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6·13지방선거 이후 여·야의 행로 | 단독 인터뷰] 보수 ‘구원투수’로 주목받는 황교안 前 국무총리 

“다 ‘때’가 필요한 것 아니겠나”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지방선거 때 한국당 선대위원장 제안 고사 등 정중동 행보…정치지형 변화와 함께 자연스레 무대에 서게 될 거란 전망도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주목받는다. 6·13 지방선거에서 보수 진영 참패 후 ‘구원등판론(論)’이 인다. 그런가 하면 기무사 ‘계엄령 문건’과 관련한 의혹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황 전 총리는 한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 “계엄 ‘계’자도 보고받은 바 없다”고 반박했다. 월간중앙은 황 전 총리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그의 입장을 들어보았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해 5월 11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을 마친 뒤 승용차를 타고 청사를 나가고 있다. / 사진:김경록
황교안 전 총리와의 전화통화는 어렵사리 연결됐다. 황 전 총리는 차분하게 전화를 받았고, 담담한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통화는) 자주 하십시다”라며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황 전 총리의 안부를 묻던 기자는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자 황 전 총리는 “아직은 인터뷰할 때가 아닌 것 같다. 다 ‘때’가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사양했다.

기자가 한 번 더 정중하게 요청하자 황 전 총리는 “(인터뷰는) 조금 더 있다 하자. (그렇지만 통화는) 자주 하자”며 이번에도 완곡하게 거절했다. ‘황교안 역할론’을 물었을 때는 말없이 듣기만 했다.

황 전 총리는 박근혜 정권과 4년2개월을 함께한 인물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었다. 2013년 3월부터 2015년 5월까지는 제63대 법무부장관으로, 2015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는 제44대 국무총리로 재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2016년 1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는 국무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겸했다.

황 전 총리가 보수 ‘구원투수’로 주목받는 것은 단순히 이런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그는 보수, 정확히 표현하면 자유한국당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실제로 월간중앙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타임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월 11~12일 실시한 대선주자 적합도 조사에서 황교안 새누리당 후보는 13.4%를 얻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38.5%), 바른정당 반기문 후보(18.9%)에 이어 3위에 올랐다.[반기문·황교안 후보의 소속 정당은 가상(假想)이었음]

특히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認容)된 지난해 3월 10일 이후로는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황교안 대안론’이 일기도 했다. 동시에 일각에서는 “심판이 선수로 뛰어도 되는 거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황 전 총리는 일찌감치 불출마로 가닥을 잡고 대선 ‘공정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천명했다. 여야 모두 환영의 뜻을 비쳤음은 물론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만일 황 전 총리가 지난해 대선에 뛰어들었다면 상처만 입고 퇴장했을 것”이라며 “황 전 총리로서는 자신이 등판할 ‘때’는 무르익어 가고 있으나 과연 현실정치에서 얼마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을 것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듯이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현실정치에 적응하지 못했던 스타는 무수히 많았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역할 맡을 상황 아니다”


▎황교안 전 총리(가운데)가 6월 25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고(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 사진:김상선
황 전 총리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고, 한국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 영입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황 전 총리는 “지금 공동선대위원장 역할을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한국당 제의를 수락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에 앞서 홍문표 한국당 사무총장은 황 전 총리 영입 작업을 진행 중이며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당은 또 황 전 총리에게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도 제안했지만 황 전 총리는 이 역시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지난해 대선 때도 ‘반드시 출마할 것’이라는 등 황 전 총리를 둘러싼 억측이 난무했지만 황 전 총리는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했다”며 “지방선거 때 한국당 선대 위원장을 고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황 전 총리는 여전히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도 ‘때’를 강조한 황 전 총리는 지난해 5월 정권교체와 함께 퇴임한 이후로는 공식행사에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일부 교회가 마련한 특강 등에는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황 전 총리를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워낙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보니 교인으로서 교회 행사에 참석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황 전 총리의 간증을 직접 들었다는 한 60대 여성은 “강성 보수일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는데 막상 간증을 들어보니 겸손하고 따뜻한 사람 같더라”고 전했다.

지난해 5월 12일 퇴임한 황 전 총리는 그동안 자신이 다녔던 서울 목동의 한 교회 전도사로 부임해 활동하고 있다. 황 전 총리는 이 교회 권사였던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1996년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운 교회 학생들에게 매년 ‘전칠례 장학금’을 주고 있다.

