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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지방선거 이후 여·야의 행로 | 정치풍향] ‘옥동자’ 낳는 데 실패한 바른미래당의 행로(行路) 

安은 욕심 과했고, 劉는 자기희생이 부족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
보수진영 대표 되려 했던 安, 등 떠밀려 합당한 劉의 ‘동상이몽’…8월 19일 전당대회 개최 등 수습에 박차, 성공 여부는 미지수

▎주승용 바른미래당 의원, 유승민 공동대표, 손학규 중앙선대위원장, 박주선 공동대표(왼쪽부터)가 6월 13일 여의도 당사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6·13 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 중계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결혼해서 옥동자를 낳으려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랑 없는 결혼이었기에 옥동자를 기대했던 것 자체가 허황된 생각이었다고도 한다. 시작부터 서로 맞지 않는 커플이었기에 결과가 그랬다고도 한다. 결국 이혼하고 딴 살림을 차릴 거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바른미래당의 얘기다. 올해 초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양당 구도를 깨보겠다며 바른미래당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은 6·13 지방선거에서 광역·기초단체장은 물론, 동시에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단 한 명도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참패였다.

문재인 정부의 인기가 워낙 좋아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 점쳐진 상황이었던 만큼 바른미래당이 움직일 공간이 없었다는 ‘위로’가 있긴 하다. 자유한국당도 존재감을 찾아볼 수 없었던 판에 바른미래당이 설 자리를 넘본 것은 과욕이라는 분석도 있다. 야구로 비유하면 최동원과 선동열이 동시에 마운드에 버티고 있는 형국, 즉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이런 지형에서 안타를 기대한다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바른미래당 내부에서조차 패인(敗因)에 대해 명확하게 진단하고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리더이자 최대주주였던 안철수·유승민의 과오를 반드시 짚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바른미래당의 실패에는 안철수·유승민의 책임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일까? 그렇다면 안철수와 유승민이라는 양대 주주는 한 지붕 아래 계속 남을 것인가? 바른미래당은 제3 당으로 존속할 수 있을까?

급조됐던 만남은 잘못된 만남?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7월 12일 여의도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저는 오늘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성찰과 채움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뒤 차를 타고 떠나는 안 전 대표. / 사진:연합뉴스
“굶어 죽으나 맞아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가만히 앉아서 굶어 죽을 바에는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이었습니다.”

바른정당 출신 바른미래당의 원외 당협위원장이었던 남호균 전 청와대 행정관은 지난해 11월 무렵 본격화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합당 시도에 대한 상황을 이렇게 돌이켰다. 가만히 앉아서 굶어 죽을 바에는 욕먹을 각오, 아니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뭐라도 해보자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당시 출범 6개월 된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을 내세우면서 김영삼 정부 이래 20여 년 만에 가장 높은 취임 초기 지지율(한국갤럽 조사 기준)을 기록하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3일 발표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73%였다. 취임 6개월 지지율을 기준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83%)에 이어 역대 대통령 중 둘째로 높은 지지율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당시 ‘최순실 게이트’ 수사에 박차를 가하면서 국정 농단 혐의를 속속 확인했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 중 구속을 면했던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까지 국정원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시켰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드라이브는 권력기관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와 불공정을 겨냥하는 쪽으로 확산해 나갔다. 대표적인 예가 강원랜드 등 공공기관 채용비리 근절 방침이었다. 이른바 ‘빽’이 없어 떨어진 취업준비생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준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골수 지지층’이 있는 자유한국당과 달리 지역 기반이 취약해 ‘고정표’가 없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합당 주역인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그해 11월 21일 발언을 보자. 그는 이날 6·13 지방선거와 관련해 “지금 이대로 있으면 호남 일부에서는 당선될지 모르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절망적”이라고 호소했다. 안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당 진로와 관련한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3등으로 머물면 소멸한다. 지방선거에서 지지율 2위를 해야 한다. 2당으로 올라서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안 대표는 이어 “지방선거에서 2당으로 올라서고 총선에서는 1당으로 올라서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통합이 최선으로 (바른정당과) 정책·선거 연대를 하고, 그 과정에서 통합이 가능할지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며 “지방에 다니며 인재를 영입하려고 하면 제3당과 제4당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나선다는 사람이 없다. 제3지대가 하나로 모이면 나서겠다는 사람이 있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발언대로 안 대표는 ‘이대로 가면 죽는다’는 생각이 강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도 통합에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비슷한 위기감을 내비쳤다. 그는 안 대표의 발언 직후인 같은 달 30일 “한국 보수정치가 이렇게 ‘폭망(심하게 망했다는 뜻의 인터넷 용어)’한 적이 없었다. 보수가 망해 정권을 문재인 정부에 갖다 바쳤다”고 했다.

