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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감춰진 과거와의 전쟁… 국정원 수사 끝은 어디? 

“李·朴 전직 대통령 정조준… 삼세 번 우병우 구속 여부도 관심”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국정원 ‘현안 TF’ 영화 세트장 같은 가짜 사무실 만들고 재판에서는 위증교사까지…추명호 전 국장 영장기각이 실체 드러낸 단초되기도

▎10월 28일 촛불 1주년을 맞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모인 시민들이 ‘국정원 개혁’을 촉구하며 다시 촛불을 들었다. / 사진·연합뉴스
월요일이던 10월 30일 국가정보원 법률보좌관실 소속 정모(42) 변호사가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가족들도 그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정 변호사의 형이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수색에 나선 경찰은 이날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강원도 춘천시 소양강댐 주차장에서 그의 그랜저 승용차를 발견했다. 정 변호사는 이미 숨진 상태였고 차 안에는 소주 2병과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정 변호사는 숨지기 일주일 전인 10월 23일 국정원 댓글사건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정 변호사의 지인들에 따르면 “한두 번만 더 (검찰에) 가면 될 것 같다”며 처음엔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 기색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후 정 변호사는 동료들에게 “너무 힘들다. 내가 책임지는 쪽으로… 내가 뒤집어써야 하는 분위기로 가는 것 같다”며 억울한 심경을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요일인 10월 27일 정 변호사는 하루 휴가를 냈다. 이후 정 변호사의 행적을 조사한 경찰에 따르면 그는 28일 토요일 강원도 원주로 가 고교 동창을 만났다. 그리고 숨지기 하루 전날인 29일 오전 10시에 가까워지던 시각, 정 변호사는 강릉시 주문진읍 신리천 다리 위에서 뛰어내렸다. 때마침 이를 목격한 행인의 신고로 속초 해경에 구조된 정 변호사는 2시간 만에 귀가 조치됐다. 첫 번째 자살 시도가 실패한 것이다. 이날 오후 정 변호사는 승용차를 몰고 춘천으로 향했고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11월 6일 오후 2시. 이번에는 현직 검사가 서울 서초동 한 법무법인 건물에서 투신해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망자는 변창훈(48) 서울고검 검사였다. 변 검사는 이날 법원에서 열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있었다. 국정원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변 검사를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상태였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대응책을 논의하던 변 검사는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자리를 떴다고 한다. 5분이 지난 후에도 돌아오지 않자 A변호사가 변 검사를 찾으러 화장실로 갔지만 이미 작은 창문을 통해 뛰어내린 뒤였다. 그는 곧바로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의료진은 1시간 동안 변 검사에게 심폐 소생술을 했지만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날 오후 4시 그는 끝내 숨졌다. 사건 당시 변호사 사무실에는 부인도 함께 있었다.

대구 심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91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변 검사는 사법연수원 23기로 현재 지난 정권의 국정원 관련 여러 의혹 수사를 이끌고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연수원 동기다. 변 검사는 검찰 내에서 베테랑 ‘공안통’ 검사였다. 울산지검과 수원지검 공안부장을 거쳐 2011년에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 2015년에는 대검 공안기획관을 지냈다. 이후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로 자리를 옮겼다가 정권이 바뀐 후인 지난 8월 서울고검에 발령받았다. 변 검사는 검사 생활 20년 동안 주로 공안 분야에서 요직을 거친 인물이다. 특이한 이력 중 하나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공안부장으로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직접 사고 수사를 지휘한 바 있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국정원 댓글 관련 수사를 받던 인물 두 사람이 연달아 숨지자 국정원과 검찰 내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은 상태다. 특히 검찰 일각에서는 수사팀이 망신 주기 수사를 한 것 아니냐는 비난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일단 두 사람 모두 강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으리라 여겨진다. 특히 변 검사는 투신 전 평소 친분이 있는 지인들에게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살기 싫다” “억울하고 원통하다”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자녀 앞에서 압수수색 당하자 모멸감


▎11월 6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변 검사는 2013년 4월 당시 국정원 현안 TF 일원으로서 국정원 댓글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다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목숨을 끊었다. / 사진·연합뉴스
검찰 수사팀이 변 검사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은 10월 27일이다. 이날 오전 7시부터 검찰은 변 검사 외에도 2013년 당시 국정원 감찰실장으로 파견 나가 있던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을 비롯한 또 다른 파견검사였던 이제영 의정부지검 부장검사, 국정원 서천호 전 2차장, 문모 전 국익정보국장, 고모 전 국익 전략실장, 하모 전 대변인 등 7명의 사무실과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동시다발로 진행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변 검사는 자녀와 함께 있던 이른 아침부터 수사팀이 집 안으로 들이닥치자 큰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장례식장에서 통곡하던 변 검사의 부인이 조문객을 향해 “국정원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애기 아빠한테 다 뒤집어씌우고, 애들 보는 데서 집 안 압수수색을 하고 후배 검사한테 15시간이나 조사받으면서 너무나도 원통해하고 억울해했다”고 호소한 이유다.

