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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엄동설한’ 한국 경제 앞날은… (5) 불확실성 커진 증시 

증권사들 전망도 제각각, 코스피 지수 1840부터 2530까지 

고란 중앙일보 기자 neoran@joongang.co.kr
‘수출 견인차’ 반도체 경기 꺾일 조짐 보이는 등 시장 상황 녹록지 않아… 저성장 시대에 현금 쌓아두는 건 비효율적, 기업에 배당 확대 요구해야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동반 하락을, 원달러 환율은 상승으로 마감했다. 12월 10일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는 코스피 지수가 전 거래일 대비 21.97(-1.08%) 포인트 내린 2053.79를 나타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하필 지금이다. 아니면, 지금이니까 그랬을지 모른다. [국가부도의 날] 개봉 말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다룬 첫 상업영화다. 20년도 지난 옛날 얘기인데, 지금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영화의 완성도를 놓고는 말이 많다. 음모론으로 일관했고, 선악 구도가 지나치게 도식적이다. 특히, 조금이라도 발을 담갔던 관료들은 뒷목을 잡는단다. 어떻게 현실을 이렇게나 왜곡할 수 있느냐고. 그 부분을 우려해 재정‘국’이나 한국은행 ‘총장’ 등 정부기관 조직도에서 볼 수 없는 이름을 빌려오기는 했다. 하지만, 관객들은 해당 배역이 현실의 누구인지를 따지고 든다.

영화와는 달리, 외환위기가 특정인의 잘못은 아니다. 실제로, 외환위기의 핵심을 축소·은폐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정부 관료들의 ‘고의’가 아니라 ‘무능’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주가는 경제 방향을 가늠하는 척후병이다. 실물지표보다 주가가 먼저 반응한다. 그렇지만 외환위기 당시에도 주식시장에서 위기를 먼저 감지한 증권사는 없었다(최소한 발표된 보고서를 보면 그렇다). 되레 장밋빛 전망으로 일관했다. 그해 7월 태국발 외환위기와 기아차 부도가 연쇄적으로 시장을 덮쳤다.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던 증권사들이 말수를 줄였다.

10월 28일, 모건스탠리가 포문을 열었다. ‘아시아를 떠나라’. 6월 800선을 넘보던 코스피 지수가 500선을 내줬다. 이튿날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내놨지만 시장의 흐름을 돌리진 못했다. 일주일 뒤엔 홍콩 페레그린증권이 ‘지금 당장 한국을 떠나라’고 경고했다. 12월 코스피 지수는 300선으로 주저앉았다.

외환위기 21년 후인 2018년 12월, 코스피 지수는 2000선을 웃돈다. 역대 지수와 비교하자면 절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연초 2600선을 돌파했다가 흘러내리기만 하는 지수의 방향이 불안하다. 2019년에는 2000선을 마지노선으로 반등에 성공할까. 아니면 21년 전과 같은 무능 때문에 거대한 하락장의 초입을 감지 못하는 걸까.

예측인가 희망인가? 증권사 “상저하고(上低下高)”


▎미·중 무역 전쟁이 확대되지 않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트레이더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19년 주식시장 전망을 내놓은 증권사 가운데 가장 낙관적인 곳은 SK증권이다. 코스피 지수가 2010~2530선 사이에서 움직일 것으로 봤다. 곧, 최악의 상황에도 2000선은 사수한다고 전망했다. 코스피 지수 전망을 내놓은 증권사 가운데선 유일하다. 다른 증권사들은 2000선 이하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시장을 가장 비관적으로 보는 곳은 IBK투자증권이다. 코스피 지수가 1840∼2260선에서 등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모두 외부 탓이다. 중국 부채 문제,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중국 경기 악화, 글로벌 성장률 둔화 등이 증시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했다.

낙관적이건 비관적이건 간에 2018년 2월 시장에 들어온 투자자들 가슴에는 대못을 박는 전망이다. 당시, 코스피 지수는 2600선을 찍었다. 곧, 어느 증권사건 이들이 손해는 안 보고 주식을 팔고 나갈 기회가 2019년에는 없다고 내다본 셈이다.

시장의 흐름과 관련해서는 대체로 전망이 일치했다. 2019년 상반기엔 조정을 겪을지라도 하반기엔 상승 반전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른바, ‘상저하고(上低下高)’다.

전혀 새로울 게 없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업(業)’의 특성상 시장이 좋아야 투자자도 행복하고 회사도 행복하다. 주가가 올랐으면 하는 게 주식시장에 관여된 모든 이들의 바람이다.

그렇다고, 2019년이 코앞인 상황에서 내놓은 전망 보고서에 ‘상고(上高)’를 담기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한 달 만에 시장에 상승 반전할 만한 뚜렷한 모멘텀이 없다.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해서 무턱대고 시장이 상승 반전할 거라고 전망할 수 없다.

