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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 카운트다운 6·13 지방선거 기상도] 대구 | 특유의 ‘정치 역동성’ 회복? 

권영진-김부겸 리턴매치 성사될까 

박재일 영남일보 정치부문 에디터 park11@yeongnam.com
자유한국당, 김부겸 출마 전제로 선거대책 수립…유승민-안철수, 공동후보 낼 경우 제3 후보 파괴력에도 관심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 맞붙은 당시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후보(왼쪽)와 권영진 새누리당 후보.
대구가 보수의 아성(牙城)이라 불리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1945년 광복을 전후해 대구는 ‘동양의 모스크바’로 불릴 정도로 정치적으로 진화한 도시였다. 좌파운동의 근거지가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 박상희 씨가 참여했던 대구 10·1 폭동(혹은 항쟁)은 대구 좌파운동의 한 맥을 긋는다. 박정희 통치 시절에도 그가 비록 대구사범 학교를 졸업했다는 확고한 인연에도 불구하고 대구의 야당 세는 비교적 강고했다. 한병채·신도환 등 탁월한 야권 인물들이 배출됐다. 박정희는 박정희였고, 정치적 선택에서 대구에 다양성이 존재했다는 의미다.

대구의 정치적 역동성은 전두환-노태우에 이어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대구 출신 혹은 대구·경북(TK)에 정치적 근거지를 둔 인물들이 권력 정점에 오르면서 한쪽으로 점점 굳어지게 된다. 여기다 한국 정치권의 스펙트럼이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좌우의 이념 대결적 요소가 가미됐다는 점도 한 요인이다. 예를 들면 보수 일각에서는 한국 정치구도를 ‘진보 대 보수’로 보면 곤란하고 ‘좌파 대 우파’로 명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6년 4월 총선 대구 수성갑 선거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김부겸 의원(현 행정안전부 장관)의 당선은 그런 점에서 대구의 정치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1985년, 그러니까 재야 인사였던 YS(김영삼)·DJ(김대중)가 결성한 신민당이 전국에서 돌풍을 일으켰을 때 유성환 의원이 1위(당시 중선거구제)로 당선된 이래 정통 진보 인사가 대구에서 국회로 진입한 것은 김부겸이 31년 만이었다. 김부겸 후보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의 빅매치에서 62% 대 32%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때는 아직 박근혜 탄핵 사태가 시작도 되기 전이었다. 정치 분석가들은 대구가 정치적 다양성을 복원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수성 갑은 대구 12개 국회의원 선거구 중 정치 1번지로 불린다. ‘6공(노태우 전 대통령) 황태자’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김만제 전 부총리-이한구 전 의원이 지역구를 다져왔던 곳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선거가 빅매치가 된다면 그것은 아마 수성갑 국회의원직을 겸직하고 있는 김부겸 행정 안전부 장관의 출마와 맞물릴 때일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대구의 정치적 정서도 예전 같지 않다는 배경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과연 현 집권여당에서 어떤 인물이 출마하느냐는 선거 판세를 실질적으로 좌우할 가장 큰 요인이다. 아직은 대구의 보수 정서는 두텁다. 어정쩡한 인물로는 현재의 자유한국당을 상대하기 버겁다.

김부겸 바람 다시 불어올까


▎민주당 후보군으로 분류되는 이재용 민주당 대구시당위원장, 이승천 전 국회의장 정무수석, 홍의락 국회의원, 임대윤 전 동구청장(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김부겸 장관은 경기도 군포시에서 3선 의원을 지냈고 ‘정치적 야심’을 갖고 대구로 왔다. 2012년 총선 당시 대구 수성갑에 도전해 이한구 의원과 맞대결을 펼친 끝에 40% 득표율로 석패했다. 이어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도 도전했다. 굉장한 선전을 했다. 당시 선거에서 여당이던 새누리당의 후보 권영진도 대구에서는 신예였다. 그는 서울 노원구에서 한차례 국회의원을 했고,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냈지만 대구에서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그가 새누리당 당내 경선에서 서상기·조원진 의원에다 이재만 전 동구청장(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을 꺾은 것은 대이변이었다. 김부겸 후보는 41만8000표로 40%를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권영진 후보는 58만 표로 56%를 얻어 신승했다. 김부겸의 2016년 국회 입성은 이때 시장 선거에서 확실히 지명도를 올린 효과가 컸을 것이다.

