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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2019 부동산 大예측(2) 수도권 3기 신도시의 ‘그늘’ 

7년 후 강남 집값 천정부지로 뛴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jslwsh@yonsei.ac.kr
집값 안정이라는 단기 명분에 균형발전 정책 무력화
인구·돈의 수도권 집중 억제할 힘마저 소진될 수도


▎2018년 12월 28일 3기 신도시로 선정된 경기도 남양주 진건읍 거리에 신도시 지정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사진:연합뉴스
1989년 4월 1기 신도시로 분당·일산·산본·평촌·중동을 개발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나왔다. 집값 안정과 주택 공급을 목표로 노태우 정부는 200만 호 건설을 밀어붙였다. 그 신도시의 착공이 막 이뤄질 즈음 나는 영국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마침 한창 건설이 진행 중이던 밀턴 킨즈(Milton Keynes)라는 신도시를 가봤다.

가난한 시골 출신인 나는 당시 서울에 손바닥만 한 집 하나 없었지만, 도시가 어떻게 발전하고 건설돼야 하는지 나름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곳 기차역에 내린 나는 세 가지 때문에 이내 침묵하게 됐다. 먼저 그들이 신도시를 개발하는 시계(視界)였다. 1967년부터 3년 간 밀턴 킨즈를 계획하고 1970년에 개발을 시작했으며, 2030년에 신도시 개발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1기 신도시 발표로부터 입주까지 6년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너무도 큰 차이였다.

두 번째로 나로 하여금 침묵하게 했던 것은 신도시의 모습이었다. 완전히 촌놈으로 당연히 돈을 모으면 서울에 아파트를 하나 사는 것이 모두의 꿈으로 받아들이던 시절, 영국이 짓는 신도시는 그런 게 아니었다.

주거지역은 대부분 단아한 2층이나 3층 집들이 많았다.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그런 모습을 받아들이며 큰 갈등을 겪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것을 신도시로 여기지 않을 텐데, 더구나 미국으로 유학 가는 것을 마다하고 굳이 영국으로 와서 이런 것을 신도시 사례라고 배웠다고 하면 누가 호기심을 갖겠는가? 적어도 우리가 열망하는 신도시는 분명 아니었다.

또 하나, 침묵하며 바라봤던 풍경은 도로와 주변 지역이었다. 거의 전체 도로의 중앙분리선 아니면 도로의 양 옆이 숲으로 보일 정도의 나무들로 이뤄져 있었다. 노란 선 하나로 된 30㎝ 넓이의 중앙분리선을 사이에 두고 마주 달리는 차들이 죽음으로부터 30㎝ 거리를 곡예 하듯 달리는 그런 풍경이 아니었다.

신도시의 많은 지역이 또 구릉과 숲을 그대로 유지하며 건설되고 있었다. 불도저로 밀어 평평하게 땅을 만든 다음 동일한 집들을 지어가는 모습이 아니었다. 가난한 유학생이 아무 연고도 없는 신도시를 세 시간 이상 달려가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적인 갈등을 느끼며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있던 기억이 새롭다.

항상 시간에 밀려 여행을 감행하기도 어렵던 시절, 간신히 신도시를 돌아보고 온 나에게 지역개발을 같이 공부하고 있던 동료들은 더 이상한 말을 했다.

내가 밀턴 킨즈를 다녀왔다고 이야기하자 친구가 ‘그런 곳을 무엇 하러 갔느냐. 영국 사람들은 신도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담 벽에 이끼가 끼지 않으면 영국 사람들은 동네로 취급하지도 않는다’고 말하던 걸 잊을 수 없다.

우리의 2기 신도시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3년 판교·동탄·김포·파주에 지어졌다. 그리고 2018년 말 드디어 제3기 신도시 건설 계획이 발표됐다. 집값을 잡고 주거 안정을 꾀하겠다는 신도시 건설의 목표는 1·2·3기 모두 동일하다. 다만 1·2기에 비해 투자와 투기를 하고자 하는 열풍은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환경의 변화를 함축하는 변화다.

서울의 중심성만 되레 높이게 될 수도


이번 제3기 신도시 개발은 강남의 집값 폭등으로부터 촉발됐다. 강남의 집값이 턱없이 오르자 청와대 정책수석이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가 호되게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연쇄적으로 강북의 집값이 뛰고, 지방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에 불만이 비등했다.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나 문제 인식이 여전히 1·2기 때와 마찬가지로 집값 안정과 주택 공급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 촉발이 강남의 집값 폭등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단 신도시 개발 계획 발표와 규제 강화로 집값 폭등, 정확히 말해 서울의 집값 상승,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 강남의 집값 폭등이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이번 3기 신도시 개발을 잉태시킨 서울의 집값 상승추이는 대체로 2013년 시작됐고, 2019년은 그 사이클이 내려가는 곡선이 되는 시점이었다. 강남의 집값을 안정시켰다든가, 정부의 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는 것은 오판이라는 의미다.

