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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기로에 선 대한민국 성장동력 바이오산업 

중국 뛰기, 일본 날기, 한국은 줄타기 

김도년 중앙일보 기자
‘미래 먹거리’ 바이오산업 주도권 놓고 세계 각국 총성 없는 전쟁…융·복합 확대하려 규제 푸는데, 한국은 반(反)기업 정서에 가로막혀

구글은 2015년 이후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 총 58건을 투자했다. 투자 분야도 다양하다. 구글이 설립한 벤처캐피털 구글벤처스는 개인 유전자 분석부터 암 치료제 개발, 알츠하이머·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신경 질환 치료제 개발 등에 대한 투자를 계속 늘리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구글벤처스는 2014년 총 투자금 20억 달러(약 2조2600억원)의 36%를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 투자했다. 한 해 전만 해도 6%대에 그쳤던 투자 비중이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구글은 의학·공학 박사급 인재 70명(2015년 기준)으로 구성된 전담 투자팀을 구성하기도 했다.

투자뿐만이 아니다. 구글은 직접 글로벌 제약사들과 협업을 통해 자체 기술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구글 내 프로젝트 팀에서 2015년 분사한 베릴리는 노바티스·사노피·존슨앤존슨·GSK 등과 손잡고 바이오 기술 및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신개념 의약품과 헬스케어 기기들을 개발 중이다. 가령 당뇨병을 진단할 수 있는 콘택트렌즈, 수술용 인공지능(AI) 로봇, 인체에 투입해 전기 신호로 만성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생체전자의약품 등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 미래형 바이오기술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구글이 이렇게 바이오산업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기존 보건·의료, 생명공학 중심에서 미래에는 ‘데이터 분석과 예측’으로 바이오산업 판도가 바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구글은 강점인 인공지능, 빅데이터 같은 IT를 통해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전자 의료 데이터 분석·관리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획기적인 치료제 등에 대해서는 신속히 허가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있어 관련 시장이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민세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2020년 헬스케어 관련 데이터 규모는 2013년에 비해 15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며 “구글은 이런 흐름에서 데이터와 IT가 있는 곳에 진입해 회사의 강점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IT와 BT 경계 허문 구글의 바이오 투자


바이오산업 투자에 열을 올리는 IT기업이 구글만 있는 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7월 17일(현지시간) 화장품업체 에스티로더의 명예회장 리어나도 로더와 함께 알츠하이머 조기 진단법 개발에 앞으로 3년간 3000만 달러(340억원)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게이츠는 또 지난해 11월 치매발견펀드에 5000만 달러(570억원)을 투자했다. 페이스북도 2016년 챈 저커버그바이오허브를 설립해 인체를 움직이는 세포 지도를 만들고 에이즈·알츠하이머 등 난치병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IT기업들이 바이오 시장에 주목하는 사이 한국에선 바이오산업 위기론이 확산됐다. 업계에선 분식회계(재무제표를 거짓으로 꾸밈) 논란과 과잉 규제, 시장 내 불확실성 증폭으로 한국 바이오산업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는 진단이 잇따랐다. 그동안 삼성과 SK·LG 등 대기업이 바이오산업에 참여하고 국내 기업들이 개발한 의약품이 해외 시장에서도 호평을 받는 등 돈과 기술은 충분히 무르익었다는 긍정적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일부 바이오기업이 시장에서 신뢰를 잃은 여파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한 것이다.

위기는 글로벌 순위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티픽아메리칸]이 선정하는 바이오산업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2009년부터 매년 떨어져 2016년에는 24위까지 내려갔다. 신흥국 중에서도 경쟁력이 뒤처지고 있다. 미국 바이오컨설팅업체 푸가치컨실리엄에 따르면 2016년 싱가포르·이스라엘·대만과 함께 상위권에 들었던 한국은 지난해 칠레·멕시코 등과 함께 중위권으로 전락했다.

