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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화제] JY(이재용) 복귀 후 달라진 삼성 

과감한 결단, 광폭 행보 미래 동력 확보 기대감 고조 

신희철 서울경제 기자
‘초일류 삼성’ ‘신뢰 회복’ 키워드, 하나도 둘도 차세대 먹거리 고민…오락가락 정부 방침에 바이오 사업에 대한 글로벌 신뢰 붕괴 우려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 하늘색 셔츠)이 5월 3일 중국 선전의 한 전자기기 매장을 방문해 스마트폰을 살펴보고 있다.
1993년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가전 매장을 찾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제너럴일렉트릭(GE)·소니 등에 밀린 삼성 제품이 진열장 한 귀퉁이에서 먼지를 덮어쓴 채 놓여 있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같은 해 6월에는 직원들이 세탁기 뚜껑 부분을 칼로 깎아내 억지로 조립하는 영상을 접하기까지 했다. 이 회장은 임원들을 모두 집합시켰다. 6월 7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캠핀스키 호텔에서 이 회장은 “결국 내가 변해야 한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야 한다”며 “극단적으로 얘기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고 일갈했다.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삼성전자는 놀라운 변화를 겪었다. 반도체 모바일 디스플레이 가전 부문에서 ‘최초’ ‘혁신’ 수식어를 휩쓸었다. 1993년 40조9600억원이었던 그룹 자산은 지난해 744조5900억원으로 18배 늘었다. 최근 미국 유력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발표한 ‘2018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 명단에서 7위에 오르는 등 전 세계 각국에서 인정받고 있다.

6월 7일로 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25년이 지났다. 이제는 명실상부 이재용(JY) 삼성전자 부회장의 시대다. 2014년 이 회장의 와병 후 4년 동안 이 부회장은 경영에만 온전히 집중하지는 못 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휘말리면서 꼬박 1년을 구치소에서 생활했다. 청문회, 검찰 조사, 재판 대응 등을 감안하면 2년이 날아갔다는 분석도 있다.

이 부회장은 구치소에 있을 때도 ‘외부’에 눈을 뒀다고 한다. 매일 신문 스크랩 등을 통해 글로벌 기업의 동향을 예의 주시했다는 전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애플·구글 등 글로벌 기업 관련 기사를 스크랩 상위 목록에 올려 달라는 이 부회장 지시가 있었다”면서 “삼성의 미래 구상을 위해 감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곧장 이 회장을 찾았다. 그가 이 회장을 마주하며 했을 생각과 다짐은 무엇이었을까. 재계 관계자들은 ‘초일류 삼성’ ‘신뢰 회복’ 등의 키워드를 꼽았다. 기업의 이윤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달성하며 존경받는 삼성이 되겠다는 의지를 다졌을 것이란 추측이다.

이 부회장은 출소 후 석 달 동안 세 번의 해외 출장에 나서며 단절된 글로벌 네트워크 복원에 나섰다. 삼성의 미래 동력 확보를 위한 행보를 본격화한 것이다. 이 부회장 복귀 이후 삼성에는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을까. 이 부회장 컴백 후 달라진 삼성의 모습과 전망 등을 알아본다.

글로벌 행보… 미래 먹거리 직접 챙긴다


지난 3월 22일 JY는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2월 5일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첫 번째 해외 일정이었다. 이어 5월 2일엔 삼성전자 부품(DS) 부문 사장단 4명을 이끌고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선전을 방문했다. 5월 31일에는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석 달 동안 둘러본 국가만 10여 곳에 달한다.

이 부회장이 다녀온 곳에서는 여지없이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났다. 유럽·캐나다 출장 이후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해외 네트워크 구축 계획을 발표하며 영국 런던, 러시아 모스크바, 캐나다 토론토에 AI 센터를 신설했다. 중국 선전에서는 왕촨푸 BYD 회장,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레이쥔 샤오미 회장 등 거물들과 잇따라 회동했다. 홍콩에서도 삼성의 미래 먹거리와 관련된 중요 미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야말로 광폭 행보다.