두 사람은 이번 검찰 수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통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변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사유로 “국정원 직원 정모 변호사를 회유한 의혹이 있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고 한다. 변 검사는 이 대목을 무척 억울해했다는 것이다. 유족들에 따르면 “변 검사는 검찰 수사를 받고 온 정 변호사가 심적으로 많이 괴로워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너는 죄가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 전화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통화 내역을 확보한 검찰이 이를 회유 정황으로 몰아가자 “정 변호사가 혹여 나쁜 생각을 할까 걱정돼 얘기를 나눈 것을 두고 회유했다는 식으로 추궁하니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후 정 변호사가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은 변 검사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또 두 사람이 통화한 사실이 일부 언론에까지 공개되는 것을 보고 20년 동안 몸담았던 검찰 조직에 큰 배신감까지 느꼈다는 것이다. 변 검사가 심리적 충격을 받았으리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다른 피의자들과 비교해 검찰이 특별히 변 검사를 심하게 다루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검찰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기도 하다. 검찰은 장전 지검장과 이 부장검사의 경우 공개소환을 통해 두 사람을 포토라인에 세웠지만 변 검사를 소환조사 당시에는 언론에 미리 알리지 않았다.

정 변호사와 변 검사는 국정원 사건의 주요 수사 대상이었지만 그들의 역할이나 혐의 내용으로 볼 때 기소되더라도 중형을 선고받지는 않을 것으로 점쳐졌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한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섣불리 추측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두 사람은 모두 유족이나 주변에 별도의 유서를 남기지도 않았다. 두 사람의 죽음과 관련해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뭔가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도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이번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4월 상황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정원 내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고, 이 두 사람은 당시 어떤 역할을 했던 것일까? 또 현재 진행되는 국정원 관련 수사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변 검사와 정 변호사가 연을 맺게 된 것은 변 검사가 2013년 4월부터 2015년 2월까지 국정원에 파견 나와 법률보좌관으로 근무하면서부터다. 두 사람이 국정원에서 함께 일하기 시작한 2013년 4월은 정국이 어수선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특히 국정원은 남재준 원장이 취임한 후 정보기관 본연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조직 정비에 박차를 가하는 시기였지만 동시에 2012년 대선 투표 직전 벌어진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의혹 사건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을 수사한 서울 수서경찰서는 국정원 일부 직원이 댓글 작업을 통해 ‘정치 개입’이라는 위법을 저질렀지만 ‘선거 개입’까지는 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사건은 검찰로 넘어왔다.

특수통 출신인 채동욱 검찰총장은 이 사건을 윤석열 여주 지청장에게 맡겼다. 2013년 4월 18일 국정원 특별수사팀이 가동됐다. 수사팀은 윤석열 팀장을 중심으로 공안·특수·첨단범죄수사·형사 등 검사 8명, 수사관 12명 등으로 구성됐다. 윤 지청장이 이끄는 특별수사팀의 행보는 심상치 않았다. 새로운 권력이 들어선 직후이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검찰은 전방위로 수사를 확대해 나갔다.

수사팀이 꾸려진 지 2주일이 채 안 된 4월 30일 오전 8시 50분부터 수사팀은 국정원 압수수색에 나섰다. 윤석열 팀장이 현장을 지휘하는 가운데 검사 7명과 수사관, 디지털포렌식 요원 등 25명이 동원됐다. 수사팀은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국정원 직원의 안내로 건물 안에 진입했다. 댓글사건을 주도한 국정원 3차장 산하 심리정보국을 중심으로 이뤄진 이날의 압수수색은 밤늦도록 진행됐다. 13시간이 넘는 압수수색 끝에 수사팀은 원세훈 전 국장원장의 지시가 담긴 말씀 자료를 포함한 각종 문서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심리정보국 내부의 업무 분장과 조직 운영 현황 등 자료를 확보했다. 이날 국정원 측은 검찰의 압수수색에 겉으로는 협조하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정원 측은 꼬투리가 잡힐만한 것은 조금도 허락하지 않았다.

