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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 수사권 조정 놓고 법무부-검찰-경찰의 동상이몽(同床異夢) 

공수처 신설, 적폐청산 소용돌이에서 침몰할라!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어정쩡한 법무부, 상대적으로 느긋한 검찰, 높은 기대감 품은 경찰 간 샅바싸움 치열… ‘경찰 개혁’ 속도와 내용, ‘자치경찰제’ 시행이 변수로 작용할 수도

▎10월 15일 법무부가 공수처 자체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하지만 한달 전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내놓은 안과 비교했을 때 조직 규모를 대폭 축소한 안을 들고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법무부 발표 나흘 전인 10월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수처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7월 초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 수사관 13명을 투입해 전격 압수수색했다. 수사 타깃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었다. 대기업 임직원도 아닌 그룹 회장을 직접 겨냥한 수사를 검찰이 아닌 경찰이 나선 것이다. 조 회장이 살고 있는 서울 평창동 자택의 인테리어 공사비용이 문제였다. 2013년 5월부터 6개월 동안 진행된 공사에 들어간 70억원의 비용 중 30억원가량을 조 회장 개인 돈이 아닌 회삿돈으로 처리한 정황이 포착됐다. 대한항공이 이 비용을 같은 시기에 진행한 인천 영종도 그랜드하얏트 인천호텔 신축공사 비용에 전가했고, 그 과정에서 조 회장도 이러한 사실을 보고받은 것으로 경찰은 의심하고 있었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계약서, 공사 관련 자료, 세무자료 등을 확보해 분석에 나섰다. 또 한진그룹 건설부문 김모 전무와 대한항공 시설담당 조모 전무 등 회사 임직원들을 소환해 추궁했다. 경찰이 확보한 물증을 제시하자 이들은 회삿돈으로 공사대금을 치른 사실을 인정했다. 이들 중 김 전무는 구속됐다. 문제는 조 회장이 이러한 사실을 사전에 보고받아 알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경찰에 소환된 조 회장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혐의 사실을 부인했다. 애당초 35억원에 계약했으나 공사 과정에서 비용 30억원이 추가로 늘어났고, 추가된 이 비용을 회사 임직원이 따로 회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회삿돈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조 회장의 변호인 측은 “조 회장은 대기업 그룹을 경영하기 때문에 억 단위가 아니라 조 단위로 자금을 운영한다”며 “추가로 들어간 집 수리 공사비용까지 신경 쓸 만큼 한가한 분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조 회장이 한두 푼도 아닌 수십억 원의 거액을 집행한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조 회장이 혐의를 부인하는 데다 증거인멸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10월 16일 검찰에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검찰은 “혐의 입증이 더 필요하다”며 영장을 반려했다.

대기업 회장을 직접 겨냥한 경찰의 이례적 수사에 높은 관심을 보인 언론의 요청에 따라 이철성 경찰청장은 출입기자단에 서면답변을 통해 입장을 전했다. 이 청장은 “(검찰의 영장 반려에도) 현재까지 확보한 증거만으로도 조 회장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에 충분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수사팀이 보완 수사를 통해 영장 재신청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후 보완수사를 거쳐 11월 2일 구속영장을 재신청했다. 경찰 조직의 수장까지 나서 조 회장에 대한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나타낸 사안이었기 때문에 검찰의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도 점쳐졌다. 하지만 검찰은 보완수사 요구도 하지 않고 영장을 또 기각했다. 더 이상 영장신청을 하지 말고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것이다. 이에 경찰은 강하게 반발했다.

