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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라종일 | 전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이 말하는 ‘북한의 선진화 전략’ 

“북한, 새 시대의 ‘뉴 노멀’ 될 수 있다” 

오염 수반하지 않는, 첨단기술 기반의 ‘저소비 클린 에너지’ 산업국 모델…10~20년 내 녹색성장과 지속가능성의 모델로 지구촌을 리드할 수도

올해 들어 남북, 북·미 정상회담 등으로 한반도에 평화의 무드가 짙어졌다. 북한이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데뷔하리라는 기대감도 고조된다. 그 방법론으로 ‘중국식’ ‘베트남식’ ‘쿠바식’ 개혁·개방론 등이 언급된다.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77)는 북한의 특수성과 국제사회의 과제를 결합하는 새로운 개념의 미래 청사진을 제안한다. 산업혁명 이후 근대국가 발전 궤적을 완전히 뒤집는 신기술 혁명에 기초한 저소비 클린 국가를 북한의 대안으로 상정한다. 알지만 절대 실행하지 않는 지구촌 공통의 숙제를 혁신적으로 이행할 북한에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도 강조했다. 일종의 ‘역발상’ 제안이지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보다 다양한 관점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라 석좌교수의 제안을 지면에 싣는다. 아래 글은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가 라 석좌교수와의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라 교수는 김대중 정부에서는 국가정보원 해외·북한 담당 1차장, 노무현 정부에서는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했다. 또 주(駐) 영국 대사(2001년), 주 일본 대사(2004년)로 재임하는 등 청와대, 국정원, 외교부와 같은 외교·안보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지난 20여 년 동안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 후계 구도와 국가 체제에 관한 연구·분석을 해왔다.


▎북한은 최근 완공된 평양의 여명 거리가 에너지 절약형, 녹색형 거리의 면모를 갖췄다고 선전한다. / 사진:연합뉴스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북한의 장점’을 들라고 하면 다들 웃고 만다. 교수가 농담하는 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는 쓰레기 처리 같은 골칫거리는 없다.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느라 매년 수조원의 예산을 쏟아붓는 선진국들과는 대조적이다. 비만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적다. 필요한 만큼 먹기 때문이다. 북한의 지도자가 갑자기 핵무기를 포기하고 정상적인 국가로 경제 발전을 추구하겠다는 뜻을 밝혀 모처럼 사람들이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이런 희망에 현실적인 전망을 하려면 기존의 사고 틀에만 매어 있어서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핵무기라는 ‘나무’에만 정신이 팔려 핵무기를 필요로 했던 북한의 어려움이란 ‘숲’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북한의 문제가 인류 문명이 현 시점에서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이건 사회주의이건 마찬가지다. 이 둘은 공통적으로 자연에 대한 최대 착취, 최대 생산성, 그리고 최대 소비를 지향한다. 이 체제들 아래서 사람의 소비 욕구는 늘 확대되기 마련이다. 시장과 국가가 그걸 보장해 줘야 한다. 그래야 권력이 유지될 수 있다. 그게 지구를 망가뜨리는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임에도 그렇다. 소비에 길들여진 사람과 국민은 ‘니드(Need)’ 이상의 ‘원트(Want)’를 희구한다. 필요를 넘어서는 과소비의 주체가 된다. 세계 굴지의 환경기업인 에코버(Ecover) 설립자이자 기업가인 군터 파울러는 [블루이코노미]라는 책에서 ‘낭비’의 문제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수십억 년을 이어온 종들의 진화 역사에서 오직 호모사피엔스만이 물리학의 안내로 자연의 역동적인 생명의 균형을 지배하려고 한다.(…) 산업의 발전으로 지구의 수용능력은 한계에 다다르게 됐다. 낭비벽 심한 세대의 에너지 소비 방식으로 인해 수천 년 이상 이어진 자연계의 업적이 파괴되고 훼손됐다. 우리는 기로에 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지구와 그 속에 있는 종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극악한 소비력, 파괴적 행위를 계속할 것인가? 평화롭고도 생산적으로 공존하는 법을 배울 것인가? 아니면 비생산적인 잔여물과 폐기물 더미에 짓눌려 멸종된 너무나 많은 다른 종들처럼 결국 우리 자신도 멸종시킬 것인가?”