김부겸은 문재인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이다. 그는 지금까지 몇몇 인상적인 행정 실력을 보여줌으로써 몸값을 올리고 있다. 취임 직후 터진 이철성 경찰청장과 강인철 전 광주지방청장 간에 벌어진 갈등의 경우, 사실상 하극상 사태에 직면해 확실히 군기를 잡는 모습을 보여줬다. 경찰 수뇌부를 모두 불러놓고 대(對)국민 사과 장면을 생중계했다. 또 다른 인상적 장면은 포항 지진과 이례적인 수능시험 일주일 연기 결정이었다. 포항에 달려온 그는 수능시험장이 엉망이 된 상황을 보고 과감히 일주일 연기를 교육부 장관과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그는 “소수이지만 포항의 수험생들을 포기할 수 없고, 그들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

이즈음 김부겸 장관에게 내년 대구시장 선거에 관한 질문을 하자 그는 예의 손사래를 쳤다. 김 장관은 “아니 내가 대구 와서 정말 일하고 싶다고 시민에게 호소했다. 두 번 떨어지고 겨우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이제 장관으로 열심히 일하는데 또 시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한다면 그건 예의가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김 장관의 대구시장 출마 여부에 대해 반신반의한다. 일단 부정적 시각이 있다. 김 장관의 향후 정치적 행보, 예를 들면 차기 대권 도전 로드맵과 연계되지 않아 출마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된다면 대권 도전의 가도가 열릴 것이란 분석도 있지만, 된다고 해도 한 차례의 시장으로 명분을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떨어지면 이도 저도 아닌 정치적 고립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 김 장관이 출마한다면 수성갑 국회의원직을 내놓고 나와야 하는데 이것은 집권여당으로서는 부담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김부겸 장관이 대구시장에 출마한다면 우리는 대구시장직은 물론 수성갑 국회의원까지 되돌려 받기에 환영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부겸 장관이 민주당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이유는 사실 마땅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대구에서도 진보좌파 계열의 인물들이 키워지고 나름 몸집을 불렸지만 딱히 시장감으로 꼽히는 인물은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 등이 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이지 다시 등장하기는 어렵다. 환경부 장관을 지낸 이재용 민주당 대구시당위원장의 출마설도 나오고 있지만 본인은 부정적이다. 이 위원장은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시당위원장으로 관리에 우선을 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2010년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이승천 전 국회의장 정무수석도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지만 아직은 김 장관의 거취가 결정되지 않아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홍의락 국회의원(대구 북을)과 임대윤 전 동구청장도 거론되지만, 아직은 거론 수준이다.

물론 집권여당과 청와대는 대구시장에 확실한 후보를 내보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한 축을 만들겠다는 기획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대구 북 갑)은 “권력의 생리상 청와대가 김 장관에게 대구시장에 나가라고 요청한다면 거부하기 힘들 것으로 본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김상훈 한국당 대구시당위원장은 “우리는 어쨌든 김 장관이 출마한다는 전제하에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부겸 장관의 출마가 불가능하다면? 집권 민주당으로는 또 다른 정치적 명망가를 물색할지도 모른다. 의외의 인물이 스카우트돼 민주당 후보로 등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홍준표, 대구시장 후보 경선 시사


▎대구시장 선거 출마설이 도는 이재만 전 동구청장, 이진훈 수성구청장, 국민의당 후보로 거론되는 사공정규 대구시당위원장, 김태일 영남대 교수(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11월 10일 대구 언론인 모임인 아시아포럼21(이사장 변태석) 초청 토론회에 온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 “대구시장을 포함해 현재 한국당 6개 광역단체장을 최소한 현상 유지하는 결과를 얻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내가 대표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했다. 6개 시장·도지사 중 부산·울산 등도 포함하고 있지만, 대구시장이나 경북지사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패한다는 것은 사실상 당의 붕괴에 가까운 재앙이 될 것이다. 홍 대표는 최근 당협위원장이 공석인 대구 북을과 달서병 중 한 곳을 택해 자신이 직접 당협위원장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일각에서는 홍 대표가 서울 보궐선거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란 의심도 하지만, 홍 대표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만큼 대구를 중시하겠다는 의미다. 홍 대표는 전국 광역단체장을 비롯해 주요 지역구에 당의 전략공천을 언급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홍 대표는 “대구에서는 우리가 강하고 후보가 많으니까 당연히 당원과 시민의 뜻을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당내 경선을 실시하겠다는 의미다.

어쩌면 자유한국당의 경선은 민주당에는 다소 미안한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자칫 본선이 될 수도 있다. 첫 광역단체장 선거였던 1995년 문희갑 전 시장이 무소속으로 당선됐지만, 그는 당시 범여권 인사였다. 이어 조해녕-김범일로 이어진 역대 시장은 공통적으로 고시 출신의 중앙관료 경력을 가진 인물로 채워졌다. 당내 경선이 반짝 열기를 띠었을 뿐 정작 본선거는 일방적으로 끝났다.

2월 국회의 ‘예산 정국’이 끝나면서 TK정치권에서도 내년 지방선거의 열기가 점차 고조된다. 경북의 경우 이철우(김천)·김광림(안동)·박명재 의원(포항 남-울릉-독도)이 도지사 출마를 사실상 선언했다. 김관용 현 지사는 3선으로 물러난다. 여기다 남유진 구미시장, 김영석 영천시장, 김장주 경북도 행정부지사도 도전에 나섰다.