하지만 반년이 지난 다음은 아무도 모른다. 여러 요인이 긍정적으로 증시에 영향을 미친다면 시장이 좋아질 수 있다. 게다가 그때쯤 되면 이 바닥을 아는 이들이 아니고서는 반년 전쯤 누가 어떻게 시장을 전망했는지 기억할 수 없다. 또, 상저하고를 전망해야 그나마 수익의 꿈을 품고 증시에 진입하는 투자자들이 생긴다.

연말에 내놓는 증권사 지수 전망은 대개 예측이 아닌 현실의 반영에 불과하다. 시장이 좋으면 전망도 밝게, 나쁘면 전망도 나쁘게 내놓는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2017년에도 그랬다. 그해 11월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2500포인트를 돌파했다. 그때 증권사들이 내놓은 ‘2018년 증시 전망’은 온통 장밋빛이었다. 증권사 대부분이 아무리 떨어져도 코스피 지수가 2200선은 유지할 것으로 봤다. 삼성증권(최고 3100)과 KB증권(최고 3060)은 ‘코스피 지수 3000’ 시대를 예고했다. 2017년 22% 상승한 코스피 지수에 취해 2018년에도 강세장이 이어질 것으로 봤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는 예상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됐다.

2019년 시장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각종 경제지표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건만 힘이 될 만한 것은 찾기 어렵다. 수출의 8할을 담당하는 반도체 경기가 꺾이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미·중 무역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서민층의 소득이 늘어 소비가 살아나는 줄 알았더니, 최저임금 인상분을 감당하지 못한 자영업자가 노동자를 회사에서 내보낸다. 가계부채는 시한폭탄처럼 대기 중이다.

하반기가 되면 시장이 살아날 만한(下高) 반전 모멘텀이 뭐가 있는지 되레 의문이다. 증권사들도 자신감이 없는 탓인지 ‘하고’라고는 했지만, 그 상단을 종전 고점인 2600에 훨씬 못 미치는 2400선 안팎으로 예상했다. 2019년 시장 전체로는 크게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예상치 못한 반전의 모멘텀은 미·중 무역 갈등의 해소다. 양측의 대결구도가 격화되면서 2019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지는 추세다. 2018년 초만 해도 성장률 전망치가 3.7~4%였지만, 양국의 불협화음이 커질 때마다 성장률을 조정해 최근엔 3.5~3.8%까지 내려왔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보면, 미·중 무역 갈등이 사라지면 성장률이 올라갈 수 있겠다.

하지만 갈등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든다. 갈등이 복합적이고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정치학자인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양국의 갈등을 [불가피한 전쟁(Destined for War)]이라고 표현했다. ‘갈등’ 혹은 ‘대립’이 아니라 ‘전쟁’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증권가 일대의 야경. 많은 사람이 기해년(己亥年) 새해 증시에도 환한 불이 켜지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는 양국이 처한 지금의 상황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비유했다. 투키디데스는 기원전 5세기 벌어졌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을 아테네의 군사 대국화가 패권국인 스파르타의 불안을 야기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신흥 강국이 기존의 세력 판도를 흔들면 이에 불안을 느낀 패권국이 신흥국과 무력 충돌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아테네를 중국, 스파르타를 미국으로 바꾸면 지금의 미·중 무역 전쟁 상황에 꼭 들어맞는다.

미국 입장에선 중국을 가만둘 수 없다.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목표로 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기엔 더욱 그렇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은 상처를 입었다. 그 틈을 헤집고 중국이 ‘G2’로 부상했다. 중국의 힘이 더 세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그 견제의 시기와 강도가 빠르고 셌을 뿐이다. 언젠가 미국은 중국을 때릴 심산이었다.

2018년 3월 관세 폭탄을 시작으로 중국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명분은 일자리다. 가격 경쟁력에 밀린 미국산은 중국산 때문에 설 자리를 잃었다. 미국 공장에서 일하던 이들은 길바닥으로 내몰렸다. 값싼 중국산이 밀려들어 오는 걸 세금 장벽으로 막아야 미국인들에게 일자리가 생긴다.

그러나 진짜 미국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건 ‘중국제조 2025’다. 2015년 5월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정부 주도의 기술 혁신 계획이다. 그간 중국은 ‘짝퉁 공화국’이었다. 그런데 최근 차세대 먹거리로 분류되는 5G·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에서 미국을 넘어설 기세다. 세계에서 가장 기업가치가 큰 스타트업은 미국의 ‘우버’가 아니라 중국의 AIㆍ콘텐트 기업인 ‘바이트댄스’다.