적어도 정부의 정책이 휘발유를 뿌리는 역할을 하지 않고, 또 투기를 방치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서울의 집값 안정이나 강남의 집값 폭등 원인을 해소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오히려 3기 신도시 건설로 강남의 중심성은 한층 커질 것이다. 향후 7년 정도 후에 강남의 집값은 다시 천정부지로 폭등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강남을 대체할 만한 그 어떤 대안적 신도시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서울 주변에 신도시들을 늘어놓아 인구의 수도권 집중을 안착시키며, 모든 교통의 접근성을 결국 강남으로 향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군대생활을 같이했던 모 국회의원이 ‘이부망천’이라는 말을 했다가 정치생명을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이혼한 사람은 부천 정도로 밀려갔다, 망하면 인천으로 가게 된다는 내용으로 해당 지역의 자존심을 짓밟은 설화(舌禍)였다.

그러나 냉정하게 이론적으로 본다면 공간 사이에는 위계(hierarchy of spaces)가 존재한다. 자본력·매력·교육·쾌적도·문화·교통 등이 그 위계(位階)를 결정한다. 적어도 한국에는 서울 강남의 중심성을 따라갈 대안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신도시가 건설되더라도 가장 의미 있는 쇼핑·데이트·상견례·결혼식·취업·회의일수록 강남을 지향할 것이다. 주거지로의 선택은 말할 나위가 없다. 문화적 수준, 쾌적성과 편리함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2기 신도시를 급히 계획해 발표했던 노무현 정부 때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때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참모들은 강남과 전쟁을 하는 듯 제스처를 취했지만, 결국 강남의 집값을 잡지도 못했고 강남 아줌마들에게 정부가 패배했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그때도 결국 그 불씨가 전체 서울 집값을 꿈틀거리게 했고, 서민들의 불안과 불만을 자극해 제2기 신도시 처방이 황급히 내려지게 된 것이었다.

이번 3기 신도시에는 교통수단으로 수도권 광역 급행철도(GTX)가 제시됐다. 세 개의 노선이 설계돼 발표됐는데 A노선은 파주─동탄, B노선은 마석─송도 국제도시, C노선은 양주─수원을 연결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발표의 핵심과 언론의 관심 그리고 판단 기준은 하나다. 강남까지의 도달 거리가 그것이다. GTX는 시속 100㎞ 수준으로 달려 강남까지 20분 만에 주파할 수 있다고 해야 시장에서 메시지가 신속히 이해되고 있으며, 실제 언론과 건설 업체의 홍보에서 그것이 지표로 활용된다.

3기 신도시 후보지로 ▷과천 155만㎡(7000세대) ▷남양주 왕숙 1134만㎡(6만6000세대) ▷하남 교산 649만㎡(3만2000세대) ▷인천 계양 테크노밸리 335만㎡(1만7000세대) 4곳이 지정됐다. 그런데 신도시가 분산 역할을 하기보다는 서울 특히 강남의 중심성을 크게 강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는 7년쯤 후 가시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지방 분산과 삶의 질에 도움 안 되는 신도시


▎1기 신도시인 경기도 일산 신도시 식사지구 전경. / 사진:디에스디삼호
신도시 건설로 서민층에게 주택을 제공하고 강남의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목표를 비판하자는 것은 아니다. 필자야말로 그런 정책 목표에 크게 찬성한다. 문제는 지금의 정책기조와 수단으로서는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 명약관화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지방으로 분산과 분권을 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를 생각해보자. 내가 보기에 수도권 집중과 서울 집중을 억제하거나 완화하는 데 가장 큰 방해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신도시 정책이다.

해방 후 서울의 과밀과 난개발 그리고 인구 과밀을 처음으로 심각하게 인식하고 제한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 1964년이었다. 당시 건설부는 대도시 인구집중방지책을 발표했는데, 그 핵심은 서울로의 집중과 과밀이 관심 대상이었다.

이어서 1982년 서울을 넘어 수도권 차원의 인구 집중을 예방할 필요성이 제기돼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제정했다(1982). 수도권의 공간적 범위가 서울·인천·경기도 전역으로 확대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인구 집중 유발시설의 신설·증설을 억제했다.

1994년 들어 수도권 규제를 유연하게 운용할 필요성을 가미해 수도권정비계획법 및 시행령을 전면 개정했는데(1994, 건설교통부), 그 내용은 대학이나 공장 부지를 총량으로 규제하는 것이었다.

개별적·획일적 규제보다 총량규제는 약간의 유연성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도 수도권의 과밀은 지속됐고, 이제 분산과 분권을 하지 않으면 국가경쟁력·안보·지방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크게 일어났다.