현장을 지휘하던 윤석열 팀장은 국정원 측과 내내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윤 팀장은 특히 심리정보국 사무실뿐 아니라 댓글 작업을 벌인 직원들이 지시·보고 문건을 지휘부와 주고받는 데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국정원 메인 서버’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해줄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남재준 원장은 국가안보 문제를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녁 무렵부터는 양측이 대치 상태로 돌입했다. 당시 수사에 관여했던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이 지정한 사무실 외에 다른 곳은 압수 수색이 어렵다고 버티는 바람에 1차 압수수색을 하고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그런 대치가 밤 10시까지 계속됐고 윤석열 팀장은 대검에 전화를 걸어 ‘더는 못하겠습니다. 다 때려치우고 돌아가겠습니다. 가서 기자회견을 하겠습니다’며 보고를 올렸다”고 말했다. 대검 지휘부는 이에 대해 “좀 더 설득을 해보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그러나 수사팀은 결국 그로부터 두어 시간 더 대치를 벌이다가 국정원을 떠나야 했다. 언론은 2005년 이후 8년 만에 이뤄진 국정원 압수수색 자체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지만 실상 이날 검찰이 확보한 자료는 맹탕이었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가 최근 검찰 수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루 만에 가짜 사무실 뚝딱 만들더라”


▎2013년 4월 검찰의 국정원 댓글 수사 당시 수사방해 의혹과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등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11월 8일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사진·우상조
이날의 압수수색은 한마디로 국정원 측이 치밀하게 만든 시나리오대로 진행된 한 편의 쇼였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수사팀이 압수수색을 진행한 국정원 내 사무실은 국정원 ‘현안 TF’가 하루 전날 꾸며놓은 가짜 사무실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은 검찰이 확보한 국정원 현안TF의 ‘압수수색 대응 보고서’를 통해 확인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정원 측은 검찰 수사팀이 들이닥치기 이틀 전인 4월 28일 내부 회의를 통해 계획을 세우고 이튿날인 29일 해당 사무실에 책상과 컴퓨터, 가짜 서류 등을 비치해 놓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보고서에는 또 사무실 변경 도면까지 상세히 그려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응 보고서에 나와 있는 내용은 그대로 실현됐다. 국정원 개혁위 산하 적폐청산 TF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국정원은 기존 사무실을 나눠 칸막이를 설치하고 언론에 공개된 국정원 심리전단팀 중 일부만 노출하는 식으로 검찰 수사에 대비했다고 한다. 또 압수수색에 나선 검찰 수사관들의 동선을 어떻게 통제할지까지도 치밀하게 계산했다. 수사팀에 보여줘서는 안 될 진짜 사무실은 보안구역으로 제안해 검찰 수사팀이 접근조차 할 수 없도록 미리 조치를 취했다. 또 이미 언론 등에 검찰 수사 대상자로 공개된 국정원 이모 안보 3팀장과 2012년 대선 직전 댓글 사건의 중심 인물인 여직원 김하영 씨 등만 노출하기로 했다.

한편 보고서에 따르면 검찰 수사에 대비한 국정원 측의 전반적 대응 업무는 국정원 감찰실장이 맡는 것으로 돼 있다. 보고서에는 “외형적으로는 (압수수색 대비를) 김진홍 심리전단장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감찰실장이 주도한다”고 나와 있다. 당시 감찰실장은 바로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이다. 또 보고서에 따르면 서버 기록물 대응 방법까지 세세하게 기재해 검찰이 조금이라도 문제될 만한 자료에 접근할 수 없도록 대비했다고 한다. 준비가 끝나자 서천호 당시 국정원 2차장 등 핵심 간부들이 최종 점검까지 했다. 적폐청산 TF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가짜 사무실을 둘러보면서 사전 리허설을 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국정원 측의 이 같은 대응을 당시 윤석열 수사팀은 사전에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 검찰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대응 보고서와 적폐청산 TF로부터 넘겨받은 관련 자료를 들이대며 장 전 지검장을 추궁했다. 장 전 지검장은 “(가짜 사무실을) 하루 만에 뚝딱 만들었다”며 대체로 관련 사실을 시인했다고 한다. 장 전 지검장을 포함해 당시 국정원에 파견 나온 검사들도 사전에 이를 알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국정원 현안TF 소속으로 국정원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국정원은 이날 작전을 성공한 뒤 내부적으로 “압수수색 결과에 만족한다”는 보고서도 작성했다. 당시 이 보고서에는 “대부분 (국정)원에서 사전 검토한 자료를 압수하고 종료했다. (사전에 준비된 사무실 외에) 영장에 명시된 장소의 압수수색을 대부분 하지 못해 검찰이 불만을 토로했다. 직원들이 처음에 긴장했으나 지휘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원만하게 종료됐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책임질 만한 위치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변 검사와 정 변호사 역시 윗선의 지시를 받아 이날의 작전에 일정 부분 동원됐다는 것이 검찰이 그동안 수사를 통해 밝혀낸 부분이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어쩔 수 없이 따랐을 뿐”이라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들이 수사 방해와 조작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한 것은 적폐청산 TF와 검찰 수사로 상당 부분 드러난 사실이다.

