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포토포엠] 자작나무 숲 속에서 

 

박정이

▎강원 인제군 자작나무 군락에 눈이 내려 새하얀 수직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 사진·박종근
아직은
너의 하얀 정체를 드러낸 이유를 묻지 않으련다
수줍은 밤, 너의 하얀 속살의 이유도 묻지 않으련다
안으로 안으로만 곪아버린 푸른 혼도 묻지 않으련다
바람의 허리 뒤로 채색되는 붉은 피는 이미 증발되고
자작자작 소리 내며 울고 있는 꿈틀거린 사랑,
너의 생은, 이곳에 머물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고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는 건
네 몸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자작나무 혼처럼
살풀이 한의 소리가 있기 때문일 거야
그 소리의 웅성거림이 리좀의 꿈이라면....
주름, 주름에 걸린 올곧은 심장박동소리
흔적 없는 구름을 내려 하얀 겨울설화를 걸었을 거야
넌 허공을 헐어 쭉쭉 뻗어가는 허공의 계단을 밟았을 거야

※ 박정이 - 2009년 경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17년 시집 [여왕의 거울]로 제9회 한국문협서울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오후가 증발한다] 등의 시집이 있다. 현재 계간 [포에트리 슬램] 발행인 겸 주간을 맡고 있다.

201803호 (2018.0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