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김환영의 사랑학개론(14)]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작가가 된다는 건 진리를 발견하는 것” 

삶과 사랑의 경중(輕重) 문제 본격적으로 다룬 대표작
복잡한 걸 단순하게 표현하는 ‘키치’가 대중의 호응 이끌어내


▎김승우와 고(故) 장진영 주연의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한 장면. 제목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연상시킨다.
삶이 유한하기에 사랑도 유한한 것일까. 그래서 사랑에도 시효(時效)가 있는 것일까. 시효를 이겨내지 못하는 사랑은 애초에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삶이 유한하기에 사랑은 반드시 영원해야 하는 것일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내용이 다분히 철학적이라 머리가 지근지근 아플 수도 있는 소설이다. 물론 철학적이라 좋아하는 독자도 많다.

상당히 ‘야한’ 소설이기도 하다. 머리에 묻히고 온 다른 여인의 체취 때문에 바람피운 게 아내에게 걸리기도 하고, 내 아내와 정부(情夫)가 우정을 쌓고 둘이 서로의 누드 사진을 찍는 막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맞바람 이야기도 나온다. ‘프라하의 봄’이 배경이다.

‘인간적인 얼굴의 사회주의(Socialism with a human face)’를 시도한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1968)은 ‘서울의 봄’(1979. 10. 26.~1980. 05. 27.)과 ‘아랍의 봄’(2010)의 대선배다(소련이 만약 ‘프라하의 봄’이라는 정치 실험을 용인했다면 소련·동구권이 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세 ‘봄’은 모두 독재·권위주의의 종식을 꿈꿨다. 두 봄은 결국 성공했고 한 봄은 현재진행 중인 숙제로 남았다.

독재의 질곡과 민주화의 격랑 속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한다. 반대로, 사람들은 사랑의 질곡과 섹스의 격랑 속에서도 정치나 권력과 대면한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누구도 사랑과 정치를 피할 수 없다. 사랑은 비 정치적인 것들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정치와 사랑의 공통분모는 독점과 희열과 불안이다. 정치는 권력을 가능하면 독점하려고 한다. 정치인들은 권력의 희열을 맛본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불안하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대상을 독점하려는 욕구가 있다. 사랑에는 희열이 있기에 그 희열을 누군가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두렵다(어쩌면 종교를 포함시켜야 독점·희열·불안이라는 정치·사랑·종교 트로이카가 완성된다).

니체의 영겁회귀에 대한 성찰로 시작


▎1.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한글판 표지. / 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저자 밀란 쿤데라.
독재와 민주화와 사랑과 섹스는 모두 우리에게 ‘순응과 저항’, ‘참여와 외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꼭 한 가지를 선택할 이유는 없다. 상당수 양자택일·이분법은 논리적 근거가 없는 함정인 경우가 많다.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보다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처럼 어떤 균형(balance)이 필요한 경우도 있으리라. 그때그때 경중(輕重)을 잘 가리는 게 균형의 미학이다.

경중은 “가벼움과 무거움” 혹은 “중요함과 중요하지 않음”이다. 사랑이나 인생에서는 무엇이 경중일까. 사실 소설 대부분이 이 문제를 다룬다. 1929년에 태어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은 삶과 사랑의 경중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대표적인 소설이다.

대체로 무거울 중(重)에는 소중(所重)·귀중(貴重)·진중(鎭重)·신중(愼重) 등 긍정적인 뜻이, 가벼울 경(輕)에는 경박(輕薄)·경솔(輕率)·경멸(輕蔑)처럼 부정적인 뜻이 담겼다.

중요한 예외가 하나 있다. ‘경쾌(輕快)하다(움직임이나 모습, 기분 따위가 가볍고 상쾌하다)’는 가벼움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불교는 윤회(輪廻)와 윤회를 넘어서는 해탈(解脫)을 말한다. 그리스도교는 (영생의 장소가 천국이건 지옥이건) 영생(永生)을 말한다. 불교나 그리스도교의 주장이 맞는다면 인생의 본질과 단위가 달라진다. 60평생이건 120평생이건 단 한 번 사는 인생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라면, 그 영원 속에서 사랑의 의미는 뭘까.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라는 사랑 고백이나 다짐은 120년 살 때하고 영원히 살 때하고 느낌이 사뭇 다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니체의 영겁회귀(永劫回歸, eternal recurrence)에 대한 성찰로 시작한다. 영겁회귀는 윤회나 영생에 대한 대안적인 세계관·인생관이다. 영겁회귀란 무엇일까.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은 영겁회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니체가 그의 저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내세운 근본 사상. 영원한 시간은 원형(圓形)을 이루고, 그 원형 안에서 우주와 인생은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사상이다.”

니체에 따르면 영겁회귀의 결과는 인간에게 ‘가장 무거운 짐’이다. 영겁회귀 속 인간에게는 인생의 모든 것이 무겁다. 반면 인생이 한 번뿐이라면 인생이나 사랑을 포함해 모든 게 가볍다.