황 전 총리가 교회 전도사로 활동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부인 최지영씨가 한 기독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최씨는 “법대를 졸업한 남편은 검사가 됐다. 남편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고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신학을 하겠다고 서원(誓願)했다”며 “남편은 시험에 합격했고, 그 약속대로 대학 졸업 후 다시 신학교 3학년으로 편입했다. 그래서 남편은 교회에 가면 전도사”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 파문이 확산되면서 정치권이 긴장하고 있다. ‘계엄령 문건’ 수사를 맡은 독립수사단은 문건 작성 당시 국방부를 이끌었던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예비역 육군 중장) 등 기무사 지휘 및 업무 보고 선상에 있던 인물들을 두루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계엄령 보고? 쓸데없는 데 국력 낭비할 필요 있나”


▎문재인 대통령과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해 5월 10일 청와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문건을 작성하는 데 윗선이 어느 정도까지 개입했는지 밝히는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황교안 전 총리 등까지 수사 대상이 넓혀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수사팀 구성과 수사 기간 설정 등의 작업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한 방송사는 황 전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계엄령 문건’ 관련 여부를 물었다. 이에 황 전 총리는 “계엄령의 ‘계’자도 보고받은 바가 없다. 쓸데없는 데 국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일축했다.

최근 딸 결혼식과 관련해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구설에 오른 것과 관련해서도 황 전 총리의 처신이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016년 12월 9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7월 2일 KBS 시사프로그램 [사사건건]에 출연해 “추미애 대표 딸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도 “사실 집권여당의 대표가 청첩장을 내고 결혼식을 꼭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우리 지도층이 생각해 볼 만한 문제”라고 했다.

추 대표의 딸 서재현씨는 6월 30일 서울 성북동 삼청각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앞서 추 대표는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보내면서 “화환은 정중히 사양한다”고 밝혔다. 이날 예식장 입구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화환만 놓여 있었다. 그러나 결혼식 하객으로는 당·정·청 회의를 방불케 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를 비롯해 박영선·유승희·박범계 의원 등 다수의 민주당 의원이 참석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상곤 교육부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등 정부 측 인사들도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반면 2015년 딸 결혼식을 앞두고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는 법무부와 검찰 내부에 청첩장을 돌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축의금 역시 받지 않겠다고 공지했다. 은행원인 딸 성희씨 역시 결혼 소식을 사내에 공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황교안 당시 총리 후보자는 딸의 결혼을 잘 알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 “가족들과 작은 결혼식으로 하려고 알리지 않았다”며 “여러 하객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 가족끼리만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황 전 총리가 퇴임 후 공식행사, 특히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정치권 행사에 두문불출하는 것은 아니다.

황 전 국무총리는 6월 5일 공재광 평택시장 한국당 후보 사무실을 전격 방문했다. 황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우리 보수의 가치가 있는 분이 많이 있는데, 그분들과 함께 우리 보수를 지켜나가야 한다”며 “나는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함께하겠다고 뜻을 모은 분들이 끝까지 약속을 지켜 좋은 결과 이뤄내길 바란다”며 지지자들을 격려했다.

“나는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2005년 5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 교회 평신도지도자 120인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신낙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감경철 기독교TV 사장, 황교안 서울지검 차장검사, 김정열 염광학원 이사장, 두상달 칠성산업 대표, 조배숙 열린우리당 의원, 이정균 한국장로교총연합회장.
이에 앞서 황 전 총리는 여성부 장관을 지낸 강은희 대구교육감 후보와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 송언석 한국당 김천 국회의원 후보 지원 유세를 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지방선거 이후 야권 재편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정치 행보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에 대해 황 전 총리 측은 “총리 시절 인연이 됐던 후보들을 응원하는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한 조기 낙마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몸소 겪었던 황 전 총리가 일부의 바람대로 당장 정치권에 데뷔하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방선거 때 몇몇 후보 사무실을 방문한 걸 두고 확대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참여정부 때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강금실 변호사의 경우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긴 했으나 이후로는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 강 변호사 역시 주요 선거 때 일부 후보들을 찾아 돕긴 하지만 그렇다고 정치활동을 재개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월간중앙의 인터뷰 요청 때도 강 변호사는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강 변호사를 보필했던 한 관계자는 “장관님은 정치 안 하시고 변호사 업무에만 충실하실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 교회의 홍보 전단에 실린 황교안 전 총리의 얼굴. / 사진:온라인커뮤니티
그럼에도 황 전 총리가 끝내 정치와 거리를 둔 채 자연인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이는 많지 않다. 지난해 대선과 올해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대패한 보수에 대한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 올해 연말을 지나 3년차에 접어들면 문재인 정권의 인기가 시들해질 수 있다는 점 등 향후 정치지형 변화 가능성은 농후하기 때문이다.

황 전 총리가 앞으로도 한동안 관망하다 ‘때’가 됐다고 판단되면 정식 정치인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 월간중앙과의 전화통화에서 인터뷰는 고사하면서도 “아직은 때가 아니다. 다 때가 있다. (인터뷰는) 조금 더 있다 하자”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한국당 한 의원의 핵심 측근은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극우보수’라며 황 전 총리를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신념이기에 비판의 대상은 될지언정 비난의 대상은 될 수 없다”며 “올해 연말 또는 내년 초 정치지형에 변화가 오면 황 전 총리가 무대로 올라오게 될 기회가 자연스럽게 마련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1808호 (2018.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