자본주의든, 사회주의(공산주의)든 지구상의 지배적 경제 모델은 지난 2세기 동안 성장과 소비, 폐기의 끝없는 악순환을 촉진해오고 있다. 진영을 떠난 물질적 부를 향한 탐욕과 결코 채워지지 않는 소비 욕구에 부응하느라 지구는 공급능력을 넘어서는 희생을 강요당했다. 그뿐 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점증하는 빈부 격차가 수반된다.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다. 빈부의 격차는 동서를 막론하고 커지게 마련이다. 사회주의 중국만 하더라도 계층별 소득분배 분포를 보면 서유럽보다 더 편중되고 있다. 부자는 훨씬 부자고, 가난뱅이는 찢어져라 가난하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에 따르면 2017년 지구촌 최상위 1% 갑부가 전체 부(富)의 82%를 독점했다. 분의 분배 면에서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모두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에 주어진 결핍의 역설이 지구를 살린다


▎라종일 전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구를 살릴 유일한 희망이 북한일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양 진영의 경제 정책과 핵심 경제 모델은 제기된 해결책을 외면하거나 방기했다. 앞으로 인류는 결과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춰 온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생태 과학자들은 만약 인류가 현재의 습관을 바꾸지 않고 지금과 같은 생산과 소비 수준을 유지한 채 쓰레기들을 배출한다면 지구는 하나 이상의 다른 행성을 필요로 한다고 경고해왔다.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하나의 대안으로 상정된 화성은 거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이산화탄소 공급이 부족해 인류의 정착지 후보에서 탈락할 처지에 놓였다. 결국 인류는 지구에서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처럼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가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려는 현실이다.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개발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의 실패는 우리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녹색 성장이 지구촌의 관심사로 등장한 배경이다. 자유민주주의이건 이른바 자기 식의 사회주의를 한다는 나라들 가운데 가까운 장래에 뚜렷한 녹색성장 성과를 낼 나라가 있는지 의문이다. 여론을 의식해야 하고, 고용과 생산성을 걱정하는 정부가 대중의 불만을 살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도전과 관련해 북한 체제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북한에 주어진 결핍의 역설을 보자. 비료가 부족했기에 상대적으로 유기농 혹은 자연농을 시행할 좋은 환경에 있다. 기존 에너지 투자가 적었기에 녹색 에너지 개발의 환경과 동기를 부여한다. 게다가 북한 정권은 나라를 지탱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있다. 10~20년 안에 녹색성장과 지속가능성의 모델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은 나라가 북한이다. 시장 경제가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빈부 격차를 불식할 수 있는 새 경제 체제를 실험할 수 있다.

산업화 이후 1950년대 런던 스모그, 80년대 오존층 감소, 90년대 이후 기후변화 등 환경 문제가 지구촌의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했다. 경제성장이 환경 훼손과 맞물리면서 양자는 별개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 점차 분명해지는 게 현대 근대사회의 한 특징이다. 경제성장과 환경보호라는 복합정책을 추진하는 흐름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유엔 등 국제기구는 광범위한 환경문제에 대응하는 규제를 고민해 왔고, 그 일환으로 ‘스마트 규제’가 제기됐다. 스마트 규제란 환경보호, 경제성장, 사회발전과 같은 다양한 정책 목표를 동시에 추진하는 데 필요한 규제를 의미한다.

