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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사쿠 칼럼] 인간성을 깊이 신뢰한 만델라 前 대통령 

“착함이란 가려 있으나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분노심 억누르고 아프리칸스어 익혀 상대 마음에 다가가 고난 속에서도 이타적 행동하는 존재가 사회 비추는 ‘당체’

▎이케다 다이사쿠 국제창가학회(SGI) 회장이 1990년 10월 세이쿄(聖敎) 신문사에서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과 만나고 있다. / 사진:한국SGI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한 1948년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 격리 정책)를 시작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 철폐를 목표로 자신이 겪은 차별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극복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 사람이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입니다.

첫 만남은 만델라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석방되고 8개월이 지난 1990년 10월이었습니다. 청년 시절에 해방운동에 뛰어든 심정을 만델라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수백 번이나 모멸감을 느끼고, 수백 번이나 굴욕을 당하고, 기억도 나지 않는 일들을 수백 번이나 겪어 분노가, 반항심이, 동포를 가둔 제도와 싸우자는 정열이 내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투옥으로 매우 가혹한 처사를 당해도 증오심이 그의 마음을 뒤덮는 일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교도관이 이따금씩 보여준 ‘인간성의 단편’을 떠올리며 버텼기 때문입니다.

모든 백인이 흑인을 마음 깊은 곳에서 증오할 리 없다고 느낀 만델라 전 대통령은 교도관이 말하는 아프리칸스어를 배워 먼저 말을 건네면서 상대의 마음에 다가갔습니다.

난폭하고 강압적인 소장마저도 이임으로 교도소를 떠날 때는 만델라 전 대통령에게 처음으로 인간미 있는 말을 건넸습니다.

잊을 수 없는 그 경험을 통해 소장이 보여준 냉혹한 언행도 끝까지 파고들면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비인간적 제도에 짓눌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27년 반, 실제 1만 일에 이르는 옥중생활을 통해 ‘인간의 착함이란 가려 있으나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고 깊이 확신한 만델라는 출옥 후 대통령에 당선해 ‘흑인과 백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행동했습니다.

많은 흑인이 백인 그룹에 살해돼 흑인들 사이에 분노가 소용돌이쳤을 때도 뻔한 말을 늘어놓으며 융화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연설 도중, 만델라 대통령은 갑자기 뒤쪽에 있는 백인 여성을 단상 앞으로 불러 웃음을 머금고 ‘교도소에서 병에 걸렸을 때 간호해준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문제는 인종의 차이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있다’는 신념을 말해주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청중들의 분위기는 급변해 복수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점차 누그러졌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자신을 속박한 ‘비인간성이라는 쇠사슬’의 무게가 몸에 배어 있었기에 나타난 것이 아닐까요.

법화경에 묘사된 불경보살의 실천

우리가 신봉하는 불법(佛法)에도 만델라 전 대통령이 얻은 ‘인간의 착함이란 가려 있으나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는 확신과 공명하는 행동을 끝까지 관철한 보살이 있습니다. 석존이 설한 가르침의 정수인 법화경에 묘사된 불경보살의 행동입니다.

불경보살은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해도 ‘나는 절대 누구도 업신여기지 않겠다’고 다짐한 대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최대로 경의를 표하는 예배행을 계속했습니다. 악구(惡口)를 듣고 돌을 맞아도 ‘당신은 반드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멈추지 않고 말을 건넸습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아무리 가혹한 처사를 당해도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은 것처럼 불경보살은 아무리 사람들에게 비난받아도 그들에게도 존극(尊極)한 생명이 내재한다고 끝까지 믿었습니다.

‘만인존엄(萬人尊嚴)’을 설한 법화경에 바탕을 두고 13세기 일본에서 불법을 넓힌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법화경 정신이 이 행동에 응축해 있다고 보고 “불경보살이 사람을 존경한 것은 어떠한 일이뇨. 교주석존(敎主釋尊)의 출세(出世)의 본회(本懷)는 사람의 행동에 있었소이다.”([어서(語書)] 1174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인 석존의 출세의 본회가 ‘인간’으로서 보여준 행동에 있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석존이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의 등불을 밝힌 것은 초월적인 힘이 아니라 눈앞에서 괴로워하는 사람을 어떻게든 돕고 싶다는 인간성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중병에 걸려 몸져누운 환자를 사람들이 포기하고 있을 때도 두고 볼 수 없다며 몸을 씻기고 격려한 사람이 석존이고, 시력을 잃은 사람이 터진 옷을 꿰매고 싶어 “바늘에 실을 꿰어줄 사람이 없을까”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가장 먼저 말을 건네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이 석존입니다.

또 의지하던 두 제자를 잃고 가슴 아파하면서도 자신을 고무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 사람이 석존이고, 여든이 넘어서도 몸을 사리지 않고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법(法)을 설한 사람이 석존입니다.

어둠과 같은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다가가 아무리 괴로워도 마음에 태양을 떠올려 사람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는다, 이러한 인간 석존의 행동이라는 원류가 있기에 법화경의 ‘만인존엄’ 사상은 현대까지 생생하게 맥동해 계속 이어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승불교에서 부처를 ‘존극한 중생’이라고 일컬은 것처럼 부처는 인간과 동떨어진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불경보살처럼 자기 존엄을 자각하고 그 중요성을 되새기며 주위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의 행동이 가장 존귀한 생명의 빛을 내뿜는 불계(佛界)라는 가르침이 [법화경]의 핵심입니다.

대성인은 이 생명의 역동성을 “우리는 묘각(妙覺)의 부모이며 부처는 우리의 소생(所生)의 자(子)이니라.”([어서] 413쪽) 하고 설하셨습니다.

불법에는 고난을 떠안고 있으면서도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야말로 존엄의 빛으로 사회를 비추는 당체(當體)라는 사상이 맥동합니다.

인권도 마찬가지로 법률이나 조약이 있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본디 누구나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이기에 자유와 존엄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인권을 지키는 법적 제도 마련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도 험프리 박사나 만델라 전 대통령처럼 차별과 인권침해를 당하면서도 ‘이 쓰라린 기억을 누구에게도 맛보게 하면 안 된다!’며 현실사회의 냉혹한 벽을 하나 또 하나 깨부순 사람들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 이케다 다이사쿠 - 1928년 1월 2일 도쿄 출생. 창가학회인터내셔널 회장. 창가대학·창가학원·민주음악협회·도쿄후지미술관·동양철학연구소 등 설립. 유엔평화상·한국화관문화훈장 외 24개국 29개 훈장, 세계계관시인 등 수상 다수. 전 세계 대학으로부터 385개의 명예박사·명예교수 칭호 수여. 토인비 박사와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를 비롯한 저서 다수.

201902호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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