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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취임 1년,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고민과 해법 

‘J노믹스’ 조타수, 혁신성장에 명운 걸었다?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장고 끝에 친(親)기업 소통행보로 경제회생 돌파구 모색…문 대통령도 기업 기(氣) 살리기 주장한 김동연에게 힘 실어줘

경제악화의 책임을 놓고 청와대 경제팀과 엇박자를 내면서 한때 ‘패싱’ 논란까지 불렀던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기업들과 소통을 강화하며 강력한 혁신성장 드라이브로 돌파구를 찾아 나섰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현안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 부총리는 ‘혁신성장’으로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경제의 사령탑이다. 거시경제는 물론 실물경제까지 책임을 맡고 있다. 하지만 6월 9일로 취임 1년을 넘긴 김동연(61) 부총리의 표정은 밝지 않다. 경제성장률이 3%대를 유지하며 거시경제 지표는 어느 정도 양호한 수준이지만 달러화 강세로 글로벌 경제환경이 좋지 않은데다 내수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김 부총리는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을 대표하는 ‘J노믹스’의 조타수다. ‘J노믹스’는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문재인 정부의 3대 경제정책 기조가 핵심이다. 특히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론은 저소득층의 가계소득을 증대시켜 소비를 촉진시킴으로써 내수 활성화 및 경제성장을 추구하자는 것으로 문재인 청와대가 주도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경제상황이 날로 악화되는 추세다. 의욕적으로 추진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 극심한 일자리 감소와 자영업자 퇴출로 이어지면서 경제를 책임진 김 부총리의 어깨만 무거워진 형국이다.

실제 지난 5월의 취업자 수 증가폭은 10만 명도 안 되는 7만 명대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나 김 부총리도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청년 실업률도 역대 최고 수준을 경신하고 있다. 김 부총리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진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일까. 취 1년을 전후해 김 부총리를 만나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경제 관료로서는 이례적으로 종합편성채널과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경제상황을 국민에게 설명할 정도로 적극성을 보여 왔던 김 부총리는 유독 주요 신문과 지상파방송 등 기성언론과의 인터뷰 요청은 거절해 온 터였다.

경제는 심리에 좌우된다. 정부 정책의 작은 변화 하나에도 시장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경제부총리의 의중과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실무진과 협의한 끝에 일정이 공개된 부총리의 일정에 동행하기로 했다.

김 부총리의 취임 1년을 하루 앞둔 6월 8일, 김 부총리가 혁신성장의 현장을 찾아 기업을 격려하기 위해 신세계의 유통매장인 ‘스타필드 하남’을 방문한다고 했다. 스타필드 하남은 지난 2016년 9월 문을 연 후 불과 4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설 정도로 성공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30대 기업 중에서 신세계는 지난 5년간 고용증가 1위를 기록 중이다. 올해 1월부터는 유통업계 최초로 주 35시간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고용문화에 있어서 모범적인 기업일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실천하고 있다는 기재부의 설명이 뒤따랐다. 당장 경기도 하남으로 달려갔다.