필자는 가까운 미래에 한국의 통일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가능하더라도 인간적인 차원에서 비용이 높다면 바람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남한과 북한이라는 이 두 사회는 이미 서로 너무나 다르게, 멀리 떨어져 나가 한 지붕 아래에 있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양쪽 모두 권력의 구조가 너무 깊고 넓게 뿌리를 내려 있어 그게 평화롭게 결합될 것이라고 상상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양측이 모두 공언하는 평화 통일이 가능하려면 우선 평화적으로 서로가 공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만 안팎의 여건을 고려해 볼 때 현 상황에서 이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에 남한은 존재 자체가 위협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현재 북한에 남한이 가진 부(富)의 상대적 우월성과 자유는 체제에 대한 위협이다. 남한에 북한이 가진 물리적, 군사적 힘은 안전에 대한 위협이다. 남북한 관계는 이른바 ‘햇볕정책’에 의해 시작된 화해의 과정을 통해 질적인 전환을 이뤘다. 반세기 동안 축적된 적대감과 원한이 완화됐다. 지금 필요한 것은 탁월한 지도력과 일련의 합리적인 정책을 통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는 용기다. 모든 사람이 평화를 바란다. 문제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점과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통일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문제, 특히 중요한 문제들은 한 가지의 단순화된 해결책을 허용하지 않는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필자는 오랫동안 한국의 통일은 정치적 의제가 아닌 인간적인 의제여야 한다고 얘기해 왔다. 남북 두 국가 체제를 통합하는 데 집중하는 대신, 인간의 구체적인 조건, 즉 영양, 보건, 교육 그리고 사람의 자기실현과 같은 분야에서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삼는 것이 진정한 통일의 길이다. 정치적 통일이 반드시 행복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건 많은 역사적 사례가 입증해 준다. 인간의 복지에 앞선 국가적 권력과 지도자의 명예를 위한 통일은 정치적 성취는 되겠지만 인간적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정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수천만, 수백만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국민 통합과 한반도 미래에 대한 어떤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작은 제안 하나를 하고자 한다. 남북은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의 통일을 이루려고 한다. 남한이 경제적, 문화적 지렛대를 가지고 있다면 북한은 정치적, 군사적 카드를 쥐고 있다. 평화와 안정에 대한 어떤 접근도 이와 같은 기본적인 딜레마를 해결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남북을 가두고 있는 비극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있다. 세계의 관심은 북한의 핵무기에만 쏠려 있다. 그러나 설혹 핵무기가 폐기되고 평화협정이 체결된다고 해도 평화가 이뤄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북한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개혁·개방에 나서기 어려운 조건에는 변함에 없다. 바로 남한의 존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남한과의 체제 경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자 진정한 ‘혁명의 나라’


▎8월 3일 북한에서 열린 제16차 국가발명전람회를 찾은 북한의 주민들. / 사진:연합뉴스
북한 개혁·개방의 근본적 장애물도 여기서 발생한다.

첫째는 북한이 자신의 과거를 부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과거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더라도 과거 중국의 덩샤오핑, 구소련의 흐루쇼프가 그랬듯이 과거를 잊고 새로운 길에 나서야 한다. 이는 남한이 없으면 가능한 일이다. 할아버지(김일성), 아버지(김정일)가 없으면 가능하다. 지금은 남한이 버티고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미라가 정치적으로 살아있는 북한에서 과거의 잘못을 지적하고 새로 해야 한다는 소리를 할 수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비슷한 말씀을 했다. 공산주의 국가들이 개방됐을 때, 국민들은 외부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알게 되고 자신들이 정부에 의해 세뇌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결국 정권에 위협으로 이어질 것이다. 북한 정권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메시지를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둘째는 북한이 과거야 그럭저럭 덮는다고 치고 베트남이나 중국식 개혁·개방에 나설 때의 일이다. 그래 봤자 북한은 남한에 훨씬 뒤쳐지는 후진국에 불과하다. 경제성장을 배우고자 베트남이 스승처럼 받드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개혁·개방을 하게 되면 주민의 왕래가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현 북한 체제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생긴다. 무엇보다 북한의 유일한 강점인 군사적 수단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자신이 가장 강한 것(군사)을 놓아 버리고 가장 약한 것(경제 개발)을 잡을 수는 없다.


