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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특집 | 특별 인터뷰] 김성재 김대중아카데미원장이 말하는 비핵화 이후 남한의 숙제 

“우리 안의 평화 만들어야 한반도 평화 온다” 

글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남한 내부의 갈등 못 없애면 남북 화해·협력도 무망… 여권, 과거 청산 빌미로 자기 세력 확장하려 하면 패착

▎김대중도서관에서 만난 김성재 원장은 “남한 내부의 평화는 정의와 법만으로 이루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북한 핵만 사라지면 한반도에 평화가 저절로 깃들이는가?”

남·북·미 연쇄 정상회담 국면을 보는 김성재 김대중아카데미원장 겸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가 요즘 갖는 화두다.

올 들어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 한반도 주변 정세는 단거리 경주에 나선 주자들 마냥 긴박하고도 숨 가쁜 여정을 내달려 왔다. 6·12 북·미 정상회담은 그 모든 여정의 결정판이라고 하겠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엄청난 변화를 예고한다.

북·미 회담의 다리를 놓은 한국은 어떤가? 우리는 북한이 정말로 비핵화할 것인가, 북·미 회담은 성공할 것인가에 만 오롯이 관심을 쏟다 보니 정작 중요한 문제를 놓치고 있다고 김 원장은 지적한다. 바로 남한 내부의 분열과 갈등 구조의 극복이다. 그는 “남한 내부도 화해·화합하지 못하면서 남북의 교류와 협력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북한이 변하는 것 이상으로 남한도 담대한 비전과 이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고 지금은 김대중 아카데미원장으로 활동하는 그의 외침은 국내 보수와 진보진영 양쪽의 교조주의를 겨냥한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어떻게 보았나?

“북한과 미국은 1950년부터 3년 동안 6·25 한국전쟁을 한 후 지금까지 휴전 상태에서 적대적 관계에 있었고, 북한 핵문제 때문에 몇 차례 전쟁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북·미 정상은 평화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용기 있는 결단으로 반대와 우려를 넘어 평화를 위한 정상회담을 성공시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실무회담과 정상회담을 통해 단계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두 정상이 워싱턴과 평양을 오갈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은 한반도 평화를 향한 큰 역사적 전진이다.”

공동 합의문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가 빠지는 등 ‘맹탕’ 회담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알맹이 빠진 합의, 미국이 북한에 속았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비방자들과 패배자들은 내가 회담을 하면 미국에 커다란 손실이 된다고 했다고 했지만, 우린 억류자를 송환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시켰다. 처음부터 내가 잘못됐다고 지적한 전문가들은 이젠 더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정상회담에 임했다. 얼마 전까지 원수처럼 서로 비난했던 두 정상이 처음 만나 자리에서 서로 신뢰를 표현한 것은 이미 실무 협상에서 원칙적 합의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한 사회는 헌법, 국가보안법 고칠 준비 돼 있나?”

신뢰는 ‘증거’에서 나오는 것이지 ‘발언’이 보장하는 건 아니지 않나?

“정상회담에서 나온 얘기들을 일일이 다 공개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공동 합의문 내용을 보면 ‘북·미 관계 정상화, 평화체제, 비핵화, 유해 송환’ 등 4개항 합의를 담고 있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체제보장을 약속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완전 비핵화를 약속하면서 북·미 간에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CVID에서 ‘VI’, 즉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이란 표현이 없다고 해서 마치 정상회담이 실패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는 점이다.”

이면 합의 등을 통해 비핵화를 절차적으로, 시기적으로 완벽하게 이행하는 얘기가 오갔다고 보는 것인가?

“정상회담이 성공하려면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관건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상대에 대한 표현들은 처음 만났지만 오래 만난 사이 같기도 했다. 그래서 북한 비핵화는 과학적, 기술적 문제도 있지만 체제보장 등 다방면에서 필요한 단계와 절차를 필요로 한다. 한 번에 완전한 해결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의문과 비판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 불신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시간이 걸려도 단계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전쟁보다 단계적 해결이 낫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정말 북한 핵을 완전 폐기하려면 북한이 스스로 핵이 필요 없다고 믿고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말은 결국 미국이 호언했던 CVID 약속을 받아내는 데는 실패했다는,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우리가 북한을 불신하면서 비핵화하려고 하면 북한이 CVID를 약속했다고 해도 절차와 방법에서 또 많은 문제를 제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다. 신뢰를 쌓아가며 단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비핵화 목적을 달성하는 옳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정상국가화’는 우리 일상생활을 얼마나 변화시킬까?