혁신경제 현장 찾아 격려한 경제부총리


▎스타필드 하남을 방문해 인공지능 로봇 ‘페퍼’를 체험하는 김동연 부총리. 맥주의 라벨을 인간형 로봇인 페퍼의 눈에 내장된 카메라에 갖다 대면 안주정보는 물론 맥주와 궁합이 잘 맞는 안주까지 추천해 준다.
오후 3시, 김 부총리가 복합쇼핑몰 스타필드하남의 1층 로비에 들어섰다. 중소기업·유통담당 기자들은 물론 세종시에 있던 기재부 출입기자들도 버스를 타고 도착했다. 기재부가 대외적으로 알리고 싶은 의지가 실렸다고 볼 수 있는 행사였다. 김 부총리가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었다.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에 처음엔 연예인이 온 줄 알고 몰려들었던 젊은층들은 금방 자리를 떴다. 스타필드에서 애견용품을 구매했다는 한 쇼핑객도 “경기도 좋지 않은데 장관이 왜 왔느냐?”며 주차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하지만 김 부총리의 표정은 전에 없이 밝았다. 그는 정용진(50) 부회장의 안내를 받아 지하 2층에 있는 대형 할인매장인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찾았다. 자율주행이 가능한 스마트카드 ‘일라이’와 쇼핑 도우미 로봇 ‘페퍼’가 대기하고 있었다. 신세계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제품과 로봇이다. 김 부총리가 맥주의 라벨을 인간형 로봇인 페퍼의 눈에 내장된 카메라에 갖다 대자 안주정보는 물론 맥주와 궁합이 잘 맞는 안주까지 추천해 주었다. 김 부총리는 “물건을 많이 사도록 만든다”며 감탄했다. 페퍼는 사용자의 얼굴을 인식해 나이를 맞히는 기능도 있다. 페퍼가 “고객님의 나이를 맞추어드립니다”고 하더니 김 부총리의 나이를 45세로 인식했다. 김 부총리의 나이는 61세다. 김 부총리는 “미리 나이를 적게 입력해 놓은 게 아니냐?”며 허허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경제부총리의 파안대소였다.

김 부총리는 특히 ‘스타트업 스페이스’ 매장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스타필드 하남과 청년창업사관학교가 공동 기획한 편집숍이다. 스타트업 창업자 8명이 입점해 있는데, 1년 동안 비즈니스를 한 뒤 다른 창업자 후배에게 물려준다고 했다. 임대료나 관리비를 받지 않고 청년과 창업자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공간이다. 김 부총리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대기업들이 스타트업 기업, 중소기업과 상생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앞으로 우리 경제가 지속가능하게 나아가는 데에 아주 중요하다. 혁신은 이처럼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상생하면서 윈윈하는 것이다”고 격려했다. 김 부총리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는 현장을 1시간 동안 둘러본 뒤 스타필드하남 2층 다목적 홀에서 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호스트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업운영의 애로점을 건의했다.

“이렇게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시고, 각종 규제개혁 등 저희가 하는 기업 활동에 도움이 되는 여건조성에 힘써주셔서 감사드린다. 유통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불확실한 경제 상황도 문제이지만 모바일 혁신과 해외 직구 시장의 빠른 성장, 1인 가구의 증가 등 고객들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 항상 절박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룹 임직원들에게 상품서비스의 전반적인 혁신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 돌아보신 현장은 고객들에게 새롭고 혁신적인 경험을 제공하려는 저희 고민의 산물이다.”

“기업의 주요 행사에 대통령 참석 건의”


▎김동연 부총리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왼쪽). 김 부총리의 혁신성장 드라이브에 정 부회장도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혁신성장이 절실하다”며 힘을 보탰다. / 사진:연합뉴스
정 부회장의 말을 주의 깊게 듣던 김동연 부총리가 말문을 열었다. 기업들과 소통을 강화하는 현장에서 그는 기재부 정책의 변화를 시사하는 중요한 몇 가지를 내놓았다.

“지난 1년 동안 우리 경제가 거시경제 쪽으로는 비교적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금년에 2년 연속 3%대 성장과 그동안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던 대내외적인 여러 가지 위험요인들을 나름대로 관리하는 시간이었다.” 예의 경기회복이 이어지고 있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다음 대목에서 김 부총리는 당면한 우리 경제의 어려움에 대해 솔직히 시인했다.

“경제 운영에 있어서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화두는 일자리 문제다. 여러 가지 거시적인 경제운용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고용부문은 금년 들어 상당히 우려되는 지표들이 보이고 있다. 금년 상반기 중에 우리가 10만 명 후반대의 고용 증가를 예상하고 있는데, 이 숫자는 작년에 우리가 경제운용을 짤 때의 숫자보다 제법 차이가 난다.”

정부가 지난해 예상한 올해 취업자 증가 목표는 32만 명이었다. 현재로서는 목표의 절반도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솔직한 토로였다. 기자들이 술렁였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위원회까지 만들어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고용은 갈수록 악화 추세다.