바이오산업의 위기는 기업이 자초한 측면도 컸다. 한미약품은 수천억 원대 신약기술 수출로 한국 바이오산업의 가능성을 확인해 줬지만 2016년 주가조작 의혹에 휩싸였다. 독일 제약업체 베링거인겔하임과 계약한 8500억원 규모 기술 수출 계약이 해지됐다는 악재성 공시를 하기 전 미공개 정보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한미약품은 결국 지난해 금융위원회로부터 역대 최대 규모인 2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올해 바이오업계에 찬물을 끼얹은 결정적인 계기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사건이었다. 셀트리온과 함께 한국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시장의 유망주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결국 지난 7월 12일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고의적인 분식회계’ 혐의를 받아 검찰 고발이 결정된 사건은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삼성 계열사에서 발생한 분식회계 사건이란 점, 증선위가 분식회계의 고의성을 인정했다는 데 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 의혹을 받은 건 지난해 초부터였다. 이 회사는 당시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로부터 계열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를 부풀려 이익 규모를 뻥튀기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금융감독원은 1년1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이 같은 의혹에 합리적 근거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지난 5월 사건을 증선위로 넘긴 것이다. 증선위는 세 차례에 걸친 회의 끝에 금감원이 지적한 ‘이익 뻥튀기’ 의혹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수조원대 ‘콜옵션 부채’를 재무제표 주석에 공시하지 않은 것은 중요한 회계기준 위반으로 봤다.

콜옵션 부채는 일종의 우발부채다. 특정 조건에서 한순간에 부채가 될 수 있는 금액이 수조 원에 달한다는 정보는 주가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증선위는 이를 재무제표 주석에서 누락한 것은 가볍게 여길 사안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재무제표 주석은 재무제표의 일부다. 이익이나 자본금 규모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더라도 주석에 기재할 사안을 누락할 경우 중요도에 따라 분식회계라고 보는 것이다. 현재 이 사안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배당돼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금감원은 종전에 지적한 ‘이익 뻥튀기’ 의혹 부분을 재조사하고 있다.

회계분식 문제뿐 아니라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연구개발(R&D) 비용의 회계처리도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신약이 나오기까지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 산업 특성상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적자를 보면서도 연구개발비를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특히 전통적인 제약회사와 달리 국내 바이오시밀러 산업은 자금력이 부족한 신생 업체들이 주도하다 보니 취약한 재무구조를 감추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이 때문에 비용으로 털어 손실로 처리해야 할 연구개발비를 재무제표상 ‘자산’으로 처리해 일종의 ‘자산 뻥튀기’를 하는 기업이 나타나기도 했다. 신생 바이오 회사 차바이오텍은 연구개발비를 자산으로 인식해 지난해 5억3000만원의 흑자를 냈다고 주장했지만 회계감사 법인은 “연구개발비는 비용으로 처리하는 게 맞다”며 8억8000만원 적자로 실적을 수정하도록 했다. 금감원은 올해 3분기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연구개발비 회계처리를 제대로 하는지에 대한 일제 조사(테마감리)를 실시해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세계는 뜀박질, 한국은 바이오 위기로 뒷걸음질


▎삼성바이오로직스(사진)의 분식회계와 네이처셀 주가조작 의혹 등 바이오 업계에서 잇따라 터져나온 잡음이 국내 바이오산업 전반을 침체의 늪에 빠뜨렸다.
국내 일부 바이오 기업이 자산과 이익을 부풀려 온 관행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 사노피·화이자·노바티스 등 글로벌 제약사들은 연구개발비 대부분을 비용으로 처리하고 있다. 회계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기준에 따라 보수적인 회계처리 풍토를 정착시켰다면 산업의 성장성과는 상관없는 회계나 공시 위반,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의 이슈로 발목 잡히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바이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련의 사건을 걸음마 단계에 있는 한국 기업이 겪을 수 있는 성장통으로 받아들인다. 국내 바이오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후진적인 관행들을 정리하고 글로벌 시스템에 맞추려는 노력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제재 이후 한동안 침체 분위기에 빠졌던 바이오산업이 최근 들어 국면 전환기를 맞고 있다. 물꼬는 삼성이 텄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일자리 확대’를 요청한 정부에 대한 화답으로 반도체·인공지능·5G·자동차 전장 사업 등에 향후 3년간 180조원의 투자를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바이오 분야에 대한 투자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이 부회장은 8월 6일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찾은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만나 바이오시밀러 약품 가격 결정을 기업 자율에 맡겨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한국 바이오 기업은 한창 발육기에 있다. 셀트리온 같은 기존 중견 업체뿐 아니라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에선 총수가 직접 바이오산업 육성을 진두지휘하기도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정부의 일자리 확대 요청에 180조원의 투자 약속으로 화답했다. 이 결정으로 바이오산업은 국면 전환기를 맞게 됐다. / 사진:연합뉴스
SK의 경우 최태원 회장과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바이오산업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최 회장은 SK㈜의 자회사 SK바이오팜과 SK바이오텍을 통해, 최 부회장은 SK케미칼과 SK바이오사이언스를 통해 사업 확장을 노리고 있다. LG도 LG화학을 중심으로 한 시장 확장 전략을 펴고 있다. LG화학은 바이오 사업을 담당하는 생명과학사업본부의 연구개발 인력을 올해 400명으로 늘리고 2020년까지 450명 규모로 확대할 방침이다. 바이오시밀러뿐 아니라 신약 연구개발에도 지난해보다 40% 늘어난 14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 같은 투자로 2025년까지 매출액 1조6000억원을 달성하는 것이 LG화학의 목표다.