“북한이 비핵화하고 정상국가로 나아가면 우리 헌법 제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영토 조항과 북한을 불법집단 내지 적성국가로 전제한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제반 법률과 제도도 수정해야 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을 적대시했던 국제·외교 관계도 새롭게 구축할 준비를 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는 이제 북한은 더 이상 적이나 악마집단이 아니라 정상국가로 인정하고 ‘1민족, 2국가’ 체제로서 북한과 평화적 관계로 살겠다는 것이어야 한다.”

전례 없는 상황의 급변으로 와 닿는다.

“이렇게 평화적인 남북 관계로 나아가려면 무엇보다 북한에 대한 우리 국민의 동의와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동시에 북한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현재 남한 내의 이념·지역·계층 갈등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과거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과거가 아닌 변화된 세계 속에서 우리의 현주소를 바로 봐야 하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가 해내야 할 일이다.”

북한의 비핵화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준비들


▎6월 12일 서울역을 찾은 시민들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을 TV로 시청하고 있다.
그게 북·미 정상회담 결과가 대한민국에 던진 과제인가?

“우리는 그동안 북한이 정말 비핵화할 것인가 아닌가, 북·미 회담이 성공할 것인가 아닌가에만 집중해 왔다. 설령 북한 핵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자연적으로 한반도 평화가 오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우리의 평화는 북·미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은 북핵 해결 과정에서 스스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거의 준비가 없었다.”

과연 그런가? 한국 정부는 북·미 회담의 다리를 놓았을 뿐 아니라 ‘한반도 운전자론’을 펴며 북핵 국면에 적극 관여했다고 한다. 온 나라가 북핵 문제로 떠들썩했는데도 그렇다는 말인가?

“그런 중재 역할 같은 외부와의 관계만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우리 내부의 준비 태세를 말하는 것이다. 북한이 정상국가가 됐을 때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법과 제도는 어떻게 손봐야 할까? 우리의 의식과 태도는 또 어떻게 할 것인지 준비할 시간, 연습할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북한 비핵화 문제로 보수와 진보, 집권여당과 야당 간에 반목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우리 내부의 이념 갈등이 이처럼 첨예하면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손 쳐도 한반도 평화 실현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따라서 북한 비핵화만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쩌면 북한의 비핵화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준비가 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우리는 북한과 70여 년간 적이 돼 살았을 뿐 아니라 북한을 적(敵)으로 한 사상·학문·의식·제도·법·정치 등에 근거해 우리의 정체성과 생활 기반을 확립해 왔다. 북한이란 적이 사라지면 우리의 존재와 정체성도 무너지게 된다. 일종의 ‘목적 달성을 위한 적(objective enemy)’이 사라지면 나도 없게 된다. 따라서 이제는 북한이란 ‘적’이 없는 우리 삶의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이란 적이 없는 법과 제도, 의식과 관행을 어떻게 갖출 것인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이건 북한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밝혀주던 ‘적’이 사라진 시대의 존재 형식에 대한 준비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북·미 회담 합의문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의 비핵화는 단계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나는 오히려 다행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가 변화할 환경에 적응할 준비 기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

한국 사회 내부의 이념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말처럼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은데.

“여당과 야당은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북한이라는 적을 전제로 대치하고 갈등한다. 과거의 잘못은 청산해야 하지만 집권여당이 이를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갈등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적폐청산이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돼서는 곤란하다. 야당도 종북(從北)몰이를 통해 지지기반을 다지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 민족은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남과 동시에 시작된 미·소 냉전체제에 의해 분단됐지만 이념 대결 때문에 전쟁까지 했다. 이런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이 상태로 가면 문재인 정부도 실패하는 정부”


▎민주당은 지방선거운동 과정에서 ‘새로운 평화’를 강조했고, 자유한국당은 지방선거 슬로건의 하나로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채택했다.
‘적’에 대한 개념을 다시 설정해야 하는 건가?

“북한이란 적이 사라진 한반도의 진로를 상상하고 준비해야 한다. 정상국가화 한 북한이 미국과의 협력 기조 위에서 발전하는 상황을 예상해 보라. 우리가 아무런 준비 없이 그런 일과 마주한다면 국민들은 의식적 혼란을 겪고 내부적으로 큰 갈등을 불러올 것이다. 북한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우리는 분열과 갈등의 과거 속에서 허우적거릴 것 같아 걱정스럽다.”