유 대표는 서강대 특별강연에서 이같이 언급했다. 그는 “보수가 혁명적인 변화를 하지 않으면 내년 지방선거는 물론 2020년 총선, 2022년 대선도 쉽지 않을 것이다. 세력 없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며 “지지를 얻어서 한 석이라도 의석을 더 확보해야 한다. 국민의당과의 통합 이야기도 그런 맥락에서 나오고 있다. (개혁보수로) 가는 길에서 좋은 친구를 만나면 같이 가겠다”며 상황논리를 내세웠다.

결국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결혼했다. 가치나 비전을 보고, 이른바 전략적 결합을 이뤄낸 것이 아니라 상황논리에 밀리고 밀려 어정쩡하게 전술적 합일이 이뤄진 것이다. 너무 잘나가는 문재인·민주당 정부, 그리고 그나마 고정표를 갖고 있는 제1야당 한국당과는 개별적으로 맞설 힘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고육지책이 바로 합당이었다.

셈법이 많이 달랐던 두 리더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6월 14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선택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대표직을 사퇴했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안철수·유승민 두 사람은 결혼 결심을 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지만 서로의 셈법이 달랐다. 남녀가 결혼할 때면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 있고, 이를 통해 사랑이 싹트면서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서로의 가치를 알고 신뢰를 획득하면서 결혼 결심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합당 과정에서 안철수·유승민 두 사람의 개인적인 정치적 목표는 완전히 달랐다. 합당의 시너지 효과가 결정적으로 도출되지 못한 이유다.

안철수 대표의 경우 지난해 5·9 대선을 거치면서 더 이상 진보와 호남으로부터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다. 진보와 호남은 민주당 쪽으로 완전히 쏠렸고, 안 대표는 오히려 TK(대구·경북) 등 보수층에서 표가 예상외로 많이 나왔다. 결국 안 대표는 새로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다음 대선은 중도·보수 진영의 대표주자가 돼 치르겠다는 목표였다. 이런 생각을 가진 안 대표가 중간 단계로 바른정당과 합당을 결행했다는 것이 국민의당 안팎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안 대표는 합당 과정에서 바른미래당의 이념적 지향을 놓고 진통이 있었을 때 ‘진보’를 내려놨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바른미래당으로 합쳐져서 창당됐을 당시 ‘합리적 중도와 개혁적 보수의 결합’이라는 공표가 나왔다. 이런 점을 보면 안 대표의 중도·보수층을 향한 정치적 야망이 합당으로 연결됐다는 추론에 힘이 실린다.

반면 유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유 대표는 결국 떠밀리고 떠밀려 합당 도장을 찍었지만 ‘개혁보수’를 내걸고 바른정당의 독자생존을 목표로 했지, 다른 정당과 합당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는 게 바른정당 내 유 대표 측근 상당수의 목소리다.

유 대표는 지난해 10월 말~11월 초 한국당 쪽에서 합치자며 적극적으로 제안했을 때 강하게 반대했다. 당시 한국당은 흡수 통합이 아니라 당 대 당 통합을 제안했다. 통합전당대회를 치르고 당명·강령·정책기조 등을 모두 바꿀 수 있다는 전향적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이에 바른정당 구성원 대다수가 합당을 원했다. 하지만 유 대표의 반대로 합당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김무성·주호영·김영우 등 의원 11명이 탈당하며 바른정당은 교섭단체 지위가 무너지고 말았다.

이후 정운천·오신환 의원 등이 “한국당과 합치지 않을 바에는 국민의당과 합치자”는 목소리를 내면서 국민의당과의 접촉을 시작했다. 유 대표가 다른 생존전략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움직임까지 막을 수는 없는 처지였다.

지난해 말 바른정당의 원내·외 위원장 대다수가 “한국당과 합당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유 대표가 걷어찼으니 국민의당과 합당이라도 하자”며 유 대표를 연일 압박했다. 결국 유 대표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합당안에 사인했다.