쿤데라가 이 작품에서 인용하는 ‘아인말 이스트 카인말(Einmal ist keinmal, 한 번 일어난 것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에 따른다면, 한 번 사는 것은 아예 태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 한 번 사는 인생은 가볍다. 아니 무게가 아예 없다. 쿤데라는 니체에 이어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를 등장시킨다. 파르메니데스는 가벼움을 긍정적인 것, 무거움을 부정적인 것으로 봤다.

상당수 사람들은 ‘싸잡아(한꺼번에 어떤 범위 속에 포함되게 하다)’ 말하기를 즐긴다. 예컨대 온 인류에게 인생이나 사랑이 가볍거나 무거워야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사랑이 가볍다. 다른 이들에게는 사랑이 무겁다.

불륜은 중죄(重罪)다. 세속법의 처벌 대상이 아니라도 말이다. 가톨릭이나 불교에서 간통은 지옥으로 가는 중죄다. 우리말이 불륜·간통을 ‘바람피움’이라는 완곡어법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바람에는 무게가 없기 때문이다. 바람은 가벼운 것,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사랑·섹스·정치·철학 잘 버무린 스테디셀러


▎중세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
1984년에 나왔지만, 이 소설은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종합 베스트 100위, 소설 베스트 10위권이다. 웬만한 베스트셀러를 능가하는 스테디셀러다.

비결이 뭘까. 아마도 읽기 좋게 만든 ‘비빔밥’ 소설이기 때문인 것 같다. 상당수 소설은 ‘비빔밥’이다. 한 주제만을 다루는 소설이 오히려 소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사랑·섹스·정치·철학을 잘 버무린 역작이다.

정치나 철학 주제도 나오지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기본적으로 네 주인공이 엮어가는 러브스토리다. 토마시와 사비나는 가벼움, 테레사와 프란츠는 무거움을 대표한다.

토마시. 솜씨 좋은 외과의사다. 원하면 가고 싶은 병원으로 갈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심각한 바람둥이다. 아들을 하나 낳고 2년 만에 이혼했다. ‘돌싱’ 생활을 만끽했다. 가볍게 이 여자 저 여자를 만났다. 그는 여자와 ‘섹스 하는 것’과 ‘함께 자는 것’을 엄격히 구분했다.

집에 여자를 재우지 않았다. 그에게 함께 자는 것은 그가 결코 원하지 않는, 헌신을 요구하는 사랑을 의미했다. 코 꿰어 구속당하지 않기 위해 그가 만든 ‘꼼수’ 원칙 중 하나였다(사랑과 섹스를 분리할 수 없고, 사랑이 독점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애초에 토마시의 원칙은 잘못된 것이었다).

토마시가 표방하는 ‘성적인 우정(erotic friendship)’은 순항했다. 테레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테레사를 만난 후에는 사랑이 ‘에스 무스 자인(Es muss sein, 그렇게 돼야 한다)’의 문제로 바뀌었다. 토마시도 테레사라는 사랑의 강적에게 저항을 시도했다. 결국 순응했다.

테레사. 바텐더 출신 사진작가. 토마시의 아내다. 집안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똑똑하다. 독서광이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바텐더로 일할 때 토마시를 만났다. 토마시를 찾아 무작정 프라하로 상경했다. 사이가 나쁜 엄마로부터 탈출하는 것도 상경의 한 이유였다. 운명의 명령 때문인지 토마시는 그만의 플레이보이 철칙을 깬다. 테레사를 집에 재운다. 테레사는 토마시의 손을 꼭 잡고 잠을 잤다.

테레사와 토마시는 결혼한다. 토마시는 오로지 테레사만 사랑하지만, 토마시의 육체 애정행각은 결혼 전과 마찬가지로 결혼 후에도 계속된다. ‘아내만을 사랑하는 것과 혼외정사가 양립할 수 있는가’에 대해 토마시가 내놓는 답은 ‘그렇다’이다.

테레사에게 육체는 역겹고 부끄러운 것이다. 하지만 테레사는 토마시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려고 한다.

테레사는 한눈파는 토마시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고 자살까지 생각한다.

부부는 1968년 8월 21일 소련군 침공 이후 스위스 취리히로 피신한다. 7, 8개월 살다가 테레사는 귀국한다. 남을 것인가 귀환할 것인가. 토마시도 난봉꾼의 자유를 버리고 귀국한다. 반체제 운동권은 그에게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라고 설득을 시도한다. 토마시는 거부한다.

‘진실’ 깨달았던 부부, 불귀의 객이 되다


▎프라하의 바츨라브 광장. 이웃 스위스에서 원정 온 청년 친선 악대가 ‘프라하의 봄’을 축하해주고 있다.
하지만 토마시는 친정부도 아니지만, 반체제 인사라는 낙인 때문에 더 이상 의사로 일할 수 없다. 토마시는 창문 청소부로 일한다. 그 와중에도 토마시의 애정행각은 계속된다. 토마시의 경우 다정(多情)은 ‘병인 양한 것’이 아니라 병이다.