검찰, 대기업 회장 수사 브레이크에 경찰 불만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회삿돈 30억원을 유용한 혐의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두 차례 신청했지만 검찰은 번번이 기각했다. 영장청구권이 없는 경찰은 검찰의 불구속수사지휘 결정에 크게 반발했다. 9월 19일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출두하는 조양호 회장. / 사진·연합뉴스
경찰은 언론에 낸 입장문에서 “조 회장이 자택공사 계약, 진행, 비용처리 등 모든 과정에 대해 보고받았다는 것을 밝혔는데 그 이상의 소명이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과거 민감한 수사에 대해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찰이 반려할 경우 따로 대외적으로 경찰의 공식적 입장을 밝히지 않고 넘어갔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경찰 수사팀의 이 같은 입장 발표는 이 청장의 재가를 받고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문제가 출입기자단 사이에서 이슈로 떠오르자 일주일 뒤인 11월 9일 이 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조 회장의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청장은 또 “(검찰의 구속영장 반려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해당 수사팀에 바로 입장을 정리해 표명하라고 지시했다”며 “(구속의 적절성 여부는) 추후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구체적 수사 사안에 대해 언급을 최대한 피하던 역대 청장과 달리 이 청장의 이 같은 반응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 고위 관계자의 얘기다.

“언론의 입장표명 요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검찰 송치를 앞둔 사안에 대해 청장이 직접 코멘트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 차례 영장 반려 후 수사팀으로부터 상세한 보고를 받은 이 청장은 조직의 사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동시에 경찰 외부에도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추후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는 대목이 그렇다. 영장청구권이 없기 때문에 항상 검찰의 1차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이 경찰의 숙명이다.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이 조 회장을 기소할지 아니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최소한의 기회조차 검찰에 의해 번번이 차단 당하고 있다는 경찰 내부의 불만이 상당히 크고 깊다는 점이다.”

본청 특수수사과 출신으로 서울 관내 일선 서에서 지능수사팀장을 맡고 있는 K경감은 “검찰이 다룬 주요 사건들의 예를 보면 자신들이 직접 다룬 수사와 경찰 수사를 대하는 기준이 다른 것 같다”며 “영장청구권을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한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간부는 또 최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온 ‘어금니 아빠’ 이영학 씨 부인의 성폭행 사건도 거론하며 검찰에 대한 불만을 이어갔다. 이씨의 부인 최모 씨는 의붓시아버지로부터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다며 고소장을 제출해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의붓시아버지에 대해 압수·체포 영장을 세 차례 신청했지만 검찰은 수사 보완을 이유로 모두 기각한 바 있다. 최씨는 이 과정에서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K경감은 “경찰이 좀 더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했더라면 하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알고 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피해 당사자의 적극적인 진술과 이후 DNA 검사 결과 등을 통해 입증된 부분을 보면 검찰의 계속된 영장 기각에도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검경 수사권 조정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로까지 나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최소한 영장청구권, 특히 수사 초기에 혐의 입증을 위해 필요한 압수수색 영장청구권만이라도 경찰이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일선 수사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영장청구권을 두고 검경 사이의 신경전과 갈등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경찰은 영장청구권을 검찰이 독점하고 있어 수사를 할 수 없다는 불만을 자주 토로한다. 반면 검찰은 “다소 번거롭더라도 인권 보호를 위한 장치는 이중, 삼중으로 있는 것이 맞다”는 논리로 경찰의 영장청구권 요구를 반박한다. 과연 문재인 정부 동안 경찰의 숙원은 이뤄질 수 있을까? 또 검경 수사권 조정은 어떤 수준에서 결론 날까?

경찰의 높은 기대에도 현재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수사권 조정 문제는 단순치 않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신설 문제와 자치경찰제로의 전환 문제가 함께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사안은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 사안 중 하나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여러 번에 걸쳐 임기 중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밝혔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법무부와 검찰, 경찰은 각각의 사안에 대한 미묘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어 조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해당 사안에 대한 여야 정치권도 시각을 달리하는 부분이 적지 않아 법제화 과정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현재 검찰이 각종 적폐청산 관련 수사를 다각도로 진행하고 있는 상황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당장은 검찰의 힘을 빼는 방향으로 관련 사안들이 추진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시각이다. 국정자문위원회에서 관련 사안을 다뤄온 정부 여당의 한 인사는 “공수처나 수사권 조정 문제 모두 기존의 막강한 검찰 권한의 분산을 전제로 하고 있는 사안”이라며 “이 때문에 현재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과거 정부 관련 각종 의혹 수사의 키를 쥐고 있는 검찰을 흔들 경우 자칫 수사 동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어 당장 급격한 추진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적폐수사에 올인한 검찰은 느긋한 입장


