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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취재] 2013년 18대 대통령 취임 전 무슨 일이… 

“박근혜, 청와대 입성 직전 심리상담 받으려 했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2012년 대선 승리 후 보좌진이 전문의에게 의뢰했다는데… 국가지도자 스트레스 관리 위한 ‘정신건강 주치의’ 도입해야

▎2016년 11월 29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3차 대국민 담화를 한 뒤 돌아서서 나가고 있다. / 사진:김성룡 기자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을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심리와 정신세계는 뜨거운 관심사 중 하나였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최순실씨와 몇몇 측근에 의존했던 박 전 대통령의 행보가 하나둘 알려지면서부터다. 장막 속에 감춰져 있던 국가 지도자의 내밀한 모습에 호사가들은 갖은 추측을 쏟아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탄핵의 시간표를 앞당긴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월간중앙은 박 전 대통령이 2013년 청와대 입성 전 심리상담을 받으려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정치권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박 전 대통령 주변에서 저명한 정신의학과 의사에게 비밀리에 박 전 대통령 심리 상담을 의뢰했다”고 귀띔했다. 시기는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직후다. 당선인 신분으로 청와대 입주를 코앞에 둔 박 전 대통령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월간중앙은 수소문끝에 박 전 대통령 비서실로부터 상담 의뢰를 받은 의사 A씨를 찾아냈다.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익명을 요청한 A씨는 월간중앙의 확인 요청에 자신이 박 전 대통령 심리 상담을 진행하려 했던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상담이나 진료가 이뤄지진 않았다고 했다. A씨는 당시 기억을 더듬어 설명했다. 그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제법 이름이 나 있었다.

“대선이 끝난 뒤였으니 2012년 말에서 2013년 초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 심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자신을 박 전 대통령의 비서진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전화를 해왔다. 박 전 대통령의 심리 상담을 의뢰하고 싶다고 했다. 대통령 당선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에 흥미도 느껴져 흔쾌히 수락했다. 다시 연락할 테니 그때 일정을 잡겠다고 하더니 그 뒤로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다 박 전 대통령이 취임했고 상담 계획은 흐지부지 돼버렸다.”

왜 심리 상담을 하려 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A씨는 “내담자(來談者)에 대해 외부에 공개하는 건 의사로서 금기에 해당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아마도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 아닐까 추측만 할 뿐 진행되기 전에 중단돼 구체적인 사정은 모른다”고 전했다.

대선 기간의 스트레스 때문?


▎단란했던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 일가
박 전 대통령의 심리 상담이 시도됐었다는 게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상담의 목적은 불분명하다. 단순히 대선 기간에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심리적 안정이 필요했을 수도 있고, 그 이상의 진단이 필요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측근 중에는 박 전 대통령의 불안정한 심리 징후를 이미 포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A씨는 “상담이 이뤄졌다면 좀 더 정확하게 심리 상태를 진단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이 사실은 박근혜 전 대통령 주변에서는도 극히 일부만 인지하고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가족사에 대해 잘 아는 전직 고위 공무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보다 편안한 상태로 국정에 임하려고 했으나 어떤 이유로 무산된 것으로 안다”고 확인했다. 이 전직 공무원은 “동생 박지만 EG회장도 박 전 대통령의 심리 상태에 대한 대략적인 동향을 파악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심리 상담 전문가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이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박 전 대통령이 어린 시절을 보낸 청와대는 추억이 깃든 공간이라기보다 악몽의 무대다. 부모를 연이어 잃고 쫓겨나다시피 했던 불운한 기억의 장소를 다시 간다는 게 트라우마를 일깨웠을 것이다. 게다가 혼자라는 부담과 고립감이 상당했을 거다.”

잘 알려진 대로 박 전 대통령은 청소년기를 청와대에서 보냈다. 1963년 12월 18일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시작됐다. 박 전 대통령의 나이 열한 살 때다. 청와대살이는 16년 동안 계속됐다. 가장 감수성 예민한 시절에 불운이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22세 대학생 때인 1974년 8월 15일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서거했다. 이후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을 맡았다. 5년 뒤 다시 한 번 불행이 찾아왔다. 1979년 10월 26일.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급작스레 청와대 정문을 나설 때 박 전 대통령은 27세의 숙녀가 돼 있었다. 1979년 11월 21일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구내방송을 통해 직원들에게 고별인사를 했다. 아버지 영정을 앞세우고 검은 상복 차림으로 문을 나섰다. 이후 신당동 사저로 들어가 동생 지만, 근령씨와 함께 은둔했다. 삼성동 사저로 이사해 1997년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18년 동안 은둔생활이 계속됐다.

