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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 특집 | 단독 인터뷰] 보수 재건 ‘역할론’으로 주목받는 이완구 前 국무총리 

“보수 지도층, 시대정신에 부합되는지 통렬히 반성해야”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당권 도전? 결코 자리 연연 않고 백의종군 선택…“보수정당, 제대로 통합하고 혁신하면 기회는 올 것”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정치적 행보가 주목받는다. ‘이완구 역할론’이 제기되면서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보수 재건의 기수(旗手)를 맡아 달라는 주문이 나온다. 월간중앙이 이 전 총리에게 보수 재건의 길을 물었다. 이 전 총리는 “보수 스스로 시대정신에 부합되는지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며 “보수 정당이 하나로 뭉치고 진정으로 반성한다면 기회는 다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6·13 지방선거에서 보수정당이 완패하자 ‘이완구 역할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4월 22일 대전 둔산동 박성효 자유한국당 대전시장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사진:김성태
이완구 전 총리와의 인터뷰는 ‘십고초려’(十顧草廬) 끝에 성사됐다. 월간중앙은 이 전 총리가 ‘성완종 리스트’ 관련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던 2016년 9월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다. 당시 이 전 총리는 “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았다고 해서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대법원 판결을 보고 이야기하자”며 정중히 고사했다.

그로부터 1년3개월 뒤인 2017년 12월 22일, 이 전 총리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성완종 리스트’ 관련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선고 직후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이 전 총리는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이렇게 호소했다.

“40년 공직생활을 했습니다. 국회의원 3선에 민선 도지사에 집권당 원내대표,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2015년 4월 14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3000만원 수수 의혹과 관련해)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습니다. 국민을 향해 선언한 것이죠. 만약 그런(금품 수수) 일이 있었다면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2년7개월의 터널을 거쳤습니다.”

울분을 토하면서도 이 전 총리는 끝내 인터뷰만은 사양했다. 하지만 이후 여러 차례 월간중앙과 주고받은 전화통화와 문자메시지를 통해 이 전 총리는 “기회가 되면 한 번 만나자”며 후일을 기약했다. 월간중앙은 6·13 지방선거 다음 날인 6월 14일 이 전 총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문무일 고소는 사법정의 위한 불가피한 조치


▎2015년 4월 21일 사의를 표명한 이완구 국무총리가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상념에 잠겨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로도 활동이 뜸했는데.

“활동을 안 했다고?(웃음) 정치인들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대체로 재론(再論)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지만 나는 지난해 12월 22일 무죄 판결 이후 경향신문과 소속 기자들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을 비롯한 당시 수사 검사들을 상대로도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또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검사 개인별로도 조만간 소송을 진행할 거다. 그리고 법률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재판 기록 전부를 우리나라 모든 법조인에게 배포할 생각이다. 그러면 이 재판이 어땠는지 알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재판 기록을 통해 정치검찰을 판단해 보라는 의미다. (재판 기록을 보면) 정치검찰의 전형적인 행태를 알게 될 것이다. 당시 수사본부장이었던 문무일 총장이 잘했는지, 검사들이 공익의 대변자로서 역할을 했는지 보게 될 것이다. 당대는 물론이고 후세를 위해서도 자신(검사)들 스스로 변명해 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법정의를 위해서 앞으로 다시는 이런 정치검찰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2015년 4월 자원외교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 후 성 전 회장의 옷 주머니에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라 불리는 메모가 발견됐고,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경향신문을 통해 공개됐다. 이 전 총리는 2013년 4·24 재·보궐 선거 당시 부여 선거사무소를 찾아온 성 전 회장에게 현금 3000만원이 든 쇼핑백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는 성 전 회장의 사망 전 인터뷰 녹음파일과 녹취서, 메모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유죄로 판단했다. 이에 법원은 이 전 총리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성 전 회장이 사망 전 남긴 전화 인터뷰 내용을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지난해 12월 대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성완종 족쇄’를 벗자 이 전 총리는 당시 수사팀을 이끈 문무일 검찰총장을 고소했다. 이 전 총리는 수사팀이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들을 숨겼다며 문 총장과 수사에 참여한 검사들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지방선거 때 ‘조용히’ 지원유세를 다녔다고 들었다.

“이번(6월 6일)에 심정우 여수시장 후보에게 다녀왔다(심 후보는 광주·전남 유일의 자유한국당 기초단체장 출마자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심 후보를 잘 모른다. 그런데 심 후보가 10여 일 전 나에게 전화해서 ‘당에서 전남지사·광주시장 공천을 안 하는 바람에 저 혼자 여수시장 공천을 받았습니다’라고 하소연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밤잠을 못 잤다. 그러면 2년 후 총선 때 우리 당에서는 광주·전남에 후보를 안 낼 건가? 4년 뒤 대선 때는 호남에 가서 뭐라고 말할 건가? 그래서 하루 시간을 내서 여수에 다녀왔다. 내가 당직은 맡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당 소속 전직 국무총리로서 ‘우리도 호남에 관심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릴 기회를 만든 것이다. 내 스스로 생각을 바꾼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홍준표) 대표가 호남에 갔어야 했다. 우리 당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광역단체장 후보 지원유세도 했는가?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 남경필 경기지사 후보를 비롯한 9개 광역단체장 후보에게 다녀왔다. 제천-단양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엄태영 후보를 비롯해 50개 기초단체장 후보도 찾아갔다. 다만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언론에) 말을 안 했던 거다. 그분(후보)들이 와달라고 해서 간 거지, 내 스스로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이완구 역할론? 특정인만으로 야권 신뢰 회복 어려워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015년 1월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실에서 야당 지도부와 만나고 있다. 왼쪽부터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안규백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수석부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백재현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박완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
보수가 너무 찌그러졌다.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기본적으로 너무 안주해 왔다. 또 오만하고 자만했다. 남북 관계, 새로운 세대의 진입 등 시대정신이나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이다. 우리 국민은 대단히 지혜롭고 현명하다. 어설픈 미봉책이나 대안 제시에 국민이 넘어가지 않는다. 진정성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또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사죄하고 변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변화를 몸소 보여줘야 한다. 이건 진보·보수를 떠난 문제다. 그런 측면에서 보수는 실패했다.”