반면 대구는 경북지사 출마군과 달리 지역 현역 국회의원들이 속속 포기의사를 밝히고 있다. 한때 바른정당 후보로 꼽혔던 주호영 의원(수성을)은 최근 한국당으로 복당했다. 주 의원은 한국당 후보로 출마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대구시장에 출마하라고 했을 때도 안 했다. 지금 내가 왜 출마하겠나”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달서구청장 출신의 곽대훈 의원(달서갑)도 “출마 의사가 없다”고 했다. 대구시 경제국장 출신으로 재선인 김상훈 대구시당위원장도 일찌감치 “시장 경선 관리에 전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장 한국당 경선이 치러진다면 이에 따라 원외 인사들끼리 경합할 가능성이 높다. 권영진 현 시장을 비롯해 이재만 전 동구청장과 이진훈 수성구청장은 이미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구 지역 일부 국회의원 사이에는 송언석 전 기획재정부 차관을 띄워보자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송 전 차관은 그러나 이철우 의원의 경북지사 출마로 비게 될 가능성이 높은 김천 보궐선거에 뜻이 있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최근 시장직 수행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 “시장을 해보니 참으로 전직 시장들을 존경하게 됐다”고 답했다. 그는 “대구의 여러 프로젝트들이 최근 완성됐지만, 이는 모두 전임 시장이 한 것이다. 나도 당장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10년, 20년 길게 보고 시정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초선 시장으로서 자신감을 간접 피력한 것으로도 보인다. 권 시장은 또 김부겸 장관의 출마설에 대해서도 “나도 판을 키우고 싶다. 출마한다면 환영이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재만 전 동구청장은 ‘칼’을 갈고 있다. 2014년 경선에서 아깝게 2위를 한 데다 2016년 총선에서 대구 동 을의 ‘유승민 파동’ 속에 새누리당이 이곳에 무공천을 결정함으로써 출마조차 못했다. 그는 “권영진 시장의 대구시정이 엉망이 됐다”며 “대구를 잘 아는 인물이 대구시청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대구 국회의원들의 입김이 경선 변수

이진훈 수성구청장도 최근 출판기념회를 하며 사실상 출정식을 가졌다. 대구시 국장 출신으로 재선 구청장인 그는 “대구의 1번지 수성구를 이끌며 성공한 노력들을 시정에 투영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경선과 관련해 지역 정치권에서는 일반 여론조사도 중요하지만 현역 국회의원들의 입김도 변수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상당수 당원은 “국회의원들이 누구를 찍으라고 ‘버튼’을 누르던 시절은 지났다. 인물을 보고 뽑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실 2014년 경선에서도 그런 기류가 퍼져 있어 허언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은 대구의 정치적 아이콘이었다. 차기 TK를 이끌 주자를 꼽는 여론조사에서 그는 항상 1, 2위를 다퉜다. 그런 위상에 풍파가 겹쳤다. 이른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당사자로 지목되면서 그의 정치 역정은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을 두 번 탈당하고, 끝내 바른정당을 창당했고 대통령 후보로도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유승민 의원은 당 대표가 된 이후로 대구에 자주 모습을 보이는 편이다. 지난 11월 28일의 대구 기자간담회에서는 그동안의 잠행을 뒤로하고 결의를 내비쳤다. “대구시장, 경북지사 선거에 최선의 후보를 내 자유한국당과 정면대결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이어 “대구·경북의 의식 있는 시·도민들은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대표가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 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고 포문을 열었다. 유승민 의원은 한때 직접 대구시장 선거 출마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설(說)로 그치는 상황이다.

바른정당의 내년 지방선거에서 관심을 끄는 가장 큰 변수는 국민의당과의 연대 여부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11월 30일 대구에 와서 “바른정당과 선거 연대로 가게 되면 좋은 대구시장, 경북지사 후보를 찾겠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에서는 대구시당위원장인 사공정규 동국대 교수와 제2창당위원장인 김태일 교수 등이 거론되지만 ‘유승민+안철수’ 조합으로 대구시장 후보를 공동으로 내세운다면 파괴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중도보수 대통합 로드맵’이다. 여전히 미완으로 논의 단계다. 전체 국내 정치 상황,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재판, 문재인 정부를 향한 국민 지지율, 국내 경제 상황과 남북관계 등 모든 것이 여론을 형성하면서 변화를 요구할 때 그런 조합에 기회가 열릴지도 모른다. 정의당 후보는 현실적으로 당락을 떠나 얼마나 많은 득표력을 보일 지가 관건이다. 2010년 선거에서는 진보신당 조명래 후보가 나서 두 자릿수 득표로 기염을 토했다.

- 박재일 영남일보 정치부문 에디터 park11@yeongnam.com

201801호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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