▎10월 20일 경찰의날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부터 수사권 조정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기념식이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문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검찰 내에서는 “급할 것 없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수사권 조정 문제는 급하게 추진할 이유가 없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수도 없는 문제”라며 “인권 보호에 대한 경찰 수사 시스템의 개혁, 자치경찰제로의 개혁이 일정 부분 선행돼야 수사권 조정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의 이 같은 언급은 문무일 검찰 총장의 의중과도 상당부분 일치한다. 10월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 국정감사에서 “수사권 조정에 대한 의견을 내달라”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문 총장은 “수사 권한이란 것을 그대로 떼서 옮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문 총장은 이어 “자치경찰제가 국정개혁 100대 과제에 나온 것처럼 실효적으로 시행되고, 행정경찰이 수사경찰에 어떻게 관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인지, 인권 친화적인 수사 과정을 어떻게 확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와 병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검찰이 다소 느긋한 입장인 것과 달리 경찰 내부의 분위기는 복잡하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 고위급 관계자는 “기본적으로는 경찰 내부에서는 대통령의 수사권 조정에 대한 의지를 믿고 있는 분위기가 많다”면서도 “하지만 검찰이 사정 정국을 주도해가는 상황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데다 경찰 자체의 개혁 방향과 수사권 조정 문제가 어떻게 맞물려 돌아갈지 알 수 없어 내년 초·중반까지도 구체적인 수사권 조정안이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총경급 간부 A씨는 “수사권 조정 문제가 쉽지 않다는 것은 과거 사례를 통해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며 “솔직히 경찰 내부에서는 이번에도 논란만 계속되다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기류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수사권 조정이 검찰의 강한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적지 않고, 이 과정에서 검경 간 밥그릇 싸움이라는 여론이 광범위하게 형성될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경찰 간부 A씨가 전하는 얘기를 더 들어보자.

“수사권 조정 추진 과정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양비론이다.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이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 정치권 공방이 계속되고 그 와중에 검경 간 물밑 줄다리기가 펼쳐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검경 양쪽이 조직 이기주의를 앞세운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검찰은 크게 잃을 것이 없다. 수사 주도권을 그대로 쥐고 있으면서 자체 개혁안을 하나둘 들고 나올 것이고, 시간을 버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검찰에 비해 일사불란한 조직력이나 정치권에 대한 발언권이 약한 경찰은 상대적으로 수세적이 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자치경찰제 시행 등 자체 개혁안을 놓고 경찰 내부에서 논란과 불만이 터져 나오게 되면 수사권 조정이 주요 의제에서 밀리면서 꼬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자체 개혁과 수사권 조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경찰이 가장 쫓기는 입장임에는 분명하다. 자체 개혁 문제만 보더라도 그리 녹록한 사안이 아니다. 70년 넘게 유지돼 온 경찰 조직의 구조와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경찰 자체 개혁 방안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치경찰제의 도입이다. 11월 7일 민간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경찰개혁위원회(이하 개혁위)는 자치경찰제 시행 권고안을 발표했다. 광역 자치단체 단위로 자치경찰본부를 설치하고 자치경찰에 학교·가정·성폭력 등 일부 생활밀착형 범죄의 수사권을 부여하는 게 핵심이다. 또 자치경찰에게 해당 지역의 생활안전·교통단속·경비 등 기본적인 업무를 맡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전국적 단위의 사건이나 북한 관련 보안, 외국 관련 외사(外事), 사이버테러 수사, 정보 수집 등 특별히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는 현재처럼 국가경찰이 담당한다. 일단 정부는 2018년부터 자치 경찰제를 시범 실시하고 2019년부터는 전국으로 확대 실시할 계획이다.