김 부총리는 고용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기업과 시장(市場)에 도움을 요청했다. “일자리는 시장과 기업에서 창출되는 것이다. 시장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 서비스부문 일자리 창출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신세계의 일자리 창출 노력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스타필드하남에는 신세계의 300여 개 협력업체와 470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이후 간담회는 비공개로 전환됐다. 김 부총리와 협의를 마친 신세계는 이날 저녁 “3년간에 걸쳐 9조원을 투자해 매년 1만 명을 고용하겠다”며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김 부총리가 한숨 돌릴 만한 낭보였다.

김 부총리는 이날 기자들 앞에서 ‘혁신성장’으로 경제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그는 “혁신성장과 관련돼서 오늘 아침 8시에 관계장관 회의를 열었다. 정부가 혁신성장을 추진해왔지만 보다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가속화시키기 위해 정책역량을 집중하겠다. 특히 기업을 옥죄는 규제는 빠른 시간 내에 개선, 혁파하겠다. 앞으로 대기업이건 중견·중소기업이건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의 투자에 있어서는 정부가 획기적으로 규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며 ‘혁신성장 드라이브’를 예고했다.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각종 행정 규제를 완화해 투자를 유도하고, 기업의 고용창출에 기대를 걸어보겠다는 것이다. 특히 해외는 가능하지만, 우리나라만 안 되고 있는 규제 개선안을 9월 말까지 마련하겠다고 시한까지 정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자신이 주도하는 혁신성장에 문재인 대통령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정황을 기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밝혔다.

“마침 오늘 오전에 대통령께 정기보고 하는 날이어서 여러 가지 사안 보고 중에 ‘혁신성장’에 대해 보고말씀 드렸다. 특히 기업들과의 소통에 대한 이제까지의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드렸더니 대통령께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장려해주셨다. 계속해서 기업과의 소통을 저뿐만 아니라 경제부처 장관들과 경제부처가 해달라는 말씀 해주셨다. 오늘 여기에 온 것도 말씀드렸고, 대단히 흥미를 가지고 기업들과 소통을 적극 지원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앞으로 기회될 때마다 준공식과 기공식, 또는 격려가 필요한 곳에는 가겠다고 하셨다.”

“매월 초마다 대통령에게 대면보고 한다” 공개

김 부총리가 대통령에게 매달 초에 직접 경제상황을 대면 보고한다고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관가와 언론에서 논란이 됐던 ‘김동연 패싱’ 논란을 일축하고자 하는 뜻으로 비쳐졌다. 기재부에 확인해보니 문 대통령과 김 부총리와의 면담은 경제 현안과 관련해 올해 여섯 번째 대면보고라고 했다. 다음 날 신문들은 일제히 문 대통령이 김 부총리에게 “기업 기를 살리고 규제혁신에 속도 내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김 부총리는 혁신성장을 위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전국의 주요 도시에 설치된 ‘창조경제센터’를 활용하는 문제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해 답을 받아냈다고 했다. 그는 “혁신성장을 하는 데 있어서 전국에 있는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지방의 혁신센터의 교두보로 활용하는 건의에 있어서도 대통령께서 흔쾌히 수락하셨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중심으로 지역에 대한 혁신성장에도 매진해 줄 것을 당부하셨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가 광역시·도별로 창조경제 혁신센터를 설치했지만 문재인 정부 이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향적인 조치다. 아직까지 적폐청산 기조가 강한 청와대 경제팀의 학자들 입에서는 나오기 힘든 발언이기도 했다.

김 부총리가 이날 강조한 혁신성장 추진과 창조경제혁신센터 활용은 장고 끝에 내놓은 고민의 결과다. 지금의 소득주도 성장전략으로는 산적한 경제 현안을 풀어내기 어렵기에 혁신성장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복안이다. 김 부총리는 “일자리나 사회안전망 구축이 혁신 성장을 통해 창출해야 한다. 양극화 해소, 분배해소가 우리 경제 전체의 수요를 진작하고 이것이 투자를 유발하고 경제 불륨이 커지면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맞춤형 대책을 하겠지만 대기업 등 우리 경제 주체가 신경 써주셔야 한다”며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김 부총리의 혁신성장 드라이브에 정용진 부회장도 “그룹의 성장을 위해서나 불확실한 우리 경제를 위해서도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혁신성장이 절실하다”며 힘을 보탰다.

