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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특집 | 특별 인터뷰] ‘공산국가 수술 전문가’ 방찬영이 말하는 김정은의 선택 

“北 개혁·개방 안 하면 급속한 체제 붕괴 가능성 있다” 

글 최경호·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비핵화는 한반도 항구적 평화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북한 경제 성장 이끌어내면 한국도 저성장 벗어나 재도약하게 될 것

▎방찬영 키메프대 총장은 사회주의국가 경제시스템 개혁 전문가다. 방 총장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체제 개혁 당위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방찬영(82) 카자흐스탄 키메프(KIMEP)대 총장은 사회주의국가 경제시스템 ‘개혁 전문가’로 불린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방 총장은 1991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경제특별보좌관과 경제전문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돼 소련에서 분리·독립한 카자흐스탄의 경제시스템 개혁을 주도했다.

그가 키메프대를 세운 것도 카자흐스탄 시장경제를 담당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1992년 중앙당 공산당 간부 학교 건물에 들어선 키메프대는 등록금만으로 운영되는 대학이다. 교수진은 서방에서 초빙됐으며, 모든 강의는 영어로 만 진행된다.

그는 오래전부터 북한의 비핵화와 경제 발전을 연계하는 전략적 구상에 몰두했다. 방 총장은 “북한 문제 해결이 마지막 숙원사업”이라며 키메프대 내 대북전략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 지난해 8월에는 한반도 평화 구상을 담은 책 [김정은 위원장의 위대한 도전]을 출간해 눈길을 끌었다.

이 책에서 방 총장은 북한 개혁·개방의 성공 필수조건으로 ▷비핵화(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경제개발기금의 사용 용도 ▷북·미 수교와 대북제재 철회 ▷선군(先軍)정치 포기 ▷경제특구 설치·운영의 전략적 의미 등을 심도 있게 짚었다.

방 총장은 “체제 개혁과 경제 현대화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정치 개혁 없이 시장경제적 체제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한반도 비핵화가 능사는 아니다. 결국 북한의 체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그동안 왜 핵개발에 집착했다고 보나?

“1990~91년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러시아와 중국은 급격히 개혁·개방을 추진했다. 그 결과 한국과의 수교로 이어졌다. 그게 북한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북한의 동맹관계는 와해되고, 남한은 여전히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도 핵 개발 해야겠다’고 나선 것이다. 다음으로 동구권의 루마니아 같은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한데 이어 2011년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죽자 ‘핵이 없으면 체제 생존이 어렵겠다’고 확신한 것이다. 또 하나는 남한과의 군사력 균형을 위해서다. 북한은 국내총생산(GDP)의 25%인 70억 달러(약 7조7000억원)를 군비에 투입하지만 재래식 무기만으로는 남한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미국의 위협도 원인 중 하나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을 보며 ‘우리도 침공당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억지력을 가질 수 있는 무기를 가져야겠다’고 느낀 것이다. 핵은 북한 정권, 김정은 정권의 정통성과 직결된다. 김일성-김정일로 내려오는 위대한 업적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핵 대신 경제 발전을 택하게 됐을까?

“핵 보유의 핵심적인 목표는 체제 생존이다. 체제 생존이라는 것은 김정은 체제의 생존을 의미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입장에서는 핵을 포기하더라도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경제 지원을 받아서 경제 현대화를 이루는 편이 생존에 보다 유리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방 총장께서는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경제 고문 역할을 하셨다. 그때의 경험과 성과에 대해 듣고 싶다.

“개혁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회주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국가 기업들에 자본주의 기업의 동태적(動態的) 요인을 가미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인센티브를 주거나 기업에 자율권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 같은 자본주의의 동태적 요인을 국가 기업에 접목시키면 국가 기업도 자본주의 국가의 기업들처럼 경쟁할 수 있겠다는 것이 사회주의 이론가들의 바람이었다. 러시아 학술원 회원들이 고르바초프에게 사회주의를 발전시키는 길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업들이 가진 동태적 요인을 접목시키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이윤 창출, 경영 자율권, 기업 회계의 책임, 버는 만큼 더 주는 것 등이다. 하지만 시장경제와 사회주의경제의 핵심적인 차이는 소유에 있다. 저는 고르바초프에게 ‘그렇게 개혁하면 부작용만 증폭돼서 체제가 와해되고 만다. 개혁하려면 소유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설득했다. 카자흐스탄은 소비에트연방 소속 국가였다. (1990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된 나자르바예프가 개혁·개방해서 사회주의 체제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는 ‘단기적으로 부작용도 있겠지만 경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국가 기업은 다 망한다’고 조언했다. 나자르바예프는 급진적 개혁을 시도했다. 지금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 소득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

평화적으로 핵 해결하려면 비용 부담 감수해야


▎함흥 시내의 농민시장, 일명 장마당. 북한 경제의 장마당 의존도는 70% 이상으로 옛소련 말기, 중국 개방 초기보다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주변국들에 어떤 실익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는가?

