이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점에 있다. 이념적으로 볼 때 미국과 전혀 다른 가치관에 선 나라가 중국이다. 척 해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 중국의 의도를 미국에 숨기는 것을 좋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냉전식 사고에 불과하다. 페이스북에 들어가 보면 개인 내력이 자세히 나와 있다. 정보를 이용해 어떤 나쁜 짓을 할까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어제의 세계관에 갇힌 사람이다. 전부 열어서 좋은 점으로 개발해나가자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세계관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 지난 7월 한·중 정상회담 당시 한국이 오역한 중국어 표현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온다. ‘중국과 북한=선혈(鮮血)로 응고된 관계’를 혈맹(血盟)으로 풀이한 한국의 ‘순진한 실수’에 관한 뉴스다. 중국인들은 ‘피(血)’는 흘렸지만, ‘맹(盟)’은 아니라고 말한다. 앞서 중국인이 말했듯이, 지구·우주가 아닌 중국 내부 문제로 골치가 아픈 나라가 중국이다. 애초부터 ‘맹’의 관계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수퍼히어로 부재의 나라라는 점을 통해서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지구와 우주를 오가는 수퍼히어로는 애니메니션 수준의 공상과학 스토리에 그칠 수도 있다. 정치·외교의 배경이자 원형으로 분석하는 것에 반감을 가질지 모르겠다. 보다 더 자세히 그리고 깊이 살펴보면 나름대로의 연관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수퍼히어로 세계관을 둘러싼 차이·모순·충돌이야말로 일촉즉발 동북아 정세를 이해하는 키워드 중 하나로 활용할 수 있을 듯하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201712호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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