부부는 결국 정부의 감시를 피해 시골로 이주한다. 토마시는 집단농장에서 트럭 운전기사로 일한다. 더 이상 바람둥이 생활이 불가능한 환경이라서 그랬을까. 부부는 진실로 사랑하고 진실로 행복하다. 하지만 부부는 어느 날 밤 불의의 교통사고로 즉사했다.

사비나. 토마시의 분륜 상대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 화가다. 토마시의 짝으로 테레사보다는 사비나가 더 적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이 결혼할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다. 사비나 또한 ‘성적인 우정’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테레사와 달리 사비나는 헌신을 거부한다. 사비나는 밥 먹듯이 배신한다. 하지만 테레사와는 사이가 참 좋다. 사비나는 테레사에게 일자리를 소개했다. 테레사는 기회를 잡고 포토저널리스트로 발돋움한다.

프란츠. 한 스위스 대학의 교수. 아내가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어쩔 수 없이 결혼했다.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하다가 사비나의 연인이 됐다. 프란츠는 자신의 불륜 사실을 아내에게 알린다. 아내는 그를 집에서 내쫓지만 이혼을 거부한다. 사비나는 프란츠를 외면하고 떠난다. 격렬한 육체적인 사랑에 탐닉하는 사비나가 보기에 프란츠는 너무 따분하다.

프란츠는 다른 세 명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에 서툴다. 그는 여성을, 특히 사비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사비나라기보다는 ‘사비나의 이미지’다.

프란츠는 이상주의자다.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인권유린에 대한 항의에 참여하기 위해 태국에 갔다가 허탈하게 살인강도를 만나 사망한다. 프란츠의 아내는 남편의 비석에 ‘오랜 방황 끝의 귀환’이라고 적는다.

토마시의 묘비명은 “그는 땅 위의 하느님의 나라를 바랐다”이다. 신심이 깊은 가톨릭 신자인 아들이 정한 묘비명이다. 프란츠나 토마시의 경우처럼 우리 인생의 요약은 우리 뜻과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저자인 쿤데라는 영원한 노벨문학상 후보다. 딱히 지적할만한 이유 없이 노벨상을 못 받고 있다. 아버지는 저명 피아니스트·음악학자였다. 쿤데라는 프라하에 있는 음악·드라마예술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그곳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그는 공산당원(1948~50, 1956~70)이었다. 해당(害黨) 활동을 이유로 50년과 70년에 추방됐다.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혔다. 쿤데라는 체코슬로바키아 자유화 운동(1967~68)에 참여했다. 1967년 체코슬로바키아작가회의에서 그는 예술과 문화의 자유를 촉구했다.

“전체주의가 좌우파 모두를 위협해”


▎체코 프라하는 중세시대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 사진:여행박사
1968년 소련군 침공 이후 쿤데라의 모든 작품이 금서가 됐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영문판·불문판(1984)이 먼저 나왔다. 1985년에 나온 체코어판이 나왔지만, 1989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금서였다. 1975년 망명이 허용돼 프랑스로 이주했다.

1979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그의 시민권을 박탈했다. 귀환한 토마시와 달리,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이후에도 쿤데라는 귀국하지 않았다. 1981년에는 프랑스 시민권을 받았다. 1990년대 초부터 체코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로 작품활동을 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예외적으로’ 다수 비평가와 독자 모두 좋아한 소설이다. 이 책의 전성기는 1980년 대였다. 젊은이들은 책을 배낭에 넣고 프라하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1990년대에는 중국에서 쿤데라 열풍이 불었다.

1988년에는 필립 카우프만 감독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로 만들었다. 쿤데라는 이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의 소설과 거리가 있다고 봤다. 이후 그는 자신 소설의 영화화를 거부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테마 중 하나는 반대되는 것들이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가벼움과 무거움은 본질적으로 같다. 쿤데라는 “작가가 된다는 것은 진리를 전파하는 게 아니라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쿤데라가 발견한 진리는 양극의 동질성이다.

같은 맥락에서 쿤데라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는 전체주의가 진짜 위협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전체주의가 좌파도 우파도 아니며, 전체주의가 좌우파 모두를 위협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쿤데라가 열심히 설명하는 개념 중 하나는 키치(Kitsch, 비전문적이고 대체로 저속하며, 대중적인 것이나 행위를 두루 가리켜 이르는 말)다. 특히 B급 예술을 의미한다.

하지만 쿤데라는 키치를 긍정적으로 본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표현하는 키치를 대중이 공유하며, 키치가 대중의 감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어쩌면 21세기 한국은 새로운 ‘사랑과 결혼을 위한 키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쿤데라는 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나 ‘행복한 존재의 가벼움’이나 ‘참을 만한 존재의 가벼움’을 소설 제목으로 삼지 않았을까.

※ 김환영 -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등이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1902호 (2019.0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