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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인터뷰] 평창올림픽 ‘빙속 여제’ 고다이라 나오 

“몸·스피드·마음 조화 이룬 스케이팅이 궁극의 목표” 

도쿄=글·사진 정영재 중앙일보 스포츠 선임기자
이상화가 다시 운동 시작해 기뻐, 나 자신 위해 스케이트 타기를…인생 목표는 늘 웃으며 사는 것, 좋은 사람 만나면 결혼하고 싶어

▎고다이라 나오가 도쿄국제포럼에서 진행된 월간중앙과의 인터뷰 도중 평창올림픽 당시 이상화의 레이스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일본 팬들을 진정시킨 ‘쉿’ 동작을 재현해 보이고 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의 최고 명장면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이 여자빙속 500m에서 2위를 한 이상화(29·한국)가 우승자 고다이로 나오(32·일본)의 품에 안겨 펑펑 울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까. 바늘로 찔러도 피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이상화는 경기 직전까지도 “그 친구”라고 부르던 고다이라를 향해 ‘본심’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여왕’ 자리를 놓고 오랫동안 경쟁해 온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서로 전통 과자를 보내주고, 택시비를 내주고, 심지어 힘들어서 눈물 흘릴 때는 함께 울어주기도 한 친구 사이였다.

고다이라는 평창올림픽 빙속 500m에서 36초94의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환호하는 일본 응원단을 향해 고다이라는 오른손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음 조에서 준비 중인 이상화를 위해 자제해 달라는 뜻이었다.

이상화는 37초33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2010년 밴쿠버와 2014년 소치에 이어 이 종목 올림픽 3관왕을 노리던 아름다운 도전이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경기가 끝난 뒤 놀라운 장면을 연출했다. 마치 친자매처럼 다정하게 껴안고 링크를 함께 돌았다. 진정한 스포츠 정신은 국적과 라이벌 의식을 뛰어넘는다는 걸 보여준 명장면이었다.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 기자는 한번은 꼭 고다이라를 만나고 싶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일본 언론조차 인터뷰하기 어렵다던 그를 만날 수 있었다. 6월 8일 도쿄역 근처에 있는 도쿄국제포럼 내 커피숍에서 고다이라와 인사를 했다.

고다이라는 이날 저녁 도쿄국제포럼에서 열리는 평창올림픽 선수단 해단식에서 일본선수단의 주장 자격으로 금메달을 받는다고 했다. ‘남자 피겨 영웅’ 하뉴 유즈루가 은메달을 받는다고 해서 “하뉴보다 더 높네요”라고 덕담을 건넸더니 웃음으로 답했다. 그는 조용하고, 단아하고, 품위가 있었다.

“내 행동은 퍼포먼스가 아닌 마음”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가 2월 18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오벌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요?

“오늘 같은 시상식에 참석하거나 그동안 도움받았던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지냅니다. 훈련도 올림픽 시즌 때와 거의 비슷한 정도로 합니다. 저는 훈련하는 게 쉬는 거고, 그게 가장 만족스럽고 편하거든요.”

고다이라 선수를 만난 분들은 주로 무슨 얘기를 하시나요?

“평창 때 그 장면이 너무 감동적이었다면서 언제나 이상화와 세트로 얘기를 합니다. 일본에 대해 호감 갖는 한국 분들이 좀 많아지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식당에서 밥값을 안 받겠다고 하거나 초밥집에서 서비스를 많이 주기도 합니다.”

한국에 가면 그런 대접을 더 많이 받을 것 같네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는 불고기·순두부찌개·비빔밥·잡채·부침개 등 한국 음식은 다 좋아해요. 매운 것도 잘 먹죠.”

이상화 선수 바로 앞 조에서 뛰어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죠. 환호하는 일본 관중을 향해 “쉿”하고 조용히 해줄 것을 부탁했는데 어떤 이유에서 였나요?

“냉정하게 나를 컨트롤했어요. 왜냐하면 제 레이스가 끝난 뒤 2개 조가 남아 있었잖아요. 전 기본적으로 레이스가 끝난 뒤 세리머니 하고 기뻐하는 걸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모든 선수가 공정하게 자기 전력을 다해야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온다고 보거든요. 내가 끝났다고 해서 자기 감정을 폭발시키는 건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고 해서 너무 기뻐하진 않았어요.”

그렇지만 일본에서 온 팬들 입장에서는 고다이라 선수의 좋은 기록에 기뻐하고 환호할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요? 굳이 그걸 자제 시켜야 했을까요?

“그 말씀에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렇지만 스포츠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건, 선수입니다. 저를 응원하러 온 관중이 기뻐하고 환호하는 순간을 억제시켰다면 약간 미안하기도 하고 슬픈 마음도 있지만 이 행동에 대한 후회는 하나도 없어요. 왜냐하면 올림픽은 선수를 위한 무대이고, 선수 위주로 해야만 성공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올림픽 자체가 실패했을 겁니다.”

이상화가 어떤 레이스를 해도 난 이길 거라는 자신감의 표현은 아니었나요?