세계 바이오 시장에선 후발 주자인 한국 대기업은 해외 원천기술 수입과 기술기업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2년 미국 바이오젠과 제휴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한 것도 원천기술 확보 차원이었다. SK가 2017년 아일랜드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원료의약품 생산공장을 1700억원에 인수하고 올해 7월 미국 의약품 생산기업 엠펙을 8000억원에 인수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박준구 SK바이오텍 대표는 “후발 주자가 글로벌 제약사들을 빠르게 따라잡는 방법은 기술력을 보유한 해외 업체를 인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제약·바이오 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는 이유는 분명하다. 고령사회로 진입한 국면에선 전 세계적으로 의료비 지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의료비 지출 증가는 의약품과 의료 서비스 수요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신현준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한국은 처음으로 65세 이상 노인 비중이 0~14세 유소년 비중을 넘어 고령사회로 진입했다”며 “노인성 질환에 대한 연구가 많아지고 줄기세포와 면역세포, 유전자 치료제 등 다양한 재생의학 분야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바이오시밀러 산업의 성장은 범세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오시밀러 의약품 사용량은 지난 3년간 서유럽에서는 매년 평균 10%씩, 북유럽에서는 20%씩 늘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도 바이오시밀러 최초로 작시오(뉴포젠 시밀러)와 램시마의 허가를 받은 뒤 총 11건의 FDA 허가 사례가 나왔다.

고령사회로 의료 수요 증가… 바이오 성장은 필연


▎지난 5월 참여연대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제약사 산도즈는 바이오시밀러 사용으로 환자 접근성은 104% 늘고, 의료비 절감 효과는 약 5억5100만 유로(71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복제약인 바이오시밀러가 오리지널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임상시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의약품 시장조사 전문기업인 아이큐비아는 지난해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 규모는 42억 달러(4조7500억원)로 파악했다. 2013년 9억 달러(1조200억원) 대비 4년 만에 4.7배 성장한 수치다.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성공 가능성은 밝은 편이다. 셀트리온은 2015년부터 유럽에서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인 램시마(레미케이드 시밀러)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6년부터 자가면역 질환 치료제 베네팔리(엔브렐시밀러)를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각각 마케팅 파트너사는 화이자와 바이오젠이다. 판매사를 기준으로 한 지난해 매출액은 램시마 4억1900만 달러(4700억원), 베네팔리 3억7080만 달러(4200억원)에 달한다.

한국산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이 선진국에서 팔릴 수 있을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최근 들어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에는 셀트리온의 허쥬마(허셉틴 시밀러)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온트루잔트(허셉틴 시밀러) 등이 매출 성장에 기여할 새로운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다. 또 바이오 연구가 꾸준히 늘면서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 경쟁력은 세계 11위(2015년)에 올랐다.

구완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바이오시밀러 산업은 성장 국면 초입에 있다”며 “한국의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100%에 가까운 임상 성공률로 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오산업에 중국·일본 등 주변국도 경쟁력을 키워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지난해부터 ‘익명가공정보’에 한해 본인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 규제를 완화했다. 개인 의료정보에 대한 규제도 풀렸다. 덕분에 일본은 의료기기와 항체 의약품 분야에서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다. 올림푸스 광학, 후지필름, 도시바 의료 등 전통 전자·광학기기 기업들은 아시아의 10대 의료기기 혁신 주체로 꼽히고 있다. 또 아베 정부는 유도만능줄기세포 분야를 키우기 위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줄기세포치료제 및 재생의료 시장 선점을 위해 전략 특구를 지정하고 임상과 상업화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중국·일본 잡으려면 과감한 규제 완화 필요


▎국내 바이오산업계의 맏형격인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셀트리온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함께 한국의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후발 주자 중국의 무기는 풍부한 자금력이다. 중국 정부는 2015년 3월 바이오기술 등 첨단 산업을 육성하는 ‘중국제조 2025’를 통해 신약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이끌어 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국은 대규모 자금을 세계 1위 바이오 기술력을 가진 미국 기업에도 투자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벤처캐피털은 올 1분기에만 미국 바이오기술 기업에 14억 달러(1조5800억원)를 투자했다. 이는 미국 바이오기업의 올 1분기 전체 자금 조달액(37억 달러)의 40%에 해당하는 규모다. 중국의 경쟁력은 지난 6월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바이오 행사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 2018’(바이오USA)에서 입증되기도 했다. 중국 전시관은 전시장 내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중앙 출입구 앞에서 머크·존슨앤존스·화이자 등 세계적인 제약사와 나란히 자리했다. 45개 중국 기업이 참여한 전시관도 76개 참가국 중 최대 규모였다.