김 원장은 여야의 극한 대치 구조와 관행이 국내 차원을 넘어 남북 문제 해결에도 엄청난 질곡으로 작용하리라 걱정한다. 그는 정치권이 한국 사회를 적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하는 갈등사회로 만들어 국민과 사회를 양분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국민 삶이 분열되고 정신이 피폐해지고 있다는 게 김 원장의 시각이다. 그는 “과거의 잘못은 청산돼야 하지만 이게 정치적 수단이 돼서는 갈등만 증폭시키게 된다”고 했다.

여권은 적폐청산은 시대적 소명이며 이른바 ‘촛불민심’의 명령이라는 입장이다.

“적폐청산 문제는 하루이틀에 생겨난 일이 아니다. 현 정부 5년 동안 이 상태로 가면 문재인 정부도 끝내 실패하는 정부로 막을 내릴 것이다. 적폐 문제도 ‘지금’의 차원이 아닌 ‘새’ 차원으로 해결해야 한다.”

어떤 방도라도 있나?

“과거 청산, 적폐 해소는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만 다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김대중 대통령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광주 5·18 내란음모 수괴범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있을 때 쓴 수기에서 용서와 화해를 얘기했다. 우리의 오랜 역사를 돌이켜 보자. 조선시대 당쟁에서, 일제 식민치하에서, 6·25전쟁 과정에서, 군사독재하에서 너무도 많은 불의가 있었고 이에 따른 원한도 많았다. 이런 아픔과 원한은 모두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역사적 용서와 화해가 있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했을 때 자기를 죽이려 했고 탄압했던 정적을 용서하고 화해했다. 일체의 정치보복을 하지 않았다.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하지도 않았다. 과거를 잊지 말되 과거에 매이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했다. 그래서 과거 정부 사람들도 유능한 인재는 등용했다. 남아공 식의 진실과 화해의 정신이 요구된다. 북한이 비핵화한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평화가 없으면 남북 평화는 불가능하다. 당대 우리의 안전만이 아니라 우리 자녀의 미래를 위해 남북과 남남이 용서와 화해 평화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

그는 남남 갈등이 재생산되는 구조에서는 남북 화해와 평화는 공염불에 그친다고 봤다. 남남 갈등의 원인이 북에서 오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가미했다. 예컨대 정상 국가 북한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는 문제에서부터 앞서 언급된 법률 개정에도 보수 진영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국회선진화법은 특정 정당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기에 국회는 불능에 빠지기 십상이라는 인식이다. “대통령과 집권여당부터 협치의 자세로 바꿔야 하고 야당도 이에 호응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보수가 애국하는 길은 뭔가?”


▎김성재 원장은 국내 보수 진영도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통해 애국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방선거 이후에도 2020년 총선까지 여야는 격렬한 대치를 거듭하리라는 전망도 있다.

“지금의 여야 갈등과 정쟁을 들여다보면 정말로 국민에게 절박하거나 생존에 결정적인 문제로 다투는 게 아니다. 주로 여야가 자기 권력 내지 지지기반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갈등을 재생산하는 게 대부분이다. 지금 국민이 가장 힘들어하는 취업 문제와 불평등 해결, 경제생활 향상과 안전, 자녀교육문제, 국민 행복 등을 놓고 머리와 무릎을 맞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실타래처럼 꼬인 여야 간 정쟁 구도를 풀어낼 묘안이라도 있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사에서 일부가 아닌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물론 과거의 잘못은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과거와 적폐 청산으로 인해 갈등 구조가 확산된다면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적폐 청산을 통해 자기 세력을 구축하려는 게임을 하려 해서는 안된다. 이제 남북 화해와 평화를 모색하는 마당에 남남 갈등을 재생산하는 구조를 그대로 둬서는 정말 곤란하다.”

야당은 지방선거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야당의 변신은 가능할까?

“야당도 진정한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자면 뭘 해야 할지 성찰해야 할 것이다. 보수는 개인의 도덕에 기반해 애국하는 가치를 중시한다. 보수가 애국하는 길은 뭔가. 지금까지는 ‘적’이었던 북한을 붕괴시키는 ‘반공(反共)’이 애국하는 길이었다. 이제는 북한과의 평화공존, 평화교류를 통해 애국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때다. 또 빈곤과 불평등 등 국민을 짓누르는 민생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도 보수는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 정치는 내부적으로 사생결단식이다. 상대방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심성이 작용하는 것 아닌가?

“이제는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이 절대적 우위를 독점할 수 없다. 서구 유럽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번갈아가면 집권하지 않나. 어떤 시점에서는 진보가 중시하는 사회 정의가 강조되지만, 또 어떤 때는 보수의 가치인 개인의 도덕이 중시되기도 한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정권을 주고받으면서 대화와 타협으로 이끌어가는 게 정치의 본령이다.”

