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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원로 인터뷰(1)] 노무현 ‘정치적 스승’ 김원기 전 국회의장 

“문 대통령, 야당 먼저 찾아간 초심 끝까지 잃지 않아야” 

글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 청와대와 여당, 야당 설득하고 소통하려는 노력 아주 미흡
■ 경제정책 많은 문제 야기… 여론 무겁게 받아들여 정책 조절해야
■ 4·19혁명, 6월항쟁 정신 헌법에 담았듯 촛불민심도 개헌으로 제도화해야
■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 하야 움직임… 한명숙 총리 요청으로 대통령 만류해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여야가 등지면 먼저 손해 보는 쪽은 정부여당”이라고 말한다.
"후회를 많이 했어. 어쩌다 약속을 해가지고.”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 약속을 잡은 뒤 마음이 내내 무거웠다고 한다. 거듭된 요청에 계속 안 한다고 거절하기가 뭐해서 막상 응낙해놓고 보니 후회막급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렸고, 문재인 대통령과도 원로 멘토로서 인연이 깊은 사이다. 통찰과 혜안이 담긴 김 전 의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지지율 하락세에 있는 문재인 정부에 민감한 파장과 타격을 안길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필생의 목표로 삼은 분권형 개헌과 남북 관계 개선, 그리고 촛불민심이 만든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언론과 만난 듯했다.

김 전 의장은 여야 협치(協治) 없는 국정 운용으로는 개헌도, 남북 평화 정착도, 문재인 정부의 성공도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래서 여당이 더 마음을 열고 야당에 다가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아가 야당도 외교안보 현안에 초당적으로 임해야 집권 기회도 더 커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취임 직후 야당을 먼저 찾았던 그 초심을 끝까지 잃지 않고 더 강화해야 한다”며 야권과의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저임금제 등 주요 정부 정책 현안에 대해서도 “아무리 올바른 정책이라 하더라도 국민이 그것을 미처 납득하지 않고 오해가 많으면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며 유연한 접근을 주문했다. 월간중앙과의 인터뷰는 12월 7일 서울 여의도 김 전 의장의 개인 사무실에서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DJ, 이명박 대통령 때문에 개헌 찬성으로 돌아서


▎1989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만난 4당 원내 사령탑. 왼쪽부터 김용채 공화당, 김원기 평민당, 김윤환 민정당, 이기택 민주당 원내총무.
새해를 맞아 원로에게서 좋은 얘기를 듣는 자리다. 새 계획을 세우는 게 있나?

“우리 나이가 되면 새해를 앞두고 뭘 해야겠다거나, 구상을 다듬거나 그래지지를 않는다. 다만 2019년은 국가 장래에 엄청난 전기(轉機)가 되는 중요한 해가 될 거 같다는 예감이 든다. ‘촛불 문화혁명’에 이은 대통령 탄핵, 정권 교체, 남북 정상회담 등 요 몇 년 사이 우리 정치사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사건이 줄을 이었다. 정치하는 이들도 어떠한 결정, 결단을 내릴 때 촛불혁명 정신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정치에 임해야 할 것이다. 우리 역사는 큰 사건, 대변혁이 있을 때는 늘 헌법 개정을 통해 그 정신을 제도에 반영하곤 했다. 1960년 4·19혁명 당시 헌법을 바꿔 자유와 민주주의 정신을 제도에 불어넣었고,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에도 개헌을 통해 87년체제를 수립했다. 이번 촛불혁명에서는 과거보다 더 광범위하고 본질적인 국민적 요구가 집회와 시위를 통해 분출됐다. 새해에는 개헌 운동을 통해 촛불혁명의 의미를 헌법에 반영해야 혁명의 완성을 이룬다고 하겠다.”

개헌이라는 거대 담론을 구현하겠다는 포부로 들린다. 하지만 지금은 외교안보, 경제 분야 현안이 워낙 뜨거워서 개헌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한 게 사실인데.

