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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의 대학총장 열전] 창업 ‘뗏목론’ 주창하는 김용학 연세대 총장 

“청년들아, 대기업 여객선 기다리지 말고 뗏목 만들어 세계로 나가라” 

양영유 교육전문기자
사회연결망 최고 전문가로 미래 대학 방향 이끌어
“도전과 실패는 청춘의 특권, 대학은 개혁 방향 0.5도 틀어야”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미래 사회에는 머리만 똑똑한 인텔리전스보다 심성이 따뜻하고 네트워킹을 잘하는 익스텔리전스형 인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김용학 총장은 서울 소재 메이저 대학 총장의 맏형이다. 2016년 2월 취임해 4년 차 총장이 됐다. 올해 경쟁 대학 총장들은 대부분 교체되고 있다. 사회학자인 김 총장과는 달리 이공계 출신이 많다. 1월 8일 취임한 성균관대 신동렬 총장은 전자공학, 곧 취임하는 서울대 오세정 총장은 물리학, 3월에 취임하는 고려대 정진택 총장과 한양대 김우승 총장은 기계공학이 전공이다. 그런 만큼 김용학 총장의 어깨는 무겁다. ‘사회 연결망 이론’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사회 현상을 주목해왔다. 100세 시대와 네트워크 사회에 대학은 어떤 인재를 키워야 할지, 대학을 어떻게 개혁해야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문명사적 대전환기인 4차 산업혁명을 맞아 경쟁 대학 총장들이 이공계 출신으로 세대교체 중이니 긴장감이 더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고등교육 패러다임 변화의 물결이 밀어닥치고 등록금과 강사법, 입시문제 등이 겹친 2019년의 여정도 녹록지 않다. 그렇지만 연세대 총장실에서 만난 김 총장은 관록과 자신감이 넘쳤다.

신년사에서 미래 대학을 향한 큰 그림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했다.

“나는 4차 산업혁명을 4차 문명혁명이라고 부른다. 대학의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무크(MOOC), 국경 없는 대학, AI 등에 대비해야 한다. 문명혁명이라고 넓게 보는 이유는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AI가 교회에서 설교하면 신도들이 들을까? 인간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터랙션(Interaction), 즉 교류 파트너가 생겼다. 온갖 분야가 변화할 것이다. AI가 인간의 인격을 모독하면 어떡하나? 산업의 문제인가? 상상도 못 했던 문제다. 산업은 좁은 개념이다. 그래서 ‘문명’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정보사회까지, 다 문명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학은 이런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그간의 성과가 궁금하다.

“뭔가를 이뤄내기보다는 방향을 0.5도 틀고 있다. 상징적 표현이다. 교육은 백년지계인데 4년 동안 판도를 바꾸기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회학도로서 미래를 미리 볼 수 있도록 훈련받았다. 트렌드가 어디로 갈지 알고 있다.”

“소프트 스킬 가진 사람이 궁극적으론 성공할 것”


▎2018년 10월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정기 연고전에서 40여 년 친구 사이인 김용학 연세대 총장(오른쪽)과 염재호 고려대 총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세대
어디서 0.5도를 틀었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헤크먼은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사람보다 소프트 스킬, 즉 인성과 품격, 그리고 배려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 처음엔 똑똑한 애들이 잘나가는 게 사실인데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인성이 좋은 사람이 성공한다. 그래서 ‘따뜻한 인재’를 길러내도록 혁신을 추진했다.”

따뜻한 인재는 어떻게 키워야 할까?

“익스텔리전스(Extelligence)다. 지금까지 교육은 인텔리전스(Intelligence) 위주로 이뤄졌다. 인텔리전스는 머리가 똑똑한 것을, 익스텔리전스는 바깥에 있는 똑똑함을 새로이 연결하자는 개념이다. 바깥에는 똑똑한 것들이 아주 많다. 이런 것들을 자원으로 활용해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연세대 고등교육혁신원이 그 역할을 한다. SK그룹이 뜻을 같이해 지원해주고 있다. 독거노인 문제를 보자. 이들은 추운 겨울을 보낸다. 학생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 결과 1인용 텐트를 고안해냈다. 텐트를 치고 자면 실내 온도가 4~5도 올라간다고 한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모시고 글로벌 사회공헌원도 만들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려면 삶의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를 묻는다. 사고방식을 바꾸려는 교육이다.”