사실 유 대표는 마지막까지 합당을 내켜 하지 않았다. 바른정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해 말 바른정당 국회의원 및 원외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위원장들이 “왜 국민의당과의 합당이 지지부진하냐”고 압박하자 유 대표는 “나는 바른정당을 지키고 발전시키라는 당원들의 뜻에 의해 대표로 선출된 것이지 당을 없애거나 다른 당과 합치라고 선출된 것이 아니다”고 했다.

바른정당 창당 때 바른정당행(行)을 고민했었다는 한국당의 한 현역 의원은 “안철수 대표는 다음 대선에서 보수 진영 전체의 대표가 되기 위해 바른정당을 징검다리로 삼은 것이고, 유 대표는 합당의 앞날이 밝지 않다고 보고 합당에 비판적이었으나 떠밀려서 합쳐진 것”이라며 “결국 두 사람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달랐으니 합당이 가져올 시너지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당을 떠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털어놓았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에 가장 적극적, 아니 주도를 한 사람이 바로 안철수 전 대표였던 만큼 통합 바른미래당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론은 안 전 대표에게 집중되는 모습이다.

“안철수 전 대표가 결단을 내려야 할 문제인데, 정계 은퇴를 해야 합니다.”

6·13 지방선거 직후였던 6월 19일 경기도 양평 용문산 야영장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비상대책위원·국회의원 워크숍. 행사에 특별 강사로 초청된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의원들 앞에서 안 전 대표에 대한 독설을 쏟아냈다.

그는 “안 전 대표는 현재 정치력으로는 안 된다. 본인 말로 재충전과 자성의 시간을 갖는다는데 한 3년 정도 가진 다음에 정치하더라도 다시 하라. 아니면 정계를 떠나시든가”라고 쏘아붙였다.

사그라지지 않는 책임론, 누구 책임이 더 큰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1월 13일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출범대회에서 개회 선언을 한 뒤 주먹을 쥐고 있다. /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 평론가는 바른미래당의 6·13 지방선거 패배와 관련해 “비극의 출발은 선거 때문에 급조한 꼼수 통합이었다. 안 전 대표의 사심에서 모든 비극이 출발했다”고 했다. 앞서 언급된 대로 안 전 대표가 중도·보수층을 잡기 위한 정치적 야망을 앞세우다 집토끼·산토끼 모두 놓쳤다는 것이다.

이 평론가는 이어 “차기 대권으로 가기 위해서는 빨리 서울시장에 출마해 당선돼야겠다는 안 전 대표의 강박관념과 조급증에다 정당 기반이 자꾸 약화하니 이를 어떻게든 보충해야 한다는 유승민 전 대표의 조급함까지 더해져서 결국 통합이 이뤄졌다”며 ‘잘못된 만남’이 결국 ‘잘못된 결과’를 낳았다고 꼬집었다.

식솔들을 챙기는 ‘따뜻한 정치인’ 이미지가 부족한 안 전 대표의 면모가 또다시 확인되면서 선거 패배 이후에도 당 내부로부터 비판이 쇄도했다. 안 전 대표가 선거 직후 딸 졸업식 참석차 미국으로 떠난 것을 놓고 뒷말이 무성했던 것이다.

서울 동작구청장에 출마했던 장진영 전 국민의당 최고위원은 안 전 대표 출국 직후 페이스북 글에서 “따님 졸업식 축하도 중요하지만 전멸당한 후보들 위로가 더 중요하니 가지 마시라고 충언을 드렸는데 결국 가셨다. 당이 헛발질만 안 했더라도 너끈히 당선될 수 있는 후보들이었는데, 선거비라도 보전 받았을 후보들이 줄줄이 빚더미에 올라앉아 망연자실하고 있다”며 “저만 해도 주변에서 탈당하라는 권고가 빗발치는데 이렇게 힘든 후보들과 함께 눈물 흘리고 아파해도 모자랄 판에 따님 축하 외유라니요. 또다시 책임을 회피하는 지도자 이미지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바른정당의 합당으로 탄생한 바른미래당의 출범에 끝까지 소극적이었던 유승민 전 대표였던 만큼 그를 향한 당 안팎의 공세는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유 전 대표는 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자리에서 당내에서 노출됐던 이념 노선의 갈등 문제와 관련해 “화학적 결합이 안 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정체성의 혼란이 가장 심각하고, 근본적 문제였다”고 언급했다. 합당 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인정한 발언으로 읽힌다.