그 책임은 집권여당에 더 크다고 하겠다.

“다시 말하지만 분명한 건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지금 같은 일방적인 스탠스를 유지하는 한 정치는 성공하지 못하고 남북 관계 개선도 어렵다. 일시적으로 이기는 것 같지만 결국 실패한 정부가 된다. 국민들에게도 간곡하게 말하고 싶다. 비핵화할 거냐 말 거냐가 중요하지만 비핵화의 목적은 평화에 있다. 우리 내부에서 싸우고 갈등하고 원수지면 평화는 요원하다. 우리 국민도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여권은 80%의 국정지지율을 믿고 기세가 등등하다. 지방선거도 휩쓸었다.

“그걸 믿고 지금과 같은 식으로 가면 낭패를 보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에 대한 반사이익을 누린 1년 아닌가. 그 효과도 서서히 사라지게 마련이다. 현 정부는 과거 정부의 잘못을 적폐로 몰아 세울 뿐 자신들의 정책 혼선이나 문제에 대해서는 솔직하지 못하다. 문재인 정부 1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전임 정부의 적폐만 언급할 때가 아니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국민을 바로 보고 바른 정책을 펼쳐야 한다. 집권여당의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선에서의 압승은 새로운 정치, 곧 협치와 국민화합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 첫 단추를 어디서 꿰어야 할까?

“우리나라는 대통령중심제다. 대통령의 생각과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재계의 북한 보는 시각은 자기 이익 추구의 환상”

북한은 인권 문제라는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북의 인권 문제를 소홀히 했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안팎의 공격을 받는 양상이다.

“북한은 미국에 비핵화의 대가로 두 개의 보장을 바란다. 하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체제) 보장’이고 또 하나는 김 위원장의 ‘정권 보장’이다. 이 둘은 같은 듯하면서 다르다. 리비아 모델이 잘 말해준다.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리비아는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즉 나라(체제) 보장은 성공했다. 그런데 리비아 내부의 자스민 혁명으로 카다피는 실각하고 목숨을 잃었다. 리비아라는 나라는 안전하지만 정권은 몰락했다. 북한 입장에서 미국이 말하는 인권은 단순히 수용소의 주민을 석방하는 차원이 아니라 인권을 탄압하는 체제를 바꾸라는 것, 그것은 곧 레짐 체인지, 정권교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반발하는 것이다.”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여서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으로서도 양보하기 어려운 의제로 보인다.

“북한 체제보장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인권이다. 북한의 국가 폭력 차원에서 발생되는 인권 문제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과거 중국도 미국이 인권 문제를 제기했을 때 내정간섭이라고 발끈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인권 문제는 정치적 압박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구서독이 구동독의 인권 문제를 정치적으로 문제 삼았을 때 도리어 동독 주민 탄압이 더욱 심해졌기 때문에 서독은 인권을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인도적 지원 정책으로 바꿨다. 지속적인 접근을 통한 변화를 추구했다. 인권은 인도적, 개혁·개방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경제회생에 목말라하는 북한은 서방의 지원과 투자를 절실히 바라지 않나?

“경제 지원도 정권의 안보와 직결된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북한판 마셜플랜’도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돈을 주는 쪽은 늘 자기 체제로의 경제 발전을 요구한다. 그건 자유시장경제적 발전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 체제는 뒤집어질 수 있다. 북한은 이것을 우려해서 북한식 개발을 시도할 것이다. 북한은 미국 경제 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말했다. 경제제재 조치만 해제하면 된다고 한다. 북한은 중국식이든 베트남식이든 자체 구상이 있을 것이다.”

김 원장은 북한 비핵화 이후 한국의 경제력이 북한으로 확장되리라는 일각의 기대감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것은 SOC 기반 시설 투자와 과학기술의 고부가가치 산업인데, 한국의 민간 기업은 저임금 노동력, 지하자원 활용 등 돈벌이에 눈독을 들인다는 이유에서다. 김 원장은 “국내 경제계가 자기 이익 추구의 환상 속에서 북한을 바라본다”고 비판했다.

남한 민간 기업의 북한 진출이 여의치 않다는 말인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중국·일본·러시아가 먼저 북의 기간산업에 대거 투자할 것이다. 일본은 일본인 납치 문제만 해결되면 식민지에 대한 보상과 기간산업에 몇 백억 달러를 지원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우리는 북한과 제대로 일을 해보지도 못하고 뒤로 밀리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하고, 북한과 윈윈하는 한반도 경제 청사진 속에서 북한과 협력해야 할 것이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1807호 (20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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