이러한 어젠다는 정치판과 선거에서도 활용돼 세종시 건설이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나타나 대부분 시행됐고, 153개 공공기관 이전이 추진됐다. 그래도 아직 지방은 인구와 자본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지방의 자족적 회생력은 아주 열악한 상태에 있다.

왜 그럴까? 무엇이 수도권 규제의 틀을 허물고 지방으로의 분산을 물거품처럼 만드는가? 가장 큰 요인은 신도시 정책이다. 일반법으로 돼 있는 수도권 집중 억제 정책은 수도권 건설을 한다는 특별법으로 일거에 함락되고 만다.

함락이라는 표현을 여기서 사용하는 이유는 집값 안정과 주택 공급이라는 그럴듯한 단기적 명분 하에 장기적으로 전국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고자 하는 제도와 틀이 일거에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과거의 200만 호 그리고 이번의 12만 호의 건설과 공급, 그에 따른 인구의 정착은 엄청난 규모의 자본과 일자리·상권·교육·복지 등의 수요를 집결시킨다. 수도권 억제와 규제라는 명분으로 도모해왔던 인구나 돈의 수도권 집중 억제를 지속할 힘은 여지없이 함락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주기적으로 신도시를 만들어 오는 과정에서 파생된 부작용이다.

전원도시이거나 대안적 가치 가져야


▎1월 8일 화성시 동탄1신도시의 출근길 시민들이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러면 수도권에 거주하는 서민들의 주거 마련 대책을 어떻게 할 것이며, 대안이 있는가? 누구도 하나의 대안으로 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여러 가지의 사회적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하고 분명한 처방의 하나는 수도권 내에 만들어지는 신도시일지라도, 그리고 지방에 만들어지는 주거지들을 포함해 서울의 강남에 거주하는 사람에게도 대안적 주거지가 될 수 있도록 삶터를 설계하고 짓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강남의 주택에 버금가는 주거시설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면 커다란 착각이다.

강남의 커다란 고가(高價) 주택에 거주하는 내 지인들은 은퇴하고, 삶을 다운사이징(down sizing) 하며 살고 싶어한다. 심지어 넓은 고가의 아파트를 좁은 집으로 바꿔 노년을 살고도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선택할 대안이 없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기존의 신도시를 지어대는 한, 그 신도시는 서울의 고급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집을 팔고 이사 가기에는 근본적으로 어렵다. 그들은 아마 노년과 말년의 삶을 실패하는 것으로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만큼 신도시를 쾌적한 전원도시로 만들거나, 아름다운 삶터로 제공하거나, 공동체를 활성화해 대안적 가치를 갖도록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국의 밀턴 킨즈 같은 신도시는 꿈인가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인구와 돈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지방에 대안적 삶터를 만들어줘야 한다. 쾌적함·문화·어울림이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주고, 능력 있고 돈 있는 사람들에게 노년의 삶을 다운사이징 해서 살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당연히 서울의 집값이 폭등할 때 단기적이고 응급적인 대증요법의 하나로 신도시를 급조하는 일이 반복되는 한 이런 목표를 추구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공동체의 파괴와 형성에 관심이 있는 필자는 서울을 탈출하고자 강원도 진부에 동네를 하나 만들고 있다. 스위스의 시골마을 같은 동네를 만드는 게 나의 목표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한국에서 각 분야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지방이기 때문에 내려가서 살기 싫어할 것이라는 편견은 그야말로 편견이다. 어떤 대안을 찾고 제시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단기적 처방이라 그랬을까. 신도시 정책을 구상하고 추진하는 과정에 아쉬움이 크다. 신도시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얼마 후 공시지가의 폭등 정책을 발표한 것이 그 예다.

공시지가는 토지 보상의 기준이다. 어떤 경우든지 정상적인 정책 조정과 추진이라면 신도시 개발계획 발표 후에 공시지가의 큰 폭 인상을 발표하는 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필시 이러한 사정 때문에 이번 3기 신도시 개발에서는 과거의 토지 보상 기준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커다란 갈등이 예상된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의 갈등과 불협화음도 눈에 띈다. 서울시는 국토부의 신도시 계획 발표와 별도로 8만 호 건설 계획을 발표했는데, 양자 사이에 협력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서울시의 발표 자체도 신뢰성이 높지는 않다. 서울시의 담당자는 사석에서 ‘8만 호를 건설할 부지가 서울시에는 없다. 아마 4만 호 공급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나는 이런 꿈을 갖고 있다.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신도시를 단독주택으로 짓는다는 뉴스를 듣고 싶다.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밀턴 킨즈 같은 신도시를 짓는다는 소식을 듣고, 가까운 벗들과 거기에 가서 노년을 살고 싶다. 생활비도 줄어들 것이고, 나의 삶을 다운사이징 해서 의미 있는 삶과 즐거움을 누리며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

201902호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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