좋은 시도인 것 같다. 2019년의 고등교육을 어떻게 보나?

“대학들이 춘궁기를 겪고 있다. 등록금에만 의존하는 수익모델로는 미래가 없다. 지적재산권이 창출하는 수익모델을 생각해야 한다. 연세대는 송도국제캠퍼스에 사이언스 파크(science park)를 조성하는데 그 첫 단계로 지난해 10월 융합과학기술원을 설립했다. 10명의 엘리트 교수가 송도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삼성·셀트리온·존슨앤존슨 등 인근의 바이오기업과 협업하고 있다. 대학원 과정도 만들었다. 수익모델을 0.5도 바꾸는 시동을 건 것이다.”

다른 대학에도 자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근본 해결책은 안 되지만 시도를 해보자는 취지다. 더 중요한 건 디지털화다. 세계 최초로 5G 망을 기반으로 공대·음대·생활과학대·의대·치대가 KT와 공동으로 5G 테스트베드 활용연구를 시작했다. 가상현실(VR)과 혼합현실(MR), 홀로렌즈 기반 교육 콘텐트가 만들어지면 국내 대학의 모델이 될 것이다.”

“실패는 젊음의 특권, 두려워 말고 공유하는 게 중요”


▎2018년 9월 연세대 총장공관에서 열린 연고전 출전 선수 격려 만찬 중 김용학 연세대 총장이 외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세대
김 총장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 2016년 취임 당시에는 창업을 강조하더니 올해는 미래 대학의 방향 설정에 애정을 쏟고 있다. 남다른 행보다.

창업을 강조하면서 ‘뗏목론’을 주창한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 청년들은 기성세대보다 실력이 월등하고 똑똑하다. 그런데 급변하는 사회·경제 구조 속에서 좌절한다. 연대생도 예외가 아니다. 예전에는 졸업하면 수천 명을 태워줄 거대한 여객선, 즉 대기업을 기다리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여객선도 작아졌고 잘 오지도 않는다. 스스로 뗏목을 만들어 항해해야 한다. 그게 창업 뗏목론이다.”

뗏목으로 거친 바다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대량 교육(mass education), 대량 고용(mass employment), 종신 고용(life time employment)은 산업혁명이 유도해왔다. 4차 산업혁명, 아니 문명혁명시대에는 각자 뗏목을 만들어야 한다. 창업이 뗏목 역할을 할 수 있다. 젊었을 때 만들어야 한다. 나중에 실패하면 훨씬 더 어렵다. 훈련하고 준비하는 건 젊음의 특권이다. 실패도 특권이다. 돈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문제다.”

뗏목을 만드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3년 전 중앙도서관에 ‘시끄러운 도서관(Y-valley)’을 만들었다. 700평 정도 되는 공간이다. ‘사람 책’을 꼽자는 개념이다. 실패한 사람은 누구든지 와서 지식과 지혜를 토론하고 배워가라는 의미다. 사람으로부터 의미를 얻어가자는 취지다. 창업에 성공하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원래 인생은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다. 학생들은 실패할 특권이 있다. 실패를 경험해보라고 얘기해주면서 스스로 실패와 인생에 대해 공부하게 하는 것이 학교다.”

김 총장은 뗏목론도 교육을 0.5도 바꾸는 시도의 하나라고 했다. 기존에는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돼 지식이 일방적으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이 편재하기 때문에 학생으로부터 학생에게, 학생으로부터 교수에게 퍼져나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교육이 한 방향이 아닌 N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김 총장은 지난해 88개 강좌를 강의실이 아닌 현장에서 진행했다. 생활 문제와 풀뿌리민주주의 등 다양한 주제를 교실 밖으로 끌고 나간 것이다.

문제 해결 능력에 초점을 맞춘 것인가?

“정답만 찾는 교육을 없애야 한다. 초등학생부터 정답 찾기를 하고 있다. 사지선다형이 다 정답 찾기다. 정답이 없는 문제도 얼마나 많나? 문제가 뭔지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눈을 부릅뜨고 문제를 찾으라고 말한다. 문제를 찾았다면 학부생도 연구비를 준다. 1년 예산이 송도 캠퍼스 1억5000만원, 신촌 캠퍼스 20억원이다.”

현실 문제에 부딪히며 도전하라는 의미 같다.