“촛불혁명에 나타난 국민적 요구가 그저 민주화 같은 정치적 요구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찍이 정치적 운동에 보이지 않았던 본질적이고 다양한 시대적 요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는 우리 사회가 질적으로 새 시대에 걸맞은 변화를 이루는 데 필요한 원동력과 기본 틀을 제공한다. 오랫동안 개헌을 부르짖고 ‘개헌전도사’를 자처한 나로서는 새해에는 개헌을 통해 촛불정신이 우리 제도에 반영되는 데 작은 역할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된다.”

개헌 논의가 본궤도에 오르는 데 필요한 조건이 있다면?

“무엇보다 대통령의 공감이 중요하다. 대통령이 찬성하지 않으면 개헌은 성립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통령이 너무 앞장서 주도하려 해서도 안 되고, 대통령이 반대해도 안 되는 게 개헌이다. 아무리 인기 없는 대통령이라 해도 반대하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도 나는 청와대 수석들과 한나라당의 정치인들을 만나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당시 국회 개헌특위에 있던 야당(지금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도 누차 간곡하게 얘기했다. 개헌이 국가의 갈 길이고 우리가 살 길이라고 믿는 정치인이라면 대통령과 너무 각을 세우거나 감정을 상하게 해선 안 된다고. 그건 앞뒤가 맞지 않는 처신이라고 말이다.”

언제부터 개헌이 간절해지던가?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 4년 차이던 2001년쯤이다. 그해 3월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한을 줄이지 않으면 어떤 정치개혁도 빛을 바랜다는 주장을 폈다. 당시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를 겸하던 여당 새천년민주당의 최고위원으로 있을 때여서 내 주장을 언론이 아주 크게 다뤄줬다. 13대 국회 여소야대 정국에서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나는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김 총재의 정계복귀 과정에서 잠시 다른 길을 간 적이 있었다. 그런 내가 다시 분권형 개헌 주장으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치받는 게 아닌가 하는 언론의 호기심도 한몫했을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국내 매스컴에 등장한 시발점이라고 하겠다. 물론 나는 그야말로 순수한 뜻에서 개헌을 주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시 개헌에 대해 미온적이었는데.

“물론 개헌을 하더라도 현직 대통령의 권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 권력을 줄이는 개헌 그 자체만으로도 레임덕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있고 해서 김 전 대통령도 마땅치 않게 생각했을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임기를 다할 때까지 개헌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 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마음을 돌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왕적 권한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현행 대통령제에 문제가 있고, 김원기의 개헌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때부터 김 전 대통령도 나하고 뜻을 같이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 물러설 뻔했다


▎2018년 2월 서울 광화문에서 ‘개헌 공약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 사진:연합뉴스
한국의 개헌 논의나 시도는 차기 대선주자들이 반대하는 통에 번번이 좌절된 경험이 생생하다.

“대통령 꿈을 가진 이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개헌에 소극적인 건 사실이다. 마치 자기가 행사할 권력의 일부를 빼앗기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현직 대통령의 의지다. 대통령이 양해하면 차기 주자들의 미온적 태도 정도는 개헌 성사에 이렇다 할 영향을 주지 못한다. 막상 닥쳐보면 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원포인트 개헌(대통령 4년 연임제와 국회의원 4년 임기를 맞춰 선거주기를 일치시키는 개헌)’을 제안했다.

“노 대통령은 개헌에 찬성했고 2007년엔 야당에 총리를 주는 대연정까지 제안했다. 권력에 사심을 가진 분이 아니므로 그 주장의 진정성은 순도 100%였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이른 과정을 들여다보면 응당 대통령을 뒷받침해 줘야 할 여당(열린우리당)의 주요 지도자들이 인기가 떨어진 대통령을 야당보다 더 혹독하게 내몰던 정황과 맞물린다. 자기 선거, 자기 정치를 하는 데 걸림돌이 될까 봐 야당보다 더 모질게 대통령을 공격했던 것이다. 대통령이 제왕적 권한을 가졌다고 해도 여와 야가 똘똘 뭉쳐 대통령에 반대하고, 골탕을 먹이면 대통령은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우리 헌법 체제에서는 좀처럼 그런 상황이 오긴 어렵지만 혹여 악용하자면 그런 맹점이 드러나게 된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했나?