첫째로 “북한은 지정학적 측면에서 한국·일본·미국과 러시아·중국·북한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 만약 북한이 붕괴된다면 중국과 지정학적 균형이 무너져 미국 쪽으로 기울게 된다. 그래서 경제 발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경제 발전을 하면 균형추 역할이 유지된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러시아 입지가 강화되고 주한미군이 떠나게 된다. 북한이 체제 개혁을 통해 경제 현대화를 이루게 되면 미군이 한반도에서 주둔할 수 있는 구실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미군의 주둔은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이지 중국이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둘째로 중국의 전략적 이해는 한반도 평화를 통해서 공존과 번영을 이루는 것인데 북한이 걸림돌이다. 그런데 북한이 경제 발전을 하면 옌볜과 단둥 등 국경 인접 지역뿐만 아니라 중국 경제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반면 북이 핵을 가지면 중국에는 엄청나게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한반도 주변에) 미국의 전략자산이 배치되고, 전략 폭격기와 핵잠수함이 온다. 북한이 핵을 갖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인 이해에 위반된다.”

북한의 비핵화가 남한에는 어떤 이익이 될까?

“우리는 1년에 340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수입한다. 그런데 북한이 개혁·개방, 경제 협력을 통해 공동의 경제 번영을 추구한다면 한국에는 엄청난 이득이 된다. 물류를 예로 들어보자. 한국은 북한 때문에 인위적 ‘섬’이 됐다. 그런데 북한 육로를 관통하게 된다면 파이프라인이 설치된 효과를 보는 셈이다. ‘서울에서 카자흐스탄까지 기차 타고 오세요’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발전소 1개를 짓는 데 30억~40억 달러가 들어간다. 한국 기업이 그 사업에 참여하면 그 돈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북한과의 경제 협력을 통해 한국은 저성장에서 벗어나 재도약 기회를 찾게 될 것이다.”

개성공단부터 재개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냉정하게 말하겠다. 개성공단 10개를 열어도 북한 경제 발전과는 무관하다. 개성공단에서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가능했나? 민간기업이 돈 버는데 왜 정부가 세금으로 지원해 주고 전기를 보내줘야 하는가? 한국 정치인들이 이런 사실을 외면하는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1994년도 제네바 합의로 북한에 200만㎾짜리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하면서 미국은 공사비 46억 달러 중 70%를 우리에게 부담시켰다. 20%는 일본에, 10%는 EU더러 내라고 했다. 미국은 1년에 5000만 달러 정도의 중유만 약 8년 동안 제공했다. 비핵화에 따른 한국의 비용 부담이 우려되지는 않을까?

“물론 한국이 북한 경제개발기금의 많은 부분을 부담(출자)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의 궁극적 목적은 통일이다. 남북한 소득격차가 지금처럼 GDP 기준 40배 이상, 개인소득 기준 20배 이상이라면 통일비용이 엄청날 것이다. 북한이 경제 발전을 해서 남북 불균형을 줄여야 한다.

둘째, 비핵화 이후 북한이 와해된다고 가정하자. 이때 북한 인구 10%만 내려온다고 해도 한국 사회는 파탄 난다. 북한 주민 1명이 내려오면 교육비·병원비 보조 등으로 최소 1만 달러는 줘야 한다. 그 비용을 한국이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서 북한과 동반성장해야 한다. 핵을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한이 감수해야 한다. 만일 중국이 그 비용을 부담한다면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이 큰돈 내놓으면 한반도 영향력도 커져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방찬영 총장. / 사진:KBS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은 지금부터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시장지향적 개혁·개방의 길을 갈 수 있을까?

“개혁 없는 경제 발전은 없다. 노동시장이 자율화돼야 하고 개인기업이 허용돼야 한다. 거주와 이동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고 ‘모기장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가령 북한에 체류한 외국인이 포스터 한 장 가져갔다고 해서 20년형을 받았다고 하자. 그런 나라에 누가 투자하겠는가? 그리고 시장의 원칙에 따라 법이 제정돼서 투자와 경제활동의 자유가 보장되고 자유노동시장에서 사람들을 뽑아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없다.

결론적으로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김정은 체제는 급속히 와해될 것이다. 옛날에는 ‘미국이 침략하려 하니 희생하라’고 했는데 앞으로는 무슨 명분으로 주민들을 설득하겠나. 경제 발전을 안 하면 체제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북한은 지금 체제 생존에 대한 전략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북한이 번영해야 남한도 산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도 “북한이 핵을 버리면 위대한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연간 10% 성장한다는 것이 가능하겠나?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절대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정치 이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불편한 진실은 북한에 연 300억 달러(약 32조원), 10년간 3000억 달러의 경제개발기금이 필요하다. 인프라 건설, 인력자원 개발, 인력 동원 임금, 공공기관 설립, 개방의 부작용을 막을 사회보장제도 등에 필요하다.”