“그렇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창업은 스스로 배우는 학교다. 도서관의 전통적인 의미가 없어진다는 반대를 무릅쓰고 시끄러운 도서관을 만든 이유다. 내가 보는 창업은 하나의 문화다. 위험 감수(risk taking) 문화다. 창업의 가장 큰 적은 학부모다. 학부모가 아이의 창업을 막기 때문에 아이가 창업을 원해도 하지 못한다. 부모님 세대엔 창업이 다소 위험했다. 지금의 세대들은 창업하지 않아도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창업하건 안 하건 삶 자체가 위험해진 것이다.”

기성세대의 우려가 괜한 것은 아닐 것이다.

“농경 사회에서 열대우림 사회로 변했다. 농경 사회에서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났다. 잡초는 뽑으면 그만이었다. 즉, 예측 가능한 모델이다. 열대우림 모델은 뭐가 뜨게 될지 예측 불가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이 이렇게 뜰 줄 누가 알았나? 이런 가운데서 수많은 잡초가 크다가 어느 순간 거목으로 성장하는 것이 열대우림이다. 농경 사회에서 열대우림 사회로 건너오면서부터 위험과 불확실성이 상존하게 되었다. 불확실성은 삶의 조건이다. 안정성을 이유로 공무원이 되려 하지만 미래엔 이런 직업도 보장이 안 된다.”

김 총장은 미래에는 일과가 양분될 것이라고 했다. 오전과 오후에 하는 일이 달라질 거라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교육은 또 다른 의미를 가져온다. 예전엔 직업교육을 했다. 급변하는 사회에선 직업교육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점이 발생한다. 기본을 갖춰야 한다. 여기서 기본은 따뜻한 인간상이라는 것이다.

연구력이 경쟁력 관건…이공계 교수 정착금 1억5000만원


▎2018년 6월 김용학 총장이 조선시대 책거리 행사를 되살리는 취지로 총 500명의 재학생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하는 종강맞이 밥&Talk 행사를 진행했다. / 사진:연세대
김 총장이 교육 개혁 전도사를 자처하지만, 연세대의 글로벌 경쟁력은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세계 대학평가에서 맞수 고려대는 물론 성균관대에도 뒤처지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국내외 평가에서 경쟁 대학에 순위가 밀리고 있다.

“답은 명확하다. 연구력이다. 외국기관의 평가는 논문의 인용 평균횟수를 중시한다. 1위 논문은 5년 간 누적이 6000번, 2위는 3000번, 3위는 2000번이다. 1위 논문이 3000명 분의 연구 몫을 한다. 고려대나 성균관대나 1위 논문을 관리하기 위해 교수를 끌어모은다. 몇 명만 데려오면 된다. 인덱스를 직접 공략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하지 않았다. 이제야 발견했다. 그래서 외국이나 국내에서 최고 교수진 영입을 시작했다. 이런 교수 한두 명만 움직여도 순위는 확 변한다.”

연세대는 연구력 향상을 위해 이공계 신임 교수 연구정착금을 1억5000만원, 인문사회계는 3000만원으로 올렸다. 상시 채용제도를 통해 연구력 상위 5% 교수를 영입하고, 학과 교수 배정 인원(TO)에 연간제한을 두지 않고 뽑을 때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교수 평가시스템도 개혁했다고 들었다.

“종전에는 논문 편수가 기준이었다. 많은 교수가 편수 채우느라 정말 하고 싶은 논문을 못 쓰겠다고 하소연하더라. 홈런을 못 치고 단타만 치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양적 평가에서 질적 평가로 바꿨다. 6년 근무 후 연구년도 3년마다 부여해, 한 학기씩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도 연구력이 쉽게 향상되지는 않는다.

“사실 돈이 많이 든다. 과거와는 다르다. 연구 수준이 깊어지다 보니 한계 생산성은 점점 낮아진다. 반면 투자 여력은 약하다. AI 단과대 설립에 1조원을 투자하는 MIT 대학, 우리는 꿈도 못 꾼다. 100억원짜리 연구도 없다. 정부 지원 연구비도 삭감되는 추세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슈퍼 스타트업을 10년 간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이 프로젝트도 쇠퇴했다. 인재 스카우트 전쟁에서도 밀린다. 세계적 교수가 동문이어도 못 데려온다. 돈을 열배 더 주는 곳으로 간다.”