중국제조 2025의 목표는 명확하다. 중국을 제조업 ‘대국’에서 ‘강국’으로 키우는 것이다. 핵심 부품과 원자재 자급률을 2015년 40%에서 2020년 7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이른바 ‘홍색공급망’의 완성이다. 이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 미국은 위대한 미국의 지위를 영원히 잃게 될지 모른다.

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선임연구교수도 이번 무역 전쟁의 원인이 단순한 일자리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국가 번영의 ‘성배’(聖杯), 즉 혁신과 기술을 둘러싼 전략적인 충돌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그러니 양측 모두 물러설 수 없다. 장기전으로 가면 미국이든 중국이든 타격이 불가피하다. “분쟁이 격화될 경우 글로벌 경제의 연간 성장률을 당초 전망 대비 0.7~0.8%포인트 하락시킬 수 있다”(KB증권)는 관측이 나온다.

두 마리 고래 싸움이 국내 증시에 좋을 리 없다. 한국은 국제분업(글로벌밸류체인, GVC)에 노출된 정도가 대만·헝가리·체코 등에 이어 넷째로 높다. 양국 분쟁의 직격탄을 맞는다. 2019년 하반기라고 해서 뚜렷한 해법이 나올까. 국내 증시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투자자로서 그러길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에서 손을 떼야 할까. 다른 좋은 투자 처가 있다면 눈을 돌려볼 것을 권한다. 딱히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다. 세금을 감안하면 예금 금리는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고, 더 세진 규제를 생각하면 부동산에 쉽사리 들어가기 어렵다. 대박을 꿈꾸며 암호화폐 투자에 나서기엔 지나친 변동성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2019년 증시에서 기대할 만한 딱 하나의 요인을 고르라면 ‘가격’이다. 주가는 기대감에 오른다. 2018년 하반기 실적이 생각보다 안 좋게 나오자, 혹은 안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나치게 주가가 떨어졌다.

기업이 가진 자산에 비해 주가가 어느 정도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2000선 근처에서는 0.84배에 불과하다(키움 증권). 2016년 6월 브렉시트(유럽연합에서 영국이 탈퇴 결정)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칠 당시(0.88배)보다 더 낮다. PBR이 1배 이하라는 건 기업이 가진 자산을 모두 팔아 현금화한 뒤 총 주식 수로 나눠도 현재의 주가 수준보다는 높다는 의미다.

‘싼’ 주가,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가입은 호재

모건스탠리 아시아 투자전략팀은 2018년 11월 말 이듬해 시장 전망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한국 주식에 대한 투자의견을 비중축소(Under-weight)에서 비중유지(Equal-weight)로 한 단계 올렸다. 이유는 ‘싸졌기 때문’이다. 보고서에는 “코스피 지수 PBR이 0.9배까지 내려가 저평가됐다”고 밝혔다. 모건스탠리 계산에 따르면, 지금의 코스피 지수 수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2009년(PBR 0.97배)과 비슷하다.

가격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시장의 호재를 찾기 어렵다. 시장이 침체됐을 때는 개별 종목 장세가 나타난다. 특히 기업의 ‘성장’을 기대하기 힘든 장세에서는 ‘자산’에 관심이 쏠린다.

특별한 투자처가 없다면 자산을 쌓아둔 기업은 배당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배당에는 인색하다. 평균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지급한 현금 배당액의 비율)이 해외 기업들에 턱없이 못 미친다.

시장조사 기관인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상장사 배당성향은 18.3%에 그쳤다. 영국(65.4%)·독일(40.8%)·미국(38.9%)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이고, 대만(57.2%)·인도네시아(41.7%)·브라질(38.4%)·중국(32.3%) 등 신흥국 수준에도 못 미쳤다.

이런 배당 성향이 개선될 모멘텀이 2019년에는 분명하다. 국민연금이 2018년 7월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했다. 스튜어드십코드는 기관 투자가들이 돈을 맡긴 개인들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지침이다. 그간 국민연금은 자칫 경영권 간섭으로도 비칠 수 있는 의결권 행사에는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연금을 맡긴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기업에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저성장 국면에서 무작정 현금을 쌓아두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행동주의 투자 전략(일정한 지분을 확보해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투자법)을 앞세운 펀드가 배당을 늘려 달라고 요구하면, 스튜어드십코드를 따르는 국민연금이 경영진을 압박해 더 많은 배당을 받아낼 수 있다.

국민연금이 직간접적으로 관리하는 국내 주식 투자금이 2018년 9월 말 현재 124조원에 이른다. 스튜어드십코드가 2016년 말 제정됐지만 국내 증시에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건 자본시장의 ‘큰손’ 국민연금이 가입을 망설였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의결권 행사에 나설 2019년을 기대할 만하다.

201901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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