기재부 내에 ‘혁신성장본부’ 설립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김동연 경제부총리(왼쪽), 임종석 비서실장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김 부총리에게 “기업 기를 살리고 규제혁신에 속도를 내라”며 김 부총리의 혁신성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기재부에 따르면, 혁신성장에 대한 김 부총리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한다. 김 부총리는 이틀 뒤인 6월 10일에는 “혁신성장 성과창출을 위해 기재부 전체가 역량을 집중하라”고 기재부 차관들에 지시를 내렸다.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어 투자가 일어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기재부 전체가 혁신성장 업무를 내일처럼 주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혁신성장본부’를 설립해, 혁신성장 정책의 추진속도를 더욱 높일 예정이다. 기재부 1차관이 본부장을 맞고, 선도사업1팀, 선도사업2팀, 규제혁신·기업투자팀, 혁신창업팀 등 4개TF팀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기재부 내 핵심인력들이 전임으로 배치되고 민간전문가와 경제단체 기업 등도 참여한다.

혁신성장본부 운영의 원칙도 밝혔다. 해결이 시급한 일자리 창출이나 국민 삶 개선 분야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나오도록 하는 것, 기재부 전체 가용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는 등 업무방식의 혁신을 가져오는 것이 원칙이다. 김 부총리의 뜻에 따라 기재부 2차관 주도로 예산실, 세제실, 재정관리국, 공공정책국, 국고국 등 기재부의 다른 실국도 혁신성장 업무를 중점 추진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공공정책국은 공공기관의 수요창출, 선도·실증사업 참여 등을 유도해 민간부문의 혁신성장을 지원하는 방안을 찾도록 한다. 김 부총리는 혁신성장에 필요한 노동시장 구조개선과 주력산업 경제력 제고도 담당과에서 차질 없이 준비하도록 강조하는 한편,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해 취약계층 소득 증대, 분배개선, 노동관련 이슈 대응 등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이쯤 되면 기재부의 거의 모든 부처에 총동원령이 내려진 셈이다. 김 부총리가 혁신성장에 명운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김 부총리는 그동안 경제학자들 중심인 청와대 경제라인과 엇박자를 내는 것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장하성 정책실장 이하 경제수석·사회수석, 그리고 경제보좌관·과학기술보좌관까지 대부분 대학교수 출신이다. 이들이 소득주도 성장과 근로시간 단축을 주도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 현장과 동떨어진 아마추어 정책이라는 비판이 시장과 기업에서 일었지만 청와대는 요지부동이었다. 김 부총리가 그 중간에서 마음고생을 하는 모양새였다. 그런 그가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듯 혁신성장으로 성과를 내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 것으로 읽혔다.

김 부총리는 외유내강 형이다. 뚝심이 있다는 평이다. 옛 덕수상고를 졸업한 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한국신탁은행에 취직해 주경야독했다. 야간대학(현 서경대)을 다녔다. 흙수저 출신인 그는 은행을 다니던 1982년, 25세 나이에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한 그는 기재부 예산실장과 기재부 2차관, 국무조정실장 등 요직을 거쳤다. 2015~2017년에 아주대 총장으로 있다가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경제부총리에 취임했다.