어린 시절 최고에서 최악의 자리로 떨어진 그가 받았을 정신적 충격은 가늠하기 어렵다. 청와대를 나온 뒤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고민을 터놓고 나눌 사람도 별로 없었다. 신군부의 서슬 퍼런 감시 속에 어린 유가족의 생활은 사실상 유폐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이 1980년대 말에 쓴 일기에는 그가 겪은 마음의 고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박 전 대통령은 1993년에 자신이 쓴 일기를 한데 모아 책으로 엮었다([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남송). 1989년 1월부터 1993년 7월까지 쓴 일기가 들어있다. 이 책은 박 전 대통령의 내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신뢰할 만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198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을 마친 뒤 쓴 일기의 한 대목은 이렇다.

‘수년간 맺혔던 한을 풀었지만 내 마음은 몹시 울적하다. 왜 태어났을까. 태어나지 않았으면 마음의 고통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침울한 생각뿐이다. 80년대는 다시 돌아보기도 싫다.’

마음 깊은 상처로 남은 어린 시절의 악몽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정을 앞세워 청와대를 나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다른 날의 일기에선 ‘나를 괴롭혔던 사람을 만나면 그 옆에 같이 있기도 싫다’거나 언론과 인터뷰에서 “나처럼 고통을 겪고 산 사람은 많지 않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배신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폐쇄적인 인간관계는 이런 깊은 트라우마에서 비롯됐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탄핵 시기 박 전 대통령의 태도를 분석했던 이종섭 안산연세병원장(정신건강의학 전문의)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자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가 일상화돼 있다는 점에서 ‘의전형 인간’ 또는 ‘세리머니형 인간’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기회도 없이 ‘국모(國母)’의 역할을 맡아야 했고, 졸지에 가장이 되어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다. 이후 보수의 정치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개인의 삶은 사라졌다. 그렇게 치유되지 않고 쌓인 트라우마가 내재돼 있었을 것으로 그는 추측했다.

지난 2006년 대권주자들의 심리를 분석했던 김종석 전 인천의료원장(신경정신과 전문의)은 박 전 대통령을 ‘내향적 감정형 인물’로 분석했다. “잔잔한 물이 깊듯 내향적 감정형 인물은 조용하지만 사귀기가 힘들며 이해하기 어렵다. 통속적 가면 뒤에 숨어 있으며, 자주 애수에 잠긴다.” 칼 융의 심리학적 유형론에 근거한 김 전 원장의 추론이다.

박 전 대통령은 대선 국면에서 충격적 사건을 접했다. 그의 정치적 동반자나 다름없었던 보좌관 이춘상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고(故) 이춘상씨는 1998년 박 전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재보선으로 국회에 입문했을 때부터 보좌해온 최측근이었다. 2012년 대선 기간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보수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 전 보좌관은 박 전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비서진의 한 사람이었다. 대선 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응원 여론을 수시로 수집해 전달하며 심리적 부담을 덜어줬다”고 말했다. 그의 죽음은 박 전 대통령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줬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선거운동도 마다하고 이틀간 이씨의 빈소를 찾아 애도했다.

박 전 대통령의 남은 측근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지난해 5월 만기 출소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과 연락이 닿았다. 정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을 국회의원 시절부터 메시지 담당으로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그는 심리 상담을 하려 했던 걸 알고 있었느냐는 물음에 “그와 관련해서 어떤 기억도 없다. 내가 아는 바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아마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법률자문단으로 활동한 한 관계자도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측근에게도 확인을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역사에 가정(假定)은 없다지만 만약 그때 의사와 만났다면 어땠을까. 전문가들이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심리 상담을 통해 적절한 조력을 받았다면 국정운영 스타일이 달랐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사 A씨는 “당시 심리 상담을 진행했다면 혹시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이란 비극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대선이 한창이던 2012년 12월 박 전 대통령과 정치적 고락을 함께했던 이춘상 보좌관(사진)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때 트라우마 관리 이뤄졌다면…

전문가들이 국가 지도자의 정신건강과 스트레스 관리를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박 전 대통령의 심리를 진작에 관리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하 교수의 말이다. “박 전 대통령이 어떤 이유로 심리 상담을 하려 했는지 직접 만나보지 않고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고, 치료가 필요한 수준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다만 대통령과 같은 정치 지도자가 받는 중압감과 스트레스는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이를 관리해줄 조력자가 필요하다.”

김종석 전 인천의료원 원장은 “(박 전 대통령의) 강한 인내심이 때론 문제가 된다. 한국에서만 특이하게 나타나는 ‘화병’은 마음의 고통을 풀지 못하다 결국 신체적 증상으로 터져 나오는 질환”이라며 “배신감을 극복하고 사람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라고 진단했다.

국가 지도자의 심리와 건강에 관한 논쟁은 외국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곤 한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와 다르기는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정신건강 논쟁이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다.