▎북한 평양 대동강변의 미래과학자거리에 들어선 초고층 아파트 단지들. / 사진:노동신문
반면에 북한은 다른 어느 나라도 갖고 있지 못한 이점(利點)이 있다. 바로 저개발 그리고 우수한 통치 능력이다. 이 두 가지가 모두 외부의 눈으로 보면 부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결함은 인류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난제를 정면으로 다룰 수 있는 최고의 강점이다. 이 강점을 활용하는 것을 통해 북한은 세계의 최고 선진국으로, 진정한 혁명적인 정권으로 그리고 ‘노동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낙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북한이 갖는 이점(利點)으로는 역설적이게도 ‘저개발 저투자’ 상태의 국가라는 점을 들 수 있다. 과거의 유산(遺産)이 주는 부담이 없는 나라다. 또 주민들이 고도의 소비 중독에 길들여져 있지 않다는 점도 유리하다. 소비 수준을 낮출 수 있는 ‘저소비’ 나라라는 점에서 소비를 넘어 낭비에 물든 이른바 선진 국가들과는 대별된다고 하겠다.

대부분의 저개발국은 통치 구조가 허술하다. 사회 질서 유지가 어렵고 치안도 불안하다. 부랑자로 넘치는 게 후진국의 특징이라면 북한은 통치·관리 능력이 탁월하다. 나아가 몇 년에 한 번씩 선거를 통해 정권의 지지를 확인할 필요가 없는 나라가 북한이다. 30년 넘게 장기집권이 가능하므로 현 단계에서 장기 계획을 세워 ‘저소비 클린 에너지’ 국가로 이행할 수 있지 않을까. 생태 환경에 부합하는 국가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관광 자원을 외화 가득 수입원으로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잘사는 나라로 변신 가능한 곳이 바로 북한이다. 최근에는 환경을 깨뜨리지 않고도 상당히 높은 생산성을 이룰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점차 교통혼잡이 가중될 평양에 전기 자동차 시스템을 도입하고 스마트시티 개념으로 간다면 주민들은 편리하고도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지구촌 국가 운영 프레임을 뒤집을 대반전


▎미래과학자거리 건설 현장 상공을 비행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전용기. / 사진:연합뉴스
지금은 첨단의 지식, 기술을 통한 혁신이 가능한 시대다. 기초적인 소비재 대량생산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당위성과 맞물린다. 일상생활에서 에너지를 절약해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의 배출을 줄이는 시대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응용물리학과 화학, 생물학 영역에서 새로 보고되는 혁신기술을 북한 사회에 전면적으로 적용해 봄직하다. 실험실에서 개발 중이거나 상용화를 앞둔, 미지의 신기술들도 북한을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면 인류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공할 수도 있다. 자연계에서 찾을 수 있는 최상의 아이디어들이 북한 체제의 새로운 변용을 뒷받침한다면 전 세계 국가들에 영감과 결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 개발 모델을 밑바닥에서부터 뒤집어버림으로써 전 세계에 국가운영의 프레임을 전환토록 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동서 양 진영의 사회, 경제, 나아가 사고의 근저를 재구성하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확신해 본다.

북한 안보의 가장 중요한 위협 요인은 미국의 군사력이 아니다. 필자의 관점이지만 한반도 미군의 역할은 전면전을 방지하는 데 방점이 주어져 있다. 북한의 군사 도발에 대한 저지(deterrence)만큼이나 남한의 반응에 대한 억제(restraints) 역할을 해왔다. 진정한 북한의 위협 요인은 자신들이 거듭해 온 ‘실패’ 그 자체다. 앞서 언급한 ‘저개발 저소비’ 국가로서의 탈바꿈은 지금까지의 북한 실패가 성공으로 전환케 하는 대반전을 가져온다. 북한은 1948년 정권 수립 당시의 혁명적 시대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봉건 유습 철폐, 평등사회 건설, 양성 평등, 반(反)제국주의 등 새로운 가치에 매료된 많은 지식인이 북한을 택했던 것이다. 나 자신 만약 그 당시 성년의 나이였다면 북한을 택하였을 것이다.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북한도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개발에 나서리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필자는 지금의 북한 체제로는 그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긴다. 설령 개혁·개방이 가능하다고 치자. 외국 자본과 기술을 들여오고 싼 노동력을 활용해서 풍부한 부존자원을 개발하면 갑자기 부자가 될 수 있다. 졸부가 생길 것이고 국가는 수입이 늘어날지라도 대중은 여전히 가난하다. 러시아·사우디·이란·이라크처럼 후진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되풀이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민의 요구를 억누르고 압제를 해야 한다.

