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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財테크 | 고란의 ‘알(면)쓸(모있는)신(기한)재(테크)’(5)] 나라님도 못 구하는 보험사 ‘호구’ 안 되려면? 

소비자 현혹한 ‘절판마케팅’ 꼼수 쓰던 보험사, 수천억 보험금 폭탄… 재테크 용도로 활용 피하고 가입 전 인터넷서 정보 비교 꼼꼼히 해야 

고란 중앙일보 기자
‘보험사 놈들은 사기꾼’. 보험 관련 기사에 빠지지 않는 댓글이다. 금융감독원에 접수되는 민원의 상당수가 보험 분야다. 온정에 호소한 상품 판매 관행이 불완전 판매로 귀결되는 탓이다. 가입 땐 눈에 띄지 않았던 깨알 약관이 덫이 된다. 어떻게 하면 부비트랩에 걸리지 않고 보험에 가입할 수 있을까.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고 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사의 상술 가득한 불완전판매의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남는다. 보험사는 갖은 핑계를 대며 법망을 빠져나갈 방안을 궁리할 뿐이다. ‘호구’가 되지 않으려면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즉시연금보험 절판마케팅 주의하세요… 소비자경보 발령’.

2012년 9월 26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앞서 그해 8월 8일 정부가 세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한 줄이 보험사와 금융소비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10년 이상 유지 시 부여했던 즉시연금보험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없앤다’.

돈 냄새는 장사꾼이 먼저 맡는다. 보험사가 민첩하게 움직였다. 홈쇼핑 시청자의 심장을 뛰게 하고, 휴대전화를 집어 들게 하는 마법의 단어를 소환했다. ‘마감 임박’. 지금 놓치면 다시는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것만 같다고 소비자를 현혹했다. 이른바 ‘절판마케팅’이다. 연내에만 가입하면 세금을 한 푼도 안 낸다. 해를 넘기면 상속형의 경우엔 15.4%, 종신형은 4.4%의 세금을 내야 한다.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벤저민 프랭클린)지만 피할 길이 있다. 2012년이 가기 전에만 가입하면 된다. 상황이 이러자 조바심이 난 쪽은 되레 소비자다. 보험사와 은행은 거들 뿐이다.

전략은 유효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2년 들어 세제 개 편안이 발표된 8월 8일까지 즉시연금에 새로 가입하는 계약자(건수)는 하루 평균 약 113건이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인 8월 9일부터 한 달 동안에는 하루 평균 약 334건의 가입 계약이 새로 이뤄졌다.

“즉시연금 불완전 판매 우려 있다”… 5년 뒤 현실화

즉시연금은 일정 금액을 한번에 보험료로 낸 뒤 보험사별로 정한 금리(공시이율)에 따라 연금(보험금)을 매달 받는 보험상품이다. 2000년대 초반 출시돼 은행 이자보다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고, 10년 이상 가입하면 세금도 면제돼 목돈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돈이 있어야 대접을 받는 요즘 세태에선 상속을 공공연히 바라는 자녀의 눈치를 피해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각광받기도 했다.

보험사들 입장에서도 즉시연금은 효자 상품이다. 들어올 돈(보험료)은 한번에 들어오고, 나갈 돈(월 지급 보험금)은 나눠 나가다 보니 회사 덩치를 단번에 키울 수 있다. 여기에 절판마케팅까지 더해지는 바람에 즉시연금은 2012년 하반기에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렸다.

불행의 씨앗에 물을 준 것은 글로벌 저금리 기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은 경쟁적으로 돈을 찍어냈다. 금리는 낮아졌고 돈은 넘쳐났다. 분명 2012년 가입 당시엔 4%대 후반의 이자를 쳐줬는데, 시간이 갈수록 가입 때 예상했던 연금액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문제는 가입자들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공시이율은 보험사가 일종의 기준이 되는 금리(예를 들어 국고채 수익률 등)에 자산운용 성과를 반영해 일정 기간마다(주로 매달) 금리연동형 보험상품에 적용하는 이율이다. 거칠게 말해 금리가 내려가면 공시이율도 낮아진다. 그런데 당시 즉시연금 가입자들의 상당수가 공시이율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약관에 나와 있기는 했지만 돋보기를 들이대야 겨우 읽을 수 있는 글을 꼼꼼히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입자들은 당시 보험사가 보여준 4% 후반대 금리를 계속 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게다가 공시이율에는 단서 조항도 붙었다. 먼저 이자를 적용하는 원금의 범위다. 예를 들어 A가 즉시연금에 1억원을 넣었다면 A는 1억원 전체에 공시이율(예를 들어 4.5%)이 붙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아니다. 원래 보험료 1억원에서 위험보험료와 사업비 등을 뺀 금액, 곧 원금에서 모자란 금액에 공시이율을 적용해 보험금을 준다.