이 부회장 복귀 후 삼성전자의 막혔던 혈전(血栓)이 뚫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의 오너이자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이 부회장이 복잡한 실타래를 하나둘 풀며 삼성의 장점인 속도 경영 복원에 나섰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당시 사장)은 “(이 부회장 부재로) AI 관련 업체 인수 작업이 막판 단계까지 갔다가 제때 의사결정을 하지 못 해 무산됐다”며 “삼성이 가라앉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부회장 복귀 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AI 관련 계획의 구체화다. 삼성전자는 한국·미국·영국·러시아·캐나다 등 5개 지역을 AI 연구 거점으로 삼고 오는 2020년까지 1000명의 AI 인력 확보를 뼈대로 한 ‘AI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고 5월 18일 발표했다. 이병철 선대 회장부터 이어져온 ‘인재 제일’ 방침이 AI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하버드·구글 출신 등 ‘S급 인재’가 경영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데이비드 은 삼성넥스트 사장을 삼성전자 최고혁신책임자(CIO·Chief Innovation Officer)로 임명했다. CIO는 이번에 처음 생긴 직책으로 데이비드 은 사장에 대한 이 부회장의 신뢰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으로 구글과 타임워너 근무 경험이 있는 데이비드 은 사장은 기존의 유망 스타트업 발굴, 인재 확보 업무에 더해 삼성전자 전사 차원의 혁신 업무까지 총괄하게 됐다. 세계적인 AI 분야 권위자인 세바스천 승 미 프린스턴대 교수와 대니얼 리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도 최근 삼성리서치 소속 부사장으로 파격 영입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석학 영입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공들이고 있는 AI 역량 강화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면서 “앞으로도 AI 분야 경쟁력 제고를 위해 우수 인재를 지속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의 최고 책임자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재개됐다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은 선전에서 만난 IT업계 거물들과 반도체 공급 관련 중장기 계약을 논의한 것으로 관측된다. 반도체 최대 수요처인 중국의 세트(완제품) 업체들에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을 약속하며 상생을 제안했을 것이란 예상이다.

아울러 자율주행차·전기차 등 미래 먹거리 관련 그림을 함께 그렸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최고 책임자끼리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무게감과 격이 있다”며 “이 부회장의 굵직한 인맥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조 허용, 지배구조 개선, 근로시간 변경 등 통 큰 결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2010년 2월 올림픽이 열리는 캐나다 밴쿠버로 출국하고 있다.
JY 석방 이후 민감한 사안에 대한 결단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이건희 회장 시대의 삼성과 색깔을 달리하는 ‘뉴 삼성’을 위한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분석이다.

우선 선대부터 이어졌던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전환점을 맞았다. 최근 삼성전자서비스가 8000여 명의 협력업체 직원을 정규직으로 받아들이며 노조를 허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 부회장의 결단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시대적 요구에 이 부회장이 화답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다.

실제 최근 삼성전자에 첫 노조가 등장했다.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안양지청은 지난 2월 삼성전자 한국총괄 소속 영업직 직원 2명이 낸 노조 설립 신고를 수리했다. 삼성전자 내에 정부가 인가한 정식 노조가 설립된 것이다. 퇴직을 앞둔 고참 직원 2명이 노조를 만든 것으로 규모는 작지만 삼성전자 내부에서 노조가 세를 불릴지 주목된다.

