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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문재인 정부 1년 성적표는?] 전문가 평가 (1)정치 

홍보는 성공했지만 협치는 실패했다 

고성국 정치평론가
정부, 안 그래도 높은 국민의 지지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여…진정한 적폐청산 원했다면 국회 다수파 확보하는 전략적 행보 했어야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해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할 때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현수막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촛불의 힘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지난 1년간 완전히 상반된 이중적 정치지형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맸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제1당은 되지만 과반에는 많이 모자라는 국회 권력지형이 그 하나이고, 대통령 지지율 70% 안팎을 유지해 온 국민적 정치지형이 다른 하나다. 문재인 정부가 정력적으로 추진해 온 적폐청산이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과 수백 명의 측근에 대한 사법처리에 머문 채 문재인 대통령이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잘못된 관행과 제도의 개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이 같은 이중적 정치지형 때문이다.

국민의 지지(이 지지에는 적폐청산과 개혁에 대한 순수한 열망 외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행동주체들 간의 은밀한 동류의식도 있을지 모른다)에 힘입어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적폐들에 대한 사법처리 의지를 확고히 하고, 전 권력기관과 정부 부처에 설치한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들의 활약에 의거해 사법처리까지 갈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드러난 수많은 잘못된 관행과 잘못된 제도, 잘못된 시스템, 그리고 잘못된 법들을 고치지는 못 했다. 이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 일뿐만 아니라 정부의 일방적 조치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와 관행을 고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개혁을 요구하고 지지하는 국민여론. 둘째, 개혁 입법들의 의결이 가능한 국회 다수파의 존재. 셋째, 잘못된 문화와 관행을 극복하기 위한 정부와 민간의 지속적인 노력과 행동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가운데 국민여론의 지지(첫째)는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었지만, 다수파의 확보(둘째)에는 전혀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또한 정부와 국민의 각성과 행동(셋째)은 원래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각성과 행동의 영역에서 1년 내에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정부는 없다. 적어도 잘못된 문화와 관행의 개혁과 혁신이라는 차원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진정으로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개혁하는 적폐청산을 원했다면 문재인 정부는 이미 상당히 숙성돼 있는 국민여론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그걸 적극 활용해 국회 다수파를 확보하는 전략적 행보를 했어야 했다. 탄핵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일부를 분열시켜 박근혜 대통령을 국회에서 탄핵시킨 것처럼 말이다. 그와 동시에 문재인 대통령부터 앞장서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부터 먼저 하는 적폐청산 정치문화 개혁운동을 전개했어야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보다는 강점을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안 그래도 높은 국민의 지지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였다. 문재인 정부가 ‘쇼잉’(showing, 보여주기)에 능한 이벤트 정부로 불리게 된 이유다.

여론 의존할수록 국회 권력 무시하는 경향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왼쪽)이 3월 2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개헌안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대중의 지지로 선출된 권력치고 홍보·이벤트·쇼잉에 무관심한 권력은 없다. 그중에서도 국민 지지가 높은 정권일수록, 의회 권력의 구성이 불리할수록 모든 걸 여론에 의존해 밀고 나가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문재인 정부가 그랬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여론에 의존하면 할수록 불리한 국회 권력지형을 무시하는 경향도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문재인 정부가 국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건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과 측근들을 사법처리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적폐청산의 목표인 새로운 관행, 새로운 제도, 새로운 시스템의 정착은 거의 대부분 국회의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취임식장으로 가던 대통령이 한국당 당사를 전격 방문한 것 말고는 협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한 행동이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시작된 적폐청산 드라이브, 최저임금제 및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주요 사회·노동 정책의 일방적 강행, 남북 관계의 주도 등 국정 현안들에서 야권은 애초부터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특히 제1 야당인 한국당은 정부·여당으로부터 끊임없이 청산돼야 할 적폐 세력으로 규정받았다. 잘한 일은 아니지만 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여러 차례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동을 거부한 것도 이해할 만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협치가 가능하겠는가? 문제는 협치 아니면 어떤 문제도 국회 문턱을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후에도 문재인 정부의 일방적 독주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헌법 개정을 발의했다. 또 거의 모든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여당은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감싸기를 했다. 법무부가 아니라 청와대 민정수석이 나서 국민에게 직접 개헌안 초안을 설명하는 상황이다. 천안함 폭침 주모자 김영철의 방남에 정부가 나서 “김영철을 천안함 폭침 주범으로 특정할 수 없다”며 사실상 면죄부를 준다. 청와대 개입으로 결국 12년간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활동해 온 한미연구소가 문을 닫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이 청와대와 정부의 일방적 독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협치가 가능하겠는가.