“노 전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대통령을 할 바에야 차라리 대통령직을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갈등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당시 한명숙 국무총리가 깜짝 놀라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며 대통령을 만나보라고 권하더라. 이때는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언론에도 보도될 즈음이다. 그게 그냥 말로 그친 게 아니라 실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으며, 아주 위험한 수위에 달했다는 게 아닌가. 대통령을 안심시키고 그런 생각을 접게 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면서 빨리 청와대로 가보라는 게 한 총리의 다급한 요청이었다.”

대통령에게 어떤 얘기를 건넸나?

“급히 청와대로 찾아가 대통령에게 이렇게 설득한 기억이 난다. ‘대통령은 하늘이 내는 자리라고 하는데 그 말이 옳다. 아무리 실망스럽고 속이 상해도 대통령은 말로라도 그만둘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하늘이 그만두게 하기 전에는 그만둘 수 없는 자리가 대통령직이다. 화가 나더라도 그런 말을 절대 하면 안 된다.’ 거듭 간곡하게 얘기했다. 하늘이 생명을 거둬가기 전에는 절대 스스로 내려와서는 안 될 자리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한 총리가 화들짝 놀랐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진짜 하야를 선언할 마음을 먹었다는 말인가?

“아주 속상해하니까. 다름 아닌 여당이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붙이니까. 대통령의 심기가 불안정하니 마음을 달래드리라는 말이지, 실제로 그만둘 생각을 구체적으로 했겠나. 여하튼 그런 일이 있었다.”

“한국 정치는 변화무쌍… 야당도 정치적 승리 가능해”


▎2002년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여의도당사에서 김원기 정치고문에게서 당무회의 결과를 보고 받으며 웃고 있다.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발언은 당초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나왔다. 2003년 4월 정부의 ‘철도 민영화’ 방침에 철도노조가 총파업에 나섰고, 이에 정부가 민영화 방침을 철회하고 대안을 내놓았지만 노동계는 정부와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즈음인 2003년 5월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말이 언론에 보도됐다. 그리고 임기 말로 접어들 즈음 당시 여당 일부 중진의 차별화 행보에 낙심한 나머지 하야를 심각하게 고려했다는 사실이 노 전 대통령과 만난 김 전 의장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나아가 김 전 의장은 남북 평화체제 구축이 개헌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1979년 제 10대 총선에서 신민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40년 가까이 권력과 정권의 부침을 지켜봐 왔던 그다. 그래서 야당이 남북 관계를 정치적 승패(勝敗)의 관점에서 바라봐서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을 언급했다. 김 전 의장은 “보수진영이 남북 평화체제 구축을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망가뜨린다는 견지에서 반대하는 건 아닌지 성찰해봐야 한다”고 권했다.

야당이 정략적 관점에서 남북문제를 다룬다고 보는 근거는?

“지금은 온 국민이 뜻을 모아 평화정착의 동력을 제공해야 할 때라고 본다. 이에 반대하는 야당의 태도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한국 정치는 변화무쌍하다. 정치적 승패는 다른 문제로도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정권을 잡는 것은 다른 이슈들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민심은 계속 변하니까. 70년 만에 한반도가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서로 협력해 대륙을 향해 뻗어나갈 호기를 앞에 두고 있다. 목전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이런 흐름과 일부러 등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내가 늘 강조하는 게 국회의원은 지도자라는 점이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지도자로서 행해져야 한다. 그전에 막강한 힘을 가진 절대권력자에게 눌려서 지내다 보니 국회의원들이 스스로를 지도자라고 자리매김하기보다 자신을 ‘졸(卒)’로 여긴 지 오래된 듯하다. ‘졸’이라는 생각을 씻어 버려야 한다.”

보수층에서는 이렇게 가다가 북한이 한반도의 주도권을 잡거나 심지어 북한식 통일로 가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한다.