금감원은 당시 “즉시연금 가입 시 상품 설명 불충분 관련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며 “보험사와 은행의 적극적인 절판 마케팅으로 불완전 판매 우려가 있어 향후 즉시연금 관련 민원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지난해 6월 사건이 터졌다. 2012년 삼성생명 즉시연금에 가입한 A씨가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 민원을 냈다. 핵심은 “계약보다 연금액이 적다”는 거였다. 약관대로라면 적은 게 맞지만 자신은 가입할 때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분조위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약관에 상품 구조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적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삼성생명도 이에 동의했다. 지난 2월 조정안이 확정됐다.

문제는 그 이후다. 금감원이 전선을 확대했다. A씨를 비롯한 전체 즉시연금 가입자에게도 부당하게(?) 못 받은 연금 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괄구제할 경우 삼성생명은 5만5000명에게 4300억원가량을 지급해야 한다. 지난해 삼성생명이 올린 순이익이 1조2600억원이다. 금감원의 권고를 따르자면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수익의 약 3분의 1을 날려야 한다.

버티기 들어간 보험사, 자존심 건 금감원


지난 7월 26일 열린 삼성생명 이사회에서 이사들은 “법적 쟁점이 크고 지급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며 금감원의 일괄 구제 신청을 거부했다. 대신 최저보증이율(2.5%, 아무리 공시이율이 떨어져도 보장해 주는 최저 수준의 이율) 예시 금액과 실제 받은 연금액의 차액만 지급하기로 했다. 지급 규모는 370억원이다.

이어 삼성생명은 8월 13일 돈을 환급해 준 A씨가 아닌 다른 민원인을 상대로 소송 절차에 착수했다. 정면 돌파를 선언하면서 ‘법대로 하라’는 논리를 앞세웠다. 회사 측은 “향후 법원에서 ‘추가지급 의무가 있다’는 판결이 확정되면 금감원 분조위가 처음으로 지급을 권고한 지난해 11월 이후 소멸시효가 완성된 지급액에 대해서도 완성 여부와 무관하게 전액 지급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생명의 저항에 한화생명도 힘을 보탰다. 8월 9일 삼성생명과 비슷한 내용의 분쟁조정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서를 금감원에 제출했다. 한화생명은 즉시연금 미지급 규모가 삼성생명에 이어 둘째로 크다(2만5000명, 850억원).

이쯤 되면 확전이다. 즉시연금을 판매한 21개 보험사 가운데 금감원에 백기투항한 곳은 3곳이다. AIA(25억원)·신한(24억원)·DB(2억원)생명은 모든 계약자에게 환급해 주겠다고 했다. 환급 규모가 작으니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KB·KDB·DGB·ABL·처브라이프·현대라이프생명 등은 버틸 때까지는 버텨야 한다. 금감원 권고대로 즉시연금을 추가 지급할 경우 그 규모가 작년 한 해 당기순이익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전쟁이 선포됐으니 대응해야 한다. 반응하지 않고 있으면 금융당국의 권위가 또 한 번 위협받을 수 있다. 금감원이 일단 들고 나온 카드는 민원인 소송 제도다. 금융분쟁조정세칙에 따르면 금감원은 분조위가 신청인(민원인) 청구를 인용했거나 인용 가능성이 큰 사건에 대해 피신청인(금융회사)의 조치가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소송을 지원할 수 있다. 일단 삼성생명을 상대로 분쟁조정을 신청한 84명 가운데 한 명이라도 삼성생명을 상대로 법원에 보험금 청구 소송을 내면 소송을 지원할 계획이다.

불행의 씨앗… 부실약관이 화 불렀다


▎수천억 원의 즉시연금보험 미지급금을 두고 금융당국이 불완전판매행위 책임을 보험사에 돌렸다. 약관대로 지급한 건 맞지만 가입할 때 약관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감원의 소송 지원은 2010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금감원의 전투 의지를 읽을 수 있는 포인트다. 소송 지원은 비용적인 측면, 제출자료 등에서 이뤄진다. 금감원은 예산 범위 내에서 소송비를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금감원은 민원인 요청을 받아 해당 보험사에 대한 검사 결과나 내부 자료 등을 법원에 제공할 계획이다. 금감원의 소송 지원으로 법적 공방이 시작되면 금융당국과 보험사 간 대리 법정 소송이 시작되는 셈이다.

확전일로로 치닫고 있는 이 전쟁의 시작은 약관이다. 계약은 당사자 양측이 맺는 문서화된 약속이다. 원칙대로라면 보험에 가입할 때 보험사는 모든 가입자와 개별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 얼마나 비효율인가. 그래서 약관을 만들었다. 계약의 당사자(보험사)가 다수의 상대방(가입자)과 계약 체결을 위해 미리 작성해 놓은 계약을 말한다. 내용은 계약 당사자 간의 권리의무에 대한 사항, 의무불이행 시 가하는 제재, 약관의 존속기간 등으로 구성된다.