자치경찰제와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정치적 중립성, 수사권 부여 여부, 국가경찰과의 관계 설정과 급여·복지 문제 등이다. 자치경찰에 대한 인사권은 시장 또는 도지사가 갖는다. 따라서 자치경찰이 광역단체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광역단체장의 정치적 성향이나 입장에 따라 자치경찰이 영향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개혁위는 소위 ‘정치 경찰’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역주민 등으로 구성된 견제 장치인 자치경찰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위원회가 자치경찰본부장에 임명될 후보자 3명을 추천하면 광역단체장이 이 중 한 명을 뽑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위원회가 자치경찰의 비위사건 감사·감찰·징계 요구, 상관의 부당한 수사 지휘에 대한 이의 제기 등의 권한을 갖고 경찰을 견제하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 개혁위 입장이다. 하지만 위원회가 과연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구성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게 경찰 안팎의 시각이다.

수사권 부여 문제 역시 복잡한 사안이다. 당장 개혁위의 안이 발표되자 일선 경찰관 사이에서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사이에 수사 관할권 다툼이 우려될 정도로 수사권을 대폭 자치경찰에 넘겨주는 내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전국에서 유일하게 자치경찰제를 운영하고 있는 제주도의 경우 자치경찰은 수사권이 따로 없다. 이들은 일부 권역 순찰이나 교통 관리, 관광경찰, 특별사법경찰 등으로 활동이 제한돼 있다. 이와 비교할 때 개혁위 안이 자치경찰에게 지나치게 많은 수사권을 넘긴다는 게 비판론의 핵심이다. 여기에 검경 수사권 조정안도 확정 안 된 상태에서 경찰 자체의 권한 분산을 먼저 논의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내부 불만도 감지된다. 반면 전국 단위의 주요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은 여전히 국가경찰에게 부여돼 있고 자치경찰은 한정된 범위와 영역에서만 수사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반론도 경찰 내부에서는 존재한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수사권 행사 범위를 명확히 하고 수사 과정에서 업무 협조 등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춘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논란이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역시 검찰과의 관계에 있다.

수사권 조정 놔두고 자치경찰제만 도입?


▎막강한 검찰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 대안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이다. 9월 25일 경실련, 민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공수처 설치촉구 공동행동’ 발족 기자회견을 열어 정기국회에서 공수처 법안을 우선 심의해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 사진·연합뉴스
자치경찰에 수사 업무가 부여되더라도 수사-기소 분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자치경찰을 관할하는 지자체장이 국가검찰의 지휘를 받는 불합리한 구조가 형성된다고 개혁위는 지적했다. 따라서 개혁위의 권고안은 수사-기소 분리를 전제로 하고 있다. 개혁위는 자치경찰이 국가검찰을 거쳐 영장을 청구하는 형사사법 체계 역시 지방분권 원칙에 어긋나므로 자치경찰이 영장청구권도 보유해야만 실질적 의미의 자치경찰제가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 수사-기소를 분리하는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는 사안이다. 앞서 개혁위의 자치경찰제 안이 나오자 경찰 일선에서 “수사권 조정안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시기상조”라고 지적한 이유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10월 13일에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감에서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은 “자치경찰제는 수사권 조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서 “경찰이 주도적으로 수사권 조정 문제를 끌고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는 같이 가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며 “자치경찰제가 앞서 나가더라도 수사권 조정이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검찰은 수사-기소 분리 문제와 자치경찰제 시행은 전혀 결이 다른 문제라는 입장이다. 이 문제에 대해 사견임을 전제로 한 대검 한 관계자가 얘기다.