지배구조 관련 변화도 뚜렷하다. 삼성은 삼성SDI의 삼성물산 주식 처분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네 개로 줄였다. 나머지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기 위한 검토 작업도 진행 중이라는 관측이다. 삼성전기와 삼성화재가 각각 2.61%, 1.37%씩 들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을 팔면 가능해진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들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일부도 블록딜(시간 외대량매매) 방식으로 처분했다. 보험사가 일반 제조회사의 지분 10% 이상을 사실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분리법)’을 지키기 위해서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밀어붙이는 ‘재벌 개혁’ 정책이 영향을 주고 있다”며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하면서도 지배구조를 투명화하는 데 법무 역량을 쏟아 붓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정책에도 발을 맞췄다. 갑작스러운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업들의 생산성 하락 우려가 컸지만 삼성전자가 선도적 역할을 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7월 본격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로시간’을 앞두고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전격 도입했다. 월 단위로 총 근로시간을 정해 그 안에서 일별·주별로 근로자 스스로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최소 근로 조건조차 지키지 않아도 되는 ‘재량 근로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연구개발(R&D) 등 특정 직군에 한해 회사 대표와 근로자 대표가 협의해 어떤 업무를 근로시간으로 볼지 등을 자율적으로 합의할 수 있다. 대상자로 선정되면 근무시간 및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재량근로제 대상자는 주간 최소 근로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되고 평일 출근을 매일 할 필요도 없다”며 “다만 주당 52시간을 준수해야 하는 단위시간을 최대 6개월로 잡아 그 기간 내에 총 근로시간을 맞추면 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2016년 무려 80억 달러(약 9조3760억원)를 들여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자마자 성사된 초대형 딜이었다.

이 부회장은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내부 역량만 키우기보다 부족한 부분은 외부에서 수혈하라’고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삼성전자는 하만 이외에도 2014년부터 ▷스마트싱스(사물인터넷 플랫폼 개발기업) ▷루프페이(모바일 결제 솔루션) ▷조이언트(클라우드 서비스) ▷애드기어(디지털광고 플랫폼 스타트업) ▷비브랩스(AI 플랫폼 개발기업) 등을 인수했다. JY 복귀 후 대형 M&A가 재개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3월 유럽 출장 당시에는 2016년 한 차례 인수설이 돈 이탈리아 전장 기업 마그네티 마렐리 인수에 다시 시동을 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대형 M&A 성사, 파운드리·자동차용 OLED 성장 기대


▎2012년 12월 3일 하와이로 출국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환송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최근 김현석 삼성전자 사장이 AI 관련 기업을 적극 인수할 것이라고 밝힌 것 역시 이 부회장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은 AI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16년 호암상 공학상 수상자이자 인간형 로봇 ‘휴보’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준호 KAIST 교수와 만나 “언제 AI가 인간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보느냐” “하나님이 인간들을 고친다면 어떤 부분을 가장 고치고 싶어 하겠는가”는 식의 질문 세례를 던지기도 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M&A가 다시 활발해진다면 대상은 단연 AI 기업일 것”이라며 “오너가 진두지휘하는 만큼 조 단위의 대형 인수도 가능해졌다”고 예상했다.