재정 문제가 나왔다. 교육부가 등록금을 국가 지원사업과 장학금, 심지어 시간강사 지원과도 연계한다.

“답답하다. 이런 상태로라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다. 몇 년 후에 문을 닫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대학들이 태반이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에 따르면 전국 153개 사립대의 연간 등록금은 40조원 정도다. 각 대학이 등록금을 연간 1%만 인상해도 4000억원이 쌓인다. 강사법 시행에 따른 필요 예산 3000억원 충당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강좌 수를 줄이는 대학엔 재정 불이익을 주겠다고 하자 반발하고 있다.

10년간 등록금 문제는 뜨거운 이슈였다.

“등록금 이슈가 정치화, 이데올로기화돼 있다. 반값 등록금도 같은 맥락이다. 어느 정치가가 이걸 움직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힘든데 왜 쓴소리를 못 하나.

“하긴 한다. 하지만 불이익을 받을까 조심스러울 뿐이다. 교육부 힘이 더 세지고 있다. 연구와 프로젝트들 사업이 많아지니 그렇다.”

“교수들, 토굴 밖으로 나와야”

대학도 자성할 점이 있겠다.

“교수들부터 토굴 속에서 뛰쳐나와야 한다. 각자의 토굴에서 안주할 때가 아니다. 개별 전공의 한계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 옆으로 연결하면 생산성이 뛴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예전에 비 오는 날, 노래방에 가서 제목에 ‘비’가 들어간 제목의 노래 부르기 내기를 했다. 처음엔 잘 찾더니 ‘비 내리는 고모령’까지 가니 노래 찾는 속도가 떨어졌다. 상대팀이 못 찾고 울상이어서 이겼다고 확신하는 순간, ‘렛잇비’를 부르더라. 경계를 넘어갔다. 인정해야 할지 말지 옥신각신하다 결국 인정해줬다. 나중엔 비우티풀(beautiful) 등 여러 노래가 나왔다. 생산성이 마구 높아졌다. 경계를 넘어간다는 건 토굴을 벗어난다는 의미다. 나는 교수들을 토굴 밖으로 나오라고 참 많이 설득했다.”

김 총장은 교수들이 잘 움직이지 않아 대학원생을 모아 성과를 냈다고 했다. 그랬더니 교수들이 움직이더라는 것이다. 현재 연세대 안에 융합연구가 많이 돌아가는 비결이다.

연세대는 스카이 리그(SKY league) 대학이다. SKY 리그를 깨든지, 아니면 10개 정도는 더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단계적으로 그룹을 몇 개 만들어야 한다. 집중 투자해 성공시키고 다른 지역으로 확산해야 한다.”

입학처장도 하셨는데 SKY 집중 현상을 어떻게 보나?

“입시 서열시장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입시가 한 가지 고정된 기준이 아니라 여러 기준으로 진행되고 있어서다. 학생 수도 급감해 졸업장의 사회적 가치도 쇠퇴했다. 기업들은 나노 디그리(Nano Degree,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해 맞춤형으로 학습하는)를 더 선호할 것이다. 효과가 좋으면 확산 속도도 빨라진다.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드라마 ‘SKY 캐슬’처럼 SKY 선호도가 금방 바뀔 수 있을까?

“의대는 남아있을 것이다. 의대 선호도가 워낙 강한데 로스쿨도 마찬가지다. 다른 분야는 전반적으로 약화할 것이다.”

대입 개혁을 여러 번 주장했다. 수시는 연중 수시로 뽑아야 한다고도 했다. 정부에 제안해봤나?

“물론 했다. 하지만 실현하지 못했다. 국가교육회의와 공론화위원회에서 입시를 정하니…. 대학의 목소리가 너무 약하고 잘 먹히지 않는다. 등록금처럼 입시도 정치화되어 있다. 답답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자율성이 답이다. 교사 추천제를 보자. 교사가 아이들을 가장 잘 안다. 교사 추천제는 내신을 보지 않는다. 추천서 비중이 크다. 그런데 사람들이 의심한다. 비리가 걱정되면 시민단체가 입시 과정을 지켜봐도 된다고 말했다. 참관하면 된다. 그래서 교사 추천제로 일단 100명을 뽑겠다고 선언했는데도 불신이 워낙 크다. 투명성은 물론 대학 책임이다.”