‘이완구 역할론’도 나온다.

“역할론? 제 역할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것은 없다. 저뿐 아니라 특정인의 역할만으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권의 신뢰 회복은 쉽지 않다.”

지난해 당 대선후보였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방선거 다음 날인 6월 14일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홍 대표는 “우리는 참패했고 나라는 통째로 넘어갔다. 모두 내 책임”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자유한국당은 조만간 새로운 지도체제를 구성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따져보면 공과(功過)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열된 야권이 먼저 사심을 버려야 한다. 다 오십보백보다. 야권 분열의 책임을 허심탄회하게 인정하고, 총체적인 통합을 이뤄야 한다. 그래야만 야당 존재의 이유인 정부·여당 견제도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 못 한다면 야권의 존재 이유는 없다.”

당권에 도전할 생각은 없나?

“당권? 매우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지금 당권 다툼이나 하면 국민들 눈에는 그 사람이 그 사람으로 비치게 된다.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 싸운다면 누가 좋게 보겠나? 당권 도전보다는 화합·양보 속에서 야권 전체의 통합을 생각해야 한다. 당권 도전할 생각이 있냐고? 기본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이런 문제에서는) 한 발 비켜서고 싶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6·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보수 진영의 충격적인 참패를 목도(目睹)했다. 그런 마당에 자리를 목표로 (정치를) 하는 것은 적절치 못 하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당권을 다툰다면 국민이 우릴 어떻게 보겠나?”

보수 재건을 위해 하나의 밀알이 되겠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되는가?

“그렇다. 내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그(당권) 문제에 접근하고 싶지는 않다.”

야권 전체의 통합이라면 바른미래당도 포함되는가?

“물론이다. 통합해야 한다.”

文 정부, 국민 삶 안 챙기면 상상 못 할 심판 받을 것


▎2009년 5월 이완구 충남지사가 자전거를 타고 공주 시내 무령왕릉·공산성 등 문화유적을 둘러보고 있다.
이 전 총리는 3선 국회의원, 충남지사, 집권당 원내대표,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풍부한 국정 경험자로서 문재인 정부 1년을 평가해달라.

“국정은 복잡다단한 것이다. 남북 문제도 중요하긴 하지만 국정의 한 부분일 뿐이다. 민생·경제·복지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구성된 것이 국정이다. 문재인 정부가 1년 동안 남북 문제 등을 위해 고생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세계 경제는 호황 국면인데 우리만 뒤처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경제·민생·개혁·규제완화를 통해서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신경 쓰지 않으면 연말이나 내년에는 대단히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여권이 상상하지 못할 냉엄한 심판이 여권을 옥죌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향후 전망을 어둡게 본다는 것인가?

“대단히 어둡게 본다. 국민적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을 때 정부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서 여권에 협치(協治) 패러다임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맡았을 때 야당의 박영선·우윤근 원내대표와 협치를 했다.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생각해야 한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미국의 빌 클린턴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상대의 가치·이념을 상충적·대립적 개념으로 보지 않고 보완적 관계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치적(治績)을 쌓은 것이다. 지금 여권은 보수와 진보를 대립적 개념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다. 협치 속에는 진보·보수를 보완적 관계로 승화시킨다면 국정을 보다 원만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문재인 정부가 성공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 나라의 성공이다. 이건 보수·진보를 떠나서 진심으로 바라는 바다.”

다시 묻겠다. 보수가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겉으로만이 아닌 진정으로 반성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보수 진영의 사람들, 특히 지도자급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돌아봐야 한다. 내 생각·의식·가치관·이념·자세가 제대로 돼 있나, 시대흐름에 맞나, 내 판단의 기준은 제대로 돼 있나 통렬히 점검해야 한다. 시대흐름에 떨어져 있다면 바꿔야 한다. 젊은층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나 스스로 바꿔야 한다. 내 생각에 이상이 없는지, 무리는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런 것들이 전제되지 않는 피상적으로 ‘잘못했다’ ‘반성한다’는 말은 소용없다. 그 정도로는 돌아선 신뢰와 민심을 되돌릴 수 없다.”

보수에 다시 기회가 올까?

“어느 정당이나 총선·대선을 통해서 정권을 잡는 것이 목표 아닌가. 단, 앞서 말했던 것처럼 통렬한 반성을 통해 신뢰를 회복했을 때를 전제로 한다. 말처럼 쉽진 않다.”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국민을 위한 것이다. 정파에 매몰돼서 갈등하고 다투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 여야가 협치를 통해 국민적 신뢰를 받았으면 좋겠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1807호 (20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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