“국민 중에는 그런 우려를 하는 분이 있을 수 있다. 하도 오랫동안 북이 남을 적화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왔기에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적어도 정치 지도자가 그렇게 본다면 바보스럽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지구촌에 변변한 사회주의 국가라곤 남아있는 게 없다. 자본주의 진영이 완승한 것 아닌가. 형식적으로는 중국, 러시아가 있지만 이 나라들도 엄격한 의미의 사회주의 체제는 아니다. 북한이 볼 때 온 세계가 자본주의 진영에 장악된 듯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북한 지도부는 어떻게 하면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고 자기 권능을 보존할 것인가를 염려하고 급급해할 뿐 자기들이 남쪽을 차지한다거나 남쪽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다. 북한은 세계의 큰 흐름 속 작은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북이 남을 지배할 것이라는 걱정은 일어날 수 없는 기우일 따름이다. 자유한국당에서 그런 생각을 품는 이가 있다면 정치를 그만두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여야 충돌로 손해 보는 쪽은 정부여당”


▎2017년 5월 대선 다음 날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를 찾아 정우택 원내대표를 만난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을 운용함에 있어 더 신경 쓰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 있다면?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처음에 대통령이 돼서 야당을 먼저 찾아갔다.(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중앙선관위로부터 당선 결정 통보를 받은 직후 자유한국당을 방문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오늘 야당 당사부터 방문한 것은 야당을 국정 동반자로 여기겠다는 뜻이고 이번 방문이 일회적인 행사가 아니라 임기 내내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다.) 나는 문 대통령이 그 초심(初心)을 끝까지… 잃지 않고 더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국회 의석 분포를 보면 어느 정당도 과반수에 못 미친다. 국회를 통과해야 할 일들은 산적해 있다. (여권이)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 야당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더 소통하고 협력을 얻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새해 들어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상당히 미흡하다. (이런 말을 하면 청와대 등에서) 뭐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협력을 하지 않고서는 밀고 나가는 데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적극 노력하지 않고 협력을 얻지 못하면 손해를 보는 쪽은 국정에 책임을 지는 여당이다. 일차적 책임은 집권 여당에 있는 것이다. 야당이 아무리 마땅치 않더라도 한 번 타진해서 안 되면 두 번 하고, 한 번 노력해서 안 되면 두 번, 세 번 노력해야 하는 게 여당이다.”

여권 내에서 그런 일은 누가 해야 하나?

“다각적으로 해야 한다. 청와대도, 당도, 국회의원도 지금보다 훨씬 더 야당을 설득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소통 노력이 형식적인 데 머물면 안 된다. 진심을 다해서 해야 한다.(목청이 높아지면서) 그렇지 않으면 갈등이 생기고 야야 간 충돌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야당에도 좋을 게 없지만 손해를 먼저 보는 쪽은 정부여당이다. 그런 설득 노력을 문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쪽에서 새해 들어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여권에서는 야당이 막무가내로 귀를 막고 있어 다독이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말하지 않겠나?

“그래서 정치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 전 의장은 13대 국회 여소야대 당시 개혁 과제를 실행에 옮긴 여야 간 협상 자세와 지혜를 떠올렸다. 김 전 의장은 30년 전인 1988년 당시 제 1야당이던 평화민주당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로 여당인 민주정의당 김윤환 원내총무와 숱한 난제를 푸는 데 머리를 맞댔다고 돌이켰다. 1988년 이른바 ‘5공 청문회’에 전두환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불러 세우고, 당시 여권의 실세였던 정호용 의원에게 광주민주화운동 강경 진압의 책임을 물어 1990년 1월 의원직 사퇴를 이끌어냈다. 김 전 의장은 지금은 고인이 된 김윤환 당시 원내총무와의 줄다리기 협상을 언급하며 “자화자찬 같지만 우리 의정사상 처음으로 대화와 타협, 협상의 정치가 꽃을 피운 시기였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전한다면?