“현재 경찰 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자치경찰제는 경찰 수사권 행사에 대한 지역주민의 민주적 통제 여부가 핵심 사안으로 논의되는 것이 맞다. 자치경찰제 시행을 두고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수사-기소 분리 문제와 엮어 이 부분이 전제되지 않으면 자치경찰제 도입이 안 되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동안 검찰의 개혁 필요성에 대한 범사회적 요구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떼서 경찰에게 주는 것으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인권 보장 문제를 포함해 자치경찰제 도입 등 경찰 역시 자체적으로 이행해 나가야 할 개혁 프로그램이 있다. 이러한 부분이 얼마나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느냐가 오히려 검경 수사권 조정의 명분과 당위성을 갖게 해주지 않겠느냐. 수사권 조정, 또 수사-기소 분리가 검찰과 경찰의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결국 검찰은 경찰의 자체 개혁안 추진 방향과 내용을 보고 거기에 맞춰 ‘적당한 선’에서 검찰의 권한을 조정하는 것이 조직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복안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상대의 패를 먼저 보고 내 패를 내보이겠다는 것이다. 앞서 문무일 총장이 국감장에서 답변한 부분과 이번 취재 과정에서 만난 복수의 검찰 관계자가 언급한 내용이 모두 같은 맥락이다. 경찰 역시 검찰의 이런 속내를 모르고 있지 않다는 눈치다. 경찰 고위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물밑에선 샅바를 어떻게 잡고 어깨싸움을 벌여야 판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을지를 놓고 치열한 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까지 상황으로는 경찰이 그다지 유리한 것 같지는 않다. 대통령의 의지가 강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개헌, 관련 법 개정 등을 통해야만 경찰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현재 국회 여야 구도상 헌법 개정은 고사하고 법안 하나 통과시키기도 쉽지 않은 것 아니냐.”

수사권 조정에 소극적 비판받는 법무부


▎검경 수사권 조정문제는 국정감사 때도 이슈였다. 10월 16일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무부 국감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 관계자는 또 “수사권 조정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경찰로서는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은 수사권 조정이 수사-기소의 분리 수준까지 나가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법무부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수사권을 대폭 경찰에 넘겨주되, 그렇다고 검찰이 수사를 전혀 하지 않고 기소만 전담하는 것은 과도한 조정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검찰 역시 공수처가 만들어지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수사권을 경찰에 전부 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강하게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찰 측은 “그렇다면 도대체 뭘 조정하겠다는 것이냐”는 불만이 팽배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수사권 조정을 끌고 나갈 핵심 부처의 수장인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입장도 모호한 것으로 비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월 16일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 장관에게 “검찰이 공수처를 받고 수사권을 사수하려는 시도로 방임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박 장관은 “그것은 절대 아니다”며 “수사권 조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의지가 있다”고 답했다. 또 “박 장관이 이전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이 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많고 국민이 원하는 방향도 아니다’고 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법무부는 일단 경찰에게 수사권의 대부분을 넘기고 검찰은 기소와 공소유지를 중심으로 하되 일부 범죄에 대해서는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이날 박 장관의 답변만 놓고 볼 때 향후 수사권 조정이 경찰의 바람대로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 쪽으로 결론 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박 장관이 언급한 검찰에게 직접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일부 범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명확하지 않아 혼란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범죄’가 향후 만들어질 공수처가 다룰 범죄와는 또 어떻게 구분되는지도 의문이다.

박 장관의 이런 입장에 대해 수사-기소의 분리를 강하게 주장해 온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은 “경찰과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은 우려스럽다”며 “검찰의 기득권 지키기 논리와 유사하다”고 비판했다. 황 청장은 또 “검찰 개혁의 본질은 검찰에 집중된 권력을 덜어내는 것이지만, 그것이 곧바로 경찰에 이전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대해 (박 장관의)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면서 “검찰이 본래 기능인 소추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수사 기능에서는 전면적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검의 한 관계자는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을 법무장관이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며 “법무부가 합리적 수준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을 끌어갈 것으로 본다”고 기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박 장관은 후보자 시절 인사청문회에서 “경찰이 인권 친화적으로 바뀌는 등 경찰 개혁이 전제돼야 한다”면서도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검찰이 독점하는 것에 폐해가 있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답변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장관 취임 이후 언론 인터뷰와 지난 국정감사 때 언급한 검찰의 수사권 유지 발언이 후보자 시절 입장과 달라진 것인지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박 장관의 이런 달라진 언급이 고심 속에 나온 발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정자문위원회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다뤄 온 여권의 한 인사는 “학자 시절부터 박 장관은 수사-기소 분리주의자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경찰 개혁의 방향과 내 용, 속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장관의 입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굳이 따지자면 박 장관 입장에서는 우선 공수처 문제를 매듭짓는 것이 더 시급할 것이다. 검찰 권력의 분산 방안 중 지금까지 나온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이 공수처 신설이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모양새를 취하고는 있지만 공수처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다면 설립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국민 여론 다수가 검찰 개혁의 핵심으로 공수처 설립을 지지하고 있어 세세한 부분에 대한 조율이 필요할 뿐 설립은 기정사실로 봐야 한다. 수사권 조정 문제도 동시다발로 추진하는 노력을 하겠지만 우선순위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훨씬 더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 바로 수사권 조정이다.”