모든 계약이 그렇듯 약관 역시 명확해야 다툼의 여지가 없다. 부실한 약관은 화를 부른다. 하지만 최근 약관 간소화 추세와 맞물려 어디서 지뢰가 터질지 알 수 없다. 문제가 된 삼성생명 즉시연금(만기환급형)의 경우 약관에 ‘만기환급 재원을 뗀다’는 표현이 없다. 분조위는 이 점을 들어 부실약관이라고 판단했다. 다른 보험사의 즉시연금 역시 삼성생명과 유사한 약관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생명이 제기한 소송의 결과에 따라 보험사 전체가 약 8000억원을 물어내야 할지 모른다. 여기에 금감원의 변화된 기조도 보험사 입장에서는 지뢰밭이다. 새 정부 들어 금감원의 정책 기조가 소비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약관의 기본정신에 비춰 봐도 즉시연금 관련해선 보험사 잘못이 크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5조 2항에는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른바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이다. 약관이 모호하다면 보험사에 불리하게, 반대로 말해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

그럼에도 일단 보험사들은 자신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삼성·한화생명 등이 국내 4~5군데 대형 로펌에 자문한 결과 모두가 ‘약관상 문제가 없다’고 회신해 왔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험사들도 엄연한 기업이다.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떼지 않으면 기업이 돌아갈 수가 없다. 되레 사업비를 공제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게다가 보수적인 판결을 내리는 법원의 특성상 경향적으로 가입자보다는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잦다.

보험 가입할 때 호구 취급 안 받으려면


▎인터넷에는 똑똑한 소비자가 되도록 돕는 보험금융 관련 정보가 풍부하다. 생명보험협회가 제공하는 ‘보험상품 비교공시시스템’(왼쪽)과 금융감독원이 운영하는 금융소비자 정보 포털 ‘파인’ 홈페이지.
2012년 금감원이 냈던 보도자료에는 ‘즉시연금 가입 체크리스트’가 나와 있다. 즉시연금에 가입하겠다면 반드시 확인해 봐야 하는 목록이다. 예를 들어 ▷즉시연금보험은 고정금리 상품이 아니므로 향후 금리가 낮아져 수령하는 연금액이 작아질 가능성이 있다 ▷납입보험료에서 위험보험료와 사업비를 차감한 금액이 공시이율(변동금리)에 따라 적립된다 ▷상속형·확정형 즉시연금보험은 단기해약 시 원금 손실의 가능성이 크다 ▷생명보험협회 보험상품 비교공시시스템(pub.insure.or.kr)에서 보험사별 사업비를 꼼꼼히 비교한 후 가입 등이다.

그 밖에 일반적으로 보험에 가입할 때에 필요한 요령이 있다. ‘보험사 놈들은 사기꾼’ 소리가 나오는 건 그만큼 소비자들이 보험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보험에 가입할 때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세 가지 문구를 정리했다.

먼저, 적당히 해라. 보험의 일차적 목적은 자산 축적이나 재테크가 아니라 위험 대비다. 보험은 어디까지나 그간 내가 쌓은 자산을 지키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앞서 즉시연금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진 것처럼 사업비를 떼고 투자를 시작하기 때문에 재테크 목적으로 보험을 활용하기엔 부적절하다. 전문가들은 매달 저축하는 돈의 5% 안팎 정도만 보험에 가입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현재 보험료 지출이 두 자릿수를 웃돈다면 보험 리모델링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둘째, 오래 살아라. 앞서 언급했듯이 보험은 사업비 구조상 저축의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다. 저축성 보험은 마치 동그란 네모처럼 어색한 표현이다. 그런데 보험이 가장 투자 효율이 좋은 투자 상품이 되는 경우가 있다. 오래 살면서 종신형 보험에 가입하면 된다. 죽을 때까지 보험금이 나오는 구조이기 때문에 오래 살수록 더 많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국민연금이 이에 해당한다. 일부에서는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나중에 연금 못 받는 것 아니냐며 국민연금보험료를 안 내겠다고까지 저항한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이 반영되기 때문에 오래 산다면 국민연금 수익률이 다른 어떤 민간 상품에 비해 월등하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찾아라. 언제까지 엄마 친구 보험 아줌마가 떠 먹여주는(혹은 먹기 싫은데 먹어야만 하는) 보험 메뉴만 선택할 수는 없다. 스스로 비교해 보고 자신에게 꼭 필요한 보험에만 가입해야 적은 보험료로 폭넓은 보장을 받을 수 있다. 금감원의 금융소비자 정보포털 ‘파인’(fine.fss.or.kr)에서는 손쉽게 보험상품의 사업비 등을 비교할 수 있다. 또 정보기술(IT)을 보험 분야에 결합한 핀테크 스타트업 보맵이나 디레몬 등을 활용하면 자신에게 꼭 맞는 보험상품을 고를 수 있다.

※ 고란 - 2003년 중앙일보에 입사, 중앙선데이 경제부문 소속이다. 대학 졸업 후 6개월 은행에 몸담은 걸 빌미삼아 ‘반 금융인’이라고 주장한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열어갈 ‘토큰 이코노미’에 관심이 많다. ‘암호화폐의 정석’에 해당하는 [넥스트 머니]를 지난 6월 출간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재테크 및 암호화폐 시장과 관련한 ‘고란의 어쩌다 투자’ 코너를 연재 중이다.

201809호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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