“사실 그 순간 상화한테 이긴다, 진다 그런 생각은 안 했어요. 이길 수 있는 타임이라 생각도 안 했고요. 다만 자신감이 있었다면 내 기록에 대한 만족, 내가 가진 것을 다 발휘했다, 금메달이든 은메달이든 상관없다 그런 마음이었죠.”

혹시 이상화의 레이스를 보면서 어느 정도 기록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나요?

“전혀 안 했어요. 내 레이스가 끝났기 때문에 오히려 스케이트 하는 친구를 응원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인터뷰 도중 사진 촬영을 위해 “쉿” 장면을 재현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웃음을 지으며 포즈를 취한 뒤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데, 이건 퍼포먼스가 아니었어요.” 그럼 무엇이었냐고 묻자 한마디 대답이 돌아왔다. “고코로(마음).”

레이스를 끝낸 이상화 선수가 울면서 고다이라 선수에게 안겼는데요.

“올림픽이나 국제 대회에서는 경기가 끝나면 최선을 다한 선수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기뻐하고 격려하는 시간이 있어요. 제가 1000m에서 은메달을 땄는데 그런 시간이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500m가 끝나면 내가 2등을 하든 3등을 하든 이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상화 선수와는 어떤 얘기를 나눴나요?

“언론에 나온 대로 ‘잘했어’ ‘난 널 존경해’ 그런 말을 했죠. 참, 시상식 전에 상화가 제게 영어로 ‘나 울 것 같아’라고 했어요. 제가 ‘울지 말고 웃으면서 시상식 맞이하자’면서 어깨 마사지를 해줬어요. 그 덕분인지 상화도 웃고 모두가 웃으며 마무리할 수 있었지요.”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두 선수의 아름다운 우정처럼 한·일 관계가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두 선수의 이런 모습이 껄끄러운 양국 관계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일본과 한국은 문화가 다르고 생각도 다르잖아요. 또 모든 분이 그 장면을 보고 호감을 느낀 건 아닐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런 일이 마음의 스위치,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스위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스포츠맨십 또는 올림픽 정신은 뭔가요?

“쓰는 말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른 사람들이 스포츠라는 공통적인 뭔가를 통해 교류하고 마음이 통한다, 그게 매력적인 거죠. 상대를 이기려고 경쟁하기보다는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면서 스스로를 높이는 게 스포츠 정신이 아닐까요?”

‘이게 바로 스포츠의 힘이구나’라고 느낀 적이 있나요?

“이번 평창올림픽 현장에서 그랬어요. 한국·일본 상관없이 마음이 하나가 됐고 “상화 상화” “나오 나오” 연호가 번갈아 터져 나왔어요. 이런 게 스포츠의 힘 아니겠어요.”

평창올림픽을 끝으로 은퇴선언을 할 것 같았던 이상화는 다시 선수 생활을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제주도에서 몸 만들기에 들어간 이상화를 지난 5월 말에 만났다. 인터뷰 기사(중앙SUNDAY 6월 2일자)를 보여주고 메인 제목(이상화 “근육 유지하려 사이클”… 고다이라와 또 격돌?)을 일본어로 읽어줬더니 고다이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상화 선수가 은퇴를 안 한 게 고다이라 선수한테 자극을 받아서가 아닐까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상화가 다시 시작한다니 기쁩니다. 상화가 아직도 스케이트를 좋아하고 승패나 결과를 떠나서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 좋아요. 기록이나 성적이 안 좋으니까 부끄럽다, 그만둘 거야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이상화 선수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있고 뚜렷한 동기 부여도 되지 않아 마음이 좀 복잡한 것 같던데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상화 자기자신을 위해서 즐겁게 스케이트를 탔으면 좋겠어요.”

이상화 선수와 유독 잘 통하는 것 같은데 특별히 가까워진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세계 무대에 처음 도전했을 때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상화와 같은 대기실을 썼어요. 상화와 더 친해지려고 한국어를 배웠고 커뮤니케이션을 더 잘할 수 있게 됐죠. 제가 2013년 링크에서 넘어지고 성적이 나오지 않아 울고 있을 때 많은 친구가 다가와서 격려해 줬어요. 그렇지만 함께 울어준 친구는 상화뿐이었죠. 그때 많이 고마웠어요.”

유키 코치 “고다이라는 철학이 있는 선수”


▎고다이라가 한국의 목재 장인 사광성씨가 만든 나무축구공 선물을 들고 러시아월드컵 한·일 양국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다. / 사진:정영재
유키 마사히로 코치는 인터뷰 내내 고다이라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나가노현에 있는 신슈 대학 교수인 그는 고다이라가 이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지금까지 14년간 지도해 왔다. “매우 심심해 하는 것 같다. 졸린 표정”이라고 농담을 던진 뒤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는 사무라이 칼 쓰듯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고다이라는 어떤 사람인가요?

“스나오("キ"ネ"ィ·素直).”(스나오는 순진·소박·진지·솔직 같은 의미라고 한다)

고다이라 선수가 30대에 전성기에 들어선 비결이 뭘까요?

“철학.”

무슨 철학이죠?