서울대와 고려대는 논술을 폐지했다. 연세대는 어떤가?

“3년 예고제가 있어 계속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논술이 사교육의 주범으로 몰려있다. 이건 아니다. 논술이 아닌 수능이 사교육의 주범이다. 논술은 사교육의 아주 작은 비중에 해당한다. 사교육 받는다고 논술 점수가 올라가지 않는다. 사교육 받은 수험생의 논술 패턴은 글에 다 드러난다. 학원물이 들어 있다. 정형화된 답안은 채점할 때 골라낸다. 사교육이 오히려 연세대 들어오는 데 해가 될 것이다. 투박하고 틀은 안 갖춰져 있지만 자기 생각을 표현하려는 답안은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논술 교육을 포기한다는 것은 60년대 무즙 파동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다. 정답만 맞히는 교육, 언제까지 할 것인가?”

연세대는 2016학년도와 2017학년도 논술 문제가 고교 교육과정 범위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올해 입시에서 35명 정원 감축 처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논술 고사에 대한 김 총장의 소신은 확고했다.

정부·대학 함께 바뀌는 공진화에 국가 미래 달려

김 총장은 평소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강조했다. 입시는 물론 고등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면 리딩그룹이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론이다. 영원한 맞수 고려대와의 학생·시설·교수 품앗이도 그런 맥락이다.

대학의 파괴적 혁신 ‘공유 모델’ 전파에 나서고 있다.

“고려대와 학생·강의·교수·시설 등 공유 캠퍼스를 진행하고 있다. 강의 품앗이의 경우 스타 교수들이 공동 강의를 하자 강의실이 모자랄 정도다. 효과 만점이다. 포스텍(포항공대)과는 개방공유 캠퍼스를 선언했다. 포스텍의 70명 교수를 연세대 겸임교수로 얻었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투자를 얼마 안 하고도 70명의 포스텍 교수가 연세대 교수가 되었다. 연세대에선 25명이 포스텍 겸임교수로 발령받았다.”

대학의 변화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교육부와도 궁합이 맞아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정부와 대학이 같이 진화해야 한다. 코에볼류션(coevolution), 즉 공진화(共進化)다. 지금까지는 규제 중심적, 국가 중심적 시스템에서도 괜찮았다. 하지만 새로운 문명혁명 시대에는 대학과 정부가 다 같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의 문명사적 변화는 기존의 산업혁명보다 범위가 넓다. 대학만 달달 볶아서 될 일이 아니다.”

구체적인 공진화 방법은?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정부와 대학 간 협의체, 이게 바람직하다. 교육부·대학·산업계의 공진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거기서 미래를 논하자.”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천도책(天道策)’이라는 이율곡의 과거시험 문제와 답안지를 본 적이 있다. 문제가 굉장히 길다. 질문은 우주론이다. ‘왜 구름, 비가 존재하는가.’ ‘왜 중국의 어느 임금 때는 비가 많이 내렸는가? 하늘이 사사로울 수 있는가?’ 이율곡의 첫 문장이 나를 움직였다. 나는 학회에서도 빙빙 돌려 말하는 걸 싫어한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왕따가 되어가는 걸 느꼈다. 이율곡의 답안지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하늘과 같은 집사님께서 이렇게 훌륭한 문제를 내셨는데 내가 이렇게 답하면 좋을까? 그러나 물으시니 감히 조아리면서 답을 시도해보겠다.’ 이게 답안의 첫 문장이었다. 겸양의 겸양의 겸양의 자세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교훈이다.”

김 총장의 개인사가 궁금했다. 특히 김 총장과 고려대 염재호 총장은 40년 지기다. 1979년 SK그룹의 해외 유학 장학생 프로그램에 각 대학 1등으로 꼽힌 게 우정의 싹이 됐다. 라이벌 대학 간의 강의 품앗이도 오랜 우정의 합작품이었다.

연고전에서 2연승 했다. 역대 전적도 20승 10무 18패로 앞섰다.

“염 총장한테는 미안하다. 2017년엔 5전 전승, 지난해엔 3승 1무 1패였다. 운이 좋았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학생들이 즐기고 모교에 대한 애정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어린 시절에 이사를 많이 다녔다고 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셨다. 초등학교 때만 예닐곱 번 이사했다. 그게 큰 영향은 아니었지만 사실 학생 때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다.”