수사-기소 분리 둘러싼 검경 간 힘겨루기 예고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큰 기대를 모았던 검경 수사권 조정이 오리무중 상태에 빠졌다. 경찰 내부는 쫓기는 분위기인 반면 검찰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입장이다. 7월 28일 문무일 검찰총장은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경찰청을 방문해 이철성 경찰청장과 만나 검경 간 원활한 협업을 논의했다. / 사진·연합뉴스
현재 법무부는 수사권 조정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당장 떨어진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10월 15일 법무부의 공수처 신설안이 나온 후 여기저기서 말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법무부는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한 달 전 내놓은 ‘슈퍼 공수처’ 안을 반 토막 낸 ‘미니 공수처’ 안을 들고 나왔다. 개혁위는 당초 공수처에 검사 50명, 수사관 70명 등 수사 인원만 최대 122명을 둘 수 있도록 한 안을 제시했다. 과거 대검 중수부와 서울지검 특수부 조직을 합친 것 이상의 규모였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등 보수 진영과 검찰의 반발을 의식한 탓인지 이후 법무부는 검사 25명 이내, 수사관 30명 이내로 조직 규모를 대폭 축소한 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당장 개혁위를 중심으로 법무부 안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이왕 권력형 비리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거면 일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데 법무부 안대로라면 조직 규모가 어정쩡하다는 것이다. 검사가 수사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고소·고발, 재정신청, 대외협력 등과 함께 공소유지·항소·상고를 담당할 검사도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지난해 정치권에서 제출된 공수처 관련 법안과의 조율도 필요하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을 법무부가 얼마나 효과적이고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법무부가 공수처 문제에 비해 수사권 조정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것으로 비치자 당장 국회를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 기간 중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왜 법무부에서 공수처 안만 이야기하고 검경 수사권 조정은 함구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또 오신환 바른정당 의원은 “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를 제시했는데 국정과제에서는 수사권 조정으로 일부 후퇴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은 10월 20일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수사권 조정에 대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검경) 두 기관의 자율적인 합의를 도모하되 필요할 경우 중립적인 기구를 통해 결론을 내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이날 언급한 수사권 조정이 수사-기소의 분리까지를 포함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의 수사-기소 분리라는 원칙과 소신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공약과 국정과제는 실현 가능성까지 종합적으로 감안하는 측면에서 다소간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수사권 조정이라는 표현을 고수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수사-기소 분리만 너무 강조하다 보면 검찰 권력의 분산을 현실화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포석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사회, 정치권으로부터 개혁에 대한 강한 압박을 받고 있는 검찰은 지난 9월 19일 자체 검찰개혁위원회를 꾸려 개혁방안 마련에 들어갔다. 송두환 개혁위 위원장이 위원회 출범식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이 수사권 조정의 내년 본격 추진 일정을 공식화한 만큼 어떤 식으로 논의가 이뤄질지도 관심사다. 일각에서는 향후 수사권 조정 역시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논의처럼 공론화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법 개정 문제 등 더 전문적이고 세밀한 검토가 필요한 만큼 공론화 과정보다는 검경과 외부 전문가 그룹을 합친 논의 기구가 구성될 거란 전망이 좀 더 우세하다. 검경 양측은 한편으로는 여야 정치권 인사들을 상대로 한 설득 작업과 함께 국민적 지지를 받기 위한 치열한 물밑 여론전을 펼치며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청와대 한 관계자는 “검경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론이 쉽겠느냐”며 “다만 견제받지 않는 검찰 권력을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 나가는 것은 흔들릴 수 없는 원칙”이라고 말했다.

-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201712호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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