“13대 총선이 치러진 1988년 그때는 아주 엄중하던 시절이었다. 노태우 정부가 들어섰지만 엄연히 군사정부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여권에 군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었으며, 군부세력이 국가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이다. 당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첨예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여권에서는 이 문제 처리 방향에 따라 군부세력이 청산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감돌았다. 그 전에 광주는 그저 ‘광주사태’라는 이름으로 평가절하됐다. 이를 민주화운동으로 격상하고 군부가 저지른 잘못을 문책했는데 이 모든 걸 군 출신 대통령 치하에서 여야 협상을 통해 성취했다. 당시 허주(虛舟, 김윤환 총무의 아호)하고 나하고 거의 매일 만나 밤새워 토론하면서 해법을 고민했다. 저쪽은 자기네 나름대로 군부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우리는 우리대로 새로 영입한 운동권 인사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던 형편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정말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사정을 터놓고 얘기했다.”

“정치는 서로의 속을 터놓고 얘기할 때 설득된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수현 정책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수석·보좌관들이 12월 10일 홍남기 신임 경제부총리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뒤 간담회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접점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심지어 허주는 자신의 정치적 성장에 많은 도움을 준 경북고 동기 정호용 의원 구명을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허주는 대구 지역구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정호용 당시 민정당 의원)더러 옷을 벗으라는 요구도 무리이거니와 자신과 같은 빌라에 사는 정 의원 부부를 무슨 얼굴로 보느냐고 하소연했다. 심지어 허주 부인은 신경쇠약에 걸렸다고 하더라. 당시 김대중 총재도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비슷한 부탁을 들었다. 김 총재가 전한 바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김 총재에게 ‘앞으로 대통령을 하자면 군부가 거부감을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 정 의원은 김 총재와 군부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사정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내가 허주와 정 의원 관계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눈물을 뿌려가며 애원하는데 마음이 안 움직일 수 있겠나.”

결국 정 의원은 옷을 벗었다.

“나도 내 나름의 고충을 터놓았다. 우리 평민당은 제 1의 기반이 광주·전남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많은 희생을 당한 이 지역이 평민당의 사활적 기반인데 우리가 광주의 비극을 해결하지 않고선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사정을 설명했다. 광주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로서도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설득했다. 광주 문제에 합의를 못 보면 우리는 대결할 수밖에 없고 국가를 운영하는 최고 책임자인 노태우 대통령과 정부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이다. ‘친구를 선택할 것인지, 국가경영을 책임진 대통령을 선택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말해줬다. 허주는 눈물을 머금고 정 의원을 사퇴시킨 것이다. 정치라는 건 이렇게 서로의 속을 터놓고 얘기할 때 서로 간에 설득이 되는 것이다. 그 뒤로 지방자치, 국정감사를 부활하고 언론 통폐합을 단죄하는가 하면, 재벌과 권력의 결탁을 처벌했다. 하나라도 적당히 가리려 해서는 해법을 못 찾는다. 완전히 이기려 해서도 일이 되지 않는다. 한 개를 받으면 한 개를 내주는 게 정치다. 상대방도 돌아가서 할 얘기가 있어야 당을 설득할 수 있으니까. 남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자세로 소통을 할 때 문제가 풀린다. 정치에서 완승은 있을 수 없다.”

그때는 가능했던 대화와 협상이 지금은 왜 안 되는 걸까?

“글쎄…. 일을 맡은 사람이 역량을 갖춰야 한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게 내가 그런 설득력을 발휘한 데는 당시 김대중 총재가 모든 일에 있어 전적으로 나를 믿고 밀어줬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부여당에서도 김원기하고 얘기하면 김대중 총재랑 얘기한 것과 같다고 받아들였다. 그래야 양보가 가능해진다. 허주를 볼 때도 허주하고 타결하면 노태우 대통령하고 얘기한 것으로 간주할 정도였다. 지도자와 일선에 나선 사람의 신뢰관계가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최고 지도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청와대 586 참모들, 오해 사지 않도록 조심해야


▎지난 9월 재래시장을 방문해 최저임금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자유한국당 지도부.
문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에 힘을 더 실어줘야 한다는 말인가?