반대로 스마트 개념으로 4차 산업혁명과 같은 높은 수준의 기술을 받아들여 오염을 수반하지 않는 고소득의 산업을 일으키면 사정이 달라진다. 친환경적 산업을 개발하면 외국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무공해 산업, 친환경 농법. 태양열, 조력과 같은 천연에너지로 운용되는 국가라면 정말 혁명적 나라가 되면서 통치 구조의 정당성도 획득한다. 인류사에서 획기적인 진보를 이룩한 나라로 기록될 것이다.

‘보험용’이라면 핵무기 한두 개쯤 용인할 수도


▎대륙간탄도미사일급 ‘화성-14’ 개발에 참여했던 과학 기술자들을 환영하는 평양 주민들. / 사진:조선중앙통신
전 세계에서 이러한 시도를 할 수 있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후진국이면서 가난한 나라는 많다. 하지만 거지가 한 명도 없고 질서와 통제가 유지되는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효율적인 관료제도가 있어 변화에 따르는 혼란을 관리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북한은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이 명분과 현실에서 성공하면 다른 나라들도 하나둘씩 조금씩 따라가게 된다. 국제사회에 앞서 인류 문명에 기여하는 북한은 정권 안정을 기할 수도 있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북한에는 최적의 선택이 된다고 믿는다.

물론 지구촌의 큰 흐름인 성장주의 전략과 배치되는 경제정책이라 위험부담이 따르는 건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시대에 역행하는 모험이라는 의견도 제기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미 어느 정도 발전 궤도에 올라선 나라들은 따르기 힘든 모델이라는 점에서 북한만이 시도할 수 있고 그게 성공하면 세계 각국에 강력한 동기를 제공할 수 있다. 사람이 시장에 봉사하는 경제가 아니라 시장이 사람에 봉사하는 경제라는 점에서 대안적 모델이 될 것이다. 같은 내용의 논문을 학술회의에서 발표하거나 해외에서 강연을 하기도 하고 축약된 논문이 해외 전문 잡지에 실린 일도 있다.

북한이 남한과 같은 기준, 같은 모델 안에서 경쟁하려 들면 필패다. 남한과 전혀 다른 모델로 간다면 승산이 있고, 나중에 남한이 북한을 부러워할 수도 있다. 남한과의 경쟁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게 방법이다. 남한의 모델이나 자본주의 모델로는 단시일 내에 잘살 수도, 남한을 앞지를 수도 없다. 중국과 같은 모델을 취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마오쩌둥 사후 경제 개발에 나서면서 그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공(功)과 과(過)를 구분해야 했다. 북한은 선대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다. 자기네는 계속 잘해 왔고 우월하다고 주장해야 유지되는 나라여서 그렇다. 그런데 중국이 남한에서 기술을 배워갔듯이 북한도 남한에 뒤쳐졌음을 인정해야 일이 된다.

두 체제가 서로 다른 모델로 발전하는 게 가장 좋은 방도 아닐까? 그게 가능하게 하는 건 고급 기술력의 뒷받침이다. 한국이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정보기술(IT) 기반으로 발전했듯이 북한도 현 여건 위에서 4차 산업혁명 기술로 얼마든지 도약할 수 있다. 북한이 이런 방향의 발전 궤도에 접어든다면 핵무기 한두 개쯤 보유하는 걸 국제사회가 용인할 수도 있다고 본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에 대한 일종의 보험용으로 말이다. 나중에 북한이 우월해지면 핵무기를 보유할 이유도 사라질 것이다. 핵무기의 가장 확실한 철폐는 그것을 갖고 있어서 스스로에게 부담과 손해가 되는 경우에 가능해진다.

남한은 남한대로 고도의 산업 능력을 유지하고 북한은 북한대로 인류사에 가장 훌륭한 사명을 수행하면 된다. 북한의 지도층이 진지하게 검토해 봐야 하는 방법론이라고 본다. 이는 논리를 떠나 현실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반도의 미래는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하고 실천할 수 없는 일을 실천할 때 더 큰 기회를 갖게 된다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 삶의 터전인 이 행성의 미래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국가가 바로 북한이 될 수 있다.

201809호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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