개헌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여야 간 게임의 룰인 선거 제도와 정치관계법, 국회 운영규칙 등도 게임 참여자인 여야 합의로 개정돼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관행과 원칙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정부·여당이 야당들을 설득하고 야당들과 합의하지 않는다면 헌법 개정은 물론 어떤 법 개정도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점은 정부·여당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은 야당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원만하게 국회를 함께 운영해 갈 정치의 파트너가 아니라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입으로는 협치를 외치지만 행동으로는 일방통행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홍보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협치는 실패했다고 분석하는 이유다.

국정운영 철학, 전면 재구성해야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4월 13일 청와대에서 만나 남북정상회담 등 국정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문재인 정부는 모든 사안마다 국민과의 약속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촛불혁명의 명령, 국민의 명령, 국민과의 약속 같은 거대 담론 앞에서 야당들의 정치적 반대는 개혁에 저항하는 음모로 간주된다. 정치가 최선과 차선, 그것도 아니면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을 찾아가는 현실적 선택이 아니라 흑백논리와 이분법에 의해 재단되는 당위적 도덕이 돼버리는 것이다. 도덕과 당위 앞에서 정치적 타협은 설 자리가 없다.

문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것을 말릴 방법은 없다. 또 그런 행동을 잘못됐다고 탓할 수만도 없다. 그러나 만약 그런 논리라면, 모든 사안에서 국민과의 약속을 앞세워 강공드라이브를 할 요량이라면 문재인 정부는 문 대통령이 후보로서 국민에게 한 더 큰 약속, 더 많은 약속에 대해서도 응답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협치를 약속했고 국민통합적 국정운영을 약속했다. 사실 국민통합은 특정 후보의 정치적·공학적 약속 이전에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국민 앞에서 한 가장 중요한 선서다. 국민통합은 정치권력의 보편적 과제이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협치는 개별적 정책 약속에 우선하는 국가 경영 노선에 대한 약속이다. 모든 약속이 다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수많은 약속 중 어떤 약속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가 중요하다. 국가 경영을 책임진 대통령에게는 국민통합적 국정운영이라는 정치권력의 보편적 가치, 그리고 협치 방식의 국가 경영이라는 시대정신이 어떤 개별적 약속보다 우선돼야 한다.

국민통합과 협치는 대통령이 지켜야 될 여러 약속 중 하나가 아니라 그 모두를 통합하는 민주주의의 철학이자 국가 경영의 기본원리다. 지난 1년간, 문재인 정부가 여론을 의식한 홍보에는 성공했지만 민주적 국가 경영의 핵심 원리인 협치엔 실패했다면 지금이라도 개별 정책의 미세 조정이 아니라 국정운영 철학의 기본 노선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일대 쇄신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벌써 1년이 지났다. 내후년인 2020년에는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국정운영의 목표를 적폐청산이 아니라 국민통합으로, 국정운영의 원리를 청와대가 주도하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야당과 함께하는 협치로 전환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꼭 해야 할 필수적 의무이고 책임이라는 점을 집권 1년을 돌아보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핵심 집권세력들이 반성적으로 성찰하기 바란다.

- 고성국 정치평론가(정치학 박사) vivakoreatv@gmail.com

201805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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