2017년 4월 20일 예일대 의대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한 정신의학 전문가 27명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의견을 발표했다. ‘우리의 직업적 책임에는 경고할 의무가 포함되는가’란 주제로 열린 이 회의에서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초기 독재자의 모습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보스턴정신의학연구소의 랜스 도즈는 트럼프 대통령을 “소시오패스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도 평했다. 이들은 대통령의 건강검진을 담당하는 월터리드 군병원 책임자에게 서한을 보내 트럼프 대통령의 건강검진에 ‘신경학적 건강에 대한 평가’를 포함해 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이 성격적인 문제가 있다면 이는 세계적으로 큰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회의는 정치적 논쟁과 함께 의사의 윤리 논쟁으로 확산됐다. 미국에선 정신과 의사가 허가를 받지 않고 특정 공인의 정신건강에 대해 말해선 안 된다는 직업 윤리를 규정한 ‘골드워터 규칙’이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참석자들은 위급한 상황일 때 의사는 골드워터 규칙을 어겨야 하며,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들이 말한 ‘위급한 상황’은 다름 아닌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건강이었다. 토론 내용은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란 제목으로도 출간됐다.

이들의 주장은 미국 대통령의 정신건강 관리를 백악관 의료진의 업무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쪽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경우 핵무기 관련자들의 정신건강을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정작 핵미사일 발사 단추를 누르는 최종 결정권자의 정신건강이 관리되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는 논리다.

지난해 10월 뉴질랜드에서는 정치적 논쟁이 좀 더 극단적인 정신건강 논란으로 번진 적이 있다. 제이미리 로스라는 국회의원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된 것이다. 로스는 정치기부금 모집 과정에서 한때 자신이 오른팔 역할을 자처했던 국민당 당수 사이먼 브리짓스의 위법행위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후 공개된 두 사람의 대화 녹취록에서 로스 의원이 동료의원을 원색적으로 욕하고 인종차별적으로 비난한 게 드러나면서 국면이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미국에선 심리·정신건강 전문가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 이상설을 제기해 논쟁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의 주장은 책(사진)으로도 발간됐다.
대통령의 ‘심리 전문 주치의’ 필요하다

국내에서도 탄핵사태 이후 국가 지도자의 정신건강 관리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나미 서울대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저서 [한국에서 심리학자로 살아보니](유노북스, 2017)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대통령의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는 나라의 큰 유고에 해당한다. 대통령의 마음이 지옥을 헤매고 있을 때 아픈 마음을 치료할 좋은 의료진이 없다면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걸린다. 지금이라도 청와대에 대통령의 마음 건강을 보살필 심리 전문 주치의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이중적 인식”을 문제로 지적했다. 하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자에 가깝다. 대통령의 탈권위적 소탈함에 열광하는 동시에 강인한 정신을 가진 카리스마를 대통령의 덕목으로 여긴다. 대통령이 가벼운 농담을 하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대통령답지 못한 행동’으로 보는 인식이 크다. 소탈한 수평적 리더십을 보여줬던 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의 장점이 오히려 지지율 하락과 반대파의 공격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정신과 전문의의 조력을 받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적 편견도 정치 지도자들이 쉽사리 심리 관리에 나서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이나미 교수는 “외국에선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게 일반 병원에 가듯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여긴다. 유독 우리나라에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편견이 심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치 지도자들은 정신의학·심리 전문가보다 종교지도자 등의 정신적 멘토의 도움을 얻어 심리적 안정을 꾀하는 경우가 많다. 역대 대통령과 두루 친분이 있는 김장환 목사의 경우 특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가장 의지했던 종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민주화 인사들의 우산 역할을 자처했던 김수환 추기경을 독대하며 시국에 대한 의견을 듣곤 했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는 대선 후보 때 법륜 스님을 정신적 멘토로 받들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하면서 만났던 빈민운동의 대부 고 박형규 목사(남북평화재단이사장)와 정신적 교분을 다졌다.

지도자는 늘 고독하고 피곤하다. 2017년 6월 한국사회심리학회와 국립정신건강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10회 정신건강정책포럼을 보자. 이날 포럼에서 ‘해외 사례를 통해본 정치지도자의 정신건강과 리더십’이란 주제로 강연한 하지현 교수는 리더의 심리적 고충을 ▷고독함 ▷의사결정 과정의 불확실성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의지하고픈 욕구의 좌절 ▷집단을 위한 결정을 위한 개인적 사고의 침해 ▷사적인 자유 포기 등으로 요약했다. 그는 “정신적 문제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윈스턴 처칠이나 링컨은 지독한 우울증을 여러 번 겪기도 했다. 시대 상황에 따라 정치 지도자의 정신적 결함이 위기 극복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영문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새로운 리더십은 대통령 한 사람에 의존하는 리더십이 아니며, 정신건강의 문제를 사회적 경계로 넓히고 시민공동체의 정체성으로 연결하는 해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1902호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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