검찰이 더 심각하게 여기는 부분은 국정원 현안TF의 활동이 이날 압수수색 방해 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후 검찰이 원세훈 전 원장이 재판에 넘겨졌을 당시에도 대응은 계속됐다. 현안TF는 재판에 불려 나갈 직원들에 대한 변호인 질문과 예상되는 검찰의 반대신문까지 만들었다. 현안TF에 참여한 국정원 파견 현직 검사가 “검찰 수사의 불법성을 강조하라”는 지침을 주는 어이없는 상황도 벌어졌다.

남재준 “원세훈 무조건 무죄로 만들라” 지시


▎2012년 국가정보원 직원 김모 씨 오피스텔 앞에 대기 중인 민주통합당 관계자들에게 국정원 대변인(앞줄 오른쪽 둘째)이 입장을 밝히는 모습. 이 사건은 이후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팀장이 된 특별수사본부가 가동돼 수사에 착수하면서 정국에 파란을 몰고 왔다. / 사진·연합뉴스
현안TF 소속인 이제영 검사가 중심이 돼 원 전 원장의 재판 속 기록을 챙기고 변호인 의견서와 참고자료를 만드는 일까지 했다고 한다. 여기서 작성된 재판 자료는 거의 그대로 법원에 제출됐다. 사실상 원 전 원장의 변호인 노릇을 했다는 것이 검찰의 수사 결과다. 검찰은 국정원 법률보좌관실에서 일한 현직 파견 검사들이 당시 검찰의 압수수색과 이후 법원의 재판을 방해한 행위는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용납할 수 없다는 명백한 불법 행위로 보고 있다. 이들 파견검사는 국정원이 법을 준수하도록 심사하고 자문하는 역할을 하기는커녕 불법 행위에 함께 가담한 사실이 최근 수사 과정에서 하나둘 드러나자 검찰 수사팀 내에서도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현재 검찰은 남재준 전 원장의 역할에도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당시 남 전 원장이 청와대 측과 교감을 갖고 국정원 댓글수사와 이후 진행된 원 전 원장 재판에 지속적으로 현안TF를 동원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과 국정원 적폐청산 TF 등에 따르면 당시 남 전 원장은 “원 전 원장이 재판에서 유죄가 나오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며 “무조건 무죄를 만들라”고 내부에 지시했다고 한다. 현안TF 소속원들은 남 전 원장의 이러한 지시는 청와대, 다시 말해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원 전 원장이 국내 정치 개입을 금지한 ‘국정원법 위반’뿐 아니라 만에 하나 ‘선거법 위반’까지 혐의가 확대되면 사안이 정권의 정통성 시비로까지 번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안TF 소속 파견검사들은 원 전 원장 사건에 관련된 국정원 직원들이 재판에 불려 나가 적절한 선에서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법률적 조언을 했던 것이다. 현안TF는 2013년 4월부터 이듬해까지 1년여 기간 동안 총 300회가 넘는 대책회의를 열어 검찰 수사와 재판 상황에 따라 맞춤형 대응을 해나갔다.

최근 검찰이 확보한 당시 현안TF가 작성한 문건에는 대응 방식이 자세히 나와 있다. 우선 국정원 직원들의 온라인 댓글 활동에 대해 “(원세훈) 원장 지시가 아니라 심리전단 차원에서 결정한 일”이라고 선을 긋도록 했다. 또 “‘잘못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는 등 불법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절대 보이지 말라”고도 했다. 댓글에 정치인과 정당 등을 실명으로 언급한 부분과 관련해서는 “종북 세력에 대응하는 차원이었을 뿐 선거에 영향을 줄 목적은 전혀 아니었다”고 주장하라는 주문도 이어졌다. 만약 자신이 맡은 업무 이외의 질문을 받으면 “제가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하는 식으로 추궁을 피하는 요령도 사전에 알려줬다. 검찰이 국정원 내부 자료를 제시하면 “저는 본 적이 없는 문건”이라고 둘러대도록 했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다른 증인들의 발언을 잘 숙지하고 특별히 당부하기도 했다. 같은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진술을 하게 되면 거짓 증언 논란에 휩싸여 재판부의 불신을 불러올 뿐 아니라 검찰의 반격을 받을 수 있으니 똑 같은 기조를 이어가라는 지시도 내렸다. 검찰에 따르면 현안TF가 마련한 이런 구체적인 대응 방식은 실제로 당시 재판에 출석한 국정원 직원들에 의해 그대로 수행됐다. 한편 남 전 원장은 11월 8일 검찰에 출석하면서 “국정원 직원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라며 “찬사는 받지 못할 망정 수사를 받다가 목숨을 끊는 현실에 고통을 느낀다”고 수사에 반발하고 있다.