이처럼 천문학적 돈이 들어가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중국·일본이 부담할 것”이라고 휘갑을 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해결에만 관심이 있지 남북한의 공동 번영에는 관심이 없다. 내 생각에는 한국이 대부분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북한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가장 큰 수혜국은 한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큰돈을 내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에서 영향력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정치 이념 체제를 바꾸는 데 정책 목표를 둬야 한다. 김정은을 만나 ‘경제가 발전하려면 김일성주의를 버리고 정치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가 곧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은 아니다’고 전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편한 진실과 오해가 있다. 남북한의 평화 공존은 핵과 별개 문제다. 비핵화는 한반도 항구 평화의 필수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북이 핵 개발을 시작하기(1993년) 전에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 사건(1987년)은 왜 발생했나? 북이 핵 개발하기 전인 1983년에 아웅산 사태는 왜 발생했나?

북한의 국내정책이 대결적이고 적대적이기 때문에 대외정책도 적대적인 것이다. 국내정책이 알력·대결·적대를 조장하면 이는 곧 대외정책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고르바초프가 대외정책은 국내정책의 연장이라고 한 것이다. 이념이 구체화돼서 국내정책이 된다. 한국과 미국에 대한 적대정책이 바뀌려면 국내정책이 바뀌어야 하고 결국 이념이 바뀌어야 한다.

인도나 파키스탄에도 핵은 있는데 왜 미국이 선전포고를 안 하나. 그들의 체제가 알력과 적대관계를 조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해결이 안 되면 돈을 아무리 부어도 잠비아처럼 된다. 경제 성장을 할 수가 없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이렇게 착취 체제를 유지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지금 북한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 지을 때 노예 동원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144달러를 임금으로 주면 노동자에게 전달돼야 하는데 국가가 80%를 가져간다. 그런 체제에서는 경제 현대화는 불가능하다.”

경제 성장 이루면 주민들이 김정은 떠받들게 될 것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제시하는 남북경협계획, 신경제지도 구상에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진단하는가?

“그렇다. 핵을 포기하면 생존전략이 있어야 한다. 개혁·개방을 하면 불안정 요인이 대두된다. 그래서 덩샤오핑이 리딩 섹터(Leading Sector, 선도 부문)를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개방한 것이다. 북한에도 선도산업이 필요하다. 북한이 빨리 경제 발전을 하되, 그것이 체제 불안정 요인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생존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에 따라 우리가 도와줄 건 도와줘야 한다. ‘남한 입장에서 먼저 이득이 되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은 잘못됐다.”

체제 개혁이라는 것은 북한에서 주장하는 체제 보장과 상충되는 말 아닐까?

“체제 보장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외적인 보장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우리는 침략 안 한다. 너희와 수교한다. 인권문제 관여 안 한다’는 식이다. 내적인 보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생존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생존하려면 정상국가로 가야 한다. 경제 발전을 하지 않으면 핵이 없는 상태에서는 정당성의 근거가 없어진다. 경제 발전을 빨리 하려면 지금 체제로는 안 된다. 김 위원장이 불안정 요인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킬 방법을 찾도록 해야 한다.”

북한이 체제 변화를 꾀할 경우 내부 반발 가능성은 없을까?

“직업은 안전 보장과 직결된다.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어 길거리로 나서게 되면 체제 안정이 유지될 수가 없다. 중국처럼 경제 발전을 빨리 이루면 탈북민들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고도의 경제 성장을 하게 되면 주민들이 김정은 위원장을 덩샤오핑처럼 떠받들게 될 것이다.”

개혁을 하면 정말 달라질까?

“다섯 가지를 보면 개혁 여부를 알 수 있다. ▷공산주의 이념이 깨진다 ▷개인기업을 허용하면 국유화가 깨진다 ▷계획 경제가 안 먹힌다 ▷관료들의 통제가 깨진다 ▷자유가 있으니 전체주의가 깨진다.”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김 위원장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북한의 위기는 외적 침략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내적 모순에서 온다. 모순이 팽배해서 뿌리까지 잠식하는 것이다. 내적 모순이 점점 커지는데 핵을 100개 가져봐야 무슨 소용인가? 경제는 나빠지고 모순은 더욱 심해질 뿐이다. 개혁으로 내적 모순을 치유해서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으면 답이 없다. 핵 가지고 미국을 칠 건가? 그러면 북한은 지도상에서 없어질 텐데?”