적극적인 파이팅과 강단 있는 모습도


▎경제현안간담회에서 인사를 나누는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왼쪽). 일부 경제 현안에서는 엇박자를 내면서 ‘김동연 패싱’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 사진:연합뉴스
전형적인 경제관료 스타일이지만 필요할 때는 적극적인 파이팅과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 5월 29일에는 청와대 가계소득 동향 점검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 상황을 악화시켰다며 ‘작심 발언’을 했다. ‘2020년에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한다’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과 관련해서도 최저임금 속도 조절과 재검토 필요성을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과감행보도 간혹 보여 왔다. 5월 17일에는 악화된 경제 문제에 대해 직접 방송에 나가 국민에게 설명하고 소통해야 한다며 JTBC 시사예능 프로그램인 [썰전]에 출연했다. “정부의 1년간 경제 운용 점수로 등급을 매길 수 없는 ‘I학점’(불완전을 뜻하는 영어단어 Incomplete)을 주면서 최고학점인 A학점을 받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방송 출연은 김 부총리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경제부총리가 시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기재부 역사상 처음이다. 김 부총리는 TBS 라디오방송 [김어준의 뉴스 공장]에 6주마다 출연 중이다. 긍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생존과 처신에 능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수도권에만 방송되는 TBS 고정 출연을 놓고서는 대중적 인기를 노리고 특정 지지층에 좋은 인상을 주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고 한다. 여의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부총리의 행보가 미래에 ‘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김 부총리는 이 같은 시선에도 괘념치 않는 모습이다.

“기업들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 기대” 밝혀


▎집무실의 김동연 부총리. 재계에서는 김 부총리의 혁신성장 드라이브의 성공여부는 역설적으로 김 부총리에게 달려 있다고 본다. / 사진:청와대홈페이지
김 부총리의 진짜 속내는 뭘까? 소득주도 성장 기조는 문재인정부도 지지층을 의식해 공개적으로 포기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때문에 적극적인 친(親)기업 행보를 통해 기업 투자를 유도하고 혁신성장으로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전략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특히 시급한 현안이 일자리 문제다. 김 부총리가 공개적으로 “충격적이다”고 할 정도로 심각하다. 김 부총리는 6월 15일, 급격히 악화된 고용상황과 관련해 고용관련 긴급 간담회를 갖고 “저를 포함한 경제팀 모두가 책임을 느낀다. 정부가 그간 일자리 창출 노력을 기울였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고용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국민이 우려하는 바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일자리 문제의 해결대책으로 “소득분배 악화 문제와 연계해 고령층, 영세 자영업자, 임시일용직, 일부 도소매 숙박업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내수 활력 제고 노력을 강화하겠다. 시장에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필요한 각종 규제 혁신, 재정·세제 지원, 노동시장 구조개선에도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수정하지 않는 한 뾰족한 타개책을 찾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더구나 6·13 지방선거의 완승으로 기존 경제정책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이다. 정부의 재정투입은 한계가 있기에 결국 규제완화를 통한 기업의 투자와 고용창출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김 부총리가 6월 15일 “그간 정부가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 역할을 하려고 노력을 해왔지만 기업과 시장에 대한 ‘펌핑’이 부족해서 일자리 창출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고 말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이다. 경제부총리의 이 같은 주문과 호소에 기업들은 어떻게 응답할까? 김 부총리는 지난해 12월 LG그룹, 올해 1월 현대차그룹, 3월 SK그룹을 찾은 바 있다. 6월에 찾은 스타필드하남처럼 김 부총리가 앞으로 방문하게 될 기업들의 혁신경영 현장, 기공식이나 준공식 현장의 분위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 부총리는 경제 컨트롤타워로서 지난 1년간 주요 경제 정책과 관련한 당·정·청의 이견을 주도적으로 조율하지 못해 ‘패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때문에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에 혁신성장과 관련해 문 대통령이 김 총리에게 힘을 실어 준 것을 놓고 이제야 비로소 김 부총리에게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동안 대기업들의 경제현장마다 혁신성장의 메아리가 울릴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재계에서는 김 부총리의 혁신성장 드라이브의 성공여부는 역설적으로 김 부총리에게 달려 있다고 본다. 과거 정부들의 사례처럼 규제개혁을 통한 기업투자 독려가 진정성 없이 관료들이 살아남기 위한 ‘전시행정’에 그친다면 기업인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김 부총리의 행보를 관심 있게 눈여겨볼 일이다.

-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na.kwonil@joongang.co.kr

201807호 (20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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