국정원 가짜 사무실 등 현안TF의 불법 활동이 드러난 것은 바로 내부 직원의 폭로 때문이다. 검찰은 10월 18일 국정원의 정치 공작과 불법 사찰을 주도한 혐의로 추명호 전 국익정보국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반면 배우 문성근·김여진 씨 나체 합성사진을 제작·유포한 혐의 등으로 국정원 간부 유모 씨는 이미 구속된 상태였다. 자신만 구속되고 불법 행위에 더 큰 책임이 있는 추 전 국장이 빠져나가자 유씨는 폭로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4년 전 심리전단 소속으로 검찰 수사에 대비해 가짜 사무실 꾸미기 작업에 투입된 유씨가 당시의 ‘사기극’을 자세히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급 간부에 대한 법원의 영장기각이 결국 새로운 범죄 사실을 드러내는 웃지 못할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돌 맞더라도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11월 3일 국정원의 정치공작과 불법사찰 행위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추명호 전 국익정보국장이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늦게 법원은 추 국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 사진·우상조
변 검사와 정 변호사의 자살로 현재 검찰의 국정원 수사는 다소 주춤한 상태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은 “청와대 하명을 받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참극을 몰고 왔다”며 “복수 정치를 끝내라”고 청와대와 검찰을 성토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두 사람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나 그렇다고 명백히 드러난 과거의 불법을 눈감고 넘어갈 수는 없다”며 검찰 수사를 옹호하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과거 국정원 댓글 수사를 하다 좌천된 윤석열 지검장이 다시 국정원 적폐수사의 책임자로 수사를 총괄 지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11월 9일 윤 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 1~3차장 검사와 일부 부장검사를 불러 약 40분간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윤 지검장은 “흔들리지 말고 업무에 임하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안팎의 비판 여론에 자칫 구성원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조직 분위기를 다잡는 차원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중앙지검 관계자의 얘기다.

“수사 과정에서 생을 마감한 두 사람의 죽음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깝다. 자살이 알려진 직후 검찰 식구들, 특히 국정원 수사팀 관계자들은 적지 않은 마음의 상처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수사팀을 교체하라거나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의 시각엔 수사팀 내부는 동의할 수 없다는 분위기인 것으로 안다. 눈에 뻔히 드러나 보이는 사안을 다른 이유를 내세워 덮고 가는 것이 오히려 정치검찰의 모습 아니냐는 것이다. 지금 검찰이 믿을 것은 청와대나 정부 여당이 아니다. 국민밖에 없다. 돌을 맞더라도 갈 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다.”

수사가 정점을 향해 가다 잠시 브레이크가 걸린 형국이지만 여전히 검찰의 국정원 수사 칼끝은 지난 정부의 최고 권력자 두 사람을 향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정원 특수활동비의 청와대 상납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죄 추가 기소 가능성이 거론된다. 검찰은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으로 세 명의 전직 국정원장(남재준·이병호·이병기)을 사법처리 할 방침이다. 또 원세훈 원장 시절 벌어진 국정원 댓글사건과 함께 군 기무사의 불법 여론조작 과정이 검찰 수사로 드러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머지않아 이 전 대통령까지 검찰청 포토라인에 설 가능성도 적지 않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검찰의 추가 수사 역시 여전히 관심거리다. 우 전 수석은 박영수 특검과 검찰 특수본이 개인 비리 혐의로 두 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정부 때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던 우 전 수석의 영향력에 비춰 봤을 때 현재까지는 검찰의 칼날을 비교적 잘 방어해온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구속을 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우 전 수석의 국정원 비선 라인으로 불리던 추명호 전 국장이 구속됐기 때문이다. 우 전 수석의 운명이 추전 국장의 입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검찰은 추 전 국장을 상대로 우 전 수석 관련 의혹을 밝히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또 검사장 출신의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도 곧 불러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우 전 수석과 최 전 차장은 상당히 친밀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최 전 차장을 출국금지한 상태다. 우 전 수석이 검찰의 세 번째 칼끝을 피해 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201712호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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