한국도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의 하나로 바이오 지원책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5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차세대 통신, 드론 등 13개 분야에 올해 약 1조3334억원을 투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총 9조230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13개 분야 중 맞춤형 헬스케어와 혁신 신약 등 2개 분야에만 투자 금액의 절반에 육박하는 4조40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한 맞춤형 헬스케어 연구개발에 2조7600억원을 투입해 암 진단·치료법과 병원정보 시스템 개발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바이오산업의 성공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활력을 키우는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제약·바이오 업계가 완화되길 바라는 대표적인 규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월 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건의한 내용에 담겨 있다. 이날 이 부회장은 바이오 의약품 원료물질 수입 개선, 약가 정책 개선, 세제 완화 등을 요청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국내 바이오 업체들은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을 주된 사업 모델 중 하나로 삼고 있다. CMO 방식은 위탁을 하는 회사에서 생산 기술 이전이 필요하다. 현재 기술 이전 과정에서는 의약품을 만드는 원료물질이 의약품원료물질이 아닌 화학물질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통관 등에서 허가 절차가 최대 120일 걸린다. 기술 이전 과정에서도 원료물질을 의약품원료물질로 분류해 달라는 것이 삼성의 요청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허가 절차가 개선되면 최대 120일 걸리는 통관 관련 기간이 7일 정도로 확 줄어든다”고 말했다.

‘양날의 검’ 규제 완화, 정부가 답할 차례


▎연구실에서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셀트리온의 연구원.
약가 정책 개선은 정부가 통제하는 약품 가격을 업계 자율에 맡겨 달라는 취지다. 현행 ‘약가 규정’에 따르면 오리지널 의약품은 특허 기간이 끝나면 건강보험 약가를 30% 내리게끔 돼 있다. 복제약인 바이오시밀러 약품 가격도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의 70%까지만 받도록 하는 상한선이 있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 같은 가격 통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규제는 막 출시된 국산 바이오시밀러들이 시장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게 바이오업계의 주장이다.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보다 낮게 책정되는 만큼 제품 개발에 들어가는 투자비를 회수하는데 불리하다는 것이다.

세제 완화도 제약·바이오업계의 숙원이다. 바이오의약품은 신약과 복제약 개발비 중 임상 비용이 50% 이상으로 높다. 현재는 신약 해외 임상에서 3상 비용, 시밀러는 임상 비용 전체가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한 제약업체 관계자는 “경쟁력 있는 제약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임상 비용 세액공제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개인 의료정보 활용에 대한 규제 완화 역시 업계 단골 건의사항 중 하나다. 국민건강보험 덕분에 전 국민의 의료정보는 정부에 의해 수집·관리되고 있다. 이 방대한 빅데이터는 미래헬스케어를 육성하는 기반이 되기에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바이오업계의 연구개발에 전혀 활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공익적 목적’에 한해서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법률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구글 등 민간 IT기업이 의료 데이터 분석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미국과 대조적이다.

제약·바이오 규제 완화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다. 개인 의료 데이터 규제를 완화하면 시민의 의료정보가 기업의 무분별한 이윤 추구에 활용될 것이란 불안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약가 책정을 시장 가격에 맡길 경우 가계가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도 오를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바이오산업 규제 완화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정부도 규제 완화에 대해선 다소 유보적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건의를 들은 김동연 부총리는 약값 자율 결정 요청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겠다”고만 했다. 실제 검토를 하겠다기보다 ‘신중론’에 가까운 뉘앙스다. 다만 정부는 바이오산업을 8대 선도 산업으로 지정해 범정부적으로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바이오산업 규제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앞으로 이 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데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규제 완화 없이는 혁신도 없다는 주장과 대기업의 산업 장악력 확대를 경계하는 반대 목소리 사이에서 정부의 줄타기가 언제쯤 끝날지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 김도년 중앙일보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201809호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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