“생각. 사고방식.”

어떤 사고인가요?

“보통 선수들은 트레이닝·멘탈·심리학 등을 기술적으로만 배웁니다. 그걸로는 30세가 넘어서 결과를 낼 수 없죠. 고다이라는 자기 인생에서 스케이트가 어떤 의미고 이 타이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선수입니다.”

일본에서는 빙상 선수들이 생활 걱정 없이 운동을 할 수 있나요?

“2014년 소치올림픽 이후 일본빙상연맹에서 대표팀을 만들었죠. 거기 들어간 특급 선수들은 환경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거기에 못 들어간 1.5군 선수들은 그만큼 힘들어졌고요.”

고다이라는 유키 코치와 헤어질 수 없어서 대표팀에 들어가지 않았고, 그 바람에 경제적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고 한다. 다시 고다이라에게 질문했다.

선수로서 황혼기인 20대 후반에 네덜란드 유학을 갔죠?

“대학 때부터 가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27세 때 선수 인생의 마지막 기회다, 이 기회 놓치면 안 되겠다 생각했어요.”

거기서 상체를 세우는 ‘성난 고양이 주법’을 배웠죠?

“신체적으로 네덜란드 사람과 달라서 스피드가 안 올라갔어요. 적응이 잘 안 돼 체력적·기술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일본으로 돌아와서 유키 코치와 세심한 부분을 조율하고 가다듬으면서 기록이 좋아졌죠. 사실 성난 고양이 주법은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마음가짐입니다.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고, 마음을 독하게 먹고. 제가 원래 좀 착한 성격이라서 마음가짐만이라도 성난 고양이처럼 간단하게 가자고 생각한 거죠.”

네덜란드에선 창밖에 보이는 조랑말이 유일한 친구였다던데요.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과 대화를 많이 했어요. 조랑말과 동물들한테 ‘오늘 날씨 좋네’ 말을 걸기도 했죠. 네덜란드어를 좀 익히면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스케이트를 잘하기 위해 영양학과 해부학도 공부했다지요?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걸 해결하기 위해 영양학을 공부했어요. 해부학은 더 나은 스케이팅 폼을 만들기 위해 사진집을 보는 것처럼 들여다본 거죠.(웃음)”

“후회 없는 생을 살고 싶다”


▎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500m 경기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한 고다이라 나오와 이상화.
빙상 선수로서 향후 목표가 있다면?

“하나는 상화가 갖고 있는 500m 세계기록(36초36)을 깨는 겁니다. 더 본질적인 것은 ‘궁극의 스케이팅’을 하는 것이죠. 몸의 움직임, 스피드·마음,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최고의 감각을 느끼고 싶어요. 아직 그걸 느껴본 적이 없거든요. 그게 된다면 기록도 당연히 좋아지겠죠.”

인생의 목표는요?

“내 주위 사람들이 언제나 웃음이 넘치는 후회 없는 생을 사는 겁니다.”

그 목표를 위해 스케이팅 외에 뭔가를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중에 결혼도 있어요?

“물론이죠. 좋은 사람 있으면 결혼도 할 겁니다. 그런데 아직 그런 사람을 못 만났어요.”

고다이라는 1998 겨울올림픽이 열렸던 나가노현 출신이다. 그는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 있는 아이자와병원 소속이다. 이 병원의 스포츠 장애 예방센터 직원이지만 병원에서 근무하지는 않는다. 대학 졸업 후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던 고다이라를 아이자와 다카오 이사장이 후원하게 됐다.

아이자와 이사장은 “올림픽 개최 도시인 나가노 출신 스타 선수가 훈련과 경기 출전에 어려움을 겪는 건 안 될 일”이라며 고다이라를 돕기로 했다. 고다이라는 대졸 사무직원 급여를 받고 주거 비용과 원정 경비 등을 지원받았다. 그녀는 모든 경기를 ‘장기 출장’이란 이름으로 출전한다. 병원 직원은 물론 환자들도 고다이라의 팬이다. 그는 대회가 끝나면 메달을 걸고 병실을 돌며 환자와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으니 형편이 좀 풀리지 않았는지, CF도 좀 찍었는지 물었다. “여기저기 강연은 많이 했는데 CF 찍은 건 없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상화 선수는 CF 많이 찍었으니 두 사람이 함께 아이스크림 광고 같은 데 나가면 어떨지 물었다. “아이스크림이요? 와, 좋은 아이디어네요. 저는 초코민트 좋아해요”라고 대답하는 고다이라의 표정이 어린아이처럼 구김살이 없어 보였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고다이라에게 나무축구공을 선물했다. 한국의 목재 장인 사광성씨가 32개의 나무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것이다. 여기에 레이저를 쏘아 “쉿” 장면 사진과 ‘KODAIRA NAO JAPAN-KOREA FRIENDSHIP FOREVER!!’라는 문구를 새겼다. 고다이라가 “아리가토고자이마쓰(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진정 어린 감사를 표현했다. 순수하고 속 깊은 사람이었다.

- 도쿄=글·사진 정영재 중앙일보 스포츠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201807호 (20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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