그러나 유 전 대표가 합당에 반대했지만 끝까지 버티지 못한 책임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그의 최대 정치적 약점으로 꼽히는 ‘자기희생 부족’ 역시 선거 패배에 한몫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6월 26일 바른미래당이 개최한 6·13 지방선거 평가토론회에서도 참석자들 대다수가 유 전 대표에게 ‘자기희생’을 주문했다.

지난 대선에서 유 전 대표를 도왔던 한 당직자는 “지방선거에서 유 전 대표가 서울시장으로, 안 전 대표가 대구시장으로 나서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유 전 대표가 경기도에서 나와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며 “하지만 모두 성사되지 않았는데 이런 점에서 유 전 대표의 자기희생 부족이 또다시 확인됐다는 평가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당 관계자는 “이번 선거에서 바른미래당 (광역단체장) 후보는 사실상 안철수 한 명뿐이었다. 유승민은 어디에서 뭘 했는지, 왜 선거에 나서지 않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유승민의 자기희생 부족은 더 큰 정치인으로 발돋움할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일단’ 퇴장한 대주주… 회생 가능할까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왼쪽)이 6월 26일 국회에서 김관영 바른미래당 신임 원내대표의 예방(禮訪)을 맞이하고 있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가장 큰 책임 추궁에 시달리고 있는 안 전 대표는 일단 ‘2선 후퇴 모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는 7월 12일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계 은퇴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그는 “당분간 성찰과 채움의 시간을 가질 것이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옳은 방향이 무엇일지 숙고하겠다”고 언급했다. 성찰하고 공부한 뒤 돌아올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안 전 대표는 독일로 연수를 갈 것이라고도 했다.

당내에서도 안철수가 예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버려야 할 자원은 아니라는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직 안 전 대표가 당의 간판스타라는 것이다.

바른미래당이 6월 26일 개최한 6·13 지방선거 평가토론회에서 전 국민의당 제2창당위원장인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발제를 통해 안 전 대표에 대해 “충전이 필요하다. 거듭된 정치적 실험 과정에서 자신의 사회적 자본을 소진했다”며 ‘안철수 정계 은퇴론’에 대해서는 “안 전 의원에 대한 가혹한 청산주의적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인물이 정당의 흥망을 결정하는 한국적 정치 지형에서 키워놓은 인물을 버릴 수 없다는 게 바른미래당 내부의 대체적 시각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처음부터 ‘직업 정치인’이 아니었기에 민주당의 대표주자로서 당내 거부감이 상당히 많았다. 그렇지만 “그만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는 인물론이 이 같은 목소리를 상쇄해 내면서 결국 청와대로 입성할 수 있었다는 논리가 뒤따른다.

안 전 대표의 과제도 많다. 우선 그는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데뷔 초기 보였던 ‘새정치’라는 신선함을 상당부분 잃었다. 안 전 대표가 잃어버린 이미지를 어떤 이미지로 대체시켜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인지가 그의 정치적 재기를 결정짓는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안 전 대표가 신선함을 잃어가고 좌충우돌하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그를 따랐던 참신한 참모들도 하나둘 사라져 갔다. 지금 그의 주변에는 눈에 띄는 정치인들이 부족하다. 이 부분도 안 전 대표의 차후 정치적 도약에서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유 전 대표도 일단은 암중모색하는 분위기다. 그는 당사는 물론 의원회관에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있다. 유 전 대표는 선수(選數)를 쌓고 당직에 욕심을 내는 등의 ‘감투형’ 정치인은 아니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성찰의 시간을 보낸 뒤 돌아와 그의 정치철학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재개할 것이라고 측근들은 전하고 있다.

유 전 대표는 지방선거 직후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대한민국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고민하겠다. 처절하게 무너진 보수정치를 어떻게 살려낼지, 보수의 가치, 보수정치 혁신의 길을 찾겠다. 개혁보수의 길만이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고 언급했다. 개혁보수를 향한 정치적 통로를 다시 낼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그의 앞길은 험난하다. 우선 정치적 기반이었던 TK에서 바른미래당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유 전 대표는 정치적 터전을 상실했다. 그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에서 한국당과 민주당이 각축을 벌인 끝에 구청장 자리를 한국당이 가져갔다. 바른미래당 후보는 존재감도 없는 3위였다. 지역적 정치 기반을 갖지 못한 정치인이 롱런하고 대권까지 거머쥔 사례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유 전 대표에게 매우 뼈아프다.