트럼프 정부 이전 미국 정부의 북한 비핵화 정책 실패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중국·러시아·일본·한국, 이 나라들의 전략적인 이해와 우려가 다르다. 미국은 한반도의 항구 평화와 남북 공동성장에는 관심 없다. 비핵화가 목적이다. 중국은 비핵화가 북한의 붕괴로 이뤄지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비핵화로 한반도 안정이 깨지길 바라지 않는 것이다. 러시아도 같다. 중국과 러시아는 비핵화가 미국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당신네들(미국) 제재로 북한 붕괴 꾀하지 마시오’라고 말하고, 제재한다면서도 뒤로 북한을 도와준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도 북한이 비핵화돼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김정은 유고(有故) 사태 발생하면 한국도 파탄 날 것


▎2016년 10월 ‘한반도의 지속적·동태적 경제 발전을 위한 북한의 비핵화’라는 주제로 키메프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 도중 발언하는 방찬영 총장. / 사진:키메프대
중국의 한반도 정책과 북한의 핵 개발 정책 간에 내재하는 갈등과 불화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북한이 가장 껄끄럽게, 그리고 적대적으로 생각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북한은 중국이 배반했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 체제를 버렸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어떻게 남한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북한의 전략적인 목표와 중국의 전략적인 목표는 다르다. 중국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다섯 번 만나는 동안에도 김정은 위원장은 한 번도 만나지 않았었다. 또 중국에서는 핵실험하지 말라고 했는데 북한이 시 주석의 권위를 손상시켰다고 본다. 서로 간에 근본적인 불신이 있는 것이다.”

북·미 간 합의가 미 상원에서 비준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 찬성이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측 요구를 들어줄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것 아닐까?

“지금 상·하원의 인준을 받는다는 것은 미국 대통령이 바뀌어도 상·하원의 동의를 얻지 못 하면 협약을 깰 수 없다는 것이다. 의회 인준을 받는 게 중요한데 북한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나오느냐에 달렸다, 향후 6개월 내 진정성 있는 신호들이 나온다면 의회 비준을 받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김정은 유고 사태가 발생한다면 북한 내부 권력 투쟁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는가?

“북한에서 김정은이 죽는다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난다. 북한은 유고 사태가 생겼을 때 후계 승계와 관련된 제도적 장치가 없다. 승계를 언급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김정은 위원장 한 사람뿐이다. 김여정도 할 수 없다. 만일 유고 사태가 벌어진다면 당·군·행정에서 각각 3명씩 9명의 집단지도체제가 꾸려질 것이다. 그래도 정통성은 없다. 전체 주민의 10%인 250만 명만 한국으로 내려와도 난리가 날 거다. 한국의 증권시장은 그날로 날아간다. 그렇게 되면 통일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그 부작용이 진정될 때까지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그래서 북한 스스로 경제 발전을 한 뒤에 정치 통합을 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창하는데, 남쪽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왜 한국이 주도해야 하느냐, 우선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전략적 이해는 우리와 다르다. 각국의 이해를 조율해서 공동의 정책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우리에게 핵은 사생결단의 문제다. 그리고 비핵화를 넘어 항구적인 평화를 이뤄야 한다. 우리가 기획하고 돈도 제일 많이 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게 해야 영향력도 투사(投射)할 수 있다.”

文 대통령, 북에 생존전략 짜도록 촉구해야


방 총장께서 구상하시는 ‘단계적 이행’이란 무엇인가?

“마약중독자인 동생이 형을 찾아와 돈을 달라고 한다. 돈만 주면 마약을 끊겠지만 주지 않으면 형네 가족을 다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그랬을 때 덜컥 돈을 주면 어떻게 될까. 그보다는 먼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 의사에게 치료가 끝났다는 확인서를 받고 난 뒤에 동생을 도와줘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도 오래 걸리지만, 경제 발전도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다. 연간 300억 달러씩 지원하되 일부는 현금으로, 일부는 쿠폰 형태로 줘야 한다. 가령 북한이 ‘한국의 OO건설이 들어와서 발전소를 지어달라’고 요청하는 식으로. 이 모든 게 하루아침에 되지 않으니 포괄적 안(案)을 만들되 단계적으로 이행하자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이제 첫걸음을 뗐다. 성공의 길로 가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

“문재인 대통령이 해야 할 일 중 가장 시급한 것은 북한에 생존전략을 짜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북한에는 그런 전략을 짤 만한 훈련된 요원이 없다. 또 하나, 북한의 경제 발전이 남북 공생·공존에 왜 필요한지 적극 홍보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주변의 안보팀은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학자들과 전문가들을 모아서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핵은 민족의 생사가 걸려 있는 문제이자 역사적 과제다. 중지(衆智)를 모아서 객관적인 정책안이 나와야 한다. 경제에서 평화로, 결국 통일로 가는 것이다. 북한이 붕괴되는 건 통일의 길이 아니다.”

- 글 최경호·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201807호 (20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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