기존 사업의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투자도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싱가포르에서 ‘삼성전자 2018 인베스터즈 포럼’을 열고 ‘파운드리’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데이터센터’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찾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모두 삼성전자가 업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로, 또 한 번의 혁신을 통해 ‘초격차’ 전략을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반도체 위탁생산을 의미하는 파운드리의 경우 삼성전자가 업계 4위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고객 수를 전년 대비 두 배가량 늘려 업계 2위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세 공정 선도를 위해 2020년까지 3 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파운드리 신공정을 개발한다는 로드맵을 밝히기도 했다. 3나노 공정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미래 기술로 삼성전자가 이를 실현할 경우 파운드리 패권을 장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디스플레이에서는 자동차용 OLED 개발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에 따르면 자동차용 중 소형 OLED는 2018년 10만 장에서 2020년 100만 장, 2022년 300만 장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중소형 OLED 시장을 90% 이상 점유 중인 삼성전자의 수익 증가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데이터센터 수요 폭발과 맞물려 메모리 반도체 업계 1위의 지위는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PC가 주도하던 시대에 전체 반도체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매출 기준)이 평균 15%에 달했다면, 모바일 시대에는 20%, 데이터센터 시대에는 30%에 달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상황이다. 고용량·고사양 D램과 낸드플래시를 생산 중인 삼성전자는 데이터센터 시대에 더 큰 기회가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디스플레이·모바일·가전 등에서 각 사업부문장이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이 부회장의 신뢰와 격려를 받아야 각 부문이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반도체 실적 속에 가려졌던 삼성의 위기가 이 부회장 복귀 후 조금씩 정상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압박이 최대 리스크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2011년 10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스탠퍼드대 교내 교회인 ‘메모리얼 처치’에서 열린 고(故) 스티브 잡스의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이 부회장과 삼성이 직면한 ‘불안 요소’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정부다. 기업과 손발을 맞춰야 할 정부가 오히려 삼성을 중심으로 기업 때리기에 몰두하는 게 최대 리스크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현 정부 들어 삼성을 둘러싼 각종 정부 판단이 뒤바뀌거나 투자 가치가 훼손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생명이 전자 지분을 보유하는) 삼성의 현 지배구조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발언하며 삼성의 투자 가치를 공개적으로 깎아내렸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하라고 압박한 것인데 이는 삼성 계열사에 대한 불확실성 확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공정위는 이에 앞서서는 순환출자 고리 형성을 둘러싼 해석을 번복하며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404만 주(5800억 원어치)를 추가 처분하라고 명령했다. 여기에 삼성은 수십 년 전 형성된 기존 순환출자 고리까지 해소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삼성전기와 삼성화재가 각각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을 처분해 순환출자 구조를 완전히 끊으라는 것이다. 이는 삼성물산 오버행(시장에 나올 수 있는 대량의 대기 매물 부담) 이슈로 작용하며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2016 바이오인터내셔널 전시회에서 업계 관계자들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스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정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에 대한 입장도 손바닥 뒤집 듯 바꿨다. 금융당국이 2015년 회계 처리를 두고 ‘적절했다’고 내린 기존 입장을 달리하며 분식회계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 밖에 삼성물산 에버랜드 용인 부지 공시지가 판단,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 결정 등 유독 삼성을 대상으로 한 정부 판단이 뒤집힌 사례가 적지 않다.

이처럼 정부가 삼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우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 내에서 삼성그룹주(株) 비중 조정에 나서기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음에도 세계적 자산운용사들이 삼성에 대한 보수적 투자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꺾이면 앞날 장담 어려워


▎2007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쇼(CES)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투자자 입장에서 불확실성만큼 큰 리스크는 없다”면서 “다방면으로 진행되고 있는 삼성에 대한 한국 정부의 압박 정책이 투자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적으로는 반도체 쏠림이 심각하다는 우려도 있다. 올 1분기 전체 영업이익 중 무려 73.8%가 반도체에서 나온 반면 소비자가전(CE) 부문의 영업이익 기여도는 1.79%에 불과했을 정도. 24.1% 비중을 차지한 모바일(IM) 부문은 성장 정체가 뚜렷하고 디스플레이 실적 역시 대외 변수 영향이 크다. 메모리 반도체 시황이 꺾일 경우 삼성전자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삼성의 미래 먹거리 중 하나인 ‘바이오’는 꽃 피기도 전에 고사 위기에 처했다. 중국의 바이오 굴기에 추격당하는 와중에 오히려 정부로부터 얻어맞는 형국에 처했기 때문이다. 설립 7년 만에 글로벌 톱 수준의 의약품 위탁생산(CMO) 업체로 우뚝 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적으로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더욱이 중국 정부는 바이오의료 산업 규모를 오는 2020년까지 최대 10조 위안(약 1700조원)으로 키우고 합성 신약 20개, 바이오 신약 3개를 독자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운 상황이다. 1년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와 중국의 바이오산업 기술 격차가 더욱 좁혀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척박한 환경에서 어렵게 쌓아 올린 삼성바이오 사업에 대한 신뢰가 단번에 허물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신희철 서울경제 기자 hcshin@sedaily.com

201807호 (20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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