국민의당 출신 바른미래당 한 당직자는 “가까이 와서 살펴보니 유 전 대표가 생각보다 부족한 점이 많았다. 유 전 대표가 재기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챙길 줄 알아야 한다”며 “김세연 의원, 조해진 전 의원 등 유능했던 측근들이 유 전 대표 곁을 왜 떠났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독자생존 가닥… 그러나 장담하긴 어려워

바른미래당은 일단 기존 체제를 고수하면서 독자생존 쪽으로 가는 분위기다. 한국당과 통합해 봐야 우선 당장 실익이 없을 뿐 아니라 당의 정치적 방향성과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당과의 통합 가능성이 일부에서 제기되기는 하지만 시기적으로 “지금은 아니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한국당도 인기가 바닥이고, 바른미래당 역시 비슷한 상황인데 합쳐봐야 ‘0+0=0’이라는 답밖에 안 나온다는 의미다.

게다가 바른미래당에는 한국당과 헤어진 의원들, 그리고 민주당을 거부하는 의원들이 모여 있는 만큼 정치적 가치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짙다. 제대로 ‘제3지대’를 만들어 새로운 정치를 한번 해보겠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7월 초 호남 지역 기자들과 만나 “동서가 화합하는 진정한 의미의 국민통합을 만들어낼 정당은 바른미래당밖에 없다. 이런 정치 지형을 이제 만들어야 한다”며 바른미래당의 독자생존 의미를 강조했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 정치의 벽을 허물고 근본적 정치 발전을 일궈낼 세력은 바른미래당뿐이라는 것이다.

바른미래당은 이러한 명분적·실리적 계산 아래 전당대회를 통해 독자생존의 틀 마련에 들어갔다. 차기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8월 19일 열기로 잠정 결정했다. 아울러 당 대표 임기를 제21대 총선 공천권을 갖는 2년으로 하기로도 잠정 확정했다. 전당대회 준비위원장은 유승민 전 대표와 가까운 이혜훈 의원이, 간사는 한나라당 출신인 이태규 사무총장이 맡았다.

두 개의 정당이 합당해 만들어진 바른미래당은 결속력이 약해 선거에 졌다는 패인 분석이 많은 만큼 당내 화합에 주력하고 있다. 김동철 비대위원장과 김관영 새 원내대표가 내세운 제1 목표도 의원 간 협력과 소통이다.

이런 연장선에서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선거 참패 직후 워크숍 등을 통해 단체 활동을 늘리고 있다. 또 워크숍 장소로 이동할 때는 개인 차량이 아닌 버스로 집단 이동하는 등 의원들 간 접촉점을 넓히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싸우는 정당’ 이미지부터 벗어던지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며 원자력발전소를 방문하고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문제점을 논의하는 등 정부·여당의 실정을 짚어내는 정책 정당으로서 이미지 심기에도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이 2020년 총선 때까지 독자생존해서 제3지대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는 대체로 회의적이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의원들의 당선 가능성에 대한 계산이 복잡해지고, 정계개편에 대한 압력이 높아질 거란 설명이 곁들여진다. 고질적인 지역구도 재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 지역구도가 많이 완화됐다는 근거로 PK(부산·경남·울산)의 민주당 승리를 들지만, PK가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진정한 의미에서 지역구도가 깨졌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다음 선거에서 지역구도가 재현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고, 결국 이 힘에 밀려 정치판의 이합집산이 다시 시작된다면 바른미래당의 영남권 정치인과 보수세력은 한국당으로, 호남권 정치인과 진보 세력은 민주당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자유한국당 한 중진 의원은 “7월에 국회 원(院) 구성을 했지만 동료 의원들 중 이 구도가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총선이 임박하고 문재인 정부의 인기가 다소 주춤할 것으로 보이는 내년 초가 되면 어떤 형태로든 정계개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 한국당·민주당은 물론 바른미래당 의원들의 거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 koala@msnet.co.kr

201808호 (201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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