김 총장은 갑자기 무즙과 창칼 파동 얘기를 꺼냈다. 1960년대 서울지역 중학교 입시 파동 얘기였다. “무즙(1964년 12월)과 창칼(1967년 12월) 파동 사이에 중학교에 들어갔다. 지금 봐도 기가 막힌다. 엿을 만드는데 무엇을 넣고 갈아 만드는지 초등생들한테 왜 물어보나? 3년 뒤엔 창칼 파동이 일어났다. ‘목판화를 새길 때 창칼을 바르게 쓰고 있는 그림은?’이라는 문제였다. 그때부터 교육에 대한 반발심이 생겨났다.”

공부를 등한시했다면서 경기중·경기고를 나왔다.

“초등 6학년 때 벼락 과외를 받아 경기중에 합격했다. 그후론 별로 공부를 안 했다. 중3 때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고 염세주의에 빠졌다. 경기고는 무시험으로 진학한 두 번째 세대다. 고3 때야 정신 차리고 6개월 공부했다. 운 좋게 연세대에 합격했다.”

요즘 수험생들을 좌절시키는 말이다.

“(웃으며) 그때는 가능했다. 지금은 어릴 때부터 죽어라 훈련받아야 하지만, 당시엔 본고사만 잘 보면 가능했다. 인생에서 큰 좌절을 겪지는 않았다. 그게 나의 열등감이다.”

“당장 링크드인에 등록하라”

자녀 교육관이 궁금하다.

“첫째는 딸, 둘째는 아들이다. 딸은 금융계 회사에 다녔는데 사위 따라 미국에 갔다. 외고를 나와 연세대를 졸업했다. 아들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대에서 포닥 과정을 밟고 있다.”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켰나?

“잠깐 한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애들 공부에 개입한 적이 없다. 연구년으로 해외에 갈 때도 고2 아들을 데리고 갔을 정도다. 무심했다.”

평소 즐기는 취미가 궁금하다.

“바둑이다. 아마 5단 정도 된다. 3년 전 총장 취임사에 인공지능(AI) 사례를 넣었던 이유다. 당시 알파고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바둑에 관심이 있었기에 알파고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알파고가 인간을 이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국하기 전 ‘당신이 알파고에 지는 게 역사에 길이길이 남는 방법’이라고 전했다. 전례를 살펴보면 세기의 대결에서 진 사람의 이름이 역사에 오래 남아있다.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이 이세돌과 잘 아는 사이여서 내 말을 전했다. 그분도 바둑 엄청 좋아한다.”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나.

“1순위는 자전거 세계여행이다. 접히는 자전거를 갖고 꼭 도전하고 싶다. 2순위는 파이썬(Python) 배우기다. 파이썬은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다. 딥러닝과 AI가 모두 파이썬을 통해 이뤄진다. 감히 배워보려 한다.”

뗏목을 타고 세계로 나가려는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당장 링크드인(Linkedin)에 등록하라는 것이다. 링크드인(www.linkedin.com)은 세계 200개국 5억4600만 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비즈니스 네트워킹 사이트다. 세계의 인재들이 인맥을 맺고 그 힘을 활용해 각자 원하는 커리어의 꿈을 펼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젊은이들의 무대는 세계다. 링크드인에 접속하라.”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겸양의 자세, 자신을 낮추는 것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박스기사] 김용학 총장 약력

■ 1953년 서울 출생. 경기고·연세대 사회학과
■ 미국 시카고대 사회학 석·박사
■ 1987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입학관리처장·사회과학대학장·행정대학원장
■ 미국사회학저널(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등 학술지 편집위원
■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교육부 대학설립위원회 위원
■ 2016년 2월 연세대 총장

※ 양영유 교육전문기자 - 교육자가 되려고 고려대에서 영어교육학을 공부했지만 기자가 됐다. 중앙일보 교육데스크, 정책사회데스크, 사회에디터, 논설위원을 거쳤다.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사회 정책, 특히 문명사적 전환기의 고등교육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한국외국어대에서 교육저널리즘으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저 [대한민국 파워엘리트]와 역서(譯書) [멀티미디어 조직혁명]이 있다.

- 글 양영유 교육전문기자 yangyy@joongang.co.kr / 사진 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 녹취 정리 신재현 인턴기자

201902호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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