“그건 내가 모르겠다. 아마도 일선의 협상 책임을 맡은 사람에게 (대통령의) 신뢰가 부족하거나 한 건 아닐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나 홍영표 원내대표도 문 대통령과 충분한 신뢰관계에 있는 정치인들이다.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집권여당은 야당하고 협력을 해야 국정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견지해야 한다. 아마 야당과 대화하자면 어떤 때는 아주 짜증스러울 것이다. 지금 내가 하더라도 짜증이 날 때가 있겠어. 그러나 참고 또 참아야 한다. 야당을 설득하는 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일 때다. 야당도 과거의 촛불민심이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잊어선 곤란하다. 국민은 그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앞서 문 대통령에게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부연설명을 해달라.

“나는 의회주의자로서, 국회의원으로서 일생을 보내서 그런지 모르지만 좀 더 국회가 정치의 중심을 이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계의 모든 선진국 정치의 중심에는 어김없이 국회가 자리한다. 물론 우리의 국회와 정당정치가 국민의 혐오대상이자 극단적 불신을 받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인류가 고안한 제도 중 가장 보편적인 제도가 의회민주주의임도 간과해선 안 된다. 한국 정치에 대한 불신은 지나친 측면도 있다. 미덥지 못해도 국회가 제 역할을 하도록 밀어주는 노력이 요구된다. 국회도 스스로 변신해야겠지만 정부도 힘을 북돋워 줘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정부의 핵심 정책에 불편을 호소하는 경제 주체와 국민도 적지 않다.

“내가 경제에 대해선 잘 모른다. 소득주도 성장과 같은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주장을 분명히 하기에는 조심스럽다. 다만 지금 여러 가지 경제정책으로 상당히 많은 문제가 야기된 건 사실 아닌가. 아무리 동기가 좋고 올바른 정책일지라도 국민이 그걸 납득하지 못하고 오해가 있으면 완급을 조절하고 설득될 때까지 한 박자 쉬는 자세가 아쉽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도 국민이 따라오지 못할 때는 반 걸음만 앞서 나가라고 했었다. 소상공인, 자영업자 형편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니 그런 여론을 상당히 무겁게 받아들여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노력해야 한다. 나는 (정부가)그렇게 할 것으로 예상한다.”

대선주자는 관리가 아닌 환경의 산물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대통령이 공감하면 차기 주자들의 반대에도 개헌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참모들이 경직되거나 일방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소위 586 운동권 출신들 말인가. 내가 정치할 때도 있었던 사람들인데… 나는 586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게 본 적은 없다. 임종석 비서실장 등 다들 내가 좋아하는 후배들이었다. 그때는 다 같이 잘 지냈고 별로 눈에 띌 만큼의 부작용도 나온 게 없었다. 요즘은 586들이 나이 든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같이 섞여 있어서 더 두드러져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억울해도 그런 지적이 나온다면 유의해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잘하고 있나?

“이 대표는 출신은 운동권이지만 나하고는 굉장히 가까웠다. 성격은 조금 모난 데가 있고, 원만하거나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정책에서는 그렇게 모나지 않다. 김대중 총재가 연세 많은 정치인들 중에서는 진보적 성향이었지만 보수적인 사람도 많이 포용했다. 거기서 이 대표가 브레인 역할을 한 것이고. 그렇게 까칠한 것도 아니어서 보수인사들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말은 부드럽지 못하지. 언론인에게도 팍팍 쏘아붙이고 그러더구만.”

요즘 여권의 잠룡들이 많은 수난을 겪는다. 여권의 원로로서 차기 대선주자 관리법에 대해 한 말씀 한다면?

“차기 주자를 관리한다는 말 자체가 맞는 말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만 해도 대선 후보가 되기 전까지 관리를 잘 받은 사람은 아니다. 내가 그의 정치적 스승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가까웠던 건 사실이지만 내가 관리한 적이 없다. 자연스럽게 환경에 의해 후보가 됐을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어느 계보에 줄 서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가 그때, 그때 옳다고 판단한 대로 했다. 요즘은 논의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이낙연 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등 다 가깝게 지낸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나와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1990년대 중반 국민통합추진회의를 같이했다. 지금 거명되는 사람 중 앞으로 누가 후보가 될까. 다른 사람이 솟아나는 수도 있다. 차기 대선주자라는 건 관리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된다. 관리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긴다.”

201901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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